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아침 일을 끝내고 "이웃의 토토로"에 나오는 고양이 버스와 비슷한 호랑이 버스를 타고 11시 다 되어 출발.
강창운 어르신 댁에서 바라본 백록동 마을의 전경.
도착하자마자 일소를 데리고 밭으로 이동.
먼저 목덜미에 멍에를 메워 쟁기를 연결한다. 강창운 어르신만의 방식, 어르신만의 쟁기, 모든 것이 어르신의 경험과 방법에 맞게 맞춰져 있다. 쟁기술은 얼마 전 소가 날뛰면서 부러져 새로 깎아 넣었다고 한다. 성에도 다른 것에 비해 좀 짧았다. 아무튼 현대의 산업사회에서 요구하는 표준화, 규격화란 너무 폭력적이지 않은가.
먼저 시범을 보여주신다. 모두 엄마 닭을 좇는 병아리처럼 졸졸졸...
다시 돌아온다.
자, 이제 한 사람씩 한 번씩 ...
무언가 열심히 말씀하시는 은주당! 이런 순간포착이... ㅋ 조금 굽힌 무릎, 연신 위아래로 움직이는 손, 지긋이 감은 눈에, 벌어진 입...
소는 일하다 중간중간 똥도 싸고 오줌도 싼다. 그건 그대로 갈아엎어져 땅속으로 들어가 거름이 된다.
어수룩한 일꾼들 덕에 아직 일에 익숙하지 않은 소도 덩달아 더 힘들다. 잠시 쉬는 틈에 자꾸 만지고 돌 같은 걸로 긁어주며 친밀감도 쌓고 피로도 푼다.
드디어 어수룩한 일꾼들 손에서 벗어나 편안한 외양간에 도착한 군만두.
다음날 아침, 엊저녁 두부 만들고 나온 찌꺼기를 여물에 섞어 주니 코를 박고 배불리 든든하게 먹는다.
마을의 다른 소는 사람이 조금 다가가면 흠칫 놀라며 물러서서 잔뜩 경계한다. 아래 사진처럼... 모두 날 쳐다보는 바람에 민망... --;;
길 곳곳에 김희수 선생님이 알려주신 산괴불주머니가 피었다. 두해살이풀이고, 습한 산지에 산다니 여기가 딱이겠네.
동네의 다른 논은 트렉터로 말끔하게 갈아놓았다. 효율로 따지자면 이게 더 효율적인 것이겠지. 우리는 다른 가치와 세계를 꿈꾼다. 똑같은 가치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지. 우리의 가치관으로 이 논을 보면 엄청나게 좋지 않아~! 그런데 왜 자꾸 이 가치로 저 가치를 재려고 하는지, 쩝. 습관이란 참 무섭다.
이선신 선생님 덕에 그동안 소를 어떻게 길들여왔는지 꼼꼼한 기록과 함께 강창운 어르신 댁에서 이런 사진도 볼 수 있었다. 참, 멍에는 메우는 거라고 말씀드린다는 걸 깜빡했다.
동네의 베테랑 일소. 15년을 이 어르신과 함께했단다. 사람으로 치면 노인네. 보통 이십 몇 년쯤 산다고 하신다. 언제는 방송국에서 강화도까지 이 소를 좀 보내달라고, 연출 좀 하고 돌려주겠다고 해서 정중히 거절했다고 하신다. 방송국, 신문기자 놈들의 그 버릇은 언제쯤 고쳐질란지. 아무튼 이 소는 베테랑답게 멍에와 맞닿는 목덜미에 굳은살이 배겼다. 거기로 힘을 받으며 아주 여유롭게, 자기의 속도로 쟁기를 끌고 나간다.
베테랑도 봄날 첫 작업에는 어쩔 수 없나보다. 성엣줄과 닿는 부분의 뒷다리가 까졌다. 금방 아물고 단단한 살이 된다고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한다. 맘이 짠하지만 이것이 운명. 바위산 꼭대기를 향해 끊임없이 돌을 굴려 올리는 시지프스 같은... 농사란 단어 agriculture는 땅을 뜻하는 라틴어 ager와 갈아엎다를 뜻하는 culture의 합성어이다. 그 안에는 끊임없는 인간의 노동이 배어 있는 땀맛나는 단어이다. 그뿐이랴 동양의 農 자 역시 그렇다. 흔히 말하는 별의 노래가 아니라 쟁기를 쥐고 땅을 가는 모습 辰에 음을 나타내는 田 부분에 풀을 벤다는 뜻이 합쳐진 단어이다. 시지프스 같은 인간의 노동, 어찌 보면 가혹한 저주요, 어찌 보면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행위. 일소의 쟁기질도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축사에 갇혀 사료만 먹다 2~3년 뒤 가혹한 운명을 맞는 소의 삶보다는... 소와 인간의 공생은 물론, 모든 공생은 이와 비슷한 관계가 아닐까.
집으로 돌아가는 일소를 보며, 그래도 무거운 쟁기는 사람이 지게에 싣고 돌아가는 모습에 이것이 소를 생각하는 우리네 맘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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