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작은 오해와 충돌이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이렇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계시지 않은 난, 평소 장인, 장모님의 생일이나 명절에 돈을 드리기보단 여행이나 식사를 함께 하거나 마음을 담은 선물을 드리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고, 그런 나의 생각에 아내도 동의하여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이게 주는 사람이나 그렇지,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받는 사람이 좋아하는 바를 해드리는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참으로 충격이었다.
조금 더 들어가보면 이렇다. 지난달 장모님 생일이 있었고, 연이어 이번달에는 추석이 있었다. 처갓집에는 딸 둘에 늦둥이 아들이 있는데, 우리는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했지만 처제네는 늘 장모님이 바라는 대로 해드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모님과 이러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지난달 생일에도 받고 이번달 추석에도 받았는데, 평소 돈 때문에 힘들어하던 그 집에 미안한 생각이 들어 돈을 주었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엥, 우리는요? 우리도 여행에 선물에 해드리는데..." 하는 반응을 던졌더랬다. 그랬더니 당황하셨는지 "여행 가서 우리도 돈 쓰잖니." 하시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너무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평소 이렇게 저렇게 잘한다고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한다고 했지만, 결국 돈봉투의 힘을 이기지 못한 것이 아닌가!
사실 더 들어가보면 이면은 이렇다. 평소 무언가 모르게 아내를 대하는 것과 처제를 대하는 것이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우리가 이러저러할 때와 처제네가 이러저러할 때 보여주는 반응이 달라서 난 내심 못마땅할 때도 있고 그랬다. 아니 왜 우리는 이렇게 대하고 저 집은 저렇게 대할까 하는 생각이 있었더랬다. 과거 처갓집이 힘들었을 때 아내와 처제 똑같이 자기 용돈은 자기가 벌어 써야 했는데, 과외를 한 아내와 알바를 한 처제에 대한 반응이 다른 걸 보면서 의아했다. 사실 그런 반응은 나와 내 동생에 대해 보인 부모님의 반응과 똑같아서 이해할 만도 하다. 부모님께 나는 받을 거 다 받고 자란 형이었고, 동생은 한없이 미안하고 안쓰럽기만 한 동생이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지만, 특히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걸 알았다. 처갓집도 첫째와 둘째에 대한 반응이 그러했을 것이다. 더구나 알바에 비해 과외는 별 힘이 들지 않은 일이라 생각할 수 있으니 더욱 그렇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부터 옆에서 아내를 지켜보았던 난 돈 때문에 발발거리며 과외를 하던 아내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처갓집에서의 생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보곤 했다. 그런 사정을 잘 알기에 내가 중간에서 더 잘하면 그런 간극을 좀 줄일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더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아이가 태어난 뒤 그런 마음이 더 강해졌다. 내가 잘하는 만큼 아무래도 아이에게 조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더 가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건 다사다난했던 유년시절 덕에 관심과 사랑에 굶주려 있는 나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해도 어쩔 수 없는, 나만의 바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토로한 뒤, 아내가 따로 장모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난 아내를 통해 다시 장모님의 생각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처제네는 자신에게 아픈 손가락이며, 그 집의 손주는 첫 정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들으며 묘한 감정이 남았는데, 자다가 일어나 물 마시고 돌아와 다시 잠들려 뒤척거리며 생각해보니 이건 내가 어떻게 한다 해도 넘을 수 있는 벽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욕심이 너무 지나쳤다. 그냥 깨끗이 단념하고 잊어야겠다.
나의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시기도 했지만, 또 일찍 이혼하시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난 시골의 친척집에 맡겨져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런 경험 때문일까? 난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성향이 있다. 그렇게 마음을 열었다가 나중에 상처를 받으면 너무 힘들다는 걸 어린 나이에 일찍 알아버린 것 같다. 나를 방어하는 기제로 마음을 잘 열지 않고, 곁을 잘 내어주니 않는 나쁜 습성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상처 받기보다 나를 보호하는 편이 낫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고, 그 덕에 어지러운 환경에서도 이만큼 나를 지켜온 것도 같다. 괜히 내 마음만 다치기 전에 더 욕심 부리거나 애쓰지 말아야겠다.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린짱이나 더 사랑해줘야지. 아이가 태어나니 부모님의 부재가, 그러니까 조부모의 부재가 아이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오히려 자유롭고 편안하기까지 하지만 아이에겐 남들처럼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것이 아니니 괜히 내가 미안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애를 빨리 쑴풍 낳아 외가에서라도 첫 손주로 만들어준 것도 아니고...
효린아, 그 대신 아빠가 더 많이 사랑해줄께.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의 몫까지 채워줄 수야 없겠지만, 아빠가 많이 사랑해줄께 효린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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