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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 온 쟁기(Ploeg. 강연을 시작하기 전 본인이 자신의 이름이 농기구라고 알려주어 나는 이 분을 쟁기 선생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찾아보니 진짜로 네덜란드어로 쟁기가 플루흐이다. 서구 쪽에서는 본인들 직업을 이름으로 삼고 그랬다고 하더니, 이분은 농민의 후손인가?) 선생은 오랜 세월에 걸친 깊은 연구를 통하여,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주민, 농촌 지역의 경우 특히 농민이 얼마나 자율성과 주체성을 가지고 협동조합 같은 형태로 힘을 모아 삶을 꾸려 가는 것이 중요한지 이야기했다. 


연구의 깊이와 범위만큼 잘 정리되고 잘 짜여진 틀을 제공해 주었다. 가서 듣길 잘했다.


https://drive.google.com/…/1kCQodL7y1mdJMrq25hRTDpnZj5…/view





본인이 살고 있는 네덜란드 프리지아 북부의 산림지대의 사례를 이야기했다. 

위 사진에 보이는 방풍림으로 경계가 구분되는 농지는 각각 지역의 소농이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투쟁"이 있었던 장소로서, 농민이 스스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대응하여 승리했다고 한다. 그를 통해 얻은 교훈은, 사소해 보이고 보잘 것 없어 보여도 "망설이지 말고 싸우라." 라고 한다.

참고로, 그 협동조합은 현재 25년 되었는데, 처음 조합원 30명에서 시작해 현재는 1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먼저 해당 지역이 어디인지 찾아보았다. https://en.wikipedia.org/wiki/Friesland

네덜란드 북부의 북해와 접해 있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사진 같은 방풍림이 발달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풍림 하니 난 대번에 제주도가 떠올랐다. 제주의 농지 소유 관계나 농민의 조직 같은 게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궁금해진다. 귤만 열심히 생산하는 게 아니라, 네덜란드 북부 프리지아 산림지대 같은 일이 생길 날도 오겠지. 





투쟁에 과정에서 아래와 같은 도식의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1. 도로를 점거하고 현수막을 걸고 손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등의 "공공연한 투쟁"과 함께

2. 농작업을 방해하고 농지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는 등의 "은밀한 방해 행위"도 병행되었다.

3. 그 결과 노동과 생산 구조에 개입하여 그 방식을 변경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의 하나가 바로 "생울타리"이다. 생울타리의 목적이야 앞에서 이 지역의 지리적 위치에서 보았듯이, 바람을 막아 농지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었을 터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생울타리와 수로 체계가 결합된 것인지 어떤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지역의 농민들은 자연환경에 반응하여 농사를 잘 짓기 위해 생울타리를 설치해서 관리해 왔고, 그것이 농민의 농사만 이롭게 한 것이 아니라 경관까지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효과까지 낳았단다. 경관이 아름다워지며 생울타리에 찾아와 서식하며 사는 생물들도 증가해 자연스럽게 생물다양성까지 풍부해지는 뜻밖의 결과를 불러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이 조성되어 유지되자 정부 쪽에서 이 지역을 자연보호구역 같은 걸로 지정해서 관리하려고 했단다. 당연히 농민들은 더 이상 그곳에서 농사지을 수 없게 하고 말이다. 그러자 농민들이 이에 반발하고 투쟁을 시작했다. "우리가 만든 경관이니 우리가 지켜 나아가겠다"는 것이 당시 농민들의 주장이었다고 한다. 




아래는 당시 정부 쪽과 협상하던 이 지역의 농민 대표 3인이라고 한다. 이들은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안 들으면 아예 생울타리를 제거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단다. 그러니까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려는 목적이 생울타리로 인해 야기되었으니, 우리가 관리해 오던 일을 더 이상 못하게 한다면 아예 그걸 없애 그냥 여기서 농사짓고 살겠다는 주장이겠다.

한국과 달리 아주 착한(?) 정부인지, 정부 쪽에서 농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농민들은 스스로 함께 협동조합 같은 걸 만들어서 조직적으로 생울타리를 중심으로 지역의 경관도 가꾸고 생물다양성도 관리하기 시작했단다. 당연히 세상에 공짜는 없다. 농민들이 그러한 일을 하는 대신 정부에게 보조금을 받게 되었단다. 





당시 이 지역의 경제적 상황은 아래와 같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협동조합이 결성된 게 25년 전이니까 대략 1994년 정도이겠다. 네덜란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1985년을 기점으로 농업 생산비가 급증한 반면, 가격은 거의 그대로라서 농민의 소득이 감소한다. 아, 혹시 우루과이라운드에 대응하느라 그렇게 되었을까? 한국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러한 위기를 맞아 이 지역의 농민들은 협동조합이란 형태로 그를 극복했다는 것이 요지이다.  



생울타리를 통해 생물다양성이 풍부해지는 효과를 얻고, 그는 당연히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로 이어져 농사에 도움을 준다. 새들이 늘어나 해충을 잡아먹는 양이 늘어나면 당연히 농약을 한 번이라도 덜 치게 될 테고 그건 생산비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효과가 농업 생산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왔겠지. 그것이 바로 요즘 뜨고 있는 농생태학의 핵심이다. 더 이상 외부의 값비싼 투입재에 의존하는 농사를 짓지 말고, 농장과 그를 둘러싼 지역 차원에서 생태계를 살려서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생산성을 확보하는 농사를 짓자고 하는 그 농생태학 말이다.

이 지역에서는 생울타리의 나무를 관리하면서 그걸 내다팔아 부수입도 올린다고 한다. 네덜란드 하면 뭐다? 맞다, 나막신이다. 나막신은 무엇으로 만든다? 맞다, 나무이다. 그것 말고도 쓰임새는 참으로 많겠지만 말이다. 하다못해 불이라도 땔 수 있으니.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작년 12월에 갔던 일본 시즈오카현이 생각났다. 그곳의 숲이 엄청나게 울창한데, 제대로 관리가 안 되어서 오히려 문제를 야기하고 있단다. 농촌의 고령화와 일손 부족으로 과거 전통적인 방식으로 관리되던 숲이 그냥 방치되게 되었고, 나무가 우후죽순처럼 마구 자라면서 오히려 생태계에도 해를 끼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인간이 자연을 망치기만 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과도하게 착취하지 않고 잘 관리하면 자연과 더불어 공생할 수 있는 길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농생태학에서도 그걸 이야기하고 있다.

참고로 아래 사진의 청년 3명은 이 지역의 주민이라고 한다. 좋은 농사는 씨앗만 심는 게 아니라 사람도 심는다. 




이 지역에선 낙농을 주로 하는지 아래와 같은 일이 이루어졌단다. 질소 배출이 대폭으로 감소했다는데 오늘의 주제가 아니라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못했다. 아마 지역에서 낙농을 하는데, 젖소의 분뇨를 거름으로 이용해목초의 농사를 잘 지어서 목초의 품질이 올라가니 곡물사료에 의존하는 비율이 줄어들고, 그러다 보니 소가 트림이나 방구를 뀌어 배출되는 질소와 사료의 가공이나 운송에서 배출되는 질소가 줄고... 뭐 그런 뜻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토양 비옥도가 증가하고 투입재 구매비가 감소하면서 자연스럽게 농민의 자립도가 향상되었단다.  




아래의 그래프는 그걸 증명하는 자료이다. 그래프에서 알 수 있듯이, y축에 소가 똥을 많이 배설할수록(●) x축에 우유의 생산량이 늘어났다. 한국의 목장들에서 참고하면 좋을 자료이다. 분업화 전문화가 진행되면서 고기소 키우는 곳에선 고기소만 키우고, 젖소 키우는 곳에선 젖소만 키우고 그러는 경향이 있는데 유축복합영농이란 걸 깊이 고민해봐야겠다. 지난번 방문한 보령목장은 10만평의 목초지를 따로 관리한다고 하더라. 그런 사례가 점점 늘어나겠지.그런데 그 10만평을 확보하려면 기존 주민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러한 난관이나 문제도 있을 텐데 지역에서 잘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물다양성이 증대된 이야기도 했으나 오늘의 주제와 크게 연관이 되지 않으니 넘어가겠다. 농민들이 화학비료 대신 소의 분뇨를 이용해 생산 과정이 개선되고, 그로 인해 또 토양의 건강이 향상되면서 토양에 사는 생물이 다양해지고 늘어나 그를 먹이로 삼는 생물이 또 늘어나고, 또 그러한 것들을 먹는 최상위 포식자까지 풍부해지면서먹이그물이 복잡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한 부수효과도 있다고. 그렇게 되면 사회에서도 그러한 농업을 좋아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그것이 농민의 힘이자 무기가 된다는 이야기.


그렇게 농민의 농업(이건 이번에 알게 된 아주 흥미로운 개념이다. 그의 책에서 보니 쟁기 교수는 크게 산업형 농업, 경영자형 농업, 농민의 농업이라고 세 가지로 나누었다. 유럽과 미국의 농업이 좋은 비교 사례인데, 유럽은 전통적으로 농민의 농업이 강했고 미국은 경영자형 농업이 특징이라 한다. 경영자형 농업에서 한 걸음, 아니 훌쩍 뛴 것이 산업형 농업일까? 아니다. 그건 과거 식민지의 플랜테이션 농업에서 이어진 전통이겠다. 식민지라 하면 유럽 사람들이 개발해 확산시킨 형태일 테고... 맞다. 미국도 결국 유럽 사람들이 건너가서 세운 나라이지. 음... 기승전유럽이구만.)이 강화되면서 경관이 개선되는 등을 통해 지속가능성이 확보되고, 이것이 사회적으로도 혜택을 가져온다. 도시민은 캠핑이나 여행, 관광 등을 위해 해당 지역에 찾아가 자연을 즐길 수도 있고, 좋은 먹을거리도 먹을 수 있으니 도시민에게도 혜택이 되는 게 맞다. 네덜란드의 농민들은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많은 걸 깨달을 수 있었다고... "자연을 살리는 길이 결국 생산성을 높이며 농민도 살린다."




또 하나 재미난 개념이 '참신성'이었다. 김정섭 선생님이 이에 대해 잘 설명해 주셨다. 보통 혁신이라 하면 그건 기존의 것을 개선한다는 의미인데, 참신성은 그보다 더 급격한 변화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황당하기까지 한 행위라고 볼 수도 있다고. 그 예로, 홍동에 처음 오리 농법을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사람들이 논에 오리를 넣으니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냐고. 그런 게 바로 참신성에 가깝다고 설명해 주었다.

강연 내내 강조하듯이, 참신성이란 것도 중앙집권적이 아니라 지방분권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이 대목에서, 유럽이 대부분 그렇지만, 네덜란드는 특히 전통적으로 지방분권이 큰 특징이어서 이런 사례도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다. 쟁기 교수만 해도 본인 지역에서 쓰는 문자를 소개하고 그러지를 않나... 아무튼 무언가 참신한 게 시작되려면 누군가 천재 또는 돌아이 같은 사람도 필요하고 한 법이다. 그가 시작하고 나면 사람들이 뒤를 이으면서 발전시키고, 나중엔 그를 종합하여 집대성하는 사람도 나오고 그러지.  




협동조합은 아래와 같은 구조로 운영된다고 한다. 앞문과 뒷문 체계인데, 앞문을 통해서는 외부의 기관과 접촉해상대하고, 뒷문을 통해서는 조합원들의 이야기와 요구, 이해를 받아들인다. 집을 환기시키는 게 생각난 건 내가 살림을 하기 때문일까? 앞창과 뒷창이 마주하고 있어야 바람이 술술 통해서 환기가 잘 되는 것과 같은 이치 같다.




협동조합이 결성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이 일도 필요하고 하여 하나둘 하다보니 아래와 같이 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각각의 일들이 따로 뻗어가는 게 아니라 모두 협동조합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각각의 사업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전체는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농생태학에서 강조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해당 협동조합에서 일을 처리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문제가 발생한다 - 지역에서 해결하고자 머리를 모은다 - 그를 해결할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한다. 이때 중요한건 그 프로그램에는 그 일을 왜 하려는지, 그리고 협동조합의 공유가치가 담겨야 한다. 공유가치는 크게 10가지를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농민이 스스로 지식을 만드는 일을 강조했다. 그것이 나중에 기관과 협상할 때 중요한 무기가 된다고하면서 말이다. 그건 전통지식 같은 것도 하나의 예가 되겠다. 토종 씨앗에 대한 지역 농민의 지식, 숲과 나무에 대한 지역 농민의 지식, 작물 재배나 가축 사육에 대한 지역 농민의 지식, 풀에 대한 지역 농민의 지식 등등이 모두 이러한 지식이 될 수 있다. 지식을 모으고 정리하고 체계화해서 투쟁의 무기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부기관이 그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연구자나 연구기관이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농민이 직접 한다. 농민이 스스로 한다. 이건 농민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 농민이 더 잘한다. 우리 모두의 일이다. 지역사회를 위한 일이다. 이러한 태도와 자세가 필요하다고 한다. 위의 공유가치에 담긴 내용이 이것이다. 


강연을 듣다 보니 예전 일이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십 몇 년 전, 당시 귀농운동 판을 기웃거리면서 보고 들은 일들이다. 귀농자는 현실적 어려움에 잘 정착하는 걸 우선했고, 귀농 단체에서는 그런 귀농자에게 개인의 정착만이 아니라 지역에서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격렬하게 오고갔다. 당시 어리고 무얼 잘 몰랐던 나는 그냥 듣고만 있었는데 이제야 그때의 일과 오늘의 강연이 겹치면서 조금 이해가 된다. 농촌으로 간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부딪치고 때로는 절망하기도 하면서 얻어낸 결과가 오늘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모습이겠다. 홍성은 그중에서 좋은 사례가 되는 곳이겠다. 

그런데, 네덜란드도 사람 사는 곳이라 분명 구성원들 사이에 가치관이 다르다거나 실천방법에서 차이를 보이는 일이 있을 텐데 그러한 갈등은 어떻게 조정하고 해결하는지 궁금하다. 내가 이걸 질문하고 싶어 손도 들었지만 시간 관계상 포기했다. 언제 또 기회가 있겠지. 사람 사는 곳이니 우리랑 크게 다르진 않겠지. 




쟁기 교수는 브라질에 가서 무토지 농민운동 단체가 걸어 놓은 구호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소개하며 강연을 마쳤다. 


"점령하라 - 저항하라 - 생산하라 - 협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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