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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대로 제주의 지하수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용천수 941개소 가운데 1/3에 해당하는 346개소가 수량 부족과 주변 훼손 등으로 완전히 기능을 상실했다고... 여기에 농축산업이 한몫을 하리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중산간 지방에까지 펼쳐져 있는 관개시설을 갖춘 밭들, 그리고 대형 축사들이 그 증거다.

아무리 여름철 집중호우가 내린다지만 제대로 붙들고 있지 못하면 말짱 헛것이다. 또 지금 제주에서 마을 곳곳에 저수지를 만든다고 하지만 고여 있는 물이 제기능을 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마지막에 나오는 것처럼 농축산업이 발달한 서남부 지역의 지하수에서는 질산성질소의 함량도 높다고 하지 않는가.

앞으로 제주의 지하수, 물 상황은 꾸준히 지켜봐야 할 문제이리라.





▲도내 용천수 941개소 가운데 1/3수준인 346개소가 수량 부족은 물론 주변지역 훼손에 의한 멸실 등으로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사진은 제주시 하귀1리 동귀의 마른 용천수. 강경민기자




도내에 분포하고 있는 용천수 941개소 가운데 346개소가 수량 부족과 주변 훼손 등으로 인해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특별자치도수자원관리본부 등이 지난 2010년 2월부터 6월까지 도내에 분포하는 용천수의 현황 및 유출량을 파악한 결과 용천수 941개소 가운데 상수원으로 이용되는 용천수는 28개소, 생활용수 235개소, 농업 및 생활용수 공용 122개소, 기타 4개소로 나타났다.

하지만 346개소는 수량 부족, 고갈, 위치 멸실, 주변 훼손으로 인해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집수 및 보호시설이 있는 곳은 202개소, 집수시설만 있는 곳은 30개소, 보호시설만 있는 곳은 139개소로 조사됐다.

이에 앞서 지난 1999년 조사에서는 용천수 보존상태가 양호한 곳은 637개소로 전체의 70.0%를 차지했고 수량 고갈, 위치 멸실과 주변 훼손 등으로 인해 기능을 상실한 곳은 200개소, 수량이 부족한 곳은 74개소였다.

한편 제주자치도가 지난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도내 용천수 701개소의 용출량을 조사한 결과 1일 평균 용출량은 108만3363톤, 최대 160만8342톤으로 나타났다.

용천수 활용을 위한 대표적인 수질평가 항목인 염소이온 평균함량은 동부지역이 1034㎎/ℓ로 가장 높고 서부지역 638.9㎎/ℓ, 북부지역 303.5㎎/ℓ, 남부지역이 74.6㎎/ℓ 순으로 조사됐다.

질산성질소 평균함량은 남부와 서부지역이 15.2~16.1㎎/ℓ로 높은 반면 동부와 북부지역은 7.9~8.2㎎/ℓ로 나타났다. 남부와 서부지역에서 질산성질소가 높게 나타난 이유는 비교적 얕은 지층속을 흐르는 지하수로부터 용출되고 농업활동을 비롯한 토지이용이 집중되는 곳에 위치해 있어 화학비료나 생활하수또는 축산폐수 등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대로 기자 bigroa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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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조는 척박한 제주의 농사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이라서 제주민의 중요한 곡식으로 재배가 되었다. 지금도 명맥을 잇고 있는 오메기떡이니 오메기술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조를 원료로 만드는 것으로서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조와 관련된 용어만 해도 엄청나게 발달해 있다는 것이 왕한석의 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진 바 있다(왕한석, 제주 사회에서의 조 및 관련 명칭에 대한 일 연구, 1996).그러던 것이 사회의 변화와 함께 제주에서 조 농사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아래의 기사에서는 그걸 일제강점기라고 지목하면서 마치 그때 조 농사가 뚝 끊긴 것처럼 몰아붙이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1930년대의 현지조사 자료인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에서 보아도 그때 여전히 조 농사는 제주에서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다른 여타의 일들과 마찬가지로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그냥 일제를 몰아붙이는 것뿐이다. 

그보다는 조 농사가 끊긴 건 제주에서 육지를 대상으로 귤 농사, 양배추 농사, 브로콜리 농사 등등의 소득작물 들이 퍼지면서부터였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돈도 안 되는 조를 굳이 힘들게 뭐하러 심겠는가? 2008년 제주 전역을 조사할 때 아직 일부 나이 든 농부님네가 토종 조로 농사짓는 집을 몇 군데 발견하긴 했다. 그런데 그것도 집에서 조금 먹을 정도이지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아무튼 제주에서 토종 조가 부활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으면서 내용에 일부 잘못된 부분이 있어서 몇 글자 끄적여본다. 





일제강점기 자취를 감췄던 제주토종 조가 100년 만에 복원돼 5일 처음으로 수확이 이뤄졌다.


제주 토종 조가 '삼다찰'이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귀환했다. 제주도 동부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삼다찰은 올봄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의 밭 3,300㎡에 심어 졌다.

제주 토종 조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수탈로 제주에선 자취를 감췄다.

지난 2008년 일본으로부터 반환받아 농촌진흥청이 분리육종법에 따라 연구를 진행했고 제주 토종 조는 지난해 신품종 '삼다찰'로 복원됐다. 1세기 만의 부활이다. 김녕리 농가에서 이뤄진 실증재배는 5일 첫 결실을 봤다.

삼다찰은 줄기가 강하고 잘 쓰러지지 않아 기계화 재배에 유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올해 볼라벤 등 연이은 태풍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또 기존 재배종에 비해 20% 이상의 수확량을 더 얻을 수 있는 다수성 품종이다. 물론 제주지역 환경에도 가장 알맞은 품종으로 평가된다.

제주 토종 조는 옛부터 전통음식인 오메기떡과 오메기술의 원료곡식으로 사용됐다.

제주도 농업기술원은 올해 삼다찰에 대한 실증재배가 성공을 거둠에 따라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농가에 보급할 예정이다. 농촌진흥청도 앞으로 제주지역을 조나 기장 등의 신품종 종자생산 거점단지로 육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twoman@cbs.co.kr


왕한석-제주사회에서 조 및 관련 명칭에 대한 연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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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제주 전역에서 토종종자 수집을 하면서 느낀 점. 제주는 중산간에서까지 농사를 짓고 축사에서 가축을 기르는데, 원래 물이 부족한 곳이 아닌가? 이 농축산업을 위해 물은 어떻게 확보를 하는가? 앞으로 제주에 심각한 물 문제가 일어나겠다.

그 이후 계속 관심을 가지고 제주의 지하수 및 농업용수 문제를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막대한 양의 지하수를 농축산업만이 아니라 생수시장에도 공급한다는 사실을 더불어 알게 되었고, 더욱 우려는 커졌다. 지난해 가을 장마가 찾아왔을 때 기존 관정이 말라버리면서 그 빈 공간으로 바닷물이 침투해 못 쓰게 되었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올해는 아래와 같은 기사가 떴다. 2015년이 되면 물 자체가 부족해질 우려가 있다는 보고다. 현재 제주 전역에서 마을마다 소형 저수지를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인지는 장담할 수 없겠다. 그런 저수지는 어차피 시멘트를 발라서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에 뭐랄까... 거시기하다.

문제의 해결은 근본적으로 농축산업의 방법을 바꾸는 데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것이 당장 농민들의 생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산방식이 아니고는 지금의 사회에서 버틸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래저래 어려운 과제이다.





진단=지하수 천국 제주 경보음


[제주도민일보 오석준 기자] 무한할 것만 같았던 제주의 수자원이 수요 증가와 비효율적인 공급체계, 과다개발 등의 문제로 바닥을 드러내면서 물 부족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최대 수요량을 기준할 때 생활용수와 공업·관광·축산 등 기타용수를 비롯한 상수도가 오는 2015년이면 1일 4만686t, 2020년에는 6만7239t, 2025년에는 9만8778t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농업용수도 10년 빈도 가뭄을 기준으로 할 때 1일 31만5977t이 추가공급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3. 현실화된 물 부족


2011년 말 기준 도내 상수도 취수원 시설용량은 1일 51만1125t이다. 지하수가 1일 31만7000t으로 62%를 차지하고 용천수가 17만7000t으로 34.6%, 어승생과 해수담수장은 각각 1만5000t·2000t이다. 1일 평균 급수량은 20만259t으로 시설용량에 비하면 여유가 많다.


그러나 34.6%에 이르는 용천수 수원이 최갈수기가 아닌 평균 용출량으로 산정돼 과다책정되고, 수량과 수질 문제로 공급이 중단된 삼양3수원과 현실적으로 활용이 어려운 자굴이(1일 1만5000t)·회수(1일 7000t)·상예(1일 9000t) 광역상수원이 포함돼 있다. 과거 시·군 당시 개발된 마을 상수도는 급수구역이 마을단위로 운영돼 용량에 여유가 있어도 활용이 어렵다. 76.7%의 유수율과 14.9%의 누수율 통계도 현실과 다르다는 것이 수자원관리 종합계획 용역팀의 판단이다.


이를 감안할 때 갈수기 등에도 안정적으로 공급 가능한 실제 상수도 용량은 1일 41만4625t에 불과하다. 이는 2015년 최대 수요량 1일 45만5311t에 비해 4만686t이 모자란다. 2020년에는 1일 최대수요량 48만1864t에 비해 6만7239t, 2025년 최대수요량 51만3403t에 비해 9만8778t이 부족한 용량이다. 물 부족이 멀지않은 현실이라는 얘기다.


용역팀은 이에따라 어승생 제2저수지를 기존 저수지와 연계해 1일 1만5000t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1일 1만t 규모의 어승생2정수장을 시설하는 한편 서귀포 동·서부지역에 각각 1일 1만t 규모의 취수원을 개발해 정수시설을 증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광역상수도 수원 가운데 지하수 부존량이 많은 곳은 취수량을 늘리고 읍·면지역 상수도 관정을 단계적으로 광역상수도로 전환할 것도 주문했다.


농업용수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2011년말 기준 도내 농업용수 개발량(보장량)은 1일 89만8332t이고 1일 수요량은 평균 20만5870t으로 보장량의 23%, 최대 56만3070t으로 62.7% 수준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10년 빈도 가뭄을 기준한 2020년 농업용수 최대수요량은 1일 121만4310t으로 현 농업용수 공급능력을 28%나 초과하게 된다. 서부지역은 1일 보장량이 33만6000t으로 최대 수요량 31만2000t에 비해 7% 많지만 동부지역은 10만6000t으로 최대 수요량 23만6000t의 45% 수준에 불과하다. 남부지역도 1일 보장량이 25만2000t으로 최대 수요량 40만4000t의 62%, 북부지역은 보장량이 20만4000t으로 최대 수요량 26만t의 77% 수준에 그친다.


용역팀은 이에따라 1~2개 관정별 소규모 급수구역과 시설체계를 권역별 공급체계로 전환하고 배수조 용량을 확대해 이용율을 높이는 한편 공공 용수원 중심의 대용량·군집 개발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주문했다. 지표수와 용천수를 비롯해 하수처리장 방류수와 빗물 등 1일 8만9000t 규모의 대체수자원 개발과 노후·불량관정 폐쇄 또는 원상복구를 통한 과부족 조정,기존 급수시설 관로 연계를 통한 이용효율 증대와 급수구역 확대 등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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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사는 제주에서 새로운 관정을 개발했다는 소식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존 3개의 관정에서 염분이 유출되었다는 점, 새로운 관정을 뚫어 3.8km를 이동시켰다는 점이다. 

기존 관정에서 염분이 유출되었다는 건 지하수를 너무 퍼올려서 지하수가 말라버렸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걸 대체하기 위해서 십리나 떨어진 곳에서 새로이 관정을 뚫어 이동시키고 있다. 엄청난 자원 낭비, 에너지 낭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지하수가 말라버리니 제주의 특성에 따라 바닷물이 지하수가 차 있던 공간에 밀려들어왔다. 제주 지역의 지하수 고갈 문제가 심각한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제주는 화산섬이라 토양이 물을 잘 붙들고 있지 못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연못이나 용출수가 있는 곳에 자연스레 마을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농경지도 그렇게 물을 이용하기 좋은 곳에 생기고, 중산간 지역은 주로 방목을 하거나 사냥 등에 이용을 했다. 그런데 지금 제주는, 중산간에까지 농경지를 만들고 축사를 지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거기에 쓰는 물은 지하수를 퍼올려서 사용한다. 게다가 농업용 지하수만이 아니라 '삼다수'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양의 지하수를 생수로 판매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과학적으로 지하수의 양을 측정하고 강수량을 고려하여 적당한 양을 퍼올리겠지만, 문제는 기후변화로 인해 극심한 가뭄과 폭우가 빈번해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평시의 그러한 기초자료는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언제나 최선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12일 서귀포시는 대정읍 서부지역에서 진행된 대체공 개발과 관로공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8월부터 농업용수를 원활히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정읍 지역은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50여일간 가뭄이 지속되고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농업용 3개 관정에서 염분까지 노출돼 농업용수공급에 차질을 빚어왔다.


서귀포시는 이에 대정읍 신도지 2곳와 영락리 1곳에 사업비 7억5400만원을 투입해 1일 3000톤을 이용할 수 있는 대체관정을 개발했다. 관로 길이만 3.8km에 이른다.


주민들은 관정 개발위치 선정에 따른 마을간 부지양보와 행정기관과의 협조를 통해 보통 2년 가까이 걸리는 관정개발 사업을 약 8개월여 만에 마무리했다.


대체 과정 개발로 농민들은 8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마늘과 채소 파종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귀포시는 각 지역별 용수공급 문제를 지속적으로 점검키로 했다.<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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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 2부 영농실태조사 제주도.pdf



내가 작업한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의 번역본을 남긴다.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 2부 영농실태조사 제주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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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큐슈九州의 가고시마鹿島가 배경으로 나오는 시대극입니다.

이 드라마에는 마지막에 그 지방의 역사유적을 선전하곤 하는데 거기에 제주의 단지무와 비슷한 것이 나옵니다. 혹시 제주의 단지무가 남아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이 가고시마가 속한 큐슈는 보면 볼수록 제주도와 참 비슷합니다.

풍광도 그렇고, 흙도 그렇고, 그에 기대 먹고 사는 사람들도 그렇고... 거리도 얼마 되지 않는데다가 같은 화산섬이라 그럴까요?

이번 달 말에 여행을 가기에 지도를 살펴보다가 이곳 지명에 '츠카(총塚)'라는 명사가 많은 걸 보고 가만히 앉아 생각하다가 떠오른 것이 저번에 제주에 갔을 때 본 '오름'이었습니다.

우리말로는 오름이 일본어에서는 츠카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아무튼 이번에 가서 오름을 말하는 것인지 확실히 보고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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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국의 땅, 제주도 

 

 

2008년 12월 19일, 이틀의 휴식 뒤에 다시 제주도를 향하다. 8시 30분 공항으로 출발하여 9시 50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11시 30분이 이륙할 예정이다. 김포공항은 태어나서 세 번째 와 보았다. 비행기는 가까이에서 볼 때마다 참 신기하다. 어떻게 저런 쇳덩어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지 경이롭다.

 

간단하게 제주에 도착해 렌트카를 알아보았다. 비용은 어디나 정가제라 더 깎거나 할 수 없다. 유명한 관광지답다. 에누리가 없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정가제가 더 편할 수도 있다. 최소한 바가지 썼다는 후회는 하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렌트카를 타고 먼저 대정읍으로 이동해 대정 여성농민회 분들을 만나기로 했다. 조사에 앞서 제주도의 사정을 미리 파악하고자 해서이다. 도로를 타고 달리는 데 기분이 이상하다. 늘 보던 풍경이 아닌 어딘가 다른 곳에 왔다는 느낌 때문이다. 제주도는 참으로 다르다. 이 묘한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여성농민회에서 두 분이 나오셨다. 김정임, 원정순 선생님이 그분들이다. 늦은 점심을 먹으며 제주도의 농업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듣고, 어떻게 다니는 것이 좋을지 상의했다. 그분들의 말에 따르면, 제주도는 해안으로는 대부분 돈벌이를 위해 홑짓기를 한다고 한다. 토종은 아마 중산간에 아직 살고 계신 할머니들에게 있을 것이란다.

대정읍은 주로 감자와 마늘, 조생 양파가 많고, 안덕면은 감자, 서귀포시 중문에서는 지난 여름에 독새기콩을 찾았다고 한다. 남원읍과 효선면, 성산읍은 밀감 과수원이 많고, 구좌읍은 당근과 만생 양파, 조천읍은 감자와 마늘이 많다. 제주시와 애월읍, 한림읍은 양파와 양배추, 마지막으로 한경면. 이러한 식으로 다니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계획은 이렇지만 돌아다니다 보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다음으로 그럼 어느 지역의 어느 곳을 볼지 대충 정했다.

한경면 - 청수, 저지, 낙천, 산양, 조수

한림읍 - 상명, 명월, 상대, 동명

애월읍 - 낙읍, 상가, 어음, 장전, 고성

조천읍 - 와음, 선흘

성산읍 - 수산, 난산

효선면 - 가시, 성읍

남원읍 - 수망, 의귀, 한남

구좌읍 - 덕천 송당

 

이렇게 전체적인 계획을 짜고 남는 시간을 이용해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로 향했다.

 

김정임 선생님의 안내로 도착한 곳은 무릉2리 좌기동이라는 곳이다. 햇살이 따땃하니 참 좋다. 겨울에도 이렇게 춥지 않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그래도 바닷가니 추울 거라 생각하며 내복까지 껴 입었는데 오늘 일정이 끝나면 당장 벗어야겠다.

 

 

좌기동에서 본 제주도의 전통 대문. 빗장을 다 열어 놓으면 집에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말로만 듣던 대문을 보고 재미있었는데, 요즘은 이런 대문도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의 말도 점차 사라지고 있듯이 문화도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이곳에 사시는 박성은(70) 할머니를 가장 먼저 만났다. 이제 몸이 불편해서 농사고 물질이고 암것도 못하고 집에 드러누워 있으시단다. 그래도 제주도에서 가장 먼저 만난 분이라 따로 적어 놓았다. 부추를 '세우리', 앵두를 '은냉', 메밀을 '모물', 서로는 '삼촌'이라고 부른다.

 

 

박성은 할머니. 지금은 지팡이에 의존하며 다니시지만, 젊은 시절에는 누구 못지않는 한 집의 기둥이셨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 동네에 있는 정미소를 찾았다. 이 정미소는 서귀포 지역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를 자부하며 벽에는 현판까지 내걸어 놓았다. 산남이라고 하는 말이 서귀포 지역을 뜻하고, 제남은 제주도 남쪽을 가리킨다고 한다. 정미소를 운영한 지는 50년 이상 되었는데, 이 근방의 다른 정미소는 대부분 그 맥이 끊어졌다고 한다.

 

인근에서 온갖 종류의 곡식류가 모이는 곳. 덕분에 헤매지 않고 다양한 곡식을 보고 수집할 수 있었다.

 

 

정미소는 좌기동 1156-3번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주인 할아버지는 마침 외출중이셔서 김기선(75) 할머니를 만났다. 

 

정미소 안의 김기선 할머니. 아직도 건강하시다. 정미소 곳곳에 쌓여 있는 곡식 먼지와 그 특유의 눅은내가 이곳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하다.

 

 

이곳에서는 모두 여섯 가지를 수집했다. 덕수에서 사왔다는 메밀, 영락리에서 온 차지고 맛있다는 검은흐린조(검은 개발시리), 이것을 옛날에는 육지조라고 불렀다고 한다.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는데, 낭댕이(줄기)가 벌겋고 끝에 가닥이 세 개란다. 이 의문은 이후의 조사 과정에서 확실하게 풀린다.

다음은 주냉이(지네) 보리(두줄보리, 호주맥), 이건 낭댕이가 빨갛고 이삭이 길딱한데, 수확이 적다. 키가 커서 박한 데 심는다고 한다. 보성, 서광, 신평에서 사온다고 한다. 또 신도에서 사온 굵은 메주콩, 조수에서 사온 된장 담그는 푸린독새기콩과 원래 제주도 것인 노란 개발시리조를 구했다. 이 노란 개발시리조는 키가 크고 가닥이 세 개가 아니라고 한다. 낭댕이도 노랗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이 마구 튀어나온다. 들리는 대로 받아서 적기는 적지만 뭐가 뭔지 모르겠다. 김정임 선생님이 옆에서 열심히 통역(?)을 해주신 덕분에 그래도 어느 정도 알아들었지, 내일부터는 우리만 다녀야 하는데 걱정이다. 제주말은 외국어에 버금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정미소 안에 걸린 칠판. 거래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빼곡히 적혀 있다. 주인만이 알아볼 수 있는 개성 있는 칠판.

 

푸린독새기콩. 달걀처럼 생긴 푸른 콩이란 뜻이다. 제주도에서는 이걸로 메주를 쑤어 된장을 담가 먹는다고 한다. 그렇게 맛있나? 아니면 다른 콩이 없어서?

 

이건 굵은 메주콩이다. 하지만 육지의 그것에 비하면 그리 굵은 편은 아니다.

 

 

이제 수고하신 김정임 선생님과 헤어져 우리끼리만 제주도를 돌아다닐 시간이 되었다. 바쁜 농사일로 함께하지 못하는 걸 미안해 하시는 걸 보내드리고 차에 올랐다. 멀리 가지는 않고 일단 좌기동 일대를 다 돌아볼 참이다.

한참을 다녀도 사람을 볼 수가 없다. 여기서도 사람 만나기가 귀한 일이로구나. 그도 그럴 것이 제주도는 아직 날이 따뜻해서 날만 좋으면 지금도 밭으로 일을 나가거나 남의 밭에 놉으로 나간다니 더 그렇다. 따뜻한 것도 이럴 때는 좋지 않구나.

 

한참을 다니다가 어느 집의 마당에서 만난 고구마 절간. 다카하시 노보루의 기록에도 제주도와 관련하여 이 고구마 절간이 많이 나온다.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나중에 꼭 확인해 봐야지. 처음 기록에서 이걸 보고 고구마 잘라 말린 것이라 번역을 했는데, 더 적당한 말이 있을 것이다. 

 

 

겨우 한 집에 들어가 할머니를 만났다. 좌기동 변정자(67) 할머니 댁에 들어가 토종을 찾는다고 설명을 드리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이제 그런 건 없다고 하신다. 마당 한쪽에 놓여 있던 호박만 하나 얻어서 나왔다. 할머니 얘기를 들으니 예전에는 밀감 한 그루면 자식을 대학까지 보냈다고 한다. 참 귀한 과일이었는데 이제는 겨울이면 지천에 널린 것이 밀감이니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변정자 할머니 댁에서 얻은 호박. 제주도의 호박은 대체로 납짝하고 골이 깊은 것이 특징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5시를 훌쩍 넘었다. 5시를 넘으면서부터는 날이 많이 쌀쌀해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남쪽이라고 해도 해가 넘어가면 추워지는 건 어쩔 수 없구나. 오늘은 제주도의 이색적인 풍광에 얼떨떨하다. 현대를 사는 내가 이 정도인데, 교통이 불편한 시절에 살던 사람들은 오죽했으랴. 제주도가 인기 있는 신혼여행지였던 까닭을 알겠다. 요즘은 다들 외국으로 나가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참 신기했을 거다.

 

이렇게 하루를 끝마치나 했는데 좌기동 임춘후(69) 할머니 댁에서 많은 걸 얻었다. 검은 덩굴콩, 검은 돔비(동부), 준저리콩, 제비콩, 까만콩, 기침에 좋고 씨를 갈아 막걸리에 타 먹으면 관절에도 좋다는 하늘타리, 결명자, 유채를 얻었다. 날도 춥고 낯선 풍광과 말씨와 사람에 얼이 빠져 있어 제대로 기록을 하지 못했다. 물론 날이 어두워져 사진도 제대로 된 것이 하나 없다. 아쉬울 뿐이다. 내일은 좀 더 정신 바짝 차리고 제주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5시 40분 조사를 마치고 숙소를 잡고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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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돌담.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는 수수나 짚으로 만든 울은 별로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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