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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는 인구의 70%가 농업이나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농경국가이다. 1960년대 인도는 인구폭발과 함께 식량 유용성과 안보의 측면에서 암울한 시나리오에 직면했다. 아사자와 대규모 기근이 예상되었다. 그 해결책으로 녹색혁명이 제시되었다. 1967~1977년 이어진 녹색혁명은 식량이 부족한 나라에서 세계 최고의 농업국으로 인도를 바꾸어 놓았다.



녹색혁명과 그 이후의 영향


생산성을 강화하기 위한 녹색혁명의 중요한 구성요소는 화학비료, 농약, 더 많은 물이 필요한 다수확 하이브리드 종자이다. 인도의 자급과 잉여생산을 만들기 위한 융자는 녹색혁명으로 나아갔지만, 20년 뒤 고투입 농업은 부작용을 보이기 시작했다. 녹색혁명의 최상과 최악의 효과가 나타난 펀잡Punjab의 사례에서 알 수 있다. 녹색혁명 기간 동안 기본적으로 '종자와 화학비료 패키지'였다; 펀잡에서 화학비료 소비 30배 증가했다. 펀잡에서 몇 년 동안 대풍년이 온 뒤, 질소-인-칼륨 화학비료를 아낌없이 사용했지만 여러 곳에서 흉작이 보고되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사실 식물은 질소, 인, 칼륨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그들은 아연, 철분, 구리, 마그네슘, 망간, 몰리브덴, 붕소 등과 같은 미량영양소가 필요하다. 펀잡에서 아연 결핍이 가장 널리 퍼진 미량영양소 결핍이다. 토양 질병과 결핍의 결과, 질소-인-칼륨의 늘어난 사용에도 그에 상응하는 쌀과 밀의 수확량이 나오지 않았다. 밀과 쌀의 생산성은 화학비료의 사용을 늘렸음에도 오르락내리락 했고, 심지어 펀잡 대부분의 지역에서 감소하기까지 했다. 녹색혁명은 기존의 밀, 옥수수, 수수, 기장, 콩과작물, 유지작물과 같은 다양한 작물의 섞어짓기 돌려짓기를 대신하여 밀과 벼농사(토양침하 작물로 알려진)의 대규모 단작을 불러왔다. 콩과작물(땅심 유지 작물)의 감소는 토양의 자연 거름 중개자를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 밀과 벼의 이어짓기는 토양 영양분의 소모를 뜻한다. 콩과식물에서 밀과 벼로 농경지 이용의 변화는 황무지로 만들었다.

그에 따라 집약적인 관개가 녹색혁명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물 수요가 펀잡의 지하수 자원을 압박했다. 오늘날 펀잡 지하수 자원의 90%가 농업에 쓰인다. 이는 전국 평균인 20%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게다가 지나친 물을 배수하는 걸 적절히 고려하지 않아 위험할 수 있다. 물이 빠지는 속도보다 더 빨리 차면 지하수면이 오른다. 침수는 다른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염류축적. 염류오염은 흙의 생산성을 약화시키고, 극단적인 경우 영원히 망쳐버린다. 이러한 상태 -침수와 염류축적- 는 사막화를 불러올 수 있다. 오늘날 펀잡의 풍부한 충적 평원은 녹색혁명 농업을 가능하게 만든 지나친 관개수의 도입으로 인한 사막화로 심각하게 고통받고 있다. 

관개 이외에, 녹색혁명 유형의 농업은 화학물질과 기술집약적인 투입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새로운 씨앗, 더 많은 화학비료와 농약, 트랙터와 기타 농기계와 관개. 또한 이러한 투입재와 기술을 써 먹을 수 있는 상당한 크기의 토지소유가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대개의 농업 투입재는 자유롭게, 또는 돈 없이 지역에서 교환되었다. 대부분의 농민이 저렴하게 쓸 수 있었다. 그러나 녹색혁명으로 그러한 투입재는 어쩔 수 없이 시장에서 사와야 하게 되었고, 많은 농민은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기존의 불공평이 증가했다. 따라서 녹색혁명의 이득은 사회에 고르게 퍼지지 않았다. 오직 특정 작물, 지역, 농민만이 녹색혁명의 혜택을 받았다. 



Beej Bachao Andolan


Jardhargaon는 Uttranchal의 Tehri Garhwal에 있는 전형적인 히말라야 마을이다. 인도에서 1960년대의 녹색혁명 이후 이 산간 지역의 농민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하여 고투입 집중형 기술 농업을 쓰기 시작했다. 다수확 품종인 새로운 '개량된' 종자가 농약, 화학비료, 다른 외부 투입재와 함께 여기에 도입되었다. 현대화를 위한 경주에서 그들은 급속하게 자신들의 지속가능한 전통농업 체계를 잃어 버렸다. 역설적이게도 투자와 투입재가 늘어났지만 토양비옥도, 곧 토지생산성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자각은 새로운 방법에서 멀어지고 더 지속가능한 농사 방식인 전통적인 방법으로 돌아가는 운동에 착수하게 만들었다. Beej Bachao Andolan(BBA)로 알려진 그 운동은 토종 종자를 보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농업생물다양성, 지속가능한 농업, 지역의 전통을 촉진하고 있다. 

그 일은 쉽지 않았다. 몇몇 전통 농법과 종자는 이미 '사라졌다.' 필요한 열쇠의 하나는 이것들의 부활이었다. 종자를 구하는 운동이 기본이었다. 농부이자 활동가 Vijay Jardhari이 이끄는 Jardhargaon의 마을사람 모임이 토종을 찾기 위해 외떨어진 마을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집중적인 활동 이후 모임은 지역에서 영원히 사라졌던 벼 250품종, 강낭콩 170품종 정도와 많은 다른 종자를 모았다.이러한 조사 과정으로 처음으로 풍부한 정보가 문서화되었다. 예를 들어 그들의 조사 기간 동안 Beej Bachao Andolan 활동가는 Ramasirain 계곡에서 chardhan(네 가지 곡물)이라 부르는 독특한 붉은 벼 품종을 기르는 농부를 발견했다. 그 벼는 영양가가 높고 막대한 외부 투입재가 필요 없다. 농민들은 또한 thapchini, jhumkiya, rikhwa, lal basmati이라 지역에 알려진 다른 토종 벼를 재배하고 있었다.  농업은 이제 좋은 수확량을 올리는 화학비료, 농약의 사용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전통 농법은 baranaja라고 알려진 12가지 작물을 한 밭에 동시에 심는 법이다. 이는 대규모 단작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토양비옥도를 회복시키고 식량안보를 보장한다. 

전통적인 섞어짓기인 baranaja(문자 그대로 12가지 곡물이란 뜻) 체계에서 12가지 또는 그 이상의 작물을 사이짓기한다. 곡물, 편두, 채소, 덩굴식물, 뿌리채소를 복합적으로 기른다. 그러한 12가지 작물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자랄 수 있다. 콩과의 덩굴식물은 자연 지지대로 곡식을 휘감아 자라고, 한편 곡물의 뿌리는 토양을 단단히 붙잡아 토양침식을 막는다. 그들의 질소고정 능력 덕에 콩과작물은 다른 작물이 쓰도록 영양분을 돌려준다. 외부의 화학재 투입 없이 호두와 님 나무의 잎을 써서 해충을 억제하고, 재와 소의 오줌을 준다. 이런 생태농업의 체계는 생태학적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농민은 일부 작물이 손실을 입어도 다른 품종으로 혜택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산간 지역에서 대부분의 소농 가족은 매우 제한된 토지를 소유한다. 따라서 주요 식량작물을 따로따로 심을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또한 12가직 곡물 체계란 개념은 과학적이고 지속가능하다. 서로 다른 작물을 여러 작은 밭에다 심어서 1년 동안 서로 다른 시기에 수확하여 가뭄이나 흉작이 들었을 경우를 대비해 식량 부족을 방지한다. 작물의 다양성은 또한 토양비옥도를 유지하고 질소를 보충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편 작물의 다양성 덕분에 또한 영양분도 다양하게 제공한다. 기장은 칼슘, 철분, 인, 비타민이 풍부한 반면, 콩은 풍부한 단백질의 원천이다.

그 운동에서 그들은 baranaja의 이러한 측면과 어떻게 되살릴지를 강조했다. 그들은 젊은이와 여성을 포함한 지역의 농민들과 전통농법 체계를 논의하고, 효과적으로 전통농법과 토종을 사용하는 이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활동가들은 또한  현대적 농법과 하이브리드 종자의 사용으로 인한 위험에 관한 자각을 이끌고자 모임뿐만 아니라 행진도 조직했다. 농민들은 종자의 보존과 지역사회와 함께 그것을 나누는 데 앞장섰다.

처음에는 다수확 품종을 사용하는 농민들이 토종이 비슷한 생산량이 나올 것인지 확신하지 못해 일부 반대도 있었다. 그러나 BBA 구성원의 조언과 함께 농민들은 농약과 화학비료의 높아지는 투자의 무익함을 깨닫고, 또한 화학물질 사용의 생태적, 건강적 측면의 영향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전통적인 생태농업의 방법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처음 몇 년은 수확량이 떨어졌지만, 곧 토양비옥도가 회복되면서 증가했다. 그들은 또한 지역에서 새로운 하이브리드 종자의 학살로부터 토종 종자를 구하기 시작했다. BBA와 관련된 농민들은 그 운동의 시작 이후 외부에서 어떠한 정기적인 재정적 지원 없이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지속가능한 농업


농업은 그것이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경제적으로 실행가능하고, 사회적으로 공정하고, 문화적으로 적절하고, 전체론적인 과학적 접근법에 기반할 때 지속가능하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세 가지 주요 목표를 통합한다 -환경적 건강함, 경제적 수익성, 사회경제적 공평함.

지속가능한 농업은 시사한다:

? 영양 순환, 질소 고정, 천적 관계와 같은 자연적인 과정의 결합;

? 환경을 해치고 농민과 소비자의 건강을 상하게 하는 외부재 사용과 재생불가능한 투입재의 최소화;

? 모든 문제 분석 과정, 기술 개발, 적용과 지도, 감시와 평가에 농민과 농촌 사람들의 참여;

? 생산자원과 기회에 대한 더욱 공평한 접근;

? 지역의 전통지식, 실천방법, 자원의 더욱 생산적인 사용;

? 농사 안에 자연자원과 사업의 다양성 포함;

? 농민과 농촌 사회의 자립도 증가;

? 농업의 경제적 생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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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전자조작 식품이 아닌 단지 생물이 다양한 농장이 필요하다.


유전자조직 식품과 산업 방식의 농업은 기후변화, 가뭄, 식량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없다. 사실 그 반대이다.



산업 방식의 세계화된 농업은 기후변화의 커다란 원인이다. 그것은 세 가지 주요한 온실가스에 기여한다. 화석연료의 사용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화학비료에서 나오는 산화질소, 공장형 영농에서 나오는 메탄.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IPCC)에 따르면, 이산화탄소의 대기 농도는 산업화 이전의 약 220ppm에서 2005년 379ppm로 증가했다. 메탄의 대기 농도는 산업화 이전의 715ppb에서 2005년 1774ppb로 증가했다. 아산화질소의 대기 농도는 주로 농업의 화학비료 사용 때문에 270ppb에서 2005년 319ppb로 증가했다. 


산업 방식의 농업은 또한 가뭄과 홍수가 심해지고 있는 기후변화에 더욱 취약하다. 대규모 단작은 비가 오지 않거나 너무 많거나 조금 올 때 더 빈번하게 흉년을 불러온다. 화학비료에 찌든 흙은 가뭄을 이길 능력이 없다. 그리고 폭풍과 허리케인은 원거리 수송에 의존하는 식량 체계를 혼란에 매우 취약하도록 만든다.


유적자조작은 화석연료에 기반하는 농업의 산업화 모델에 꽉 끼워 넣는다. 그것은 거짓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마법의 특효약이라며 제공되고 있다. 


유전자조작 생물이 식량 불안과 기후변화를 위한 해결책이라는 몬산토의 주장은 최근 몇 달 동안 세계에 다음과 같이 광고하고 있다.


"90억 명을 먹이기 위하여. 

 기후변화는 

 이제 어떻게 하지?

 더 많이 생산하기

 더 많이 아끼기

 농부의 삶을 개선하기

 그것이 지속가능한 농업이고

 그것이 몬산토의 모든 것이다."


이 광고가 주장하는 모든 것은 거짓이다.


유전자조작 작물은 더 많이 생산하지 않는다. 몬산토는 주장하지만 그 회사의 유전자조작 BT 목화는 1500kg/1200평을 제공하고, 평균은 300~400kg/1200평이다.


생산량이 증가한다는 주장은 기후 탄력성과 같은 수확량이 다중 유전적 특성이기 때문에 거짓이다. 제초제 내성이나 생화학을 통하여 식물에 Toxin을 넣고 있다. Toxin은 식품이나 영양이 아닌 'Toxin의 생산량'을 늘린다. 


심지어 영양 논거조차 조작한다. 비타민 A를 증가시키려고 유전자조작을 한 황금쌀은 고수와 커리잎과 같은 이용할 수 있는 대체물보다 70배 적은 비타민 A를 생산한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한다는 거짓된 주장은 걱정하는 과학자 동맹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의 미국 환경보호국의 생명공학 전문가이자 미국 식품의약국의 유전자조작 고문이었던 더그 구리안 셔먼Doug Gurian Sherman이 최근 연구 제목인  Failure to Yield로 축출되었다. 셔먼은 "분명히 말하지만. 생산량 증가를 내재하는 상업화된 유전자조작 작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가뭄에 저항성이 있고 비료오염을 줄이거나 흙을 살린다고시장에 나와 있는 유전자조작 작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도 없다."


현재 유전자조작의 두 가지 뚜렷한 적용이 있다. 하나는 제초제 저항성이고, 다른 하나는 생화학 Toxin을 지닌 작물이다. 제초제는 식물을 죽인다. 그래서 그들은 흙으로 돌아가는 유기물을 줄인다. 라운드업레디 콩과 옥수수 같은 제초제 저항성 작물은 흙에 고정된 탄소를 줄이고, 그것을 보존하지 못한다. 이것이 몬산토가 기후 해결책으로서 라운드업과 라운드업 저항성 작물을 소개하고자 기후 협상을 이용하려는 시도가 과학적이고 생태학적으로 잘못인 까닭이다.


몬산토의 유전자조작 생물인 라운드업 레디 작물이나 Bt Toxin은 모두 자원을 보전하지 못한다. 그것들은 더 많은 물이 필요하고,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며 농장에 toxics을 늘린다. 인도 Vidharbha 지역에서는 Bt 목화씨를 사용하여 제초제 사용이 13배 증가했다.

몬산토의 유전자조작 생물은 농부의 삶을 개선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농부를 자살로 몰아간다. 20만 인도 농부가 지난 10년 동안 자살했다. 가장 많이 자살한 지역인 Vidharbha에서 자살자의 84%는 Bt 목화 때문에 생긴 부채를 지고 있었다. 유전자조작 생물은 농부가 육종해 재생이 가능하여 해마다 저장할 수 있는 자연수분하는 품종과 달리 재생이 불가능하다. 목화씨의 가격은 1kg에 7루피. Bt 목화씨의 가격은 1kg에 1700루피로 껑충 뛴다.

이것은 생태적이지도 않고 경제적 또는 사회적 지속가능성도 없다. 생태적 학살이고 대량학살이다.

유전자조작은 기후 탄력성을 만들지 못한다. 최근의 기사인 “유전자조작: 음식에 대한 생각(GM:Food for Thought)”(Deccan Chronicle, August 26, 2009)에서 M.S. Swaminathan 박사는 “우리는 가뭄에 내성을 갖게 하려고 그를 담당하는 유전자를 분리하여, 식물에 유전자를 넣어 가뭄에 내성을 갖도록 만들 수 있다.”고 썼다(wrote.

가뭄 내성은 다중유전자(polygenetic) 특성이다. 그래서 "가뭄 내성을 위해 유전자를 분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과학적으로 결함이 있다. 유전자조작 도구는 지금까지 오직 하나의 유전자 특성만 전송할 수 있다. 그것이 20년 동안 제초제 저항성과 Bt. toxin이란 단 두 가지 하나의 유전자 특성만 유전자조작을 통해 상업화가 이루어진 까닭이다. 

Navdanya의 최근 보고서report  제목인 "기후탄력 작물의 생물자원 수탈(Biopiracy of Climate Resilient Crops): 유전자 거인은 농부의 가뭄저항, 홍수저항, 염류저항 품종의 혁신을 훔치고 있다"에서 농부가 기후의 극단에 저항성을 가진 작물을 육종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농부가 수천 년 동안 육종한 결과 얻은 이러한 특성을 유전자조작 산업이 현재 특허권을 내고 해적질하는 것이다. 유전 물질로 농부의 품종을 쓰는 생명공학 산업은 유전자복합체가 어떤 특성을 담당하는지에 대한 도박을 벌이고 있다. 이는 유전자조작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운동선수 같은 software program으로 이루어진다. 보고서에서 말하듯이, “운동선수는 선택한 대상특성까지 타당성이 높은 주요 유전자 후보의 믿을 만한 한정된 목록에 빠르게 도달하도록 이용할 수 있는 방대한 양의 게놈 자료(주로 일반적인)를 쓴다. 비유적으로 운동선수 플랫폼은 당첨확률이 높은 복권이 섞인 수십 장의 복권 가운데 50~100개의 복권을 선택할 수 있는 '기계'로 볼 수 있다.”

육종은 도박으로 대체되고, 혁신은 생물자원 수탈을 위한 방법을 주고, 과학은 허위 선전이 대신하게 된다. 이는 기후 취약성의 시대에 식량안보의 기반이 될 수 없다.


다양성을 위한 여성:  Navdanya의 운동 가운데 하나. Photo courtesy Navdanya.


지난 20년에 걸쳐 유전공학은 잘못된 해결책이었던 반면, 우리는 인도의 생물다양성과 유기농 운동인 Navdanya를 확립했다. 우린 점점 생물다양성의 보존, 기후변화 충격의 감소, 빈곤의 완화라는 목표 사이에 집합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생물다양성, 지역적이고 유기적인 체계는 더 많은 식량과 더 높은 농가수입을 생산하고, 또한 물 사용을 줄이며 기후변화로 인한 흉작의 위험을 줄인다.

생물다양성은 기상재해에서 회복하기 위한 탄력성을 제공한다. 1998년의 거대 태풍인 Orissa와 2004년의 쓰나미 이후, Navdanya는 바닷물이 다시 들어간 땅에 활기를 되찾은 농사를 짓자며 염분 저항성이 있는 볍씨를 "희망의 씨앗"으로 나누어주었다. 우리는 현재 극단적 기후에 대응하고자 가뭄 저항성, 홍수 저항성, 염분 저항성 씨앗을 가진 종자은행을 만들고 있다.

지난 20년에 걸친 Navdanya가 수행한 일은 농부들이 환경을 파괴하고 스스로를 죽이지 않고도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고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생물다양성에 기반한 유기농업: 식량안보와 식량안전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우리의 연구는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작은 농장이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고 농부에게 더 많은 수입을 가져온다는 것을 확립했다.

생물이 다양한 유기적이고 지역적인 식량 체계는 기후변화에 대한 완화와 적응에 모두 기여한다. 특히 제3세계의 작은, 생물이 다양한, 유기농사는 완전히 화석연료에서 자유롭다. 농사짓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동물 에너지로부터 얻는다. 흙의 비옥도는 순환시키는 유기물을 흙에 넣어 토양유기질을 공급하여 만든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 생물이 다양한 체계는 또한 많은 물을 붙잡는 능력을 지니고 기후변화에 적응성을 높이기 때문에 가뭄과 홍수에 더욱 탄력적이다. 기후변화와 유기농에 대한 Navdanya의 연구는, 유기농이 탄소흡수력을 55%까지 높이고 보수력을 10%까지 높여서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생물이 다양한 유기농은 산업 방식의 대규모 단작보다 더 많은 식량과 수입을 생산한다. 기후변화를 완화시키고,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식량안보를 높이는 일에 손을 맞잡고 나아가자.

Activist and physicist Vandana Shiva is founder and director of the Research Foundation for Science, Technology, and Natural Resource Policy in New Delhi. She is author of more than three hundred papers in leading journals and numerous books, including Monocultures of the Mind: Biodiversity, Biotechnology, and the Third World and Earth Democracy. Vandana is a founding director of International Forum on Globalization.

http://www.alternet.org/water/150041/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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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라Andhra, 농업에 새로운 혁명의 씨를 뿌리다

 

 

안드라 프라데쉬Andhra Pradesh는 여성 농민을 주체로 하여 녹색혁명에서 분홍혁명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그 사업은 한 주州의 경작지 60%를 유기농법으로 전환하는 작은 움직임으로 시작되었다. 최근 각광받는 소액 금융 지원을 통해 대출을 받은 여성 자조단체가 시작했다. 이미 백만이 넘는 농민이 지역사회가 관리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이라 불리는 사업을 통해 유기농법으로 전환했다.

 

그 사업은 생산성을 유지하며 농약과 화학비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다. 그 사업을 실행하는 농촌빈곤을 제거하기 위한 협회(The Society for Elimination of Rural Poverty)와 정부 기관은 커다란 협동조합과 농산물 시장에 직거래하는 연결망을 제공하고자 전국의 소매 유통업체와 협의하고 있다. 올해는 전체 생산물의 양을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그 사업의 핵심 원리는 주의 사업 고문이자 SERP의 나이두Naidu 씨가 설명한다. “농부들은 생산비를 지불하고자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야 했습니다. 이는 종종 담보로 농토를 잡히는 일까지 벌어졌지요. 만약 농부가 지속가능한 농업을 통해 1헥타르에서 목화를 생산하면, 그는 농약비로만 약 250달러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건 그의 연간 수입의 56%에 해당합니다.”

 

인도의 지속가능한 농업에 대한 국가의 임무(The National Mission on Sustainable Agriculture)는 실천 방안과 주요 국가 전략으로 채택되도록 하는 데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 사업에 ‘가장 잘 실천하는’ 농부가 그의 경험을 여성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이 사업에 3억5000만 루피를 배정했는데, 그것은 벌써 결과를 내고 있다. 사업에 참여한 농민의 순이익은 농약을 줄인 만큼 늘어났다. 여기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한 여성 자조단체는 흉작의 위험을 줄이고 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었다. 2005~2006년 이후 3년 동안 참여자를 배출한 그 사업은 더욱 큰 규모로 퍼져 나갈 준비가 되었다.

 

 

written by Trushna Udgirkar, translated by 김서방

 

http://www.mydigitalfc.com/commodities/andhra-sows-seeds-new-revolution-agriculture-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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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전통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다

 

 

 

 

 

 

가우제Gause의 법칙을 넘어서

 

 

생태학에는 ‘가우제의 법칙’으로 알려진 법칙이 있다. 러시아의 생태학자 게오르기 가우제가 같은 자원을 이용하는 두 종류의 짚신벌레로 실험하여, 같은 생태적 지위에 있는 복수의 종은 안정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한 법칙이다. 그렇지만 실제 생태계에서는 한정된 자원만 있는 바다 속에서도 수많은 플랑크톤 종이 살고 있다. 이 ‘플랑크톤의 역설’처럼 가우제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사례는 많다. 그것은 시간적인 어긋남이나 먹이 등에 의하여 경쟁을 배제한 채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글에서 인도의 발라수브라마니안A.V.Balasubramanian 박사가 전통농업의 지혜를 부활시키고자 인도 지식체계 센터(Centre for Indian Knowledge Systems)를 세웠다고 적은 바 있다. 박사는 생화학과 생물물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1982년 이후 인도의 전통 과학기술을 이해·연구하고, 현대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관심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전통적인 건강법에 관심을 가진 많은 기관 및 조직과 연대하고 있다. 요가, 아유르베다, 전통적인 관개, 선주민의 연금술과 전통적인 과학의 방법론에 대해서 공부하며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2003년 8월에 케랄라주Kerala州의 코치Kochi에서 Bharathaaya Vichara Kendram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인도의 전통적인 관습이 얼마나 가우제의 법칙을 회피하여 왔는지를 강연했다. 그 요지를 소개하겠다.

 

 

 

 

자원을 지나치게 개발하지 않는다

 

 

인도는 야생 동식물 자원의 난개발을 억제하는 전통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수많은 인도의 마을에서는 공유지로 마을숲을 유지해 왔다. 지역사회는 마을숲을 보호하며 신중히 활용해 왔다. 이러한 숲에서 땔감 들을 수확하는 데에는 특정한 규제가 있었다. 예를 들면 우타라칸드주Uttarakhand州의 차몰리현Chamoli縣의 고페슈워Gopeshwar의 마을숲에서는 1주일에 한 번씩 각 가정에서 한 사람만 땔감을 모을 수 있다. 그 결과 다른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완전히 숲이 벌채되었지만, 이 마을의 숲은 아직 잘 보전되어 있다.

 

 

자원 이용에는 계절적인 규제도 있다. 예를 들면 힌두교의 달, 사라바나Sravana(8월 중순~9월 중순)는 인도 전 지역에서 우기의 최고조인데, 많은 카스트가 물고기·가금류·육류의 소비를 완전히 삼가여 모든 사냥이 멈추는 기간이기도 하다. 곧 어느 특정한 야생 식물의 수렵은 1년의 어느 시기에 의식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히말라야의 우타라칸드주 우타르카시현Uttarkashi縣의 주콜 파나가리Jhukol Panagari 지역에서는 종교 제의의 시기에만 나크두르Nakhdur로 알려진 식물의 덩이줄기를 일부 수확한다. 이 시기는 인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히말라야의 난다데비Nandadevi 근처 고산의 꽃밭이 만발하는 때이다.

 

 

우타라칸드주의 테흐리-가르왈현Tehri-Garhwal縣의 야무나천Yamuna川의 담수어는 독과 그물을 써서 잡는다. 그리고 독살된 물고기는 육식 카스트가 소비하는데, 그물로 하는 어업은 1년 내내 허용되지만 독은 하천의 유량이 많고 또 독의 영향이 시간적으로 꽤 한정된 축제가 열리는 며칠만 허용된다.

 

 

 

 

카스트마다 분야를 특화하다

 

 

인도의 부족사회는 저마다 수렵 구역이 있는 수렵채집민족으로 구성되는데, 이 수렵 구역은 최근까지 카스트제도에 의해서 계승되어 왔다. 그곳에서는 이용되는 동식물에 대한 개발압이 균등히 분산되어 왔고, 각 카스트는 미래세대를 위하여 자원을 계승할 필요성을 의식하며 생활자원을 지나치게 개발하는 것을 억제하는 전통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그 하나가 이용하는 자원의 분산이다.

 

 

각 카스트는 좁은 지리적 영역 안에서 살고 있는데, 이용하는 천연자원을 구분하고 있다. 각 카스트는 아주 한정된 자원으로 특화되어, 그것은 같은 영역에 있는 다른 카스트의 그것과 거의 겹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특정 지역의 특정 자원이 오랫동안 계속 유지되어 온 것이다. 생태적 지위 다양화의 두 예를 들겠다.

 

 

먼저 마하라슈트라주Maharashtra州 서쪽 가트Ghats의 크레스틀라인현Crestline縣에서는 주요 카스트로 쿤비스Kunbis와 가블리스Gavlis가 산다. 쿤비스는 계곡과 구릉 비탈의 아래쪽에서만 벼농사를 짓는다. 한편 가블리스는 구릉 비탈 위쪽의 계단밭에서 농사를 짓고, 물소와 소를 기르며, 부대밭 농업을 조금만 한다. 쿤비스는 야생 동물을 수렵하는데, 가축은 운반용으로 소 몇 마리만 기른다. 한편 가블리스는 놓아먹이는 가축에게서 탈지유를 얻어 그것을 단백질원으로 삼으며 수렵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탈지유를 쿤비스의 곡물과 교환한다.

 

 

마하라슈트라주 서부의 반 건조지대의 유목수렵민 난디발라스Nandivallas, 파세파라디스Phaseparadhis, 바이두스Vaidus 부족에서도 이러한 분산을 볼 수 있다. 난디발라스는 수렵을 전문으로 하는 부족으로 개를 써서 돼지, 산미치광이(porcupine), 왕도마뱀 등을 대규모로 수렵한다. 파세파라디스는 인도 검은산양·사슴·새의 수렵에 특화되었고, 바이두스는 몽구스·사향·재칼·고양이 등의 소형 육식동물을 덫을 놓아서 잡는다. 곧 세 카스트는 서로 다른 수렵 기술을 써서 서로 다른 종을 잡는 것이다.

 

 

 

 

야생동물을 종으로서 보호하다

 

 

인도의 유명한 서사시 라마야나에는 수렵 부족의 시인 발미키Valmiki가 교미하는 한 쌍의 학 가운데 하나를 죽이는 모습을 목격하고 영감을 받아 시를 짓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살해는 엄밀히 보편적인 윤리에 반한다. 사실 황새, 해오라기, 왜갖, 따오기, 갤우지, 펠리컨 등의 거류지인 헤로나리heronaries는 둥지에 가장 가까운 마을에 의해 지속적으로 완전히 보호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인도 남부의 카르나타카주Karnataka州의 반다라Bhandara 지역에서 전통적인 어업 카스트는 구릉지 하천의 담수어를 결코 해코지하지 않는다. 마하라슈트라주 아메드나가르현Ahmednagar縣 파세파라디스의 수렵 부족이 주로 잡는 것은 인도 검은산양인데, 새끼나 임신한 암컷이 덫에 걸리면 예전부터 풀어 준다고 한다.

 

 

 

 

성스러운 동식물을 지킨다

 

 

인도에서는 다양한 동식물이 신성시되어 절멸을 면해 왔다. 예를 들면 가장 널리 보호되는 것이 인도 보리수이다. 기원전 2000년 전의 모헨조다로에서도 부조에 무화과가 표현되어 있는데, 무화과도 신성시하였다. 무화과속은 열대의 생물다양성을 종합적으로 유지하는 데에 ‘요점’이 되는 식물로, 이를 보존한 까닭은 과실을 먹는 조류, 특히 비둘기를 보전하는 데에 있었을 것이다.

 

 

그 밖의 동식물은 각 지역과 특정 카스트마다 ‘신성시’하며 보편적으로 보호하였다. 예를 들면 공작새는 시바신의 둘째 아이, 카르티게야Kartikeya에 의해서 신성시되어서 수렵되지 않아 타밀나두주의 카르티게야의 사원에는 무수하게 있다. 공작새는 구자라트주Gujarat州 서부와 라자스탄주Rajasthan州 전역에서도 널리 보호되었다. 푸른 집비둘기도 성자 샤 자랄(Hazrat Shah Jalal)에 의해서 신성시되어 보호되는데, 방글라데시의 농촌에서는 인공으로 둥지를 만들어 번식을 장려하고 있다. 쥐조차 보호하여 라자스탄주의 유명한 카르니마타Karnimata를 모시는 사원에 많이 있다.

 

 

또 각 카스트와 그 제도 안의 수많은 씨족도 어떤 종의 동식물을 토템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것을 파괴하는 일은 없고, 남이 파괴하지 못하게 지키고 있다. 예를 들면 마하라슈트라주에서는 이전에 마라타Maratha가 공통어였는데 이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카스트가 있다. 이 마하타 카스트의 모레스Mores와 고르파데스Ghorpades는 그 일족의 이름이 토템의 동물로서 공작새와 왕도마뱀에서 유래하였기에 다른 부족은 잡아먹어도 그들은 이것들을 보호한다.

 

 

라자스탄 사막의 주민 비슈노이Bishnoi 교도는 힌두교의 일파로서 1485년에 설립되었는데, 녹색 잎이 달린 나무는 결코 자르지 않고, 모든 동물도 죽이지 않는다. 또 지역에서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콩과의 나무를 가장 신성시하였다. 1630년 조드푸르Jodhpur 왕이 새로운 궁전을 짓는 데에 연료용으로 이 나무를 베어 버리려고 할 무렵, 363명의 비슈노이 신도가 나무를 지키고자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비슈노이 교도도 검은산양과 가젤의 일종인 친카라Chinkara 등의 야생 동물을 보호하였다. 이 전통은 지금도 살아 있어, 비슈노이 교도의 마을은 인도의 사막에서도 가장 야생 생물과 녹색이 풍부한 곳이다.

 

 

 

 

성스러운 나무숲과 못이나 늪이 공간을 보호한다

 

 

가우제의 고전적인 실험이 보여주듯이, ‘포식자와 피식자’로 구성되는 체계에서 먹히는 쪽의 절멸을 막는 데에 특히 효과적인 방법은 포식자에게서 도망갈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그러한 전통적인 공간으로 유역에 자리한 나무숲, 못이나 늪의 연결망을 만들어 왔다. 인도 전역에는 어떠한 신과 이어진다며 현지 마을에서 특별히 보호하는 식생지와 신성한 나무숲이 있다. 그러한 곳은 몇 백 제곱미터부터 50헥타르 이상의 토지와 수역으로 이루어지는데, 신들에게 바치려고 동식물이 개발로 위험에 처해지는 일 없이 전통적으로 전혀 개발되지 않았다.

 

 

서 인도의 아라발리Aravalli 구릉에서는 조그마야Jogmaya라는 신과 관련된 오란스Orans로 알려진 나무숲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금속을 써서 땔감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또 인도 남부 서해안의 카르나타카주 우타라 칸나다현Uttara Kannada縣, 우두피현Udupi縣, 다크시나 칸나다현Dakshina Kannada縣으로 구성된 카나라Kanara 지역에는 최근까지 신성한 나무숲의 연결망이 예전 모습 그대로 작은 수풀부터 1헥타르에 이르는 극상식생의 섬을 이루어 지역의 약 5%나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열대의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데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지금도 이러한 신성한 나무숲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절멸된 식물종이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면 덩굴성 woody climber(Kunstleria keralensis)가 그것이다.

 

덩굴성 식물 '우디 클림버'

 

 

 

방글라데시의 모든 사원에는 적어도 하나의 못이 있고, 그러한 못에 사는 동물은 침해하지 않는다. 2개의 성스러운 못은 절멸위험종을 보전하고 있는 곳이라 생물학적으로 흥미롭다. 칸 자한 알리Khan Jahan Ali는 악어가 사육되고, 바야지드 보스타미Byazid Bostami 사원에도 박묵자라(Trionyx nigricans)가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유일한 자라의 서식지이다. 서기 300년에 초기 불교의 사원이 세워진 장소에 이슬람교인 바야지드 보스타미 사원이 건설되었는데, 자라와 신성한 못을 보호하는 전통이 이슬람교에도 동화된 고대의 전통인 듯하다.

 

 

 

 

농업생물다양성을 유지하다

 

 

인도는 재배 작물도 엄청나게 다양하다. 주요 작물의 한 예로 콩을 들자면, 베다 시대에는 약 40만 품종이 있었다고 벼 전문가 리차리아R. H. Richaria 박사는 평가한다. 박사는 2만 종의 콩을 마드야 프라데슈주Madhya Pradesh州와 차티스가르주Chhattisgarh州에서 모아 특정하고 있다. 쌀은 해마다 국내에서 재배되는데, 재배 표고는 해발 3m 이하부터 2100m 이상까지 이른다. 강우량도 연간 500밀리미터인 지역에서 자라는 콩 품종이 있다. 수많은 농업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연관된 문화적인 관습이 있다.

 

 

예를 들겠다. 오리사주Orissa州 푸리Puri의 자간나트Jagannath 사원에서는 날마다 새로 수확한 쌀을 요리로 내는 관습이 있다. 이것은 1년 내내 수확할 수 있는 수많은 쌀 품종이 있었다는 뜻이다. 카르나타카주Karnataka州와 안드라 프라데슈주Andhra Pradesh州에서는 해마다 정월에 우가디Ugadhi라는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에서는 알맞은 품종을 선발하려고 다양한 종자의 발아력을 시험하는 의식이 열린다. 타밀나두주에서도 무라이파리Mulaippari 축제가 있는데, 똑같은 기능을 하는 듯하다. 다양한 곡물 품종의 특성을 관찰·이해하고서 용도와 상태에 따라 심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타밀나두주에서는 모래나 먼지가 날리는 건기에 심는 데 알맞은 벼 품종이 있다.

 

 

 

 

종교와 문화로서 사회에 엮어 넣은 생태적 삶

 

 

현재 환경에 우수한 과학기술과 개발 모델을 온 세계에서 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대부분은 과거 몇 세기 동안 환경을 파괴한 공업화에 대한 사후 약방문일 뿐이다. ‘더욱 자연에 좋은 것’이란 요구는 널리 논의되고 있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는 자연과 대립하는 철학의 ‘조정책’일 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도에는 명확히 생물다양성과 생물자원의 보전과 관련 있는 전통이 있었다. 과거 200년 동안 인도 사회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는데, 많은 전통과 관습이 남아 왔고, 그 전통을 보면 인도 사회가 그것을 기본 개념으로 하여 본질적으로 ‘생태적으로 자연에 우수함’을 알 수 있다. 모든 사회적·문화적·종교적 관습과 전통이 생태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것은 사회의 핵심에까지 스며들어가 엮여 있었다.

 

 

<참고문헌>

A.V.Balasubramanian, Traditional Indian Agriculture and Natural Resourced Management : Current Relevance and Future Potential bulletin - article on traditional indian agriculture, August 2003.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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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도의 식물 과학 2 - 브르크쉬 아유르베다Vrksh ayurveda

 

 

 

아유르베다와 만나다

 

인도 지식체계 센터(Centre for Indian Knowledge Systems)를 설립한 비자야락시미Vijayalakshmi 박사는 브르크쉬 아유르베다와 처음 만났던 때를 이렇게 기억한다.

 

비자야락시미 박사.

 

 

“어렸을 때부터 저는 원예를 매우 좋아해서 집에 작은 텃밭이 있었어요. 그래서 많은 꽃이 피곤 했는데, 어느 날 동아(ash gourd)가 하나도 여물지 않고 꽃도 시들어 버렸지요. 원예를 도와주던 한 노인이 이렇게 말했어요. ‘아, 이걸 살리는 건 매우 간단하지.’ 그는 뿌리 근처에 구멍을 파고 갈바눔(Ferula gummosa, 건조지에서 자라는 미나리과 식물)을 넣었어요. 그러자 2주일쯤 되어 꽃이 되살아나고 작은 열매를 맺었지요. 더 놀라운 건 그해에는 한 포기의 덩굴에서 동아가 100개나 달렸다는 점이에다. 이 일의 원리를 이해한 건, 15년이나 지나 브르크쉬 아유르베다의 문헌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예요. 갈바눔은 산스크리트어로 힌구hingu라고 하는데, 도샤dosha의 균형을 맞추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꽃이 과실이 되는 과정에서는 바타Vaatha가 지배합니다. 바타란 높고, 가늘고 길며, 경량이고, 표면이 엉성하고, 약간의 태양열로도 시들어 버리는 잎을 가진 식물에 할당될 수 있는 분류로, 이 바타의 균형이 무너지면 꽃은 시들어 버리지요. 그렇지만 뿌리에 갈바눔을 적용하면 이 불균형이 줄어서 체계가 정상으로 기능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대풍작을 가져왔어요.”

 

그리고 비자야락시미 박사는 이렇게 주장한다. 농약의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으며, 환경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하지만 브르크쉬 아유르베다의 연구는 생태학의 원칙에 바탕을 둔 건강한 해충 방제의 정보를 준다. 화학비료도 비싼데, 브르크쉬 아유르베다는 그 대체 수단으로 쓸 수 있다. 우리는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토양·물·공기를 오염시키고 있다. 인도의 전통농법을 공부하는 일은 그러한 일을 저지르지 않고도 높은 수확량을 올리는 농업을 실시하는 방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근대농업의 기술이 지속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 입증되고 있는 지금, 이 점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다. 고대 농업의 전통을 공부해 내용을 풍부하게 하면 우리는 세계를 풍족하게 만들 수 있다.

 

 

과학이라 할 수 있는 아유르베다

 

도샤와 바타라는 개념은 근대 과학과는 너무 괴리되어 있다. 브르크쉬 아유르베다가 정말로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비자야락시미 박사는 과거, 현재, 미래에도 한결같이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브르크쉬 아유르베다가 과학이기 때문이다. 인도에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대 문헌이 파묻혀 있어 정확한 수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최대 3억 개의 문헌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인도에서는 고대부터 지식과 경험을 종합시켜 왔다. 고대의 경전 냐야 사스트라Nyaya Sastra에는 의미 있는 지식을 얻는 방법이 명확히 설명되어 있다. 사스트라는 지식에는 3개의 근원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직접 관찰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문헌에 있는 축적된 지식이고, 세 번째는 관찰과 경험을 통해 타당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의료로 유명한 아유르베다도 이러한 합리적인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고대 인도의 문헌은 의료와 철학과 종교만이 아닌 농축산업과 강우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식물 과학 브르크쉬 아유르베다는 높이 평가되며, 내용도 상세하고 폭넓고, 씨앗의 수집과 선발법, 발아와 파종, 심는 법, 육묘, 경작, 토양과 거름, 농업기상, 병충해 방제 등 근대 농학이 다루는 주제의 대부분을 망라하고 있다.

 

 

연구를 시작하다

 

1980년대 인도에서는 발라수브라마니안A. V. Balasubramanian 박사에 의해서 인도의 전통 과학기술을 탐구하는 ‘애국과 인민을 지향하는 과학기술(Patriotic and People Oriented Science and Technology)’ 운동이 전개되었다. 운동의 배경에는 인도 농업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크나큰 문제를 남긴 ‘녹색혁명’이 있다. 센터가 브르크쉬 아유르베다에 주목한 것도 이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이후 센터는 민간에 남아 있는 속담과 전승으로부터 전통농법을 연구하고, 고전 문헌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일을 그다지 중요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센터에서 직접 남새밭에서 초기 실험을 시작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발라수브라마니안 박사. 

 

 

그 계기가 된 것은 신지학 협회(Theosophical Society) 첸나이 본부에 있는 50그루 이상의 망고가 망고잎 가루이에게 큰 피해를 입은 일이었다. 신지학 협회는 화학 농약을 쓰고 싶지 않아 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센터는 브르크쉬 아유르베다에 기초하여 피해가 큰 부분은 없애고 가벼운 부분에는 님Neem과 폰그람pongam(Pongamia pinnata) 기름, 카란쟈Karanja(Derris indica)를 2.5% 섞은 비눗물을 10일 간격으로 3번 뿌리고, 다음으로 비당가Vidanga(Embelia ribes)와 울금(Kasturi manjal= Curcuma aromatica)의 씨앗 가루를 4:1로 섞어서 훈증했다. 그 결과 새로운 잎이 움트고, 그해에 꽤 괜찮은 수확을 올렸다. 이 방법이 성공한 덕분에 센터는 신용을 얻었다. 또 이와 함께 센터는 브르크쉬 아유르베다를 소개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간행물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실제로 브르크쉬 아유르베다를 시험하든지 센터에 조언을 구하는 사람도 생겼다.

 

님 나무의 꽃, 잎, 열매. 

 

 

폰그람 나무. 

 

 

카란쟈. 

 

 

현지의 주요 농작물은 벼이다. 그래서 센터는 1997년부터 발아의 개선, 병해충 내성, 자람새를 자극하는 효과를 확인하고자 논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에 쓰인 것은 토종 벼 품종인 쿨라카르Kullakar로 브르크쉬 아유르베다에 바탕을 두고 4가지 발아 시험이 행해졌다. ① 24시간 물에 담근다. ② 소의 오줌과 창포의 가루를 섞은 데에 24시간 담근다. ③ 24시간 우유에 담그고, 그 뒤 물에 씻어 소똥을 겉에다 바른다. ④ 24시간, 물과 섞은 소똥에 담근다. 그리고 7일 뒤 아무 처리를 하지 않은 대조 구역과 발아율 및 자람새를 비교·측정했다.

 

성장 촉진 실험도 행해졌다. 토양, 외양간두엄, 나무재를 섞어 넣은 포트에 모종을 기르고, 아주심기를 하기 전에 ① 물에 희석한 소의 오줌, ② 소의 오줌, ③ 우유와 빤짜가브야panchagavya라고 불리는 성장 촉진제에 담근다. ④ 물과 기Ghee를 섞어서 거기에 담근다. 그리고 45일 뒤에 다시 산양 고기의 추출물, 검은녹두의 가루, 그리고 참깨로 만든 성장 촉진제를 전체에 흩뿌리고 그 7일 뒤에 모종의 길이와 잎의 수를 측정했다. 또 수확한 뒤의 알곡의 무게와 병의 발생 상황도 조사했다. 이 실험으로 종자를 물에 담그면 발아율이 높아진다는 점, 성장 촉진제를 적용하면 쌀의 수확량이 거의 배나 늘어난다는 점을 알았다. 타밀-나두 농과대학이 1986년에 육종한 폰니벼(ponni rice)에 성장 촉진 물질을 쓰는 실험도 진행되었다.

 

인도에서는 성스러운 동물로 여겨지는 암소의 다섯 가지 생산물인 젖, 다히Dahi, 기Ghee, 똥, 오줌을 빤짜가브야라고 한다. 이 가운데 우리에게 생소한 다히는 인도식 요구르트이고, 기는 인도의 정제 버터이다. 위의 사진은 빤짜가브야를 상징하는 신의 모습이다.

 

 

파종하기 전에 희석한 소의 오줌에 볍씨를 담그면, 반점병이나 도열병의 발생이 훨씬 줄어든다는 점도 알았다. 볍씨를 우유에 담그면 바이러스, 특히 퉁그로tungro 바이러스병, 그라시 스턴트 바이러스grassy stunt virus에 대한 저항성이 높아진다는 점을 알았다. 가까이에 있는 논이 병에 걸렸을 때조차 이런 처리를 한 볍씨에는 내병성이 있었다.

센터는 채소에도 내병성, 병해충 방제, 식물 성장에 효과가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렇게 개발된 농법은 오크라, 아프리카 가지, 고추, 토마토의 수확량 개선과 병해충 방제에 효과가 있었고, 허브 가루를 활용한 종자 소독법도 개발되었다.

 

 

농민과 힘을 모아 연구하여 만든 농법

 

그런데 동시에 문제점도 깨달았다. 고대의 인도 문헌은 찬가, 기도, 만트라와 같은 고대의 처방전을 포함하고 있다. 브르크쉬 아유르베다의 처방전도 일반적이라 사용 비율을 알 수 없었다. 현지의 대학에서 식물학을 전공하던 학생들이 파종 전에 씨앗을 우유에 담그는 실험을 행한 적이 있다. 브르크쉬 아유르베다에 발아와 성장 촉진의 효과가 있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한 결과는 발아율이 높아진 경우도 있지만, 그런 효과가 없는 사례도 있었다. 우유에 담근다고 해도 어느 가축의 젖인지, 얼마나 희석하는지, 담그는 시간은 어느 정도인지 전혀 몰랐다. 전통 의료의 분야에는 수많은 전문의가 있는데, 전통농업에는 도무지 실천자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농민들이 방법을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농민들은 피해 방제를 위하여 칼로트로피스 기간테아Calotropis gigantea가 만드는 라텍스Latex를 쓰고 있었다. 고대 문헌에는 그저 언어로만 언급되어 있는데, 농민들은 실제로 이 식물의 살충 효과를 활용하는 실용적인 방법을 알고 있었다. 푸른 잎을 포대에 담아서 물꼬에다 가라앉혀 놓으면, 잡초나 진디가 방제되었다. 또 잎을 하루 정도 물에 담그고 필터로 거른 뒤 흰개미가 창궐한 흙에 뿌리면 흰개미가 사라진다.

대개 농민들의 행동은 서양의 과학기술에 의해 분석된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전통농법을 강화하는 데에는 이어지지 않는다. 서양 과학이 유효하다고 선언하기까지는 대체로 무시되고, 과학의 하나로 편입시키는 경우에도 전통적인 실천은 따로 격리되어 단편화되어 버린다. 이 때문에 센터는 브르크쉬 아유르베다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농민들의 실천을 이해하려고 시도했다. 농민의 실천과 고대 경전의 지혜를 결합하는 것으로 농업을 되살릴 수 있었다.

 

칼로트로피스 기간테아. 

 

 

인용문헌

 (1) K. Vijayalakshmi, First Encounters with Vrkshayurveda, Centre for Indian Knowledge Systems

 (2) Vegetable Vrkshayurveda, Centre for Indian Knowledge Systems

 (3) Successful Vrkshayurveda Experiments at CIKS, Centre for Indian Knowledge Systems

 (4) A.V. Balasubramanian, K. Vijayalakshmi, Subhashini Sridhar and S. Arumugasamy,Vrkshayurveda experiments, Linking ancient texts and farmers’ practices, COMPAS magazine,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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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전통 축산업 - 코란가두

 

 

 

몇 백 년 전에 탄생한 인공 꼴밭

 

서인도해에서 발생한 남서 계절풍은, 서西가트산맥의 서쪽에 많은 비를 뿌린다. 하지만 산맥에 가로막힌 동쪽의 타밀-나두주는 연간 강수량이 600~675㎜밖에 안 된다. 홍토紅土와 모래 토양으로 보수력도 떨어지고, 1㎢에 평균 인구밀도는 256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지역에서도 사람들은 지속가능한 농업을 발생시켜 왔다. ‘코란가두Korangadu’라고 부르는 전통적인 목축업 체계가 그것이다.

 

 

타밀-나두주. 

 

타밀-나두주州는 30개 현縣으로 이루어졌는데, 카룰현Karur縣, 이로데현Erode縣, 코임바토레현縣, 딘디굴현Dindigul縣 등 500개 이상의 마을에 꼴밭이 있고, 모든 면적은 약 5,0000㏊에 이른다. 코란가두는 현지 타밀어로 ‘식생이 자연 발생하는 농사땅을 갈아엎지 않고 남겨 놓는 것’을 뜻한다. 몇 세기 이전부터 다라푸람Dharapuram과 칸가얌Kangayam 지역의 농민들은 건조한 기후 조건에 알맞은 작물을 재배해 왔다. 그리고 식생이 자연히 재생되도록 농사땅의 일부를 묵혔다. 묵히는 땅에는 비가 내리면 자연히 식생이 자라고 콜루카타이Kolukattai란 풀이 우선종優先種이 되었다. 농민들은 이 묵히는 땅에만 가축을 들이고 농사땅에는 들이지 않았다. 그 뒤 이 농사짓지 않는 땅이 집짐승을 놓아먹이기에 아주 알맞은 곳으로 바뀐다. 그래서 다른 가축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시가 있는 떨기나무를 키워 울을 삼고, 물루 킬루바이Mullu Kiluvai(Commiphora berry)로 꼴밭을 구분했다. 이와 같이 한해살이풀과 여러해살이풀을 포함해 풀과 콩과식물 및 나무로 된 3층 구조의 인공 생태계가 탄생했다.

 

 

콜루카타이. 이삭가시풀 종류이다.

 

 

화학비료 없이 방목지를 유지

 

먼저 코란가두의 꼴밭이 지역의 기상 조건을 얼마나 잘 활용한 것인지를 살펴보자. 이 지역에서는 비에 따라 크게 세 계절로 구분된다. 연간 강우량의 20%가 내리는 더운 여름(2~5월), 그리고 남서 계절풍(6~9월, 30%)과 북동 계절풍(10~1월, 50%)의 시기이다.

 

코란가두 꼴밭을 개발하는 일은 여름철에 땅을 갈아엎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푸라타시Purattasi(9월)~입파시Iypassi(10월)에 콜루카타이풀을 심는다. 씨앗은 약 37㎏/㏊면 충분하고, 이미 완성되어 있는 꼴밭에서 타이Thai(1~2월)의 시기에 수확한 것을 쓴다. 풀의 밀도는 18~25포기/㎡이다. 땅심을 더 늘리고자 앞서가는 농가는 영양가가 높은 콩과식물 나리파야루Naripayaru(Phaseolus trilobus)과 콜루Kollu(Dolichos biflorus)의 씨앗을 각각 약 25㎏/㏊의 비율로 섞어서 흩뿌린다. 풀을 파종하고 나서 1년은 방목하지 않고, 2년째부터 방목한다. 그리고 2~3년이 지나면 흙의 통기성과 습도를 보전하고자 다시 갈아엎는다. 2~3년 이상이나 가뭄이 계속되고 풀의 상태가 나빠지면, 농민들은 콜루카타이의 씨를 다시 뿌린다. 그리고 5월과 9월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풀은 싹을 틔운다. 하지만 일정 키로 자라기까지 약 1개월은 꼴밭에 가축을 들이지 않는다. 그 뒤 6월 중순~9월 중순까지, 그리고 북동 계절풍으로 풀이 자라는 10~1월은 목초만으로 가축을 기른다.

  

나리파야루 표본. 

 

 

콜루.

 

곧 적어도 8~10개월은 목초만으로 가축을 기르는 것이다. 게다가 먹이의 씨앗은 가축의 똥을 통해 자연히 파종되고, 가축 똥의 양분이 재활용되기 때문에 꼴밭은 화학비료를 주지 않아도 자연히 유지된다. 다음의 3~6월에 걸쳐서는 꼴밭에 풀이 없다. 여름철에도 예외적인 비가 내릴 경우를 제외하고 풀은 거의 자라지 않는다. 이 때문에 농민 가운데는 12~1월에 자란 풀이 아직 푸를 때 베어서 제철이 아닐 때 먹이로 주는 사람도 있다.

 

상층에는 현지에서 벨벨 마람Velvel maram이라 부르는 아카시아(Acacia leucophloea) 등의 나무가 산다. 아카시아는 6~7년으로 열매를 맺고, 7~8년이면 다 자란 나무가 되고, 여름철에는 해마다 40~50㎏의 씨를 맺는다. 꼬투리는 조단백질을 14.86% 함유하여 이것도 가축의 좋은 먹이가 된다.

 

 벨벨 마람이 제공하는 그늘 아래 모인 가축들.

 

소와 양은 꼬투리를 먹는데, 이 씨앗은 소화되지 않아 똥으로 나와 퍼진다. 또 꼬투리는 2~4월에는 땅으로 떨어지는데, 이 꼬투리를 방목지에서 모아 제철이 아닐 때 먹이로 쓴다. 알비지아 아마라Albizia amara(우실라이Usilai) 등의 다른 사료 나무가 자라는 경우도 있다. 어린 양을 먹이려고 수수씨를 섞은 것도 있는데, 양은 아침마다 이러한 혼합물을 0.5㎏ 먹는다.

 

알비지아 아마라 꼬투리. 

 

코란가두의 꼴밭이 있는 기상 조건에서 자연 식생은 아카시아로서, 낮에는 가축이 쉬는 그늘도 제공한다. 하지만 꼴밭 안의 아카시아 수는 30~35그루/㏊밖에 없다. 이것도 목초의 생육을 방해하지 않도록 농민의 지혜로 산출한 최적의 수로, 인공적으로 만든 식생이다. 인공 방목장에 풀이 있는 시기에 방목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해진다. 그리고 각 방목지에 설치한 돌과 시멘트로 만든 통에 마을에서 자전거와 달구지로 가져온 물을 준다. 하지만 가축은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너른 꼴밭도 있지만, 대개의 꼴밭은 생울타리와 가축이 들어가는 작은 대나무 문에 의해서 1~2㏊ 넓이의 방목장으로 나뉘어 있다.

 

이 울타리를 만드는 데에 쓰이는 것이 가시나무인데, 가뭄에 내성이 있는 물루 킬루바이Mullu Kiluvai(Commiphora berry)이다. 생울타리는 1.5m 높이, 0.6~0.75m 너비인데, 대부분의 방목장에서는 습기를 보존하고 생울타리의 활력을 유지하려고 울타리를 따라서 얕은 도랑을 파 놓았다. 또 생울타리의 지지대로서 아자디라츠타 인디카Azadirachta indica와 알비지아 아마라Albizia amara가 심어져 있는 곳도 있다. 이 생울타리도 아니Ani(6월)~아디Adi(7월)에 길이 120㎝, 두깨 3㎝의 물루 킬루바이의 그루터기를 30㎝ 정도 구덩이를 파고 심어서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다. 생울타리를 만드는 데에는 약 75명/㏊의 노동력이 든다. 꺾꽂이한 것이 생존하여 활착하는 것은 계절풍이 시작되는 9~10월인데, 해마다 말랐던 곳에 새롭게 묻어서 심어야 한다. 하지만 생울타리에 쓰인 식물도 약용 식물로 쓰여 민간요법에 도움이 되고, 알비지아 아마라Albizia amara의 잎과 꼬투리는 천연의 머리카락 영양제가 되어 농민이 추가 수입을 올린다. 또 때로는 민나마람Minnamaram(Premna serratifolia)과 같은 식물종도 자생하는데, 이 가지는 잘라서 현지에서 아투파티Attupatti라고 부르는 양의 축사를 만드는 데 쓴다.

 

민나마람.

 

 

토종 가축을 보전

 

전통적인 꼴밭에서는 농민들에 의해서 다양한 토종 가축이 보존되어 왔다. 소로는 ‘칸게얌Kangeyam’ ‘풀리쿨람Pulikulam’ ‘말라이마두Malaimadu’, 양으로는 ‘쿠룸바이Kurumbai’ ‘마일람바디Mayilambadi’, 거기에 토종 물소와 염소도 계승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특징적인 것은 ‘칸게얌’이란 종일 것이다. 이 소는 1900년대에 나타카다유르Nathakadayur 마을의 칸게얌에서 팔라얌코타이Palayamkottai(Nallathambi Sarkarai Mandradiar)의 파타가르Pattagar 일족이 마이소르Mysore의 ‘암리트마할Amrithmahal’과 ‘힐라리Hilari’란 종을 교배하여 육종했다. 이 소는 가뭄에 강하여 우물에서 물을 긷거나 건조한 땅을 갈아엎는 일에 활용되고, 타밀-나두주의 칸게얌, 다라푸람, 벨라코일Vellakoil, 칸게얌 티루푸루Thirupur, 팔라니Palani, 카룰Karur, 페룬투라이Perunthurai, 아라바쿠리치Aravakurichi의 각지에서 농민들이 사육해 왔다.

 

칸게얌.

 

 암리트마할.

 

누구나 떠받치는 토지제도

 

코란가두 꼴밭은 각 농가의 사유지이고, 소유하는 농민은 5만 명 이상에 달한다. 또 방목장의 규모는 각 개인의 경제 상태에 따라 1.5~10㏊의 넓이다. 평균하면 3㏊에 2~3마리의 소, 1마리의 물소, 12~15마리의 양을 사육하고 있다. 4㏊의 코란가두 꼴밭은 2마리의 다 자란 소와 2마리의 송아지, 또는 40마리의 양이나, 5마리의 물소, 20마리의 염소를 유지하는 데에 충분하다. 농민들은 다른 지역처럼 배합사료로 기르는 가축에서 보이는 영양불량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축에게 좋은 영양이 되는 많은 자연 사료가 있기 때문이다. 젖은 수입원이 되고, 거세우로 팔기도 한다. 숫양도 팔고, 암양은 2년에 3마리의 새끼양을 낳기에 이것도 수입원이 된다. 2㏊의 꼴밭에서 1마리의 소, 1마리의 물소, 20마리의 양을 사육한다면, 10년에 10,2000루피(4000달러)의 순익을 올릴 수 있다.

 

또 너른 방목장을 소유하고 있어도 가축은 몇 마리밖에 없다. 또는 은퇴하거나 경작지를 줄이고 도시에 사는 유복한 농민은 토지가 없는 농민에게 1년에 5000루피/2㏊를 받고 빌려준다. 또 5,0000루피로 ‘오티Othi'라고 부르는 축사에 장기 방목 계약을 할 수 있기도 하다. 토지가 없어 땅을 빌리는 농민이 양과 같은 가축을 기를 때 소유자에게 종신토록 빌리는 경우도 있다. 이것도 2㏊의 방목장에 5,0000루피(약 1120달러)를 지불하고, 계약을 맺어 2~5년에 무이자로 갚아 나아간다. 이 때문에 토지가 없는 농민과 농업노동자도 소, 물소, 양, 염소를 사육할 수 있고, 농지가 없는 가족도 꼴밭을 써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바람직한 전통의 부활

 

이처럼 코란가두는 어느 마을 사람에게나 인정받는 우수한 체계다. 하지만 지금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현재는 전통적 꼴밭 체계를 정부의 유역 개발계획에서도 취급하지 않는다. 칸게얌 소를 늘리기 위한 보조금도 이전에는 있었지만, 축산 당국은 이 사업을 폐지해 버렸다. 칸게얌 소가 생산하는 우유의 양은 적다. 또 낙농업이 확대되어 더 많은 젖을 얻을 수 있는 저지jersey 소와 교배되고 있다. 젊은이들 가운데에는 양과 교배한 젖소를 기르려고 꼴밭을 쓰는 사람도 있는데, 순수종 소를 유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칸게얌 소의 거세우는 달구지로 농산물을 수송하는 데 쓰이고 있는데, 트렉터가 도입되어 지금은 놀라운 비율로 줄어들고 있다. 순혈종은 약 60마리뿐이다. 1950년대에는 2000마리의 수소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남은 소는 겨우 2%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모든 소의 수는 약 47만 마리로 어림하고 있다.

 

또 대다수의 농민은 지하수가 부족하여 위약한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300m 이상의 깊은 우물을 파거나, 꼴밭을 목화·옥수수·원예작물을 재배하는 대규모 단작 재배로 전환하고 있다. 계절풍이 불안정해지거나 건조화가 진행되어 가뭄이 빈번해지는 일도 우려스럽다. 가축은 다른 곳에서 사오는 수수와 짚, 건초로 기를 수밖에 없기에 경비가 늘어나는 일로 이어진다. 콜루카타이 씨앗을 다시 뿌려야 하고, 물루 킬루바이를 꺾꽂이해도 새롭게 묶은 것에서 싹이 잘 자라지 않는다. 탄가코디Thangakodi라고 부르는 기생풀 스트리가 루테아Striga lutea도 귀찮은 문제이다. 스트리가는 풀과 콩과식물의 성장을 방해하여 크나큰 손실을 가져온다.

 

하지만 코란가두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검증·확립된 체계이다. 700㎜ 이하의 비가 불안정하게 내리는 전형적인 건조 지대이지만,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다.

 

첫째, 독특하고 귀중한 토종 가축을 보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풀, 콩과식물 및 나무를 조합하여 저투입으로 가축 생산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둘째, 농지를 갖지 않은 가족도 가축을 방목할 수 있고, 가난한 가족의 생활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새롭게 코란가두의 초원을 개발하는 데에는 1,8500루피/㏊, 나빠진 기존의 꼴밭을 개량하는 데에는 1,2000루피/㏊의 경비가 든다. 하지만 코란가두란 체계가 추진된다면 가난한 가족에게도 소득을 가져올 것이다. 실제 농민과 토지를 빌리고 있는 농업노동자, 합계 2564가족이 자신의 토지와 빌린 땅에서 코란가두를 개발하고 싶어 한다.

셋째, 코란가두란 생태농업에서는 토양 수분이 유지되어, 건조 지대의 지하수를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화학비료 없이도 토종 사료작물과 콩과식물에 의해서 토양 부식과 양분이 유지되고, 거기에 가축이 싸는 똥과 오줌으로 토양 생물도 풍족해진다. 곧 지역의 생태 환경, 지역 문화와 생활양식도 보존해 왔다. 코란가두 체계가 가뭄의 위험에 강하다는 점도 분석되어 있다. 곧 초원 관리의 전통 지식은 과학적으로 기록·분석하고, 보전·확대할 가치가 있는 귀중한 유산인 셈이다.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1) Korangadu Silvo-Pastoral Management System, GIAHS, FAO.

 (2) Korangadu:A centuries-old system of private pastureland management,Dr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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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전통농업 - 농장에서 씨앗을 보전한다

 

 

 

20만 종의 벼가 있는 보물창고

 

인도는 야생 식물은 물론 작물에서도 생물다양성의 보고이다. 저명한 벼 연구자 리차리아Richharia 박사에 따르면, 베다 시대(기원전 1500~600년 무렵)에는 40만 종의 벼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보다 줄었다고는 해도 박사에 따르면 아직도 20만 종이 존재하고, 실제로 그는 마디야 프라데쉬주Madhya Pradesh州의 차티스가르 지역에서만 2만 종의 벼를 수집했다.

 

하지만 지금 이러한 품종은 격감하고 있다. 그 까닭은 녹색혁명 때문이다. 녹색혁명에서는 수확량만 중요시하여, 화학비료에 반응하여 많은 수확량이 나오는 극소수 품종만 선발된다. 결과적으로 광대한 영역에서 높은 수확량을 올리는 품종만 재배되어 유전자가 획일화되어 버린다.

 

그런데 유전자의 획일화에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획일화된 작물은 병해충에 위약해져, 어느 작물에 영향을 주는 병해충이 비슷한 작물 모두에 확 퍼진다. 1970년대에 벼 생육 저해 바이러스(Rice grassy stunt virus)가 인도부터 인도네시아에 걸친 광대한 논에서 확 퍼졌던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 병의 해결책은 토종에 있었다. 1,7000종 이상의 재배 벼 품종과 원종 표본을 4년에 걸쳐서 선별 검사한 결과, 인도의 우타르-프라데쉬주Uttar-Pradesh州의 곤다Gonda 근교에서 재배되는 오리자 니바라Oryza nivara라고 불리는 한 품종만이 이 병에 저항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지금 이 인도 야생 벼의 유전자를 가진 교배 품종이 아시아의 11만㎢의 논에서 재배되고 있다. 곧 앞으로 있을 품종 개량의 기초가 되는 유전자를 공급하는 것이 바로 토종이다. 이를 통해 유전자의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농민들은 왜 20만 점의 토종을 보존해 왔을까? 그 까닭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먼저 토종은 수확량만이 아니라, 짚으로 소의 먹이도 주고 집을 짓는 재료로 활용하는 등 다양하게 농민들의 수요를 만족시켜 왔다. 그리고 대개의 토종은 튼튼하고 병해충에 내성이 있는데다가 화학비료나 농약 등의 투입 자재를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환경조건에 따라서 다수확품종보다 토종이 알맞은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타밀-나두주의 알칼리성 토양에서는 칼라르팔라이Kalarpalai라고 하는 토종 벼만 재배할 수 있고, 바단 삼바Vadan Samba와 같은 가뭄에 내성이 매우 강한 품종도 있다. 한편 호수에 인접하여 물에 잠기는 지역에서 자라는 삼바 모사남Samba Mosanam은 물에 잠김에 강하다. 원래 삼바 모사남은 호수에서 배를 타고 거둔다고 할 만큼 다수확품종을 기를 수 없는 1.4m나 물에 잠긴 조건에서도 전혀 해를 입지 않는다. 이처럼 인도의 어느 지역에서도 농민은 자신들이 가진 벼 품종의 이러한 환경적·영양적 특성과 독특한 특징에 대해 깊은 지식이 있다. 혹독한 환경에서도 작물을 기를 수 있었던 것은 이 다양성 때문이었다.

 

비자야라크쉬미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토종을 기르면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토종에는 그것이 버텨 온 지역의 생태 특성에 바탕을 둔 고유한 성질을 지녀, 결과적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영양을 훨씬 잘 확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 말고도 토종 유전자원을 보호하여 변경에 사는 소농들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토종 보전을 시작하다

 

지금도 수많은 토종 벼가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보전하고 있는 것은 단지 농민들뿐이고, 계속해서 엄청난 비율로 사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인도 지식 센터는 타밀-나두주 안의 각지에서 종자 보존에 나섰다. 그 계기는 전통농법으로 병해충을 방제하면서부터였다.

 

1993~1994년에 걸쳐 센터는 티루반나말라이현Tiruvannamalai縣, 센감 탈루카Chengam Taluka의 발라얌팟투Valayampattu 마을에서 식물을 활용한 해충 방제에 나섰다. 농민이 참여하는 실험 프로그램은 꽤 성공을 거둬, 농민들은 식물의 생성물을 화학 농약 대신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농민과 모여서 이야기하면서 녹색혁명 이전에 재배하던 토종이 있다면 더 유익할 거라고 하던 농민이 있었다.

 

인도에는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 박사가 이끄는 인도 전역에서 토종 보존에 나선 NGO인 나브단야Navdanya가 있다. 센터는 1995년 나브단야와 접촉하여, 그 지원을 받아 1995년 발라얌팟투 마을에 있는 농장에서 씨앗을 보전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먼저 한 일은 타밀-나두주 안에 있는 여러 지역 NGO와 협동하는 것이었다. 그 활동은 지역사회에 종자은행을 설립한 ‘동쪽 산맥 운동(Eastern Ghats’ Movement)’과 협력하며 이루어졌다. 이듬해에는 좀 더 아래와 같은 활동을 펼쳐 나아갔다.

 

1) ‘그람미야 무네트라 산감Grammiya Munnetra Sangam’의 지원으로 칸치푸람Kanchipuram 지역의 티루포루르Tiruporur 마을

2) ‘불리한 인간의 개발 센터(Centre for Development of Disadvantaged Peoples)’의 지원으로 티루타니Tiruttani 지역의 네둠바람Nedumbaram 마을

3) ‘비자 평화 센터(VISA Peace Centre)’의 지원으로 반다바시Vandavasi 지역의 모사바디Mosavadi 마을

4) ‘여성의 복지 개발 협회(Women’s Welfare Development Association)‘의 지원으로 우티라메루르Uthiramerur 지역의 마남파티Manampathy 마을

 

1998년에는 ‘인간 활동과 농촌 기술의 진전을 위한 위원회(Council for Advancement of People’s Action and Rural Technology)’의 지원으로 칸치푸람 지역(당시 센갈팟투Chengalpattu 지역)의 캇탄칼라투르Kattankalathu 구역에서 일을 시작하고, 그 뒤 이 활동은 칸치푸람, 티루발루르Tiruvallur, 티루반나말라이Tiruvannamalai, 나가팟티남Nagapattinam의 125개 이상의 마을로 퍼졌다. IDRA, UNDP, 포드 재단 등 다양한 기관도 센터의 활동을 지원했다.

 

 

 

130종 이상의 토종 벼를 수확

 

센터가 먼저 한 일은 토종을 구하는 것이었다. 토종 벼를 찾고자 센터의 현장 일꾼들이 상세히 조사를 했다. 그리고 몇몇 농민이 집에서 먹으려고 보전하고 있던 품종을 얻거나 구입했다. 또 센터는 앞으로 농부가 될 마을의 학생들에게 토종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자 어린 학생들을 참가시키는 생물다양성 대회 ‘비야 야트라Bija Yatra’를 열고, 자발적인 도움으로 토종과 그 정보를 수집했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농업 박람회나 축제에 참가하여 품종을 전시하는 것으로 농민들과 품종 교환을 전개했다.

 

다수확품종의 도입으로 토종은 사라지게 되었는데, 센터에서 토종이 재배되고 있는 지역을 찾아내고 그 쓰임새를 늘리는 일에 약 10년 동안 노력한 결과, 센터는 타밀-나두주에 알맞은 130점의 벼 품종과 50종 이상의 채소를 수집했다. 비자야라크쉬미 박사는 만족하여 말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벼 125품종, 그리고 약 60종의 토종 채소를 간신히 되찾았습니다.”

 

 

토종을 제공받는 농민.

 

 

종자은행의 설립

 

센터의 생물다양성 보전 활동에는 수많은 마을에 ‘지역사회 종자은행’을 설립한 일도 포함된다. 그 방식은 이렇다. 먼저 센터는 각지의 마을에서 토종의 중요성을 알리는 모임을 개최한다. 센터는 자신의 실험농장과 센터에서 선택한 농민들의 밭에 ‘생식영역 보전 센터’를 설치한다. 이러한 생식영역 보전 센터에는 50종 이상의 품종을 재배한다. 거기에 관심을 가진 농민들은 실제 작물을 보고, 토양과 관개조건, 자신의 농업 기후에 알맞은 한두 품종을 재배할지 결정한다. 결정한 농민은 센터를 통해 지역이나 인접 지역에서 이미 재배하고 있는 농민에게 씨앗을 받아, 자신의 농지 일부를 토종 보전용으로 확보한다. 수확한 다음에는 ‘종자은행’에 제공받은 종자의 2배로 돌려주는 것이 씨앗을 받는 조건이다. 이 종자은행 덕에 시장에 내는 다수확품종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현재 집에서 먹으려고 보유했던 토종을 위상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유기농업 집단 산감Sangam 결성

 

다시 토종 보전 프로그램을 약 10년 실시한 뒤, 센터에서는 이 방법을 유지·지속하기 위한 본보기를 고안했다. 그것은 센터의 관여가 끝난 뒤에도 농민들이 스스로 그 활동의 계속하도록 모든 마을에 유기재배 농민 집단인 산감을 결성하도록 한 것이다. 농민들에게 실천을 보이고, 이후에도 활동을 지속하도록 한 것이다. 지역사회의 종자은행은 이러한 산감을 통해 추진되어, 농민들은 다양한 토종을 재배하며 그 양을 늘리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산감에서는 지도자를 뽑는데, 그는 활동의 수익을 내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장려된다. 이 때문에 몇몇 산감에서는 수입원으로 생물농약을 생산하는데, 그 기본 지식이나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센터이다.

 

 

기술 지도에 나선 비자야라크쉬미 박사.

 

 

센터는 외양간두엄과 지렁이두엄을 활용하는 비법, 바이오 거름(Acetobacter Azospirillum 등), 님Neem 씨앗 등의 자재를 제공하고, 토종을 유기재배로 기르는 비법, 식물에서 추출한 자재로 생물농약을 만들고 자연스레 병해충을 방제하는 기술, 두엄을 만드는 기술을 훈련시킨다. 또 다양한 품종의 특성과 수확량 및 상세한 정보도 여러 언어로 교재, 정기 간행물, 서적, 포스터, 필름 형태로 제공한다. 농민, NGO, 학생, 교사, 일반 시민 등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수많은 훈련 프로그램도 실시한다. 학교에서는 글짓기나 웅변대회도 열고 있다.

 

유기농업을 하고, 농장에 투입되는 자재를 자급하는 일은 경비 절감으로도 이어진다. 이 때문에 활동은 지금 약 125개 마을에서 약 3000명의 농민들에게 퍼졌고, 유기재배로 집에서 먹을 채소밭을 가꾸는 세대도 800가구 이상이 되었으며, 유기농가로 이루어진 37개 산감이 설립되었다. 그것은 각 가정에 먹을거리의 안전·안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센터는 이 활동을 주 전체, 나아가 인도 전역에 퍼뜨리려고 한다.

 

개개의 농민은 잃었던 토종을 부활시켜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는 충분한 양의 품종이 제공되어야 한다. 농업 생물다양성은 지역사회가 생물다양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필요를 확신하고, 지역사회의 안에서 다른 곳이 아닌 농민의 밭에서 보전되어야 한다. 곧 센터가 토종을 보전하고자 선택한 방법은, 의식이 유발된 농민들의 연결망을 통해 그들의 농지에서 종자를 보전하는 것이다.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1) Fehmida Zakeer, Indian farmers learn from old ways, People & the Planet,23 Mar,2007.

 (2) Centre for Indian Knowledge Systems, Organic Farming and Indigenous Seed Conservation, Experiences from Tamil Nadu,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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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도의 식물 과학 - 브르크쉬아유르베다

 

 

 

전통을 부활시킨 연구자

 

새롭고 우수한 기술에 끌려 서양에 감화되는 일은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인도의 농민들은 전통 과학의 부富와 가능성을 다시 발견하고 있다. 타밀-나두주Tamil-Nadu州의 주도州都 센내이Chennai의 두 과학자, 비자야라크쉬미K. Vijayalakshmi 박사와 발라수브라마니안A. V. Balasubramanian 씨는 전통농업의 지혜를 부활시키고자 1990년대 초반 인도 지식체계 센터(Centre for Indian Knowledge Systems) 건립했다.

 

 

 타밀-나주 지역 지도.

 

 

센터가 중점을 둔 일은 생물다양성 보전과 유기농업인데, 그 때문에 고대 경전에서 얻을 수 있는 유기농업 기술을 제공하는 일도 센터의 주요한 일이 되었다. 고대 인도의 식물 과학체계인 브르크쉬아유르베다Vrkshayurveda를 오늘날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조사·연구하고 있다. 센터의 본부는 인도 남부의 센내이에 있는데, 타밀-나두의 다섯 지방에 걸쳐 125개의 마을에서 활동한다.

 

비자야라크쉬미 박사는 말한다.

 

“아유르베다에는 수많은 전문 의사인 바이디야vaidya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고대의 브르크쉬아유르베다의 방법론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만큼 없습니다. 그렇지만 희망적인 일은 이 과학에 관한 많은 서적이 있으며, 아직도 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자야라크쉬미 박사.

 

 

박사와 그녀의 팀은 브르크쉬아유르베다의 경전을 연구·해석하여 오늘날에 맞는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있다.

 

“경전에서 얻은 지식에 바탕을 둔 기술을 농민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수요에 알맞도록 수많은 실험을 거친 뒤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과학자재의 대안은 전통농법으로 이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의 선조가 물려준 안전한 농업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실험을 통해 부활한 기술

 

센터는 브르크쉬아유르베다의 고전과 경전이나 민간에 전승되어 있는 문헌 및 현지 조사, 실험실의 연구와 함께 현장 조사를 진행한다. 예를 들면 전통농업에서는 어디서나 가축을 중요하게 여겨 왔는데, 인도에서는 특히 농민과 소의 유대가 깊다. 소는 축력을 제공하고 소똥과 오줌 등의 중요한 농자재도 준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단지 편리함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영적인 면에서도 소를 중요시했다. 그래서 경전 문헌을 검색하면서 센터와 연계하여 ‘지역 전통의료 부흥재단(Foundation for Revitalisation of Local Health Traditions)’이 수집한 농촌 지역사회 일반의 정보도 수집·정리했다. 센터는 ‘내발적 발전 비교 지원(Comparing and Supporting Endogenous Development)’과도 협동하여 ‘전통농업의 가축 제품 이용, 남부 인도의 안내자 프로젝트’도 실시하고 있다. 그 활동은 농업, 전통의료, 천연자원의 경영과 폭넓은 분야에 퍼져 있는데, ‘전통농업의 가축 제품 이용’을 주제로 지역 전통의료 부흥재단, 환경의식종합개발(Integrated Development through Environmental Awareness), 크리쉬 프라요그 파리바라Krishi Prayog Parivara라는 단체와 연계 프로그램을 세워, 농촌 지역사회의 전통적 가축 제품 이용이 지속가능한 곡물 생산의 개선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안드라 프라데쉬Andhra Pradesh주州의 22개 마을과 오리사Orissa주의 3개 마을에서 현장 조사를 행했다.

조사 결과 똥오줌, 뼈, 지방, 피, 가죽, 살코기 등 참으로 다양한 가축 제품이 농업에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것들은 단독 또는 혼합하여 쓰며, 시용하는 방법도 분무·훈증·풀·가루 등의 형태로 다양하다. 그런데 가루나 펠릿 모양으로 염소똥을 흩뿌리거나 구멍에 넣으면 특정한 계절에는 작물 생육에 도움이 된다는 점과, 작물의 둘레에 구멍을 파서 소의 오줌을 흩뿌리면 과실을 부드럽게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비자야라크쉬미 박사는 말한다.

 

“우리의 조직은 연구와 함께 보급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유기농법 기술을 연구하려고 우리의 실험농장과 농민의 밭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베단탄갈Vedanthangal에는 4.5㏊의 센터 실험농장이 있다. 이러한 가축 생산물에 관해서도 그것을 이용하면 실제로 작물의 생리를 개선하는 데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밭과 실험실에서 실증적으로 확인도 했다. 그 결과 전통적인 가축 제품을 이용하는 방법을 표준화하는 활용 설명서의 제작에도 착수하게 되었다.

 

 

 

 

 

농민이 참가하는 연구와 트레이닝

 

실험농장에는 두엄을 만드는 기술, 생물 농약의 준비, 유기농업 기술, 약용식물 밭이 전시되고 있다. 복잡한 유기농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익힐 수 있도록 살아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 센터는 생물 농약과 관련하여 농민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그리고 해충을 방제하는 특성을 지닌 여러 식물을 지난 연구 과정에서 발견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수많은 농민이 그들의 아버지가 병해충에 대처하려고 식물에서 추출한 혼합물을 사용했단 사실을 희미하게 기억해낸 점입니다.”

 

비자야라크쉬미 박사는 말한다. 프로젝트의 큰 성공은, 실제 밭에서 실험을 디자인하고 실시하는 농민들의 참여였다. 이 성공은 농민, 지역사회에 바탕을 둔 조직, 연구자 사이의 의사소통에 따른 것으로, 전통적인 지식 분야를 다시금 깊이 고려해 연구하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초에 농민들이 유기농업으로 전화한 것은 일부 농지뿐이었다. 하지만 농민들은 서서히 모든 농지를 전환시켜 나갔다. 생물 농약을 생산하는 프로그램은 각지의 마을에서 착수되어, 소농이나 여성도 스스로 그것을 쓰거나 대농에게 팔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수입을 만드는 동시에 안전한 농장을 만들어 나아갔다. 검증된 실천이나 기술은 훈련 프로그램이나 간행물을 통해 보급되어 센터는 직접적으로 3000명 이상의 농민과 연관을 맺었고, 약 1만 명 이상은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대부분의 농민은 지식체계 센터에서 개발한 유기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채소 텃밭의 부활

 

센터는 채소 텃밭을 되살리고자 마을의 여성들에게 씨앗도 제공하고 있다. 센터에서는 논에서 재래종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채소 텃밭’이란 방식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라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원인을 규명하는 조사 결과, 센터가 찾아낸 까닭은 씨앗 때문이었다. 여성 농민은 집에서 먹을 채소 텃밭에 심으려고 마음먹어도 고수확 품종의 씨앗 값이 비싸서 살 수 없었다. 게다가 비싼 값을 지불해 겨우 씨앗을 사더라도 그 씨앗의 발아율이 떨어졌고, 이듬해에 다시 쓸 수도 없었다.

 

발라수브라마니안 씨는 말한다.

 

“우리는 채소 텃밭의 개념이 마을에서 무시되고 있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많은 마을 사람들이 고수확 품종 씨앗의 값이 비싸고 효과도 나쁘기에 텃밭에서 채소 기르기를 아예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 채소가 없으면 영양적으로도 좋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걱정하지도 않고 시장에서 채소도 사지 않았다. 그렇다면 재래종을 부활시키면 좋겠다! 센터는 적어도 50종의 재래종 채소를 부활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우리는 채소 텃밭의 설치를 장려하려고 채소와 식물의 종자를 여성들에게 제공했습니다.”

 

센터는 유기 채소를 재배하고, 양질의 종자를 생산하기 위한 훈련도 행했다. 그 결과 약 800세대의 여성들이 작은 채소밭에서 한 달 평균 300루피(45루피=1달러)를 벌어들이게 되었다. 이는 가족의 영양 안정성도 보장한다. 더욱이 병의 치료에 쓰이는 허브도 유기재배하도록 장려하고, 약을 조합하는 지식도 제공했다.

 

“약초밭을 만드는 일을 거들고, 감기와 복통 같은 가벼운 증상에 허브를 쓰는 지식으로 그녀들을 무장시켰습니다.”

 

 

인용문헌

 (1) Fehmida Zakeer, Indian farmers learn from old ways, People & the Planet,23 Mar,2007.

 (2) Abarna R,Revisiting Traditional Knowledge Systems: Livestock an Integral Part of Agriculture, Pro-Poor Livestock Policy Programme, November 2009.

 (3) Centre for Indian Knowledge Systems, Organic Farming and Indigenous Seed Conservation, Experiences from Tamil Nadu,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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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전통농업 - 전통 제방 조하드 2

 

 

 

지역사회의 힘을 믿다

 

라헨드라 싱Rajendra Singh 씨는 가뭄에 고통을 받던 라자스탄주 동부의 물을 보전하는 데 성공했다. 싱 씨가 일하기 시작했을 무렵 이 지역은 물이 너무 부족하여, 정부에서는 지하수의 높이가 낮아지는 ‘어둠의 영역’이라고 분류했다. 하지만 10년 뒤 지하수의 높이는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회복되어, 정부에서는 더 이상 보호가 필요 없는 ‘밝은 영역’이라고 분류했다. 아라바리강의 기적은 국제사회에서도 주목을 받아 많은 상을 받았다. 싱 씨는 엘 로드로 수맥을 찾는 사람,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고, 이 성과로 2001년 로마에서 라몬 막사이사이상도 받았다. 하지만 라헨드라 싱 씨는 수상하면서 오늘은 라자스탄주 사람들의 전통 지혜가 승인된 날이기도 하다며 “자신은 단순히 정리만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농촌 지역사회가 높이 평가받은 것입니다. 물을 보전한 기적은 우리의 조직에게 원조를 받은 마을 사람들의 협력으로 가능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생활수준을 개선하고자 시도하면서 인내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지역사회는 창조적으로 사회변혁을 이룰 잠재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잠들어 있는 지혜의 창고를 열어 그것이 기능하도록 장려했을 뿐입니다.”

 

현지의 행정 당국은 죽어 있었다. 그래서 라헨드라 씨 들은 관료 기구를 통하지 않고 직접 마을 사람들과 대면했다.

 

“일에 착수했을 때, 우리는 정부의 원조 계획과는 전혀 다른 전략을 채용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활동에서도 마을 사람들을 이해 당사자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지속성을 확보하게 했습니다.”

 

최초의 조하드는 완성하는 데에 3년이 걸렸지만, 4년째에는 50개의 조하드를, 5년째에는 약 100개를 쌓을 수 있었다.

 

“최초의 고팔푸라 마을에서는 성과를 거두는 데 3년이 걸렸습니다. 그렇지만 이듬해에는 45개의 마을에서 같은 일을 달성했습니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해서 그렇습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 성공한 이야기를 알려, 인접한 마을이 힘을 모아 또 다른 성공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는 데 영향을 미친 점입니다.”

 

라헨드라 싱 씨는 활동 상황을 파악하고자 마을 사람의 일원이 되어 함께 살았다.

 

“그렇지만 말로는 이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흙과 물을 지역사회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한 뒤에만 방법론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과 함께 살아 보지 않으면 그들이 이해하는 물과 흙의 관계를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전통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타룬 바라트 조합은 외부에서 아무런 원조를 쓰지 않고도 지역의 지식을 적용하는 것만으로 사업을 지속가능하게 반복할 수 있었습니다.”

 

조하드 건설의 수익자인 마을 사람들이 현금 등으로 부담한 경비는 건설비의 1/4에서 1/3이었다. 나머지 경비를 부담한 것은 타룬 조합으로, 조합은 포드 재단Ford Foundation, 옥스팜Oxfam, 다양한 유럽의 정부 기관, 인도 정부와 라자스탄 주정부에게 지원을 받았다. 또 라헨드라 싱 씨 말고 직원 모두는 마을 출신으로 뽑아, 이러한 경비가 현금이나 고용의 형태로 마을로 이어졌다.

하지만 조하드를 건설하기 위한 모든 노동력을 제공한 것은 현지의 마을 사람이었다. 또 상근직원에 더해 230명의 시간제노동도 있었고, 몇 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조하드의 설계와 건설을 지원했다.

외부에서 전문가와 기술자를 초빙하지도 않고, 조하드를 쌓을 곳을 정하는 일부터 구조를 설계하는 일까지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참가로 건설되었다. 그 공사비와 유지관리비도 지역사회가 부담하고, 스스로 정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필요 요건을 만족시켰다.

이러한 활동이 전개된 배경에는 라헨드라 싱 씨의 경력이 있다. 그는 학생시절부터 자야 나라얀Jaya prakash Narayan의 삼푸르나 크란티Sampurna Kranti 혁명운동에 관여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천연자원을 이용하기 위하여 대중을 동원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라헨드라 싱 씨가 1985년 가장 처음으로 마을을 찾았을 때는, 마을의 극단적인 반대에 부딪쳐 테러리스트라는 딱지가 붙기도 했다. 또 1990년대 전반 사리스카 호랑이의 성역을 보전하면서는, 대리석 광산의 이익과 대립하여 광산 소유자들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았다. 라헨드라 싱 씨는 이렇게 기억한다.

 

“조하드를 건설한 뒤에도, 사리스카 주변의 못이나 호수의 물높이가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곧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지요. 사라지는 물을 더듬어 찾아가니, 광산 측이 파놓은 구덩이에 모여 있었습니다.”

 

싱 씨 들은 이 문제로 법원에 고소를 하여 진정서가 최고재판소까지 올라갔다. 1991년 법원은 생태적으로 위태로운 아라발리 언덕에서 계속 채굴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1992년 5월에는 환경산림성이 언덕에서 채굴을 금한다는 통고를 내렸다. 최종적으로는 공원에 크나큰 손상을 입히고 있던 성역 주변과 완충지대에서 운영되는 470개의 채석장이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성역의 물무늬 특성을 이해하고 검소하게 살다

 

조하드가 성공한 것은 성역의 물무늬 특성을 활용한 데에 있다. 라헨드라 싱 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 17년, 우리는 알와르, 자이푸르Jaipur, 사바이 마도푸르Savai Maadhopur, 카롤리Karoli와 각지를 건조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100년 동안의 강우 그래프를 연구하면, 강우량이 불규칙하지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6년 비가 적은 해의 다음에는, 2년 정도 비가 많은 해가 이어집니다. 이처럼 주기가 되풀이되고 있다면 알맞은 방법으로 빗물을 모아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라헨드라 씨는 다른 지역에서도 라자스탄주처럼 가뭄을 극복할 수 있다며 “확실히 할 수 있습니다. 인도만이 아닌 아시아 전역에서 가능합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끝도 없이 물을 이용하는 생활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물이 한정된 자원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강수량과 인구밀도는 균형을 이루지만, 물을 이용하는 데에는 균형이 전혀 없고 누구나 더 많은 물을 쓰고자 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가난한 사람의 버터기름(poor man's ghee)처럼 물을 쓴다면, 어떤 마을의 누구도 인도에서는 물 부족에 직면하겠죠.”

 

인도에서 가장 강수량이 적은 곳은 라자스탄주의 자이살메르Jaisalmer와 바드메르Badmer의 건조 지대인데, 그곳에는 집마다 음용수나 집에서 쓸 물을 받는 물통과 일반 용도나 가축이 마시는 못(talab)도 있다. 그들은 지하에 있는 모래에서 음료수를 얻고자 염분을 머금은 지하수의 지층을 석고로 분리하는 쿠인야Kuinya를 써 왔다. 한편 비하르Bihar주처럼 물이 넘쳐 해마다 홍수가 일어나는 지역에서는 넘치는 물을 거두는 아하르-파인Ahar-Pyne이라 부르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갠지스강에서 넘쳐 오른 물은 파인이라 부르는 수로를 통해 최대 30~40㎞나 이동하고, 아하르ahar라고 부르는 물통을 채운다. 이것이 1년 동안 물과 모래와 찰흙의 중간 굵기의 흙이 지속적으로 분배되도록 해왔다.

이처럼 인도의 전통 지혜는 자연과 함께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살기 위하여 사회에 유용한 실용적 방법을 개발해 왔다. 지역의 다양한 기후를 존중하고, 혹독한 기후나 지리 조건에서도 각각의 지역에 알맞은 특정 과학과 관련 공학, 기술체계를 개발했다. 게다가 과거 몇 천 년 동안이나 매우 건전한 상태로 숲과 물 등의 천연자원을 보전한 데에는, 인간은 자연의 테두리 안에서 살되 탐욕을 부리면 안 된다는 환경에 우수한 전통문화(dharma/parampara)가 있었다.

 

 

전통의 손실과 그 결과

 

그런데 과거 20년 동안 이 고대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라헨드라 싱 씨는 산업혁명, 교육혁명, 녹색혁명, 개발혁명, 민영화와 정보기술혁명과 유럽에서 건너온 ‘자연을 개발해야 한다’는 사상이 자연에 대한 외경이란 관념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경고한다.

 

“식민지 정부에서 독립한 근대국가는 농촌 지역사회에서 그 권리와 책임을 빼앗고, 심지어 하천마저도 법적(벌목 허가, 하천의 직선화)으로 탈취했습니다. 교육혁명은 전통과 구두 지식이 빈곤의 원인이라고 사람들을 호도했습니다. 근대 교육과 근대화란 헛된 꿈이 지역사회의 조직을 해체해 버렸습니다. 독립한 뒤에는 모든 권력을 장악한 정부가 개발과 사회주의적인 ‘행복’을 관리한다는 환상을 심었습니다만, 그것도 지금은 이미 무능한 현실임이 밝혀지고 자본주의 제국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다국적기업과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첨단기술, 유전자조작 기술과 IT는 더욱더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겁니다.”

 

라헨드라 싱 씨는 거듭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기술자의 사상이라고 지적한다.

 

“교육을 받은 기술자들은 공유자원의 책임 있는 경영을 재발견하고 있는 듯합니다만, 조하드와 같은 입증된 고대의 전통, 지역의 전통을 무시하고, 인공적으로 지하수를 늘리는 일처럼 번거로운 기술을 쓰고 있습니다. 기술자들은 석회나 열대림 대신에 시멘트, 벽돌로 만든 돔 대신에 콘크리트 슬라브를 씁니다. 곧 자신들의 한정된 이해 수준으로, 전통과 그것이 지닌 관련성을 끌어내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서양 사회에는 지속성이 없다고 경고한다.

 

“오랜 세월에 걸친 우리 사회의 노예제도와 부정적인 힘이, 우리를 장애자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마을은 믿음의 부족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만약 누군가가 그들과 하나가 되어 도덕심을 높인다면, 사회는 자각하고 새로운 희망을 품고 움직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한 목발이 되었습니다. 지역사회가 그 힘을 회복하고 자립하여 움직이기 시작하기까지에는 목발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열의를 뒷받침하는 많은 젊은이의 열광을 등에 업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양을 보면, 그 나라들은 사치품으로 변환하려고 천연자원을 모조리 캐내고 있습니다. 이 방식으로 천연자원은 고갈되고 맙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사례가 아닙니다. 바야흐로 우리가 우리의 통찰을 써서 적절하게 천연자원을 이용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시대는 우리의 것이 되겠죠.”

 

 

선주민의 지식을 다시 찾다

 

인도에서는 물을 얻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공통된 점은 아래와 같다.

 

지역 자원과 기술을 활용

분산된 지역사회에서 경영하는 물 관리

천연자원의 지속가능한 보전과 활용

선주민의 지식을 이용한 체계의 부활

전통적인 체계를 이해한 제3자의 개입과 선주민의 지식 활용

토지, 물, 숲 주변에서 지역사회가 계획에 참여하여 활동

옛 시설의 수복과 새로운 시설 구축에 참가

마을과 유역에서 새로운 조직의 활동

 

라헨드라 싱 씨가 실천한 방식은 옛날 찬드라굽타 마우랴Chandragupta Maurya(기원전 321~297년)의 조언자이자 대신이기도 한 카우틸야Kautilya가 쓴 통치문인 아르타샤스트라Arthashastra와도 비슷하다. 아르타샤스트라는 각 지역사회가 운영하는 물 관리의 법적·경제적 범위를 모두 망라한다.

예를 들면 통치자는 수로 건설에 참가한 사람에게 토지, 도로, 나무, 시설을 제공해야 했다. 참가하지 않는 사람은 기부금을 지불해야 하고, 시설의 이익을 얻을 권리도 부여되지 않았다. 또 소유권이나 새로운 시설과 고대의 시설, 수리된 시설의 유지에 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가령 자신의 수원水源이 있는 곳일지라도 관개시설의 모든 수익자는 세금을 내야 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서 새로운 시설을 만든 사람은 세금이 공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 규정은 수로의 경제적인 면을 보호하는 조항에 지나지 않고, 진짜 동기는 다른 곳에 있었다. 지역사회의 못과 물통, 수로 건설에 참가한 동기는 자존심의 문제로서, 그것을 종교적 공적이라 생각했다.

또 이러한 고대 전통 공학의 기술적 측면은 실천과 구전으로 전승되어 서서히 완성되었기 때문에, 근대와 같은 의미의 기록 자료는 거의 없다. 게다가 인도에서 이 지식은 존경받는 연장자나 구루(종교지도자)의 지시에 바탕을 두는 실천으로 전승되었다. 몇 세기나 걸쳐 토양, 물, 숲, 야생생물, 환경 전체를 현지 주민의 공유자원이라 생각한 것이 지역사회가 받아들인 세계관이었다.

라헨드라 싱 씨의 활동은 교육이나 숲 보호와 여러 갈래에 걸쳐 있는데, 그는 약용식물이나 그 이용법도 연구하고 있다. 비캄푸리에서 타룬 조합은 아유르베다 센터와 실험실도 가지고 있다. 싱 씨는 대학원에 다닐 때 힌두문학을 공부했는데, 그 전공 분야가 아유르베다 의학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아유르베다의 의사라면 약으로 사람들을 치료했겠지요. 그렇지만 지금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넓히려고 합니다. 이는 사회가 믿음과 책임감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요. 나는 사람들의 영혼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인용문헌

 (1) Aman Namra, A river is reborn,The Hindu Business Line,June05, 2000.

 (2) Volume 18 - Issue 17, Aug. 18 - 31, 2001.

 (3) Civil Society Information Exchange Pvt. March 2002.

 (4) Patrick McCully, Water-Harvesting in India Transforms Lives, World Rivers Review,Dec2002.

 (5) Rajendra Singh, Indigenous systems of water management and their modern applications, Organiser, 16 Aug,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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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전통농업 - 전통 제방 조하드Johad

 

 

 

죽어 있던 마을

 

라자스탄Rajasthan주州는 인도에서도 가장 강수량이 적은 건조지대로서 가뭄 피해를 자주 받는다. 2002년 11월에도 이 주의 동남부에서 가뭄이 발생해 많은 사람이 풀을 먹으며 굶주림을 이겼는데, 적어도 40명은 굶어 죽었다. 델리에서 몇 시간 남쪽의 라자스탄주 북동쪽에 있는 알와르Alwar 지역과 인접한 불모지 아라발리Aravalli 언덕.

 

라자스탄주의 지도. 

 

 

아리발리 언덕 지대. 

 

 

라헨드라 싱 씨가 1985년 10월 2일 저녁에 4명의 동료와 함께 버스 종점인 비이캄푸라Bheekampura에 내렸을 때도 토지는 황량했다. 길에서는 먼지가 흩날리고, 길가에 늘어선 몇 그루의 인도보리수나무와 고무나무도 생기가 없었다. 언덕의 기슭에는 간신히 숲이 자리한 모습이었다. 대리석을 캐기도 하여 몬순의 비가 내리면 민둥산에서는 암석이나 토사가 산허리를 쓸고 내려왔다.

 

“지역에는 풀잎 한 장조차 없어, 우연히 소의 사체를 만났던 일이 생각납니다.”

 

 

조하드를 설명하고 있는 라헨드라 싱 씨.

 

 

라헨드라 싱 씨는 이렇게 말한다. 농지의 겨우 3%밖에 물을 댈 수 없어, 비로만 짓는 농업은 가뭄이 들면 수확을 할 수 없었다. 사료나 물 부족으로 마을 경제의 기둥인 농업도 죽어 있고, 마을 남성의 대부분이 아메다바드Ahmedabad나 델리로 돈을 벌려고 나갔다. 젊은이들도 일을 구하러 마을에서 나가 젊은 사람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강과 못도 모조리 마르고 우물물도 말라, 여성들은 1.5㎞나 떨어진 곳에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물을 날라야 했다. 라헨드라 싱 씨는 나중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단 하나의 과제, 인민을 억압하는 부정과 싸우는 방법밖에 몰랐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마을에서 문맹률을 낮추는 대책밖에 몰랐지요. 그래서 우리는 문맹률을 낮추는 조직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라헨드라 싱 씨는 마을의 노인, 만구 파텔Mangu Patel 씨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우리는 글자를 알고 싶은 게 아닙니다. 바라는 것은 물입니다.”

 

그러나 물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농촌은 우리에게 물의 가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1984년 이전에 저는 물에 대해서도, 어떻게 해서 그것을 보전하는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몬순의 비를 모으는 특수한 제방

 

하지만 이 지역에는 조하드Johad라고 부르는 독특한 전통농법이 존재하고 있었다. 1985년 라헨드라 싱 씨가 마을을 찾았을 때는 전통적으로 물을 관리하는 방법이 세계화에서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던 이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 아직 살아 있었다.

 

물이 마르고 있는 조하드.

 

 

조하드는 빗물을 모으려고 비탈에 쌓은 단순한 초승달 모양의 오목한 제방이다. 세 면에 높은 제방을 쌓고, 한쪽은 물이 흘러 들어오도록 열어 놓는다. 제방의 높이는 유역에서 흘러 들어오는 최대 유입량을 예상하여 결정하고, 장소와 유속, 수압 등에 따라 여러 가지이다. 또 수압을 약화시키고자 ‘아프라Afra’라고 부르는 구조가 넘치는 물을 빼기 위해 설치된다. 그런데 그 설계는 측량하지는 않고, 마을 사람의 경험과 직관에 바탕하여 만든다. 돌, 모래, 석회암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모두 현지에서 구할 수 있으며, 대부분은 진흙으로 쌓는다.

그리고 몬순의 비가 내리면, 조하드의 뒤쪽에는 물이 괴어 못이 생긴다. 못의 넓이는 2~100㏊까지 다양하며, 1년 내내 물이 고여 있는 곳은 큰 조하드뿐이고, 대부분은 반년 정도인데 몬순 뒤에는 완전히 말라 버린다. 하지만 조하드는 지상에만 물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지하수를 풍부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 모아 놓은 물은 지하로 침투되어 토양 수분량도 올라가고, 식물에 물기를 준다. 최후에는 다시 강으로 흘러간다. 물이 괴어 있는 시간은 토양과 지하수의 높이에 따라 다른데, 때로는 몇 개월에 이른다. 하지만 지하에 침투된 물은 증발되지도 않고, 모기가 발생하는 곳도 되지 않으며, 사람과 가축의 대소변에 오염되는 일도 없다. 그리고 물은 여과되어 관개, 가축용 음료수, 기타 목적에 직접 사용된다. 가뭄이 몇 년 계속되어도 우물물은 마르지 않는다. 게다가 조하드에는 빗물을 모으는 기능만이 아니라, 홍수를 완화하고, 토양침식을 억제하는 기능도 있다. 갈수기에 물을 빼면 조하드 안에 있는 토지도 경작할 수 있다. 밑바닥에는 모래와 진흙의 중간 크기인 좋은 흙이 모이고, 토양 수분도 있어 물을 대지 않아도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곧 조하드는 귀중한 농지를 빼앗지 않는다. 다시 말해 외부에서 자재도 필요하지 않고, 마을 사람이 손수 구축·유지할 수 있으며, 지역 전체의 지하수를 풍부하게 하는, 간단히 말해 돈이 들지 않는 걸출한 전통 기술이다.

그래서 라자스탄주에서는 몇 백 년이나 조하드를 구축해 왔다. 하지만 20세기가 되면서 국가에서 주도하는 대규모 물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마을 수준에서 물을 관리하는 제도가 약화되고 황폐해져 마을 사람들은 심각한 물 부족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다.

 

 

 

되살아난 하천, 아라바리Aravari강의 재생

 

“그래서 만구 파텔 씨의 조언에 따라 우리는 조하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라헨드라 싱 씨가 통솔하는 NGO인 타룬 바라트 상Tarun Bharat Sangh(젊은 인도 협회)는 1985년에 먼저 첫걸음으로 고팔푸라Gopalpura 마을에서부터 일에 착수했다. 다른 라자스탄주의 마을과 마찬가지로 고팔푸라 마을도 1985~1986년의 가뭄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마을의 조하드는 파손된 상태였다.

420m 길이, 6m 높이, 15m 너비의 제방을 수복하는 일은 겨우 350명밖에 없는 작은 마을에서는 커다란 일이었다. 하지만 수복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는 것으로 600비가스bighas(200㏊)의 농지에 물을 댈 수 있는 물을 모았다.

고팔푸라 마을의 성과가 눈에 보이자 다른 마을로도 이어졌다. 1988년에는 부리바스Bhurivas、덤리Dumli、카다타Khadata、카탈라Khatala、사마스타르Samastar、초슬라Chosla、랄푸르Lalpur 마을에서 조하드가 만들어지고, 1989~1991년에는 알와르 지역 타나가지Thanaghazi구區의 팔사나Palsana, 로지 키 다니Loge ki Dhani, 바온타-콜야라Bhaonta-Kolyala, 하미푸르Hamipur, 사마라Samara, 나타타Natata, 칼레드Kaled, 자그나트푸라Jagnathpura 마을에도 퍼졌다. 조하드는 소규모이고, 언뜻 많이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몇 백, 몇 천이 합쳐지면 말랐던 대지를 바꾸어 간다. 유역의 지하수 높이를 높이고, 주변의 숲을 풍족하게 한다. 그리고 숲이나 떨기나무도 몬순의 비에 유출되는 것을 늦춘다. 그 결과 기적이 일어났다.

바온타-콜야라 마을의 다나Dhanna(70) 씨는 말한다.

 

“마을 사람의 생활은 바뀌었습니다. 우리 여성은 물을 길러 3~5㎞ 이상이나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강에도 우물에도 물이 있습니다.”

 

아르준 구자르Arjun Gujjar 씨도 말한다.

 

“아이들은 강에서 물장구치고, 여성은 빨래하고, 남성은 목욕을 즐기고, 동물조차 몸을 씻거나 물을 마십니다. 이전에는 델리나 아마다바드의 빈민가로 이주했던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오기까지 하는 상황으로 호전되었습니다. 강도 되살아나, 60㎝에 10㎏이나 하는 물고기가 삽니다.”

 

바온타-콜야라 마을의 주민들은 타룬 바라트 조합의 지원으로 조하드 건설에 착수하고 유역의 마을도 그에 뒤따라 조하드가 375개나 생겼을 때, 말랐던 아라바리강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1940년대 이후 아라바리강은 몬순 뒤에는 흙탕물이 흐르기만 했는데, 1994년에 되살아나서는 1년 내내 흐르게 되었다. 그리고 1년 내내 물도 맑다. 수량도 늘어나고, 물고기도 자연히 늘었다. 라헨드라 싱 씨는 이렇게 말한다.

 

“1996년 여름 한창 뜨거울 때도 하천의 물이 변하지 않는 것을 알고서 우리 스스로 놀랐습니다. 하천을 재생하는 일은 처음부터 의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천 물이 지하수로 들어가는 것을 이해하지 않고서 몇 년이나 계속해서 조하드를 건설했지요.”

 

재생된 것은 아라바리강만이 아니다. 몇 십 년이나 말라붙었던 하천인 사르사Sarsa, 루파렐Ruparel, 바가니Bhagani, 자하이왈리Jahajwali강도 1년 내내 흐르게 되었다.

 

 

 

조하드로 되살아난 마을

 

만달와스Mandalwas 마을도 타룬 바라트 조합이 활동하고 있는 1000곳 이상의 마을 가운데 하나로, 마을 사람은 지하수의 높이가 높아진 덕분에 1000개 이상의 우물을 손에 넣었다. 나이 많은 여성 라츠마바이Lachmabai 씨는 말한다.

 

“우리 이전의 몇 세대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운이 결코 없었습니다. 물 덕분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우리의 소도 행복해 하고, 야생 생물도 행복해 합니다. 수확은 많아지고, 숲은 푸르러지며, 땔감, 소의 먹이, 그리고 우물에는 물이 있습니다.”

 

만달와스 마을 사람은 과거 15년 동안 45개의 조하드를 쌓았는데, 더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전에는 얼마 되지 않는 물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많은 물이 필요한 채소와 돈벌이 작물도 재배할 수 있다. 하루 한 끼로 살던 마을 사람들은 지금 하루에 두 끼, 3번이나 영양가가 높은 다양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여성들의 물 긷기나 땔나무 모으기, 사료, 목초, 소 돌보기의 수고도 줄었다. 숲이 재생되어 땔감과 사료용 나뭇잎을 많이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자이플 지역의 잠와 람가르 테실Jamwa Ramgarh tehsil의 님비Neembi 마을도 끊이지 않는 가뭄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1994년 5만 루피를 투입한 바라트 조합의 지원으로 두 군데에 조하드를 쌓았다. 지금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3000만 루피의 가치가 있는 채소와 우유를 생산하고 있다.

물이 풍부해지면 작물을 잘 생산할 수 있고, 지하수의 높이가 높아지면 디젤 펌프의 경비도 줄어든다. 사료를 손에 넣으면 소도 기를 수 있고, 유유 생산도 늘어난다. 소녀들이 학교에 다닐 시간도 생기고, 마을의 생활은 풍족해진다. 나무 심기가 진행되고 채소 생산도 번성한다. 농업은 생산적이 되어 지역에서는 번영을 누린다.

15년 뒤 수많은 조하드로 알와르의 생활은 개선되고, 사람들은 자존심을 되찾았다. 인기가 없었던 마을에도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라자스탄주는 이제는 가뭄이나 물 위기를 뜻하는 말이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이 쌓은 조하드가 지역을 바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라트 조합은 주 안의 11개 지구 약 850개 마을에서 약 4500개의 조하드를 쌓았다. 2001년에는 약 1000개의 조하드를 쌓아, 1000곳 이상의 마을이 합계 약 9000개의 조하드와 사태막이 제방, 아니커트Anicut를 손에 넣게 되었다. 자이플, 다우사Dausa, 사와이 마도푸르Sawai Madhopur, 바라트푸르Bharatpur, 카라울리Karauli 등의 인접한 지역의 마을도 되살리고, 활동은 마디야푸라디슈주, 구자라트주, 안도라푸라데슈주 등 6500㎢까지 확대되었다.

 

 

 

 

 

강의 물고기를 지키는 주민들

 

주 정부가 아라바리강의 어업권을 외부에 넘기는 계약을 하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은 저항했다. 유역의 주민들은 유역의 숲을 보호하고 새롭게 흐르기 시작한 강이 난개발되지 않게 하려고 규칙을 정하기로 하여, 1999년 34개 마을의 대표들이 모여 ‘아라바리 위원회’를 창설한다고 선언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마을 스와라지swaraj의 개념에 따라 토지가 없는 농민만이 물을 뺄 수 있고, 대량의 물을 필요로 하는 사탕수수 재배나 물소의 사육을 금지하는 등 위원회는 11개의 원칙을 정했다. 위원회에 법적 권한은 없다. 하지만 물고기를 지키는 규칙을 위반한 사람에게 벌금을 부과하고, 마을의 자원을 이용하며 생기는 대립을 해결하는 도덕적 권한은 가진다. 정부의 수산부와 어업 계약을 한 자이플의 사업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쫓겨나, 주 정부는 그 계약을 취소해야 했다. 주민들은 물고기를 스스로 관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더욱이 마을 사람들은 전원이 채식주의자라 물고기를 먹지도 않는다. 현재 위원회에는 72개 마을이 참가하고 있다.

 

 

 

야생 생물과 물을 나누다

 

바온타-콜야라 마을의 사람들은 ‘인간과 야생 생물의 성역’을 만든다. 그곳에서는 돌과 콘크리트의 아치형 제방 표면에 보호 지역의 규칙이 이렇게 적혀 있다.

 

“신이 창조한 이 숲에서 수렵은 안 된다. 마을 회의와 수장의 허락 없이 어떤 나무도 벨 수 없다. 나무에는 신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소, 염소, 낙타로 숲을 파괴하지 말라. 마을의 야생 생물과 소는 이 마을 유역의 온갖 물방울을 건드릴 수 없다.”

 

이 성역에서는 야생 멧돼지, 하이에나, 원숭이, 재칼, 여러 종류의 사슴과 표범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못의 옆에 호랑이의 길이 설립되었다. 마을 사람은 물 보전과 숲 보호를 시작하기 전에 이러한 동물은 마을 근처에서 전혀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알와르 언덕은 인도에서 가장 알려진 야생 동물 보호 지역의 하나로, 사리스카 호랑이(Sariska Tiger)의 성역이다. 타룬 바라트 조합은 이 ‘성역 안’에 115곳의 ‘완충 지역’과 그 주변부에 다른 600개의 흙이나 콘크리트로 만든 조하드를 쌓았다. 당초 산림국의 직원들은 타룬 바라트 조합과 적대했다. 조합의 사람들을 의심스럽게 보고, 성역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태도가 변해 타룬 바라트 조합의 일을 격려하고, 공원을 관리하도록 권하고 있다. 조하드가 지하수의 높이를 올리고, ‘어둠의 영역’에서 ‘밝은 영역’으로 바뀌도록 돕기 때문이다. 조합이 숲을 되살리는 데 공헌하는 것만이 아니라, 야생 생물에게 음료수를 주며 밀렵을 금하도록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게 되었다. 라헨드라 싱 씨도 많은 밀렵꾼의 인생을 바꾸는 일을 도왔는데, 거기에는 밀렵꾼에서 호랑이의 보호자(nahar sevaks)가 된 사람도 있다. 이 때문에 호랑이의 수도 최근 18마리에서 약 25마리로 늘었다.

 

 

사리스카 호랑이. 

 

 

 

근대 댐보다 우수한 조하드

 

정부의 지원은 모자라고, 공적인 부문의 적의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하드는 약 14만㏊를 관개하고 있다. 바라트 조합에 따르면, 알와르와 인접 지역의 약 70만 명이 집에서 먹을 물과 가축·작물에 쓸 농업용수의 혜택을 얻고 있다고 한다. 각각의 조하드는 소규모이지만, 전체로 보면 그 장점은 대규모이다.

조하드는 경제적으로 보아도 우수하다. 조하드에서 관개할 경우에 이러한 용수의 경비는 500루피/㏊, 음료수로는 100루피(2달러)/名이다. 하지만 구자라트주에 있는 사르다르 사로바르Sardar Sarovar 댐 계획의 건설 공사비는 최소로 보아도 3000억 루피(60억 달러)나 되고, 관개용수의 경비는 17만 루피/㏊로서 조하드의 340배나 되며, 음료수로도 1만 루피/名로 100배나 든다.

만약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의 건설 예산을 조하드에 쓴다면, 현재 세계의 관개 면적의 2배, 6억㏊를 관개하는 동시에 세계 인구의 반인 30억 명에게 음료수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 

 

 

게다가 훨씬 속도도 빠르다. 알와르 지역에서 조하드가 재건되기 시작한 것은 구자라트주 정부가 댐 공사에 착수한 때와 거의 같은 때인데, 알와르 지역의 주민들이 이미 혜택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해 댐의 수익자는 아직 물 한 방울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댐 건설을 위하여 이미 4만 명이 강제로 이주되었고, 댐이 완공되면 더 많은 사람이 이주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형 댐과는 달리 조하드나 사태막이 제방 공사에서는 단 한 가족도 이주하지 않고, 하천도 파괴되지 않으며, 광대한 숲과 농지가 수몰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강과 숲을 만들어 낸다.

물론 알와르는 이상향이 아니다. 라자스탄주는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주의 하나이고, 여성들의 권리도 낮다. 정부의 서비스는 인프라도 변변치 않고, 문맹률도 높다. 하지만 타룬 바라트 조합은 10개 마을 이상에서 부녀회를 만들어 마을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들은 처음으로 딸을 교육하고, 남 앞에서 얼굴을 가리는 퍼다purdah의 관습도 폐지되기 시작했다. 아동 노동을 근절하고, 탁아소를 운영하며, 학교에 딱 맞는 교사를 파견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며, 공무원들의 뇌물 요구에는 단결해 저항하고, 유기농업을 널리 보급하고, 전통농법을 다시 찾고, 바이오매스 프로젝트와 나무 심기를 진행하며, 방적·방직 공업으로 고용을 창출하고, 근대적 공공 의료를 개선시킴과 함께 전통 의료도 추진하고, 위법인 광산 개발을 폐쇄시키는 운동을 조직하고, 호랑이가 서식하는 성역도 보존하고 있다.

세계은행과 댐 건설업계, 물의 민영화론자는 지금도 10억 명 이상이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없다는 충격적인 통계 자료를 팩트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투자를 해야만 하고, 다국적 기업이 그 임무를 맡아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인도의 풀뿌리 조직은 비가 모자란 가뭄이 찾아오는 지역의 안에서조차 물을 보존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만약 인도나 세계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라발리 언덕의 대처 방식이 아닐까?

 

 

인용문헌

 (1) Aman Namra, A river is reborn,The Hindu Business Line,June05, 2000.

 (2) Volume 18 - Issue 17, Aug. 18 - 31, 2001.

 (3) Civil Society Information Exchange Pvt. March 2002.

 (4) Patrick McCully, Water-Harvesting in India Transforms Lives, World Rivers Review,Dec2002.

 (5) Rajendra Singh, Indigenous systems of water management and their modern applications, Organiser, 16 Aug,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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