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조생종 벼들이 고려인들과 함께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내린 이유가 본문에 나온다.

"한국의 시월과는 다른 이 지역의 기후는 아침 저녁이면 벌써 초겨울의 기온이다."


일본 농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조선의 벼들은 대부분 조생종이 많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겠다. 하나, 가능한 지역에서는 대개 맥류와 이모작을 행하기에 모내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일찍 여무는 품종이 유리했다. 둘, 관개 사정이 여의치 않기에 -빗물에 의존하거나 조그만 둠벙 등으로 해결- 6월 말에서 7월 초쯤 찾아오는 장맛비가 관개용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여, 그 시기를 전후하여 모내기하는 것이 유리했다.

지금이야 물 사정 때문에 모내기를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최근의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의 영향을 빼고- 모내기는 점점 더 빨라지고, 그만큼 재배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중만생종이 더 많은 선택을 받고 논이란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 조생종은 강원도 지역처럼 추위가 일찍 찾아오는 곳이나, 추석맞이 햅쌀을 출하하려는 농가를 빼고는 잘 선택하지 않는 시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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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반 수원에 권업모범장이 생긴 뒤, 일본인 농학자들이 이러저러한 실험을 한 기록을 보다 흥미로운 내용을 읽었다.

화학비료가 없던 그 시절, 그래서 질소거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자운영 같은 풋거름(녹비)작물을 조선에 도입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국의 토양에서는 자운영 등의 콩과식물에 공생균이 생기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봤더니, 한국에는 그런 종류의 공생균이 존재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결론에 이르른 일본인 농학자들이 아예 일본에서 공생균이 살고 있는 토양까지 가져와서 함께 심었다고 한다.

그외에도 조선의 토양에는 유기물 함량이 너무 부족했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 작물의 부산물까지 몽땅 땔감으로 쓰고 그 재나 똥오줌과 섞어서 거름으로 쓰다보니 정작 토양에는 유기물이 너무 부족한 상황이라고 하는 기록이 나왔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서 과거의 농업에 환상을 가지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또 들고 그랬다. 타임머신을 타고 다녀올 수도 없고 기록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 사실은 어땠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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