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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된 정자나무.

여기에는 두 그루가 서 있는데 남자들의 휴식 장소이다.

저쪽에 일곱 그루가 있는 곳은 여자들의 휴식 장소라고 한다.

이 마을은 쉬는 곳도 남녀가 유별하네.

엄청 시원하다.

에어컨이 필요없는 천연 냉방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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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돌이 많거나 한 곳에서는 소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에 멍에를 지워 쟁기질을 한다.

그것을 복 겨리질이라고 한다.

그런데 소 두 마리를 한 집에서 키우는 건 어려운 일이어서,

보통 자기 소에 남의 소를 빌려 쓴다고 한다.

소가 없는 가난한 집이면 따라다니며 일해 주고 자기 밭을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적게는 서너 명, 많게는 대여섯 명이 계를 짜서 함께 일했다고 한다.

생산 조건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뭉쳐서 서로 돕고 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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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서 김매는 모습.

모의 길이나 호미를 쓰지 않고 손으로 하는 걸로 봐서 애벌매기나 두벌매기인 것 같다.

농진청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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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꽃.

올해 밭벼 씨를 얻어 처음으로 심었다.

벼꽃을 처음 봐서 무슨 벌레가 알을 깠나 들여다보니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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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줄 때가 되면 기가 막히게 알고 침을 흘리며 울음을 운다.

뭐 그게 소만이랴. 사람도 똑같다. 개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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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원래 논은 구불구불 뱀처럼 논두렁이 논을 휘감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기계를 받아들이기 쉽게 만들면서 네모반듯하게 변했다.

사람이 없는 마당에 기계를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냐만은,

사람의 삶처럼 구불구불 굽이치는 논배미를 볼 수 없는 일은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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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년째 고추를 곧뿌림하고 있습니다. 처음 고추를 씨로 심으려고 생각한 것은 귀찮아서 그렇습니다. 모종을 가져다 심기도 그렇고, 나중에 버팀대를 꽂고 줄을 매는 것이 너무너무 귀찮아서, 한 마리도 게을러서 그렇지요. 굳이 더 그럴싸한 핑계를 댄다면, 버팀대도 그렇고 줄도 그렇고 이건 썩는 것이 아니니, 나중에 처리하는 문제가 골치 아팠습니다. 아무튼 결론부터 말하면, 곧뿌림은 처음에만 신경 써서 김을 매주면 나중에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작은 규모에서나 추천할 만하지, 돈벌이로 많이 짓는다면 힘들 겁니다. 그래도 수확량을 따지지 않는다면, 투입하는 기운이나 비용에 비해서 괜찮은 방법입니다. 특히 작물 고유의 힘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지요.


먼저 심는 때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지난해나 올해나 곡우 무렵에 심었습니다. 고추는 더운 나라가 고향이라 서리를 맞으면 그대로 죽기에 늦서리를 피하려고 그때를 택했습니다. 그때 심으면 보통 스무날에서 한 달쯤 지나야 싹이 나니, 양력으로 5월 중순 이후라서 서리 맞아 죽을 걱정은 없습니다. 고추는 달이 한 바퀴쯤 돌아야 합니다. 이걸 동광원 원장님은 “고추는 매운물이 빠져야 싹이 난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참 감칠맛나지요.

지난해에는 씨를 얻어 심어서, 싹이 나는 문제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믿고 기다렸지요. 그런데 올해는 손수 받은 씨를 심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처음 받아보느지라 제대로 씨를 받았는지 미심쩍었습니다. 특히 이게 심은 지가 언제인데 한참이나 소식이 없어, 더욱 그랬습니다. 그래서 못 참고 살살 파 보기도 했습니다. 몇 번을 그러다 포기를 할 때쯤, 씨에서 삐죽 싹이 나온 걸 봤습니다. 그때의 기분이란 뭐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거 안 파봤으면 다 났을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이밀더군요.


잠깐 딴 길로 새서, 고추씨를 받으려면 보통 맏물 바로 그 다음 것이 좋습니다. 형만한 아우가 없는 것일까요? 맏물도 괜찮기는 한데, 그 다음 것이 더 좋다고 합니다. 고추씨를 받으시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피해야 할 것은 끝물입니다. 끝물은 어떠한 작물이든지, 씨로는 별로 좋지 않다고 합니다. 늦둥이가 천재 아니면 바보라는 말과 통하지 않을까 합니다.


심는 방법은 처음에는 줄뿌림을 했습니다. 그런데 관리하기가 참 힘들더군요. 앞에 말씀드렸듯이 곧뿌림할 때는 처음 풀을 잡아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나 5월이면 온갖 풀들이 싹을 내서 자랄 때이니 더 그렇습니다. 그때 제대로 풀을 잡지 않으면, 고추가 힘을 받아 팍팍 크지 못합니다.

그래서 올해 선택한 방법은 점뿌림입니다. 점뿌림할 때는 그 부분의 흙을 살짝 걷어냅니다. 그리고 한 번에 팍 넣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두께 하나 정도 간격으로 띄엄띄엄 뿌립니다. 저는 그렇게 한 구멍에 10알씩 넣었습니다. 그리고 흙을 살살 겉에만 슬쩍 덮습니다. 더 좋은 것은 잘 삭은 두엄을 살짝 덮어주는 것입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씨를 제대로 받았다면 모두 싹이 날 겁니다. 올해 제가 받은 씨는 좀 시원치 않아서 그런지 6~7개 정도만 싹이 텄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대가 끊기는 줄 알고 조마조마했습니다.


관리는 처음에 풀을 잡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때만 잘 돌보면 이후에는 별 걱정 없습니다. 태풍이 몰아치지 않는 이상 잘 쓰러지지도 않고, 바람이 특히 세게 분다고 해도 주렁주렁 고추를 달고 있지 않으면 그대로 버팁니다. 대신 비가 많이 오면 걱정입니다. 비가 많이 와서 땅이 물렁거리면 스르륵 기울어지기는 합니다. 그러면 그냥 제대로 세운 다음, 발로 꾹 밟아주면 다시 삽니다.


그런데 문제는 풋마름병입니다. 비가 많이 와서 땅이 무르고, 더구나 바람이 불어 기울어지면 그 틈새로 뿌리에 세균이 들어가는지, 지난해도 그렇고 올해도 풋마름병이 꽤 왔습니다. 풋마름병을 찾아보니, 계속 고추만 심는 하우스나 질소질이 많으면 발생한다고 하네요. 노지에서도 드문드문 걸리구요. 제가 거름을 별로 쓰지 않으니 질소질 때문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같은 땅에 이어짓기하는 것도 아닌데 왜 풋마름병에 잘 걸리는지 모르겠습니다.

추측하기로는 앞의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흙이 아직 좋지 않아서 비만 오면 질척거리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 같습니다. 물이 잘 빠지는 살아있는 좋은 흙이라면, 풋마름병도 걱정할 것이 아닐 겁니다.


풋마름병 말고 세균성점무늬병이 올해 처음 생겼습니다. 아마 올 여름이 뜨겁고 습기도 많아서 그럴 겁니다. 다음에는 잘 삭혀놓은 2년 묵은 두엄을 넣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그렇다면 이거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일 겁니다.

그밖에 고추에 많은 탄저병, 돌림병, 흰가루병, 입고병, 모자이크병, 겹둥근무늬병, 젖곰팡이병, 무름병은 아직 한 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고추에는 뭔 병이 이렇게 많은 걸까요. 쭉 늘어놓고 보니 징그럽게 많네요. 아마 이거 말고도 더 있을 겁니다.


벌레는 진딧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뭐 고추만 심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다른 작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으니 그럴 겁니다. 아, 담배나방이 파먹는 것은 조금 있습니다. 그네들이 먹는다는 게 속상하기 것보다, 이 매운 걸 어떻게 그리 잘 먹는지 그게 더 신기합니다. 그래서 그건 너희들 먹으라고 놔둡니다. 그럼 알아서 떨어지지요. 그렇게 떨어진 놈들 가운데 씨가 여문 것이 있어서 그런지, 지난해 고추를 심었던 밭에서 저절로 고추가 자란 것을 보고 참 신기했습니다. 안철환 선생님은 올해 초겨울에 고추를 심는 걸 실험하신다고 하는데, 이걸 보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간 관리 가운데 가장 귀찮은 버팀대 박기와 줄매기에서는 완전히 해방입니다. 순지르기도 거의 손보지 않아도 됩니다. 씨가 그래서 그런지 모종으로 심는 것보다 곁순도 별로 나지 않습니다. 매끈하지요.


자람새는 모종으로 심은 것보다 좀 느립니다. 그것들은 비닐집에서 어느 정도 자란 뒤 5월 초에 옮겨 심어서, 곧뿌림한 것이 막 싹이 날 무렵 모종들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입니다. 씨로 심은 것들이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자라면, 오히려 뿌리를 튼튼히 내리고 무섭게 자랍니다. 그럴 때 비라도 한 번 내려 주시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렇게 손가락 하나 정도 자라면 1차로 솎아줍니다. 잘 자란 것들 3~4개만 남기고 솎아줍니다. 그렇게 솎은 것은 그냥 나물로 먹으면 됩니다.

다음에는 한 뼘 정도 자라면 한 그루에 한 포기만 남기고 솎으면 됩니다. 그때 솎은 것들을 보면, 곧뿌리가 쭉 뻗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모종한 것과 비교하려고 뽑아보니, 모종은 옆으로 잔뿌리만 뻗었더군요. 반면 씨로 심은 것들은 길쭉한 뿌리가 쭉쭉 뻗어 있어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이 뿌리의 차이가 자라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이 조금은 작물 관리에 서툴고 소홀하신 주말 텃밭 회원분들의 고추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자란 뒤에는 그분들 고추보다 씨로 심은 제 고추가 더 튼튼하고 기세가 좋았습니다. 뭐 관리를 잘하시는 분들이 웃거름주고 목초액이다 뭐다 주고 하시면,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말이죠. 그런 고추들이 붉게 변할 때 이제 풋고추가 달리기 시작하니 말 다했지요. 그러니 수확량에서는 큰 차이가 날 겁니다. 하지만 투입과 수확이란 면에서 보면,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습니다. 둘이 먹고 냉장고에 꽉꽉 재워놓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추와는 키에서도, 열매가 달리는 것에서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제가 심은 건 한 50~60cm정도 자라나? 거름도 밑거름 말고 안 주고, 다른 관리도 안 해서 그런지 거기서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아마 자기가 자랄 수 있는 만큼만 알아서 크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만큼 깊이 뿌리를 내렸으니, 위로는 어느 정도 자라면 되겠다 계산하는 것이 아닐까요? 열매도 그렇습니다. 지가 버티고 서 있을 정도만 달립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늦게까지 꽃이 피고 달리는 건 아닙니다. 알맞은 때 꽃도 더 이상 피지 않고, 매달린 것들이나 붉게 만들고 맙니다. 그러니 수확량에서는 반이나 될까요? 엄청 차이가 납니다.


모종과 곧뿌림의 가장 큰 차이는 뿌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쭉 뻗은 곧뿌리를 내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위로 얼마나 자라는지 얼마나 열매가 많이 달리는지를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곧뿌리를 내린 것은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알아서 자라고, 알아서 열매를 맺습니다. 하지만 모종으로 심은 것은 거름을 주는 대로 잔뿌리로 쪽쪽 빨아먹고, 위로 쑥쑥 자랍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양은 따지지도 않고, 그냥 막 자라고 봅니다. 모종을 옮겨심으려고 몇 번 옮기면서 곧뿌리를 끊는 것이, 거름을 쪽쪽 빨아 먹는 잔뿌리만 무성하게 합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버팀대를 세워야 합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위로 자라는 것에 맞춰 줄도 매줘야 합니다. 이래저래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모릅니다. 그러고는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열매를 맺습니다. 이러다가는 내가 살지 못하겠다고 느껴서 그럴까요? 오염된 곳에서는 소나무도 솔방울을 많이 맺듯이, 고추도 열매를 많이 맺는 것 같습니다. 농사는 적당히 죽지 않게 식물을 괴롭혀서 수확을 많이 얻는다는 말이 들어맞습니다.

하지만 씨로 심는 것은 곧뿌리가 자기 몸을 지탱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알맞은 만큼 열매를 맺습니다. 뿌리가 살아 있느냐 아니냐가 이런 차이를 만드는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추측하고 상상할 뿐입니다. 그러니 믿지도 마시고, 너무 부정하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무엇이 더 좋다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것이 제가 선택한 고추 농사 방법입니다. 누가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키우느냐에 따라, 그것들도 그 사람을 따라갑니다. 제가 심은 것들은 저를 닮아서 늦게 싹이 나고, 더디게 자랍니다. 지난해 가을 충북 보은에서 발바리 한 마리를 얻어다 키우고 있습니다. 이놈이 타고난 성질이 그래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버릇을 잘 들이고 길을 잘 들여서 지금은 함께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낑낑대고 아무 데나 똥오줌을 싸고, 아무튼 같이 살면서 부딪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열 받고 속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가 내 방식대로 이놈을 끌고 갈 것이 아니라, 이놈의 생리와 습성을 파악해서 살살 몰고 가야겠다. “주는 나를 키우시는 목자”라는 말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개는 어떤 동물인지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니 ‘아 이놈이 그래서 이랬구나’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 습성을 이용해서 나와 함께 살 수 있도록 할지 고민하고, 생활 속에서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차츰 서로 적응하고, 함께 살 수 있었습니다. 자연히 속 썩고 열 받는 일도 사라지고, 이해하고 양보하고 타협하여 어울려 살게 되었습니다. 개를 키워보니 식물을 키울 때와는 참 달랐습니다.

그러다 식물을 키우는 일을 돌아보았습니다. 아, 식물도 그렇겠구나. 동물이나 인간처럼 우리와 직접적으로 감정을 나누고 소통할 수 없어서 그렇지, 이놈들도 동물이나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겠구나. 뭐 고추를 씨로 심으려고 한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저 어떻게 하면 손 좀 덜 가고, 거름 좀 덜 주고 귀찮지 않게 키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선택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니들도 니들이 자라고 싶은 방향이 있고, 나도 니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니 서로 적당히 타협하자. 니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나도 맛있게 잘 먹으며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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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풍덕동, 아니 풍덕리는 어떤 모습일까? 처음 답사를 다니기로 생각했을 때 예전 그곳이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고 싶었다. 지난번 송정리나 광주도 그랬고, 풍덕리도 어떻게 변했는지 보려고 순천역에서 내려 머릿속에 넣은 지도를 따라 걸었다. 지방에 갈 때마다 느끼지만 역 주변은 쉽게 변하지 않나 보다. 이곳도 역 주변은 낡고 오래된 집들이 서 있다. 동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니 순천종합어시장이 나온다. 이곳도 원래는 드넓은 논밭이었으리라.


그림 1 풍덕동에 들어선 종합어시장.


그러려니 하며 걷는데 눈길을 끄는 간판이 보였다. “사단법인 여순사건 순천유족회”가 그것이다. 여순사건이라고 하면 책에서나 배웠지 별 느낌이 없었다. 허나 이곳에서 이 간판을 보니 ‘아직 여순사건은 끝나지 않았구나’ 실감한다. 빨갱이가 득세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이곳의 들이 넓었기 때문이리라. 앞에서도 말했듯이 넓은 들을 지주들이 틀어쥐고 있으니 소작농들은 참으로 괴로웠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지주고 소작농이고 할 것 없이 다들 잘 살아보자는 붉은 물이 들기 더 쉬웠으리라. 그 세력이 강하니만큼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자본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남아 있었을 것이고, 군대가 들어오면서 그곳에 들어가 세력을 잡고 한 번 들고 일어섰겠지. 박정희도 봉기군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재밌다. 봉기군에 가담했다가 나중에는 핵심 인물들을 불고 살아남아 더 높이 올라갔다고 하니, 기회주의자 권력주의자 박정희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씁쓸한 웃음이 난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밝혀진 것만 5500명 정도 죽었다니, 엄청난 사건이다. 그 가운데는 틀림없이 무고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원래 홱가닥 미치면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거슬리는 놈은 다 쓸어버리는 것이 우리 인간의 역사 아니었던가.


그림 2 이 간판을 보고 기분이 참 거시기했다.


조금 걷다 보니 풍덕동사무소가 나오고 도무지 논밭은 보이지 않는다. 동사무소에 들어가 볼까 하다가 송정리에서 당한 수모가 생각나서 참았다. 공무원들은 그럴싸한 명함을 들고 가야 반응을 보인다. 공무원만 그럴까?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종이 조각에 적힌 글씨를 보고 쳐다보는 눈동자가 달라진다. 그냥 이 길로 가면 무엇인가 나올 것 같은 느낌에 내 육감을 믿고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가니 민속품 판매점이 나왔다. 이제 우리네 농사 연장은 이런 곳에나 와야 볼 수 있구나. 세월이 가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림 3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벼나 보리를 떨던 홀태 또는 그네, 클이라는 농기구. 여기저기서 수집해 왔는지 꽤 많았다.



그림 4 탈곡기도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대표적인 농기구다. 이것은 60~70년대 우리나라에서 직접 만든 것으로 “한일식韓一式 탈곡기脫穀機”라는 글씨가 흐릿하게 보인다. 탈곡기가 밟고 선 것은 돌절구들.



그림 5 엄청 큰 연자매. 이 동네가 벼가 많이 나긴 했나 보다.


조금 더 걸으니 이곳에서도 도시농업의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옥상으로 뻗어 오른 저 줄기는 수세미 아니던가! 땅에는 어디서 욕조를 구해다가 흙을 담아 고추를 키우고 있었다. 위로는 수세미와 아래로는 고추, 둘이 어울려 참 보기 좋다. 도대체 뭐하는 집인데 저러고 사는지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다가가면서 보니 매운탕 집이었다. 그럼 식당인가? ‘손님들이 참 좋겠네’라고 생각하며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서 알아보니 식당이 아니라 설비 공사를 하는 집이었다. 그래서 욕조로 텃밭을 만들었구나.


그림 6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수세미와 고추. 실제로 보면 세력이 더 대단하다. 욕조를 재활용하는 모습. 욕조 정도 깊이면 별 걸 다 심을 수 있겠다.


그렇게 넋을 잃고 한참을 쳐다보는데 웬 할머니 한 분이 옆에 우산을 받쳐 들고 서 계신다. 혹시 이 작물을 심으신 분이 아닐까 해서 꾸벅 인사드린 뒤 여쭈니 맞다고 하신다. 이 분은 원래 목포에서 태어나셨는데, 젊어서는 부천에서 30년 살다가 순천에 오신 지 한 5년 됐다고 하신다.
어찌 이리도 잘 키우시는지 물으니, 올해 두 번째 농사짓는데 처음에는 거름으로 개똥 썩힌 것에 비료를 조금 줬다고 한다. 그렇게 고추 80그루에서 수확해 고추가루 5근 내고, 수세미는 12그루에서 50개를 땄다고 하시네. 올해는 조금 더 신경 써서 키토그린이라는 영양제까지 사다가 줬다고 하시니 엄청 정성스럽게 키우시는 걸 알 수 있다. 이야기하시는 내내 싱글벙글 얼마나 뿌듯해 하고 자랑스러워하시는지 모른다. 그 모습을 사진에 담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사진이란 것이 참 그렇다. 사진기로 남기면 남과 함께 볼 수 있어 좋지만, 사진기를 드는 순간 나와 대상이란 거리감이 생긴다. 그 거리감은 어색함으로 번지고, 그러다 보면 그 순간, 분위기, 느낌, 공감을 얻기 힘들다. 잘 이야기하던 사람도 사진기를 보면 얼굴과 혀가 굳어 전과 같이 신나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사진기에 익숙하거나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누구나 다 그렇다. 또 찍는 사람은 찍는 사람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요물은 요물이다. 사진 찍히면 영혼을 빼앗긴다는 옛사람들의 말을 곱씹어 볼 일이다. 이런 일만 아니면 사진기를 들고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쩔 수 없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식당에 가서 음식이 나와도 먼저 사진부터 찍고 본다. 먼저 냄새를 맡고 맛을 봐야지 그게 뭐하는 꼴이람.


그림 7 욕조 말고 스티로폼 상자도 쓰고 있다. 거름을 잘해서 그런지 유치원 텃밭의 비실거리는 고추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 지역은 대나무가 많은지 고추 버팀대로 대나무를 썼다. 물어보니 일부러 차로 싣고 와 만들었다고 한다.


예전에 순천에 와서 박을 먹은 기억이 있어 혹시 수세미도 먹느냐고 할머니께 여쭈었다. 그랬더니 수세미를 활용하는 많은 방법을 알려주신다. 할머니는 수세미 덜 익은 것을 따면, 껍질을 벗기고 속을 설탕에 1주일쯤 재 놨다가 먹는다고 한다. 무슨 맛일까? 미처 묻지 못했다. 또 천식 있는 사람이나 기관지가 안 좋은 사람은 수세미를 푹 삶아서 그 물을 마시면 좋다고 한다. 목을 많이 쓰는 사람이나 약한 사람은 꼭 해볼 일이다. 추석쯤에는 꼬랑지를 자르는데 그럼 거기서 물이 나온다고 한다. 그 물이 진짜라고 하시며 그건 꼭 해보라고 적극 추천하신다. 지난해 수세미를 잘 먹고 잘 봤는데, 너무 많이 나와서 힘들었다고 올해는 지난해보다 적은 9그루만 심었다고 하신다. 참 행복하게 사신다.


그림 8 수세미가 탈 구조물도 대나무로 만드셨다.


갈 길이 멀다. 이제 가야겠다고 인사드린 뒤 뒤돌아섰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집들뿐이다. 풍덕동도 지난번 광주처럼 다 개발된 것일까? 더 이상 논밭은 찾아볼 수 없을까? 일단 한 번 가 보자. 저쪽으로 순천남중학교가 보인다. 그 옆으로는 횅하니 빈터인 것 같은데 혹시? 발걸음이 빨라졌다.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곳에는 논이 펼쳐져 있었다.


그림 9 순천남중학교 옆. 태풍 마니의 영향으로 구름이 잔뜩 낀 하늘. 하지만 벼들은 푸릇푸릇 예쁘게 자라고 있다. 드디어 찾았다. 풍덕동에 남아 있는 논밭.


특별한 농법은 없을까 밭에 심어 놓은 작물은 무엇인지 살펴보고, 벼는 어떻게 심었는지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별 다른 점은 찾지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논밭을 찾은 게 어디냐. 그것 하나만으로도 기쁘고 또 기쁘다. 이 기쁨으로 가득한 맘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따라 걷는다. 어 그런데 제비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어지간한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제비가 있다.
제비야, 우리집에도 와 줬으면 좋으련만. 어릴 때 해마다 집에 찾아오던 제비가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난 제비만 보면 반갑고 좋다. 새끼를 까면 노란 주둥이를 내밀고 지저귀던 모습, 새끼들 똥을 입으로 물어다 버리던 모습…. 옛날에는 먹을 것을 달라고 노란 주둥이를 내밀고 지저귀는 제비에 어린아이들을 비유했다. 먹을 것만 보면 환장하고 달려들어 해치우는 아이들의 모습이 제비 새끼와 서로 닮아서 그랬을 것이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그런지 벌레를 잡아먹느라 제비들이 낮게 날아다닌다. 물을 받아 놓은 곳에서는 말 그대로 물 찬 제비가 되어 날아다닌다. 제비가 낮게 날아다니는 날은 벌레도 낮게 나는데, 벌레가 낮게 나는 것은 기압 때문이라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면 으레 ‘오늘은 비가 오겠구나’ 했다고 한다. 그것 말고도 개미가 집 입구 주변으로 제방을 쌓으면 비가 온다. 개미도 내가 좋아하는 동물이라서 자주 지켜보는데, 그 말이 틀림없다.
제비를 보니 오늘은 틀림없이 비가 오겠구나. 오늘은 비옷을 챙겨 왔으니 아무 걱정 없다.


그림 10 물 찬 제비, 너무 잽싸서 도저히 찍을 수 없었다. 오른쪽 하늘에 떠 있는 놈이 제비. 이걸로 만족하자.


논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그냥 터덜터덜 걷는다. 논둑에 심어 놓은 논두렁콩이 너무 예쁘다. 간척해서 너른 논이 생긴 곳에서는 기계로 농사짓느라 이런 건 심을 생각도 하지 않을 거다. 논둑도 놔두지 않고 무언가를 심는 마음, 가난해서 무엇이라도 길러서 먹어야 하기 때문이었다고 보기는 그렇지 않은가? 그러한 자세야말로 땅을 놀리면 안 된다는 농심이 아닐까?


그림 11 논두렁콩. 저 멀리 아파트가 보인다. 다른 곳은 모두 개발되었는데, 이곳만 섬처럼 홀로 남았다.


조금 가다 보니 아기자기한 텃밭이 보인다. 그냥 넘어갈 수 없어 무엇을 어떻게 심었는지 살펴보았다. 먼저 밭의 가장자리를 둘러서 도라지, 참깨, 파, 토란, 들깨, 상추를 심었다. 가운데에는 두둑을 만들어 콩 3두둑에 수수 1두둑을 심었다. 수수가 거름을 많이 먹으니 콩 사이에 심으셨나 보다.


그림 12 왼쪽에 보라와 흰꽃이 도라지. 가장 앞에 보이는 것이 참깨. 파, 들깨, 상추는 오른쪽 끝에 있어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가운데 수수 1줄에 콩 3줄씩 심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림 13 토란은 벽에 붙여서 심었다. 토란은 음습한 것을 좋아하는 성질이니, 벽 쪽은 그림자도 지고하여 심었나 보다.


참 예쁜 텃밭이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림길에 서서 여기까지가 현재 남아 있는 논밭의 끝임을 보았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갈까? 손바닥에 침을 탁 뱉고 쳐볼까? 그냥 순천역 쪽이라고 생각되는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드디어 사람을 만났다. 그것도 밭에서 일하시는 분을! 이번에도 뭐 씨앗을 좀 얻을 수 없을까 하는 기대감도 가지고 인사를 드렸다. 웬 젊은 총각이 쉬는 날도 아니고 가방 하나 메고 다니는 모습을 보시고는 적잖이 놀라신 것도 같다. 밭이 예쁘다고 너스레를 떨며 슬그머니 주저앉아 말을 건넸다.
이 밭은 200평이 조금 넘는데, 2년 전에 1억 가까이 주고 사셨다고 한다. 기특하게도 31살 먹은 딸이 돈 좀 보태고, 두 분이서 모아 놓은 돈으로 사셨다. 몇 년 뒤에 아저씨가 퇴직하시면 두 분이서 농사지을 생각에 이렇게 사서 연습 삼아, 운동 삼아 농사짓는다고 하신다. 집에서 여기까지 걸어서 한 시간 거리인데, 두 분이 운동 삼아 나와서 여기까지 걸어와 일하다 집에 가면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하신다. 그 말씀을 하실 때 입꼬리가 귀까지 벌어지시는데 정말 좋아 보이신다.
아주머니의 원래 고향은 박치기왕 김일이 태어난 녹도라고 하신다. 녹도라는 지명을 처음 들어서 도대체 어딘가 한참 생각했다. 그런 건 일단은 어물쩡 넘어가야 한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꾸 멈추게 하면 흐름이 끊어져 더 들을 얘기도 못 듣는다. 일단 그러려니 하고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따로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녹도도 그렇게 기억해 놨다가 나중에 찾아보고 알았다.
이야기를 나누는데 뭐라도 먹으라면서 농막을 뒤지신다. 농막도 컨테이너 작은 걸로 잘 해 놓으셨다. 그렇게 뒤지시더니 인삼맛 사탕을 꺼내서 손에 쥐어 주신다. 받았으니 먹어야지, 바로 하나 까서 날름 입에 넣었다. 아주머니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얼마 전에 내 또래의 아들을 가슴에 묻으셨다고 한다. 어째쓰까나, 다 키워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실까나.


그림 14 한창 일하고 계시다 놀라신 아주머니.


밭에는 주로 참깨를 많이 심으셨다. 그래도 아직은 초보인지라 너무 배게 심어서 참깨가 웃자랐다. 오늘 태풍이 올라와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다 넘어갈 기세다. 옛날에 어른들이 태풍처럼 날씨가 궂을 수도 있으니 늦게도 심으라고 하신 말이 기억나, 나중에 드물게 심었는데 오히려 그게 더 알맞게 잘 자랐다고 한다. 이 밭에는 거름을 액비를 만들어서 주고, 밑거름은 퇴비를 사다 준다고 한다. 참깨 말고는 둘레에 팥과 호박을 심고, 잎채소들을 조금 따로 밭에 심으셨다. 밭 군데군데 서 있는 나무는 매실나무인데, 처음 밭을 살 때 묘목을 심어 엄청 많이 컸다고 한다.
처음에는 농사지을 줄 몰라서 좌충우돌 실수도 많이 하고 동네분들한테 좋은 밭 사서 농사도 못 짓는다고 핀잔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동네분들이 살뜰하게 이것저것 씨도 챙겨 주시고 농사짓는 법도 일러주셔서 참 고맙게 잘 짓고 있다고 하시니, 동네분들이 병도 주고 약도 주시는 분들이다.
이 동네를 좀 아시냐고 물으니, 원래 10년 전만 해도 일대가 모두 논밭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개발되면서 아파트도 들어서고, 이것저것 갈아엎어서 많이 도시가 되었다. 지금 농사짓는 이곳만은 땅값이 비싸서 업자들이 함부로 매입을 못해서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주변에 땅값 싼 곳은 이미 다 사들여서 아파트 지어 남은 것이 없다고. 슬쩍 땅값이 얼마나 되는데 그러냐고 물으니, 여기는 1평에 50~60만원이나 한다고 한다. 안산보다도 비싸다!


그림 15 아주머니의 밭 전경. 웃자란 참깨들. 군데군데 있는 나무가 바로 매실. 가운데 왼쪽에 빨간 다라이통이 액비를 만드는 통.



그림 16 도시의 상징 아파트. 너에게 흐린 구름이 짙게 낄 것이다. 아파트 사는 사람들이 여기 살기 싫다고 다 뛰쳐나오면 안 될까? 아파트, 골프장, 스키장.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것들.



그림 17 시간이 더 흐르면 그나마 여기 남은 논밭도 모두 아파트가 들어설까? 아니 순천의 인구가 늘어날 일이 거의 없으니 그저 꿈일 수도 있다. 순천 풍덕 지구 도시개발 사업조합 앞.


슬슬 후배가 도착할 시간이 다 돼 간다. 나도 순천역으로 가서 마중을 해야지. 아주머니께 인사드리고 난 순천역으로 향했다. 순천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아파트 입구에 할머니들이 가판을 벌였다. 자주 여기에 자리를 펴시는 듯하다. 혹시 감자 나올 때가 됐으니 토종 감자가 없을까 하여 슥 쳐다보며 지나는데, 이상한 감자가 눈에 띈다. 발걸음을 멈추고 쭈그리고 앉아 할머니께 여쭈었다.
“이게 뭐예요?”
붉은 감자라고 하시며 아주 맛있다고 사다 먹어보라고 하신다. 먹을 건 아니고 씨감자로 쓰려고 하는데 괜찮냐고 물으니, 자기도 사오는 거라서 장담할 수 없으니 안 된다고 하신다. 그럼 사진이라도 찍어 가겠다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몇 장 찍는데 사투리로, “왜 작을 놈으로 찍어 기왕 찍으려면 이 큰 놈으로 찍지.” 아 사투리를 그대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내가 순천 사투리를 알면 그대로 적을 텐데. 녹음한 것도 아니고 이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럼 이 감자는 어떻게 구할 수 있냐고 하니, 붉은 감자라고 농협에서 종자를 보급한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두불감자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으시는 걸 보니 이곳은 감자도 두 번 심나 보다. 남도가 다르긴 다르구만. 아쉽지만 나중에 농협을 통해 알아보든지 하기로 마음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림 18 일반 감자(오른쪽)와 붉은 감자(왼쪽). 껍데기만 붉고 속은 하얗다. 찌면 분이 풀풀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고 하신다. 조금 사올 거 그랬나?


순천역에 도착하니 아직 시간이 꽤 남았다. 대합실에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니 드디어 후배가 도착했다. 여기서 어물쩍거리지 말고 서둘러 버스를 타고 벌교로 넘어가기로 했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30~40분 정도면 간다고 한다. 생각보다 무지 가깝네.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는 넘어가 깜깜한 밤. 우리는 벌교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 얘기가 길어져서 황귀연 씨가 논농사 짓는 방법 조사한 것은 다음으로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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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 : ‘파’의 방언(황해).
뮤, 무이 : '무’의 방언(황해).
비듭 : ‘비름’의 방언(황해).
얘이 : ‘냉이’의 방언(황해).
쉐자, 메낭 : '목화’의 방언(황해).
잔대 : ‘잔디’의 방언(황해).
머레 : ‘머루’의 방언(황해).
더금닙 : ‘떡잎’의 방언(황해).
줄걱지 : ‘줄기’의 방언(황해).
콩기럼 : ‘콩나물’의 방언(황해).
시근치 : ‘시금치’의 방언(황해).
덩나물 : ‘풀반지’의 방언(황해).
강내미 : ‘옥수수’의 방언(황해).
재잘나무 : ‘갈참나무’의 방언(황해).
패끼 : ‘팥’의 방언(함경, 황해).
채미 : ‘참외’의 방언(경기, 황해).
능지 : ‘피마자’의 방언(황해).
쉬수 : ‘수수’의 방언(평안, 황해).
이파구 : ‘잎사귀’의 방언(강원, 황해).
호감자 : ‘고구마’의 방언(평안, 황해).
수땅 : ‘수수깡’의 방언(평안, 황해).
해개우리 : ‘해바라기’의 방언(평북, 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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