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쟁기를 끄는 소 길들이기

 

 

 

도호쿠東北 지방에서는 메이지 시대가 되기까지 말을 써레질에 이용하는 경우는 있어도 소를 농경에 이용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이유로, 간토우 지방의 무사 집단이 말을 중요시했던 데다가 모내기의 적기가 짧아서 발이 빠른 말이 필요했다는 점, 말의 두엄 발효온도가 소의 그것과 비교해 6℃ 높고 저온의 토양에서는 거름원으로 뛰어났다는 점, 말괭이보다 늦게 일본에 전래된 쟁기가 도호쿠 지방까지 전파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메이지 시기에 들어와 근대 농업이 깊이갈이를 지향하면서 안아 쥐고 서는 쟁기라고 부르는 바닥없는쟁기가 전국에 눈부시게 보급되며 이윽고 짧은바닥쟁기로 발전해 나아갔는데, 동일본에서는 역시 소가 아니라 말에 의한 쟁기질이 중심이었습니다. 그것은 "말갈이(馬耕)"라는 동일본의 쟁기 호칭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동일본에서 말을 대신해 소가 논 쟁기질의 주역이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정을 지키는 여성이 다룰 수 있는 짐승으로 도입되고나서입니다. 전쟁 이후 군마 수요가 없어진 말을 대신해 최종적으로 고기로 비싸게 팔 수 있는 소의 도입을 정부가 지원한 것도 있고, 농업이 기계화되는 쇼와 30년대(1960년 전후) 중엽까지 전국에서 소를 농경에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근무한 소 박물관이 자리잡은 이와테현岩手県은 한세이藩政 시대에는 남부의 소 산지로 알려진 도호쿠 지방의 유일한 소의 산지로, 예로부터 소를 부려 강철이나 소금의 운송이 이루어졌는데 앞에 기술한 바와 같이 농경에 소를 이용하게 된 것은 쇼와 시대에 들어와서부터입니다. 이와테현에 일본소(와규和牛)를 도입한 계기가 된 것은 쇼와 공황에 의해 피폐해진 농촌을 구제하기 위하여 실행한 농수성農水省의 농산어촌경제農山漁村経済 갱생운동입니다. 이와테현에서는 4개 마을이 지정되어 쇼와 13년(1938년)에 사쿠라가와무라佐倉河村(현 오슈시奥州市)에 검은소 종이 도입되었습니다. 일본소의 도입에 즈음하여 이와테현은 당초 거부의 자세를 취했는데, 거세우뿐이라는 조건으로 간신히 허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더욱이, 쇼와 14년(1939년)에 시가현에서 이와테현으로 부임했던 농수성 직원인 사사키 시게오佐々木成夫가 일본수의 3가지 이점으로 살이 잘 찜, 힘이 셈, 송아지(판매)를 설파했습니다. 당시를 잘 아는 히라이즈미쵸平泉町의 오가와 츠네오尾川恒夫(메이지 42년생)에 의하면, 쇼와 16년(1941년)의 일본소 도입과 함께 길들이기 기술도 도입되어서 급속히 퍼졌다고 합니다. 오가와를 포함한 5명이 이바라키현茨城県의 축산시험장에서 길들이기 기술지도를 받았는데, 그때 바둑판 위에 소를 올려놓는 기술을 선보여 경악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5명 가운데 2명은 20세의 여성이었습니다. 젊은이에게 연수를 받게 하고 싶었는데 남자는 전쟁에 징용되었기에 여성을 데려와 행한 것으로, 소 쟁기질의 전국적인 보급에는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그림1>.

그림1 여성의 소 쟁기질. 1957년 10월 촬영(현 오슈시). 도호쿠 6현 축력 이용기술 교환경진대회에서(소 박물관 소장).

 

 

1944년에는 오카야마현에서 미하라 사쿠노하루三原作之治를 초빙해 다이토우마치大東町(현 이치노세키시一関市)에서 도호쿠 6현의 축산 담당기사를 대상으로 한 강습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미하라는 지금까지 지역에서 경험적으로 제각각 행해졌던 소 길들이기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미하라식 길들이기의 창시자입니다. 미하라식 길들이기는 소를 부리기 위하여 필요한 '기초 길들이기'로 정자세, 앞으로, 뒤로, 좌우로 돌아, 빠른 걸음, 보통 걸음, 멈춤 등이었습니다. 한편, 오가와 등이 이바라키의 축산시험장에서 본 소의 바둑판 오르기는 오카야마현 아테츠군阿哲郡 치아무라千屋村(현 니이미시新見市)의 센야千屋 종축목장에서 근무하던 소샤시総社市의 타노 사미사부로佐野民三郎가 고안한 '고등 길들이기'라고 부르는 것으로 그외에 선회(한 다리를 중심으로 180도 선회시키는 것으로, 전후좌우 모든 다리로 할 수 있도록 함), 횡족(소가 서 있는 위치에서 바로 옆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좌우로 움직이게 함), 다리 건너기, 경례 등이 있었습니다<그림2>. 소를 부리기만 한다면 보통은 기초 길들이기로 충분하지만, 좁은 논에서 쟁기질 등 축력 이용의 고도화에 수반해 선회나 횡족의 기술이 필요해집니다. 또한, 이와테현과 같은 말에 대한 애착이 강한 지역에서 소로 쟁기질하는 걸 보급하기 위해서는 고등 길들이기를 습득한 축산기사들이 농가의 마당에서 바둑판 오르기 등의 곡예를 선보여 소의 유용성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었다고 합니다. 보통은 기초 길들이기를 마치면 '일소 길들이기'로 들어갑니다. 

그림2-1 소의 고등 길들이기(바둑판 서기)
그림2-2 소의 고등 길들이기(다리 건너기)
그림2-3 소의 고등 길들이기(경례). 1960년 촬영. 이와테현 에사시시江刺市(현 오슈시奥州市)

 

 

소를 부리는 경우, 길들이기에 앞서 코뚜레를 꿰어야 합니다. 코뚜레는 말의 재갈 역할을 하고, 고삐의 움직임을 소의 코로 전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수컷은 생후 10개월, 암컷은 10-13개월 무렵 나무송곳으로 코에 구멍을 뚫고 장치합니다. 일반적으로 비중격의 가장 살이 얇은 곳을 뚫는데, 위치가 너무 깊어 연골에 걸리면 소에게 심한 통증을 주게 되고, 너무 아래라 살이 두터운 곳을 뚫으면 지각이 둔해져 고삐의 효과가 나빠집니다. 상처에는 요오드팅크 등의 약품이나 된장을 발라줍니다. 코뚜레를 단 당초에는 상처를 아파하기 때문에 코뚜레에 굴레를 달아 가볍게 매달아 두었다가 1개월 정도 지나 아프지 않게 된 다음 고삐를 달아 길들이기를 시작합니다.

기본 길들이기의 요령으로 미하라는 몇 가지 주의점을 1950년 8월 오카야마현 축산 소식지에 기록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우선 기본 길들이기를 행하는 장소는 평탄하고 너르며 발밑에 돌이 없는 장소를 선택합니다. 여름철 한낮이나 벌레가 덤빌 때는 소의 안정을 위하여 식후 1시간 정도 지나고나서 아침저녁 시원할 때 포만감을 가늠하여 실시하고, 휴식은 길들이기의 형태가 무엇이든 하나라도 생긴 다음 다정하게 어루만지고, 10분에서 30분 정도 취하게 합니다. 조련자와 소의 위치는 최초는 코에서 60-90cm 정도에서 고삐를 쥐고 가볍게 치고, 순차적으로 쳐져 소의 오른쪽 뒷다리의 비스듬한 곳에 한 걸음 정도 떨어져 소의 등선이 보일 정도가 정위치가 됩니다.

소는 코에 닿는 고삐의 움직임을 감지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부릴 때 고삐의 사용법을 확실히 분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삐를 쥐는 법은 오른손 손등에 한바퀴 감은 뒤 꽉 쥡니다. 1m 정도 고삐의 뒷쪽을 남겨두고 왼손으로 가볍게 쥡니다. 고삐 치는 법의 습득은 두 사람이 고삐의 끝을 팽팽히 잡고 한쪽이 고삐를 치고 그걸 다른 사람이 어떻게 손에 느끼는지 가르쳐주며 연습합니다. 혼자서 연습할 경우는 한쪽 끝을 나무 등에 묶어두고 행합니다. 고삐 치는 법은 딱히 정해진 건 없지만, 손으로 일으킨 고삐의 파동이 정확히 앞쪽으로 전해지도록 합니다.

소를 다스리는 데에는 고삐의 도움과 함께 명령어가 쓰입니다. 이 명령어는 표1에 나와 있는 대로 전국적으로 협정되어 있고, 충분히 철저하게 하면 소는 목소리만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표1  소를 부리는 용어

 

동작   /   용어   /   적요

전진   / 싯   / '시'에 힘을 주고 조금 짧게 발음한다

가속   / 하이하이 / '하'에 힘을 주고 연속해 발음한다

오른쪽 돌기 또는 오른쪽으로 가기   / 세에 / 오른쪽으로 치우치게 하는 데에도 쓴다

왼쪽 돌기 또는 왼쪽으로 가기   / 사시 / '사'에 약간 힘을 주어 발음한다. 왼쪽으로 치우치게 하는 데에도 쓴다. 왼쪽 돌기를 할 때는 2-3번 연달아서 발음한다

차차 멈추기   / 바아 / 온화하게 발음한다

정지   / 바 / 힘을 주어 짧게 발음한다

후퇴   / 아토 / '아'에 힘을 주어 발음한다

다리 들기   / 아시

주의   / 오오라 / 온화하게 발음한다

진정   / 바아바 / 온화하게 발음한다

어루만지기   / 오오라 / 온화하게 발음한다

혼내기   / 코라 / 짧고 강하게 발음한다

 

 

전진은 소의 코를 앞으로 당기는 듯한 파동을 치는 동시에 "싯"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전진하기 시작하면 고삐의 긴장을 풀어 똑바로 걷게 하고, 속도가 느릴 때는 왼손의 고삐를 흔들거나 사람의 무릎을 두드리는 등을 하며 "하이하이"라고 구호를 외쳐 가속시킵니다. 천천히 걷게 하려면 코 밑을 똑바로 아래로 당기는 듯한 고삐의 파동을 쳐 머리를 위로 들게 합니다.

정지시키려면 후방으로 약간 꽉 누르듯이 고삐를 당기는 동시에 "밧"하고 구호를 외칩니다. 팔을 움직여 크게 당기거나, 서서히 당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왼쪽으로 돌기는 소의 코를 왼쪽으로 밀듯이 파동을 보내는 동시에 "사시"라고 명령하고, 오른쪽으로 돌기는 고삐를 오른쪽으로 당기며 "세에"라고 명령합니다. 소가 돌기 때문에 그에 맞추어 사람도 위치를 바꾸면서 고삐를 칩니다. 후퇴는 소의 코를 바로 뒤로 당기는 듯한 파동을 보내고, 소의 머리와 몸을 똑바로 해놓은 다음 "아토, 아토"라고 연호하면서 바로 뒤로 짧게 당깁니다.   

정지한 경우 앞다리는 모아져 있지만 뒷다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왼쪽 뒷다리를 뒤로 당기게 할 경우, 오른쪽으로 돌게 하는 고삐를 내는 동시에 후퇴의 고삐를 가볍게 칩니다. 오른쪽 뒷다리를 당기게 할 경우에는 왼쪽으로 돌기와 함께 후퇴의 고삐를 합쳐서 치며 "아시, 아시"라고 구호를 외치면서 행합니다.

기본 길들이기가 마무리되면 쟁기꾼은 비교적 간단히 일할 수 있게 됩니다. 우선 멍에를 소의 등에 얹어서 익숙해지도록 하는 일부터 시작해, 다음으로 뱃대끈을 채웁니다. 처음에는 느슨하게 조이고 걷게 하는데, 한태를 함께 사용해 멍에가 어긋나지 않게 합니다. 소가 멍에에 충분히 익숙해지면 봇줄을 달아 가벼운 것부터 서서히 끌게 합니다. 최초는 똑바로 끌며 걷게 하고, 가능해진다면 좌우 돌기를 연습하며, 정지와 후퇴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갑자기 무거운 걸 끌게 하면 소가 일을 싫어하고 나쁜 버릇이 생기기 쉬워져 주의가 필요합니다. 기본 동작을 할 수 있게 되면 논밭으로 데리고 나와 쟁기를 달아봅니다. 최초는 얕게 쟁기질하고, 점점 쟁기를 깊게 넣어 봅니다. 

실제로 일을 시킬 때는 길들이기할 때의 줄보다 좀 굵을 걸 쓰고, 길이는 5m 정도로 합니다. 

소를 부리는 일은 농경과 운반이 있는데, 짐 싣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견인이고 그 방법은 ①몸통 끌기(뱃대끈 없음), ②몸통 끌기(뱃대끈 착용), ③어깨 끌기, ④머리 끌기, ⑤몸통과 어깨 병용해 끌기<그림3>, ⑥몸통과 머리 병용해 끌기가 있습니다<그림4>. 쟁기를 끄는 것 같은 논의 작업에서는 디딜 곳이 나쁘고 앞다리를 뽑아드는 것 같은 움직임이 필요하기 때문에, 순조롭게 당기고 다리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지는 몸통 끌기가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져 색인력의 측면에서도 ②몸통 끌기(뱃대끈 착용)이 전국적으로 널리 쓰였습니다.

 

그림3 몸통과 어깨 병용해 끌기. 1950년 무렵 촬영. 미야기현宮城県 가리타군刈田郡 시라이시쵸白石町(현 시라이시시白石市). 소 박물관 소장.

 

그림4 몸통과 머리 병용해 끌기. 1960년 10월 촬영. 이와테현岩手県 에사시시江刺市(현 오슈시奥州市). 소 박물관 소장.

 

 

더구나 머리 끌기를 행하는 경우, 멍에가 뒤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머리를 숙이고 끄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머리 끌기는 힘을 내기 쉽고, 탄력을 이용할 수 있어 평탄한 길에서 무거운 짐을 끌게 하는 경우 등에 쓰입니다. 머리를 숙이게 하려면 소에게 굴레를 착용시키고 아래쪽에 고삐를 걸어 두 다리 사이를 통과시켜 뱃대끈에 묶습니다. 최초는 위에 기록한 방법으로 멍에만을 연결해 걷게 하고, 가벼운 것부터 끌게 해 차차 무거운 것을 끌고 가게 합니다. 그러면서 소가 머리를 숙이는 것이 편하다는 걸 학습하기 때문에, 고삐를 차츰 느슨하게 하면서 멍에로 견인하고 있을 때 항상 고삐가 느슨해지면 고삐를 끄릅니다. 

또한 소의 축력 이용에 대해서는 당시 일소와 고기소였던 일본소의 품종별로 그 능력을 다양한 각도에서 연구해 놓았습니다. 오카모토岡本(1958)에 의하면, 표2와 같습니다. 

 

표2 일본소 품종별 사역능력

품종                /         능력

검은 일본소     / 동작 경쾌하고 성질 온순, 길들이기도 용이하여 부리기에 적합, 힘은 조금 부족하지만 농경지가 좁고 힘든일을 할 기회가 적은 일본의 일반적 농가에서는 필요로 하는 충분한 능력을 가짐. 육질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음.

갈색 일본소    / 동작 경쾌함과 길들이기 용이함은 검은소와 큰 차이가 없지만, 성질은 한층 온순하여 부리기 쉬움. 힘과 내구력, 작업능률의 측면에서 약간 앞서지만 육질의 측면에선 좀 떨어짐.

뿔 없는 일본소 / 걸음걸이가 좀 경쾌함이 부족하고, 힘은 그렇게 쳐지지 않지만 지구력에서는 검은소와 갈색소보다 좀 떨어짐. 육질에서는 정평이 나 있지만 사역능력은 낮다고 평가됨.

짧은뿔 일본소 / 길들이기는 좀 어렵지만 견인력이나 걸음속도의 측면에선 그닥 다른 품종에 떨어지지 않음. 육질은 불고기용으로는 떨어지지만 빛깔이 좋다는 점에서 사람들이 좋아함.

 

이와테현 남쪽 지방에 1930년 전후로 도입된 일본소는 확린된 길들이기의 기술을 동시에 도입함으로써 급속히 보급되어 나아갔습니다. 일부에서는 짧은뿔 계통의 소도 혼재해 있었지만 차차 당시부터 일소 겸 고기소 용도의 소로 주류를 점했던 검은소로 통일되고, 논을 갈아엎는 역축, 나아가서는 거름용으로도 빼놓을 수 없는 가축으로 정착되어 나아갑니다. 그러나 일소의 이용은 경운기와 트랙터의 보급에 의해 1960년 전후로 돌연 종언을 맞이합니다. 일소라는 큰 용도가 사라진 검은소였지만, 논농사 지대에서 거름용 가축이란 중요성과 송아지의 판매에 의한 현금 수입에 더해 길들이기에 의해 생긴 소와 인간 사이의 유대감이 계속 사육하게 하는 동기가 되어, 이와테현 남쪽 지방은 타지마但馬 지방에서 씨수소를  구입하는 등 검은소 송아지의 산지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됩니다. 

그리고 현지의 송아지를 바탕으로 해서 비육에 나선 이사와군胆沢郡 마에사와쵸前沢町(현 오슈시)에서 출하된 소의 육질이 시장에서 고평가를 받고 '마에사와 소'라는 상표화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소의 길들이기에 대해 미하라는 "소의 마음을 잘 알아 휴식과 어루만지기를 게을리하지 말 것"이란 말을 남겼는데, 마에사화 소의 비육 농가에서 농림수산대신상을 수상한 오이카와 우메오及川梅男도 소 사육의 비결은 "소의 말을 알아듣는 비육"이라 합니다. 길들이기에 의하여 생긴 소와 인간 사이의 유대감이 현재의 브랜드 소의 비육기술로 살아나고 있는 겁니다. 일본소의 고기는 다른 축산물과 차별화되어 '예술품'에 비견되는 일이 있는데, 그 요인의 하나가 두 사례의 말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일소 부리기는 행해지지 않지만, 길들이기는 가축 공진회 등에서 소에게 정자세를 취하게 하는 등 지금도 필요한 기술입니다. 최근에는 2012년 10월에 개최된 제10회 전국 일본소 능력 공진회 나가사키현 대회에서 오카야마현의 신미 고등학교와 기후현의 가모 농림고등학교의 학생들에 의해 소의 바둑판 오르기가 선보여져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그림5>. 

 

그림5 소의 바둑판 오르기. 제10회 전국 일본소 능력 공진회 나가사키현 대회. 오카야마현립 신미新見 고등학교(좌), 기후현립 가모加茂 농림고등학교(우).

 

 

소의 고등 길들이기는 검은소를 단순히 고기용 가축으로 취급하지 않고 애정을 들여 사육하는 일본의 소와 인간 사이의 유대감을 상징하는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진귀한 기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기본 길들이기와 함께 고등 길들이기 기술이 전해지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참고문헌〉

赤木廸朗, 牛調教のあらまし、岡山畜産便り 第二巻 第五号(おかやま畜産ひろば ホームページ), 1951

岡本正幹, 畜産体系 第十九編 役肉牛、養賢堂(東京), 1958

川田啓介, 「調査記録」, 1994

河野通明, 近代農業と長床犁 「中世名主=犁、近世小農=鍬」説の再検討(下 - 二), 商経論業 第四六巻 第

一号, 75〜118p, 神奈川大学 経済学会 (http://hdl.handle.net/10487/9402), 2010

三原作之治, 和牛調教のコツ, 岡山畜産便り 第九号(おかやま畜産ひろば ホームページ), 1950

吉田武紀, 牛の調教から使役まで (1)畜産の研究 第九巻 第一号, 19~22p, 1955

吉田武紀, 牛の調教から使役まで (2)畜産の研究 第九巻 第二号, 27~30p, 1955

吉田武紀, 牛の調教から使役まで (3)畜産の研究 第九巻 第三号, 41~42p, 1955

吉田武紀, 畜産体系 第二十八編 牛の畜力利用, 養賢堂(東京), 1960

 

 

글쓴이 카와다 케이스케川田啓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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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큰 멍에가 바로 소의 윗목에 대는 것이고, 작은 것은 아랫목에 대는 것으로 따로 '턱멍에'라 부른다.

 

그리고 멍에와 연결된 줄은 '다줄', 중간에 소 등에 채우는 줄은 '등바'라고 한다.

 

모두 소를 부릴 때 필요한 것들이다. 요즘처럼 코뚜레도 안 하는 소들... 행복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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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에를 메워야 쟁기도 끌고 달구지도 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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