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빠짐이 좋고, 물잡이도 좋은 흙
표 1-1에서 나온 좋은 흙이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흙의 수분에 관한 조건이었다. 그것은 적당히 수분을 보유하고, 또한 적당히 물빠짐이 좋은 것이었다. 잘 생각하면, 이 조건은 모순된 내용이다. 하지만 좋은 흙은 이 모순된 것을 만족시킨다. 흙이 지니는 적당한 물잡이와 적당한 물빠짐이란 어떻게 실현되는 것일까?
1 물빠짐이 좋은 흙의 단면과 나쁜 흙의 단면
단면의 표정을 잘 살펴보자
흙에 구멍을 파서 단면을 관찰하면, 적어도 그 흙의 물빠짐이 좋은지 나쁜지를 곧바로 알 수 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일상의 밭과 텃밭의 관리로, 예를 들면 호우가 내린 뒤 밭에서 계속 물이 빠지지 않으면 물빠짐이 좋지 않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다만, 애써 구멍을 파서 흙의 단면을 본다면, 흙의 표정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
통상의 흙 단면에는 특별한 모양 따위는 없다(그림3-1a). 그림3-1b에 보이는 것처럼 녹슨색(다갈색)의 모양(얼룩이라 함)이 있는지 없는지, 또는 푸른기가 도는 잿빛의 토층(글레이층)이 있는지 없는지(그림3-1c)를 확인하길 바란다. 얼룩이 있을 때는 물빠짐이 조금 나쁜 것을 나타내고, 글레이층이 있을 때는 물빠짐이 나쁘고 지하수가 정체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림3-1a처럼 얼룩이나 글레이층이 없는 흙이 물빠짐이 좋은 흙이다.
왜 얼룩이나 청회색의 흙을 통해 물빠짐의 좋고 나쁨을 판정하는 것일까? 그건 흙에 원래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는 철 성질 때문이다(그림3-2).
-물빠짐이 나쁜 흙의 경우
정체된 지하수면
물빠짐이 나쁘면 지하수면이 정체되고, 흙은 물에 잠겨 있기 때문에 산소가 없는 상태(환원상태)가 된다.
철은 환원상태에선 청회색의 철(Fe2+)로 존재한다. 이 때문에 지하수면에서 아래의 토층은 청회색의 글레이층이 생긴다.
-물빠짐이 조금 나쁜 흙의 경우
그림3-2 설명
청회색의 철 청회색의 철이 녹슨색의 철로 변화 지하수면이 상하 이동을 반복해 철은 녹슨
색의 덩어리를 만든다
큰비가 온 뒤 오랫동안 비가 없음
(산소 부족의 환원상태) (공기가 들어오기 때문에 산화상태)
단면에 얼룩이 있는 흙
한편, 물빠짐이 정말로 나쁘면 지하수위가 비교적 높은 위치에 정체된다. 지하수에 잠겨 있는 흙은 환원상태가 지속되기에, 철은 계속 청회색의 철로 존재해 글레이층이 생긴다.
글레이층이 있는 건 그 위치까지 지하수가 정체되고, 물빠짐이 매우 나쁜 흙이란 것을 의미한다.
물빠짐이 나쁜 흙의 개량 방법
물빠짐이 좋은지 나쁜지를 알아보고나서, 그럼 물빠짐이 나쁜 흙을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까? 가정 텃밭처럼 소규모인 밭이라면, 지표면의 정체된 물이 흘런나가도록 고랑을 파든지, 작물을 재배하는 장소(두둑)을 높이든지 하는 방법이 있다.
농가의 밭처럼 넓은 면적에서는 배수구를 판다(겉도랑). 또 밭의 지하에 배수관을 매설하고(속도랑), 그것을 배수구에 연결하는 토목공사가 필요해진다(그림3-3). 물론 자력으로는 할 수 없다.
2 흙이 물을 보유하는 구조
굵은 유리관의 물과 가는 유리관의 물
흙은 어떻게 물을 보유하는지 그 구조를 이해하면 '적당히 수분을 보유하고, 물빠짐도 좋다'는 모순점을 흙이 잘 해결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림3-4는 굵기가 다른 2종류의 유리관을 푸른 잉크의 수면에 세운 것이다. 가는 유리관 쪽이 잉크를 더 높이 끌어올린다. 이것을 모세관 현상이라 하고, 물을 끌어올리는 힘을 모세관 장력이라 한다. 유리관의 상부를 손가락으로 막고 수면에서 끄집어올리면, 안의 물이 그대로 끌려올라온다(그림3-5a). 그 상태로 막았던 손가락을 떼면 어떻게 될까? 당연한 일이지만 물이 책상으로 떨어진다(그림3-5b).
물이 떨어지는 건 지구 위에는 중력이 모든 것을 아랫쪽으로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다. 굵은 유리관의 물이 완전히 떨어지는 건 모세관 장력으로 물을 끌어당기는 힘보다 중력으로 끌어당기는 힘 쪽이 강했기 때문이다. 무중력의 공간에서는 이렇게 안 된다. 그런데 가는 유리관에는 아직 물이 남아 있다. 중력이 끌어당기는 힘 이상으로 모세관 장력이 강하게 작용하기에 물이 떨어지지 않는다. 물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관건은 흙 알갱이와 알갱이 빈틈의 크기에
흙속을 들여다보면 흙 알갱이와 알갱이의 사이에는 큰 빈틈이나 작은 빈틈이 있다(그림3-6). 흙의 물이 배수되는 건 굵은 유리관처럼 흙속의 큰 빈틈에 있던 물이 중력으로 끌어당겨져 지하수면까지 떨어져 가기 때문이다. 한편, 흙이 물을 보유하는 건 작은 빈틈에 작용하는 모세관 장력이 중력보다 강하게 물을 끌어당겨, 그 빈틈에 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즉, 흙속에 큰 빈틈과 작은 빈틈을 잘 균형 잡아 놓으면 물을 적당히 보유하면서 적당하게 물빠짐도 이루어진다.
흙 알갱이가 굵은 사질의 흙(조립질의 흙)이라면, 작은 빈틈이 적고 큰 빈틈이 많기에 배수가 너무 잘 된다. 즉, 가뭄 피해를 받기 쉽다. 거꾸로, 흙 알갱이가 작은 점질의 흙(세립질의 흙)은 작은 빈틈이 많고 큰 빈틈이 적기에 배수가 나빠진다. 적당한 크기의 중립질 흙이 적당한 배수성과 적당한 보수성을 겸비하고 있다.
3 흙 알갱이 크기의 분별법과 개선
간단히 할 수 있는 분별법
2장에서도 종종 등장한 흙 알갱이의 크기, 즉 흙이 조립질인지 세립질인지 하는 것은 어떻게 판별하면 좋을까? 사질의 흙 등은 쓱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은 흙을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 판별 방법은 그림 3-7처럼 흙을 조금 적시어 엄지와 검지로 성냥개비나 종이끈을 꼬듯이 하여 그때 만들어지는 흙의 길이로 판단한다. 판단 기준은 표3-1과 같다. 흙의 단면을 관찰할 때 표층토나 하층토로 시험해 보라. 흙이 성냥개비 정도가 되면 이상적이다.
흙의 유형 | 엄지와 검지 사이에 소량의 물을 더한 흙을 이길 때의 촉감 | 실처럼 만든 흙의 모양 | |
흙 알갱이가 굵다 | 조립질(사질) | 거의 모래뿐으로 찰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부터, 모래의 느낌이 강하고 찰기는 조금밖에 없는 정도까지의 범위 | 손가락으로 이겨도 실 모양이 되지 않는다 |
흙 알갱이가 너무 굵지 않고 너무 작지도 않다 | 중립질 | 모래의 감촉은 어느 정도 느껴질 정도부터 겨우 느껴질 정도까지로, 찰기가 있다는 느낌부터 보슬보슬한 밀가루의 감촉, 또 상당히 찐득한 감촉 정도까지의 범위 | 연필 정도부터 성냥개비 정도까지의 굵기인 실 모양이 된다 |
흙 알갱이가 작다 | 세립질(점질) | 모래의 감촉은 거의 없고, 찰기가 강하든지 상당히 강한 정도의 범위 | 종이끈처럼 실 모양에 된다 |
표3-1 감촉으로 판정하는 흙의 굵음과 작음(일본 토양비료학회 토양교육위원회, 2006년과 2001년에서 합성)
빈틈의 크기를 개선하는 데에는 유기물과 작물을 기름
그러나 2장에서 기술했듯이, 흙 알갱이의 크기는 흙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완성된 것으로, 사람의 힘으로 조립질이나 세립질의 흙을 중립질의 흙으로 곧바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기는 해도 조립질이나 세립질이어도 조금이나마 개선하기 위해 유효한 노력 목표는 있다. 그것은 적당히 퇴비 등의 유기물을 흙어 넣어 작물의 밑거름으로 기르는 것으로, 흙에 떼알구조라고 부를 수 있는 구조를 조금씩 만드는 것이다. 물론, 상당한 세월이 필요하다. 그러나 흙의 보수성과 배수성은 조금씩 새선되는 방향으로 변화될 것이다.
떼알구조란, 그림3-8에 나오는 구조이다. 흙에 떼알구조를 발달시키면 흙 알갱이와 알갱이를 잇는 접착제가 되는 유기물과 작물의 뿌리가 가하는 압력이 필요하다. 퇴비 등의 유기물을 적당량 뿌리고, 작물의 밑거름으로 생육시키는 일은 흙의 구조를 만든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것이다.
4 작물이 이용할 수 있는 물, 이용할 수 없는 물
배수되는 물, 흙에 남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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