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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땅을 살리다 from go-min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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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농부는 가을갈이(추경秋耕)를 잘해 놓는다고 합니다. 가을에 땅을 뒤집어 놓으면 병균이나 벌레가 겨울 추위에 죽고, 거름은 잘 곰삭고, 흙도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좋아진다고 합니다. 확실히 겨울에는 불알이 얼 정도로 추워야 흙이 부서집니다.
2년 전인가, 안산 밭에는 아무개 마트를 지으면서 땅을 판 흙을 가져다 덮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은 흙을 가져오더니, 어느 틈에 슬그머니 시커멓고 딱딱한 개흙을 같은 것을 갖다 부은 것입니다. 첫해에 그 밭을 일구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완전 일군땅(개간지開墾地)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첫해에 그렇게 노력을 들이고 나니, 그해 겨울이 지나면서 차츰 땅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딱딱하고 시커멓던 흙이 푸석푸석 부서지기도 하고, 조금씩 사라지는 모습에 참 놀랐습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더니 참말입니다.
요즘은 가을갈이하는 곳을 자주 보기 힘듭니다. 마을에서도 부지런한 분이나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그냥 봄갈이(춘경春耕) 정도로 그치지요.

한쪽에서는 쟁기질을 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갈지 않는(무경운無耕耘) 농법을 주장하는 분들이지요. 쟁기질을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 어느 방법이 더 좋고 나쁜지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 상황에 맞게 하면 되지,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튼 제가 듣기로는, 그 농법의 뿌리는 일본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일본을 다녀오니 거기는 흙이 시커멓더군요. 함께 간 선생님께 여쭈니 화산재(화산회토火山灰土)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일본의 흙은 유기물 함량도 엄청 높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 흙은 다들 알다시피 화강암이 부서진 흙이라 산성도도 높고, 무지 메마른 흙(척박토瘠薄土)입니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이 쟁기질을 한 까닭이, 이러한 흙의 차이에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도 일본의 흙처럼 유기물 함량이 높아지면 굳이 쟁기질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서 무슨 일이건 상황과 조건에 맞춰야지, 알아보지도 않고 무엇이 무조건 옳다고 하는 자세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갈지 않는 농법이 좋은지 아닌지는 저마다 알아서 판단할 문제입니다. 뭐든지 장단점이 있고, 여건에 맞는 것이 따로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하자면, 쟁기질의 효과 가운데 하나는 겉흙(표토表土)과 속흙(심토深土)을 뒤집어엎는 데 있다고 합니다. 한 해 동안 수고한 겉흙은 속으로 보내 쉬게 하고, 밑에 팔팔한 놈을 끄집어내는 효과가 아닐까요?

쟁기질은 그것 말고도 숨은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작물을 심을 것인가에 따라 쟁기질하는 방법이 달라지는 것이 그것입니다. 저도 쟁기질을 해보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면, 보리를 심을 때는 두 거웃 갈이를 하고, 고구마를 심을 때는 한 거웃 갈이를 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작물에 따라 그 특성에 맞는 쟁기질 방법이 있었던 것이지요. 높고 좁은 두둑이 필요한지, 아니면 넓은 두둑이 필요한지에 따라서 쟁기질하는 법이 달랐습니다.
두 거웃 갈이는 한 번 갈면서 저쪽으로 갔다가, 다시 그 옆을 갈아 오면서 한 두둑을 만든다는 소리입니다. 이 말은 경기도 사투리입니다. 생식기 주변에 난 털을 뜻하는 거웃과는 다른 뜻입니다. 이를 뜻하는 말은 지역에 따라서 다양합니다. 거웃을 예로 들면, 충청도나 강원도 같은 산골짝에서는 망이라고 하더군요.
쟁기질은 보통 네 거웃 갈이까지 했다고 합니다. 네 거웃 갈이를 하면 한 1.2m 이상 되는 넓은 두둑을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고추나 고구마는 좁고 높은 두둑(고휴高畦)을 짓지만, 보통 작물은 그냥 펀펀한 두둑(평휴平畦)을 짓습니다. 작은 규모의 농사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이상 그렇게 하지요.

쟁기질할 때 쟁기를 잡는 사람은 쟁기꾼이라고 했습니다. 상여꾼, 장사꾼 하듯이 그 분야에 전문이라는 뜻으로 꾼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일 잘하는 쟁기꾼은 서로 모셔 가려고 했다는 말로 봐서, 그때에는 엄청난 기술자였을 겁니다.
쟁기질을 끝내면 뒤를 따라가면서 쇠스랑이나 곰배로 흙덩이를 부수는 일을 했습니다. 트렉터로 로터리 치면 아주 고운 흙이 나오지만, 쟁기로 하는 만큼 큰 흙덩이는 따로 부숴야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며칠 뒤에 바로 써레질에 들어가지요. 써레질은 앞에 잠깐 설명했으니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써레질하는 것을 동사로 ‘써린다’ 또는 ‘쓰린다’ 등으로 불렀습니다. 밭이야 어느 정도 수평이 맞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논 써레질에서 그러면 큰일이지요.

마지막으로 흙의 종류를 구분하고 끝내겠습니다.
흙의 굵기에 따라 말하면, 먼저 자갈흙(역토礫土)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자갈흙이죠. 다음은 모래흙(사토砂土)입니다. 모래흙은 땅콩 같이 물이 잘 빠지는 것을 좋아하는 놈들이 잘 사는 곳입니다. 만지면 부스스 부서지는 흙이라 갈기도 좋고, 삽질도 편합니다. 하지만 물이 너무 잘 빠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료를 주면 그 효과가 빠르지만, 물이 잘 빠져서 가뭄(한발旱魃)에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습니다. 이런 흙이면서 물이 잘 빠지는 논이라면 철, 망간, 규산 등이 모자라기 쉬워서, 질퍽한 딴흙(객토客土)을 넣어야 합니다.
또 모래참흙(사양토砂壤土)이 있습니다. 입자가 세밀한 찰흙(점토粘土), 중간인 실트, 거친 모래가 거의 같은 양이 섞여 있는 흙에 비해서 모래가 조금 많은 흙입니다. 이 정도만 해도 농사짓기 괜찮은 흙입니다.
흙 가운데 가장 좋은 흙은 뭐니 뭐니 해도 참흙(양토壤土)입니다. 모든 농사에 가장 좋은 상태의 흙이지요. 고운 흙 가운데 질흙이 25~40% 정도인 흙입니다. 참나무, 참깨처럼 참으로 좋은 참흙입니다. 또 다른 참흙으로 질참흙(식양토埴壤土)이 있습니다. 눈치 빠른 분은 벌써 아셨겠지만, 찰흙이 많게는 절반 정도 포함된 흙입니다. 참흙보다는 좀 거시기하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죠. 양분, 특히 물기를 잘 잡고 있어서 벼나 콩, 과수에 좋습니다.
다음 질흙(식토植土)이 있습니다. 절반 이상이 질흙인 흙입니다. 그만큼 끈덕끈덕하겠지요. 물기도 많고 거름도 잘 잡고 있지만, 공기나 물이 잘 통하지 않아 농사짓기 어렵습니다. 모래흙을 섞어 주는 것이 좋고, 석회나 두엄 같은 유기물을 섞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가을갈이를 거칠게 해서 잘 말리는 것도 좋습니다. 흙이 안 좋다고 불평불만하지 말고, 하나하나 내 힘으로 땀흘려 가꾸면 참흙으로 만드는 것도 금세입니다. 세상에 못할 것이 없는 것이 사람이죠. 그만큼 사람이 참 무섭습니다.
다음 찰흙(점토粘土)입니다. 국민학교 때 뻔질 나게 사 가던 흙이 바로 이 찰흙입니다. 이 흙은 큰 돌이 부서지면서 생긴 것입니다. 그보다 더 심한 찰질흙(중식토重植土)이 있고, 가장 질퍽한 질찰흙(중점토重點土)이 있습니다. 물기를 머금으면 아주 찐덕해지는 흙입니다. 이런 흙에서 농사를 짓는다면 쟁기질하기도 힘들고, 마르면 딱딱하게 굳어서 쩍쩍 갈라집니다. 이런 흙에서 농사지으려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흙을 말했습니다. 돌아서서 보니 너무 모자랍니다. 모자란 글이지만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편은 추수秋收, 곧 가을걷이와 관련된 말을 골라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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