4만에서 5만 년 전, 인간은 불을 붙이는 방법을 알아냈다. 곧이어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듯이 인류 문명을 이끌었다는 농업을 고안하며 더 많은 식물을 길들여 먹는 데에 불을 이용하여 요리하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의 석쇠(기원전 6~4세기경)


인간이 불의 작용을 알아낸 뒤에 한 일은 뜨거운 열기에도 녹지 않는 금속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좀 걸렸지만 청동기 시대에 그 방법이 개발되었다. 역사학자와 고고학자 들은 우르의 거리에 있는 노점 유적에서 염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를 굽던 기원전 2300년 무렵의 유물을 발견했다. 




미국 원주민들이 나무로 틀을 짜서 불에 고기를 굽는 모습(http://www.thewoodpit.com/html/history.html).


미국의 바베큐 : 현대 미국의 야외요리는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신세계의 식민지화 또한 유럽의 전통 요리법에 새로운 요소를 도입시켰다. 그것은 바로 바베큐이다.

석쇠구이와 좀 다르긴 하지만, 하루종일 야외에서 파티를 하던 초기의 바베큐가 현대 미국인의 축하연에서 빠질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처음에 "바베큐"라는 단어는 미국 원주민들이 불을 피워 고기를 굽는 구조물을 가리키는 영어에서 왔는데, 1660년대의 영국인들이 오늘날 우리가 알듯이 느리고 구덩이를 파서 요리하는 양식을 바베큐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나서 미국 남부에서 바베큐가 확산되었고, 이는 돼지를 구워 휴가를 보내는 표준적인 방식이 되었다.  

조지 워싱턴의 1769년 5월 27일의 일기에는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바베큐와 함께 밤새 머물르며," 카드 게임을 해서 8실링을 땃다고 되어 있다. 엔드류 잭슨 대통령도 통치 기간 동안 백악관 근처에 '바베큐 나무' 숲을 두 군데 만들었다고 한다. 이걸 돼지구이를 하는 땔감으로 썼다. 일반 시민들도 바베큐를 즐겼는데, 1898년 루이지애나에 간 작가 중의 한 명이 지역사회의 연회에서 "소를 통째로" 굽고 "양 세 마리" 구웠다고 한다. 




캠핑 요리도구 


캠핑 요리: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의 미국인 대부분에게 석쇠구이는 실내에서 하는 요리법이었다. 그러나 1900년대 초반, 캠핑과 야외활동이 대중화되었고(미국의 보이스카웃은 1910년 설립됨), 사람들이 야외에서 어떻게 요리할지에 대한 요리책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Horace Kephart 씨가 쓴 <Camp Cookery>에서는 거친 지형에서 캠핑하려는 사람들에게 크고 가벼운 프라이팬과 몇 가지 냄비와 함께 접이식 석쇠를 기본적으로 가져갈 것을 권장했다. 



1932년 10월 시판되어 인기를 끈 석쇠


최초의 현대식 석쇠: 1930년대에 야외 요리는 대중적으로 더욱 보편화되었다. 1932년 접이식 숯불석쇠라는 도구는 "캠퍼와 기타 야외 요리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며 뒤뜰 요리사가 야외 요리의 혜택을 즐길 수 있다고 선전되었다. 



1941년 8월과 1942년 7월에 시판되어 인기를 끈 석쇠들


소풍용 석쇠: 1940년대 초반에는 캠핑의 모든 허세가 사라졌고, <Popular Mechanics>은 "이동식 재받이가 있는 다리가 접히는 소풍용 석쇠"와 "외발 수레처럼 굴러가는 이동식 숯불조리기"에 대해 다루었다. 2차대전 이후 돌아온 군인들이 가족과 함께 교외로 나가기 시작하며 야외요리는 미국인의 일상이 되었다.



포드의 바베큐용 숯. 이것이 포드에서 판매한 T 모델 자동차의 공식 부속품으로 팔렸다. 



바베큐용 숯: 이 압축된 숯 덩어리(숯 안내로 가면 이것이 경재 숯과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음)는 1897년 Ellsworth B.A. Zwoyer라는 남자가 특허를 받은 것인데, 1920년대까지는 별로 유행하지 않았다. 헨리 포드가 자신의 T 모델에 폐목을 숯으로 바꾸어 싣기로 결정한 뒤부터 인기를 끌었다. 포드의 친구이자 친척이며 동업자인 E.G. Kingsford는 미시간 어퍼반도에 있는 포드 제재소 근처의 숯 공장 부지를 발견하고, 결국 도처에 킹스포드 숯이란 상표를 퍼뜨렸다(현재 미국 시장의 80%를 점유함). 토마스 에디슨은 포드와 킹스포드와 함께 캠핑 여행을 간 것으로 알려져 있고(포드가 자신의 경력을 에디슨의 실험실에서 시작한 이후 포드와 에디슨은 친구였음), 발명가는 숯 공장을 직접 설계해주었다. 

한 역사학자에 따르면. 1950년대 초반 뒤뜰 석쇠구이가 교외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에게 확산되자 킹스포드는 생산을 35%나 늘렸지만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광고를 제한했다.




판매원이 사람들에게 웨버를 사용하여 시범을 보이고 있다.


웨버(WEBER): 고전적인 미국의 숯불 석쇠는 George Stephen이란 한 남자가 처음으로 Weber를 발명한 1952년까지는 그리 유행하지 않았다. 스티븐은 시카고 외곽에 있는 Weber 형제 제철소의 용접공이었는데, 거기에서 그는 해안경비대를 위한 부표로 판금을 붙이는 일을 했다. 하루는 음식을 하다가 석쇠가 얕아 석탄재가 음식에 튀는 데에 실망하고서 부표에서 한 면을 잘라내고 다리를 달아 자신만의 석쇠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의 이웃이 이를 "스푸트니크"라고 불렀는데, 깊은 주전자 모양이라 음식에 재가 튀지 않았고 통기구를 추가하여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잘 열을 제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디자인은 빠르게 유행하였고 전국에 현대식 석쇠구이의 아이콘으로 퍼졌다. 



1957년 6월 시판된 게으른 남자 석쇠. 가스를 활용한다.


LAZY-MAN: 킹스포드의 숯, 웨버와 교외로의 이동 이후 현대식 야외요리기술이란 퍼즐의 마지막 조각은 이동식 가스 석쇠의 발명이었다. 전문적인 주방(실내의 화로)은 수십 년 동안 가스 석쇠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이동식 가스 석쇠가 시판된 것은 1954년이었다. 놀랍게도 그 도구는 LAZY-MAN이라 불렸다. 

위 사진의 광고를 보면 1957년 LAZY-MAN은 59.50달러였다. 이를 만든 회사에서 "영구적인 석탄"이라 부르는 작은 호두 크기의 도자기 덩어리가 특징이다. 가스버너가 숯불 석쇠의 열이 퍼지는 효과를 모방하여 가열하는 것이다. 추가로 70달러를 내면 사진의 오른쪽에 있는 최초의 수레 형식의 가스 석쇠를 구입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이것이 표준이 되었다.  



빅 그린 에그.


BIG GREEN EGG: 가스가 석쇠구이를 쉽게 만들고, 가스 석쇠는 1994년 숯 판매를 넘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 그러나 1960년대에조차 일부 석쇠구이를 하는 사람들은 웨버보다 나은 석쇠를 바랐다. 그들은 빅그린에그 같은 걸 원했다.  

일본의 전통 세라믹 kamado 조리기는 2차대전 이후 해외에 주둔하던 군인들이 가져오면서 미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건 Ed Fisher(해군의관)가 1974년 Big Green Egg 기업을 시작하며 동그란 바베큐 기구를 만들면서 뜸해졌다. 굽거나 훈연하기에 모두 좋은 빅그린에그는 지난 세월 동안 광신도들이 생겼고, 빠르게 미국의 야외요리의 표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석쇠구이 안내서


석쇠구이 안내서: 웨버, 가스 석쇠, 빅그린에그와 함께 지난 40년 동안 미국의 석쇠는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물론 기술에는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고 새로운 부속품들이 나왔는데, 실제로는 구워먹는 음식에큰 변화가 일어났다. 20년 전 Bon Appetit에서 출간한 <The Grilling Book>에는 김치부터 말린 치폴레까지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가 나와 있다. 모닥불이나 바위나 GasMaster 9000이나 어디에 요리하든 석쇠에 놓는 음식이 실제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Read More http://www.bonappetit.com/blogsandforums/blogs/badaily/2013/06/american-grilling-technology.html#ixzz2VxWwLB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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