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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동-물질문화의 개념 수정과 연구 전망.pdf


한국 민속학에서 물질문화 분야는 ‘후발주자’일 뿐만 아니라, ‘연구자층도 엷고 연구성과도 미미하다’는 것이 주요 과제이다. 필자는 그러한 과제를 해결하고자 “물질문화에 대한 개념을 검토하여 바람직하게 정립”함으로써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더 나아가 앞으로 물질문화 연구가 갖추어야 할 “연구의 시각과 과제에 대하여 모색하고 논의하고자 한다.”

필자는 그동안의 문화 연구에서는 물질문화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으며, 물질문화를 인공물 자체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문제의식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물질문화는 ‘인공물과 문화의 결합체’로서, 인공물은 물질문화를 연구하는 ‘물질문화자료’이기에 물질문화 연구는 인공물 그 자체가 아닌 행위 중심의 개념을 설정하고 연구해야 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를 바탕으로 인공물 제작(생산)과 사용(소비)의 기술적·정치적·경제적·이념적 과정을 연구하는 것이 앞으로 물질문화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제시한다.

이에 따라 먼저 물질문화의 연구대상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문화의 정신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여 물리적 형상을 가진 대상물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하지만 필자는 물질문화란 “엄연히 우리의 생활세계를 구성하는 부분”으로서, 문화를 “사람들의 생각·행위·물건들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져 형성된 생활방식으로 규정”한다면 성립이 가능한 용어라고 본다.

그렇지만 여전히 한계점은 존재한다. 그건 바로 물질문화의 연구대상인 인공물에 대한 문제이다. 물질문화라고 했을 때 “인공물을 문화의 범주 속에 수렴한다는 뜻을 내포하지만, 인공물이 곧 문화인 것처럼 오도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곧 인공물 자체만을 물질문화의 연구대상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물질문화를 인공물 그 자체의 물리적 속상과 체계뿐만 아니라, 인공물의 제작(생산)과 사용(소비)에 관한 인식체계와 행위체계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수정하여 규정”하고, ‘인공물(물질문화자료)’과 ‘물질문화’를 구분하여 사용하자고 제창한다.

필자의 지적처럼 인공물(물질문화자료)은 인간의 문화 행위의 과정에서 나타난 산물로서, 결국 물질문화 연구는 “인공물을 포함한 행위 중심의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물질문화라는 용어 자체가 “물질중심의 개념인데다가 문화를 정신과 물질로 양분하는 것이 문제이므로, 물질문명과 정신문화를 아우”를 필요가 있다는 임재해의 지적은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이다. 물질문화가 인공물을 포함한 행위 중심의 개념이라면, 인공물과 문화에는 어떠한 경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행위의 과정을 통하여 생성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공물이 지닌 의미와 기능은 문화 행위의 과정을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밝혀져야 하는 것으로서, 문화에 선행하는 물질적 대상 또는 문화와 별개의 것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질문화 연구는 정신문화와 확실히 구별되는 영역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크게 문화라는 영역 안에서 물질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문화 현상을 주요 대상으로 하는 연구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임재해가 제시한 文物이란 용어는 유의미하다고 하겠다.

물론 그렇다고 민속문물이란 용어가 아주 적합하다고 하기에도 어려운 점이 있다. 필자가 주장하듯이 그동안 이루어진 문화 연구에서는 주로 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여 인공물, 특히 행위 중심의 개념으로서 물질문화의 영역을 소홀히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물이란 용어에 물질이란 개념을 뜻하는 物이란 단어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그 용어 자체가 주로 정신문화의 산물을 뜻할 때 사용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지적하듯이 물질문화 분야의 연구는 “여타 분야에서 얻어낸 결실을 재확인”하고 “다른 분야 연구에서 파악되지 못한 사실을 추가로 찾아낼 수 있”는 것으로서, “문화연구의 영역을 확장하고, 그 이외 분야에서 해명하지 못했던 사실을 구명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다.

문화(culture)는 경작한다는 뜻의 ‘cultivate’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인간은 저마다 주어진 자연환경에 알맞은 경작이라는 인위적인 행위를 기반으로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현재와 같은 생활양식(문화)을 만들어 왔고, 지금도 끊임없이 그 과정 속에 있다. 그렇기에 문화 연구는 그러한 생활양식의 과정, 필자의 표현에 따르면 행위 중심의 개념을 설정하여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문화의 생성 기반인 물질문화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의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자연환경에 적합한 경작이라는 물질적 행위가 먼저 있었고, 그를 바탕으로 정신적 영역을 구축해 온 것이 인간의 문화사였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자연환경은 그를 정복 또는 적응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문화 양식을 낳았고, 과학기술의 발전 등에 따라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각자의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따라서 문화의 정신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 사상, 의례, 신앙, 기술, 예술 등의 영역은 문화의 물질적 측면에 대한 연구를 통해 더 구체화되고 세밀한 분석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물질문화와 정신문화를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민속이란 개념 아래에 물질문화와 정신문화가 그 하위영역으로 자리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논의를 전제로 필자가 제시한 물질문화 연구의 출발점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자는 자신의 논의를 바탕으로 ‘자연-인공물 체계 분석’과 ‘사회-인공물 체계 분석’이란 두 가지 방법론을 제기한다. 필자가 제시한 그림에 따르면, 두 분석은 서로 겹치지 않는 영역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자연환경이란 조건이 가장 큰 영역이고 문화는 그를 정복 또는 적응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것이라면, ‘자연-인공물-사회 체계 분석’이라는 더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으로 문화를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는 자연과 사회라는 외적인 조건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주체적인 행위와 그 산물인 인공물을 통하여 문화를 형성·유지·전승·변형해 왔는지, 더 나아가 자신의 주체적 행위와 인공물을 통하여 어떻게 자신에게 주어진 외적인 조건을 형성·유지·변형해 왔는지 탐구하는 방법을 뜻한다. 그러한 큰 틀에서 인공물의 제작(생산)과 사용(소비)의 문화 분석이 이루어질 때, 자연적·정치적·사회적·경제적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 물질문화의 온전한 모습을 조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화를 다루면서 물질(인공물)의 문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그것은 인공물 자체에만 집중할 경우 자연과학의 영역으로 넘어가거나 문자기록의 부재를 인공물로 대신하려 할 경우 고고학의 영역과 유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공물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가 물질문화의 영역에서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인공물 자체가 아닌 인공물이 놓여 있는 자연환경적,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행위 중심의 개념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곧 인공물은 인간의 주체적 행위와의 관련 속에서만 그 존재 가치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인공물을 인공물 자체로 바라볼 때 그것은 자연과학의 연구대상일 뿐이다. 그러한 인공물은 인간의 문화적 행위과정과 연관하여 살필 때에만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문화 연구의 맥락 속에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필자의 박물관에서 물질문화 분야의 연구를 진흥하고 선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그것은 사라져가는 물질문화자료를 보존한다는 측면에서 역사사료적·교육적 가치는 있을지언정, 필자가 강조한 현장의 행위 중심의 개념을 중시하는 물질문화 연구의 입장과는 다소 상충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필자의 “물질문화 연구가 계속 발전할 수 있는 토대”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일반인들에게 물질문화자료를 통해서도 사회와 문화에 관한 이해의 깊이와 폭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잔존문화에 대한 샐비지 민속학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행위 중심의 개념을 중심으로 물질문화를 연구한다면 이런 연구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대 사회의 대표적인 물질문화로 손꼽히는 ‘자동차 문화’가 그것이다. 현재 자동차는 거의 집집마다 한 대씩 가지고 있는 것으로서, 그와 관련하여 물질문화 연구의 소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자동차의 생산양식이 자연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또 자동차의 도입과 확산이 우리의 생활양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앞으로 자원고갈과 환경파괴 등으로 인한 자동차 문화는 어떻게 바뀌어 나갈 것인지 등 현대 사회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물질문화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있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제시한 “민속학에서 물질문화 연구는 전근대사회의 전통성이 짙은 물질문화자료, 신분적으로 기층민들의 물질문화자료를 주요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란 주장에도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운 바이다. 이러한 필자의 주장은 ‘전통성이 없는 기층민의 물질문화자료가 아닌 것’은 물질문화의 연구대상으로 삼기 어렵다는 말처럼 들린다. 또한 더 큰 문제는 필자가 물질문화 연구의 기본 관점으로 삼고 있는 행위 중심의 개념과는 거리가 먼 주장이라는 점이다. 현재 전근대사회의 전통성이 짙은 물질문화자료는 마당이나 창고의 한구석에서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는 상황이다. 그것은 문화 행위의 현장에서 더 이상 조명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한 것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유물로서 물질문화자료를 다루는 것이라면 역사학이나 고고학에서 하는 것으로도 어느 정도 충분하지 않을까. 단순히 유물이 아닌, 곧 인공물 그 자체가 아닌 생산(제작)과 사용(소비)이라는 문화 행위 속에서 드러나는 물질문화자료의 연구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현장을 바탕으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기층민이란 연구대상은 전근대사회에서는 유의미했을지 몰라도 신분제가 폐지된 현재에는 적합하지 않은 구분이다. 앞에 예를 든 자동차는 기층민(실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없지만)이라고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문화적 차이는 존재할지언정, 더 이상 문화적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물질문화 연구가 전근대사회의 전통성이 짙은 기층민들의 물질문화자료를 주요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은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그의 주요 논지와도 걸맞지 않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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