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말에는 생각이 담겨 있다.

영어로 된 자료를 볼 때마다 한번씩 마주치는 단어가 있다. 바로 agricultural extension service이다. 단어만 놓고 보면, 농업의+연장+서비스 인가?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서 한번씩 찾아보는데, 그럴 때마다 한국의 사회와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나서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된다. agricultural extension service를 한국어로는 농촌지도(農村指導) 또는 농업지도라고 풀어놓고 있다. 그러니까 농민은 지도의 대상으로서, 무언가를 가르치고 깨우치게 해야 할 존재로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의 계몽사상이 그대로 담겨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이 단어를 어떻게 옮기면 더 적합할까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고민하다 이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어 선택한 것이 농업 지원 서비스이다. 이 단어도 쏙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지도"와 "지원"이 갖는 의미의 차이에서 그나마 낫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누굴 가르치고 지도하는지 모르겠다.


아, 그런 단어가 또 하나 있다. 바로 근로자이다. 무슨 뼈 빠지게 일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기본으로 깔려 있는 이런 말이 다 있는가? 이번 정부에서 근로자를 노동자로 바꾼다고 발표는 한 것 같은데, 여전히 일반적으로는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고 한다. 이 말이 바뀌어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오겠지.

728x90
728x90
'앉은뱅이 밀'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이야 워낙 유명해져서 전국 방방곡곡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고, 여기저기 널리 재배될 뿐만 아니라 상품으로도 꽤 많이 팔리고 있다. 밀의 존재에 대해서는 문헌이나 이야기만 듣다가 2012년 여름, <토종 곡식>을 저술하면서 조사하다가 처음 만나게 되었다. 자료를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어떻게 찾을 수 없을까 알아보다가 진주 금곡 정미소에서 이 밀을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전화를 하고 약속을 잡아 대표인 백관실 선생을 만나러 갔다.

이 이야기를 꺼내면서 또 한 명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서석태 선생이다. 그 더운 여름에, 가는 길에 서석태 선생을 태우고 금곡 정미소까지 함께 가서 취재를 한 기억이 난다. 가면서 계속 속이 안 좋다며 체했는지 어떤지 안색이 좋지 않으셨다. 결국 그날, 내가 한창 조사하고 있는 와중에 앉아서 쉬시다가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다. 놀라고 당황하여 경황이 없었지만 먼 길을 왔기에 인터뷰는 마쳐야겠고, 사람은 쓰러졌고, 어떻게 할 바를 몰라 함께 간 주소영 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저는 자리를 비우기가 어려우니 대신 좀 부탁드린다고. 그리고는 응급차가 와서 함께 경상대병원으로 가서 바로 입원하시고 이후 위암이란 사실이 밝혀졌다. 덕분에 살았다고, 혼자 거창 집에 있었으면 아무도 모르게 쓰러져서 큰일날 뻔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날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 하고도 7-8개월이나 지났다. 저 세상에서도 주변에 사람들 모아서 재미나게 지내고 계신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를 기억한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데로 흘렀다.

앉은뱅이 밀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안완식 박사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서 지금처럼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있었지만 다들 안완식 박사가 앉은뱅이 밀을 다시 찾았다고만 이야기하고 나의 일은 쏙 빠져 있으니 좀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아무튼 그런 사실 관계는 차치하고, 나는 그런데 왜 앉은뱅이 밀은 그렇게 키가 작아졌을지 궁금했다. 도대체 왜일까? 안완식 박사의 자료에 의하면, 앉은뱅이 밀은 남해안 일대에서 주로 재배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의 품종명을 기록해 놓은 자료를 보아도 앉은뱅이 밀의 품종명이 나타나는 곳의 분포가 그와 일치하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면 왜 남해안일까? 여기서부터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나는 바람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했다. 남해안은 보리가 한창 성숙하여 자라고 있을 때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강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바다와 인접해 있는지라 더더욱 바람의 변동과 세기가 심했을지 모른다. 이른 자연 조건에서 살아남으려면 키가 큰 것보다 키가 작은 쪽이 더 살아남기에 유리했을 터이다. 그러니 자연히 농민들도 이런 특성을 보이는 밀을 선택하여 재배해 오지 않았을까? 이런 내용은 이미 <토종 곡식>에서 다룬 바 있다.

오랜만에 기사를 검색하다 보니 앉은뱅이 밀에 대한 내용이 참 많아졌다. 그런데 동아일보 김유영 기자는 '앉은뱅이 밀'이 기원전 300년부터 재배되었다는 걸 어떻게 저렇게 자신 있게 작성할 수 있는 것이지? 내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http://news.donga.com/BestClick/3/all/20161102/81119377/1


728x90

'농담 > 씨앗-작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프리카 노예의 농업 유산을 드러내는 쌀  (0) 2019.02.17
작물 확대왕  (0) 2019.02.16
잎 표면 세포의 다양성  (0) 2019.01.25
<일본 재래 벼 품종군의 맛 평가>   (0) 2019.01.25
작물의 왕, 옥수수  (0) 2019.01.23
728x90

네팔과 세네갈의 사례 공유





네팔의 여성 소농. 네팔 정부의 빈곤 경감 펀드 II 프로젝트



코피 아난Kofi Annan 씨는‘여성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도구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농업 부문에서는 분명 사실이다.  권한이 강화된 여성은 지속가능한 농업 성장과 평등한 농촌의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2018년 6월,“농촌에 남겨진 여성들의 삶과 생계에 미치는 농촌 이농의 영향을 탐색하는  남성의 이농과 농업에서 여성의 일과 권한 강화(Male Outmigration and Women’s Work and Empowerment in Agriculture)라는 보고서를 출간했다. 일련의 간행물 가운데 첫 번째인 이 보고서는 혁신적인 조사 자료를 활용해, 농촌 이농의 성별 영향에 대한 면밀한 증거를 제시한다. 


왜 그것이 중요한가? 전 세계적으로 이주는 중요한 개발 의제이며, 많은 국가에서 농업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이용할 수 있는 증거는 전 세게에서 농촌 지역에서 이주하는 것은 주로 남성이고, 이는 전통적인 성별 규범을 포함하여 농촌 지역에 상당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2017년 8월과 11월 사이에 수집된 네팔과 세네갈의 두 가지 비교할 수 있는 조사 자료를 활용하여, 우리는 농촌 지역에서 남성의 이주가 여성의 일과 권한 강화에 미치는 영향을 농업과 가계 모두에서 연구했다. 


우리가 발견한 건 다음과 같다. 첫째, 남성이 이주함에 따라 여성은 노동력에서 이탈하지 않고 계속 농장을 운영한다. 그러나 농업에서 그들의 역할은 변할 수 있다. 이는 네팔의 경우에는 분명한데, 세네갈에서는 그렇지는 않다. 세네갈에서는 여성이 새로운 역할을 맡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는 대가족이 더 우세한 것과 연결될 수 있으며, 남편보다 아들이 흔히 이주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둘째, 이주의 맥락과 특성에 따라 남성의 이주는 여성의 권한 부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네팔에서는 여성이 주요한 농민이 되어서 농장에 대한 의사결정력이 증가하고, 지역의 단체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며(따라서 사회자본 구축), 은행 계좌를 접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러한 효과는 이주가 송금을 수반하면 더 강해진다. 이러한 권한 강화의 이득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다른 영역에서는 계속해서 권한을 잃게 된다. 남성과 상대적으로, 여성은 여전히 가사 및 보육과 관련되어 더 긴 시간의 부담을 경험한다. 또한 남성과 상대적으로, 투입재와 자산(토지소유권을 포함)에 대한 접근성이 더 낮다. 세네갈에서는 남성의 이농이 농업 생산에 관한 의사결정, 농업으로 인한 소득의 통제, 농업 정보에 대한 접근을 포함하여 여러 영역에서 여성의 권한 박탈과 연결되어 있다. 그 효과는 이주자들이 집으로 송금을 보내지 않는 가계로 인해 추동되는 것 같다.  



세네갈의 여성 소농. © Daniella Van Leggelo-Padilla/World Bank




따라서 어떤 믿음과 달리, 이주는 여성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일로 자동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남성 가족구성원이 이주하고 여성이 농장의 주요한 책임을 맡음에 따라 여성이 자율권과 의사결정권을 갖게 되지만, 투입재와 자산, 농업지원 서비스, 농업과 시장에 대한 정보, 신용 및 사회적 유동성에 대한 불충분한 접근성으로 인해 계속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사실, 적절한 송금이 없으면 이주는 여성의 권한 박탈로 이어질 수 있다. 뒤에 남겨진 여성들은 가족 노동력과 이주로 인한 소득의 상실 때문에 재정적,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경험하곤 한다. 국제와 국내 송금 수수료를 줄이면, 이주자가 더 많은 송금을 보낼 수 있다. 이는 특히 일시적 이농이 널리 퍼진 국가에서 타당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농업에서 여성의 역할과 일이 잘 설계되고 대상화된 정책과 프로그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업지원 서비스는 농장의 새로운 관리자를 고려하여, 수요에 맞는 해결책을 제공해야 한다. 더구나 여성 농민들이 자급 단계를 너머 생산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 여성 농민들은 농업의 가치사슬에서 더 높은 소득, 하위 활동(downstream activity)에 접근해야 한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하는가? 여성의 권한 강화 문제는 농업에 중점을 둔 농업 지수에서 축약된 여성의 권한 강화(Abbreviated Women’s Empowerment in Agriculture Index)를 넘어서는 탐험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연구는 여성의 상황 및 역이주와 기후변화, 갈등 같은 이주의 역학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다른 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규범과 관례 및 법적 구조는 개발도상국에서 권한 강화의 결과만이 아니라 고용을 명령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농업 생산과 식량안보에 영향을 미친다. 남성의 이농으로 생산과 생산성은 악영향을 받는가? 식량안보는 어떠한가? 농촌의 농업 지대에서 남성의 이농이 증가하고 있어서, 전반적인 식량안보만이 아니라 뒤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결과를 더 잘 이해해야 한다. 



http://blogs.worldbank.org/voices/what-happens-women-when-men-leave-farm-sharing-evidence-nepal-and-senegal?CID=AGR_TT_agriculture_EN_EXT


728x90

'농담 > 농업 전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유기농산물을 구매하는가  (0) 2019.02.17
농촌지도?  (0) 2019.01.29
석유 시대의 종말은 오려나?  (0) 2019.01.10
인도의 토지권에 대한 동화  (0) 2019.01.09
축산업의 규모화  (0) 2019.01.02
728x90
<일본 재래 벼 품종의 맛 평가>라는 논문

https://www.jstage.jst.go.jp/article/hokurikucs/52/0/52_6/_pdf



일본 재래벼 품종군 맛 평가.pdf


일본 재래벼 품종군 맛 평가.pdf
0.92MB
728x90

'농담 > 씨앗-작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앉은뱅이 밀에 대한 기억  (0) 2019.01.29
잎 표면 세포의 다양성  (0) 2019.01.25
작물의 왕, 옥수수  (0) 2019.01.23
바나나 꽃  (0) 2019.01.23
식물 육종의 역사  (0) 2019.01.23
728x90

이제 고시히카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시대와 함께 품종의 흥망성쇠가 반복되는 가운데, 탄생부터 60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큐슈九州 지방까지 널리 재배되고 있는 보기 드문 품종으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맛있는 쌀'의 대명사가 되어 왔다. 고시히카리란 도대체 누구인가? 고시히카리는 왜 인기가 있는가? 벼에 대해 잘 아는 농학자 사토 요우이치로佐藤洋一郎 씨에게 들었다.




쌀 업계의 역사를 바꾼 고시히카리

고시히카리가 태어난 건 지금으로부터 60년 이상 전인 1956년. 당시 후쿠이福井 현립농사시험장県立農事試験場에서 개발되었다. 

뜻밖에도 탄생 직후에는 재배가 확산되지 않았는데, 1979년 쌀 재배면적 1위로 올라서서는 40년 가까이 그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쌀의 재배에는 지역에 따라 적합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지만, 도호쿠 지방부터 큐슈 지방까지 널리 재배되고 있는 품종은 현재 고시히카리 말고는 없다. 최근에는 해외에도 그 이름이 알려져, 이제는 가장 유명한 일본 쌀이 되었다. 국내외에서 '맛있는 쌀'이란 이미지가 강하다. 말하자면, 쌀의 슈퍼스타 같은 존재이다.  

게다가 고시히카리는 쌀 업계의 역사를 바꾼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쌀을 살 때 '고시히카리'나 '히토메보레ひとめぼれ'나 '아키타 코마치あきたこまち' 등의 '품종명'을 따지는데, 이러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된 것은 고시히카리가 계기가 되었다고 사토 요우이치로 씨는 이야기한다. 


사토 요우이치로 씨. 교토부립대학 일본 식문화 연구센터 특임교수, 종합지구환경연구소 명예교수. 교토대학 대학원 농학연구과 수료. 국립 유전학 연구소 연구원, 시즈오카대학 농학부 조교수, 종합지구환경학 연구소 교수 및 부소장. 대학 공동이용기관 법인 인간문화연구기구 이사를 거쳐 현직. 전문은 식물유전학. 30년 이상에 걸쳐 아시아 각지를 현지조사하고, 벼의 기원을 찾아 왔다. 



"소비자가 '품종명'을 알게 된 것은 1995년 식량관리법이 폐지되고 식량법이 제정되어 자주유통미自主流通米(※1)가 출현한 일이 시작이다. 그때까지 소비자는 '일등 쌀' '이등 쌀'이란 등급과 '하리마(播磨) 쌀' '오우미(近江) 쌀' '이세(伊勢) 쌀' 같은 산지의 정보만 알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니이가타현新潟県이 '고시히카리'의이름을 전면에 내걸고 판매를 시작하면서부터 품종명의 정보가 제공되었다." (사토 씨) 품종은 농민만이 아는 '벼의 품종'에서 소비자도 아는 '쌀의 품종'으로 자리매김이 변하였다. 

※1 정부를 통하지 않고 집하업자와 판매업자 등을 통하여 유통되는 쌀

“세 방면이 좋아한”쌀로 인기를

게다가 고시히카리는 '많이 생산되는 쌀'에서 '맛있는 쌀'로 사람들의 가치관과 수요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이후부터 국가 전략으로 한 알이라도 많은 쌀을 취급하려는 시대가 계속되었지만, 1960년대에 쌀의 생산성은 포화상태에 도달했다. 아무리 기술혁신을 하려 하고, 품종개량을 하려 하고, 비료를 많이 쓰려 했지만 수확량은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양'에서 '질'로 최초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 니이가타현이었다. 맛있는 쌀을 만들려고 생각한 것이다." (사토 씨)


'양'에서 '질'로 쌀의 역사를 바꾼 고시히카리 


자주유통미가 된 쌀의 가격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게 되어, '수확량=수입'이 사라졌다. 예를 들어, 20% 비싸게팔면 수확량이 10% 줄어도 벼 농민의 수입은 약 10% 증가한다. 또 고시히카리는 도열병에 걸리기 쉬웠기 때문에, 병을 막기 위하여 질소비료를 즐이니 맛이 좋아졌다. 각 현의 시험장이 극진하게 고시히카리의 재배 지도를 다는 일도 전국으로 확대되는 데에 뒷받침이 되었고, 정미 수율이 좋았던 점 때문에 쌀가게도 좋아했다. 게다가 고도경제성장에 의하여 소비자가 쌀에 대하여 양보다 질을 추구하게 되는 등 시대와도 잘 맞았다.   

고시히카리는 농민, 쌀가게, 소비자에 의하여 "세 방면이 좋아하는" 쌀로 환영을 받았다.  

동과 서에서 선호하는 "전 일본"

2018년 산지 품종 목록을 보면, 홋카이도北海道와 도쿄도東京都와 오키나와현沖縄県을 제외한 총 44부현府県에서 재배되고 있는 고시히카리. 그러나 고시히카리가 퍼지기 전에는 "오사카大阪 시장에 반입되는 쌀은 대립이고 미질이 단단하며, 도쿄 시장에 반입되는 쌀은 소립이고 미질이 부드럽다"(사토 씨)라는 식으로 동일본과 서일본에서 쌀의 선호가 달랐다고 한다. 

그럼 왜 고시히카리의 맛은 동일본에서도, 서일본에서도 받아들여진 것일까? 

고시히카리는 농림農林 1호'와 '농림 22호'를 교배시켜 탄생했다. 

'농림 2호'는 동일본에서 맛있는 쌀로 퍼졌던 리쿠陸羽 132호와 카메노오亀ノ尾 같은 계통의 품종. 그리고 '농림 22호'는 서일본에서 맛있는 쌀로 퍼졌던 '아사히旭' 계통의 품종이다. 


위 사진의 출처 http://www.ken-ohashi.jp/contents/2b/dagakki/2008/132.html



그때까지 동과 서의 품종을 교배시킨 예는 별로 없었는데, "동쪽의 천하장사" 계통과 "서쪽의 천하장사" 계통이 교배된 고시히카리의 탄생은 일본인의 쌀 선호에 변화를 가져왔다. 


고시히카리의 아버지 농림 1호. (이시카와현石川県 하쿠이시羽咋市의 코시다 히데토시・나오코奈央子 씨 부부가 재배)


"일본 전국 거의 어디서나 농사지을 수 있는 '전 일본'이 태어나, 동쪽에서 먹고 익숙한 맛과 서쪽에서 먹고 익숙한 맛이 합체함으로써 양자에서 받아들여지는 맛이 탄생했다. 그래서 고시히카리가 퍼졌다고 생각한다."고 사토 씨는 이야기한다. 

그렇게 말하더라도, 고시히카리가 탄생한 뒤 재배면적 1위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23년의 세월이 걸렸다. 사토 씨에 의하면, 당초는 고시히카리의 평가가 간사이関西를 중심으로 높고 간토우関東에서는 고시히카리보다 '사사니시키ササニシキ'가 인기였다.

그런데 여기에도 또 니이가타현의 움직임이 영향을 주었다. 

'깨끗한 물과 비옥한 대지에서 재배된 니이가타 고시히카리' '밤낮의 일교차가 크기에 맛있게 자란 우오누마魚沼 고시히카리' 이라는 이미지 전략에 의하여 간토우에도 고시히카리가 퍼져 나갔다. 그리고 재차 타격을 주듯이, 1993년 헤이세이平成의 대냉해로 인해 사사니시키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어 "고시히카리 일족"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동서에서 선호하는 고시히카리의 탄생을 계기로, 일본인의 쌀에 대한 미각은 균일화되는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고시히카리 논


고시히카리 덕에 잃어버린 것


고시히카리 탄생 후에는 고시히카리를 기반으로 품종개량이 반복되어 현재는 전국에서 재배되는 품종의 80%가 고시히카리계 품종(고시히카리를 편부모로 하는 근연 품종)이란 '고시히카리 최강 시대". '농림 100호'란 농림 번호(※2)로 1956년에 고시히카리가 탄생하고나서 2015년 시점에서 논벼의 농림번호는 '농림 474호'까지 나왔다(농림수산기술회의 <2016년 농림번호 부여 품종>).

"약 60년 동안에 국가에서 만든 품종만도 300계통 이상이고, 각 도도부현에서 만들고 있는 품종은 더 많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특정 품종만 시장에 남아 있다. 각 농업시험장의 육종가들 입장에선 '좋은 걸 만들어도 고시히카리를 이길 수 없다'는 불행한 상황이다"라고 사토 씨는 말한다. 판매하는 측에서도 구매하는 측에서도 '고시히카리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맛있다'는 풍조가 있어, '육종은 마케팅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라고도 한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느끼는 품종도 있을지 모르지만, 고시히카리 일변도의 상황으로 잃어버리고 있는 것도큰일이다.

사토 씨는 고시히카리가 이렇게까지 확산됨에 따라 "확실히 다양성이 사라졌다"고 지적한다. 다음회 나만의 벼 품종을 만들자에서는 다양성이 사라짐에 따라 생기는 문제와, 다양성을 창출하기 위한 이야기를 살펴본다. 

※2 농림성 소속의 연구기관과 각 현에 산재해 있는 국가 지정 시험지에서 육성된 농작물 품종에 붙여진 등록번호. 


https://agri.mynavi.jp/2019_01_15_55127/

728x90
728x90


이제 고시히카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전회는 전국에서 재배되고 있는 품종의 80%가 고시히카리계 품종(고시히카리를 편부모로 하는 근연 품종)이라는 "고시히카리 최강 시대"가 된 경위를 농학자인 사토 요우이치로佐藤洋一郎 씨에게 들었다. 한편, 사토 씨는 고시히카리 일변도의 상황에 의해 잃어버린 '쌀의 다양성'이 중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먹을 수 있는 쌀은 대략 20품종

쌀의 다양성이 사라진 이유로, 사토 씨는 '군사물자로 쌀의 품질을 통일시키려는 국가정책을 취한 점' '특히 소화시대 이후에 다수확을 목적으로 키가 작은 특정 품종만 품종개량에 사용한 점'을 들지만, 역시 엄청난 충격이었던 것은 '고시히카리의 등장'이었다고 지적한다. 

현재 산지 품종 내역을 보면, 멥쌀, 찹쌀, 술쌀을 합계하여 약 480품종(2018년, 농림수산성 <농산물 규격규정>을 바탕으로 산출). 이 가운데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고 있는 멥쌀은 재배 비율 상위 20품종이 84.1%를 차지하고있다(2017년산, 미곡 안정공급확보 지원기구 공표). 

※일정한 산지(도도부현 단위)에서 생산된 품종이 다른 산지에서 생산된 동일한 품종과의 사이에서 일정한 품질차를 나타내기 때문에, 농산물의 거래 등에서 해당 산지와 품종을 농산물 검사로 특정할 필요가 있음. 1년 1회, 도도부현마다 내역 설정의 신청이나 폐지 등의 의견을 청취하는 장이 설정되고, 학식 경험자, 생산단체, 실수요단체, 행정관계자에 의한 협의를 통해 농림수산성 국장에게 전달. 내역의 설정 등을 행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된 경우, 농림수산부 장관이 행하는 농산물 규격규정의 개정 절차가 진행됨.



각 현에는 여러 가지 대표 품종이 있지만, 전체 비율에서 보면 재배면적은 적다(Panasonic'쌀 이야기 박물관OKOME STORY MUSEUM'의 전시에서)




한편, "메이지 시대는 4000가지 품종이 있었다. 이명 동종, 동명 이종이라 생각되는 것을 정리하더라도 600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고 사토 씨가 말한다. "메이지 시대에 여러 가지 품종이 보전된 것은 사람들이품종을 식별하여 목적에 따라 구별하여 쓰거나, 지역 사이의 교류가 그다지 활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시히카리의 등장 이후, 전국에서 비슷한 품종이 나왔기 때문에 현재는 다른 품종을 식별할 힘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에도 시대에 농사지었다고 보이는 품종 '愛亀'. 역주; 이 품종은 일제강점기 조선반도에도 도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린 붉은 물감과 초록 물감만 가지고 있다. 섞으면 자주색이 된다. 다양한 자주색이 되겠지만, 결국은 자주색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것도 늘어나지 않으며, 아무것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이 최근의 품종개량이다. 어떻게 기호라는 게 균일화되는 것인가 한다." 



에도 시대에 카가번의 헌상미였다고 이야기되는 품종 '킨챠쿠巾着'



한때 '가짜 고시히카리'의 유통이 문제가 되었다. "유통되고 있는 고시히카리 가운데 30%가 가짜일 때조차 우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었다. 품종의 차이가 적어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다른 품종이 들어 있는지 간파하지 못하니, 즉 맛의 차이를 모르면서 비싼 고시히카리를 구매하는 데에도 한 원인이 있다. 가짜 고시히카리 문제는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들면서 쌀의 맛이란 문화의 다양성을 잃어버리며 발생한 비극이었다." (사토 씨)


문화의 다양성과 품종의 다양성이 지닌 관계 

다양성이 적다는 건 어떤 문제로 이어질까? 

사토 씨는 "품종의 다양성을 없애는 건 문화의 다양성을 없애는 것"이라 딱 잘라 이야기한다. "어느 지역이라도 각각의 식문화가 있고, 그에 따른 품종이 있었을 것이다. 식문화의 배경에는 잔치 음식도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잔치 음식이라도 특정 품종으로 대체되어 버린다면, 그 쌀의 특징을 살린 식문화는 사라져 버린다. 잔치가 사라지면 그때 사용된 품종도 사라져 버린다. 문화의 다양성이 품종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품종의 다양성이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 하나의 다양성이 여위어 버리면, 다른 한편의 다양성도 여위어 버린다."

실제로, 짚 세공용 벼 품종도 짚을 쓰는 문화가 사라져서 소멸되어 버렸다. 현재의 산지 품종 내역을 보면, 우리가 평소 먹고 있는 멥쌀은 약 290품종, 찹쌀은 약 70품종, 술쌀은 약 120품종이다(2018년 농림수산성 <농산물규격규정>을 바탕으로 산출). 밥을 먹고, 잔치 음식으로 떡을 만들고, 일본술을 마신다. "적어도 경사스런 날만이라도 품종을 구별해 쓰면 어떨까요?"라고 사토 씨는 말한다. 우리의 "경사스런 날"과 "잔치"의 밥상이 문화와 품종을 유지해 나아갈 것이다. 



이시카와현石川県 하쿠이시羽咋市의 코시다 히데토시越田秀俊 씨와 나오코奈央子 씨 부부가 재배한 '은방주銀坊主'라는 멥쌀 품종. 역주; 은방주는 일제강점기 조선반도에도 도입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는 품종이다.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을 만들다 

사토 씨는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朝日新書)이란 저서가 있다. 이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은 있다?'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을 찾자?' 그 진의를 묻자, "생산자만이 아니라 소비자도 맛있는 쌀을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다'라고 사토 씨가 답한다.

그러면, 소비자가 '고시히카리보다 맛있는 쌀을 만든다'는 건 어떤 뜻일까? 

사토 씨가 제안하는 건 '나의 품종'을 만드는 일. '나의 품종이란, 소비자와 생산자가 손을 맞잡고 만드는 품종이다. 맛있는 쌀을 만드는 책임은 생산자만이 아니라 소비자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서로 어떤 품종을 만들고 싶다고 대화하고, 자신들이 직접 인공교배하고 선발을 한다. 소비자는 모내기와 제초, 벼베기 등 1년에 몇 번은 농작업을 도우러 가고, 생산된 쌀은 구매한다. 그 토지에서 농사지은 쌀은 확실히 그 땅에 적응하고 있다. 다양한품종을 만드는 일을 통해 그 토지의 유전적 다양성이 높아지고, 예를 들어 냉해 등의 재해가 있어도 전멸이란 최악의 사태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가채종을 반복하는 것으로 종묘법에 규정된 '품종'에서는 사라져 가겠지만, 이해하는 소비자와 함께 품종을 만들어 먹는 분량만큼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 사토 씨의 생각이다. 



수확한 벼는 씨앗이 된다 



장애물이 높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품종개량은 그다지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라고 사토 씨는 이야기한다. "에도 시대부터 메이지 초기 무렵의 품종은 개인의 노력에 의하여 탄생하고, 농민들이 품질을 유지해 왔다. 품종의 관리를 민간에 맡기는 일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문화의 다양성은 생물다양성을 담보한다 文化的多様性は生物多様性を担保する

2018년 4월, 장려품종에 대해 규정된 <주요 농작물 종자법>이 폐지되었다. 현재는 도도부현이 독자적으로 장려품종을 계속 다루고 있지만, 만약 앞으로 장려품종이 사라진다면 식량관리법 시대처럼 '니이가타 쌀(新潟米)' '후쿠시마 쌀(福島米)' '일등 쌀(一等米)' '이등 쌀(二等米)' 같은 산지나 등급의 정보만 얻을 수 있게 되어 버리겠다는 우려도 든다. 

그러나 사토 씨는 "다양성에게는 하나의 기회"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품종을 스스로 만든다면, 지적재산권도 경제적 소유권도 자신의 것. 거대한 농생명 기업에 얽매이지 않는다. 지금 시대는 옛날에 비하여 많은 사람들이 여러 지식을 가지고 있다. 지식을 총동원해 나의 품종이 지닌 형질을 제대로 제어할 수 있다면, 다양하지만 잡박하지 않은 품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토 씨가 "문화적 다양성은 생물다양성을 담보한다"고 강조하듯이, 사람들이 단일 품종을 먹고 있다면 단일 품종만 재배되어 버린다. 그러나 다양한 쌀을 맛봄으로써 다양한 품종의 재배가 퍼져 나갈 것이다. 쌀 품종의 다양함은 문화의 다양성과 동일하다. 

나의 품종을 만들어 메이지 시대 같은 품종의 다양함이 현대에 소생되면 일본의 밥상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벼 오타쿠에게 듣다!『나의 품종』 만드는 법」에서도 소개했듯이, 농민이 육종가가 되는 시대가 오고 있는지도모른다. 


https://agri.mynavi.jp/2019_01_22_56122/






728x90

'농담 > 농-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대 이집트의 장식용 정원  (0) 2019.01.28
고시히카리 최강의 시대  (0) 2019.01.25
유럽 최초의 농민  (0) 2019.01.24
전통 또르띠야를 지키기 위한 노력  (0) 2018.12.31
토종 시라토리 고추 페이스토  (0) 2018.12.29
728x90

아메리카 대륙, 특히 미국에서는 옥수수가 작물의 왕처럼 여겨졌다. 

그래서일까? 유전자변형 작물로 가장 처음 상용화된 것이 아마 옥수수이지?

상대적으로 밀은 여왕으로 취급되는 점이 무척 재미있다. 





728x90

'농담 > 씨앗-작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잎 표면 세포의 다양성  (0) 2019.01.25
<일본 재래 벼 품종군의 맛 평가>   (0) 2019.01.25
바나나 꽃  (0) 2019.01.23
식물 육종의 역사  (0) 2019.01.23
매운 토마토를 개발한다  (0) 2019.01.10
728x90

바나나 꽃.

한국에서는 바나나라는 작물이 재배되기 어려워, 늘 바나나의 열매만 보았지 꽃은 처음 찾아보았다.

물론 최근에는 해안성 기후인 지역의 시설하우스에서 점점 재배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더라. 

 

아무튼 바나나의 꽃도 상당히 예쁘다는 걸 알았다.


특히 옥수수가 수염 하나하나에서 수정이 이루어져 옥수수알이 맺히듯이, 바나나는 꽃 안의 암술 하나하나에 수정이 이루어져 바나나 하나하나가 달린다는 걸 알았다. 너무 흥미롭다. 더 자세한 건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728x90
728x90

인간이 식물을 이용해 온 것은 언제부터인가? 인간이 농경을 시작한 것이 이른바 "신석기 혁명"이라 부르는 무렵이라고 보면, 식물을 이용한 것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더 오래된 구석기 시대의 유적에서도 식물을 이용한 여러 유적과 유물들, 그리고 식물체들이 발굴되고 있다. 당시에는 수렵과 채집이라는 생업 양식을 통하여 야생의 식물을 먹을거리로 이용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농경이 시작되면서는 양상이 달라진다. 야생의 식물을 이른바 작물로 길들이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야생의 동물을 가축으로 길들이는 과정을 가축화, 야생의 식물을 작물로 길들이는 과정을 작물화라고 한다. 서아시아 쪽에서는 그 지역에서 발굴되는 작물과 관련된 여러 유물을 통해 대략 1만 년 전을 전후하여 밀이 작물로 길들여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른 무엇보다 밀이 갖는 상징성과 중요성 때문에 그렇지 여타의 식물들도 작물로 길들여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https://seedinginnovation.org/milestones-in-plant-breeding/




아무튼 그 이후 농민들은 여러 가지 식물을 작물로 길들이게 된다. 인간이 한 식물을 작물로 길들이고, 또 그 작물에서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일을 우리는 육종이라 부른다. 그러한 과정에서 활용하는 육종의 방법 가운데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도입 육종"이라든지, "분리 육종"이라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도입 육종은 말 그대로 한 작물이나 그 품종들을 외부의 다른 곳에서 가지고 들어와 재배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토종 씨앗을 수집하러 할머니들을 만나보면 한번쯤 듣는 이야기가 있다. 


"이거? 이거는 내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거야. 친정 엄마가 이게 좋다고 해서 가져 왔지."


이런 이야기 아니면, 


"그거 내가 이웃 마을에 갔더니 그게 좋다고 해서 얻어다가 계속 심는 거지." 하는 식의 이야기 말이다.


이렇게 어떤 작물의 씨앗을 외부에서 새로 가져와 재배하는 방식을 분류하자면, 도입 육종이라 한다. 


그런가 하면 분리 육종은 이런 것이다. 어떤 작물을 어느 논밭에서 재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주 우연히 자연적으로 돌연변이가 발생하든지, 아니면 자연 교잡을 통해서 요상하게 생기거나 맛이 다르거나 색이 다른, 아무튼 기존에 재배하던 작물과는 다른 특성을 보이는 개체가 생긴다. 그럼 눈 밝고 부지런한 농민 같은 경우, 그걸 그냥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그놈의 씨앗을 따로 받아서 잘 챙겨 놓았다고 이듬해에 다시 심는다. 그러면 거기에서 내가 원하던 특성을 지닌 놈도 나오고 아닌 놈도 나오고 제각각이다. 그럼 그중에서 또 내가 원하는 특성을 지닌 걸따로 골라내 씨앗을 받아 이듬해에 또 농사를 짓고, 다시 그 과정을 해마다 반복하다 보면 드디어 다른 특성이 아닌 내가 바라는 특성만 나타나는 품종이 생기게 된다. 이게 바로 분리 육종의 과정이다. 


과거의 농민들은 대략 이 두 가지 방식을 이용해서 새로운 품종, 이른바 신품종이라거나 개량종이라 부르는 걸 만들어 왔다. 농민이 곧 육종가인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던 방식이 20세기에 들어오면서부터는 크게 변화하게 된다. 20세기에 일어난 변화의 뿌리는 1800년대의 인물인 멘델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다, 중학교 생물시간부터 배웠던 그 수도사 그레고어 멘델이다. 완두를 가지고 흰꽃 붉은꽃 골라가며 무언가 해서 시험 문제에 등장하던 그 멘델이다. 작물 육종의 역사에서는 그를 빼놓을 수 없다. 


멘델의 유전법칙으로 부르는 그의 발견이 처음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냥 어디 수도사가 심심풀이 땅콩처럼 행한 실험이겠거니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1900년대에 들어와 다른 식물학자들이 비슷한 연구를 통해 비슷한 결과를 얻게 되었고, 그러면서 이전에도 이런 선행연구가 있었나 찾아보다가 멘델이 발표한 논문을 발견하게 되면 재평가를 받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멘델의 법칙의 재발견"이라고도 부르더라. 아래 도표를 보면 멘델의 유전법칙이 색이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만큼 그의 발견 이전과 이후가 달라지며 그 중요성이 높아서 그렇다. 


https://www.euroseeds.eu/sites/default/files/esa_plant-breeding-evolution_ppt_final.jpeg



멘델의 실험 이후에도 아무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학문이란 게 다 그렇듯이, 모두 손을 놓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멘델과 유사한 실험이 있었고, 그를 계기로 멘델의 법칙을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은 아니란 말이다. 꾸준히 계속해서 여러 연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중에 굵직굵직한 사건 몇 가지를 보면 1880년대에 있었던 라이밀 육종이 있다. 이는 밀과 호밀을 교잡한 신품종이다. 첫 교잡은 1875년에 있었고, 첫 타가수정은 1888년에 있었다고한다. 이게 중요한 건 예전에는 육종이란 것이 우연히,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교잡과 돌연변이의 발생에 의존했다면, 이 무렵부터는 인간이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발생시켰다는 점 때문이다. 인류는 이를 기점으로, 수많은 육종 시도를 통해 새로운 품종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한 시도와 경험이 바탕이되어 1900년대 중반에는 이른바 "녹색혁명"이라 평가하는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다. 어떤 사건 하나라도 어느 날 갑자기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치듯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다시 위의 도표를 보자. 1900년에는 교잡 육종이란 게 시작되었다. 말 그대로 "인간이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어느 한 작물의 꽃에 있는 꽃가루를 다른 꽃에 수정시키는 것이다. 그를 통해 무엇이 탄생할지는 알 수 없다.유전자가 어떻게 조합이 되어 어떤 특성이 발현되느냐에 달린 문제니까 말이다. 그래도 예전처럼 자연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길 기다리거나 발견할 필요 없이, 내가 마음 먹으면 그걸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1920년이 되면 처음으로 "잡종강세"라는 현상을 이용한 육종이 시작된다. 이 무렵부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품종 또는 개량종의 대명사 F1 품종이 상품화되면서부터 종자 시장을 휩쓸게 되는 것이다. 잡종강세라는 건 어느 생물에게서나 다 일어나는 일로서, 흔히 부모보다 나은 자식이 태어나는 걸 가리킨다. 작물의 경우 A라는 작물 품종과 B라는 작물 품종을 교잡시키면 그 자손의 첫 세대, 즉 F1에서는 부모들이 지닌 유전적으로 우세한 특성이 발현되게 되어 있다. 이 현상을 이용해 A와 B라는 작물의 품종에 있는 인간이 바라는 특성만 F1에서 발현되도록 종자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제 씨앗을 나누어 준다든지 함께 쓴다든지 하는 방식의 시대에서 이른바 상품성이 좋은 작물이 수확되는 종자를 사고파는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이후에도 육종법은 계속해서 새로운 발견과 발전을 거듭하여, 돌연변이 육종법 같은 방식도 나타난다. 이건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돌연변이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X선이나 방사선, 화학약품 등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식물에게서 수많은 돌연변이가 발생하도록 한 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놈을 하나의 품종으로 고정시키는 방법이다. 영화 X맨 같은 그런 일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또 조직 배양 같은 방식도 있었지만, 영양체로 번식하는 식물 아닌 이상 별로 각광은 받지 못했다.


그보다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바로 유전공학을 이용한 육종법이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멘델이나 그 이후의 학자들이 연구한 건 유전학(Genetics)이다. 아, 유전이란 이런 것이고, 유전자가 이런 역할을 하는구나 하는 내용을 이해하는 학문이 유전학이라면, 유전공학(Genetic Engineering)은 말 그대로 유전자를 인간의 목적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조작하고 가공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식물의 유전자를 이렇게 저렇게 조작하고 변경하여 인간의 입맛에 맞는 작물을 만들어내는 데까지 온 것이다. 그렇게 개발한 작물이 처음으로 상용화된 것이 다들 잘 알다시피 1996년 미국에서부터이다. 지금은 그 영토가 엄청나게 확장되어 주로 신대륙이라 부르는 남북 아메리카를 중심으로 널리 분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구대륙이라 할 수 있는 유럽과 아시아 쪽에서는 그에 대한 반대와 반발로 그다지 널리 퍼지지 않고 있다. 이들이 분포역을 보면 또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할 수 있어 흥미롭지만, 여기서는 그냥 1990년대에 처음 상용화되어 농지가 광대한 신대륙 위주로 널리 분포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넘어가도록 하자. 유전공학 기술을 통해 탄생한 유전자변형 작물(GMO)를 파괴의 씨앗이니 악마의 작물이니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은 그러니까 일종의 프랑켄슈타인 같은 입장일 뿐이다. 모두 우리 인간, 그리고 우리가 모여 살고 있는 사회와 시대가 요구하여 탄생시킨 작품일 것이다. 우리의 사회와 시대적 요구, 그리고 인간이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할 것인지 합의하고 조율하여 접근하는 일이 더 중요하지, 이런 걸 개발하여 재배하고 판매하는 것 자체가 옳은 일이냐 그른 일이냐 따지는 건 소모적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쉽지 않은 문제로서 간단하게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최근 들어서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육종법이 개발되었다. 중국의 허젠쿠이라는 과학자가 유전자 편집을 통해 아기를 만들어냈다는 소식은 다들 잘 알 것이다. 바로 그 방법을 식물에 활용하여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유전자 편집 작물이 상용화되어 등장할 날도 그다지 멀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이러한 유전공학의 방법은 육종을 하는 인간이 의도하는 바를 매우 정확하고 빠르게 식물에게서 구현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으며 활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분명 20세기에 들어와 산업사회가 무섭게 확장되면서 내건 기치 -생산성, 효율성, 균질성 등등- 가 인간의 경제와 문화는 물론 과학과 농업에도 구석구석 영향을 미친 결과이리라. 21세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여전히 20세기의 가치가 유효하게 그 세력을 더욱더 확장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세기이고 이전 세기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던 만큼 사람들이 새로운 기치에 합의하고 그를 표방할 것인가? 육종의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이러한 일까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728x90
728x90
정말 끝내주는 연구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오하이오주 남부에 Acton 호수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구글 지도에서 찾으면 사진처럼 있는데, 미국 땅은 워낙 커서 기별도 안 가네.




아무튼 이 호수에 주변 농경지에서 흘러들어오는 퇴적물이 너무 많아져서 1990년대 초반 심한 환경 문제를 야기했다. 그래서 미국 농무부에서 인근 농경지의 농민들에게 장려금을 주며 보존농업을 행하도록 했다. 최대한 맨흙을 그대로 노출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구진에게는 1994년부터 2014년까지 호수로 흘러들어오는 부유물과 질소, 인의 비율이 어떻게 변하는지 측정하도록 했다.

그 결과가 아래의 논문이다.
측정 기간을 크게 1994-2003년과 2004-2014년으로 크게 둘로 나누어 상반기와 하반기라고 하자.

먼저 부유물의 농도는 전체 조사 기간 내내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는데, 특히 처음 10년 동안에 훨씬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은 상반기에는 감소했는데, 하반기에는 다시 증가했다.
마지막으로 질소는 상반기에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으나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급감했다고 한다.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많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도 여름이면 하천과 바다에서 녹조와 적조가 연례행사처럼 일어나고 있다. 그만큼 농경지와 축산시설에서 양분의 유출 등이 심하기 때문일 것이다. 녹조와 적조가 발생하면 당연히 어업이나 수중과 수변 생태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장기적 계획을 세워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고, 그걸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차근차근 대처해 나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그래도 되겠지?



그나저나 이런 논문을 공짜로 풀어주니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액튼 호수 조사 논문.pdf
1.89MB
728x90

'농담 > 농-생태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령 사과  (0) 2019.02.09
방풍림에서 인간 사회를 보다  (0) 2019.01.30
토양 생물의 역할과 중요성  (0) 2018.12.17
꼬막의 서식지  (0) 2018.12.16
농업이 곤충을 먹는 조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법  (0) 2018.08.3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