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에게 김치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대다수가 단번에 무와 배추를 떠올리지 않을까? 그만큼 무와 배추는 우리의 현재 식생활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고,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제는 무와 배추를 빼놓고 한국 음식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라고까지 이야기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무와 배추는 언제 한국에 들어와 재배되었고,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을까?


먼저 무에 대해서 알아보자. 무는 한국 땅에 좀 일찍 들어왔온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놀랍게도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라고 하는 무는 -그러니까 유러피안 스타일이다- 비단길을 통해서 중국으로 건너왔다고 하는데, 기원전 400년 무렵의 기록에 그 모습이 등장할 정도라고 한다. 한국에는 그보다 좀 늦은(지중해에서 중국을 거쳐 들어왔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삼국시대부터 재배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이때 무의 씨앗을 가지고 왔으리라 짐작되는 것이 승려들이다. 불교의 전파와 무의 전래가 비슷한 때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왜 예수회의 신부들이 남아메리카를 오가면서 문화와 문물의 전파를 담당했듯이, 동아시아에서는 승려들이 그런 역할을 한 것이다. 아무튼 그들이 무의 씨앗을 가지고 와서 심어먹다가 그것이 민간으로 널리 퍼진 것이 아닐까 한다. 무에 대한 옛 문헌기록을 뒤져봐도 흥미로울 것 같은데, 그건 시간과 공을 더 들여야 하기에 다음으로 미루자. 


그럼 옛날에 심던 무는 도대체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시는 사진기가 없었으니 지금으로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니 있다! 바로 그림을 통해서이다. 


아래는 조선시대에 심사정(1707~1769)이란 화가가 그렸다는 "서설홍청鼠囓紅菁"이란 제목의 그림이다. 글자 그대로 '쥐가 붉은무를 갉아먹다'라는 뜻이다. 그때는 무가 이렇게 붉은빛이 도는 것이었을까? 흰무는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림의 소재로 쓰기 위하여 일부러 붉은무를 택하여 그린 것일까? 여느 그림들이 그렇듯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에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처럼 말이다.


심사정의 "서설홍청". 연보라빛의 무꽃까지 그려 놓았다. 상당히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그런데 무의 빛깔은 마치 홍당무처럼 생겼는데, 이것이 과연 홍당무일지 아니면 붉은순무 같은 것일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이 원산지라고 하는 홍당무 역시 중국을 거쳐 16세기 무렵 조선으로 흘러들어왔다고 하는데, 심사정이 살았던 시기와도 겹친다. 그렇게 보면, 심사정이 무가 아닌 홍당무를 그렸을 가능성도 높다. 당시 홍당무는 아주 특이한 채소였을 것이고, 그건 좋은 그림의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당무와 무의 잎과 꽃은 완전히 다르다. 무는 십자화과이고 홍당무는 미나리과이기 때문이다. 같은 '무'라고 비슷한 종일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러니 잎과 줄기, 꽃만 보면 이건 홍당무가 아니라 그냥 무다! 아무튼 흥미로운 이야기거리가 아닐 수 없다.




재미난 점은 무 옆에 배추도 같이 그려놓았다는 점이다. 배추는 중국이 원산지라서 중국을 밥 먹듯이 오가던 시절에 자연스레 그 사람들에게 묻어왔을 가능성이 높다. 묻어왔다고 해서 진짜 옷에 묻어왔다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씨앗을 가지고 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인 건 다들 알겠지. 아마 통일신라나 고려시대에 그렇게 전래되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이런 건 결국 기록 싸움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하는 기록이 문헌에 딱 한 줄만 적혀 있어도 그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증거가 된다. 그런데 그런 기록을 찾는 게 만만치 않다. 옛날 책들은 엿장수에게 엿을 바꿔먹거나 벽지로 쓰거나 불쏘시개로 쓰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게 중요한 줄 몰랐던 것이다.


그림에 있는 배추를 보면 속이 하나도 차지 않았다. 토종종자를 찾으러 돌아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옛날 배추는 지금처럼 속이 안 찼어. 또 뿌리가 이렇게 굵어서 그걸 깎아먹곤 했지." 하는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들을 수 있다. 그렇다, 옛날 토종 배추는 속이 차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지금처럼 속이 차는 배추는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의 연구성과라고 한다. 지금은 배추의 유전자지도까지 완성하려고 한다지(http://goo.gl/2vQoO).



그림을 하나만 더 참고로 보자. 아래는 심사정과 동시대를 살았던 최북(1712~1786?)이란 화가의 "서설홍청"이란 그림이다. 심사정의 그림과 차이가 보이는가? 심사정의 붉은무는 밭에서 자라고 있는 상태이고, 최북의 붉은무는 수확한 상태다. 그리고 둘의 빛깔이 확연히 다르다. 최북의 붉은무는 오히려 붉은순무와 비슷하기도 하다. 그러면 심사정의 붉은무도 순무일까? 아니다. 무와 순무는 다른 종류이다. 순무는 배추와 갓의 중간이라고 할까. 그래서 꽃이 연보라빛이 아니라 노란색이다. 쉽게 말하자면, 유채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심사정이 상상도를 그린 것이 아니라면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것은 정말 '빨간무'이다.


무에서 붉은기가 돈다. 꼭 순무와 비슷한 빛깔이다. 그런데 형태는 또 순무와는 다르다. 순무는 더 동글납작한 모양이다. 그런데 모든 순무가 그렇게 생긴 건 또 아니다. 순무 중에서 어떤 것은 그림과 같이 길쭉한 형태도 있다. 그래서 그림만 보고 이것이 무엇이라고 확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올해(2012년) 여주군으로 토종종자 수집을 나가서 돌아다니던 때였다. 광대리라는 곳에서 개걸이무를 발견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길 바란다(http://blog.daum.net/stonehinge/8726989). 그런데 그 집에서 아래의 사진과 같은 무도 재배하고 있었다. 이것이 무어냐고 물으니 '순무'라고 하셨다. 순무다, 그래 순무다! 순무라고 동글납작한 것만 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 아니, 이 무는 순무라고 하지만 최북의 그림에 나오는 붉은무와 거의 똑같이 생겼다. 어떤 것은 심사정의 그림에 나오는 무와도 비슷한 듯하다. 이걸 심어 어떤 꽃이 피는지 확인해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재미난 우연의 일치다. 토종 작물은 이렇게 매우 다양한 종류들이 있다. 우리가 시장에 가서 보는 그런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다양한 작물들이 모습도 다를 뿐만 아니라, 자라는 특징도 다르고, 재배하는 방법도 다르고, 그 맛도 다르다. 그러니 그에 따라 다양한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토종종자의 다양성은 인간 문화의 다양성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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