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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30일, 감자꽃이 피기 시작한다.

 

자주감자에는 자주꽃, 횡성감자에는 흰꽃이 피었다.


그리고 한참 뒤인 6월 15일... 분홍감자에 분홍꽃이 피었다.


자주감자 꽃.



횡성감자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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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법에는 참으로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씨뿌리기부터 김매기, 북주기, 순지르기 등을 거쳐 수확하는 일까지 참으로 다양한 방법이 있다.

농사꾼에게 자신이 해온 농법을 바꾸라는 일은 그동안 자신이 살아오던 생활습관을 일시에 바꾸라는 말과 똑같다.

그만큼 농사꾼은 자신의 방법을 믿고 의지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해를 거듭하며 쌓아온 관록과 경험이 그를 바탕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농법을 바꾸었다가 농사가 잘 안되거나 망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농법을 알려준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 말을 듣고 따라한 본인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농사꾼이 자신이 농사짓던 방법을 바꾸기란 더욱더 어려워진다.


그래도 바꾸는 때가 있다. 누군가 그 새로운 농법을 받아들여서 몇 해에 걸쳐 농사를 잘 짓는다면 그때서야 "나도 한번 바꿔 볼까" 하게 된다. 그것도 아니면, 보조금 등이 나오거나 그에 대한 확신이 서는 순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척 과감하게 농법을 바꾸곤 한다.


처음 농사짓는 사람들은 누구에게 농사를 배웠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 말과 똑같다. 

주말농사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의 경우, 그 주말농장의 운영자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농사짓는 방법이 결정된다. 거기서 확 바뀌는 일이란 앞의 농사꾼의 경우처럼 그리 흔하지 않다.


텃밭 농사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 바로 감자이다.

감자는 심는 방법도 쉽고, 관리하기도 쉬우며, 무엇보다 나중에 수확할 때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작물이라 초보 농부들이 좋아한다. 감자 하나를 캐면 감자가 줄줄이 알사탕처럼 들려 나올 때 느끼는 희열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 감자를 심는 방법에서도 크게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아래는 요즘 많이들 쓰고 있는 감자 심는 법이다. 높고 좁은 두둑을 짓고 거기에 감자를 심는다.

이 농법은 '비닐'의 사용을 기본 전제로 하는 농법이다. 사진에는 비닐이 없지만 흔히 여기에다 이른 봄에는 투명한 비닐을, 좀 지나서는 검은 비닐을 덮고서 감자를 심는다. 

이렇게 심으면 좋은 점은, 감자가 높고 좁은 두둑 안에 집중적으로 달리기에 나중에 수확하기 수월하다는 것이다. 대신 김을 매고 북을 주는 데에는 불편할 수 있다. 그래서 비닐이 기본 자재로 쓰일 수밖에 없다. 저 두둑에 비닐을 덮어 놓으면 김을 맬 필요도 없고, 북을 줄 필요도 그리 크게 없다. 비닐이 보온만이 아니라 보습 효과와 잡초를 억제하는 역할까지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닐을 쓸 때는 참으로 좋은 감자 심는 방법이지만, 비닐을 쓰지 않을 때에는 글쎄... 봄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건조한 날이 많은데 두둑이 너무 노출되어 있어 바람에 증발되는 수분도 많아진다. 감자가 수분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작물의 하나라고는 하지만 저렇게 드러나 있으면 별로 좋을 건 없다.





다음 사진은 '헛골 농법'을 활용하여 감자를 심는 방법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평두둑에 밑거름을 준 다음 골을 탄다. 골을 타는 방향은 두둑의 방향대로 타도 괜찮고, 아니면 두둑과 직각이 되도록 타도 된다. 

이 골이 바로 '헛골'이 되겠다. 골은 골인데 진짜 골이 아니라 가짜 골이라서 헛골이다. 나중에는 이 골이 앞서 보았던 좁고 높은 두둑으로 변하기에 그러하다. 그건 나중에 더 살펴보도록 하고... 




그리고 헛골에 적당한 간격으로 구멍을 파고 감자를 심는다. 이렇게.




이 얼마나 간단한가! 좁고 높은 두둑을 만드는 노동력이나, 헛골을 타는 노동력이나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감자를 심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그러나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는, '헛골 농법'이 김을 매고 북을 주는 데 훨씬 쉽기 때문에 더 좋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뭄을 덜 탄다는 점에서도...


참고로 나는 3가지 토종 감자를 심었다. 횡성에서 자란 감자와 사천에서 재배된 자주감자와 분홍감자. 이렇게 세 가지 종류이다. 양이 많지 않아서 올해는 증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모든 작물이 마찬가지이지만, 감자 역시 그 싹부터 다르다. '싹수가 노랗다'라는 옛말이 허투루 나온 것이 아니라는 걸 농사지으면서 절실히 깨달았다.


먼저 횡성에서 온 횡성감자와 그 싹이다. 지난 12월 전여농 토종씨앗 행사에서 얻어왔는데, 깜빡하고 관리를 잘못하여 싹이 너무 길쭉하게 자랐다. 너무 긴 것만 제거하고 어지간한 싹은 그대로 심었다.



다음은 사천에서 재배되어 올라온 분홍감자와 그 싹.



마지막으로 역시 사천에서 재배되어 올라온 자주감자와 그 싹. 역시나 분홍감자나 횡성감자와 큰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 보이는가?



감자 싹이 무럭무럭 자라면서 아래의 사진과 같은 모습이 된다. 아직은 풀이 많이 자라지 않았지만 조금만 지나면 헛골을 타느라 쌓아놓은 흙무더기에서도 풀들이 자랄 것이고, 감자의 줄기는 더 크고 튼실해질 것이다. 그때 감자에는 북을 줄 필요가 생긴다. 그래야 줄기에서 더 많은 뿌리들이 나와 알이 굵은 감자가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감자의 북은 흙은 괭이나 호미로 헛골을 타면서 쌓아놓은 흙을 무너뜨려서 주면 된다. 그렇게 하면 북주기와 김매기가 동시에 된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헛골의 장점으로는 봄철에 가뭄을 덜 탄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두둑보다 아래쪽에 위치하기에 바람과 햇빛 등의 영향을 덜 받게 되고, 아침저녁으로는 이슬도 더 많이 맺히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가뭄을 덜 탄다는 점도 이 농법이 지닌 장점이다.




자, 그럼 헛골 농법의 완성형을 보자! 


3월 말에서 4월 초에 감자를 심으면 5월 중하순 무렵이면 순지르기도 끝낸 상태가 되고 흙더미에 풀들도 어지간히 자란다. 그러면 그 풀을 호미로 김을 매면서 흙더미를 무너뜨려 감자에 북을 주면서 높은 두둑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 작업을 마치면 감자의 두둑은 아래와 같이 바뀐다. 두둥!



어떠한가? 놀랍지 않은가?

새롭게 생긴 두둑 위 고랑 부분의 풀은 일부러 덮어준 것이다. 처음부터 감자를 높은 두둑을 만들어 심는 것이 아니라 헛골에다 심는 방법의 과정은 이러하다. 앞에서 이야기한 장점들이 이렇게 하여 완성되는 것이다. 올해는 감자 농사가 잘 되겠다! 


하지만 역시 비닐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단점 아닌 단점이 될 수밖에 없다. 비닐을 사용하면 그 효과는 수확량으로 돌아온다. 똑같은 유기농이더라도 비닐을 쓴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수확량은 2배 정도가 차이난다고 한다. 유기농이냐 관행농이냐에 따라 또 2배 정도의 수확량 차이를 보인다고 하니, 관행농으로 농사지으며 비닐을 쓴 곳과 비닐 없이 농사지은 유기농 감자밭의 경우 수확량에서는 4배 이상이 차이가 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더 비쌀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렇게나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데.


수월한 관리와 수확량을 목적으로 하는 농업에서는 비닐을 쓰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밭, 작은 밭에서 자급을 목적으로 하면서 농사짓는 곳에서는 비닐을 구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고 돈만 많이 들기에 비닐을 쓰지 않고 농사짓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선택은 농사짓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작은 평수에서 자급용 감자를 기르려고 한다면 난 망설이지 않고 '헛골 농법'으로 농사를 짓도록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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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집도 몇 채 없고, 얻은 것도 얼마 없어 어지간한 집이 보이면 무조건 내려서 찾아갔다. 그러나 위에 있는 대부분의 집은 농가로만 쓰고, 사는 건 바닷가 동네에서 산다. 그렇게 찾아간 어느 집은 완전히 동물농장이었다. 이놈들이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는지 내가 들어가니 누군냐며 쳐다보고 좇아다니느라 바쁘다. 동물들 틈바구니에 나 혼자 끼어 있으니 은근히 공포스럽다. 

 

 동물농장의 알을 품는 암닭. 거푸집 아래로 오묘하게 닭둥우리가 생겼다.

 

어찌나 좇아오던지 어이 하고 쫓으니 닭들은 뒤돌아섰지만, 흑염소는 덩치값하려는지 노려보고만 있다. 내가 밥이라도 주러온 줄 아는가보다.

 

 

 

동물농장을 떠나 다시 아래로 아래로, 마을을 향해 내려간다. 저쪽 개울 건너 오래된 집 한 채가 보인다. 저기는 가면 무엇이 있겠다 싶어 징검다리를 건너 부지런히 올랐다. 가까이 다가가니 이 집도 버려진 채였다. 그런데 할아버지 두 분이 일하다 잠시 쉬고 계시는 듯 담배를 태우고 계셨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말이라도 붙이자. 뭔가 건질 게 나올지도 모르겠다 싶어 인사부터 하고 말을 건넸다.

"할아버지, 토종이 뭐 없을까요?" 돌아오는 답은 이제는 나물이나 하지 그런 건 잘 없다는 말. 그래도 혹시나 하며, "울릉도에서 옛날부터 먹는 감자는 이제 아예 없나요?"

 

울릉감자의 소재를 알려주신 그 집. 정말 소중한 말씀 덕에 울릉감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랬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저 구암에 서동댁이란 할머니가 토종 감자, 분홍색을 한 번씩 남양리에 사는 정수아라는 분에게 팔러 온다는 것이 아닌가! 이게 왠 횡재인가. 이렇게 귀한 정보를 얻었으니, 서둘러 가보자. 해가 지기 전에 가야 한다. 나날이 동지가 가까워지면서 저녁해는 엄청 짧아지고 있다. 그러려면 일단 남양리에 가서 정수아라는 분부터 찾아서 어찌된 사연인지 물어야겠다.

남양리 동네에 내려오자마자 난 정수아라는 분부터 찾으러 나섰다. 한참을 헤매다 동네 슈퍼에서 물어보니 할머니라고 하네. 이름이 예뻐서 요즘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참 이름도 가지각색이구나. 그런데 왜 할머니는 간난이니 예분이니 그런 이름이 많을까?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부르는 대로 막 갖다 붙여서 그런가? 그때는 여자는 사람도 아니었나보다.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건 차차 좋아지겠지.

 

 정수아 할머니를 찾으러 동네를 헤매다가 만난 동백나무. 이런 좋지 않은 곳에서 참 크게도 컸다. 울릉도 사람들도 이렇게 살기 어려운 곳에서 꿋꿋하게 살아왔다. "울릉도 사람들 비탈에 서다"란 말이 절로 나온다.

 

 

참, 동네 슈퍼에서 물으니 저 아래로 가면 옛날 교회 건물이 있는데 그 집에 살고 있으니 그리로 가라신다. 얼른 빠른 발걸음으로 집을 찾아 나섰다. 드디어 찾았다. 교회로 쓰던 건물은 현재 창고로 쓰고 있는 모양이다. 아까 할아버지들의 말씀을 들으니 이 할머니가 중간수집상 정도의 일을 하시는 듯하다. 그래서 분홍감자도 여기에 왔을 게다. 하지만 집에 아무도 없으니 뭐 물어보고 할 것도 없다. 얼마나 실망스럽던지 서둘러 걸어오느라 흘린 땀이 아까울 정도다. 앉아서 넋두리하고 있을 시간도 없다. 그새 어디 갔냐며 안완식 박사님이 채근하신다. 다시 황급히 길을 거슬러 올랐다.

 

정수아 할머니 댁. 교회도 선교사업이 어려워 나갔을까? 우리나라에는 참 교회가 많기도 하다. 절반 이상이 교회에 다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며칠 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카톨릭은 자생적으로 자라서 우리 것을 많이 수용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취했지만, 기독교는 외국 선교사가 들어오면서 퍼져서 우리 것보다 그네 것이 더 좋고 훌륭하다며 따라가지는 않았을까? 장승이나 무당, 굿 등 원래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고 떠들며 살던 것들을 미신이니 우상숭배라며 내쫓은 걸 보면 말이다.

 

 

헐레벌떡 오니 안완식 박사님께서 토종을 수집하고 계셨다. 늦게 온 관계로 여기의 주소도 할머니 이름도 모르겠다. 하긴 할머니가 이름 밝히기를 극구 꺼리셔서 결국 몰랐지만 말이다. 이 집에는 사람도 없는 듯하고 토종도 없을 것 같고 정수아 할머니를 찾는 일에 정신이 팔려 그냥 지나쳤는데, 안완식 박사님의 레이더에 딱 걸렸다. 여기서 수집하신 걸 보니 울릉강냉이, 메주콩, 참깨를 구하셨다. 무슨 쓰레그물도 아니시고 어떻게 박박 긁어내시는지 참 대단하시다.

 

 이름 모를 할머니. 마침 친구 분과 놀고 계셨다. 매실주를 담가 놓았다며 한 잔씩 주셨는데, 사진은 그 매실주에 담근 매실을 꺼내 자세를 잡으실 때 찍었다.

 

 

이제 아무 정보도 없이 무작정 구암이란 곳에 가서 분홍감자를 찾아야 한다. 어디에 사실까? 침을 잘 튀겨야 빨리 찾을 수 있겠다. 하지만 찾을 길이 막막하다. 하는 데까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 구암이란 곳까지는 쉽게 왔다. 여기부터 어디를 들쑤실 것인지가 문제다. 먼저 분홍감자를 재배하실 정도면 남들과 동떨어져 사시지 않을까 하여 쭉 위로 올라가 거기부터 뒤지며 내려오기로 했다. 조금 가다보니 두 갈래길이 나온다. 어디를 택할 것인가? 인생극장의 배경음악이 흐르고, ........

"그래 결심했어! 오른쪽으로 쭉 올라가요!"

그런데 이게 왠일? 차 한 대만 간신히 지날 수 있는 길로 한참을 오르다 보니 길이 깨져서 지날 수 없다. 이걸 어쩌나? 길이 좁아 차도 돌릴 수 없고, 천상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 조심조심 미끄러지지 않게, 깨진 길에 빠지지도 않고 불쑥 튀어나온 공구리에도 걸리지 않고 지나야 한다. 일단, 조마조마 올라오느라 힘들었으니 잠시 차에서 내려 경치나 감상하고 마음 좀 돌리기로 했다. 

 

걸어서 꼭대기에 오르니 다름아닌 헬기장이었다. 이곳에서 바라본 경치는 참 끝내주는데, 차가 딱 걸려 있으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겠네. 갈 길은 멀고 맘은 바쁘고, 그래도 일단 한 숨 돌리기로 했다. 

 

 

하지만 이도 저도 쉽지 않아 그대로 올라온 길을, 100m도 더 되는 길을 후진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옆으로는 구르면 즉사할 낭떠러지가 버티고 있고, 차 한 대 간신히 지나갈 길로 후진을 해야 한다니... 이러다 감자도 못 찾고, 감자가 뭐야 목숨 걸고 내려가야 하는 마당에.

차에서 내려 뒤를 봐주며 뒷걸음질쳤다. 뒷걸음질치면서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은데 차로 뒷걸음질치려면 얼마나 힘들까? 이런 길을 거침없이 다니는 건 안완식 박사님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 덕분이다. 어떻게 어떻게 다 내려와서는 길게 한숨을 내쉬신다.

 

그럼 다시 위로 올라가보자. 지체한 시간만큼 더 속력을 내신다. 쭉 오르니 서달령으로 넘어가는 옛 길임을 깨달았다. 옛날에 일주도로가 뚫리지 않았을 때는 이 길로 다녔다는데, 눈이라도 오면 꼼짝을 못하고 남과 북이 저절로 갈려서 살았겠다. 오줌이나 싸며 쉬자고 잠시 차에 내리니 대나무 밭이 조그맣게 있다. 재미 삼아 하나 꺾어 들고 푸닥거리라도 해서 감자를 찾을 수 있도록 빌었다.

그러고 다시 차에 올라 오르니 집은 하나도 없고 울릉도에 하나 있는 화장장이 나온다. 귀신이 사는 동네에서 푸닥거리 하나는 제대로 한 셈이다. 이제 잡귀도 물렀고 운이 트이려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바닷가에 있는 마을에서부터 물어가며 찾기로 방향을 바꿨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내려와서 찾아간 첫 집의 할머니가 바로 서동댁이셨다. 웃음이 참 익살스러우신 할머니인 서동댁, 곧 김종수(84) 할머니가 바로 그분이다.

 

천신만고 끝에 찾은 김종수 할머니.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울릉감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토종 씨앗을 얻을 수 있었다.

 

 

남서2리 구암마을. 거북바위가 있어 자연스레 구암이라 부르는 이 마을에서 한 60년을 사셨다는 김종수 할머니. 씨 안 떨구려고 밭도 없는데 그래도 조금이나마 감자를 심었다고 하신다. 옛날에는 주식으로 먹었다는 이 감자는, 여름이면 쌀을 조금 앉히고 그 위에는 감자를 앉혀서 배를 채웠다. 이게 겉은 그래도 껍데기를 까 밥을 하면 파그럽고 뽀얀기 맛있단다.

다니며 만난 토종이 있는 집에서는 어떻게든 씨를 떨구지 않으려고 애쓴 집뿐이다. 그 마음 덕에 토종이 가늘게나마 여지껏 살아왔다. 이런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지금은 책에서나 보거나 이야기로나 전해질 수밖에 없었을 운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농민이 살아 있는 토종일지도 모르겠다.

울릉감자 말고도 진한 자주빛의 줄콩(덩굴 강낭콩), 6~8cm 정도 하지만 아주 맵다는 고추, 어릴 때부터 심으셨다는 오이를 얻었다. 이제 몸도 많이 불편하고 땅도 없어 농사는 많이 짓지 못하신다는 말에 맘이 찡하다. 건강하시라고, 건강하게 이것저것 심으시라는 말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저 손이라도 한 번 꼭 쥐고 인사드리는 것밖에...

 

 김종수 할머니의 이웃. 할머니는 올해 몸이 아파 병원에 다녀오시느라 씨를 놓쳤다고 하신다. 대신 옆집 할머니한테 준 것이 있으니 그거를 가지고 가라며 집에서 쉬고 계시는 할머니를 데리고 오셨다. 옆집 할머니는 땅에 감자를 잘 묻어 놓으셨다. 그 움에서 감자를 꺼내주시는 모습.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다보니, 올해는 몸이 아파 감자를 심지 못했다고 하신다. 그럼 어디서 구하나? 그냥 말만 듣고 이대로 끝인 것인가? 따라오라고 하셔 부지런히 따르니 옆집에 건너가 할머니를 데리고 오신다. 이 할머니도 나한테 감자를 받아서 심었으니 그거라도 가져 가라고 하신다. 참 고맙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또 다른 말을 하신다. 저기 중용이란 곳에 가면 나 말고 분홍감자를 심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농사를 많이 지으니 거기에는 더 많을 거라고 하신다. 그분의 성함은 백무암. 잘 적어 놓고 꼭 들르겠다고 했다.

 

 김종수 할머니의 곡간에 갈무리되어 있는 여러 씨앗들. 올해는 할 수 없이 묵혔지만 이제 병원에도 다녀왔으니 다시 심을 거라고 하신다.

 

 구암마을에서 만난 지게 재료. 이렇듯 농민은 길을 오가며 절대 허투루 다니는 법이 없다. 개똥이라도 주워 오지.

 

 

이제 다음 마을로 넘어가야 한다. 지도에는 지통골이라고 나온다. 여기는 또 얼마나 가파른 길을 올라야 도착할까? 다행히 막상 가니 길은 그리 험하지 않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 한 집에 사람이 있었지만, 이제 나이가 많아 몸도 가눌 수 없는 할머니셨다. 손자가 포항에서 건너와 할머니한테 오다가 그 집에서 서성거리는 우리를 보고 할머니의 상태며 주변 상황을 대강 일러주어 이 마을은 그냥 포기하고 지나기로 했다.

 

지통골에서 만난 서낭당.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임을 짐작케 한다. 지금도 누군가 관리하는 흔적인데 도무지 근처에서 사람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이제는 저 세상으로 건너갈 날만 기다리고 계신 한 할머니의 집과 그 집 옆으로 사료용 수수를 기르는 밭의 모습. 돌을 잘 쌓아서 만든 것을 보니 옛날에는 논으로 쓰던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누구에게 확인할 수 없었다. 산골에 가면 논을 이렇게 만들어 놓던데 여기도 그렇지 않을까?

 

 

이제 오늘 목표로 잡았던 곳을 얼추 다 돌았다. 시간도 벌써 해가 넘어갈 때가 다 되었다. 마지막으로 힘을 내서 서두르자. 퉁구미라는 곳만 가면 다 끝난다. 퉁구미는 지도에서 확인하니 웃퉁구미와 아랫퉁구미로 나뉘어 있다. 그만큼 사람이 많이 살던 동네라는 것이겠지.

그래도 잘 닦아 놓은 길로 한참을 오르니 남양2리 218번지 이 집 할아버지는 골개라고 부르는 곳에 도착했다. 아직도 두 내외 분이 농사지으며 살고 계시다. 이현우(69) 할아버지와 심외분(65) 할머니가 그분이다. 지도로는 웃퉁구미에 해당하는 곳이다.

할아버지께서는 여느 분처럼 지도소에서 나왔다며 엄청 공손하게 우리를 대하신다. 할머니가 뭐라도 말할라치면 이 사람이 알지도 못하면서 말한다고 막 나무라시면서 말이다. 여러 번 본 모습이기에 이제 이상할 것도 없다. 그래도 요즘은 많이 바뀌지 않았는가. 예전에는 공무원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그 앞에서 움츠러들었는데, 이제는 그 반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촌에서는 아직 그런 모습이 남아 있겠지? 도시 사람은 이해 못할 그런 모습. 아무튼 할아버지께서 질문에 너무 성실히 답해 주셔서, 오늘 또 갈 곳이 있는데 시간이 없기에 가봐야 한다면 유월두(올콩)를 하나 얻어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어떤 옥수수냐는 물음에 친절히 답해 주시던 이현우 할아버지. 천천히 듣고 있을 시간이 없어 서둘러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이현우, 심외분 어르신 댁. 전형적인 울릉도 식 집의 모습이다.

 

 유월두로 쑨 메주. 처마 밑에 선반을 달아 올려 놓은 것도 그렇지만, 받침으로 고인 옥수수 자루가 참 재밌다.

 

 

웃퉁구미를 거쳐 이 마을을 품고 있는 언덕의 정상에 올랐다. 저쪽 편으로는 아랫퉁구미가 자리하고 있다. 해는 서산에 기울어 붉게 물들고 날은 쌀쌀해지니 뜨끈한 아랫목에 마누라 생각이 절로 난다. 마을로 내려가 몇 집을 뒤졌지만, 소만 키우는 집이거나 다른 곳에서 본 씨앗만 있어 별 수확은 없었다.

 

 고개 정상에서 바라본 아랫퉁구미. 빠듯한 시간을 쪼개 이 마을도 들렀지만 성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저기 보이는 길은 그래도 양반이다. 이 마을 사람들이 몇 번을 얘기해서 번듯하게 놓은 길이라고 한다. 이 길은 그래도 차도 서로 엇갈려 지날 수 있고 반반한 것이 참 좋다. 대부분의 길은 가서 보지 못했으면 정말 말을 말아야 한다. 몇 번을 죽을 고비를 넘겼는지...

 

 

이제 해가 완전히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백무암이란 분을 만나야 한다. 이 분이 사시는 곳이 다행히 도동항으로 가는 쪽이라 가는 길에 들르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보이지도 않고 처음 와보는 길을, 그것도 차 한 대만 지날 수 있는 동네길을 가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동네 개들은 낯선 차에 짖어대고, 어렵사리 찾은 사동3리 636번지 백무암(67) 어르신 댁. 분홍감자의 내력을 물으니 사연은 이랬다.

원래 자신도 잃어버렸던 것이 어느 날인가 우연히 밭에서 한 개씩 싹이 나더란다. 아, 이거 분홍감자구나 싶어 하나둘씩 모아 모아, 3년을 그렇게 받아서 증식을 했다고 한다. 가을에 종자를 받아 봄에 심는데, 이거 참 맛있다고 지금은 육지에서 다들 사간단다. 맛이 좋아서 시장에 내놓아도 금방 팔리고, 옛날 노인들은 울릉도 지역방송에서 광고를 보고 찾아와서 사가는 정도란다. 백무암 어르신의 표현에 따르면, 열이 먹다 아홉이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이 좋다고 한다.

씨감자는 20kg 상자로 10상자를 놔두는데, 그걸로 1000평을 심을 수 있다. 지금은 땅에 묻어 저장하고 있어 꺼내기 힘들어 줄 수 없으니 나중에 봄에 심을 때 연락하면 보내주겠다며 전화번호를 주셨다. 토종으로 판로도 확보하며 농사짓는 백무암 어르신은 첫눈에도 무사 같은 풍모를 풍기셨는데, 말씀도 그렇게 하셨다. 칼을 뽑으면 무라도 베어야 도로 집어 넣으실 분이다. 그분의 집중력과 끈기로 분홍감자가 울릉도에서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니 참 다행이다.

 

이렇게 13일째의 밤이 깊었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 돌아갈 준비를 하고 울릉도에서 보낼 마지막 밤을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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