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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ibrary.krei.re.kr/dl_images/001/040/M14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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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1&sid2=263&oid=056&aid=0010367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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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segye.com/content/html/2016/10/25/201610250026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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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배면적당 수확량으로 농업 생산성을 평가하는 현행 측정방식에서 재배면적당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지로 바꿔야 한다는 연구결과.



http://iopscience.iop.org/article/10.1088/1748-9326/8/3/034015/meta;jsessionid=6B82BD5C103A077194247881F1AC457A.c5.iopscience.cld.iop.org


Worldwide demand for crops is increasing rapidly due to global population growth, increased biofuel production, and changing dietary preferences. Meeting these growing demands will be a substantial challenge that will tax the capability of our food system and prompt calls to dramatically boost global crop production. However, to increase food availability, we may also consider how the world's crops are allocated to different uses and whether it is possible to feed more people with current levels of crop production. Of particular interest are the uses of crops as animal feed and as biofuel feedstocks. Currently, 36% of the calories produced by the world's crops are being used for animal feed, and only 12% of those feed calories ultimately contribute to the human diet (as meat and other animal products). Additionally, human-edible calories used for biofuel production increased fourfold between the years 2000 and 2010, from 1% to 4%, representing a net reduction of available food globally. In this study, we re-examine agricultural productivity, going from using the standard definition of yield (in tonnes per hectare, or similar units) to using the number of people actually fed per hectare of cropland. We find that, given the current mix of crop uses, growing food exclusively for direct human consumption could, in principle, increase available food calories by as much as 70%, which could feed an additional 4 billion people (more than the projected 2–3 billion people arriving through population growth). Even small shifts in our allocation of crops to animal feed and biofuels could significantly increase global food availability, and could be an instrumental tool in meeting the challenges of ensuring global food secu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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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journals.plos.org/plosone/article?id=10.1371/journal.pone.0066428


Abstract

Several studies have shown that global crop production needs to double by 2050 to meet the projected demands from rising population, diet shifts, and increasing biofuels consumption. Boosting crop yields to meet these rising demands, rather than clearing more land for agriculture has been highlighted as a preferred solution to meet this goal. However, we first need to understand how crop yields are changing globally, and whether we are on track to double production by 2050. Using ∼2.5 million agricultural statistics, collected for ∼13,500 political units across the world, we track four key global crops—maize, rice, wheat, and soybean—that currently produce nearly two-thirds of global agricultural calories. We find that yields in these top four crops are increasing at 1.6%, 1.0%, 0.9%, and 1.3% per year, non-compounding rates, respectively, which is less than the 2.4% per year rate required to double global production by 2050. At these rates global production in these crops would increase by ∼67%, ∼42%, ∼38%, and ∼55%, respectively, which is far below what is needed to meet projected demands in 2050. We present detailed maps to identify where rates must be increased to boost crop production and meet rising dem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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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수수 박사’ 김순권 한동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12일 경북 포항의 학교 소유 농장에서 요즘 연구 중인 개량 품종 옥수수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손길을 거쳐 간 옥수수가 지난 46년 동안 수십억 자루는 족히 될 것이라고 했다.

포항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달 12일 포항역에 내렸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아이구, 이 더운 날에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땀에 젖은 헐렁한 셔츠, 흙투성이 등산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박사’의 차림새는 아니었다. 그는 금방 딴 것이라며 껍질을 벗겨 소매에 쓱쓱 닦더니 내 앞에 내밀었다. 날옥수수는 처음이었다. 망설이다 한입 베어 무니 웬걸,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맛있죠? 이게 과일보다 단 꿀옥수수라는 겁니다. 미국서 공부할 때 내 점심은 이 옥수수였어요. 날것 두세 자루로 배 채우고 밭에서 18시간씩 일했죠.” 옥수수에 미친 사내, 김순권(71)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학교는 뭐 할라 가노? 내 따라 댕기면서 농사랑 괴기잡이나 배아라. 어차피 장남이 집을 책임져야 안 되겠나.” 아버지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져 낙심한 나를 혹독하게 부리셨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소똥을 퍼서 퇴비를 만들고 밭을 갈았다. 밤에는 배를 타고 나가 멸치를 잡았다. 일이 없으면 산에 올라 나무를 했다. 하루 세 짐은 채워야 끝났다. 똥통을 지고 보리밭을 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 생똥을 온몸에 뒤집어쓰기도 했다. 아버지와 함께 반듯하게 밭을 갈던 소는 내가 쟁기질을 이어받자마자 구불구불 갈지자로 걸었다. 아버지는 소 한 마리도 못 다루는 놈이 뭐가 되겠느냐며 지게 작대기로 사정없이 내리치셨다.

-나는 해방을 몇 달 앞둔 1945년 4월 5일 경남 울주군 강동면 신명리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딸 여섯을 낳고서 얻은 아들이었다. 읍내에 가려면 서너 시간은 걸어야 했던 오지였다. 아버지는 여덟 마지기 땅에 논농사를 지으셨다. 멸치잡이 배 한 척도 있었다. 못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식구가 많아 늘 배를 곯았다. 

-인생의 고비에서 나는 세 번의 시험에 낙방했다. 머리가 좋지 않았지만 노력형이어서 반에서 3~4등은 했다. 은행원을 최고의 직업이라 여기고 명문인 부산상고에 도전했지만 입학시험에서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1년 동안 아버지 밑에서 농사를 배웠다. 돌이켜보면 일종의 ‘선행학습’이었다. 이듬해 울산농고에 들어갔다. 삽질, 김매기는 내가 일등이었다. 졸업할 때 실습상을 받았는데 부상이 삽이었다. 평생 옥수수밭에서 일할 운명은 그때 결정된 게 아니었을까. 

-고등학교 2학년 때 태풍이 고향 집을 덮쳤다. 아버지가 피해 복구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병원비를 대려고 논을 팔았다. 셋째 누나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가세가 더 기울기 시작했다. 대학 진학은 무리였다. 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벌어야 했다. 농협 입사 시험을 쳤지만 떨어지고 말았다. 내 인생의 두 번째 낙방이었다. 실의에 빠져 있는데, 경북대 농과대학에 가면 장학금을 주고 졸업 후 독일 유학도 보내준다는 말을 듣게 됐다.

-10대1의 경쟁을 뚫고 경북대 농대에 합격한 나는 공부벌레로 살았다. 강의를 듣거나 아르바이트하는 시간 외에 도서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가장 늦게 도서관 불을 끄고 나왔다. 한번은 도서관에서 한 여학생이 차를 마시자고 해 따라나갔다. “네? 법대생이 아니고 농대생이라고요?” 내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걸로 알았던 그녀의 표정이 확 굳었다. 예비 판검사와 연애 한 번 해보려 했는데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었던 것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우장춘 박사처럼 육종학자가 될 것인가.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 농업경제학 교수가 될 것인가. 흙에서 뒹굴며 평생을 보내야 하는 육종학자와 세련된 매무새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 중에서 후자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서울에서 두 달 하숙하며 대학원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을 잘 본 것 같았는데 최종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 화가 나서 담당 교수에게 따지러 갔다. 교수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자네는 생김새가 촌사람이어서 경제학은 안 맞는 것 같아. 충고하는데 그대로 육종학을 하시게나.” 세 번째 낙방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농촌진흥청에 들어갔다. 매일 오전 5시 30분에 출근해 통행금지 예비 사이렌이 울리는 밤 11시 30분에 연구실을 나섰다. ‘제2의 우장춘’이 되겠다는 각오로 하루 18시간을 일하고 공부했다. 하지만, 배움의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미국 유학이 가고 싶었다. 가난한 공무원에겐 자비 유학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국비 장학생이 되어야 했다. 서울대 문턱보다 높다는 하와이 동서문화센터(EWC)의 미국 유학 장학생 17명 중 한 명으로 선발됐다. 

-하와이대에서 옥수수 육종학을 시작했다. 미국산 옥수수는 탐날 정도로 크고 질이 좋았다. 지속적인 품종 개량의 결과다. 옥수수 연구가 한국보다 50년은 족히 앞서 있었다. 감탄과 한숨이 동시에 나왔다. ‘옥수수를 잘만 개량하면 막대한 수확량을 올려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일본인 유학생들과 연구실에서 공부하다 밤이 되면 함께 기숙사로 돌아왔는데 그들이 잠들면 나는 혼자 연구실에 돌아가 2시간을 더 공부했다. 다른 학생들이 밥 먹고 하와이 날씨를 즐길 때 나는 뙤약볕 아래 실습장에서 생옥수수로 끼니를 때우며 연구를 거듭했다. 다들 ‘옥수수에 미친 남자’(crazy corn man)라고 수군거렸다.

-미국 교수들은 “옥수수 교배 올림픽이 있다면 김순권이 단연 금메달감”이라고 나를 치켜세웠다. 옥수수 교잡종을 만들려면 암수를 접붙여야 한다. 옥수숫대 위에 달린 수술에선 100만~200만개의 미세한 꽃가루가 떨어진다. 눈병이 생기기 쉬우니 자주 씻어내야 한다. 눈이 큰 미국인들은 이걸 불편해했는데, 나는 눈이 작아서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3년 3개월 만에 석·박사 학위를 손에 쥐었다. 박사 과정 동안 20차례 옥수수를 재배하며 쓴 논문들을 세계농업학회지 등에 7차례 실었다. 단숨에 전 세계 옥수수 학계의 스타가 됐다. 미국의 파이어니어라는 종자회사가 농촌진흥청 월급의 20배였던 3000달러를 제의해 왔다. 하지만 나는 솔깃한 제의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내 손으로 만들어낸 옥수수를 우리 땅에 하루라도 빨리 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1979년 강원 홍천, 평창, 영월의 시험 재배장에 ‘수원 19호’, ‘수원 20호’, ‘수원 21호’의 종자가 뿌려졌다. 얼마 후 미국에서나 볼 수 있었던 씨알 굵은 옥수수가 주렁주렁 달렸다.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암초가 등장했다. “미국과 국제기구가 자네가 개발한 ‘수원’ 시리즈는 한국 땅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네. 수고했지만 종자는 창고에 쌓아 두고 연구나 좀더 해 보게.” 농진청 선배의 말이었다. 옥수수 종자를 팔기 위한 미국의 로비가 뻔했다. “이 종자가 실패하면 10년 동안 감옥에 가 있겠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강원도 농가에 당초 계획의 절반인 8만t을 나눠 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농민들이 옥수수를 땅에 심으려 하지 않았다. “농사 망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요?” 격한 삿대질이 돌아왔다. 농가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그해 강원도에는 바람이 심해 곳곳에서 흉작이 났는데 이게 좋은 기회가 됐다. 수원 19호는 전혀 넘어지지 않았고 전체 포기의 95%에 잘생긴 옥수수가 달렸다. 수원 품종을 심은 농민들은 수입이 전년보다 3배 이상 올랐다. 누가 이 종자를 못 심게 했느냐며 관련자가 처벌까지 받았다. ‘미국이 55년에 걸쳐 만든 옥수수 교잡종을 5년 만에 이뤄냈다.’, ‘한국 옥수수 농사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찬사가 이어졌다. 그때부터였다. 내 이름 앞에 ‘옥수수 박사’가 붙은 것은. 

-그즈음부터 국제열대농업연구소(IITA)에서 줄기차게 나에게 팩스를 보내왔다. 비영리 농업연구센터인 IITA는 나이지리아 이바단에 1000㏊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며 아프리카 기아 해결을 연구하고 있었다. 한국형 교잡형 옥수수를 개발한 나더러 5억명 아프리카 인구의 식량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게 그들의 요청이었다. 1979년 8월 이바단에 도착했다. 2년 만에 옥수수 암이라고 부르는 위축 바이러스에 강한 신품종을 개발하자 나이지리아 정부가 후원자로 나섰다. “5년간 250만 달러를 줄 테니 나이지리아에 맞는 옥수수를 개발해 달라”고 요청했다. 500개의 종자를 만들어 7개 지역 옥수수밭에서 시험 재배했다. 최종 배양된 종자는 기존 옥수수보다 수확량이 배가 많았다. 해마다 100t에 가까운 옥수수를 미국에서 수입했던 나이지리아는 생산량이 300만t 이상 늘어 옥수수 완전 자급을 이뤘다. 대통령이 내 손을 잡고 고마워했다. 

-아프리카에서 보낸 17년 동안 나는 아홉 번이나 말라리아에 걸렸다. 위험한 고열에 시달린 게 여섯 번, 죽기 직전 위급한 상황이 세 번이었다. 고열에 혼수상태를 지속하다 3일 만에 정신을 차린 적도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현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나는 큰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명예추장에 두 번이나 추대됐다. 외국인 중에 명예추장이 된 사람은 통틀어 50명 정도밖에 없는데, 외국인으로 두 번이나 명예추장이 된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사람이란 뜻의 ‘마이에군’, 아내는 황금의 어머니라는 뜻의 ‘예예니우라’로 불렸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50코보(약 50원)짜리 동전에 오동통한 옥수수 이삭을 새겨 넣었다. 내가 개발한 ‘오바슈퍼 1호’였다.

-IITA의 책임연구원으로 귀한 인재 대접을 받았다. 높은 연봉과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자리였다. 우리 연구팀이 1986년 농업부문 노벨상으로 불리는 벨기에 국제농업연구대상을 받은 뒤 몸값이 더 올라갔다. 그런데 마음 한쪽이 편치 않았다. 1994년 북한에 엄청난 수해가 닥쳤다. 어릴 적 배고픔을 겪어 본 나는 마음의 동요가 심했다. 북에 언니와 오빠를 둔 아내는 더욱 가슴 아파했다. 

-1995년 경북대에서 ‘외국 박사 모셔오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나에게 교수직을 제안했다. 귀국과 동시에 북한 식량 문제를 도울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경북대 농대 소유의 1.7㏊(약 5000평) 규모 옥수수 농장에서 북한 토양에 적합한 슈퍼 옥수수 종자를 시험 재배하며 때를 기다렸다. 북한 당국은 공식 초청장을 5차례나 보내 나에게 방북을 요청했다. 우리 정부는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1998년 1월 방북 승인이 떨어졌다.

-북한 현지 사정은 심각했다. 비료가 부족하고 과학 영농이 안 돼 농작물이 병충해에 약했다. 북한 농업위원회 간부들은 슈퍼 강냉이를 개발해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과학적 주체농업’을 제안했다. 협동농장 간 경쟁을 붙여 평균보다 많이 수확한 농민에게 식량 배급을 더 주자고 했다. 농사 잘 지은 협동농장에는 트랙터를 상으로 줬다. 망가진 옥수수밭을 살리기 위해 콩과 돌려짓기를 하고 대홍단(옛 개마고원) 등 고산지에는 저온작물인 감자를 심도록 했다. 이렇게 하니 평균 30% 이상 식량 증산이 이뤄졌다. 내가 개발한 수원 19호를 북한 농민은 ‘강냉이 19호’ 또는 ‘강 19호’로 불렀다. 첫 방북 이후 지금까지 59회를 북에 다녀왔다. 옥수수사업은 북의 기아 해결과 남북 화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2003년 이후에는 나의 방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중국, 몽골, 베트남, 라오스, 동티모르에 슈퍼 옥수수를 보급했다. 

-옥수수가 신기한 것은 종자 1개가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옥수수 한 알을 심으면 1200개 알갱이가 붙은 옥수수가 나온다. 내가 직접 만진 옥수수는 하루 수천개, 46년이 지났으니 줄잡아 수십억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옥수수가 내 손을 거치게 될까. 앞으로도 계속 옥수수밭에서 땀 흘려 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포항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908027005#csidxe9d744837345ee9aee4aca449bd4c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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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하고 풍부하게 지원 받는 '유럽 농촌공동체'에 답 있다

  
▲ 오스트리아 슈바츠 농업회의소.
 

임성희 녹색연합 전문위원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인 초우량 국가 독일에서도 농민이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살기 어려운 듯하다. 일단 독일의 농림수산업 생산총액은 독일 국내총생산(GDP)의 0.8%에 불과하다. 농민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2%도 안 된다. 28만여 전체 농가의 90%인 가족농이 70%의 농지를 점유하고 농산업이 아닌 생계형 농사를 짓고 있다. 나머지 10%가 협동조합(Gemeinschaft) 또는 주식회사 형태인 일종의 기업농이다.

농가당 평균 농지경작 면적은 평균 58㏊ 정도이지만 전체 농가의 절반은 육가공, 농박 등 부업을 겸해야 가계경영이 가능한 겸업농가다. 농가 평균 농업소득은 2000만원 정도로 그나마 절반은 세금으로 빠져나가니 겸업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겉으로는 연간 농업소득 1000만원 수준인 한국의 영세한 평균 농민의 처지와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불가사의하다. 독일 농민들은 한국 농민보다 안정되고 행복한 농촌생활을 누리고 산다. 자식에게 농사를 가업으로 당당히 물려주고 묘비에 농부로 살았다는 사실을 새겨넣을 만큼 농부로서 자부심과 자존감이 대단하다. 그래서 독일은 식량자급률이 85%에 이르고 농촌이 마치 생태공원처럼 보전된 농업선진국의 위상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독일 농부 행복의 비결은 ‘직불금’

  
▲ 독일 슈베비쉬 할 생산자조합(Gemeinscahft).

비결은 직불금이다. 독일에서 농가소득의 주요 수입 원천은 농업이 아니다. 유럽연합, 정부, 주정부가 농가에 직접 지급하는 직불금 등 각종 농업지원금이다. 임성희 전문위원에 따르면, 연간 지급되는 금액은 농가당 평균 3만1000유로(약 4000만 원)나 된다. 농가소득 가운데 농업지원금 소득이 60%가 넘는 셈이다. 2010년 기준으로 EU의 총예산 1229억 유로 가운데 농가에 571억 유로가 지원, 전체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46.5%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437억 유로는 농가에 직접지불금 형태로 지원했다. 지원금에서 가장 큰 항목이 ‘직접지불금’인 것이다. 유럽연합 공동농업정책(Common Agricultural Policy, CAP)에 따라 EU 회원국가의 모든 농민에게 지불된다. 경작조건이 불리한 스위스 산악지역은 농가 소득의 90%까지 직불금으로 보전해주고 있다.

직불금은 경작 농지 규모에 따라 직접지불형태의 보조금으로 1㏊당 318유로를 받는다. 이밖에 농업환경프로그램에 따라 약 30%, 조건 불리 농경지는 보상지불, 친환경농업 녹색(Greening) 지불, 소농 지불 등이 가산된다. 특히 개정된 유럽연합 공동농업정책 프로그램에 따라 2014년부터 2020년 까지 ‘젊은 농업인 지원’항목도 신설됐다. 40세 이하 신규 농업종사자에게 기존 직불금의 25%를 추가 지불하는 것이다. 젊은 농업인에게는 직불금 외에도 공유지 임대, 농업 시설물 설비 보조금 10% 추가 지원도 주어진다.

△ ‘사람 사는 농촌’을 지키는 사회안전망

  
▲ 독일 라인스바일러 포도공동체마을.

무엇보다 독일 농민들은 유럽연합과 독일 정부의 농업지원금 이전에 농촌에서 ‘먹고 사는 걱정을 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비롯 재해보험, 의료보험, 간병인보험, 노령보험 등 사회보장시스템이 농민들을 농촌에서 떠나지 않도록 돌보고 보살펴준다.

이렇게 독일 등 선진 유럽의 농정 예산은 ‘돈 버는 농업’보다는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해 주로 쓰여진다. 농정의 철학과 패러다임의 차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농부 국가자격증 까지 취득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정예화된 2%의 독일 농민들조차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민의 식량기지이자 자연의 보고인 농촌은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촌을 지켜야 하는 독일 농민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헌법에 명시된대로 농촌에 최소한의 인구밀도가 유지되도록 국가에서 직불금으로 먹여살려주는 것이다.

독일을 비롯한 EU 회원국가의 농정 당국이 이토록 농업과 농촌과 농민을 보호하는 이유는 농업이 발휘하는 10가지 소중한 기능 때문이다.

하나, 농업은 우리의 식량을 보장한다. 둘, 농업은 우리 국민 바로산업의 기반이 된다. 셋, 농업은 국민의 가계비 부담을 줄여준다. 넷, 농업은 우리의 문화경관을 보존한다. 다섯, 농업은 마을과 농촌공간을 유지한다. 여섯, 농업은 환경을 책임감 있게 다룬다. 일곱, 농업은 국민의 휴양공간을 만들어준다. 여덟, 농업은 값 비싼 공업원료 작물을 생산한다. 아홉, 농업은 에너지 문제 해결에 이바지 한다. 열, 농업은 흥미로운 직종을 제공한다.

△농부의 욕심을 조절하는 ‘녹색계획’

무엇보다 독일에는 농부들 스스로 욕심을 조절하고 규제할 수 있도록 법과 정책이 마련돼 있다. 1954년에 만들어져 60년 넘게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녹색계획(Green Plan)이 그것이다. 도시보다 농촌이,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독일의 농업정책은 바로 이 4가지 원칙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첫째, 농민도 일반국민과 동등한 소득과 풍요로운 삶의 질을 향유하며 국가 발전에 동참한다. 경쟁력 향상, 소득 증대만 추구하면 대다수 소농들의 토대는 무너지고 이농을 할 수밖에 없다.

둘째, 국민에게 질 좋고 건강한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한다. 농산물을 과대포장해 비싸게 파는 것은 세금을 내는 국민을 배반하는 일이다.

셋째, 국제 농업과 식량문제 해결에 기여한다. 자국의 먹을거리 문제 해결은 물론, 먹는 것으로 다른 나라의 목을 조이지 않는다.

넷째,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한다. 농촌의 자연, 문화 경관은 모든 국민이 즐길 권리다. 국도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상점도, 간판도 들어설 수 없다.

그리고 평균적인 농민들은 이기적으로, 경쟁적으로, 독과점적으로 ‘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 수 없게’, ‘생활에 필요한 돈 이상은 못 벌게’, 유기농업이나 지역농업에 충실하게 법이나 조합의 정관으로 스스로, 그리고 서로를 다스리고 절제하고 있다.

그리고 농촌공동체, 농업 협업경영체(Gemeinshcaft, Genossenshaf) 동지들 사이의 약속으로 서로가 서로를 엄중하게 단속하고 규제하고 있다.

■ 유럽농부는 아무나 할 수 없다

교육과정·위생검사 엄격 / '농부자격증' 있어야 가능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파이스테나우(Faistenau) 지방의 홀러농장은 요셉 클라우스호퍼(Joseph Klaushofer) 농장주 부부가 꾸려가는 가족농장이다. 부부가 공동경영하는 농축산물 직판농가로 약 7㏊의 농지에 낙농, 양계, 양봉 등을 영위하는 오스트리아 최고의 6차 산업형 농가로 손꼽힌다.

농사 규모는 닭 50마리, 젖소 7마리, 그리고 벌을 키우는 게 전부다. 그런데 젖소 70마리를 기르는 다른 농가보다 소득이 높다. 비결은 농식품가공 등 6차 산업으로 부가가치를 높였기 때문이다. 소농으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농식품 가공품을 개발해 100% 직판으로 판매한 전략이 주효했다.

1차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 소득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제빵, 치즈 유가공, 햄류 육가공, 양봉 등 2차 농식품가공업을 병행하는 생존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심지어 남편인 요셉 씨는 겨울철 농한기에도 쉬지 않는다. 스스로 설계, 제작하는 양봉틀, 가구 등 목공제품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

농장주 요셉 씨는 “농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버틸 수 있는 다리를 찾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부인 브리기타 씨도 부지런하기는 남편 요셉 씨를 능가한다. 새로운 가공식품 연구와 개발을 위해 쉬지 않고 교육을 받고 인증을 받으러 다닌다. 그동안 50여 가지의 가공품을 개발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일단 농가에서 가공품을 만들려고 하면 농업회의소에서 교육부터 받아야 한다. 가공시설도 식품검사국의 교육과정과 위생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가공품에 생산이력을 정확하게 표기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보통 교육시간은 400시간, 교육비는 500만원이나 된다. 이때 교육비는 전적으로 자부담이다.

그동안 부부가 노력한 보상은 소득과 상으로 돌아왔다. 오스트리아 치즈가공 경연대회에서 최고의 지역농특산물에게 주어지는 ‘맛의 왕관(Gueness Krone)’ 최고상도 여러 차례 받았을 정도다.

아무나 농부가 될 수 없는 오스트리아, 독일 등 유럽은 정부와 국민들이 농업에 임하는 철학과 자세부터 차원이 다르다.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지켜낼 각오가 서 있는 자만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부자격증이 있는 농사의 장인(농업 Meister)들만이 국민의 먹을거리를 제대로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정기석 마을연구소(Commune Lab) 대표/소장

기고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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