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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륙에 만연한 '상호불신 문화'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에 대해 분석한 연구가 있다고 한다. 이거 한국도 해당하는 것 같아서 찌릿찌릿하다.

언어의 한계 때문에 정확히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악명 높은 노예 무역이 횡행했다. 그런데 노예 무역 말기가 되면, 유럽인에 의해서만이 같은 마을의 사람이나 이웃, 게다가 친척과 가족에 의해서도 노예가 되어 경매에 부쳐졌다고 한다. 어떤 방법을 통해 노예가 조달되었는지에 대한 체계적 자료는 안타깝게도 존재하지 않지만, 1840년 어느 독일인 선교사가 시에라리온에서 거래되는 노예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남긴 자료가 있다고 한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144명의 노예 가운데 40%가 납치, 24%가 전쟁, 20%가 친척과 친구에 의해, 16%는 재판에 의해 노예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건 마지막 두 방식으로, 이것이 바로 '지역사회 내부의 사람'에 의해 노예화가 자행된 결과이다. 이러한 가까운 사람에 의한 배신이 시에라리온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의 노예 공급지에서 널리 행해졌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노예가 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홉스가 이야기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나 게임 이론의 '죄수의 딜레마'와 비슷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불신이 최적의 생존전략이 되며, 사회적으로는 상호불신이 이른바 '균형' 상태가 되어 안정화된다. 일단 그러한 균형 상태에 이르면, 거기에 강한 외부 충격이 주어지지 않는 한 그 상태는 변화하지 않으며 지속되어, 그것이 결국 '문화'로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는 세대를 넘어 계승되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연구는 이처럼 노예 무역의 결과 지역사회 내부에서도 '노예 사냥'이 행해졌고, 그러한 상황에서 살아남으며 경험적으로 정착된 상호불신이 지금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널리 관찰되는 것임을 입증한 것이다.



조선 말기의 극도로 혼란한 상황, 일제강점기의 민족 탄압, 한국전쟁의 동족 상잔, 이후 군부독재 시기라는 100년의 세월을 거치며 한국 사회에는 어떤 크나큰 상처가 남은 것일까?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문다고 하지만 그 흉터까지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명목상 문민 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부터 조금씩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이제 불과 30년 정도 되었을 뿐이다. 이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도록 관리를 잘해야겠다. 아직도 상처가 제대로 아물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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