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진에 있는 고고자료관.
구성도 알차고, 그리 오래 보지 않아도 되며, 무엇보다 무료인 점. 한번쯤 가 볼만하다.
해설사 선생님이 계셨는데, 어찌저찌 이야기하다 한국 경주도 다녀오시고 했다고 하여 역사를 좋아해서 그러냐 하니 그러시단다.
그러면서, 여기 있는 유물 중 많은 게 한국에서 온 것이라며 이야기를...
아무튼 여기서 이러저러한 도자기를 둘러보고 다시 한번 느낀 점은, 과거 도자기는 지금의 스마트폰과 같은 상품이었다는 것. 최고의 기술이 결집되어 완성된 산물이러다. 괜히 임진왜란이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게 아니었다.
녹색 유약을 바른 도기 그릇.
이것은 도기 접시.
이건 그나마 그릇을 잘 만들었다는 시대의 하지키 접시. 도자기보다는 기술과 수준이 딸리긴 하다.
해학은 조선인만의 것이 아니었다.
역시 동아시아에서는 세 발이 대세인가.
고양원이란 저택에 대한 설명.
일본 자체 제작이 아닌 수입 도자기. 역시나 품질 등이 월등하다. 그래서 헤이안 귀족들이 썼구나.
주사위. 신라 시대의 것을 본 기억이 있는데 일본에도 있네.
일부러 끝쪽을 접어 예술미를 더한 접시 제품.
과거 일본인의 얼굴이 이러했을까?
수입 도자기 때깔이 역시 좋다.
위에서 봤던 헤이안 시대 전후에 일본에서 생산했다는 하지키. https://www.museum.yokosuka.kanagawa.jp/archives/news/26698
한반도, 특히 가야 지역의 기술력이 전해지며 제작되었다는 수에키. https://ja.wikipedia.org/wiki/須恵器
헤이안과 중국 장안의 연결성만 강조하는데... 하긴, 백제의 멸망과 함께 한반도와의 교류는 서서히 끊기게 되었다고 하지. 일본 입장에서도 총력을 다해서 백제를 도왔으나 실패해 버렸으니 살 길을 모색하고자 엄청 노력했겠지.
중국의 수, 당나라까지는 이런 배를 타고 건너갔단다. 사고도 잦아서 엄청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아무튼 주로 불교의 승려들이 건너가 종교 및 문화를 가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중세 유럽의 수도사들의 역할을 똑같이 담당했던 것이겠지.
이런 유물이 좋다. 일상생활 속의 도구들. 부엌칼이 정말 인상적이다.
과거 헤이안의 도읍은 이렇게 위치했다고.
도마와 젓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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