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음식은 달아도 너무 달다. 어째 이렇게 달기만 한 것인지 놀라울 정도로 달다. 불고기도 달고, 음료수도 달고, 온통 단맛 투성이다. 단맛이 나지 않는 걸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은 단맛에 익숙해져 있고, 이제는 달지 않으면 맛이 없다고 생각할 지경이 되었다. 심지어 과일도 특유의 시큼새콤한 맛보다 단맛을 기준으로 품질을 정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난 단맛을 좀 경계한다. 매실 열풍이 불어 너도나도 설탕에 매실을 절여 매실액을 만들고 있는데, 그것조차도 너무나 달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단맛을 즐기게 된 것일까? 사탕수수라는 축복 같은 작물 때문일 것이다. 사탕수수가 대규모로 재배되면서, 그걸 가능하게 한 노예제도 덕에, 그리고 지금은 기계 덕에 당분을 충분히 공급받으며 살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보면 그 역사적 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훑어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미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살필 수 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지 않았는가. 몸에도 정신에도 달콤한 맛과 말을 경계해야 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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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사랑 (달콤하지 않은 이야기)




음료수의 바닥

그들은 없어졌다. 콜라 자판기, 과자 자판기, 튀김 냄비. 그것들은 미시시피 주 클라크스데일(Clarksdale)에 있는 몇 안 되는 초등학교 가운데 하나인 커크패트릭(Kirkpatrick) 초등학교의 복도에서 골목으로 옮겨져, 회색빛 쓸쓸한 하늘 아래에서 다른 쓰레기와 함께 놓여 있다. 행정관이 문제의 중요성을 처음 인식한 것은 7년 전이었다. 우리에게 델타 블루스의 황금기를 가져온 삼각주의 마을이자, 목화밭과 구비구비 강이 흐르는 평지에 여전히 아름다운 빅토리아 시대의 저택이 있는  클라크스데일은 비만과 당뇨병, 고혈압, 심장질환의 비율이 높은 미국의 건강 위기의 한가운데에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클라크스데일의 거주민 대부분의 조상들과 이곳으로 함께 온 작물인 사탕수수의 유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린 무얼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고 커크스패트릭의 교장 수잔느 월튼(SuzAnne Walton) 씨는 이야기한다.

클라크스데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월턴 씨는 나를 학교로 안내하여, 학교가 학생들을 돕고자 노력하고 있는 방법 -튀김 대신 구이, 사탕 대신 과일- 에 대해 이야기했다. 학생들 가운데 대부분은 학교식당에서 하루 두 끼를 먹는다. 그녀는 급식복을 입고 있었다. 건강 관리를 위한 학교의 의지를 강화하기 위해 교사들이 월요일마다 입는 복장이다. 학생들은 흑인이 91%, 백인이 7%이고, 나머지 2%는 3명의 라틴계이다. “이 아이들은 주어진 것을 먹는데, 그게 너무 달고 저렴한 케잌, 크림, 사탕 같은 음식이다. 그걸 바꿔야 했다. 이는 학생에 관한 것이었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예를 들어 최근 오크허스트(Oakhurst) 중학교 1학년이 된 Nicholas Scurlock 군을 보자. Nick 군은 놀이공원에서 롤러코스트를 타기에 딱 맞는 키인데 체중은 61kg인 5학년생이다. “그는 운동을 끔찍해 했어요”라고 교장 Walton 씨는 말했다. “뜀박질도 힘들고, 숨쉬기도 힘들었죠.”

“물론 내가 평가할 문제는 아닙니다”라고 월튼 씨는 웃으면서 허벅지를 치며 덧붙였다. “나도 뚱뚱하니까요.”

학교식당에서 닉 군을 만났다. 그는 엄마인 Warkeyie Jones(38) 씨 옆에 앉았다. 존스 씨는 자신에게도 좋고 닉에게도 본이 되려고 식습관을 바꿨다고 한다. “난 하루종일 달달한 과자를 먹었죠. 책상에 앉아서 무얼 하겠어요? 하지만 이제는 셀러리로 바꿨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남자친구를 만나려고 그러느냐’고 해요. 그럼 난 ‘아니, 난 건강하게 살려고 이런다’고 맞받아치죠.”

물 한 컵에 설탕을 가득 붓고 5시간을 놔두어 보라. 당신이 돌아왔을 때, 컵 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산업화된 국가이자, 전국에서 가장 뚱뚱한 주의 가장 뚱뚱한 마을 가운데 하나인 클라크스데일은 닉 셜록 같은 아이들의 몸에 설탕이 가라앉아 있는 미국 음료수의 바닥이다. 소년 모양을 한 달콤함의 유산이다. 


마지팬(Marzipan)의 사원

약 1만 년 전 처음으로 사탕수수를 재배한 뉴기니 섬의 사람들은 사탕수수를 거두어 혀에 맛이 느껴질 때까지 질겅질겅 씹으며 생으로 먹었다. 모든 질병을 치료하는 특효약의 일종으로, 사탕수수는 고대 뉴기니의 신화에서 자주 나타난다. 사탕수수의 줄기를 사랑하는 첫 번째 사람이 인류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종교의식에서 주술사는 코코넛의 설탕물을 마셨는데, 이후 신성한 의식에서 이는 콜라로 대체되었다. 

사탕수수는 섬에서 섬으로 천천히 퍼지다가, 마침내 기원전 약 1000년 무렵 아시아에 도착하게 된다. 서기 500년 인도에서 설탕이 가공되어 두통과 위경련, 발기부전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였다. 여러 해 동안 설탕 정제법은 장인에서 도제로 전해지는 비밀스런 과학이었다. 600년, 달콤함으로 손님들을 즐겁게 하려는 통치자가 있던 페르시아로 그 기술이 퍼졌다. 아랍의 군대가 그 지역을 점령하고서 설탕에 대한 지식과 사랑에 푹 빠졌다. 그건 팬에 물감을 던지는 것과 같았다. 처음에는 여기에서, 다음에는 저기로, 설탕은 알라를 숭배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나타났다. “그들이 어디를 가든, 아랍인은 설탕과 그걸 생산하는 기술을 가져갔다”고 작가 Sidney Mintz 씨는 <달콤함과 권력(Sweetness and Power)>에서 적고 있다. “우리는 설탕이 코란을 뒤따랐다고 이야기한다.”

이슬람의 칼리프는 설탕을 가지고 위대한 공연을 만들었다. 국가의 부를 나타내고자 아몬드와 설탕을 기이하게 조합하여 만든 마지팬(Marzipan)이 대유행했다. 15세기의 작가는 칼리프의 명령으로 전체가 마지팬으로 된 사원을 묘사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경이로워 하며 기도를 올리고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아랍인은 설탕 정제법을 완성하여 산업으로 만들었다. 그 작업은 잔인할 만큼 어려웠다. 밭의 열기, 낫의 섬광, 작업장의 끓이는 연기, 공장의 분쇄. 1500년 설탕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 작업은 최하층 노동자에게만 적합한 일이라 여겨졌다. 밭의 일꾼 대부분은 이슬람과 기독교 군대가 충돌했을 때 잡아온 동유럽인들이었다.

설탕과 처음 사랑에 빠진 유럽인은 아마 이교도의 땅에 있는 성지를 향해 서에서 동으로 갔던 영국과 프랑스의 십자군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고향에 설탕에 대한 이야기와 기억을 가져왔다. 사탕수수는 온대기후에서는 별로 생산적이지 않기에 —열대의 비가 흠뻑 내리는 지역에서 번성함— 최초의 유럽 시장은 이슬람과 교역하는 곳에 세워졌고, 서쪽에 도달한 설탕은 귀한 향신료로 분류되면서 귀족들만 소비했다. 그러나 1400년대 오스만 제국의 확산과 함께 동방무역이 어려워졌다. 설탕의 마법에서 멀어진 서방의 권력집단에게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작은 남유럽의 설탕 제조업자와 거래하느냐, 터키를 격퇴하느냐, 또는 새로운 설탕 공급원을 개발하느냐. 

학교에서 대항해시대라고 부르는 시기, 전 세계에 유럽인을 보내 모든 지역과 섬을 탐사한다. 현실에서 사탕수수가 번성할 밭을 사냥하는 일은 적은 규모가 아니었다. 1425년 항해사로 알려진 포르투갈의 왕자 엔리케는 식민지의 초기 집단과 함께 마데이라로 사탕수수를 보냈다. 그 작물은 곧 새로 발견된 카보베르데와 카나리제도 같은 대서양의 섬으로 보내졌다. 1493년, 콜럼버스가 새로운 세계로 두 번째 항해를 출발할 때에도 사탕수수를 가져갔다. 따라서 카리브의 섬과 노예 농장에서 대규모 설탕의 시대의 동이 텄고, 뒤이어 대량소비와 뚱뚱한 아이, 비만인 부모, 전기카트와 함께 덜거덕거리는 XXL 츄리닝을 입은 사람들을 위해 도시의 외곽에 거대한 연기가 나는 정제소가 생겼다. 


설탕을 위한 노예

콜럼버스가 몇 백 년 뒤 엄청난 노예반란이 일어난 장소인 히스파니올라 섬에서 새로운 세계의 최초로 사탕수수를 심었다. 수십 년도 지나지 않아 쿠바와 자메이카에 설탕 공장들이 들어서며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토착민들이 전쟁과 질병으로 제거되거나 노예가 되었다. 포르투갈인들은 10만 명 이상의 노예들이 설탕을 휘젓게 하며 브라질에 가장 효과적인 모델을 만들었다. 

더 많은 사탕수수를 심음에 따라 설탕의 가격은 떨어졌다. 가격이 떨어지자, 수요가 증가했다. 경제학자들은 그것을 호순환이라 부른다.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나면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17세기 중반, 설탕은 육두구와 소두구와 함께 분류된 고급 향신료에서 처음에는 중산층, 다음에는 빈곤층을 위한 주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18세기에는 설탕과 노예제도의 결혼이 완료되었다. 몇 년마다 새로운 섬 —푸에르토리코, 트리니다드— 이 식민지가 되어, 개간을 하고 사탕수수를 심었다. 토착민이 죽자 농장주들은 아프리카 노예들을 데려다 대체시켰다. 작물을 수확하고 가공한 뒤, 제품을 선박에 적재하여 완제품이 거래되는 런던과 암스테르담, 파리로 운송했다. 이곳에서는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데려온 많은 노예들도 거래되었다. 수백만 아프리카인들이 죽임을 당한 이러한 “삼각무역”의 잔혹한 측면은 중간항로로 알려졌다. 노예무역이 1807년 영국에서 금지될 때까지, 1100만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들이 새로운 세계로 선적되었다. 그중 절반 이상은 사탕수수 농장으로 보내졌다. 트리니다드의 정치가이자 역사가 Eric Williams 씨에 따르면, “노예제도로 인종차별이 탄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종차별은 노예제도의 결과이다.” 즉, 아프리카인들이 열등해서 노예가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초기 설탕 무역의 번영에 필요했던 노예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열등하게 간주된 것이다. 

영국 최초의 설탕 섬은 바베이도스였다. 영국인 선장이 1625년 5월 14일 발견했을 때에는 버려져 있었던 그 섬은 곧 설탕공장과 농장의 숙소, 선술집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처음에는 담배와 목화가 재배되었지만, 카리브해에서 재배되던 것처럼 사탕수수가 재빨리 섬을 점령했다. 100년도 안 되어 밭의 토양이 악화되고, 지하수가 고갈되었다. 그 이후 가장 야심만만한 농장주들이 다음 섬을 착취하고자 바베이도스를 떠났다. 1720년 자마이카가 설탕 왕관을 획득했다. 

이 섬에서 아프리카인들의 생활은 지옥 그 자체였다.  수백 만의 카리브인들이 밭과 집, 또는 도망치다가 죽어 나갔다. 차츰 이 무역에 대한 죄의식이 유럽에 퍼지기 시작했다. 개혁가들이 폐지를 설교했따. 가정주부는 노예가 재배한 사탕수수를 불매했다. <설탕: 달콤쌉쌀한 역사(Sugar: A Bittersweet History)>에서 Elizabeth Abbott 씨는 450g의 설탕에 대해  “우리의 살 56g을 소비하는 것이다”라고 군중에게 이야기한 퀘이커 교도의 지도자 William Fox의 말을 인용한다. 볼테르의 <캉디드>에서는 손과 발을 모두 잃은 노예가 자신의 장애를 설명한다. “설탕공장에서 일할 때 분쇄기에 손가락이 말려 들어가 팔이 잘렸다. 도망가려고 하자 그들은 내 다리를 잘랐다. 모든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그것이 유럽에서 당신이 설탕을 먹는 대가이다.”

그리고 아직 이 붐은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설탕은 하루의 기름이었다. 더 많이 맛보고, 더 많이 원했다. 1700년 영국인은 1년에 평균 1.8kg을 소비했다. 1800년 보통 성인 남성이 8.2kg의 설탕을 먹었다. 1870년, 똑같은 달콤한 이를 가진 녀석이 연간 21.3kg을 먹고 있었다. 그는 만족했을까? 물론, 아니다! 1900년, 그는 1년에 45.4kg에 이르렀다. 30년에 걸쳐, 세계의 사탕수수와 사탕무 생산은 280만 톤에서 1300만 톤 이상으로 폭발했다. 오늘날 미국인은 연간 평균 35kg의 설탕을 소비하거나 하루에 티스푼 22개 이상의 설탕을 소비한다. 

요즘 바베이도스에 가면, 설탕의 유산들을 볼 수 있다. 바람으로 돌리던 풍차가 부숴진 설탕공장이 시간을 나타내고, 어두운 집들, 오르락내리락 하지만 결코 바다가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 도로, 관광객으로 가득한 호텔, 그리고 사탕수수가 여전히 프레스기에 던져지고 있는 몇몇 공장들, 원당, 끈적한 달콤함이 뚝뚝 떨어져 있다. 안전모를 쓴 남자들이 내 주위로 서둘러 지나다니는 정제소에 서서, 나는 손으로 쓴 글씨를 읽었다. 그 작물에게 지혜와 보호와 힘을 가져다주기를 신에게 간청하는 기도문이었다. 


범인

“질병과 그 첫째 원인에 대한 경로를 추적할 때마다 설탕으로 돌아가는 것을 발견하는 것 같다.”

콜로라도 덴버 대학의 신장학자 Richard Johnson 씨는 로키산맥의 수평선을 배경으로 하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빛이 나는 눈을 지닌 큰 사람이다. “1900년에는 단 5%였던 고혈압 환자가 왜 지금은 전 세계 1/3의 성인이 가지고 있는가?”라고 그는 물었다. “왜 1980년에 1억5300만 명이 당뇨병이었는데, 지금은 3억4700만 명으로 늘어났는가? 왜 더욱더 많은 미국인들이 비만이 되는가? 주요 범인이 아니라도, 범인의 하나는 설탕이라고 생각한다.”

서유럽이 처음으로 설탕 붐을 경험한 1675년으로 돌아가, 영국 왕립학회의 창립 회원이자 내과의사인 Thomas Willis은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소변은 “꿀이나 설탕이 든 것처럼 놀랍게도 단맛이 난다”고 지적했다. 250년 뒤 컬럼비아 대학의 Haven Emerson은 1900~1920년 사이 당뇨병으로 인한 사망자의 급증과 설탕 소비 증가의 상관관계에 대해 지적했다. 그리고 1960년대 영국의 영양 전문가 John Yudkin은 식사에 많은 양의 설탕이 심장질환과 당뇨병에 위험요소인 혈액의 지방과 인슐린의 수치를 높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간과 동물에 대한 일련의 실험을 실시했다. 그러나 Yudkin의 주장은 식사에 너무 많은 포화지방으로 인한 콜레스테롤로 비만과 심장질환이 증가한다는 다른 과학자들의 비판으로 내쫓겼다.

그 결과, 지방은 20년 전보다 미국인의 식사에 더 적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미국의 비만은 더욱 증가했다.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존슨 씨는 주요 원인이 설탕, 특히 과당이라고 한다. 자당 또는 그래뉴당은 똑같은 양의 포도당과 과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당은 과일에서 자연적으로 발견되는 설탕의 종류이다. 그건 또한 그래뉴당에 매력적인 단맛을 선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과당 옥수수시럽 또는 HFCS는 또한 과당과 포도당을 음료에 약 55 대 45로 섞은 것이다. 자당과 고과당 옥수수시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유사하게 나타난다.) 존슨 씨는 포도당은 몸 전체를 통해 세포에 의해 대사되지만, 과당은 주로 간에서 처리된다고 설명한다. 탄산음료나 사탕처럼 빨리 소화되는 형태를 너무 많이 먹으면, 간이 과당을 분해하여 트리글리세이드(중성지방)이라 불리는 지방을 생산한다. 

이러한 지방의 일부는 간에 남아서, 장기간 노출되면 지방질로 전환되고 기능장애를 일으킨다. 그런데 많은 트리글리세이드도 혈액을 밀려나온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혈압이 상승하고, 조직이 차츰 인슐린에 내성이 생긴다. 췌장이 상황을 유지하려고 더 많은 인슐린을 들이부으며 반응한다. 결국 허리 부분의 비만과 고혈압 및 기타 신진대사의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대사증후군으로 알려진 상황이 시작된다. 검사하지 않으면 덤으로 심장마비의 위험을 높이는 2형 당뇨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성인 인구의 1/3 정도는 국립건강연구소에서 설정한 대사증후군 기준에 걸릴 수 있다. 

최근 미국 심장협회는 식사에 너무 많은 설탕을 넣지 말라는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그 근거는 설탕이 영양가는 없으면서 열량만 제공한다는 것이다. 존슨 씨와 그 동료들에 따르면, 이는 핵심을 벗어난 것이다. 과다한 설탕은 텅 빈 열량만이 아니라, 독성이다. 

“그것의 열량과는 상관이 없다”라고 샌프란시스코의 캘리포니아 대학 내분비학자 Robert Lustig 씨는 말한다. “설탕은 과다하게 먹으면 그 자체가 독이다.”

존슨 씨는 미국인의 통념을 언급한다. 미국인은 너무 많이 먹고 운동을 적게 해서 뚱뚱하다. 그러나 그들이 너무 많이 먹고 운동을 적게 하는 이유는 설탕 중독 때문인데, 이로 인해 더 뚱뚱해질 뿐만 아니라 설탕에 매진하며 활력도 떨어지고 있다. “텔레비를 보는 까닭은 텔레비가 너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며, “운동할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그건 너무 많은 설탕을 먹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너무 많은 설탕 섭취를 멈춰라. 사람들이 예전으로 돌아가면 부작용의 대부분은 사라진다. 문제는, 소비량이 폭증한 이유의 하나인데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설탕을 피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식품제조업자들이 음식에서 지방을 빼고 그 맛을 대체하려고 엄청난 양의 설탕을 넣어 더 건강한 음식처럼 보이게 하며 무지방 구운 음식이라고 내놓고 있는데, 그런 음식에 설탕이 더 많이 들어가 있다. 

이건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는 음식을 먹어서가 아니라, 병들고 싶지 않아서 당신이 싫어하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병이 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과일이었다

설탕이 우리에게 그렇게 나쁘다면, 왜 우린 그걸 갈망하는가? 간단히 대답하면, 혈액에 설탕을 주입하면 뇌가 마약에 반응하는 것과 같이 쾌락중추를 자극한다. 모든 맛있는 음식이 어느 정도 이런 역할을 한다. 즉 그것이 맛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설탕은 아주 특별한 효과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그것은 말 그대로 중독성 약물이다. 

그러나 이는 왜 우리의 뇌가 잠재적으로 유독한 화합물에 유쾌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만든다. 존슨 씨가 알려준 답은, 우리가 유인원이었던 시절에 과당을 갈망했는데 그건 우리 조상들이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존슨 씨의 이야기를 우화를 빌려 바꾸어 보면, 아무리 최고의 이론이더라도 과학의 언어로 다시 이야기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처음 시작일지도 모르는 약 2200만 년 전, 유인원들이 아프리카 열대우림의 나무에 가득했다. 그들은 1년 내내 끊임없이 먹을 수 있는 천연 설탕을 지닌 나무의 과일로 생존했다.

아마 500만 년 뒤의 어느 날, 이 에덴동산에 찬바람이 불어닥쳤다. 바다가 줄어들고, 빙하가 확대되었다. 조수에서 섬들이 드러나고, 몇몇 대담한 유인원은 아프리카 밖으로 건너갔다. 유목민, 방랑자인 그들이 유라시아를 덮은 우림에 정착했다. 그러나 추위는 계속되어, 가을에 낙엽을 떨어뜨리는 나무들의 숲이 열대의 과실수 숲을 대체해 나아갔다. 기근의 시기가 뒤따랐다. 숲에는 굶주린 영장류로 가득 찼다. “어떤 시점에 돌연변이가 유인원 사이에서 발생했다”고 존슨 씨는 설명했다. 그것이 유인원이 과당을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도록 만들었다. 적은 양이라도 지방으로 저장되게 하여, 땅과 음식이 부족한 긴 겨울에도 잘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돌연변이 유전자와 희귀하고 귀중한 과일의 설탕에 대한 건강한 갈망을 지닌 영장류가 아프리카의 고향으로 돌아와 우리가 오늘날 볼 수 있는 유인원들을 낳았다. 그중에는 전 세계에 설탕을 사랑하는 후손을 퍼뜨린 종이 포하되어 있었다. “돌연변이가 그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강력한 생존요인이 되었다”고 존슨 씨는 말한다. “그래서 오늘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영장류는 돌연변이가 있다. 난 흉년을 통해 우리의 조상이 생겼다고 본다. 그러나 설탕이 대규모로 서양을 강타하자 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의 세계는 과당으로 넘쳐나게 되었는데, 우리의 몸은 그에 대해 아주 아주 조금만 진화한 것이다.”

이는 엄청난 모순이다. 우리를 구했던 것이 결국에는 우릴 죽일 수 있게 되었다. 


건강한 요리사

11살밖에 안 된 닉 셜록은 설탕의 시대를 사는 평균적 미국인의 완벽한 대역이다. 지방이 과다한 소년에게 광고업자와 사탕 판매원은 그의 간에 더욱더 저렴한 가격으로 과당을 섭취하도록 만들고 있다. 61kg의 5학년 소년은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달콤한 독을 사랑한다. 학교식당에 앉아서 웃으며 “왜 그렇게 좋은 것이 당신에게는 그렇게 나쁜가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권력에 관한 것보다 덜 유혹적이다. 기껏해야 학교는 아이들이 더 나은 결정을 하도록 도울 수 있을 뿐이다. 몇 년 전 팝타르트와 피자가 커크패트릭 초등학교에서 제공되었다. 현재 이 지역에서는 메뉴가 개선되었다. 학교는 지역사회를 위한 먹을거리를 재배하는 텃밭과 산책로, 공원, 놀이터 등이 갖추어졌다.

어떤 의미에서 클라크스데일의 투쟁은 설탕의 장원과 사탕수수 노동자 사이에서 계속된 전투의 또 다른 전선이다. “이것이 부유층보다 빈곤층을 훨씬 어렵게 만드는 것이 비극이다”라고 존슨 씨는 이야기한다. “당신이 부유하면서 즐기기를 바란다면, 하와이로 휴가나 여행을 가서 쉰다. 그러나 당신이 빈곤하면서 기분을 내려면, 골목을 돌아나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산다.”

내가 닉에게 자라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묻자, 그는 “요리사요”라고 답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잠시 엄마를 바라보며 생각하다가 이렇게 고쳐 말했다. “건강한 요리사요.”



http://ngm.nationalgeographic.com/2013/08/sugar/cohen-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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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설탕바구니인 Negros의 Flora 마을은 사탕수수 대농장을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하는 쪽으로 다각화하면서 농생태적 마을로 전환했다. 사탕수수 생산이 꽤 줄어들고, 옥수수, 곡물, 콩, 채소 같은 작물로 보완되었다. 농지에서 분해되도록 하여 작물 부산물을 순환시키는 사탕수수 폐기농법이 심각한 생태적 파괴를 일으키는 전통적 화전농법을 대체하고 있다. 농민들은 새롭고 오래된 유기농업 기술을 광범위하게 실행하고 있다. 이 글의 정보는 REAP-Canada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는 "Agro-Ecological Village at the Flora Community"에 기반을 둔다. 




필리핀 네그로스 섬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필리핀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라 함. (사진 http://goo.gl/VGhXZ) 



LEISA Magazine • 16.4 • December 2000

사탕수수 대규모 단작에서 농생태적 마을로

Lindsey Mulkins와 동료들

Negros라는 섬은 필리핀의 설탕바구니로 알려져 있다. 저지대의 농지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탕수수 재배에 쓰인다. 사탕수수를 생산하는 대규모 단작과 연계된 사회적, 생태적 문제가 섬에 널리 퍼져 있다. Negros는 1980년대 설탕산업의 붕괴가 수천 명의 설탕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기아를 일으키며 악명을 떨쳤다. 오늘날 Negros의 경관 대부분이 대농장주로 알려진 부유한 플랜테이션 소유주의 관리를 받는 대규모 단작 방식의 사탕수수 생산지로 남아 있다. 농지가 없는 노동자들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하루 1.5~2달러를 받으며 빈곤과 부채의 고리에 갇힌 채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Negros의 일부 마을은 긍정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한 곳 가운데 하나가 Negros Occidental 남부의 Kabankalan 근처의 Flora 마을이다. 1997년, 필리핀 정부의 종합농지개혁 프로그램(Comprehensive Agrarian Land Reform Program, CARP)을 통해 76명의 대농장 노동자와 그 가족(약 375명)이 옛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었던 26만1000헥타르의 땅을 받았다. 그들은 이를 2460평의 개인 농장과 5만3100평의 집단농장으로 분할했다. 


현재 Flora 마을의 사탕수수를 생산하는 관행농법이 사탕수수 폐기농법으로 전환되고 있다. 사진: REAP-Canada


Flora 마을은 대농장을 다각화하여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생태적 방법을 따르면서 그 생산능력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마을에서는 농민연합인 PAGLA-UM을 결성했다. 마을에서는 또한 지속가능한 농업체계의 연구와 개발을 담당하는 전문기관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이러한 전문기관에는 PDG, MAPISAN, MASIPAG, REAP-Canada와 Los Baños에 있는 필리핀 대학의 농경제학과가 포함된다. 



생태농업 마을

내부의 식량과 에너지 체계를 창출하려는 Flora 마을의 노력은 생계를 점차 더욱 생태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결과다. 마을의 자급을 강조하는 이러한 방법은 ‘농생태적 마을(agroecological village)’이라 한다. 농생태적 마을의 일반적인 특징은 표1에 관행적 방법에 비교해 나타내 놓았다.마을에서는 역량강화를 이루고, 재정안보를 증가시키고, 시장 변동이나 기후변화에 대한 취약성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사탕수수 생산은 규모가 축소되었고 대안적인 생산 체계를 실행하여 생태친화적으로 바뀌었다. 사탕수수는 여전히 마을의 주요한 작물로 남아 있으며 (외부의) 수입과 145마리의 운송용 가축의 사료와 토양비옥도를 유지하는 유기물을 제공하고 있다. 사실 발효를 위해 방대한 바이오매스를 생산하는 사탕수수의 능력은 옥수수, 곡물, 콩, 채소 같은 다른 작물의 지속가능한 생산에 중요한 영양분과 유기물의 순환을 구동시킨다.


표1. 필리핀의 농촌 개발에 활용되는 농생태적 방법


네그로스의 사탕수수 농민. 아마 이 소가 운송용으로 쓰이는 가축일 것이다. 옥수수대도 엄청 좋아하는데 사탕수수면 그냥 환장하고 먹겠다.



설탕 생산을 변경하다

Negros의 전통적인 사탕수수 생산방식은 심각한 환경파괴를 일으켰다. 사탕수수 농지는 빈번하게 불태워진 뒤 수확하여 토양비옥도를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970년대 초반부터 1988년 사이, 주요 사탕수수 재배지역에서 토양유기물이 26%까지 감소했다. 감소된 토양비옥도는 사탕수수 생산량의 저하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화학비료를 시비하게 되었다. 현재 필리핀의 사탕수수 시비량은 연간 3000평에 질소 209kg, 인 55kg, 칼륨 74kg으로 추산된다. 또한 고지대의 사탕수수 생산은 토양침식을 유발하고, 그 결과 수체의 약동(siltation of water bodies)을 일으키고 있다. 과다한 질소비료 사용과 simazine 같은 제초제의 잔류로 지하수도 오염되었다. 화전농법은 생물다양성을 감소시켰고, 사람들에게는 호흡기와 안과 질환을 유발하고 암 발병률을 높였다. 

사탕수수를 수확하고 폐기(부산물을)하는 대안적인 농법이 Flora 마을에서 실행되기 시작했다. 수확하기 3달 전, 사탕수수 줄기에서 손으로 죽은 잎을 제거하여 흙에다 폐기해 부패하도록 한다. 수확한 뒤에는 사탕수수 부산물을 농지에다 폐기하여 놔둔다. 이 폐기물이 분해되는 과정에 질소를 고정시키고고 토양유기물을 높여서 질소비료 사용량을 감소시킨다. 


사탕수수를 수확하는 필리핀의 농민. 이런 식으로 사탕수수대만 수확하고 나머지는 밭에 폐기하는 것이다.


폐기농법은 또한 풀도 억제하고, 토양 수분도 보존하며, 침식도 최소화하고, 태풍에 사탕수수가 쓰러지는 것도 보호하며, 수확시기를 크게 줄인다. 폐기농법은 특히 사탕수수를 베고 놔둔 그루터기에서 자란 싹으로 인해 사탕수수 수확량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다. 동남아시아에서 평균 수확량 증가율은 먼저 심은 사탕수수에서 5.8%, 첫 그루터기 싹에서  21.1%라고 한다. 폐기농법은 경제적으로 실용적이지 않기 전인 1~2번 정도 추가로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나오게 하여 농사지을 수 있도록 하여, 전통적으로 그루터기 새싹과 연관된 수확량 저하를 감소시킨다. 오랫동안 실행하면, Flora 같은 마을의 사탕수수 폐기농법은 토양비옥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여 생산력을 높이고, 투입재 요구를 감소시키며 그루터기 새싹의 순환을 더 길게 만드는 긍정적인 피드백 체계를 창출할 잠재력이 있다. Flora의 농민들은 현재 관행농 사탕수수 농민들이 사용하는 비료보다 절반 이하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 관습의 변화와 함께 최적의 시비량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사탕수수밭은 이렇게 소를 이용하여 쟁기질을 하여 두둑을 짓고 고랑을 만든다. 


그리고 사탕수수는 이렇게 심는다고 한다. 옥수수처럼 씨앗을 심는가 했더니 그게 아니라 사탕수수대를 잘라서 꺾꽂이하는 방식이었음.


폐기농법의 주요 단점은 화재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과 노동비용의 상승이다. 사탕수수 폐기는 보통 화재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고랑을 번갈아 가며 부산물을 쌓아서 그렇지 않은 고랑에는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폐기농법의 노동비용은 투입재 비용이 감소하고 사탕수수 생산력이 높아짐으로써 상쇄된다. 현재 마을의 평균 수확량은 3000평에 약 70톤이다. 


대부분의 작업이 손으로 이루어지는 필리핀 네그로스의 사탕수수 농사. 이걸 산업화한다면 대형 농기계가 한번에 수확하는 방식으로 바뀌겠지. 그럼 여기서 일하던 사람들은 도시로 내몰릴 테고... 농업의 산업화, 과연 바람직한 것이라고만 할 수 있는지 생각할 문제다. 



Flora 마을의 벼와 옥수수 생산

벼농사의 도입이 Flora 마을의 식량 자급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변화다. 그들은 현재 8400평의 논으로 쌀 수요의 약 75%를 충족하고 있다. 농민들은 필리핀의 전국 생태농민연합인 MASIPAG(ILEIA Newsletter Vol.14 3&4, p.47를 보라)가 개발한 유기농법 벼농사를 성공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MASIPAG 프로그램은 화학비료와 제초제나 살충제를 쓰지 않고 유기농 생산체계에서 선발된 지역에 적합한 벼 품종을 사용하는 것을 강조한다. 사탕수수 폐기농법과 마찬가지로, Flora 농민들은 수확한 뒤 볏짚을 논에 돌려줌으로써 논의 토양비옥도를 유지한다. 필리핀에서 볏짚의 90%가 태워지는 반면, 덮개 체계는 볏짚이 분해되며 질소를 고정시킴으로써 마을에서 볏짚을 태우는 일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일을 완전히 없앨 수 있었다. 더 많은 질소가 azolla와 벼와 함께 자라는 질소고정 수생식물에 의해 제공된다. 조리하면서 나온 왕겨와 사탕수수 가공에서 나온 찌꺼지도 논의 비옥도를 유지하는 데 쓰인다. 


Masipag의 벼농사 농법을 설명하는 동영상 (제작 Wayne Clark)



MASIPAG 체계에서 벼는 30cm 간격으로 심는다. 농민은 땅을 깊이 갈아서 벼가 뿌리를 깊이 내려 양분을 빨아먹도록 돕는다. 질병은 듬성하게 심고 병해에 강한 품종을 심어서 최소화한다. 벼는 논에 바람이 잘 통하도록 촉진하고 그늘이 최소한으로 지도록 동서 방향으로 심는다. 50가지 정도의 벼를 심는 MASIPAG의 실험논은 농사철마다 마을사람들이 관리한다. 

Negros에서 가장 심각한 벼의 해충은 먹노린재와 황금왕우렁이다. 먹노린재는 벼가 성장하는 중요한 기간에 물높이를 조절하여 관리한다. 왕우렁이의 개체수는 모내기한 뒤 물높이를 낮게 관리하여 조절한다. 또한 그들은 모내기하고 25일 동안에는 왕우렁이가 좋아하는 토란잎을 줘서 벼모를 먹지 않도록 한다. 


이놈이 바로 황금왕우렁이(Golden Snail)다. 엄청나게 크구만. 풀도 엄청나게 먹겠다.



Flora의 농민은 사탕수수와 함께 집에서 먹고 시장에다 내다팔 찰옥수수를 사이짓기한다. 둘의 경쟁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옥수수는 수확하고 60일 뒤에 사탕수수 두둑에 교차하며 심는다. 마을에서는 현재 흰옥수수, 비둘기콩, 호박이나 고구마를 포함하여 더 생태적인 옥수수 생산을 위하여 대안적인 작부체계를 실험하고 있다.



채소 생산

Flora 마을은 집에서 소비하고 신선식품 시장에 내다팔 가지(36000평), 호박(15000평), 무(6000평), 여주, 고추를 포함한 많은 채소 품종을 재배한다. 다양한 채소 생산은 농민의 식단과 수입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지역 시장에 채소 공급을 증가시키고 적당한 가격에 살 수 있게 한다. 마을에서 재배하는 모든 작물 가운데 채소는 가장 농약을 많이 친다. 대규모 채소 생산에 대한 농민의 경험부족과 지역에 적합한 씨앗의 부재는 채소의 완전한 유기농 생산을 저해하고 있다. 농민들은 새로운 채소 품종과 대안적인 병해 방제를 집중적으로 실험하고 있다. 


사회적, 생태적 함의

사탕수수 경작의 변경과 작물 다양화를 통하여, Flora 마을은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한편, 환경에 대한 영향을 축소시키고 있다. 사람들이 안전하고 다양한 식량원을 확보하여 마을의 건강이 개선되었다. 새로운 방법이 마을의 노동능력에 더 적합한 노동체계를 생성했다. 사탕수수의 잎 제거가 보통 노동력 수요가 적은 우기에 하는 일이기에, 이것이 연간 노동력을 분할하는 효과가 있다. 사탕수수 대규모 단작과 달리, 마을의 다양화된 농업 생산은 사탕수수 잎 제거와 씨앗 갈무리, 파종, 시장 판매와 고부가가치 가공 등을 포함해 식량생산의 모든 측면에서 여성이 더 많이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Negros에서 예전에 내팽개쳐졌던 남성과 여성 들이 모두 지역 경제의 참가자가 되었다. 농촌 빈곤층의 소득 수준 상승은 기본 소비재와 아이들의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다. 농지개혁과 대규모 단작 생산체계의 생태농업화가 조합되어 Negros에서는 농업생산 수준 이상으로 사회경제적 혜택을 창출할 잠재성이 나타났다. Flora의 농생태적 마을 사업이 아직 진행 중이지만, 이미 대규모 단작 농업체계에 의존하는 마을을 위한 개발전략의 유망한 사례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Lindsey Mulkins and Roger Samson (Resource Efficient Agricultural Production-Canada), Louie Amongo and Emmanual Yap (MASIPAG),  Teodoro Mendoza (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in Los Baños, Department of Agronomy) and Ben Ramos (Paghida-et sa Kauswagan Development Group). Contact address: REAP-Canada, Box 125, Ste. Anne de Bellevue, Quebec, Canada, H9X 3V9, reap@interlink.net




이외에 네그로스의 사탕수수 생태농법에 대한 자료... http://www.reap-canada.com/international_dev_4_3_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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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유럽의 생물연료에 대한 굶주림을 충족시켜주려 하면서 토착 소농들이 폭력적으로 쫓겨났다


MDG : Guatemala  : Land grab in the Polochic Valley
쫓겨난 토착민 Maya가 2011년 3월 과테말라의 Polochic 계곡에서 보안부대와 마주하고 있다. (얼굴과 옷은 신분보호를 위해 왜곡시킴) Photograph: Campesino Unity Committee/Oxfam

Maria Josefa Macz 씨와 Daniel Pascual 씨는 새벽 5시에 전화를 걸어, 서둘러 과테말라 남부의 폴로칙Polochic 계곡으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소수민족 Maya Q'eqchi의 소농 공동체는 주 정부의 보안부대에 의해 대대로 농사짓던 자신들의 땅에서 폭력적으로 쫓겨났다고 한다. 그들을 위협하는 무장한 사람이 탄 헬리콥터가 머리 위로 날아다니고, 사설 보안요원과 준군사부대가 사람들을 공격하고, 집과 작물이 불타올랐다. 농민들은 스패인어를 할 줄 몰라서 경찰과 협상하는 것만이 아니라 거대한 생물연료 회사가 그들의 땅을 뺏는 걸 어떻게 멈추게 할 것인지 법률적 조언을 얻으려면 도움이 필요했다. 

과테말라 농민단결위원회Campesino Unity Committee(CUC)에서 인권을 위해 일하는 Macz 씨와 Pascual 씨가 수도인 과테말라시티에서 달려와 6시 이후 도착했을 때, 두 곳의 공동체는 이미 잔인하게 쫓겨났다. 그 뒤 4일 동안 10곳 이상의 마을이 정리되었다. 2011년 3월 말까지 약 800가구 –14개 공동체의 약 3200명– 가 자신들이 살아오며 일할 권리를 갖는다고 믿던 땅에서 쫓겨났다. 몇 개월 안에 Alta Verapaz주의 푸르른 수백 헥타르의 계곡에 유럽의 자동차를 위한 에탄올로 전환될 사탕수수가 재배되었다.

오늘날 추방된 가족들이 피난처나 음식의 공급 없이 길가에 살고 있다. "남자들은 산으로 도망쳤고, 여자들은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사람들은 모든 걸 잃었다; 그들은 값싼 노동력 말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게 되었다"고 Macz 씨는 말한다.

"그건 군사작전이었다. 침략 같았다. 우린 역사가 되풀이되어 30년 전의 폭력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느낀다"고 Pascual 씨는  1978년 Panzós의 인근 마을에서 군대에 의해 학살된 60명의 사람들을 언급했다.  미국의 지지를 받는 정부는 그들의 군대가 "국제적 파괴세력"에 의해 유발된 농민의 침략을 저지했다고 주장했다. 현실은 농민들이 땅을 위해 지자체 장을 고소했다.

폴로칙 계곡 및 과테말라 전역에서는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는 기업과 역사적 권리가 있다는 공동체 사이의 오랜 토지분쟁의 역사가 있다. 이러한 사례에서, 토지는 대대로 살아오던 공동체로부터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더 큰 하나의 회사에게 팔렸다. 쫓겨났을 때 되찾을 권리와 교섭권을 상실하고 위협받던 토지는 정부가 획득했다.

그러나 전례없는 국제시장을 위한 식량이나 연료작물을 재배하는 토지에 대한 전 세계의 돌진은 현재 극빈한 공동체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으며, 폭력과 토지가 없는 위험으로 그들을 몰아넣고 있다. 과테말라는 현재 생물연료 작물을 재배하기위 한 세계의 중심 가운데 하나이다. 

과테말라에서 잔혹행위에 대해 유엔과 유럽의 정부들에게 탄원하고 있는 Pascual 씨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이루어진 300개 이상의 청원이 거대 기업들의 금과 은, 니켈의 채광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석유에 대한 전망; 수력발전 개발; 또는 생물연료작물 재배. 또 다른 150개 이상의 지역이 자원에 대한 잠재적 갈등의 장소로 확인되었다. 폴로칙 계곡은 생물연료작물에 적합한 곳이라고 국제적 기업들이 배당했다.

2020년까지 운송연료의 10%를 생물연료로 한다는 2008년 유럽 국가들의 결정은 많은 퇴거민들을 양산한다고 입증되었다고 Oxfam은 말한다. 유럽의 목표를 충족시키고자, 개발도상국에서 공업형 생물연료를 재배하기 위해 필요한 전체 토지면적은 1750만 헥타르로 추정되는데, 이는 이탈리아의 절반 이상의 넓이이다. 

"폴로칙 계곡에서 일어난 일이 현재 전 세계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실증한다. 최신 자료는 기업들이 토지거래로 2억300만 헥타르의 토지를 취득했고 그 가운데 2/3가 생물연료를 위한 것임을 제시한다"고 Oxfam의 경제정의 고문 Hannah Stoddart 씨는 말한다. "영국 정부는 즉시 그들의 생물연료 목표를 동결하고 지시문을 폐기시키기 위하여 유럽연합에 요청해야 한다. 그것이 인권과 생계를 대량으로 말살시키고 식량 공급을 개선하지 못하도록 한다. 연료탱크에서 사람의 위로 식량을 돌릴 뿐이다."


http://www.guardian.co.uk/global-development/2012/jul/05/guatemala-land-europe-demand-biofuels?CMP=twt_f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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