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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얼추 김장을 마친 집들이 많을 것이다. 김장의 필수라면 역시 배추 아니겠는가. 그래서 텃밭에서도 가을이면 배추를 지극정성으로 재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가을 농사의 꽃은 누가 뭐라 해도 김장농사이다.


그런데 배추를 재배하면서 왜 배추를 묶어주는지 따져본 사람이 있을까? 몇몇은 이러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배추를 왜 묶어줄까? 사람들에게 배추를 왜 묶어주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속이 차라고 묶지요" 하고 답하곤 한다. 과연 그럴까?  


배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저온성 작물이다. 그래서 중부 지방의 경우 가을 김장배추는 8월 중순에서 9월 초순 사이 씨앗이나 모종으로 심는다. 씨앗으로 심든 모종으로 심든 가장 중요한 기준점은 '그 지방의 평균기온이 15도가 되는 날'이다. 그 날짜를 어림짐작하려면 기상청에 들어가서 과거 기후자료를 뒤져보길 바란다. 기상청에는 자기의 밭이 있는 곳, 바로 그곳의 정보는 아니어도 그 지역의 정보가 나오니 말이다. 또 평소 꼼꼼한 사람이라면 농사일지에 밭의 기온을 날마다 기록해 놓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무튼 평균기온이 15도가 되는 날에서 한달여 전에 씨앗을 뿌리면 적당하다. 

그렇게 하면 배추의 생육 기간이 50~90일이니, 잎이 자라는 데 가장 좋은 20도 전후의 날씨에서 부쩍부쩍 자라다가 기온이 15도쯤 정도로 떨어지면 결구가 되는, 이른바 '속이 차게' 된다. 그러니까 내 배추가 속이 아직 덜 찼는데 추위가 찾아왔다면... 이걸 부직포 같은 걸로 밤에 덮어주었다가 아침에 다시 걷고 하는 일을 반복한다고 속이 안 찬 배추가 속이 찰 리가 없다. 즉, 추위가 찾아오기 전에 이미 속이 차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속이 차는 것과 배추를 묶어주는 건 아무런 관계가 없단 말이다.

  

자, 그렇다면 왜 배추를 묶어줄까? 그것은 속이 차라고 묶는 것이 아니라, 바로 얼어죽지 말라고 그러는 것이다. 배추는 추위가 천천히 찾아올 경우에는 영하 8도까지도 버틴다고 한다. 참 대단하지 않은가? 옷 한 벌 없이 맨몸으로 영하의 날씨에서도 하루 종일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단다. 그런데 문제는 추위가 "나 지금 간다" 하면서 한 발씩 천천히 다가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대개 어느 순간 갑자기 확 우리 곁에 찾아와 싸다구를 매서운 찬바람으로 사정없이 때려 벌겋게 만들곤 한다. 그렇게 갑자기 추위가 찾아오면 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배추는 영하 3도 정도의 기온에도 얼어서 조직에 손상이, 그러니까 우리가 맛있게 먹을 배추를 베려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이러한 추위에 배추가 잘 버티도록 옷 매무새를 단단히 여미듯이 배추의 잎을 잘 추스려 모아 묶어주는 것이다. 배추야 춥지 말아라. 네가 추위에 잘 버티어야 올해도 맛있는 김장을 해서 겨울을 날 수 있단다. 너무 일찍 김장을 하면 '김치 냉장고'라는 문명의 이기도 없던 시절 금방 시어 꼬부라져 그해 김장은 망해 버리는 일이 발생했기에, 옛날에는 11월 중하순쯤 추위가 찾아와야 비로소 김장을 담그곤 했다. 그때까지 배추가 갑작스런 추위에도 잘 버티고 살아주어야 우리가 겨울의 일용할 양식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명심하자. 배추를 묶어주는 건 속이 차라고 묶는 것이 아니다. 추위에 잘 버티라고 묶어주는 것이다. 추위와 상관없는 봄배추라든지, 봄가을이 아닌 늦여름부터 배추가 출하되는 고랭지에서 배추를 묶어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있다면 그건 전형적인 헛수고를 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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