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 농민이 토종 씨앗을 재배함으로써 지킬 수 있는 건 작물다양성이다. 우린 흔히 생물다양성을 지키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작물의 다양성을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토종 씨앗을 이용하든 신품종을 심든, 농민이 환경에 이로운 농법으로 농사지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생물다양성이겠다. 토종 씨앗을 재배한다고 생물다양성이 확보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토종 씨앗을 재배한다면서 화학농자재를 마구 사용한다면 생물다양성을 보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나는 토종 씨앗을 보전한다는 건 토종 씨앗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토종 씨앗을 중심으로, 주체적으로 그것을 심고 가꾸고 다시 씨를 받아서 심는 행위를 통해 농민이 자신의 씨앗에 대한 권리를 지킨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씨앗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농민과 함께 살아가며 환경에 적응하고 교잡되는, 즉 변화하기 마련이며 변화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꼭 환경의 변화만이 아니라 소비자의 요구에도 맞추어 적응하고 변화해 나가야지만 농민과 함께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다. 우린 순수한 무엇을 지키자고 토종 씨앗을 보전하려는 것이 아니다. 씨앗을 고정된, 죽어 있는 자원으로 보는 건 그를 이용해 신품종을 만들어 판매하려는 개인이나 집단의 시각이다. 씨앗을 지키려는 사람에게 토종 씨앗은 그를 재배하고 이용하는 인간과 함께 공생, 공존하는 생명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토종 씨앗을 보전하는 일을 개별 농민이 책임져야 할 의무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연일 언론에서는 생물자원울 확보해야 한다며 종자 로열티가 얼마라고 떠든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그를 보전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얼마나 보상을 해주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전적으로 농민 개개인에게만 맡겨두지 않았는가. 이제라도 국가 차원에서 나서서 현지외보존 이외에 현지내보존이 가능하도록 정책적, 재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비판을 받는 수많은 농업보조금 제도가 있지 않은가? 또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맛난 농산물을 원한다면 이런 씨앗으로 재배한 농산물에 선뜻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농민은 그들의 여러 지원이 헛되지 않도록 현장에서 정직한 농법으로 품종을 보전하며 그를 여러 방면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제대로 된 토종 씨앗 보전방안이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만히 보니 꼭 삼국지 같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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