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식물을 이용해 온 것은 언제부터인가? 인간이 농경을 시작한 것이 이른바 "신석기 혁명"이라 부르는 무렵이라고 보면, 식물을 이용한 것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더 오래된 구석기 시대의 유적에서도 식물을 이용한 여러 유적과 유물들, 그리고 식물체들이 발굴되고 있다. 당시에는 수렵과 채집이라는 생업 양식을 통하여 야생의 식물을 먹을거리로 이용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농경이 시작되면서는 양상이 달라진다. 야생의 식물을 이른바 작물로 길들이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야생의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는 과정을 가축화, 야생의 식물을 작물로 길들이는 과정을 작물화라고 한다. 서아시아 쪽에서는 그 지역에서 발굴되는 작물과 관련된 여러 유물을 통해 대략 1만 년 전을 전후하여 밀이 작물로 길들여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른 무엇보다 밀이 갖는 상징성과 중요성 때문에 그렇지 여타의 식물들도 작물로 길들여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https://seedinginnovation.org/milestones-in-plant-breeding/




아무튼 그 이후 농민들은 여러 가지 식물을 작물로 길들이게 된다. 인간이 한 식물을 작물로 길들이고, 또 그 작물에서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일을 우리는 육종이라 부른다. 그러한 과정에서 활용하는 육종의 방법 가운데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도입 육종"이라든지, "분리 육종"이라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도입 육종은 말 그대로 한 작물이나 그 품종들을 외부의 다른 곳에서 가지고 들어와 재배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토종 씨앗을 수집하러 할머니들을 만나보면 한번쯤 듣는 이야기가 있다. 


"이거? 이거는 내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거야. 친정 엄마가 이게 좋다고 해서 가져 왔지."


이런 이야기 아니면, 


"그거 내가 이웃 마을에 갔더니 그게 좋다고 해서 얻어다가 계속 심는 거지." 하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이렇게 어떤 작물의 씨앗을 외부에서 새로 가져와 재배하는 방식을 분류하자면, 도입 육종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분리 육종은 이런 것이다. 어떤 작물을 어느 논밭에서 재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 우연히 자연적으로 돌연변이가 발생하든지, 아니면 자연 교잡을 통해서 요상하게 생기거나 맛이 다르거나 색이 다른, 아무튼 기존에 재배하던 작물과는 다른 특성을 보이는 개체가 생긴다. 그럼 눈 밝고 부지런한 농민 같은 경우, 그걸 그냥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그놈의 씨앗을 따로 받아서 잘 챙겨 놓았다고 이듬해에 다시 심는다. 그러면 거기에서 내가 원하던 특성을 지닌 놈도 나오고 아닌 놈도 나오고 제각각이다. 그럼 그중에서 또 내가 원하는 특성을 지닌 걸따로 골라내 씨앗을 받아 이듬해에 또 농사를 짓고, 다시 그 과정을 해마다 반복하다 보면 드디어 다른 특성이 아닌 내가 바라는 특성만 나타나는 품종이 생기게 된다. 이게 바로 분리 육종의 과정이다. 


과거의 농민들은 대략 이 두 가지 방식을 이용해서 새로운 품종, 이른바 신품종이라거나 개량종이라 부르는 걸 만들어 왔다. 농민이 곧 육종가인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던 방식이 20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는 크게 변화하게 된다. 20세기에 일어난 변화의 뿌리는 1800년대의 인물인 멘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다, 중학교 생물시간부터 배웠던 그 수도사 그레고어 멘델이다. 완두를 가지고 흰꽃 붉은꽃 골라가며 무언가 해서 시험 문제에 등장하던 그 멘델이다. 작물 육종의 역사에서는 그를 빼놓을 수 없다. 


멘델의 유전법칙으로 부르는 그의 발견이 처음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냥 어디 수도사가 심심풀이 땅콩처럼 행한 실험이겠거니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1900년대에 들어와 다른 식물학자들이 비슷한 연구를 통해 비슷한 결과를 얻게 되었고, 그러면서 이전에도 이런 선행연구가 있었나 찾아보다가 멘델이 발표한 논문을 발견하게 되면 재평가를 받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멘델의 법칙의 재발견"이라고도 부르더라. 아래 도표를 보면 멘델의 유전법칙이 색이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만큼 그의 발견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며 그 중요성이 높아서 그렇다. 


https://www.euroseeds.eu/sites/default/files/esa_plant-breeding-evolution_ppt_final.jpeg



멘델의 실험 이후에도 아무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학문이란 게 다 그렇듯이, 모두 손을 놓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멘델과 유사한 실험이 있었고, 그를 계기로 멘델의 법칙을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은 아니란 말이다. 꾸준히 계속해서 여러 연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중에 굵직굵직한 사건 몇 가지를 보면 1880년대에 있었던 라이밀 육종이 있다. 이는 밀과 호밀을 교잡한 신품종이다. 첫 교잡은 1875년에 있었고, 첫 타가수정은 1888년에 있었다고한다. 이게 중요한 건 예전에는 육종이란 것이 우연히,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교잡과 돌연변이의 발생에 의존했다면, 이 무렵부터는 인간이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발생시켰다는 점 때문이다. 인류는 이를 기점으로, 수많은 육종 시도를 통해 새로운 품종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시도와 경험이 바탕이되어 1900년대 중반에는 이른바 "녹색혁명"이라 평가하는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다. 어떤 사건 하나라도 어느 날 갑자기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치듯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다시 위의 도표를 보자. 1900년에는 교잡 육종이란 게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인간이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어느 한 작물의 꽃에 있는 꽃가루를 다른 꽃에 수정시키는 것이다. 그를 통해 무엇이 탄생할지는 알 수 없다.유전자가 어떻게 조합이 되어 어떤 특성이 발현되느냐에 달린 문제니까 말이다. 그래도 예전처럼 자연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거나 발견할 필요 없이, 내가 마음 먹으면 그걸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1920년이 되면 처음으로 "잡종강세"라는 현상을 이용한 육종이 시작된다. 이 무렵부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품종 또는 개량종의 대명사 F1 품종이 상품화되면서부터 종자 시장을 휩쓸게 되는 것이다. 잡종강세라는 건 어느 생물에게서나 다 일어나는 일로서, 흔히 부모보다 나은 자식이 태어나는 걸 가리킨다. 작물의 경우 A라는 작물 품종과 B라는 작물 품종을 교잡시키면 그 자손의 첫 세대, 즉 F1에서는 부모들이 지닌 유전적으로 우세한 특성이 발현되게 되어 있다. 이 현상을 이용해 A와 B라는 작물의 품종에 있는 인간이 바라는 특성만 F1에서 발현되도록 종자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제 씨앗을 나누어 준다든지 함께 쓴다든지 하는 방식의 시대에서 이른바 상품성이 좋은 작물이 수확되는 종자를 사고파는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이후에도 육종법은 계속해서 새로운 발견과 발전을 거듭하여, 돌연변이 육종법 같은 방식도 나타난다. 이건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돌연변이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X선이나 방사선, 화학약품 등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식물에게서 수많은 돌연변이가 발생하도록 한 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놈을 하나의 품종으로 고정시키는 방법이다. 영화 X맨 같은 그런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또 조직 배양 같은 방식도 있었지만, 영양체로 번식하는 식물 아닌 이상 별로 각광은 받지 못했다.


그보다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바로 유전공학을 이용한 육종법이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멘델이나 그 이후의 학자들이 연구한 건 유전학(Genetics)이다. 아, 유전이란 이런 것이고, 유전자가 이런 역할을 하는구나 하는 내용을 이해하는 학문이 유전학이라면, 유전공학(Genetic Engineering)은 말 그대로 유전자를 인간의 목적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조작하고 가공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식물의 유전자를 이렇게 저렇게 조작하고 변경하여 인간의 입맛에 맞는 작물을 만들어내는 데까지 온 것이다. 그렇게 개발한 작물이 처음으로 상용화된 것이 다들 잘 알다시피 1996년 미국에서부터이다. 지금은 그 영토가 엄청나게 확장되어 주로 신대륙이라 부르는 남북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널리 분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구대륙이라 할 수 있는 유럽과 아시아 쪽에서는 그에 대한 반대와 반발로 그다지 널리 퍼지지 않고 있다. 이들이 분포역을 보면 또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할 수 있어 흥미롭지만, 여기서는 그냥 1990년대에 처음 상용화되어 농지가 광대한 신대륙 위주로 널리 분포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넘어가도록 하자. 유전공학 기술을 통해 탄생한 유전자변형 작물(GMO)를 파괴의 씨앗이니 악마의 작물이니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은 그러니까 일종의 프랑켄슈타인 같은 입장일 뿐이다. 모두 우리 인간, 그리고 우리가 모여 살고 있는 사회와 시대가 요구하여 탄생시킨 작품일 것이다. 우리의 사회와 시대적 요구, 그리고 인간이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할 것인지 합의하고 조율하여 접근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이런 걸 개발하여 재배하고 판매하는 것 자체가 옳은 일이냐 그른 일이냐 따지는 건 소모적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쉽지 않은 문제로서 간단하게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최근 들어서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육종법이 개발되었다. 중국의 허젠쿠이라는 과학자가 유전자 편집을 통해 아기를 만들어냈다는 소식은 다들 잘 알 것이다. 바로 그 방법을 식물에 활용하여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유전자 편집 작물이 상용화되어 등장할 날도 그다지 멀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이러한 유전공학의 방법은 육종을 하는 인간이 의도하는 바를 매우 정확하고 빠르게 식물에게서 구현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으며 활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분명 20세기에 들어와 산업사회가 무섭게 확장되면서 내건 기치 -생산성, 효율성, 균질성 등등- 가 인간의 경제와 문화는 물론 과학과 농업에도 구석구석 영향을 미친 결과이리라. 21세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여전히 20세기의 가치가 유효하게 그 세력을 더욱더 확장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세기이고 이전 세기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던 만큼 사람들이 새로운 기치에 합의하고 그를 표방할 것인가? 육종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이러한 일까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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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보세요.

식물에서는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네요. 발아율 저하 말고 이런 결과도 초래할런지?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709236711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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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변형 작물과 관련하여 그 기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뜨거운 감자이다. 유전공학은 절대 악인가, 아니면 인류를 구원할 신기술인가? 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찬반이 팽팽하다. 그러나 확실한 건, 찬성 쪽에서는 반대측을 비과학적이라며 무시하고, 반대 쪽에서는 찬성측을 악당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난 그 모든 태도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유전공학을 원천적으로 반대한다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적 성과들은 어쩔 것인가? 전기부터 자동차, 지금 여기에서 보고 있는 컴퓨터와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걸 거부하고 원시시대로 돌아가야 옳은가? 물론, 극단적인 사람은 그렇게 주장하기도 할 것이다. 우린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면 유전공학을 전적으로 찬성한다면 어떠한가? 모든 과학기술은 참이고 진리인가? 그렇지 않다. 비단 원자폭탄을 만든 인류의 역사만 되돌아보아도 우린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럼 과학 자체는 가치중립적이기에 아무 죄가 없고, 그걸 잘못 활용하는 정치인 등 사람들의 문제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 과학자도 자신이 연구하는 주제에 대해 아무 책임이 없을 수 없다. 그도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도 자신의 연구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과거부터 모든 과학기술에는 찬반 의견이 치열하게 일어나곤 했다. 자동차나 기차가 처음 나왔을 때도 그랬고, 밥솥이나 냉장고가 처음 나왔을 때도 그러했다. 그걸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논의하고 합의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유전자변형 작물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얼마전 유전자변형 작물에 대한 반대의 주장을 하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찬성하는 이야기도 블로그에 올린다며 나에게 아직 중심이 제대로 서지 않은 채 서구의 과학주의에 빠진 사람이라 비판한 분이 있다. 과연 그러한가? 그분의 의견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한때 그러한 생각에 빠져 있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하나 사실을 밝히며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듯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맹목, 맹신은 무지보다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찬성하는 쪽은 왜 그런 주장을 하며, 반대하는 쪽은 왜 그런 주장을 하는가 제대로 알아야 자신의 의견이 찬성이든 반대이든 확실히 하면서 두 진영 사이에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저쪽은 무조건 나쁜놈이라고 규정한 이후에는 아무런 대화가 될 수 없다. 우린 한국 사회의 빨갱이 논쟁에서 그러한 모습을 충분히 보아 오지 않았는가.


아래의 글은 참 재미나다. 글을 쓴 사람도 유전공학을 둘러싼 모순되 주장을 해결하기 위해서 썼다고 첫 구절부터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전공학의 방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금까지 인류의 농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던 육종기술은 무엇인지 아는 과정이 먼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다. 물론 번역은 엉망이니 영어가 되는 분은 원문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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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전공학에 대한 모순된 주장을 깨부수려고 해 왔다. 난 전문가는 아니다. 친구에게 GMO에 대해 글을 쓴다고 이야기하자, “그럼 찬성이냐, 반대냐?”고 물었다. 난 “그걸 알아내려고 노력 중이다”라고 답했다.

그걸 알아내려는 다음 단계는 유전공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말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단순히 식물 육종기술의 연장선상에 있는가? 또는 농민들이 씨앗을 선발해 온 오래된 관행에 근본적인 단절을 뜻하는 것인가?

그것이 내가 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유전공학을 이용해 벼를 연구하는 Pamela Ronald 씨에게 물어본 내용이다. 그녀는 현미경만 들여다봐서 큰 생태적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과학자가 아니기에 접근했다. 그녀의 남편인 Raoul Adamchack 씨는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유기농업을 가르치며, 둘은 함께 유기농업에 유전공학을 통합시키는 사례를 만든 <내일의 식탁(Tomorrow’s Table)>이란 책을 썼다. Ronald 씨는 모든 새로운 기술을 포용하려는 낙관주의자는 아니다. 그녀는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하여 야외의 욕조에서 셋째 아이를 출산했다. 

Raoul Adamchak와 Pamela Ronald 씨.


질문을 시작하자 Ronald 씨는 “난 결국 사람들에게 ‘유전공학에 대해 신경쓰는 게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하고 말했다. “다른 종 사이에 유전자가 이동하는 것입니까? 좋아요, 여기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벼에 벼 유전자를 넣는 겁니다. 당신은 기업들을 좋아하지 않는 겁니까? 음, 나는 대학에 있어서 정부에서 연구비를 받습니다. 이윤을 싫어하는 겁니까? 음, 우리는 민간의 자금을 받지 않고, 우리가 개발하는 벼는 모두 개발도상국을 위한 것입니다. 우린 우리의 발견으로 돈을 벌지 않아요.”

유전자변형 작물과 관련해 내가 신경을 쓰는 건 그 기술이 농민과 식물 사이의 공진화 관계를 중단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농민이 해마다 몬산토에서 종자를 사는 것보다 환경(기후, 병해충, 문화)에 더 조화롭도록 종자를 갈무리하고 식물을 다루는 방법을 좋아한다. 또한 느린 선발 과정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의도치 않은 효과를 걸러내기 더 쉬울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종자를 사지만, 우리의 벼를 활용하는 사람들은 그럴 만한 능력이 없어요. 그들은 씨앗을 직접 받아서 씁니다.”

미국에서 농민들은 종자를 받아서 이듬해 심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교잡종을 구입한다. 그러나 로날드 씨가 개발한 벼를 활용하는 방글라데시의 농민은 해마다 씨앗을 갈무리한다. 이 씨앗은 GE*와 함께 발견된 유전자를 포함하도록 육종된 유전자변형 씨앗이다. 그러나 이 씨앗은 계속해서 공진화의 선택 과정을 이어간다. 의도치 않은 문제의 위험에 대해서 로날드 씨는 “언제나 새로운 종자를 도입할 때에는 몇 가지 위험이 있지만, 그 위험은 작고 혜택은 엄청납니다. 난 단지 기술이 지속가능한 농업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작업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산과 마찬가지로, 그건 적당한 기술인가의 문제이다. 난 새로운 씨앗을 만든다는 의미가 무엇이며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의 위험을 어떻게 분석할 수 있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 이튿날 데이비스 캠퍼스로 찾아갔다. 로날드 씨의 안내로 그녀의 실험실에 가서 Randy Ruan 씨를 만났다. 



루안 씨는 온실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는 온실 유리에 빨간 자전거를 기대어 놓았는데, 나의 관심에 조금 어리벙벙한 듯했다. 

“당신이 좋아할 만한 벼 사진을 여러 장 가져왔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설득력이 있었다. 모든 것이 꽤 많은 벼처럼 보였다. 그러나 각각의 뒷이야기는 조금씩 달랐다. 


유전자표식 육종을 통해 만든 벼.


유전자표식 육종을 할 때, 과학자들은 흥미로운 새로운 특성의 조합을 바라며 수분을 통해 식물을 교배시킨다. 새로운 식물이 나타나면 세포 조직을 조금 떼어서 그들이 바라던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는지 조사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식물을 폐기한다. 그것이 DNA를 들여다보는 도움을 통해 이루어지는  전통 육종이다.

전통 육종의 문제는 유전자표식이든 아니든 난잡하다는 점이라고 코넬 대학의 식물육종가 Margaret Smith 씨는 말한다. 그녀는 두 가지의 전체 DNA를 혼합하여 한번에 많은 유전자를 교환시킨다고 설명한다. 연구자들은 흥미로운 돌연변이를 나타내는 식물을 가지고 대대로 교잡하여 수천 가지 식물을 만들고, 그 대부분은 파괴시킨다.  그건 내가 상상했던 땅에서 천천히 추는 춤이 아닌 것이다. 


이 벼는 돌연변이를 유발하도록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FN은 "빠른 중성자"의 약자. 


작물을 개조하는 또 다른 방법은 씨앗에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화학물질을 적시거나 방사선을 쬐어 돌연변이를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유전공학보다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나도록 DNA의 조각이 부정확하게 복사된다. "그저 주사위를 던지고 흥미로운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이죠"라고 Smith 씨는 말한다. 

나의 냉장고 위에 있던 유기농 현미 9kg 포대가 Cobalt-60 감마선의 25kR에 노출된 뒤 변이가 일어난 변종(Calrose 76)임이 밝혀졌다. 


유전자변형 벼.


물론 로날드 씨의 실험실에서 가장 일반적인 실험 방법은 유전공학이다. 루안 씨는 과감하게 몇 가지 사례를 가리켰다. 로날드 씨는 자신의 실험실에는 알려져 있는 두 가지 주요 프로젝트가 있다고 언급했다. 항균제를 살 여유가 없는 개발도상국의 농민들에게 좋은 세균성 질병에 대한 저항성을 부여하는 XA21 유전자와 제초제가 없어도 벼는 죽이지 않으면서 풀만 익사시켜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의 농민들에게 좋은 벼가 침수에도 잘 견디게 하는 유전자의 발견이 그것이다. 

유전자변형 식물을 만드는 방법에는 주로 두 가지가 있다. 유전자 총으로 쏘거나, 아그로박테리움 투메파시엔스라는 미생물을 활용하는 것이다. 유전자 총은 말 그대로 식물 조직에 DNA가 들어 있는 코팅된 알을 쏘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순전히 기계적 힘으로 몇몇 유전자가 결국 핵에 이르고 그에 병합된다. 그러나 로날드 씨의 실험실은 아그로박테리움을 활용한다. 루안 씨에게 졸라서 나는 실험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Robbins Hall의 로날드 씨의 실험실 밖에 있는 모자이크.


몇 년 전 난 유전공학의 비평가인 Ignacio Chapela 씨가 연 강의에 참석하여 유전공학의 세부사항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어서, 이것이 상세하게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유전공학자들이 정확한 장소에서 DNA를 잘라 붙이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유전자는 무작위로 게놈에 분사된다고 했다. 정말로 Chapela 씨가 신경쓰는 것은 과학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함께 다른 여러 가지 유전자를 묶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프롬프터(또는 스위치 켜기)와 함께 시퀀스 스타팅을 구축하고, 그 다음 원하는 유전자를 옮기고, 그 다음 표식을 하고(모든 것이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특성을 표시함), 그리고 종결한다(또는 스위치 끄기).

이 모든 걸 게놈으로 던지는데, 그것이 말썽을 일으킬 수 있다. Chapela 씨는 시퀀스 완결부위가 끊어질 수 있어, 식물에 사람들이 원하는 특성만이 아니라 갑자기 그 게놈의 다음에 무엇이 오든지 그것이 발현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식물에는 독성을 만드는 비활성 유전자가 있는데, 유전자변형의 무작위성이 그걸 작동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밝혀졌듯이 이 모든 건 완벽히 사실이다. 그러나 그건 유전공학의 도움이 아니라도 야생이나 식물 육종 과정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실제로 유전자의 묶음을 구축하는 과정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정밀하다. 연구자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DNA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잘라서 붙일 수 있어서이다. 이러한 시퀀스에 그들은 시퀀스의 양 끝을 붙잡아 둥글게 만드는 플라스미드라 부르는 DNA 조각을 추가한다. 플라스미드는 이상하고 재미난 것이다. 그건 근본적으로 박테리아가 종들 사이의 유전적 정보를 교환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이다. 즉,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형질전환을 창조하기 위한 도구이다. 


 DNA 묶음을 운반하는 냉동고의 플라스미드 통.


다음은 아그로박테리움이 온다. 이는 특정 미생물은 식물 DNA에 플라스미드를 주입하도록 전문화된 것이다. 야생에서는 아그로박테리움이 번성하는 집을 형성하는 식물을 만드는 유전자와 함께 이를 수행한다. 과학자들은 단순히 그들이 만든 것과 그 플라스미드를 대체한다.

Chapela 씨가 과정 가운데 이 부분이 무작위라고 말하는 것은 옳았다. 그들은 삽입하는 아그로박테리움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이 DNA의 묶음이 부수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스미스 씨는 일반 육종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이야기한다. 프롬프터가 확실히 원치 않는 유전자를 켤 수 있다. 그러나 거의 늘 콜리플라워의 모자이크 바이러스에서 오는 프롬프터는 야생에서 언제나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

Chapela 씨가 가정하는 차이는 유전공학의 방법이 더 위약하고 불안정한 게놈 구역에 빠지는 유전자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수천 번의 게놈 분석은 도입된 유전자가 DNA 가닥 안에 무작위로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간에 의해 도입된 유전자는 흩어질 가능성이 없다거나 게놈 주변으로 이동한다고 입증되었다. (유전자변형 꽃가루가 수분으로 퍼진다는 Chapela 씨의 요점은 나중에 다루겠다.)

물론 Chapela 씨의 반대는 하나의 가능한 시나리오일 뿐이다. 다른 반대가 계속 제기될 것이다. 요점은 새로운 것에 대한 위험은 과대평가하기 쉬운 반면, 현 상태의 위험은 과소평가하기 쉽다는 것이다. 종들이 꽤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표면 아래에서는 유전자의 흐름이 휘저어지는 바다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2003년, 영국의 GM 과학검토패널(기후 강경론자 David King 경이 의장이던)은 이 문제를 자세히 검토하여, 유전공학이 전통 육종보다 의도치 않은 결과를 생산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전통적 식물육종은 의도하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유전적 변화를 생산할 수 있고, 그런 맥락에서 상당히 불확실하다. 이는 문서화가 잘 되었고, 우리는 세포 수준에서의 변화 유형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유전자변형 형태를 비교하는 편리한 표.

물론 잠재적으로 중요한 차이는 있다. 

GM 육종의 특별한 기능은 그것이 작물이란 식물에 근본적으로 다른 생물체의 것일 수도 있는 하나나 그 이상의 유전자를 이동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전통 육종은 GM 식물에서 달생했듯이 복잡한 인간의 면역글로불린을 조합할 수 있는 식물을 만들 수 없다. 이는 필연적으로 어떤 새로운 유전적 상호작용이 있든지 아니든지, 이것이 잠재적으로 해로운지 아니든지 불확실성을 일으킨다.

GM 육종의 또 다른 특별한 기능은 특정 유전자 구성의 결과물이 사실상 어떠한 생물학적 관계와도 독립하여 근본적으로 다른 식품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 이는 규제 검사를 통과할 수 있어 어떠한 알러지 항원에도 노출되지 않으려는 지역의 위험관리 정책에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최근 변형된 벼 새싹.




그 결과 유전자변형 식품은 잠재적인 알러지 항원에 대한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자주 브라질 호두에서 얻은 유전자를 Pioneer Hi-Bred 사가 실수로 콩에 추가하여 알러지 항원을 도입한 사건을 언급하곤 한다. 그 이야기의 나머지에 대해 우린 적합한 시험체제가 있었고, 그 제품이 결코 시장에 출하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그 기업(과 규제기관)은 무엇을 찾아야 할지 알고 성공적으로 그 식물을 제거했다. 

그래서 이 모든 이야기에서 취할 것은 무엇인가? Margaret Smith 씨와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그녀에게 유전공학의 기술과 근본적으로 다른, 일반적인 재생산 과정에서 교환되는 유전적 방식에는 진화적인 교훈이 없는지 물었다. 그녀는 우린 모든 걸 알지 못한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난 우리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더 많은 걸 배우면서 계속해서 이 조심스러움에 관해 생각해야 한다. 후생유전학의 혁명만 봐도 우리는 날마다 배워 나아가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이에 접근하는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나의 의견은 알 수 없기에 멈춰야 한다는 건 아니다. 모든 기술은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우린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유전자변형 식품을 의심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조심스러워져야 한다. 예를 들어, 방사선을 쬔 생물의 돌연변이는 특별한 규제에서 제외시키면서 GMO에 반대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로날드 씨 같은 사람들이 하고 있듯이 벼에서 벼로 유전자를 옮기는 것에 관해 우려하지 않는다면 모든 유전자변형 식품을 금지시키고자 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난 아직도 우리가 기술이 부적절하게 사용되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무언가에 대해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유용하지 않다.






http://grist.org/food/genetic-engineering-vs-natural-breeding-whats-the-difference/#comment-96551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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