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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3일, 흐리고 곳에 따라 햇살이 비췄다.

성산봉 옆에서 잤지만 성산봉은 오르지 못하고, 그저 아침을 먹고 밑에서 구경만 하고 출발했다.

 

그 이름난 성산 일출봉. 그냥 밑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길을 떠났다.

 

송당리를 향해 가는 길. 확실히 동부가 서부보다 척박한 듯하다. 일단 사람이 별로 없다. 서부에는 그래도 사람이 꽤 살았는데, 이곳은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사람들도 그나마 바닷가에 모여 산다. 중산간에서 마을을 발견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늘 찾아가는 송당리는 그나마 동부에 있는 마을이다.

 

송당리로 가는 길. 감자, 당근이 전부인 듯했다. 서부에서 보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에 놀랐다. 

 

황량한 주변 경치를 보며 송당리에 올랐다. 이곳은 꽤 마을이 커서 나름 기대를 하며 동네를 돌기 시작했다. 사람을 찾아 한참을 돌다가 송당리 1389번지의 할머니(82) 댁에 들어갔다. 이 할머니는 이곳에서 나 이곳에서 늙었다. 말씀도 잘하시고 기억도 또릿하셔 옛날 일을 묻고 자료를 얻기에 좋은 분일 듯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목적으로 찾은 것이 아니니 토종에 대해 물었는데, 지금은 별 게 없다고 하신다. 할 수 없이 이 집 건너편 집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주변을 살피다 텃밭에서 무를 발견했다. 혹시 단지무?

 

송당리에서 발견하 무. 이게 혹시 단지무는 아닐지 하는 마음에 한참 이 집을 뒤졌다. 

 

 

다시 건너편 할머니 댁으로 가서 이 집주인의 연락처를 알아보았다. 얼마나 간절하게 찾았는지 모른다. 결국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 통화를 한 결과, 주변에서 씨를 얻어다 심었다고 한다. 봄에 씨를 받으면 꼭 연락을 하기로 약속하고 이만 떠났다.

마지막으로 송당리의 사무소에 들렀다. 별 소득은 없었지만, 이 사무소 앞에서 재밌는 비석을 발견했다. 내가 번역하는 자료에 당시 제주도 사람들이 일본에 돈을 벌러 갔다는 기록이 많이 나왔다. 그만큼 제주 사람들이 일본에 많이 갔다는 증거다. 그걸 뒷받침하는 비석을 하나 보았다. 물론 여기서만 본 것이 아니라 제주의 곳곳에 이런 비석이 많았다. 예전 양반네들을 위해 비석을 세우듯이 지역 발전을 위해 애쓴 사람을 위해 비석을 세운 것이다. 이것이 어찌 보면 나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내가 사는 고장을 좋아하고 지킨다는 뜻이니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겠다. 안산에서도 역사가 깊은 수암에나 이런 비석을 찾아볼 수 있다.

 

 이역만리 일본까지 건너가 힘들게 번 돈으로 고향의 발전을 위해 애썼다는 증표로 세운 비석. 제주에서는 다른 지방과 달리 송덕비니 공덕비 대신 이런 비석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만큼 일본과의 거리가 가까웠다는 것일 수도 있고, 아무튼 제주 사람들의 강인한 생활력을 엿볼 수 있는 하나다.

 

 

송당리를 떠나면서 마지막 집을 들렀다. 멀리서 보기에도 집이 오래되어 보이고, 특히 창고가 그랬다. 그래서 들렀지만 할망에게 곶감만 얻어 먹고, 이제는 다 사다가 심는다는 말만 들었다.

 

올 가을 산에서 새를 베다가 새로 얹었다는 창고 지붕. 민속촌 같은 데서 보는 죽은 모습이 아니라 뭔가 살아 있는 듯하여 좋았다.

 

이후 씨앗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아무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제주의 풍속은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아래는 그 풍경의 하나이다.

 

제주 가사리인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저쪽에 보이는 귤나무가 100년도 더 된 나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겠는가!

열매는 많이 달렸지만 확실히 크기는 별볼일 없었다. 나무도 늙어서 그런가 보다. 

 

 옛날 말방아가 남아 있다고 해야 하나, 옛날 말방아를 굳이 남겨 놓은 곳이라고 해야 하나. 나에게는 그때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은 곳이었지만, 여기에 더이상 방아 찧는 사람들은 없을 테니 죽은 공간이라고 해야 할 곳이겠다. 그래도 이런 흔적이나마 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시나 죽어 있는 공간이라 슬프기만 했다.

 

 

 

 

 

이 집들도 마찬가지였다. 토종을 수집하지 못할 때는 이런 곳에 자주 들렀는데, 들를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옛날 제주의 똥간에서는 똥은 돼지에게 먹이고 오줌은 따로 모았다. 아래 보이는 거무틔틔한 공간은 똥이 떨어져 똥돼지가 즐기는 공간이고, 나무가 박혀 있는 그곳은 오줌이 닿아 주르륵 흘러 따로 모이는 공간이다.

 

 

 오줌이 주르륵 흘러 모이는 곳이 바로 저곳이다. 제주의 척박한 환경이 만든 재미난, 그렇지만 한이 서릴 법한 곳이다.

 

 

이후 이날 마지막으로 어음리를 다시 찾았다. 그곳에서 단지무를 찾은 결과 이런 무까지 보았다. 옆에 단지와 비교하여 비슷하지 않은가? 그 이후 결과는 단지무가 아니라는 것. 제주의 단지무, 전설로 남았다. 그걸 복원하려면 앞으로도 꽤 많은 나날이 걸리겠다. 뭐든지 그렇지 않을까. 잃어버리는 건 순간이지만 그걸 다시 찾는 건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린다. 잃어버리기 전에 잘 보존하면 좋으련만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그날 마지막으로 어렵게 어렵게 수소문하여 만난 벌거숭이 공화국의 주인장. 산전수전 많이 겪은 듯한 주인의 저녁 대접을 잘 받고 어두운 밤길을 더듬어 숙소에 가 잤다. 이날이 마지막이다. 내일은 제주 전여농 담당자를 만나 우리가 그동안 제주에서 모은 종자를 나누고, 이 씨앗들이 제주에서 널리 퍼지길 바라며 비행기를 탔다. 그 소중한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제주에서는 토종 씨앗과 관련하여 활발한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참 소중하고 귀한 인연이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이틀 쉬고 다시 제주로 날아갔다. 그 이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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