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네팔의 벼농사 모습을 보자.


먼저 지난해 잘 갈무리해 놓은 볍씨를 꺼내 못자리를 만든다.





못자리에서 모가 어느 정도 크면 물을 떼서 말린 뒤 모내기를 위해 모를 찐다.

적당한 크기로 모를 쪄서 단을 묶어 놓으면 됨. 

그런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뿌리가 쫙 흙을 붙들고 있어서 잘 안 떨어진다는 것이 힘듦.

바랭이나 피 같은 풀을 뽑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모를 쪄서 단으로 묶어 놓으면 그걸 모내기하는 논으로 나른다. 

논 여기저기에 적당한 간격으로 던져 놓음. 그것은 모내기 할 때 동선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이다.





모내기를 하기 전에는 이렇게 논에 거름도 좀 내다가 펼치고...





논도 쟁기질로 갈아엎은 뒤 물을 담아 잘 나라시(물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바닥을 고르게 만드는 일) 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나라시라는 말이 널리 퍼져서 아직도 쓰는 분들이 많다. 나부터라도 안 써야지.

네팔의 이 지역에서는 겨리 써레로 바닥을 고르게 써린다.





그러고 나면 모내기에 들어간다. 

논 옆에 있는 소쿠리에 쪄 놓은 못단을 담아서 옮겼나 보다.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본 조선의 모내기도 이러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못줄을 잡고 모내기하는 걸 옛날 방식의 농사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못줄을 이용한 줄모 내는 방식은 일제강점기 근대 농업이 들어오면서 퍼진 농법이다.

예전에는 못줄을 띄우지 않고 막모라는 걸 냈다.

그건 오로지 경험이 많은 농부의 감에 의존하는 농법이다.

어찌 보면 규격화되지 않은 낙후된 농법이라 할 수도 있고, 어찌 보면 아주 효율적인 농법이라 할 수 있다.

전적으로 모를 내는 사람의 연륜과 경험, 기술에 의존하기에 그렇다. 사람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말이다.

근대 농법은 사람보다 체계와 규격 등이 더 중요해진다. 체계와 규격에 맞추어 교본대로 농사를 짓기만 하면 된다. 더하고 말고도 없다. 딱 그대로 따르면 예상했던 만큼의 결과가 나온다.

근대 기술이란 것이 모두 그렇지 않은가.





벼를 수확해서 마당에서 잘 말린다. 

벼의 건조 과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밥맛이 달라진다.

일본의 밥맛이 좋은 이유는 이걸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최고의 밥맛을 내는 조건을 잘 맞추기 때문이다.





잘 말린 벼는 방아를 찧어 쌀로 만든다.

거기에서 검불과 싸라기 등을 분리해 내야 하는데...





이렇게 키질을 하면 된다.

보기에는 간단해도 막상 해보면 정말 어려운 기술이다.

채소 농사는 심어서 재배하는 과정이 어렵다. 수확해서 먹는 과정은 정말 간단하다.

반대로 곡식 농사는 심어서 재배하는 과정이 쉽다. 하지만 수확해서 먹는 과정이 정말 까다롭다.





마지막으로 오이밭에서 참을 준비하는 모습.

이것은! 한국의 토종 오이랑 똑같다. 네팔의 오이도 조선오이와 같은 계통이었어.

마운틴 듀가 인상적이네.




728x90
728x90

 

둠벙. 논과 그 주변에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물웅덩이를 가리키는 사투리.

 

이러한 둠벙이 예전에는 농업용 목적으로 만들어져 중요하게 활용되었다. 바로 수리시설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는 논농사에 필수적인 물, 즉 농업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아주 긴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논에 물이 좀 난다 싶은 곳에 꼭 둠벙을 팠다. 어지간한 곳에는 그렇게 둠벙을 파서 거의 모든 논마다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둠벙을 파 놓으면 그나마 물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었다고 한다. 모내기철이 다가오면 둠벙에 고여 있는 물을 맞두레를 이용해 논바닥에 퍼올렸는데, 그 일은 손이 잘 맞는 사람 둘이 해야 했다.

 

그러다가 관정(지역에선 샘이라 표현)을 뚫어 양수기로 지하수를 마음대로 퍼 쓰는 등의 근대적 기술이 널리 보급되면서 둠벙의 효용가치가 크게 떨어졌고, 결정적으로 쓸모를 잃은 둠벙은 경지정리와 함께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둠벙이 있던 자리에 벼 한 포기라도 더 심어 먹는 것이 훨씬 이로웠던 것이다.

 

농업용 목적 이외에 둠벙이 지닌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둠벙이 논을 둘러싼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을 풍부히 할 뿐만 아니라 그를 바탕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 된다는 점이다. 그 옛날 고기 한 번 제대로 먹지 못하던 사람들이 바닷가가 아닌 내륙에서 농사를 지으며 단백질을 공급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다야 나가면 물고기며 어패류 등이 널려 있어 흉년이 와도 먹을 것이 있었고, 산간 지역이야 덫이나 올무를 놓든 사냥을 하면 고기 냄새라도 맡을 수 있었다.

내륙의 농업지대에도 콩이라는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 있었다지만, 어디 동물성 단백질에 비하랴. 남의 살인 고기의 그 짜릿한 맛에 콩이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런데 그러한 고기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주었던 것이 바로 둠벙이다. 다양한 생물들 ㅡ미꾸라지를 필두로 붕어, 새우, 심지어 민물장어까지ㅡ 이 기대어 살던 둠벙. 농민들은 이 둠벙이 품어 키운 물고기며 민물 새우 등으로 고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동물성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도처에 널린 게 고기이고, 너무 값싸게 생산되어 고기 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런 가치도 떨어져 버렸다. 둠벙이 제공하던 단백질도 무용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어른들 기억 속에는 그때 둠벙에서 잡아서 먹었던 미꾸라지만큼 맛있는 것이 없었다며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둠벙을 통해 생물다양성이 풍부해지려면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그 주변 생태계의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시멘트로 발라버린 농수로에 수초도 살지 못하고, 그러니 자연히 수초에 꼬이는 동식물성 플랑크톤 등도 사라지고, 그를 먹이로 삼는 물고기 등도 사라진 지 오래이다. 또한 물고기들이 오갈 수 없을 정도로 높이 만들어진 저수지와 하천의 둑도 생태계의 연결고리를 무참히 끊어놓고 있다. 장마철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하늘에서 미꾸라지가 쏟아지기라도 한 듯 펄떡펄떡 뛰는 미꾸라지들이 집 앞마당까지 떨어졌다는 어른들의 추억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당시에는 인간이 사는 집들도 철저한 인공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생태계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집 주변의 샘에서 솟은 물이나 계곡 상류에서 흐르는 물을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끌어들여 생활용수로 활용하고, 다시 집 앞이나 동네의 연못으로 생활하수가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정화된 뒤 다시 개천과 논밭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의 집도 자연생태계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도 않다.

산이 머금은 물이 샘솟는 논에는 둠벙을 파고, 그렇지 않고 개울로 흐르는 곳에서는 물길을 내서 둠벙으로 붙잡아 논으로 물을 넣었다. 논물은 다시 지하수로 스며들거나 물꼬와 농수로를 통해 자연하천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하나의 거대한 연결고리가 형성되어 막힘이나 끊김 없이 하나로 이어졌다. 논이나 둠벙은 그 연결고리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요소였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연결고리가 거의 모두 끊어져 버렸다. 집에서 나오는 생활하수는 오폐수처리시설로, 사람과 가축의 똥오줌은 정화조로 들어가 격리된다. 농수로는 시멘트로 발라져 관계망이 끊어졌고, 논물로는 양수기로 퍼올리는 지하수가 더 중요해졌다. 이처럼 각개격파 당한 듯 곳곳에 끊어져버린 하천 체계로 인해 이제는 다시 둠벙을 조성한다 하더라도 하나의 고립된 섬밖에 안 된다. 너무나 빈약한 모습이다.

 

이런 조건에서 둠벙을 조성하여 얻을 수 있는 최대의 효과는 무엇일까? 볼거리를 제공하는 수준일까? 둠벙의 새로운 가치인 관광자원의 역할도 농촌을 생각할 때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이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둠벙을 새로 조성하는 주요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농사에서 갖는 둠벙의 실용적 가치는 여러 문명의 이기로 인하여 그 쓰임이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언젠가 그 가치가 다시 주목받을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여지는 남겨두어야 하리라.

 

최근 몇 년 사이 둠벙의 새로운 가치에 주목한 전라남도에서 서서히 둠벙이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나는 오늘 전남도청에 가서 그것을 확인해 보려 한다.

728x90
728x90

IFOAM 세계유기농대회 주제공원에 식재된 토종벼 13종 입니다.

대부분 까락이 있어 채종하는데 무지 따갑더군요.. 처음엔 육종으로 까락을 없엔 학자들을 탓 했는데.. 이 까락이 이렇게 귀찮을 줄이야~ 아직도 소매속이 따끔거리네요..

 

버들벼. Oriza sativa cv. Beodeulbyeo
이삭이 능수버들 느낌이 나는 까락이 긴 메벼이다.

 

강릉도. Oriza sativa cv. Variety Gangleunngdo
중생종 찰벼로 까락이 길고 이삭은 붉은 색이다.

 

다마금. Oriza sativa cv. Damageum
일제시대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메벼품종으로 한때 널리 심어졌었다. 까락이 긴 편이다.

 

대골도. Oriza sativa cv. Daegoldo
대궐도라고도 불리던 메벼이다. 대궐도는 임금이 먹던 쌀이라는 의미도 있다.

 

돈나. Oriza sativa cv. Variety Donna
도아지, 돼지찰벼로 불리던 품종으로 전국적으로 많이 심어졌고 다양한 품종이 존재한다. 재배된 품종은 까락이 길고 이삭이 붉은색을 나타낸다. 경기도 여주, 고양 및 충북 음성의 민요에도 등장하며 경북에서는 돼지차나락으로 불리기도 했다.

 

맥도. Oriza sativa cv. Macdo
보리벼라고도 하며, 보리이삭과 같은 느낌이 나는 까각이 긴 메벼이다.

 

버들벼. Oriza sativa cv. Beodeulbyeo
이삭이 능수버들 느낌이 나는 까락이 긴 메벼이다.

 

북흑조. Oriza sativa cv. Bukheukjo
이삭이 검고 키가크며 만생종인 메벼품종이다.

 

돼지찰(옥천). Oriza sativa cv. Variety Dwaejichal (Okcheon)
충북 옥천지역에서 재배되던 찰벼품종으로 떡을 해도 잘 굳지 않는 특성이 있다.

 

올벼. Oriza sativa cv. Olbyeo
까락이 길고 이삭이 붉은 중생종 메벼이다. 올벼란 빨리익는 벼를 일반적으로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용정찰. Oriza sativa cv. Variety Yongjeongchal
청주 용정동에서 재배되던 찰벼품종이다.

 

원자벼. Oriza sativa cv. Wonjabyeo
이삭이 보통쌀벼보다 1.5배이상 큰 품종으로 대가 굵고 까락은 없다.

 

자광도. Oriza sativa cv. Jagwangdo
250여년전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이가 가져와 김포지역에서 대대로 재배되어온 메벼이다. ‘밀다리벼’로도 불리었으며, 현미색이 붉고 안토시아닌 함량이 높은 특징이 있다.

 

조동지. Oriza sativa cv. Jodongji
1896년 여주의 독농가가 발견한 메벼로 널리 심어지던 품종이다. 까락이 긴 품종과 없는 품종이 전해지고 있다.

 

 

 

 

 

 

 

 

아래 파이 - 토종벼 생육과정, 황숙기보다 더 황홀한 광경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자세히보기

출처 : 이랑이랑꿈시
글쓴이 : 꿈시 원글보기
메모 :
728x90
728x90

벼논양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논두렁도 기존의 두렁보다 좀 더 크고 튼튼히 만들어 물고기가 튀어나가지 않도록 유지해야 하고, 물도 물고기들이 충분히 활동할 수 있도록 많이 담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이를 적용하려면 문제는 벼의 키가 너무 작다는 데에 있습니다. 기껏해야 60~70cm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 현재의 개량종 벼들은 벼논양어를 실천하기에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전에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는데, 며칠 전 이 생각이 퍼뜩 났습니다. 그러면서 역시 토종이구나... 토종 벼는 키가 크니까 그것이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량종 벼는 농약과 화학비료와 한 묶음이 되어 논에서 벼만 자라는 것을 상정하고 개발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논은 벼만의 공간이 아닙니다. 우린 논이란 공간을 자연에서 빌려 사용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었나 봅니다.


토종벼가 자라는 모습. 아는 분은 알겠지만, 키가 엄청 큰 편이다. 




토종벼를 수확해서 말리고 있는 모습. 볏짚이 얼마나 긴지 보라. 



버들벼. 버드나무 가지처럼 추욱 늘어지는 까락이 긴 메벼.



위 사진을 비롯하여 더 다양한 토종벼의 모습은 여기로 가시면 볼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ctu211/12822586

728x90
728x90

먼저 아래는 1990~2012년 사이 세계의 곡물 생산량과 재고율을 보여주는 표이다.



이를 한눈에 알아보기 쉽도록 다른 그래프로 살펴보자.





위 그래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세계의 곡물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나, 해에 따라 기후변화의 영향이 심해지면 생산량이 조금씩 감소하기도 한다(http://blog.daum.net/stonehinge/8728062).

그런데 생산량이 꾸준히 느는 것과 관계없이 재고율은 점점 떨어지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세계의 인구 때문인데, 현재 70억의 인구가 앞으로 2050년이면 90억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어 곡물 생산량을 현재의 수준보다 70% 정도를 증가시켜야 한다고 전망한다.

그래야만 인간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현재 세계의 토지가 어떻게 이용되는지 살펴보자. 인간이 이용하는 토지를 크게 초지와 농지로 나눌 수 있다. 



초지에서는 당연히 목축이나 축산 등을 중심으로 하고, 농지에서는 농업이 주를 이룬다. 물론 두 가지 형태가 혼합되어 나타나는 곳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농지에는 정주민이, 초지에는 유목민이 깃들어 살았다.


이 가운데 방목을 하는 곳만 따로 분리하면 아래와 같다.



역시 중앙아시아 쪽과 호주 및 미국에서 가축을 방목하는 데에 많은 토지를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세계의 토지 가운데 약 75%가 고기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를 줄이지 못하면 기아문제니 식량문제니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데, 일단 가장 쉬운 방법은 고기 소비를 좀 줄이는 것이다. 


그럼 축산농가는 무엇을 먹고 사느냐고? 그 대신 축산농가는 대량생산이 아닌 양질의 고기를 생산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겠다. 그로 인하여 줄어드는 판매량은 양질의 고기가 갖는 가격 프리미엄으로 보상받는 길이 있다. 그러면 자연히 동물복지나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환경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생존'. 저놈이 나와의 암묵적 합의를 어기고 대량으로 싸게 후려치면 그때부터는 다시 싸움판으로 변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래서 정책과 제도, 법이 필요한 법. 정부의 중재, 통제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인간이 이용하는 주요한 세 가지 작물의 재배지역을 살펴보자. 그것은 밀, 옥수수, 벼이다.


먼저 세계의 밀 재배지역이다.



역시 유럽과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중국 화북지방, 미국과 호주 등지에서 널리 재배, 이용한다




다음은 세계의 옥수수 재배지역. 



옥수수의 원산지 중미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및 미국 중서부의 옥수수 벨트, 발칸반도 일대와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중국 화북지방 및 만주에서 널리 재배하는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세계의 벼 재배지역. 



역시 벼, 곧 쌀밥 문화권은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미국과 남미, 유럽과 서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에서도 재배하기는 하지만 아시아에 비해서는 미미한 수준. 


벼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 옛날부터 물꼬 싸움으로 치고받았다는 것처럼 바로 '물'이다. 특히나 관개를 하는 농지의 비율을 살펴보자.



역시 벼농사 지대에서 관개용수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벼농사 지대 이외의 곳에서도 꽤 많은 관개용수를 사용하는 곳을 볼 수 있다. 바로, 미국과 중동 쪽이다. 이런 곳에서는 지나친 지하수 사용으로 지하수 고갈 등과 같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관개용수의 남용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질소비료의 남용이다. 관개용수에 질소비료가 녹아 지하수와 강, 바다, 호수로 흘러들어가면 그 유명한 녹조 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이 바다에서는 적조로 나타난다. 이렇게 녹조 현상이 심각한 곳에서는 수중생물들이 쓸 수 있는 산소가 없어져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죽음의 구역(Dead Zone)'이라는 곳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질소비료를 많이 사용하는지 아래의 지도를 살펴보자.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 질소비료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역시 비료는 돈이 살 수 있는 金肥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아프리카와 남미 같은 곳에서는 질소비료의 사용량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 그를 반증한다.


또한 인도와 중국, 한국 같은 벼농사 지대에서도 질소비료의 사용량이 많은 편이다. 이런 곳에서는 물이 오염될 위험이 높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해마다 여름이면 녹조와 적조 현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여기서 잠깐! 마지막으로 현재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유전자조작(GM) 작물의 재배 현황에 대해서 살펴보고 끝마치겠다.



1996년 처음으로 상업적 도입이 시작된 이후, 유전자조작 작물의 재배면적은 꾸준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2년에는 최초로 개발도상국의 재배면적이 선진국의 재배면적을 초과하기 시작했다. 이는 브라질의 약진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라 http://blog.daum.net/stonehinge/8728035).

현재 28개국에서 재배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슬프지만 인정해야 하는 현실...


과연 유전자조작 작물이 그 지지자들의 주장처럼 곡물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물론 녹색혁명이 시작될 당시 F1 종자에 대해서도 그런 의견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처럼 유전자조작 종자도 무언가 성취할 가능성이 높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또 다른 세상을 맛보게 될 것이다. 악몽이 될지, 길몽이 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지.


728x90
728x90

기후변화로 인하여 바다에 잠기는 면적이 넓을 것이라 예상되는 방글라데시의 해안 지대에서 벼논양어를 활용하여 위기에 대처하려는 모습.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여기에 나오듯이 벼논양어는 벼농사와 수생생물의 양식을 함께하는 것을 뜻하는데, 중국 남부에서는 전통적으로 주로 잉어 등을 양식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최근 가물치, 미꾸라지 등을 벼논양어의 방식으로 키우고 있는 지역이 생기고 있다.

이 방식의 장점은 논의 활용도를 최대화하여 소득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양식하는 수생생물이 농사에 해를 끼치는 해충을 잡아먹어 통제하고 그들의 똥이 자연스럽게 거름이 되어 농사가 잘 되도록 돕는다는 데에 있다. 이러한 방식은 이미 옛날부터 해오던 것으로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새우 양식의 확대가 방글라데시의 경제성장을 도울 수 있다. 사진: Martin Godwin



보고서에서는 방글라데시의 해안 지역에서 무논 벼농사와 양식업을 결합하여 식량안보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방법은 환경파괴를 야기하지 않고도 영양가 높은 음식을 보장하고, 약 1000만 헥타르와 4~6개월은 물에 잠기는 약 300만 헥타르에 이르는 방글라데시의 농업지대에 "파란녹색혁명"을 일으킬 잠재력이 있다.

"이렇게 추가되는 침수지의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면, 식량생산을 늘리고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Ocean & Coastal Management에서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의 저자 Nesar Ahmed 씨는 말한다. 

방글라데시 농업대학 수산관리학과의 연구원 Ahmed 씨는 SciDev.Net과의 인터뷰에서 "방글라데시 연안의 참새우(prawn)와 쌀새우(shrimp) 양식과 '녹색경제' 사이에는 현재의 환경과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것이 쌀새우

이것이 참새우

자세한 것은 아래의 문서를 참조하시길.

새우의 차이.pdf



방글라데시 수산연구소의 수석 과학자 Enamul Hoq 씨는 파란녹색혁명이 "거대한 경제적 혜택만이 아니라 증대되고 있는 기후변화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양식업은 수생동물의 분뇨를 통해 토양비옥도를 강화하고 몇몇 물고기 종은 작물에 해를 끼치는 해충을 억제할 수 있다"고 Hoq 씨는 말한다. 

방글라데시의 연안 양식업 부문은 이미 수출형 민물 참새우와 바다 새우 양식이 주를 이루며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Ahmed 씨의 보고서는 참새우 양식이 계절에 따라 침수되는 농경지인 283만 헥타르에 확대되면 방글라데시는 추가로 연간 94억 달러를 벌 수 있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벼농사도 계절에 따라 완전히 침수되는 농지로 확대되면, 추가로 연간 158만 톤의 벼를 생산할 수 있다. 

다카 대학의 동물학 교수 Niamul Naser 씨에 따르면, Barind(방글라데시 북서부 지역)의 민물 새우 양식은 최근 몇 년의 극단적인 기후를 이겨냈다.

농업부의 전 정보관리관인 Nazrul Islam 씨는 SciDev.Net에 이렇게 말했다. "벼농사와 물고기 양식을 결합하는 것은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답이다. 특히 해수가 침범하는 연안 지역에서 주목할 만하다."


새우의 차이.pdf
0.85MB
728x90
728x90


인도 비하르 주의 Darveshpura에서 찍은 Sumant Kumar 씨. 사진: Chiara Goia 



http://www.guardian.co.uk/global-development/audioslideshow/2013/feb/15/india-rice-revolution-audio-slideshow



Sumant Kumar 씨는 작년에 벼를 수확하고는 너무 기뻤다. 인도 북동부에 있는 Darveshpura의 그의 마을에 비가 잘 내려서 평년작인 3000평에 4~5톤보다 많이 수확할 줄 알았다. 그러나 강의 범람원 근처에 있는 그의 논에서 벼를 베는데 보통 때보다 더 무겁고 이삭도 커 보였으며, 마을의 오래된 저울로 무게를 재보고는 그조차 놀랐다.

이건 6톤이나 10톤도 아니고 20톤이었다.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비하르 주의 Nalanda 지구에 사는 수줍음 많은 젊은 농부 Kumar 씨는 3000평에서 놀랍게도 22.4톤의 벼를 수확했다 –농장의 거름만 쓰고 제초제 없이. 이것은 세계기록이고, 70억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의 인 쌀에게는 대단한 소식이다.

이 기록은 "벼의 아버지"인 중국의  농업과학자 Yuan Longping 씨가 달성한 19.4톤을 이긴 것만이 아니라, 세계은행에서 자금을 지원받은 필리핀의 국제미작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의 과학자들, 그리고 가장 큰 유럽과 미국의 종자회사와 GM 기업들의 기록도 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Sumant Kumar 씨만의 일이 아니다. Darveshpura에 사는 그의 친구이자 경쟁자인 Krishna, Nitish, Sanjay, Bijay 씨 들이 모두 17톤 이상을 기록했고, 그 마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년작보다 2배 이상을 수확했다. 

변덕스러운 기후에 따라 흉년에 식량 없이 지내던 마을 사람들은 잔치를 열었다. 그러나 Bihar 주의 농업대학들에서는 처음에는 그들을 믿지 않은 한편, 인도의 유명한 벼 과학자는 별난 결과에 투덜거렸다. Nalanda의 농민들이 속임수를 썼다고 했다. 직접 벼농사를 짓는 비하르 주의 농업 담당이 개인적으로 그의 부하들과 마을에 와서 Sumant의 수확량을 확인하고서야 기록이 입증되었다. 

A tool used to harvest rice벼 수확도구. 사진: Chiara Goia

Nalanda 마을의 생활리듬은 흐트러졌다. 이곳에서는 여전히 황소가 예전에 하던 대로 쟁기를 끌고, 그들의 똥을 말려서 집의 벽을 쌓고 요리할 때 불을 땠다. 전기는 아직도 들어오지 않았다. Sumant 씨는 인도 의회에서 언급되었고, 회의에 참석하기를 요청받으며 지역의 영웅이 되었다. 비하르 주의 재상이 Darveshpura에 와서 그를 축하했고, 마을은 전력과 은행, 새로운 시멘트 다리를 보상받았다. 

6개월 뒤 Sumant 씨의 친구 Nitish 씨가 감자를 재배하여 세계 기록을 깨면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Bihari 마을 근처의 소농인 Ravindra Kumar 씨가 밀을 재배하여 인도 기록을 깼다. Darveshpura는 인도에서 "기적의 마을"로 알려지게 되었고, Nalanda가 유명해져서 과학자 팀과 개발그룹, 농민, 공무원, 정치인들이 그 비밀을 알아내고자 찾아왔다. 

내가 모두 30대 초반인 젊은 농부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명성에 좀 어리둥절해 있었다. 약 절반의 가족이 인도의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1억 인구의 93%가 벼와 감자를 재배하는 데 의존하는 비하르 주에서 영웅 같지 않았다. Nitish Kumar 씨는 조용하게 자신의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은 기록을 개선하려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농사가 별로 돈벌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 나는 그걸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인생은 변화했다. 나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건강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할 수 있다. 나의 수입이 많이 늘어났다."

Darveshpura에서 일어난 일이 과학자들을 분열시켰고, 정부와 개발전문가들은 들떠 있다. 토양 시험으로 특히 규소가 풍부하다는 것을 밝혔지만 "슈퍼 수확량"의 이유는 완전히 뿌리강화체계(System of Root Intensification)라 불리는 농법에 달려 있다. 그 농법은 밀, 감자, 사탕수수, 얌, 토마토, 마늘, 가지 및 기타 작물의 수확량을 엄청나게 향상시켰고, 지난 50년 동안 세계의 5억에 이르는 소농과 그에 의존하는 20억 인구를 위한 가장 중요한 개발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People work on a rice field in BiharBihar의 논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진: Chiara Goia

세계의 벼농사 농민들이 전통적으로 하듯이 물을 댄 3~4개의 못자리에서 볍씨를 3주 키워서 모를 내는 대신, Darveshpura 농민들은 절반의 볍씨를 신경써서 기르고, 그 뒤 훨씬 어릴 때 논에 어린 모를 한 포기씩 옮겨심는다. 또한 사방 25cm의 간격으로 심으며, 뿌리에 공기가 들어가도록 논흙을 잘 말리고 벼 주변의 풀을 주의해서 잡는다. The premise that "less is more" was taught by 지난 3년 동안 마을사람들에게 SRI 농법을 도입한 인도의 NGO 개발행동을 위한 전문지원(Professional Assistance for Development Action)의 Anil Verma 씨에게 교대로 훈련을 받은 젊은 주 정부의 일꾼 Rajiv Kumar 씨는 "적은 것이 더 많다"는 전제로 배웠다.

1970년대 인도의 기근을 막은 "녹색 혁명"이 개량종과 값비싼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한 반면, SRI는 추가 비용 없이 장기간 지속가능한 미래를 제공한다. 세계 인구의 7명 가운데 1명 이상은 기아 상태이며 벼에 대한 수요가 20년 안에 공급을 앞지를 전망인 상황에서, 그 농법은 진정한 희망을 보여준다. 세계 소농의 수확량에 30%만 증가해도 빈곤을 완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농민은 더 적은 씨앗과 물, 화학물질을 사용하지만, 더 많은 투자를 하지 않고도 더 많이 수확한다. 이것이 혁명이다"라고 비하르 농업부의 Surendra Chaurassa 박사는 말한다. "난 그 일이 시작될 때에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사람의 농사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주에 그 농법을 알리고 싶다. 만약 우리가 수확량에 30~40%를 향상시킨다면, 그것이 바로 이를 권장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Bihar에서의 결과는 Chaurassa의 기대를 뛰어넘었다. Nalanda의 농업 관료 Sudama Mahto 씨는 몇 백 명에게 SRI 농법을 가르치기 위한 훈련에 대한 작은 투자가 지역의 수확량을 45%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고 한다. 타밀나두 주의 옛 농업부 장관 Veerapandi Arumugam 씨는 "혁명적인" 농법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SRI의 기원은 1980년대 마다가스카르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의 예수회 신부이자 농경제학자인 Henri de Laulanie 씨는 고지대에서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벼를 재배하는지 관찰했다. 그가 그 방법을 개발했는데, 코넬 대학의 식량, 농업, 개발을 위한 국제연구소의 책임자인 미국의 Norman Uphoff 교수가 De Laulanie 씨의 작업을 널리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지속가능한 개발의 연구를 위해 익명의 억만장자에게 1500만 달러를 받은 Uphoff 씨는 1983년 마다가스카르에 가서 직접 SRI의 성공을 목격했다: 예전에 3000평에 평균 2톤의 수확량을 올리던 농민들이 8톤을 수확하고 있었다. 1997년 그는 6억 이상이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아시아에 적극적으로 SRI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수확량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유전자와 토양 영양분을 변화시켜야 하는 (60년대의) 첫 번째 녹색혁명에 대한 절대 반대하는 생각의 집합이다. 그것은 막대한 생태적 비용을 발생시켰다"고 Uphoff 씨는 말한다. "21세기의 농업은 다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토지와 수자원을 고갈시키고, 질을 악화시키거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기후 조건이 여러 곳에서 더욱 불리해지고 있다. SRI는 가난한 수백만 가구에게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한다. 어떠한 농민이든 혜택을 받고 있다; 특허권도, 로얄티나 승인료도 필요 없다."

Rice seeds볍씨. 사진: Chiara Goia

40년 동안 과학은 씨앗을 개량하고 인공적인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데 홀려왔다고 Uphoff 씨는 말한다: "그저 유전자, 유전자, 유전자였다. 작물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되지 않았다. 기업들에서는 '우리가 당신을 위해 더 나은 식물을 육종하겠다' 하고, 육종가들은 5~10% 정도 수확량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는 농업을 산업형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 생물학적 근원을 잊어 버렸다."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SRI에 대해 전문가가 검토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불평하며, 그러한 수확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 "SRI는 오랫동안 최고라고 권장된 방법으로 알려진 것들 가운데 하나의 관리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국제미작연구소의 연구 부국장 Achim Dobermann 씨는 말한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나는 어떠한 기적도 믿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SRI의 원리를 평가했을 때 그 결과가 일반적으로 NGO와 그것을 퍼뜨리는 사람들에 의해 수행된 농장평가에서 보고된 것과 매우 차이가 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관측을 되풀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네덜란드 바허닝언(Wageningen) 대학과 함께 일하는 영국인 과학자 Dominic Glover 씨는 개발도상국의 GM 작물의 도입을 분석하는 데 몇 년을 보냈다. 그는 현재 인도에 어떻게 SRI가 채택되었는지 수행하고 있으며 "세력 다툼"이 생길 것이라 믿는다.

"그들의 지식을 방어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많은 지역에서 재배자들은 SRI 농법을 시도해 왔고, 그것을 포기했다. 사람들은 이를 조사하는 것을 꺼려 한다. SRI는 가족 노동력에 의존하는 소농에게는 괜찮지만, 더 큰 규모에는 그렇지 않다. 마법 같은 이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슈퍼 수확을 올리는 좋은 농사법, 기술, 관심이다. 분명히 특정 상황에서는 농민에게 효율적인 방편이다. 그러나 그 농법은 노동집약적이고, 아직 아무도 하나의 모를 옮겨심는 기술을 확실히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나 비하르 주의 일부 대규모 농민들은 그 농법이 노동집약적이 아니고, 실제로 농사일을 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농민이 처음으로 SRI 농법을 실천할 때는 더 노동집약적이긴 하다"고 Nalanda에서 4만5000천 평의 벼와 채소 농사를 짓는 Santosh Kumar 씨는 말한다. "그 이후 더 쉬워지고, 새로운 혁신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초기에 SRI 농법은 과학자와 기부자들에게 무시되거나 비난을 받았지만, 몇 년 지난 뒤에는 신뢰를 얻었다. Uphoff 씨는 현재 세계에서 400~500만 농민이 SRI 농법을 활용하고 있다고 추정하며, 중국과 인도, 캄보디아, 스리랑크, 베트남에서는 정부가 그것을 홍보하고 있다.

비하루 주의 Sumant, Nitish 씨를 비롯한 10만 명의 SRI 실천 농민들은 현재 다음 벼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못자리에서 본논으로 어린 모를 옮겨심는 등골 빠지는 일이지만, 인정과 결과에 고무되어 그들의 자신감과 낙관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지난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Joseph Stiglitz 씨가 Nalanda 지구를 방문하여 유기농업과 이와 같은 종류의 농법이 지닌 잠재력을 인정하며, 마을 사람들이 "과학자보다 낫다"고 이야기했다. "유기농업에서 이룬 그들의 성공은 놀라운 일이었다"며 Stiglitz 씨는 더 많은 연구를 요구했다. "세계의 농업 과학자들이 방문하여 그들에게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

A man winnows rice in Satgharwa villageSatgharwa 마을에서 벼를 날려고르기하는 남자. 사진: Chiara Goia

인도의 가장 가난한 주인 Bihar는 현재 농촌과 함께 "새로운 녹색 풀뿌리 혁명"의 중심지가 되었다. 연구자 집단과 NGO들은 모두 SRI 농법을 활용하여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 비하르 주에서는 내년에 SRI 농법에 5000만 달러를 투자할 것인데, 서구의 정부와 재단들은 참가하지 않고 최첨단 연구에 투자하기를 선호하고 있다. 농경제학자 Anil Verma 씨는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농민들은 SRI의 성과를 알고 있지만, 그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농법이 토양이 다른 곳에서는 다르게 작동함을 알고 있지만, 그 원리는 확실하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그 농법을 실천하길 바라지만 충분한 조련사가 없다는 점이다."

"만약 어떠한 과학자나 기업이 어더한 추가 비용도 없이 수확량을 50%나 향상시키는 기술을 제안하면 아마 노벨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비하르 주의 젊은 농민들이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오직 가난한 농민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기만을 바란다."


728x90
728x90

우리나라가 근대적인 벼 품종개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은 1906년에 대한제국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이 설치되면서부터 라고 볼 수 있다. 이때 일본은 조선의 근대화를 도와준다는 미명아래 이와 같은 기관을 설치하게 하였지만 그 속셈은 한반도를 그들의 식량기지화함과 동시에 식민지화 하고자 하는 음흉한 계획에 있었다. 따라서 우리의 벼 품종개발의 역사는 일본의 벼 품종들을 들여와서 한반도에 적응성이 높은 품종을 선발하고 이를 널리 보급하는 일로 시작되었고, 과거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심어왔던 우리의 풍토에 알맞는 수 많은 재래종들은 거의 내팽게치다싶이 하게 된 것이다. 그 후 두 세차례에 걸쳐서 전국에 심겨지고 있는 우리 재래종을 수집하고 주요특성을 조사하여 이를 분류 정리하는 사업을 펼쳤지만, 이 재래도를 새로운 품종개발의 육종모재로 사용하여 우리의 풍토와 기호에 알맞는 장점을 살리는 육종연구는 그때 이 기관의 책임을 맡고 있었던 일본사람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외면당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그때 우리 재래도는 서서히 일본 품종의 침략에 잠식당하고 말았고, 우리가 오랫동안 소중하게 가꾸어온 우리 것을 계속 유지발전시키는 뿌리 있는 벼 육종연구는 처음부터 그 싹이 잘리어져 우리의 벼 육종사가 일본식민지의 굴레를 벌어나지 못하게 하고 말았다.

  그때까지 심겨졌던 우리 재래도들은 대부분 까락이 많고 키가 크면서 포기당 이삭수가 적고 이삭당 벼알수가 많은 이삭이 큰 특성을 나타내며, 쓰러짐견딜성이 약하고 도열병에 약하지만 대체로 조숙이고 가뭄에는 강한 특성을 보였다. 1911년과 1913년에 권업모범장이 재래도를 수집하면서 각 지역에 보급율이 20%가 넘는 중․남부지방에 비교적 널리 재배되었던 대표적인 재래도는 맥조(麥租)․다다조(多多租)․노인조(老人租)․두조(豆租)․황조(荒租)․조동지(趙同知)․팥벼․구황조(救荒租) 등 이었다. 재래도 수집 정리자료에서 보면 찰벼 품종수가 메벼 품종수의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는 그때 당시 대부분 밥맛이 떨어지는 쌀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 찹쌀을 섞어 먹었기 때문에 요즈음보다 찰벼를 많이 심지 않았는가 추측된다. 중․남부지방에 널리 재배되었던 찰벼품종은 노인나(老人糯)․조도(棗稻)․돼지찰[豚糯]․점미---(粘米)․금나도(錦糯稻)․진조(眞租) 등 이었다.

  이들 재래도는 수집된 지역에 따라서 이름은 같으나 특성이 전혀 다른 경우도 있었고 이름은 다르나 여러 가지 특성이 거의 같은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오랜기간 동안 채종재배도 하지 않은 상태로 심어오면서 같은 품종에 대하여 농가가 임의대로 다른 이름을 부치거나 이름이 와전되어 잘못 불리게 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추측된다.

  이들 이외에 주요한 재래종으로 거론 되었던 것은 대구조(大邱租)․모조(牟租)․왜조(倭租)․미조(米租)․남조(南租)․조정조(早丁租)․연안조(延安租)․용천조(龍川租)․이조(里租)․돈조(豚租) 등 이었다.

  권업모범장 초창 당시에 재래 논벼 및 밭벼를 수집하여 특성을 조사한 조선도품종일람(朝鮮稻品種一覽)을 보면 논벼 1,259품종, 밭벼 192품종으로 모두 1,451품종이나 수록되어 있지만 이들 중에는 동종이명(同種異名)이나 이종동명(異種同名)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실제 벼품종의 분화가 이렇게 다양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 재래종 중 그동안 많은 숫자가 보존과정 중에서 잃어버렸고 현재 258품종이 벼 유전자원 저온창고에 보관중에 있는데, 대부분은 자포니카이고 그 중 한양조(漢陽租) 등 소수의 인디카 품종이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이들 재래종들의 소출은 정확한 통계적인 자료가 없어서 확실히 알수는 없으나 권업모범장 초창기(1907~1909)에 조사 보고된 자료에서 재래종인 조동지와 점조의 수량성으로 짐작해 보면 ha당 2.0톤 이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하기 시작한 1910년부터 우리의 재래종이 서서히 일본 도입품종으로 교체되기 시작하면서 일출(日出)․조신력(早神力)․곡량도(穀良都)․다마금(多摩錦)․고천수(高千穗)․도(都) 등 많은 품종들이 계속 장려되어 1920년경에 이들 도입 품종들이 전 벼 재배면적의 반을 넘게 되었고, 이후 계속하여 중신력(中神力)․은방주(銀坊主)․육우 132호(陸羽 132號) 등이 확대 보급되어 1935년에는 도입 품종의 재배면적이 약 82%까지 달하게 되었다. 이때는 단일 품종들이 엄청난 면적을 차지하는 특징을 나타내었는데 1920년경에는 조신력이 약 25만 정보를 차지하였고, 1930년경에는 곡량도가 46만 정보를, 1935년경에는 은방주가 50만 정보 이상의 재배면적을 차지하는 기록을 세워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되었다. 이 일본 도입 품종시대의 쌀 소출은 대체로 ha당 2.0~2.5톤 수준이었다.

  우리가 1915년부터 처음으로 인공교배에 의한 교잡육종을 시작하였으나 초창기에는 정착단계로 별성과가 없었고 1926년 이후 교잡된 잡종집단에서부터 우량 품종이 선발 육성되어 나오기 시작하였는데, 최초로 개발 보급된 품종이 1933년의 남선 13호(南鮮 13號)와 1936년의 풍옥(豊玉)․서광(瑞光) 이었다. 그후 1945년 8. 15 광복을 맞이 할 때까지 일진(日進)․영광(榮光)․팔굉(八紘)․팔달(八達) 등 여러 품종들이 개발 보급되어 서서히 일본 도입 품종과 대체되기 시작하였다.

  8. 15 광복 이후의 혼란기와 한국전쟁의 와중속에서 우리의 벼 품종개발 연구사업도 잠시 주춤한 상태가 계속되었지만 고시(高矢)․배달(倍達)․새나라․수성(水成)․팔기(八起)․농광(農光)․남풍(南豊) 등이 개발 보급되었고, 1962년에 농촌진흥청이 발족되고 농업연구기관의 인원과 시설이 보강되면서 벼 육종사업도 주곡자급달성이라는 기치를 내걸로 더욱 활기를 띄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1960년대에 탄생한 주요품종들이 진흥(振興), 재건(再建), 신풍(新豊), 호광(湖光), 팔금(八錦), 농백(農白), 만경(萬頃), 밀성(密成) 등이었으며 이들 육성품종들이 점차 일본도입품종과 대체되어 1970년경에 국내육성품종의 보급면적이 60%를 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우리의 쌀 단위 수량은 ha당 3.0~3.5톤 수준으로 한 단계 높아졌지만 아직도 쌀이 부족하여 매년 수십만톤의 외국쌀을 사 먹어야 했다.

  병에 강한 벼 품종을 개발할 목적으로 주요 병해에 대하여 저항성인 남방계 품종을 육종모재로 사용하여 원연품종간 교잡을 시작한 것은 1963년경이었지만 원연품종간 교잡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1965년경부터 였다.

  1967년 9월에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과 국제미작연구소(IRRI)간에 벼 품종육성을 위한 협력연구를 실시하기로 정식합의를 본 이후 병에 강하고 키가 작은 인디카 다수성 품종들을 활용한 원연교잡(遠緣交雜)이 많이 이루어 지게 되었고, 이러한 연구 성과가 1971년에 처음으로 키가 작고 잘 쓰러지지 않으면서 병에 강하며 직립초형(直立草型)으로 다수성인 “통일(統一)”이라는 품종개발로 나타났다. 이 통일품종은 기존 일반품종의 쌀소출 3.5~4.0톤/ha에 비하여 특히 비료를 많이 주어 소출을 올리고자 할 경우에 30%이상의 획기적인 증수를 나타내어 쌀 소출을 4.5톤/ha이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쌀 자급자족의 기반을 마련한 한국 녹색혁명의 주역이 되었다.

  그러나 통일품종은 저온에 약하고 벼알이 잘 떨어지며 쌀의 상품성과 밥맛이 떨어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벼 육종연구진은 이 단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통일에 이어 유신(維新)․밀양 23호․금강(錦江)벼․만석(萬石)벼․노풍(魯豊)․밀양 30호․밀양 42호․태백(太白)벼․한강(漢江)찰벼․청청(靑靑)벼 등 1980년까지 10년동안 무려 25개의 통일형 품종을 개발 보급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벼 육종연구진의 노력으로 1976년에 드디어 오랜 숙원이었던 주곡의 자급을 이루게 되었고 이어서 1977년에는 우리의 쌀 생산량이 유사이래 최고인 660만톤에 이르게 되었고 ha당 쌀소출이 4.94톤으로 세계최고기록을 달성하게 되었다. 이는 1960년대 초 우리쌀 생산량이 300~350만톤에 불과하였던 것과 비교해 보면 재배면적은 별 변동이 없는데 무려 2배에 가까운 엄청난 수확량을 올린 것이다. 이러한 통일형 다수확 품종은 그 재배면적이 ‘78년까지 급속도로 증가되어 전 벼 재배면적의 약 76%에 달했다가 그후 ’80년 냉해에 의한 커다란 타격과 쌀의 시장성 열세로 인하여 급속도로 그 재배면적이 줄어 들게 되었고 드디어 ‘92년부터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서 쌀의 자급이 계속 유지되고 점차 양질미를 선호하는 소비패턴으로 빠르게 변화되면서, 내냉성이나 미질면에서 개선된 많은 통일형 내병충성 양질미 품종 즉 남풍(南豊)벼․풍산(豊産)벼․삼강(三剛)벼․중원(中原)벼․칠성(七星)벼․용문(龍門)벼․용주(龍珠)벼 등이 개발 보급되었지만, 시대적 흐름에 따라 일반 양질미 품종에게 밀려나게 되었고 통일형 품종개발도 1986년 용주벼와 남영(南榮)벼를 끝으로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통일형 품종개발 연구는 중단되지 않고 앞으로 쌀이 부족되는 시기에 대비하는 동시에 값싼 가공원료미 공급을 위하여 수량성이 월등히 높은 초다수성 품종개발연구로 전환하여 계속 추진되었다.

  이 통일형 다수성 품종도 미질, 내병충성 및 내냉성 등이 계속 개선되면서 수량성도 통일 품종개발 당시 4.5~5.0톤/ha에 불과하던 것이 ‘80년대 후반에는 6.0톤/ha까지 높아졌다.

  ‘80년대에는 동진(東津)벼를 비롯하여 많은 일반 양질미 품종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여 삼남(三南)벼․상풍(常豊)벼․오대(五臺)벼․섬진(蟾津)벼․화성(花成)벼․팔공(八公)벼․금오(金烏)벼․진미(珍味)벼․장안(長安)벼․계화(界火)벼 등 34품종이나 개발 보급되어 통일형 품종들의 자리를 매꾸면서 쌀의 지속적인 자급을 유지시키는 주역을 담당하였다. 이 시기에 개발 보급된 일반 양질미 품종들의 수량성은 대체로 4.8~5.2톤/ha 수준으로 높아졌고 전국 평균단수도 4.4~4.8톤/ha 수준을 유지하였다.

  ‘70년대 말부터 꽃가루배양에 의한 벼 품종육성이 시도되어 드디어 1985년 “화성벼” 개발로 그 막을 열게 되면서 실용화가 정착되고 그후 계속하여 화청(花淸)벼․화진(花珍)벼․화영(花嶺)벼․화중(花中)벼․화남(花南)벼․화신(花新)벼․화선(花鮮)찰벼 등을 육성․보급하게 되었고 벼 품종개발 기간을 10~12년에서 5~6년으로 단축시켰다.

  ‘90년대에 들어와서 특히 밥맛이 좋으면서 병에 견디는 힘도 강하고 소출이 많이 나는 양질미 품종개발에 역점을 두면서 쌀의 용도를 넓히기 위한 특수미 품종개발에도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90년대에는 밥맛에 있어서 일본의 양질미인 고시히까리를 능가하는 일품(一品)벼의 개발을 필두로 서안(西安)벼․안중(安中)벼․진부(珍富)벼․만금(萬金)벼․화영(花嶺)벼․대야(大野)벼․대안(大安)벼․금남(錦南)벼․일미(一味)벼 등 많은 양질미 복합내병성 또는 내재해성 품종을 개발 보급하였고, 직파재배에 알맞는 농안(農安)벼․주안(周安)벼․안산(安産)벼 등과 보통쌀알의 1.5배가 되는 대립벼 1호, 양조용 심백미인 양조(釀造)벼, 구수한 냄새가 나는 향미(香米)벼 1호와 향남(香南)벼 등 가공용 특수미를 개발하였으며, 쌀 부족시대를 대비하여 초다수성인 다산(多産)벼와 남천(南川)벼도 개발하였다.

  이제 자포니카 양질미 품종의 수량성도 5.0톤/ha을 대부분 넘어서게 되었고, 초다수성벼는 7.0톤/ha을 넘어서는 수준까지 수량성을 끌어 올려 놓았으며 앞으로 2004년까지 10톤/ha을 목표로 매진하고 있다.

  우리의 단위면적당 쌀 소출은 이미 1976년부터 일본을 제치고 꾸준히 세계최고의 자리를 거의 지키고 있으며, 농가답에서 세운 다수확 기록은 지난 70년대부터 이미 8~9톤/ha 수준을 넘어섰고 ‘84년에 삼강벼로 세운 쌀수량 10.06톤/ha은 아직도 깨어지지 않는 세계최고의 다수확기록으로 보유하고 있다.


728x90
728x90

벼가 볍씨의 싹틈에서부터 시작하여 누런 이삭이 고개 숙일때까지 일생을 걸으면서 스스로 자연환경에 순응하여 다음 자손을 만들기 위해 많은 생리적 변화를 일으킨다.

  벼가 어려서부터 몸자람을 하는 동안에는 이삭을 많이 만들기 위한 준비로 곁가지를 많이 내는 새끼치기를 계속하다가 다음대를 만들기 위한 생리적 변화를 맞게 되면 스스로 새끼치기를 멈추고 생장점에 어린이삭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어린이삭이 분화하는 시기를 경계로하여 그 이전을 영양생장기(營養生長期)라고 부르고 그 이후를 생식생장기(生殖生長期)라고 부른다. 벼는 바로 이 영양생장기간과 생식생장기간에 따라 그 일생의 길이가 결정된다. 벼가 어린이삭을 분화하는 시기는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보통 한달후인 이삭이 패는 시기에 따라서 벼 품종별로 생육기간의 장단을 파악하게 된다. 벼는 품종에 따라서 일생의 길이가 100일이 채 못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200일이 넘는 것도 있으며 그 중간에 다양하게 분포한다.

  벼의 생식생장기의 길이는 품종에 따라 거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벼 일생의 길이는 주로 영양생장기의 길이에 의해 좌우된다. 즉 벼의 생식생장기간은 대체로 어린 이삭이 분화되는 시기에서 이삭 팰때까지 약 30일간, 이삭이 패서 개화수정이 이루어져 벼알이 완전히 영글때까지 품종에 따라서 약 45~50일간이 된다.

  벼의 본 고향은 열대․아열대지역이기 때문에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생육이 왕성하며 고위도 지역으로 점차 재배가 확산되면서 스스로 재배환경에 순응하여 후대를 생산하고자 낮 길이가 짧아지는 조건에서 영양생장에서 생식생장으로의 전환이 촉진되는 단일식물(短日植物)의 특성을 획득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개 낮의 길이가 12시간 이하가 되었을 때 그 낮길이에 감응하여 어린 이삭을 분화하게 되는데, 단일에 감응하기 쉬운 품종은 낮길이가 10시간, 밤길이가 14시간인 단일조건에서는 출수(出穗)가 촉진되지만, 반대로 낮길이가 14시간, 밤길이가 10시간인 장일조건에서는 출수가 지연되는 특징을 나타내게 된다. 품종에 따라서는 이러한 낮길이의 변화에 매우 둔감한 것이 있다.

  이와 같이 출수의 조만성(早晩性)은 품종의 단일감응성 정도에 따라 재배환경



이 바뀌게 되면 언제나 바뀌게 되며 재배지역에 따라서 품종의 조만성이 완전히 뒤 바뀌게 되기도 한다.

  식물은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는 지혜를 지니고 있다. 겨울동안에 추위에 웅크리고 있다가 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은 대개 낮길이가 길어지면 꽃눈 분화가 촉진되는 특성을 나타내는 반면, 봄에 싹이 터서 여름내 자란다음 가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은 대개 낮길이가 짧아지면 꽃눈 분화가 촉진되는

특성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일장(日長)에 따라 생장점에서 생식생장으로 전환하는 꽃눈을 분화시키는 성질을 식물의 광주성(光周性)이라고 하며 이에 따라 장일식물(長日植物)과 단일식물로 구분하게 된다.

  벼가 낮길이가 짧아지는 것을 감지하여 어린 이삭을 분화시키는 것은, 벼가 낮길이가 긴 기간동안 태양에너지를 받아 잎이 왕성하게 광합성 작용을 하여 스스로 몸집을 키우면서 충분한 영양생장을 해오다가,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게 되면 벼 잎에서 이를 감지하는 색소인 파이토크롬(phytochrome)이 그 자극을 생장점으로 보내 이제 후대를 생산할 준비를 갖출 때가 되었음을 알림으로써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바로 낮동안에 이루어지는 광합성과 밤동안에 호흡을 통해서 광합성산물을 저장형태로 바꾸는 일사이의 균형 변화로부터 차대생산 준비를 자극하는 호르몬의 생성촉진을 유발시킴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벼가 아무리 꽃눈분화 촉진에 알맞는 단일조건하에 둔다하더라도 스스로 이를 감지하기 위해서는 싹이 튼 다음 최소한의 영양생장을 하여야 하며 이를 기본영양생장성(基本營養生長性)이라고 한다. 기본영양생장이 이루어진 후 벼가 단일에 의해 어린이삭 분화가 촉진되고 장일에 의해 어린이삭 분화가 늦어지는 성질을 감광성(減光性)이라고 하며, 품종에 따라 단일에 의해 촉진되는 정도가 큰 것을 감광성이 예민하다고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둔하다고 한다.

  이러한 기본영양성과 감광성에 따라 품종의 출수생태형을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나룰 수가 있는데, ① 기본영양생장기간 짧고 감광성이 둔하여 일장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생육기간이 짧은 유형과 ② 기본영양생장기간은 짧으나 감광성이 예민하여 일장에 따라 출수가 크게 좌우되는 유형과 ③ 기본영양생장기간이 길고 감광성이 둔하여 어린이삭 분화가 일장에 좌우되지 않지만 생육기간이 긴 유형이다. 우리나라 북부산간지나 중국만주지방,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나 도후쿠(東北)지역, 아열대의 고산지대 등에 심겨지는 품종들이 첫째 유형에 속한다. 또한 우리



나라 남부지방이나 일본 서남부의 만생종들이 둘째 유형에 속하며, 연중 기온이 높고 일장이 짧은 열대․아열대 동남아시아지역에 심겨지는 대부분의 품종들은 셋째 유형에 속한다.

  벼는 호온성(好溫性)작물이기 때문에 알맞은 생육온도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출수가 늦어지게 된다. 우리나라나 일본 북부지방에 심겨지는 올벼들은 온도가 높아지면 어린이삭 분화가 촉진되어 출수까지 일수가 짧아지는 특성을 보이는데 이를 특히 감온성(減溫性)이라고 한다. 그러나 벼는 원래 호온성 작물로서 저온에서는 출수가 지연되고 고온에서는 출수가 촉진되는 것이 본래의 특성이기 때문에 이를 굳이 감온성이라 이름하여 출수특성의 한 인자로 나타낼 필요가 있는가 생각되어 진다. 왜냐하면 열대지방이나 온대 남부지역에 심겨지는 저온에 의해 생육지연이 심한 품종들이 감온성이 강한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벼 품종을 동남아시아 열대 지역에 재배하고자 할 경우 남부지방에 심겨지는 늦벼품종은 감광성이 예민하기 때문에 단일조건인 이 지역에서는 제대로 영양생장도 하지 못한 채 출수해 버리기 때문에 부적합하다. 출수생태형 면에서 보면 감광성이 둔하면서 고온조건에서도 비교적 충분한 영양생장을 하는 올벼를 동남아시아 열대지역에 심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히 ‘70~’80년대에 우리쌀 자급생산의 주역을 담당하였던 통일형 품종들이 적절한 기본영양성과 둔한 감광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재배에 가장 적당하다.

  고온․단일인 동남아 열대지역에서 우리나라의 늦벼가 올벼보다 출수가 빨라진다는 사실로 미루어 본다면, 출수에 따른 이러한 올벼와 늦벼의 구분은 어디까지나 어느 특정 재배환경하에서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출처 http://goo.gl/wNE13


728x90
728x90

먹노린재 Rice black bug


기주 및 분포


산기슭의 낙엽 밑을 비롯하여 제방, 논둑의 고사된 잡초속, 토양의 틈새, 돌밑에서 성충태로 월동한다.


형태


 

어른벌레의 몸 길이는 8~10mm이며, 몸색은 진한 흑색이다. 전흉배판의 가장자리 전면의 극상돌기는 앞으로 뾰쪽하게 돌출되어 있고, 뒷면 가장자리는 물결 모양이다. 알의 길이는 장경이 0.9mm, 단경이 0.8mm이며, 연회색으로 달걀모양이다. 갓 부화된 약충은 적갈색이지만 점차 갈색 또는 암갈색으로 변한다. 다 자란 약충은 크기가 7~8mm 내외이다.

   

    


 <먹노린재>


생활사


월동성충이 6월초부터 본답으로 이동을 시작하여 7월 상순에 발생량이 가장 많다. 월동성충의 수명은 12~14일, 산란수는 30개, 알기간은 4.3일, 약충기간은 46일이다.


피해상태


벼 포기 아래 부위에서 벼줄기를 흡즙하므로 이화명나방 피해와 유사하게 보인다. 피해를 많이 받은 벼는 초장이나 분얼을 억제시켜 마른 잎이 많이 발생한다. 벼줄기와 벼알을 흡즙하여 백수현상과 수량감소를 초래한다.


방제방법


월동성충 이동 최성기인 7월 상순에 전문약제를 살포한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