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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서울에서도 어스름한 밤이 되려 하면 동네 야산에서 박쥐가 나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서울 변두리이긴 했지만, 난 아직도 그 모습을 기억한다.

 

국립생태원에서 2016년 2월부터 10달 동안 삼척·문경·안성·함평·제주 지역에서 집박쥐, 긴날개박쥐 등 곤충을 먹는 박쥐 4종을 대상으로 ‘식충성 박쥐의 생태연구’를 수행한 결과, 몸무게 7~9g의 집박쥐가 매일 밤 1~3g 정도의 해충을 먹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박쥐의 여러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주거지에선 인간의 건강에 피해를 줄 수 있는 해충을 방제하고, 농경지에선 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을 방제하는 그들의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난 아직도 푸르스름한 하늘을 날아다니던 박쥐가 그립다.

 

https://news.v.daum.net/v/20190621060110289?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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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의 고고학> http://www.yes24.com/Product/Goods/9181378


한국에서 농경 문화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가 딱 여기까지 와 있다. 

농업도, 고고학도 잘 팔리지 않는데 둘을 모아 놓았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나중에 누가 좀 더 집대성해서 잘 정리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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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제 대방동 여성플라자에 다녀왔습니다. 
이곳 앞에는 스페이스 살림이라는 건물이 공사중이었습니다.
http://www.mcnews.co.kr/65087


우연히 알게 된 이 부지의 역사 또한 기구하더군요. 이곳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기지로 이용되다가 반환을 받아 2014년에는 도시 텃밭으로 이용되던 곳이랍니다. 순천시의 신대 도시농업 공원과 비슷한 길을 간 곳이지요. http://www.thedj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4


도시 텃밭은 대부분 이렇게 이용되는 것 같습니다.

1. 당장은 부지에 건물을 짓거나 이용할 계획이 없다.
2. 겉으로 친환경이나 생태적이라며 생색을 내기에도 좋고, 나중에 쉽게 밀어버리고 개발할 수 있는 텃밭을 만든다.
3. 적당히 이용하다가 많은 시민들이 부지의 개발을 원한다며 텃밭을 밀어버린다.


도시와 농사는 양립할 수 없는 걸까요?
도시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만 허용되는 공간이고, 흙은 도시 외곽의 저 멀리 떨어진 농촌에서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는 걸까요? 
푸드플랜이 어쩌고 먹을거리 정책이 어떻고 이야기하지만, 실제 생산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땅과 흙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참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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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중요한 통계 자료가 발표되었구나.




한국은 곡물 자급률도 낮은데 농약과 비료의 사용량은 세계 최고 수준인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농약과 비료를 오남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서둘러 점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일각에서 글리포세이트를 사용하는 유전자변형 농산물의 수입량 증가와 한국인의 각종 질병 발생률의 상승이 상관관계가 있다고 떠드는데, 이렇게나 농약을 미국보다 많이 쓰니 그거 아니더라도 다들 병이 나서 죽겠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난 그쪽 주장은 잘못된 근거에 기반하는 사상누각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한국의 농업은 미국 농업을 롤모델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농업보조금 비율만 보면 그러하다. 그리고 모든 걸 시장에 맡기려 하는 관계기관의 모습들을 보면 그렇게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농업소득을 올리겠다고 자랑스럽게 떠들지 말고 농가소득을 올려 농촌에서 사는 사람들이 소중한 자연을 지켜 나아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낫지 않을까. 반대하는 도시민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설득하고 그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해라. 지금도 주말이면 자연이 그리워 어디든 떠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어떤 방향으로 전환을 하는 게 좋을지는 각자 판단하여 함께 논의할 문제이겠다. 무엇이든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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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주권이 아니라 식량안보를 법안화하려는 움직임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농민, 농촌, 농업에 대한 고민 없이 식량만 잔뜩 생산하면 된다는 논리를 밀어붙일 것 같습니다. 

참가자의 면면을 보아도 농민이나 농업 관련한 인물은 보이지 않고, 농업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만 눈에 띕니다. 


농민 단체 및 농업 관련 단체의 대응이 필요해 보입니다.




http://www.foodsecurity.or.kr/bbs/view.php?bbs_id=noticee&doc_num=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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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생태학: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체계의 생태학









24장 농업, 사회, 그리고 농생태학


1장에서 우리는 오늘날 세계의 많은 부분을 지배하는 산업적 농업 체계의 엄청난 생산성을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하는 대가의 일부인 환경과 사회, 농업 생산성의 토대에 대한 여러 심각한 해악을 설명했다. 이들 많은 해악들 가운데 산업형 농업은 고대의 대수층을 소모시키고,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토양을 고갈시키고, 생물다양성을 감소시키며, 대기로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추가하고, 중요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연계를 손상시키고, 먹을거리 생산의 통제권을 소수의 사람들에게 쥐어준다. 


1장 이후의 장들에서 이 책은 산업형 농업과는 매우 다르게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접근법을 구성하는 원리, 전략, 방법을 켜켜이 구축했다. 이들 장은 모두 산업형 농업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고, 현재 받아들이기 어려운비용을 가지고 있으며, 사실상 농생태학의 토대에 기반한 체계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1980년대에 농생태학의 사고, 실천, 연구가 부상한 이후 축적된 증거에 의하면, 이러한 농업에 대한 대안적 접근법은 실제로 산업적 접근법보다 훨씬 더 지속가능하고, 지구의 생명을 유지하는 체계를 훨씬 덜 손상시키며, 세계의 극빈층이 견디고 있는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노력과 더 일치한다고 나타난다(예, IAASTD 2009; IFAD 2013). 또한 연구는 농업에 대한 농생태학적 접근법이 현재만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도 세계의 인구를 부양할 만큼충분한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견해를 뒷받침한다(Badgley and Perfecto 2007; Badgley et al. 2007).


이 책에서 농생태학의 토대를 제시하는 궁극적 목적은 더 지속가능한 세계의 먹을거리 체계로 전환하는 걸 촉진하는 일이기에, 우리는 이제 -앞의 부에서 지속가능성으로 전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뒤- 전환의 실제 상황을 조사해야 할 차례이다. 우리가 두 체계에 관하여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고려하고 사람들이 가장 밝은 전망을 지닌선택지를 고르길 바란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농생태학적 접근법의 더 지속가능한 방식이 산업형 농업의 접근법을 천천히 대체하고 강력해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러한 추세는 산업국의 지역 기준에서는 분명히 나타나지만, 전반적으로 세계적으로는 반대의 일이 발생하고 있다.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알려진 농법이 일반적으로 축소되거나 대체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열광하는 대상이 증가하고 있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15장에서 지적했듯이, 유전자변형 작물을 재배하는 토지의 면적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소규모 생산은 증가하는 대신 전세게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거의 모든 곳에서 벌써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대규모 단작이 그 반대가 아니라 다양한 섞어짓기를 대체하고 있다. 전 세계의 농민들은 외부 투입재를 덜 쓰는 게 아니라 그에 더욱 의존하게 만드는 농법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들 영역 각각에 대한 고무적인 반례가 있지만, 이런 방식과 다른 많은 방식으로 세계의 먹을거리 체계 전체는 1장에서 설명한 기술 집약적이고 자본 집약적이며 산업에 기반한 방식에 점점 더 의존하고 지배되고 있다(그림24.1).


그림24.1 아이오와 주에서 대규모 단작으로 재배되고 있는 유전자변형 옥수수. 유전공학과 투입재 집약적인 대규모 단작 같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농법이 더욱 확대되고 있으며, 증가하는 먹을거리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필수적이라며 여러 사람들이 옹호한다. (사진 제공 Paula R. Westerman)


 


장기적으로 볼 때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지라도 왜 인간 사회 전체는 산업형 농업의 길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농업 정책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답을 줄 것이다. 농업 생산성을 증가시키고 그걸 이용하지 않으면 먹을거리 부족과 기아의 형태로 끔찍한 결과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유전자변형 유기체, 대규모단작, 대량 생산 및 기타 산업형 농업의 측면이 점차 지배적으로 되고 있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산업형농업의 농법은 농민이 더 많은 먹을거리를 재배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먹을거리를 늘리는 게 농업의 요점이다. 이 답은 많은 걸 충족시키지만, 1장을 읽은 사람들은 만족시키지 못한다. 첫째, 산업형 농업의 농법과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진 심각하게 부정적인 여러 결과 -와 미래의 생산성에 대한 위협- 는 다루지 않는다. 둘째, 생산성을 높이고 식량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다른 더 지속가능한 수단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를 부양하기 위해 산업형 농업에 더 밀어붙이자"는 주장의 근본적 결함을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가 본래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더 가까이 다가가는 건 아니다. 세계 전체는 궁극적으로 자멸적인 먹을거리 생산의 길을 지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바로 세계가 가야할 길이라 생각한다. 분명히 더 자세히 조사할 만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제안하는 그 무언가는 신념과 정치적 공약, 경제적 이익, 사람들이 아이디어와 사실을 해석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이들 요인을 이해하려면, 우린 한 걸음 물러나 농업 그 자체를 너머농업이 운영되고 있는 더 광범위한 맥락을 조사해야 한다. 즉, 우리는 시장, 경제 구조, 정부 정책, 정치, 권력의 수준이 다른 집단들 사이에 발생하는 투쟁 및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적 틀을 검토해야 한다. 이는 모두 사회라는 지시문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접근법을 취하여, 우리는 왜 인간 사회가 농업과 관련하여 겉으로 보기에는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왜 이런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고자 하는 널리 퍼진 약속이라도 있는지에 대한 매우 강력한 사회적, 경제적 이유가 있음을 알기 시작할 수 있다. 


우린 2장에서 농업과 사회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 장에서 우리는 인간의 요구와 목적에 부합하는 인간이 관리하는 생태계로 농업생태계를 조사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가장 구체적인 형태의 농업생태계 -농경지 또는 개별 농장- 를 확장해, 어떻게 지방과 농촌-도시 경관을 가로지르는 농업생태계 수준을 단일하고 상호연결된 세계적 먹을거리 체계로 개념화할 수 있는지 탐구했다. 먹을거리를 생산, 유통, 소비하는 모든 명백한 사회적 활동을 고려함으로써, 농업생태계 개념은 농업을 사회적 맥락에 놓는다. 


하지만 농업생태계 개념에 구체화된 농업과 사회 사이의 관계는 주로 표면적이기 때문에, 이는 우리가 가야할 곳의 출발점일 뿐이다. 다시 말해, 그 개념은 농업과 사회가 서로 의존하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그 상호의존성의 내용과 그것이 사람들의 신념과 가정에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조사하는 데 필요한 도구는 제공하지 못한다. 


이러한 도구를 얻는 열쇠는 농생태학이 원래 수립된 자연과학의 틀을 넘어 사회과학의 통찰력에 접근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번 장의 핵심 목적이다. 이는 농생태학이 기반하고 있는 생태학의 개념은 먹을거리 체계에 있는 많은 자연-사회의 상호연결성을 이해하는 데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반면, 먹을거리 체계의 지속가능성을 궁극적으로 통제하는 사회라는 세계의 고유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발상에 근거한다. 생태학의 개념 외에도, 신념과 가치, 추정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들이 사회, 정치, 경제적 삶의 구조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고 강화되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한 분석 도구도 필요하다. 농생태학의 분석적 접근법과 연구 의제에 이들 도구를 포함시킴으로써, 우리는 왜 먹을거리 체계가 계속해서 파괴적인 궤도에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이해는 농생태학자가 단순히 지속가능한 대안적인 농업생태계를 설계하는 데에 만족한다면 먹을거리 체계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깨달음을 낳는다. 또한 그들은 전체 먹을거리 체계의 근본적 변화 -사회적 토대를 형성하는 신념과 가정을 포함하여- 를 지지하고 노력해야 하며, 실제로 토지에서 일하는 사람 및 그들이 생산한 먹을거리를 소비하는 사람들과 이러한 변화를 드러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협소하게 받아들여지는 농업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기 쉬운 더 단순하고 구체적인 사물과 관계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복잡한 세계를 이해한다. 우리는 계층 구조, 인종차별, 국가 경제 같은 헤아리기 어려운 추상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대면하고 있는 상호작용, 가족, 개별적 투쟁의 이야기 같은 것들을 취하여 은유, 비유, 모델로 이용할 수 있다. 즉, 분명하게 보이고 가까이에 있는 것들이 더 추상적인 생각을 매달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엄청나게 복잡한 경제활동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개별 가게주와 그의 고객들 사이의 1 대 1 상호작용을 모델로 사용한다. 이 단순한 모델을 통해 우리는 수요와 공급 같은 복잡한 현상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을 국가 수준의 경제와 국제무역에 적용할 수도 있다. 


사회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심지어 필수적일 수도 있음- 이와 같은 모델은 중요한 한계가 있다. 사회 조직의 가장 단순한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을 이상화하고 기반한 그것의 특징은 사회의 수준에서 작동되는 사회 과정의 특징과 결코 완전히 평행하지 않고, 더 복잡한 수준에만 존재할 수 있는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생태계와 흡사). 게다가 이들 모델은 더 높은 사회 수준에 비유되어 확장되면 우리의 개념을 형성하게 되는 특정 편견을 포함하곤 한다. 


인간이 사회와의 관계에서 농업을 이해하는 데 사용하는 모델의 경우(적어도 산업국에서)가 그러하다. 여기의 기본 모델은 앞서 언급한 가게주-고객 관계와 같다. 먹을거리를 재배하는 농민이 있고 농민에게 직접 가서 자신의 먹을거리를 구매하는 사람이 있다. 농민의 고객은 "수요"로 간주되는 먹을거리에 대한 특정 요구와 욕구를 가지고, 농민은 "공급"으로 생각되는 특정한 양과 종류의 먹을거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공급과 수요는 상호작용하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 특정 먹을거리에 대한 더 많은 수요는 농민이 그 먹을거리를 더 많이 재배하도록 유도한다. 


더 큰 규모로 비유하여 확장된 이 모델은 우리가 "농업"이라 부르는 전체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사업을 사람들이 이해하게 하는 기초를 형성한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 -먹을거리 소비자부터 고위급 정책입안자까지- 이 농업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쳐서, 기아와 먹을거리 분배를 포함하여 먹을거리와 먹을거리 생산 및 농장에서 사용되는 생산 방식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영향을 준다. 이런 개념에서, 농업은 하나의 거대한 농장과 같고, 먹을거리를 먹는 사람들(즉, 모든 사람)은 "소비자"로 함께 집단을 이루며, 둘은 개별적 농민과 그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공급과 수요에 의해 연결된다. 소비자 쪽의 수요는 농업 분야의 농민이 무엇을 얼마나 많이 재배하고 생산하는지에 영향을 미쳐, 이것이 지역, 국가, 또는 세계 전체의 먹을거리 공급을 구성한다. 이 모델은 그림24.2에 나와 있다.



그림24.2 먹을거리 체계의 개념적 모델. 먹을거리 체계를 대폭 단순화하는 이외에도, 사람들이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하여 특정한 추정을 하도록 장려한다. 




이 모델이 2장에서 설명한 대로 어떻게 먹을거리 체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농업이 생물다양성, 자연계의 과정과 그 생태적 서비스, 토지와 관개용수의 공급, 토양과 토양의 질, 인과 질소 같은 투입재, 에너지원, 기후 등등 생산의 다양한 물리적 요인들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소농이나 토지가 없는 임대농으로 분투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연간 매출이 수십 억에 이르는 거대한 초국적 기업이란 사실을 무시하고, 농업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농부"와 대등한 지위에 놓여 있다. 먹을거리의 섭취자들은 식량안보가 없는 수백 만 명의 불평등을 제거하고, 단일한 하나의 구역으로 취급된다. 먹을거리를 재배하는 사람과 그를 소비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조직체 -가공업자, 중개인, 유통업자, 제조업자, 도매업자, 소매업자로 구성되는- 는 완전히 간과되고, 그 길을 따라 낭비되는 많은 양의 먹을거리도 마찬가지이다. 광고와 기타 수단을 통해 소비자의 수요를 형성하려는 농업 쪽에 대한 농기업의 능력도 완전히 빠져 있다. 아마 가장 중요한 것은, 이모델에서 먹을거리 생산이 순전히 경제적 맥락에서 먹을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방식을 개발하고 이용한다는 그저 기술적 문제로 축소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농사 방법은 농업의 "블랙박스" 안에 숨겨진다. 그것들은 농업 관련 사업 외부의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일이 아니다. 


이러한 단순한 경제 모델이 농업을 이해하기 위한 개념적 틀을 제공한다면, 당신은 오늘날 세계의 농업 운영방식이 가진 많은 문제점을 보지 못하게 된다. 농업(하나의 대형 농장)이 세계의 먹을거리 소비자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전체 수요를 충족시키는 한 만사가 괜찮다. 당신이 기아와 토양침식, 농업 유출수의 오염 효과 같은 문제를 알고 있다면, 그건 본질적으로 기술적 해결책의 대상이 되는 기술의 문제이기에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 세계에 기아가 있고 세계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면, 이는 단순히 농민들이 더 많은 먹을거리를 재배해야 한다는 의미로서 유전자변형 작물 같이 먹을거리를 더 많이 늘릴 수 있는 기술을 더 널리 사용해야 한다.


앞의 설명이 암시하듯이, 특정한 작가나 사상가가 이 모델을 기반으로 작업하고 있다는 많은 지표가 있다. 한 작가가 "농민"에 의해 먹을거리가 재배된다고 말하면(그리고 그 작가는 소규모 또는 가족농이라고 특별히 언급하지않음), 그 또는 그녀는 모든 먹을거리 생산이 가족농장과 비슷한 어떤 것의 맥락에서 일어난다는 잘못된 가정을 모델에 끼워 넣을 수 있다. 만약 그 작가가 주로 "생산성"이나 "수확량"에 관하여 관심이 있고 산업적 생산 방식의 생태적, 사회적 충격을 무시한다면, 지나치게 단순화한 경제 모델은 농업의 모든 관련 측면을 볼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을 흐리게 할 수 있다. 


그림24.2에 그려진 농업 모델이 엄청난 영향력을 갖는다는 걸 인식하기 위해 뉴스 매체에 대한 간단한 조사와 농업 정책 입안자와 전문가들의 의견 가운데 일부만 추출해도 된다. 그것은 농업과 기아, 인구 증가, 토지 이용에 대한 공개 토론의 근간을 이루는 당연시되는 많은 가정의 출처이다. 예를 들어, 이 모델로만 대중 담론이 형성되면서 2013년세계 식량상이 유전자변형 작물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세 사람에게 수여될 수 있었다. 산업형 농업의 환경과 사회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사람들조차 그들의 사고에 이 모델이 부과하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먹을거리 체계의 정치경제학과 생태학


체계적인 편견과 사각지대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농업의 장소에 대한 더 완전한 모델은 무엇보다 2장에서 논의된 먹을거리 체계 모델의 모든 특성을 지니고 있다. 즉, 시장과 정부 정책 같은 사회적 구조를 포함하고, 시장 메커니즘과 가격이 먹을거리가 실제로 사람들에게 분배되는 방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인식하고, 생산 과정의 다양성과 복잡성 및  농산물의 대부분이 비식품 산업형 작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며, 농업 생산이 어떻게 자연계와 환경에 의존하며 상호작용하는지 이해한다. 


하지만 농업이 전 세계의 실제 인간 존재의 삶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충분히 설명하기 위하여, 더 나은 모델은 세계 먹을거리 체계의 모든 측면에 존재하는 불평등도 고려해야 -그리고 원인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그것은 자신의 생활환경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먹을거리 체계 자체의 변화를 불러오는 국가와 지역들 사이에 있는 부의 차이, 사람들의 계층 사이에 있는 먹을거리 접근성의 차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를 검토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불평등의 모든 측면은 사회과학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인 권력의 개념으로 싸여 있다. 권력의 기본 정의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전반적인 능력이다. 하지만 개인의 속성으로 권력을 표현하는 이러한 단순한 정의는 우리가 여기에서 그 용어를 사용하면서 권력의 핵심 특징 가운데 일부를 빠뜨리게 한다. 권력은 사회적, 문화적 구조와 관련하여 누군가의 위치에서 나오는 기능 -특히 계급, 인종, 성별에 따라 존재하는 분할- 으로, 이는 개인 수준에서 권력이 부, 지위, 집단의 회원, 지식에 대한 접근성에 달려 있음을 뜻한다. 이런 것들이 대를 이어 전해지는 한 권력은 재분배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이, 권력은 개인의 수준을 넘어서는 수준에도 존재한다. 권력은 개인에 의해서 못지않게 집단과 기업, 정부, 국가에 의해 행사된다.  


농업의 맥락에서, 개인의 권력에 대한 유용한 정의는 누군가의 삶에 대한 상황과 운명을 통제하는 상대적인 능력으로서 결국 먹을거리가 가장 중요하지 않은 누군가의 요구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자원(토지, 종자, 물, 다른 사람의 노동력 등)에 대한 접근과 통제에 크게 의존한다. 이 기준에 의해 전 세계 수십 억의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아무런 권력이 없는 반면, 극소수 -우리가 지배층이라 부르는- 는 너무 권력이 커서 둘을 비교하기 어렵다(그림24.3).



그림24.3 에콰도르 키토 근처의 비옥한 저지대에 있는 고투입의 기계화된 감자밭(왼쪽)과 자원이 제한된 구릉지가까이에 농민이 농사짓는 밭(오른쪽). 세계 먹을거리 체계의 참여자들은 엄청나게 다른 수준의 권력을 가지곤 한다. 




사회 내부와 사회들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의 분배는 틀림없이 사람들의 일상 생활과 경험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Domhoff 2013). 마찬가지로 권력의 표현과 유지는 아마 사회가 운영되는 방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일 것이다(Mills and Wolfe 2000). 이러한 이유로, 권력에 대한 쟁점을 검토하는 건 먹을거리를 재배하는 걸 포함해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을 이해하는 데 엄청나게 중요하다. 특히 많은 사회학자와 정치학자들은 이 결론을 거의 공리처럼 받아들인다. 여러 가지 이유로, 농업을 연구하고 그것을 좌우하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걸 받아들이는 게 더 느렸다.   


권력에 대한 쟁점은 그 용어의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이다. 그것은 선거 정치와 정당의 경쟁이란 좁은 의미를 뛰어넘는다. 거시적인 정치는 불평등한 권력의 분배를 인식하고 그에 도전하는 행동을 취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런 종류의 정치는 정부, 법률, 정책의 무대 외부에 존재하며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다.  


이번 장의 핵심 전갈은 농생태학자는 농민들 사이에, 먹을거리 섭취자들 사이에, 그리고 체계의 기타 모든 여러 구성요소들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의 분배라는 관점에서 먹을거리 체계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 장은 농생태학의 학생들이 정치라는 렌즈를 통해 먹을거리 체계를 바라보길 장려한다. 여러분이 이렇게 하면, 먹을거리 체계 가운데 한 가지 핵심 특징이 곧바로 눈에 띈다. 권력의 대부분은 더 부유한 국가, 농식품 기업들, 이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대규모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Holt-Gimenez and Patel 2009; Hauter 2012).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권력과 권력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현행 산업형 농업의 체계를 지지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신념에 매우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먹을거리 체계를 통제하는 기업

우리는 먹을거리를 "농민" -소규모 가족농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단어- 이 생산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산업국에서 소비되는 먹을거리 대부분은 흔히 농기업이라 부르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대기업이 지배하는 세계적 체계와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그들의 통제는 먹을거리 생산과 분배의 모든 수준에 뻗어 있다. 생산 요인의 공급(종자, 농화학물질, 비료, 농기계 등), 토지의 소유, 가축 사료의 생산, 가축의 생산, 주요 작물 대부분의 생산, 식품 가공과 운송, 도매 유통, 소매 판매 등이 그렇다. 이 방대한 체계에서, 먹을거리는 상품으로 취급된다. 농기업의 회사와 그 다양한 형태의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을 위해 부를 생성해주는 능력으로 평가를 받는 품목들이다. 그 범위 때문에 기업이 지배하는 먹을거리 체계는 모든 먹을거리를 그들의 중력장으로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다. 즉, 일반적으로 먹을거리를 상품화하여 모든 먹을거리를 상품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여전히 정확하게 "소규모 가족농"이라 부를 수 있는 농장에서 먹을거리가 생산되더라도 그 농장의 소유주가 자신의 옥수수나 브로콜리나 돼지를 기업이 지배하는 상품 지향형 네트워크의 먹을거리 가공, 유통, 판매에 휘말리지 않게 하기란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비자로서 이들 먹을거리 대기업을 지원하는 일을 회피하기란 어렵다. 예를 들어 "유기농" "생물학적" "자연" 및 "생태적"이란 상표를 붙인 먹을거리를 판매하는 기업들의 대부분은 실제로 다국적 대기업이 소유하고 있다(그림24.4 참조).



그림24.4 북미에서 유기농 식품 브랜드의 기업 소유권. 유기농 식품 브랜드의 대부분은 농식품 대기업이 소유하고있다. 이러한 상대적으로 소수의 기업이 소유한 모든 브랜드를 포함하면 이런 크기의 화면이 여러 장 필요할 것이다. (그림 Philip H. Howard, Michigan State University, East Lansing, MI.)





하지만 농지, 종자, 비료, 먹을거리 가공시설, 운송, 유통망의 소유권이 기업의 손에 들어가는 게 왜 문제인가? 이것이 권력 및 불평등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대답은 농식품 기업들이 엄청난 양의 부를 통제하고 농산물의 물리적 및 재정적 기반의 대부분을 소유하여, 먹을거리 체계의 다른 행위자들에비해 엄청난 권력을 지니게 되는 원인이자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 세계 도매와 소매 식품 시장에서 영업하는 네슬레는 연간 매출이 약 1220억 달러로 세계 여러 국가의 국민총생산액보다 많다. 연간 매출 900억 달러를 초과하는 미국에 본사를 둔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rcher Daniels Midland는 식품 가공과 제조 및 유통을 지배한다. 그들도 몇몇 개개의 국가들에 존재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부를 통제한다. 


농식품 기업의 엄청난 부는 그들의 필요와 사리에 따라 먹을거리 체계를 형성할 수 있는 상당한 권력으로 변환된다. 그들은 정부의 법률에 영향을 주고, 인위적으로 가격을 상승시키며, 소비자의 행위를 구체화시키고, 매점을 통해 확장에 유리한 조건을 협상하고, 그들의 지배력에 대한 위협을 억누를 수 있다. 


세계 먹을거리 체계에서 기업의 역할이 너무 지배적이라 일부 연구자들은 현행 체계를 "기업의 먹을거리 체제"(McMichael 2009; Hauter 2012)로 평하지만, 기업만이 먹을거리의 생산, 유통, 소비를 통제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표면상 이윤을 만들지 못하는 왕국 외부에 있는 모든 종류의 다른 기관들과 동맹을 맺어 협력을 얻는다. 먹을거리 왕국이란 발상의 주요 지지자인 맥마이클McMichael(2009)에 의하면, 현행 기업의 먹을거리 왕국을 구성하는다른 기관들에는 정부 부처, 세계적 농업기관, 무상 토지 불하 대학들, 싱크탱크, 대형 자선단체 등이 포함된다. 이들 기관들은 모두 기업의 먹을거리 왕국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으며, 먹을거리 체계가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자화되지 않은 "규칙"을 시행하고자 농식품 기업과 협력한다. 또한 그들은 농업을 인지하는 특정 방식을 조장한다. 산업적 방식과 기업의 통제라는 현재 상황의 유지를 지지하고 뚜렷하게 비정치적임을 내세우는 방식이다. 






집중 광선에서 벗어난 농업의 권력 관계

많은 학자, 도시계획 설계자, 정책입안자, 공무원, 논평가, 사람들 사이에는 대개 권력과 부의 집중, 불평등의 측면에서 먹을거리와 먹을거리 생산을 보는 것을 전반적으로 꺼려하는(또는 할 수 없는) 게 있다. 앞서 논의된 "깊은 정치적" 방식으로 농업을 보는 걸 이렇게 광범위하게 거부하는 건 여러 중요한 쟁점들 -토론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건설을 위한 것도- 을 제한해 버린다. 다른 말로, 농업에 대해 만연한 비정치적 지향은 특정 쟁점, 특히 농식품 기업들의 부와 권력 및 전체 먹을거리 체계의 매우 불평등한 권력의 분배를 우리의 의식에서 완전히 없애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먹을거리 쟁점이 때로는 "정치적"이 되는 것이 그러하다. 예를 들어, 시민들과 선출된 공직자들은 유전자변형 작물에서 유래된 식품에 상표를 붙여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한다. 또 다른 좋은 사례로, 미국 의회는 정기적으로 연간 농업의 예산 지출 법안에 규정된 보조금의 규모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이것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이 같은 쟁점들은 거의 항상 근본적인 쟁점은 문제삼지 않은 채 정부 기관에서 좁은 관점으로 논의된다. 물론 미국에서 생산자 보조금의 규모는 중요하지만, 보조금의 존재 여부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의회의 의원들은 일반적으로 농상품 생산의 합병을 장려하고 소농을 밀어내는 보조금의 역할은 논의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하게, 유전자변형 표시제 논쟁(그림24.5)에서, 표시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시민들에게 최근의 유전자변형 작물의 활용이 어떻게 먹을거리 생산에 대한 기업의 통제력을 높이고 농민들을 지속가능하지 않은 해충 방제의 악순환에 빠지게 하는지 보여주는 방식으로 그 쟁점을 다루는 대신, 유전자변형 식품의 가정적인 건강 위험(경우에 따라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음)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표시제를 추진한다.



그림24.5 유전자변형 식품의 표시제를 요구하는 운동의 구호들. 소비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는 현실적 목표를 세웠지만, 유전자변형 작물, 기업의 농업 통제, 지속불가능성 사이의 관계는 지적하지 못하곤 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먹을거리 체계의 더 근본적인 측면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더 깊은 수준의 정치적 논쟁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가 먹을거리와 관련된 쟁점에 대해 협소한 정치적 취급법을 배제하고 먹을거리 체계의 쟁점과 함께 정치적 관여도가 더 깊다는 증거를 찾는다면, 대부분의 시민들이 식량안보가 우수한 산업국에서는 적어도 거의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깊은 정치적 지향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공공의 논쟁에서 변수를 통제하는 건 주류의 지향 -시민 대다수와 정책을 구체화하고 경제를 관리하는 사람들- 이고, 일반적으로 여러 국가에서 주류의 관점은 먹을거리와 먹을거리 생산을 비정치적으로 생각하고 취급한다. 


미국과 많은 산업국에서 어디에나 있는 간편식을 생각해 보라. 햄버거이다. 햄버거를 원할 때 머릿속을 스치는 요인은 무엇인가? 당신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비슷하다면 패티를 생산한 소가 어디에서 사육되는지, 무엇을 먹는지 등은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아마 그 소를 사육한 토지가 누구의 소유인지, 사료가 재배된 토지가 누구의 소유인지, 사료용 곡물이 가공된 시설이 누구의 소유인지 궁금해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아마 햄버거에 지불한 돈이 식당의 계산대부터 고기 가공 공장의 소유자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손에 햄버거를 얻는 데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분배되는지 상관없을 것이다. 당신의 생각에서 더 나아가, 소비자로서 당신의 역할은 더 작은 목장의 운영을 폐업시키거나 사육자에게 항생제를 제공하는 제약회사의 이익을 불려준다. 아니,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면 가격과 맛, 제공량, 햄버거를 판매하는 매장의 평판이나 인상을 주로 생각할 것이다. 건강과 식이 문제가 우려된다면, 선택의 여지는 없겠지만 소고기가 풀을 먹었는지 아닌지 신경을 쓸 것이다. 간단히 말하여, 당신이 햄버거를 구매하면 소비자로서 행동하고, -햄버거를 구매할 돈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먹을거리 소비는 비정치적 행동이다. 


먹을거리 소비는 사람들이 먹을거리 체계와 상호작용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임을 기억하라. 먹을거리의 소비를 정치적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먹을거리 체계가 이런 방식으로 보일 리가 없다. 


왜 먹을거리 체계와 그 산업형 농업이란 기반이 비판에 저항하며, 정책입안자와 정부 및 기업들에게 많은 암묵적, 명시적 지원을 받는지 이해하려면 그림24.2에 묘사된 농업의 모델로 돌아가서 시작할 수 있다. 이 모델에는 정치적인 것 -즉, 권력의 불평등한 분배와 관련되거나 암시하는 게 하나도 없음- 이 아무것도 없다. 소비자와 "농민"이 동등한 입장에 서 있다. 모든 농민이 소농에 친화적인 것으로 특징지워져 있다. 하지만 권력을 중재하는 관계가 없다는 게 이 모델의 유일한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수요"란 표현으로 선택을 행사함으로써 어떤 종류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오도한다. 하지만 이러한 권력은 우리가 논의했던 권력에 비해 사소한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이란 이 사소한 권력을 강조함으로써, 그 모델은 정말로 문제가 되는 권력의 종류를 감춘다. 


사회에서의 농업의 기능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모델이 농업 정책과 개발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대중이 일반적으로 먹을거리 체계를 인식하는 방법에도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가? 다른 말로, 왜 먹을거리가 비정치적인가?






먹을거리 체계를 통제하는 기업에 대한 위협을 포함시키기

산업국의 시민들이 기업의 통제가 어떻게 먹을거리 체계의 본질을 형성하는지 -그에 따라 자신의 삶과 자손들의 삶을 통제- 를 충분히 깨닫는다면, 특별히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상위 농식품 임원들이 손에 쥔 부의 집중과 소유권에 대한 명확한 그림, 이들 개인의 부와 권력이 미치는 범위에 대한 이해는 사람과 환경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는 산업형 농업의 관행과 먹을거리를 상품으로 취급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에 달려 있다. 이 모두가 우려와 분개, 분노를 일으킬 것이다. 사람들은 현재 상대적으로 소수에게 부를 창출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에게서 권력을 빼앗고 농경지의 미래 생산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체계의 공정성, 윤리 및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농식품 기업에 대한 대규모 항의와 먹을거리 체계를 완전히 개조하기 위한 대중운동은 제한적이고 산발적이기 때문에, 그에 필요한 지식과 의식의 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왜 그런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그림24.2에 묘사된 농업의 단순한 경제 모델의 통용을 드는 것인데, 왜 처음부터 이 모델이 그렇게 퍼졌는지 질문해 보자. 이 심오한 문제에 답하기 위해, 자주 논쟁을 초래하는 이념ideology란 단어를 도입해야 한다. 이념적 체계는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신념이자 당연시되는 가정의 집합이다. 세계에는 다양한 이념적 체계가 존재하지만, -먹을거리 체계의 현재 상태를 보호하는 것을 포함하여- 대부분은 권력과 부를 매우 불평등하게 분배하여 사회나 사회의 배열을 안정시키는 특성을 공유한다. 


상대적으로 힘없는 다수를 희생시켜 힘있는 소수가 혜택을 얻는 권력의 분배가 특히 왜곡된 사회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힘없는 이가 이런 배치에 저항하고 반항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를 알고 힘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점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역사를 통틀어, 이는 물리력 사용의 독점을 보장하는 형태를 취해 왔다. 군주, 지배 계급, 지배 정당, 지배적인 기관 등은 일반적으로 군대와 특별 경비원, 비밀 경찰을 고용해 권력의 분배를 변경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려 시도하는 모든 국민과 속국, 시민들에게 폭력 -물리력- 을 당할 수 있다고 분명히 해 왔다. 


하지만 폭력의 위협을 유지하는 것이 힘있는 집단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세계에 존재해 온 거의 모든 힘있는 정권은 자기 주위에 사상과 신념으로 구성되는 보호 구조도 구축했다. 이러한 사상과 신념은 정권이 신성하게 지시된 질서를 부흥시키거나 유지하고 외부의 위협을 격퇴하거나, 사람들의 요구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권력의 대상들을 설득함으로써 정권의 권력을 합법화한다. 궁극적으로 사상과 신념을 합법화하는 것이 군대와 경찰보다 강력하고, 유지하기에 더 쉽고 비용도 적게 든다. 사상과 신념을 합법화하는 체계가 사회를 장악하면, 권력자가 부과한 질서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성격으로 받아들인다. 즉, 사람들은 대안을 상상하거나 근본적인 비판이나 반대를 조직하기 어렵다는 걸 알기 시작한다. 합법적인 신념과 당연시되는가정의 효과 때문에, 최근 힘있는 집단은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물리력의 위협에 기초한 강제를 완전히 배제하고 사상과 신념을 통해 자기 권력의 위치를 전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가 과거의 정권, 제국, 독재자 -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비난하는 현재의 정권- 를 되돌아보고, 그 합법화된 신념 체계를 "이념"으로 보거나 이들 신념을 "선전"으로 세뇌하려는 더욱 명시적인 노력을 볼 수는 있지만, 우리 자신의 사회를 살펴보며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이에 대한 기본적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사회의 신념 체계에 담겨 있고, 이들 신념은 당연히 스스로를 신념이라 광고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당연시되는 현실 묘사라고 알린다. 


이런 이유로, 우리 자신의 기업이 지배하는 먹을거리 체계가 비판으로부터 격리되고 이념에 의한 위협으로부터 보호되고 있다는 게 반드시 사실 같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상황을 설명하는 간단명료하고 정확한 방법이다. 기업이 지배하는 먹을거리 체계를 둘러싸고 있는 이념적 체계는 소비자가 식품을 선택하는 사소한 "권력"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먹을거리 체계에 실재하는 권력 차이가 사회에서 매우 불평등한 결과를 강화하는 방식을 덮어 감추며, 수확량이 먹을거리 생산의 영역에서 중요한 것이라 확신시킨다. 바꾸어 말하여, 먹을거리의 증가에 관한 모든 토론 조건을 체계적으로 제한한다. 먹을거리 체계에서 기업이란 행위자는 이념적 틀이 그들을 체계의 모든 긍정적인 것에 결부짓고 부정적인 것에서 분리시키기 때문에 비난을 받을 수 없다. 산업형 농업의 사회와 환경에 대한 해악은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농업 접근법의 불가피한 결과라기보다는 단순한 부작용이라 여겨진다. 먹을거리 체계를 둘러싸고 있는 이념적 체계는 아마 매우 강력하게 사람들이 그 체계의 생존과 원활한기능에 이해관계를 갖는다고 납득시킨다. 당신이 햄버거를 바란다면,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이념적 체계가 먹을거리 체계를 둘러싸고 보호한다면, 먹을거리 체계에 단단히 박혀 있으며 서로를 강화하는 더 큰 경제적, 정치적 질서의 수준에 더욱 광범위한 이념적 체계가 존재해야 한다.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합법화하는더 큰 이념적 체계는 자유시장에서 사리의 추구가 경제적 진보와 모든 사람들에 대한 그 혜택의 분배를 보증한다는 널리 신봉되는 신념에 달려 있다. 먹을거리 체계에서 그 신념은 자유시장과 사적 소유, 이윤 추구가 현행 먹을거리 체계의 모든 혜택, 즉 풍요, 다양성, 선택 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 결론을 내린다. 이들이 많은 사람에게근저의 가정일지라도, 현실의 매우 중대한 측면을 무시할 것을 요구하기에 이념적이다. 자유시장에서 이윤의 이기적 추구가 정말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에 많은 책임이 있지만, 그것이 농업에 대한 산업적 접근과 농기업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의 -먹을거리 체계로만 목록을 제한하려는- 원인이기도 하다.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긍정적, 부정적 결과를 모두 인정하는 일 -기업이 지배하는 먹을거리 체계의 정당성에 대한 신념을 손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 은 자유시장의 이념이 강력하고 사회에 널리 퍼져 있으면 어렵다. 



그림24.6 시리얼 선반에 있는 선택이란 환상. 많은 수의 시리얼 유형과 상표에도 불구하고, 주요 성분은 설탕과 몇 가지 기본 곡물이다. 먹을거리 체계를 둘러싸고 있는 이념적 체계는 소비자들이 이러한 선택을 권력의 한 형태로 찬양하고, 먹을거리 체계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훨씬 많이 지닌 기업 행위자들의 중대함을 무시하도록 이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또는 그들의 사고에 영향을 주고 있는) 이념에 불편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부과한 어떤 것이라 생각해서이다. 그러나 대개 이는 이념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다. 자신의 권력을 합법화하는 이념에게서 가장 많은 혜택을 얻는 권력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이념의 요소들을 아무 의문 없이 받아들인다. 그들은 냉소적으로 자신이 아는 어떤 것이 거짓이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으며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일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더욱이 이념적 체계를 구성하는 사상과 신념은 일반적으로 단순히 "거짓"이라며 묵살될 수 없다. 대부분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다. 즉, 사실은무엇이 그들을 아주 강력하게 만든다. 사상과 신념이 특정 현실을 덮어 감추고, 사회적 배치의 특정 구조를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능력을 얻는 것은 이념적 체계의 다른 모든 요소와 이어질 때 뿐이다. 따라서 이념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고와 지각을 이끌기 위하여 그것이 사용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기에 강력한 효과를 지니는 모든 걸 에워싸고 있으며 대체로 보이지 않는 통합된 신념 체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념의 구성에 대한 사례가 이러한 사상을 설명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다국적 농식품 기업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는 스스로를 "농민과 소비자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로 여기고 있다. 표면적으로 그 진술은 진실하다. 이 회사는 농산물 원료를 가공하고 그걸 유통하는 데 중점을 두어서 농민과 소비자 사이의 "연결고리"라 생각하는 것은 정확하다. 또한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의 최고 경영자가 자기 회사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설명을 신앙의 한 요소로 삼아 자랑스러워 하리란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진술은 반박의 여지 없이 이념적이다.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는 매년 소비자가 먹을거리에 소비하는 수십 억 달러를 농민이 아니라 회사의 소유자와 주주에게 돌아가도록 보장하는데, 연결고리로 봉사한다고 하여 그런 사실을 덮어 감춘다. 또한 아서 대니얼스 미들랜드는 1923년 창립 이후 이러한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는 과정에서 세계의 다른 어떤 기업보다 농업의 상품화를 촉진하고자 더 많은 일을 했다는 사실도 덮어 감춘다(Hauter 2012). 


이념은 더 잘 아는 사람들에 의해 속기 쉬운 대중에게 부과된 신념 체계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사고를 길들이는 쳬계로 묘사하는 게 더 정확하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념을 창출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그걸이용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당하지 않다. 그러나 세계의 먹을거리 체계에서 현행 체계가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가장 좋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이념으로부터 엄청나게 강력한 혜택을 받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광고와 홍보를 통하여, 그리고 앞서 언급한 동맹들의 교육, 자금 지원, 통치, 매체 활동 등을통해 이렇게 합법화된 이념의 요소들을 증진하고, 분배하고, 유지하며 강화시키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란 점도 사실이다. 이념이 먹을거리 체계에서 기능하는 방식에 관한 이런 현실들을 감안할 때, 가장 많은 권력을 지닌 농식품 기업과 사람들이 먹을거리 체계의 이념을 유지하는 데 분명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다(그들은 먹을거리와 농업을 비정치적인 것으로 지키는 데 이해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것임). 그들은 항상 의식적으로 이를 하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이익과 일치하기에 그렇게 한다.  






불평등과 지속불가능성 사이의 연결

이번 장이 왜 인간 사회의 신념과 불평등 및 그 둘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왜 농생태학자인 우리가 이런 쟁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불평등은 그것이 수십 억 명에게 식량불안, 짧은 기대 수명, 낮은 삶의 질 등으로 드러나면 의심할 나위 없이 사회의 악인데, 그게 지속가능성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이 질문은 농생태학 분야에서 농업의 권력과 이념의 함의에 대해 우리가 탐구를 시작하기 전에 직접 대답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번 장에 걸쳐서 "권력 구조"와 기업의 농업 통제를 1장에서 논의된 산업적 농법에 연결하여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실제로 다루었다. 이러한 연결 때문에 농업에서 불평등은 그것의 지속불가능성과 관련된다.


여러 모로, 불평등은 먹을거리 체계의 지속불가능성이란 측면의 직접적 원인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토지에서 쫓겨난 농촌의 빈곤층은 생존을 위해 불모지에서 환경에 파괴적인 농법을 수행할 가능성이 더 많다(예, González de Molin 2013). 또한 이러한 빈곤의 이면 -산업국과 개발도상국에서 도시 소비자들의 상대적 풍요- 은 먹을거리 과소비와 낭비의 전제 조건이자 원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연결은 기아와 빈곤 같은 사회적 피해와 온실가스 배출과 토양 악화 같은 환경적 피해가 똑같은 근본원인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농업에서 불평등을 유지하고 악화시키는 농법들(독점 기술, 강화, 대규모 단작 등)과 이런 농법이 존재하는 곳의 경제 구조는 농업의 부정적 생태발자국을 가장 확장시키는 것과 매우 똑같다. 


또한 농업에서 기업이 식량 체제를 계속 지배한 사회적 결과는 그것의 생태적 결과만큼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예전에 세계의 농촌 지역에서 소농과 자급농에 종사하던 점점 많은 사람들이 기업들이(그리고 중국의 경우엔 정부가) 먹을거리 체계의 시장 역학으로 규정되는 우선순위를 적용함에 따라 자신의 토지에서 쫓겨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도시의 중심부에서 실업자나 노동빈곤층이 되어 이전보다 상황이 나빠지곤 한다(Holt-Gimenez and Patel 2009)(그림24.7). 그러한 추세는 특히 계속 인구가 증가하면서 사회의 안정 없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세계의 먹을거리 체계로부터 함께 발생하는 사회적, 생태적 피해는 그것의 지속불가능성이 명백한 위협이 될 때 미래로 체계를 인도한다. 



그림24.7 콜롬비아 카르타헤나의 도시 주변 지역에 있는 쫓겨난 사람들의 주거지. 산업형 농업의 대규모 기계화된 체계가 개발도상국의 전통적 농촌 체계를 대체함에 따라, 사회적 및 생태적 비용이 모두 발생한다. 사회적 비용에는 이전 농민들이 산업형 농업 체계의 확장으로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 적당하지 않은 고용 기회가 있는 도심지로 이주함에 따라 도시 빈곤의 증가하는 일이 포함된다.


  


이들 모든 관계의 근간에 있는 것이 먹을거리 체계의 근본적 측면이다. 그것은 식량 필요의 충족보다 부의 축적을 우선시한다. 농업노동자와 재배자부터 세계적 기업에 이르기까지 체계의 모든 부분은 식물과 토양, 인간의 노동력, 기계, 화석연료 에너지로부터 가치를 추출하고, 그것을 주주와 소유주에게 끌어올려 옮기는 과정에 참여한다. 이 체계에서는 이윤 창출이 필수적이라, 토양의 장기적 건강 유지, 건강한 먹을거리의 제공, 농장 노동자에 대한 공정한 대우 등을 포함한 모든 것을 무색하게 한다. 


부의 생성을 최대화하는 것은 특정 목표와 수단을 수반한다. 제조업 -산업형 농업의 모델- 과 마찬가지로 인건비절감, 원재료의 통제, 환경과 사회적 비용의 외부화, 최대한 생산을 효율화, 높은 가격의 유지 등을 통해 가능하면 최고의 이윤을 가져온다. 이런 목적과 수단으로부터 1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사회적, 생태적 피해를 불러오는 산업형 농업의 관행들이 비롯된다. 부를 축적하고 이를 위에 집중시키는 먹을거리 체계의 경제 논리가 요구되는 한, 산업형 농업의 모델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으로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산업형 농업이 먹을거리 체계를 지배하는 한, 세계의 빈곤층과 지구의 생명을 유지하는 체계는 계속 그것의 비용을 짊어져야 하고 결국 그 결과가 모두에게 미칠 것이다. 







농생태학의 관점을 확산시키기 

 

이번 장을 연 질문을 떠올려보자. 왜 인간 사회는 농업에서 지속불가능한 길을 따라가고 있는가? 이제 우리는 이 질문에 더 잘 대답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 답은 상호연관된 부분들을 가진다. 


•현행 먹을거리 체계의 지속불가능성은 체계의 핵심 역학에서 많은 부분이 비롯된다. 그것은 사적 이윤의 추구 및 사회와 자연계(공공 영역)에 대한 비용 전가에 입각해 구성된다.  

•이윤 추구와 부의 축적을 우선시하는 체계이기에, 먹을거리 체계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에게 불균형적으로 헤택을 준다. 그들은 토지를 소유하고, 생산과 유통 수단을 통제하며, 체계를 지배하는 기업을 소유한다. 

•모든 사람이 먹을거리 체계의 이러한 핵심 측면을 인식한다면, 먹을거리 체계는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불평등을 일으키고, 권력과 부를 집중시키며, 먹을거리 생산이 의존하는 자연계를 악화시킨다.

•부분적으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체계가 기능하는 방식에 큰 몫을 가지기 때문에 신념과 사상의 체계 -이념- 가 먹을거리 체계를 중심으로 성장해 사람들이 그것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 측면을 보지못하게 감추었다. 

•먹을거리 체계의 이념은 먹을거리 체계를 합법화시키기 위해 작동하여,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만들고 그 지배력에 심각한 도전으로 연합될 수 있는 사고의 종류를 체계적으로 제한한다.  


이런 부분들을 종합하면, 우리는 농생태학자들과 동맹한 분야의 사람들이 이 궤도가 아무도 바라지 않는 미래로 인도할 것이라고 지적했음 -확실한 증거로 뒷받침되었음- 에도 불구하고 왜 먹을거리 체계가 현재의 궤도에 계속 머물러 있는지 알 수 있다. 먹을거리 체계를 합법화하는 이념적 체계가 도전을 받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한, 그리고 먹을거리 체계가 그것을 유지하고 이념적 체계가 의존하는 표면 수준의 혜택을 넘겨주는 이윤을 계속하여 생성할 수 있는 한, 그것은 현재의 길을 계속 갈 것이다. 


이 결론은 한 분야로서 농생태학에 대한 뚜렷한 함의를 갖는다. 농생태학이 먹을거리 체계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면, 생태학의 관점에서 그 체계의 지속불가능한 특성을 지적하거나 더 지속가능한 기술을 설게하는일 이상을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기업의 먹을거리 체제를 보호하는 이념적 체계에 도전해야 하고, 먹을거리 체계가 운영되는 방식의 핵심에 놓여 있는 권력의 집중과 부의 불평등한 분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Holt-Gimenez and Patel 2009; González de Molin 2013).  






세계 먹을거리 체계를 비합법화시키기

앞서 논증했듯이, 신념과 가정의 체계 -이념적 체계-  는 도전으로부터 기업이 지배하는 먹을거리 체계를 격리시킨다. 이는 주로 먹을거리 체계에 대한 기업의 통제와 산업형 농업의 관행을 완전히 합법적으로 보이게 함으로써이루어진다. 즉, 공익을 증진하기 위해 올바르고, 적절하며, 필요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먹을거리 체계가 나아갈방향을 바꿀 기회가 있다면, 그것은 먹을거리 체계와 그 현상 유지를 보호하는 이념적 체계의 신념과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에 있다. 이런 방식으로 먹을거리 체계는 미래에 대한 위협으로 비합법화되고 이해될 수 있다. 먹을거리 체계의 이념에 구명을 뚫는 직접적인 방법은 그 본질을 구성하는 당연시되는 가정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들 가정에는 다음과 같은 게 포함된다.  


•먹을거리가 충분하다면, 누가 어떻게 우리의 먹을거리를 생산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수확량은 먹을거리 필요의 충족을 검토할 때 고려해야 할 유일한 변수이다. 

•전 세계의 먹을거리 부족은 현대의 농업 기술과 서구식 시장을 비효율적이고 불안전하게 적용한 결과이다.

•기아를 없애기 위하여 농업 생산성이 증가해야 한다. 

•세계의 도시 거주자의 소비가 경제 성장을 추동하기에, 그들이 더 많을수록 좋다. 

•먹을거리를 직접 생산하기 위한 노동 -흙으로 누군가의 손을 더럽히는 일- 은 모든 사람을 해방시켜야 할 천역의 한 형태이다. 

•우리의 시장에 기반한 경제에서 경쟁은 먹을거리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생산되게 하여 가격을 낮추고 공급을 늘리는 걸 보장한다. 

•소비자의 수요와 시장은 먹을거리 생산자가 하는 모든 것을 추동하고, 그것이 옳다. 

•농업 영역에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기술적 해결책이 있다. 


이와 같은 가정들에 도전하는 건 두 가지 수준에서 일어난다. 첫째는 개인적이고 내부적인 수준이다. 당신은 특정 가정이 현실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당신의 사고를 제한하고 현실을 불완전하게 묘사하며 당신의 사고를 제한하는 더 큰 이념적 체계의 일부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두 번째 수준은 외부적이고 명확히 정치적이다. 공공 영역에서 가정을 논박하고, 그것이 까발려져야 할 권력의 관계를 숨긴다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런 권력 관계가 실제로 무엇인지 분명히 설명하며, 의식적으로 먹을거리 체계에서 당신의 역할을 바꾸는 것이다. 인터넷 자료와 읽을거리에 열거된 자료 가운데 일부는 이 두 수준에 모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념적 체계에 도전하는 일은 늘 어렵다. 도전을 받고 있는 신념을 보유한 사람은 명백한 이유로 자신의 세계관이 뒤집힐 때마다 저항할 것이고, 당신이 뚜렷한 전망을 지니고 그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당신이 오만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산업형 농업을 지지하는 이념적 체계에 대하여 비판적 관점을 취하는 것은 당신이 그 체계의 외부에 있으며 그 영향에서 벗어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지는 않다. 또한 그것이 당신이 다른 이념적 체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수반하는 건 이념에 대한 자각과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사람들의 사고(당신 자신을 포함하여)에 영향을 미치는 체계적 방법과 권력의 관계에 기반한 체계를 지원할 때 담당하는 역할- 이다.  






먹을거리 체계를 바꾸기

먹을거리 체계에 대한 심도 있는 정치적 분석과 그것을 보호하는 이념에 대한 이해는 체계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하긴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지는 않다. 일단 근본적인 쟁점을 이해하고 나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도구와 전략은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이유로, 정치적 분석과 비판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조치로 이어져야 한다. 이는 학술 분야나 학과 이외에도 농생태학이 사회운동이 되도록 만드는 농생태학의 목표와 관점의 상당한 확장을 수반한다. 


사회와 먹을거리 체계의 구체적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일은 느리고 점진적일 수 있지만, 현행 세계의 먹을거리 체계와 그것의 기업 통제, 산업형 농업 관행에 대한 의존을 비합법화하려는 노력을 지원하는 중요한 효과가 있다. 진정한 대안들이 만들어짐-또는 제안되고 옹호되기만 해도-에 따라 사람들은 현행 체계의 결함을 더 쉽게 볼 수 있고, 먹을거리 체계 전체가 다르게 구조화될 수 있다고 인식할 수 있다. 


농생태학이 먹을거리 체계를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추는 사회운동으로서 채택해야 할 전략과 목표를 수립하는 건 큰 주제이다. 우리는 이 주제를 다음 두 개의 장에서 더 깊이 탐구할 것이다. 농생태학에서 사회운동 접근법의 기본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농민이 만든 농생태학 지식에 의존하라. 어떻게 이런 지식이 산업형 농업 패러다임에 대한 대안을 제공하는 더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체계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부분인지 이해하라(Altieri 2004; Altieri and Toledo 2011; Gliessman 2013; Martinez-Torres and Rosset 2014) 

통학문적 접근법을 채택하라.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학문과 지식 체계(토착 지식과 전통지식을 포함한)를 연계하고 통합하라(Wilken 1988; Altieri 2004; Fish et al. 2008; Francis et al. 2008; Méndez et al. 2013). 

연구와 활동을 통합하라. 현실적 연구가 사회 변화의 노력을 알리는 반복적 과정에 적극적인 참여자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고, 그러한 노력이 더 많은 연구 등등에 영감을 주는 새로운 지식으로 이어진다(Bacon et al. 2005; Eksvärd et al. 2009; Méndez et al. 2013). 

오늘의 축소판에서 내일의 먹을거리 체계를 구축하라. 지역사회 지원 농업과 기타 수단을 통하여, 생계 수단으로 농사를 활성화하고 소비자와 농민을 서로 더 가깝게 만드는 지역의 먹을거리 연결망을 창출하라(25장 참조). 

먹을거리 정책에 대한 대중의 의식을 높인다. 사람들이 소비자 감성을 극복하고, 모든 소비 행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결과를 자각하는 먹을거리 시민이 되도록 장려한다(25장 참조). 

먹을거리 정의 운동을 발전시킨다.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통해, 현재의 대안 먹을거리 운동이 모든 사람에게 저항과 먹을거리 정의를 위한 힘이 될 수 있다(Borras et al. 2008; Goodman et al. 2011).


엄청나게 탄력적인 사회경제적 구조에 먹을거리 체계가 깊숙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이해하여 불안을 일으킨 결과는 근본적인 방식으로 먹을거리 체계를 변화시키는 일이 매우 어려울 것이란 인식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인간이 자연과 토지, 자원, 지구의 생물상 및 서로서로 관련되는 방식을 바꾼다는 걸 의미하기에, 먹을거리 체계를 바꾼다는 건 큰 명령이다. 하지만 인류가 기후변화와 광범위한 생태적 붕괴, 인구 증가로 야기되는 과제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려면 이들 관계가 어쨌든 변화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농생태학은 장기적인 인간 생존을 목표로 하는 더 큰 운동의 일부이다. 






포섭을 피하기

기업이 지배하는 먹을거리 체계는 변화에 대한 요구를 진정시키고 흡수할 수 있는 엄청난 역량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표면적인 수준에서 요구를 충족시키고, 체제의 더 근본적인 특징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운동의 맥이 빠지게 충분한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포섭 과정을 통해 수행된다. 유기농 먹을거리 운동이 좋은 사례이다(Guthman 2004). 유기농업이 비롯된 운동이 중대한 도전의 근원으로 남아 있을지 몰라도, "기업의 체제"는 유기농으로 재배된 먹을거리에 대한 요구를 개인의 건강과 선택의 문제로 전환시켜 운동의 모든 에너지를 그 영역으로 보내고 먹을거리는 어떤 종류의 투입재든지 더 적게 쓰고 더 작은 규모로 재배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요구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포섭의 직접적 신호는 대부분의 유기농 재배자, 유통업자, 가업업자가 더 큰 농식품 기업에 매입되어 유기농 식품이 소비자의 선택 가운데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Howard 2009; 그림24.4 참조).이는 진정으로 근본적 방식으로 체계를 바꾸지 않고도 대부분의 소비자를 만족시킨다. 먹을거리가 유기농 인증의규칙에 따라 생산되지만, 그럼에도 그건 산업적 생산의 궤도에 들어가 버렸다. 대규모의, 집약적이고, 주로 다양성이 부족하며, 투입재에 의존한다(그림24.8).



그림24.8 유기농 당근을 심고 대체 투입재로 관리되는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 카운티의 쿠야마 계곡에 있는 대규모 농경지. 이 작물은 "유기농"의 법적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만, 산업형 농업의 기본 방식에 따라 생산된다. 




먹을거리 체계에 대한 심도 있는 정치적 비판의 권력은 그것이 포섭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심도 있는 정치적 비판은 전체 체계의 변환 없이는 변경할 수 없는 체계의 근본적 특성 -부의 집중, 불평등한 권력의 분배, 이윤 창출의 피할 수 없는 사회적 및 생태적 비용- 에 초점을 맞춘다. 더 건강한 먹을거리, 또는 농약 없이 생산한 먹을거리에 대한 요구는 기업의 먹을거리 체제에 의해 수용될 수 있다. 그러나 대지에 살며 대지를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먹을거리 생산을 되돌리라는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 후자와 같은 유형의 요구는 기업의 먹을거리 체제 자체에 도전하는 권력을 보유한다. 그것은 먹을거리 체계의 이념적 은폐물이 무엇인지, 그리고 대안적인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다른 관점인 대안적인 패러다임을 활성화한다.  










생각거리


1. 이른바 "녹색혁명"은 새로운 농업 기술과 농업의 일부 부문에서 상당한 작물 수확량을 가져왔지만, 오늘날 세계의 굶주리는 사람들의 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다. 왜 녹색혁명은 기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가?


2. 웬델 베리는 자신의 저서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1990)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먹는 건 농업의 행위이다. ... 거기엔 어떤 정치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유가 포함된 먹을거리의 정치가 있다. 우린 아직(때로는) 우리의 마음과 목소리가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면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기억한다. 하지만 우리는 먹을거리와 그 근원이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면 우리가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이해하는 일을 게을리했다. 먹을거리에 대한 소극적인 소비자의 상태는 민주적인 상태가 아니다. 책임감 있게 먹는 한 가지 이유는 자유로이 사는 것이다." 베리가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무엇이고, 그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3. 농생태학자들은 과학에서 배우듯이 농민에게 배울 것이 많다. 농민들은 순수하게 과학적 연구에서 얻기 어려운 먹을거리 체계를 더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에 관한 어떤 종류의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가?


4. "먹을거리 민주주의" 활동에 대한 사례를 기술하라. 당신이 직접 경험한 것(예, 지방 선거)이나 당신이 읽은 것에 관한 내용일 수 있다. 당신의 사례에서 민주주의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번 장에서 설명된 깊은 의미에서 그 사례는 어느 정도까지 농업을 정치화했는가? 


5. 패러다임의 전환은 중요한 이념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된다. 먹을거리 정의가 먹을거리 체계의 패러다임전환 가운데 일부가 되기 위해서, 이념에서 어떤 종류의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가?


 








인터넷 자료


Civil Eats 

http://www.civileats.com 

Civil Eats is a daily news source for critical thought about the American food system. It publishes stories that shift the conversation around sustainable agriculture in an effort to build economically and socially just communities. 


Food Democracy Now! 

http://www.fooddemocracynow.org 

A grassroots movement of more than 650,000 farmers and citizens dedicated to building a sustainable food system that protects our natural environment, sustains farmers and nourishes families through the organization of both online campaigns and in-person actions across the country. 


Food First/Institute for Food and Development Policy 

http://www.foodfirst.org

The Institute for Food and Development Policy/Food First analyzes the root causes of global hunger, poverty, and ecological degradation and develops solutions in partnership with movements working for social change. 


Food Politics by Marion Nestle 

http://www.foodpolitics.com 

The blog site for Dr. Marion Nestle, one of the world’s leaders in linking nutrition and health. Her research focuses on how science and society influence dietary advice and practice. 


Global Development and Environment Institute at Tufts University, Medford, MA 

http://www.ase.tufts.edu/gdea

An academic research center that emphasizes ecological health and the correlation between social and economic well-being. Recent work has focused on what is required to promote socially and environmentally just and sustainable development. 


Organic Consumers Association 

http://www.organicconsumers.org

Through this website, the OCA publishes a weekly newsletter (“Organic Bytes”) aimed at educating consumers about issues of health, justice, and sustainability in the food system, and how being an organic consumer can motivate change. 


Union of Concerned Scientists 

http://www.ucsusa.org/food_and_agriculture/

A direct link to the food and agriculture programs of this important organization. UCS is a leader in efforts to transform US agriculture in a sustainable and healthy direction. Their expert analysis provides a scientifically grounded perspective that helps shape better food policy.







읽을거리


Elton, S. 2013. Consumed: Food for a Finite Planet.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IL. 

An in-depth exploration of the corporate takeover of the soil and the seeds of our food system that is balanced with a powerfully hopeful set of stories of how we can replace the industrial food system with something that makes sense for the planet and its people. 


Gottlieb, R. and A. Joshi. 2010. Food Justice. MIT Press: Cambridge, MA. 

An important contribution to the food policy literature that describes in detail why the current food system is unjust to everyone from farmworkers to food eaters, and the political action needed to bring justice, fairness, and real health to all communities. 


Hauter, W. 2012. Foodopoly: The Battle over the Future of Food and Farming in America. The New Press: New York. 

A compelling account by a food activist of how our food systems have been captured by corporate agribusiness, the food crisis this has generated, what we can do about it, and the urgency for effective action. 


Patel, R. 2008. Stuffed and Starved: The Hidden Battle for the World Food System. Melville House: New York. 

A penetrating exposé of the power struggles going on in world food systems, with a focus on tracing the development of the current social and economic injustices that have been cre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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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의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는 이러한 도구를 많이 개발해서 보급해 주세요. https://agri.mynavi.jp/2019_04_26_68475/

부품들도 구입해서 교체할 수 있게 하면 훨씬 실용적이고 좋겠구만요.


물리치료 받는 병원만 배불리는 그런 거 말고요.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91701031724174009


일하느라 바쁜데 체조하라는 홍보물 같은 그런 거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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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끄러운 글리포세이트 검출 맥주, 일단 그 정도 양으로는 건강에 크게 문제가 되진 않는다고 합니다. 단, 엄청난 양을 먹기 전에는요. 그래도 식약처에서 잔류농약 검사는 해본다네요.

https://mnews.joins.com/article/23451410?fbclid=IwAR2cI-lQPvsxQBIZDJ25JGuk-ch9e79TxwwN7uGrKcN8_cSNeCWOFmdMdao#home


아무튼 우리가 우려해야 하는 측면은, "아니 아무리 해롭지 않더라도 어떻게 맥주에 제초제 성분이 조금이라도 들어갈 수 있어!" 하는 것보다는 "아니 얼마나 자각 없이 글리포세이트 제초제를 널리, 많이 사용하면 맥주에서도 검출되는 걸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런 생각 없이 제초제를 치고,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 그것이 더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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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그림.



똑같이 3가지 작물을 사이짓기 또는 섞어짓기하는 모습이다.
각각의 작물을 열을 지어 심는 것이나, 각각의 작물을 한데 심는 것이나 3가지 작물을 심는다는 내용은 같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좁은 면적에서 보면 왼쪽보다 오른쪽의 다양성이 높은데, 더 넓은 면적에서 보면 왼쪽의 다양성이 높아진다. 다시 말하여, 넓은 면적에 작물을 심더라도 왼쪽과 같이 재배하면 다양성을 높이면서 관리의 용이성까지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사실 섞어짓기나 사이짓기가 기피되는 이유 중 하나가 관리의 복잡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작물의 종류가 많아질수록 한 번이면 될 일을 두 번, 세 번 해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왼쪽 같이 심어서 관리한다면 그러한 수고를 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텃밭 수준에서는 한 두둑에 여러 작물을 심을 수밖에 없겠지만, 좀 더 규모가 큰 농장 수준에서는 두둑별로 각각의 작물을 심어서 다양성을 높이는 효과를 노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실제로 서구의 유기농 농장을 보면 그런 식으로 관리하는 곳이 많아서 얘네는 땅덩어리가 넓어서 저렇게 농사지어도 되는가 했더니 이런 원리를 실천하느라 그랬던 것이다. 유기농가라고 해도 논밭의 모습이 관행농의 그것과 하등 다른 것이 없다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생각할 문제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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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산림 파괴로 인해 농업도 제대로 굴러가지 못할 정도라고. 박정희 정부가 산림 녹화에 열을 올렸던 이유가 여기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 시절이라 가능했던 건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일이긴 하다.




북한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어서, 유럽 쪽의 산림 복원 관련한 민간단체와 협력하여 혼농임업 등에 관한 자료집도 발간하는 등의 노력을 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최근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서 가장 먼저 요구한 것도 산림청과 함께 산림을 회복시키는 과제인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도 어서 산림 녹화에 성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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