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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9일, 교토의 기요미즈데라를 구경했다.

경주의 불국사라고나 할까. 아무튼 관광객은 물론 수학여행을 온 듯한 학생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일본은 11월 중하순이 단풍놀이철인가 보다.


난젠지를 구경한 뒤에 버스 타는 곳을 찾아 한참 헤매다가 큰길까지 걸어나와서 버스를 탔다.

그 과정에 점심 먹을 곳이 없어 쫄쫄 굶었기에 버스에서 기요미즈데라 앞에 내리자마자 식당부터 찾아가 우동 한 그릇을 먹었다.

슬프게도 이게 일본에서 먹은 것 가운데 가장 볼품없는 식사였다.



기요미즈데라는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조금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그 길이 오르막인 데다가 길이 좁아서 차와 사람이 엄청나게 북적였다. 난 이런 곳을 체질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딱 올라오면 한국의 사찰에서 일주문을 만나듯 인왕문이 서 있다. 일본의 사찰은 대개 가장 앞에 인왕문이 있는 듯하다.


이 주황색으로 빛나는 건물이 인왕문이다. 문 안의 양 옆으로는 금강역사가 서 있다. 금강역사에 대해서는 이전 글을 참조하시길... 인왕문 옆의 계단에 단체사진을 찍는 일본 학생들이 보이는가. 아이들의 행태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더라.



인왕문의 단청을 살피다가 발견한 흰코끼리. 부처님의 자비로움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닌 동물이다. 미친 살인 코끼리를 부처님이 자비심으로 얌전히 잠재웠다는 건 너무도 유명한 설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보통 이런 목조건물에서는 저 위치에 용을 배치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은 용이 아니라 코끼리를 장식했다는 점이다. 기요미즈데라에 대한 책이 있으면 왜 그런지 살펴보고 싶다. 



인왕문 바로 옆에는 삼층목탑이 자리하고 있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건물임을 알아볼 수 있는데, 이 건물을 보는 순간 부여의 백제문화단지에서 봤던 목탑이 떠올랐다. 역시 백제와 일본은 문화적으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기요미즈데라의 삼층목탑.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멀리서 보는 편이 훨씬 멋있어서 근처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부여의 백제문화단지 안에 있는 목탑. 이곳은 당시 공사중이라서 어수선했지만, 또 연못도 뿌옇지만(사실 이런 연못이 원래 백제의 양식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맑은 물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은 지금 사진을 보면서도 지울 수 없다), 천천히 둘러보기에 좋았다. 아무튼 목탑은 기요미즈데라의 그것보다 훨씬 화려하고 멋있긴 하다. 이게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있던 것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뭐 일본도 대부분의 목조 유적이 불이 나서 복원한 것이 많더라.



좀 떨어져서 본 모습이다. 위의 백제문화단지의 목탑과 아주 비슷하지 않은가!



목탑 옆의 건물은 그냥 평범하게 생겨서 별로 볼 만한 것은 없었지만, 문짝을 들어올려서 걸어 놓게 되어 있는 형식은 한국의 고궁에서 봤던 그것과 똑같은 방법이라는 점이 재밌었다. 그리고 지붕의 수막새.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도깨비 수막새가 일본에서도 쓰인다. 일본의 도깨비와 한국의 도깨비가 조금 다르게 생긴 것 같긴 하지만, 재밌는 유사점이다.




본당으로 건너가니 이거 허공에다 지은 절이다. 이 절을 짓기 위하여 절벽에 기둥을 세워서 그 위에다 절을 지었다. 이게 수많은 사람들이 우루루 올라가 있는데도 버티고 서 있더라... 처음에는 몰랐는데 내려가서 보고 그 사실을 깨닫고는 조금 섬뜻했다. 교토는 지진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지만 혹시 지진이라도 있었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단풍과 어우러진 기요미즈데라. 이 경치 때문에 저리도 수많은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바글바글 몰려오나보다. 혹시 이곳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은 없을까 궁금해졌는데, 그런 사람이 별로 없겠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여기가 사찰이다 보니 그런 마음을 먹은 사람이 별로 찾아오지 않을 것이란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이 사찰의 고문서에는 1694~1864년 사이 총 234건의 투신이 있었고, 그 가운데 죽지 않고 살은 사람이 85.4%라고 한다. 진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후덜덜하네.



기요미즈데라는 이렇게 밑에 기둥을 설치하여 무게를 분산시키며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 



이 사찰은 원래 700년대 말인 헤이안 시대에 건립되었는데, 황폐해졌다가 에도 초기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명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본당에 동일본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한 모금함이 놓여 있고 그 옆에 이런 관세음보살이 있다. 참 복스러워. 



무엇보다도 멋진 것은 역시 그 풍광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의 자리에다 절을 짓는지 이건 눈을 돌리는 곳마다 절경이라 연신 감탄사를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마침 단풍철인지라 더욱 멋진 풍광이 조성되었다.




한 바퀴 돌아서 내려오니 석탑이 하나 서 있다. 일본에서 본 거의 유일한 석탑이 아니었나 싶은데, 그 양식은 너무나 담백해서 밋밋할 정도였다. 나중에 세운 것일까나...






기요미즈데라를 통해 일본의 사찰과 경치, 그리고 바글거리는 사람 구경 하나는 확실히 했다. 참, 이 절을 찾아오는 일본 여성들은 밑에서 기모노를 빌려 입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통 의상을 입고 좋은 경치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 일본인들의 모습도 참 재밌었다. 







참, 기요미즈데라에서 바라보는 자연 풍광만이 아니라 교토 시내의 모습도 볼 만하다. 아래처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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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젠지南禅寺, 한국말로 남선사. 가면서는 뭐 그저 그런 절이겠지 했다. 도착해서는 그 규모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일본도 이런 규모의 절이 있구나. 아기자기함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도 그럴 것이 이 절은 일본에서 최초로 천황의 칙령에 의해 세워진 절이라고 한다. 그렇구나 웅장한 건물을 통하여 자신의 권세와 안녕을 기원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의 속성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미카도, 한국말로 삼문三門이라고 하는 건물이 떡 하니 그 위용도 당당히 서 있다. 


삼문에도 올라갈 수 있는데, 입장료를 따로 내야 한다. 이곳 일본은 건물에 들어갈 때마다 돈을 낸다. 모두 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하려고 그러는 목적으로 걷는 것이겠지만, 한국에서는 입구에서만 입장료를 내면 안에서 맘껏 다닐 수 있는 데에 익숙해진 나에게 너무 짠돌이 같았다고나 할까. 신발을 벗고 비닐봉지에 담아서 올라간다. 나가면서 비닐봉지는 반납.




삼문에 오르면 이러한 교토의 경관을 구경할 수 있다. 이 맛에 돈을 내고 오르지.



더욱 멋진 건 난젠지의 단풍. 마침 일본도 단풍놀이철이었던 것일까? 가는 곳마다 사람이 북적거린다. 늘 이렇지는 않겠지? 내가 너무 철을 잘 맞춰서 왔던 것이야.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것이야... 라며 위안을.




이쪽을 보아도, 저쪽을 보아도 단풍, 단풍, 단풍! 너무 아름답다.



경치가 너무 멋져서 한참을 구경하다가 내려갔다. 



1895년 불이 나서 타버린 걸 1909년 재건했다는 법당. 



법당 앞에는 이렇게 커다란 무쇠 향로가 놓여 있고, 사람들은 향을 피우고 합장을 하며 안녕을 기원한다. 재미난 건 향 연기를 손으로 자신의 몸에 닿게 하는 행위다. 우린 그냥 향만 피우고 합장하면 끝인데 재밌었다. 



비와코 호수의 물을 교토 시내로 흐르게 하려는 목적으로 설치했다는 수로. 1차 수로는 1890년에, 2차 수로는 1912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벽돌로 쌓아올린 수로가 난젠지 경내를 지나고 있었다. 여기를 참고(http://goo.gl/N8ulm).



그 독특한 양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 머리 위로 나도 한장 찍느라 이런 구도밖에... 제길.



수로를 흐르는 물은 생각보다 더럽다. 물비린내도 심하고 꾸릿꾸릿한 냄새가 풍긴다. 제대로 유수를 시키지 않는 걸까?



일본의 전통 기와지붕은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참 다른 양식을 보여준다. 앞으로 툭 튀어나오는 저 구조, 뭐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걸 다 가지고 있다. 왜 그럴까? 비가 오는 걸 피하는 것과 상관이 있을런지...



한국인은 절에 가며 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며 무언가를 바라듯이, 일본인은 절에 가면 운세를 뽑아 이렇게 달아매달면서 무언가를 기원한다. 인간은 절대자에게 기대고 기원하며 사는 존재일런지.




지붕의 양식이 참으로 화려하다. 역시 천황의 명으로 지은 절다운 것인가. 



일본의 유적지를 다니면서 참으로 궁금했던 건, 도대체 왜 풀이 자라지 않는가 하는 점이었다. 난젠지에서 그 의문이 풀렸다. 관리인이 풀을 하나하나 이 잡듯이 뽑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인의 힘이 아닐까? 




난젠지를 나와 버스 정거장을 찾아 걷다가 만난 철로. 안산에 있는 협궤열차의 철로도 좁은데 이건 더 좁은 것 같다. 어디서 어디까지 무엇을 위해서 다니던 열차였을까? 안산 협궤열차는 소금을 싣고 인천에서 수원을 거쳐 여주까지 가던 철로라고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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