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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재一齋 김윤보金允輔(1865~1938)가 그린 벼농사 관련 풍속화.



1. 겨리 쟁기로 쟁기질하고 쇠스랑으로 땅을 고르는 모습.
평양 출신이라더니 평안도 지역에서는 겨리 쟁기가 흔한 모습이었을까? 



2. 손모내기하고 새참을 나르는 모습.
모를 내는 사람들은 역시 못줄을 띄우지 않고 그냥 막모를 내고 있다. 줄모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농법. 새참으로 여성은 광주리에 음식을 나르고, 남성은 지게에 술단지를 나른다. 



3. 타작마당으로 볏단을 옮겨 낟가리를 쌓는 모습.
낟가리의 높이가 높아 아래에서 볏단을 집어던지는 모습과 걱정이 되어 나와 보는 주인의 모습이 대조되어 재밌다. 알곡이 떨어지는 걸 주워먹는 닭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옛날에는 논이 질척거리는 경우가 많아 볏단을 마당으로 옮겨 낟가리를 쌓은 뒤, 날을 잡아 벼를 떨었다고 한다. 농사의 규모가 있는 집에서는 타작마당을 만드는 일도 꽤나 어렵고 중요한 일이었다고.



4. 타작마당에서 개상질로 벼 낟알을 떠는 모습.
일제에 의해 족답식 탈곡기(일명 와릉와릉 탈곡기)가 들어오기 전, 보리든 밀이든 벼든 절구통이나 통나무, 돌 등을 놓고 거기에 단을 후려쳐서 알곡을 떠는 일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탈곡 관행은 아마 토종 곡식들이 대개 야생성이 강하여 탈립이 잘 되었던 것도 한 요인이었을 것 같다. 화면 가운데에서 두 사내가 개상질을 하면 보조로 한 사내가 갈퀴로 낟알을 긁어 모으고 있고, 왼쪽에선 풍구와 키를 이용해 날려고르기를 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런 식으로 벼를 떨면 쭉정이나 까락, 껍질, 심지어 돌 등 많은 잡것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어릴 때 밥을 먹다 돌을 씹기가 예사였던 일을 기억하는가? 이남박에 쌀을 박박 잘 닦은 뒤 조리질을 잘해야 돌을 잘 골라낼 수 있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조선시대 사람 취급을 당하곤 했다. 아무튼 여기에서도 닭들이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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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동남아인지 인도인지 모르겠으나 논에서 써레질을 하는 모습의 사진을 보았다.




이러한 작업을 우리말로는 '삶다'라고 표현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논밭의 흙을 써레로 썰고 나래로 골라 노글노글하게 만들다"라고 나온다.

위의 과정은 정확히는 써레로 써린 다음 나래로 흙을 고르게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논을 삶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러한 써레질과 나래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땅을 뒤엎는 쟁기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땅을 펀펀하게 고르는 과정이다. 

솔직히 뒤집어 엎는 일은 아무렇게나 막 해도 상관이 없지만, 땅을 고르게 만드는 일은 잘못하면 논에 대는 물의 깊이가 달라지게 된다.

그러하면 벼가 고르게 자라지 못할 뿐만 아니라 풀이 번성할 수도 있고, 우렁이를 넣을 경우 물이 깊지 않은 곳은 그들의 발길이 닿지도 못하게 된다. 한마디로 농사 망치게 되는 지름길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일도 마찬가지 아닌가

한번 뒤집어 엎는 일은 쉬우나, 울퉁불퉁한 것을 고르게 다스리는 일은 쉽지 않다. 

정작 더 중요한 일이 고르게 다스리는 일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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