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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농업위원회 구술취재팀은 마지막으로 경북 상주시 연원동의 이기환 선생님(60)을 만났다. 이기환 선생님은 닭 400마리와 사슴 20마리 정도를 키워 퇴비를 자급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선생님께 유축농업의 중요성과 가능성에 대해서 들었다.




축사에서 냄새가 전혀 안 나는데 그 비결이 있나요?

그건 먹이 때문일 겁니다. 먹는 것에 따라 똥에서 냄새가 안 나는 것은 동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먹이를 두 번 발효를 시켜서 줍니다.

사슴 같은 경우 스물두 마리를 키우는데, 하우스에서 기르는 작두콩 콩깍지를 모아서 발효시켜 주고, 또 오가피를 일 년에 한 번씩 자른 것을 모았다가 줍니다. 그것 말고도 곶감 만들고 남은 껍질을 쌀겨하고 섞어서 발효시켜 줍니다. 처음 이걸 발효시키는데 구더기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닭이야 구더기가 영양식이지만 사슴한테는 먹일 수 없거든요.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비닐을 한 2/3 정도 뒤집어씌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니 파리들이 통 밑쪽에다 알을 까서 구더기가 기어서 올라가다가 기력이 다해서 알아서 죽었습니다. 이건 우리가 먹는 김치 같은 역할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걸 논에 벼를 베고 호밀을 뿌렸다가 이듬해 베어다 발효시켜 먹이는 데에다가 섞어서 줍니다. 호밀을 발효시키는 법은 호밀을 베어다가 썰어서 시루떡 할 때처럼 쌀겨와 켜켜이 섞어서 발효를 시킵니다.

닭 사료도 두 번을 발효시켜서 줍니다. 등겨를 발효시키는데, 처음에는 톱밥을 넣어 보니 완전히 발효가 되지 않으면 닭이 설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왕겨를 넣는데 등겨를 발효할 때 왕겨를 넣으면 덩어리가 생기지 않아서 일이 아주 편합니다. 또 닭이 왕겨를 아주 잘 먹습니다. 거기에 토착미생물을 넣고, 알로에 효소도 넣고, 유산균도 우유로 배양해서 넣고 섞어서 먹입니다. 또 천연 인산칼슘도 주는데, 그것은 게 껍질이나 뼈에 현미 식초를 넣어서 만듭니다. 이건 사슴은 초식동물이라 못주고 잡식성인 닭한테만 줄 수 있습니다.

야생콩이나 옥수수 같은 곡물은 그 양을 감당할 수 없어서 사다가 쓰지만 다른 것은 할 수 있는 한 직접 만들어서 주려고 합니다. 현세미라고 미숙미가 있는데 그것이나 등겨 같은 것은 최소한 무농약 이상의 것을 사다가 먹입니다. 곡물이 20~25% 정도 들어가는데, 나머지는 최대한 무농약 이상을 쓰려고 합니다. 또 시내의 방앗간에서 깻묵을 사다가 섞어서 먹이기도 합니다. 산야초를 걷어다가 먹이기도 하는데 요즘은 사람이 없으니 놉을 구할 수 없어서 못합니다.

일반 사료를 주면 산란율이 80% 이상 나온다고 하는데, 사료를 직접 만들어서 먹이니 산란율이 40~50% 정도 나옵니다. 그렇지만 생산비가 워낙 적게 들어서 이 정도만 되어도 괜찮습니다.


무언가 차이점이 있어서 두 번 발효를 시키는 것인가요?

그런 건 아니고 1차 발효만으로 사료를 전부 다 만들려면 발효 기간이 오래 걸리고, 그러다 보면 콩이나 옥수수 같은 곡물이 들어가서 쉴 수도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1차 발효를 시킨 뒤 교반을 하고, 다시 2차 발효를 시킵니다.


닭들이 건강해 보이는데 암수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보통은 암수 비율을 12:1~14:1로 해서 넣는데, 저는 5:1의 비율로 넣습니다. 암수 비율이 7:1까지는 유정란을 할 수 있는데 그 이상이면 무정란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수탉은 모두 토종닭을 넣고, 암탉은 하이라인이라는 종인데, 모두 400마리입니다.


닭장은 하우스를 고쳐서 쓰는 것 같던데 여름에 더우면 어떻게 하나요?

처음에는 그냥 놔두니 더워서 산란율이 떨어졌어요. 그래서 여름에 더운 날은 선풍기를 틀고, 지붕 한쪽에는 차광막을 칩니다. 그렇게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보신 것처럼 저는 닭장을 기존에 있던 하우스에 망만 쳐서 만들어서 시설비가 거의 들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양계를 시작하신다면 500만 원 정도만 투자하면 이것보다 시설을 더 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겨울만 되면 물이 얼까 봐 걱정입니다. 겨울에 너무 추우면 닭이 알을 낳지 않아요.


닭을 키우는 데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솔직히 처음 닭을 키울 때는 산란율이 10% 밖에 안 됐는데, 지금은 어려운 점이 없습니다. 항생제니 이런 걸 안 먹여도 내가 만든 사료만 주면 건강하게 잘 자랍니다. 저는 병아리 때부터 그런 건 전혀 먹이지 않습니다. 병이 없도록 만들면 되는데 요즘 닭을 키우는 방식은 병을 불러오는 방식입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키우면 되지요. 옛날 시골에서 기르는 방식으로 하는데 먹이만큼은 철저하게 관리합니다. 저는 지금은 가축을 돌보는 데 하루 1시간 들고, 일주일 먹을 사료를 만드는 데 6시간 정도 결립니다. 가축을 키우면 어디 외출을 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사슴이야 날마다 먹이를 줘야 해도 닭은 물만 깨끗하면 2박 3일은 어디 다녀와도 죽지 않습니다. 닭은 사료를 완전히 소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계분이 발효가 되면 다시 사료가 됩니다. 외출하는 기간이 길거나 닭이 아니라면 이웃이 있으면 이웃에게 부탁을 하거나 놉을 사서라도 먹이를 줘야 합니다.


가축을 키우는 것 말고 농사는 얼마나 지으시나요?

하우스 600평에서 여자들에게 좋다는 보혈채, 허브 종류, 사포나리아라는 알로에, 작두콩, 집에서 먹고 여기저기 나눠줄 고추․배추․무, 고갱이 좀 먹어볼까 해서 뿌리배추를 기릅니다. 노지는 1500평인데 올해 오가피하고 음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500평은 하우스 시설을 설치할 생각인데, 하우스에는 산나물을 심고 노지에는 고사리를 심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축사가 400평이니 총 2500평입니다. 점점 농사를 못 짓는 노인들이 묵히는 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농사 규모를 더 늘리라고 하지만 힘에 부쳐서 더 크게는 하기 힘듭니다.


유축 농업을 시작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처음부터 유기재배를 하기 위해서 유축농업을 택했습니다. 처음에는 노지 1500평 전체가 포도밭이었지요. 지금은 포도를 안 하지만 그 농사를 지으면서 유기재배를 하려고 퇴비 공장을 찾아다녔어요. 그렇게 다녔어도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는데 이 근처 상주 화동에 한곳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유기재배 때문에 사는 것이니 꼭 좋은 퇴비를 갖다 달라고 신신당부하고 일 때문에 오래 나갔다 왔는데, 그 틈에 퇴비를 갖다 넣었어요. 이웃 아저씨께는 퇴비가 들어오면 로타리를 부탁해서 돌아와 보니 싹 로타리까지 쳐져 있는데, 그 안에 커피박이니 하수슬러지니 가죽박이 들어 있는 거예요. 유기재배하던 땅에 이런 것들이 들어가면 바이러스가 심해져서 더 이상 유기재배를 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4년 내리 숯가루만 넣었지요. 그 다음부터는 퇴비에 엄청 조심하고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기농협회나 흙살림에서 나오는 퇴비를 썼는데, 이건 화학비료 주듯이 줘야 하니 비용 부담이 너무 커서 퇴비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회원 중에 양계를 하는 사람을 보니 이 사람은 퇴비가 많은 거예요. 그래서 그때 토종닭 300마리를 사다가 키웠습니다. 사실 유기재배를 하려면 유기축산이 전제조건입니다. 그래야 퇴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기축산을 하기 어려운 점이 유기사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부 수입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옥수수를 재배해서 먹이려고 했는데 산돼지 먹이로 날려버렸습니다.  그래서 유기축산은 못해도 그것에 가깝게 하려고 최대한 노력해서 쌀겨나 현세미 같은 것도 무농약 이상인 것을 사다가 먹이고 합니다. 이렇게 가축을 길러서 퇴비를 만들어 쓰지 않는 유기재배는 가짜입니다. 닭을 500마리만 키워도 3~4천 평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귀농하는 분들에게는 유축농업을 적극 권장하고 싶습니다. 닭을 기르던지 아니면 소를 두세 마리 키우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40~50평 정도면 닭을 500마리 정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수입원도 확보할 수 있고, 유기재배를 위한 양질의 퇴비도 얻을 수 있습니다. 고정 수입이 있어야 귀농해서 정착할 수 있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유축농업입니다.


집 곳곳에 여러 가지 농자재들이 많았는데 어떤 것들이 있나요?

저는 모든 농자재는 최대한 자가 생산해서 쓰려고 합니다. 저는 원래 서울이 고향인데, 사회생활을 하다가 46살에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농사일을 배우려고 안 다닌 곳이 없었지요. 그러다 하루는 포도를 할 때였는데 어디 장기 출타를 했다가 돌아오니 노균병이 걸린 거예요. 그래서 처음으로 농약을 쳐봤는데 냄새만 독하고 잡히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는 분께 전화를 드리니 석회보르도액을 만들어서 치라는 겁니다. 그랬더니 싹 잡히더군요. 그때부터 자재 만들기에 관심을 갖고 엄청나게 쫓아다니면서 배우고 만들었습니다. 뭔가 배우려면 쫓아다니면서 직접 몸으로 익혀야지 책 보고 이래서는 배웠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만들다 보니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천연 인산칼슘이 농작물용이 따로 있습니다. 참깨대에는 인산이 많다고 합니다. 이걸 만드는 방법은 참깨대숯에 물을 부으면 됩니다. 참깨대숯은 확 불에 탈 때 젖은 부직포 같은 것으로 덮어서 만듭니다.

미역에 흑설탕을 넣어서 만든 효소가 있습니다. 저는 어디 놀러 가면 절대 그냥 오는 법이 없고 꼭 뭐라도 하나씩 주워 옵니다. 이 미역도 바닷가에 한 번씩 놀러 가서 대형 쓰레기봉투 2개씩 주워 온 것입니다.

맥반석에 게 껍질과 굴 껍질을 넣어 만든 천연 칼슘이 있고, 또 한방영양제도 만듭니다. 이건 한약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엽면시비나 관주로 씁니다. 당귀, 계피, 감초에 막걸리를 붓고 하루 지난 뒤 흑설탕을 재료 무게만큼 넣어서 1주일을 놔뒀다가, 그때 소주를 넣어서 발효를 멈추게 합니다. 이 한약술에 고추, 마늘, 생강, 무화과 잎․가지를 넣고 물에 1000배로 희석해서 쓰면 충 기피 효과가 있습니다.

시내에 족발집 같은 곳에서 돼지뼈를 얻어다가 흑설탕에 재우면 살점 같은 것은 다 녹아서 떨어지는데, 나중에 뼈를 꺼내서 태워 기름을 없애고 천연 인산칼슘을 만드는 데 씁니다.

보기에는 안 좋지만 병아리나 오리, 사슴 같은 동물이 죽은 시체로 거름을 만듭니다.

꽁치로는 생선아미노산을 만듭니다. 처음에는 횟집에서 생선부산물을 얻어다가 만들었는데, 등 푸른 생선이 아닌 흰 생선이 많아서 충 기피 효과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마트 같은 곳에 이야기해서 상품이 안 되는 아주 작은 꽁치를 20㎏ 6~8천원 정도로 사다가 씁니다. 이 생선아미노산은 질소 공급 효과도 있고 충 기피 효과가 좋습니다. 한 번은 감자에 벌레가 무시무시하게 덤빈 적이 있는데 생선아미노산 500배에 한방영양제, 은행 엑기스 200배, 현미식초 200배, 천혜 녹즙 200배를 섞어서 쳤더니 벌레들이 싹 사라졌습니다. 아마 생선아미노산하고 은행 엑기스가 가장 큰 효과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데, 이걸로 엽면시비를 하면 포도농사의 응애도 한 방이면 해결됩니다.

그리고 은행 열매를 통째로 흑설탕과 1:1롤 넣고 한 달 뒤에 꺼내서 거르고 깨끗이 싹 씻으면 알맹이만 남습니다. 이 액은 충 기피 효과만이 아니라 살균 효과도 있습니다. 또 걸러낸 알맹이는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 산야초에 계분과 규산질을 섞어서 액비를 만듭니다. 몇 개월 발효를 했다가 다시 깻묵을 넣고 또 발효를 시킵니다. 제가 직접 발효통을 만들어서 혐기성발효를 했다가 호기성발효를 하고, 다시 또 혐기성발효를 모두 6번 반복하게 합니다. 토착미생물은 집 주변에 있는 대나무밭에서 고드밥을 넣어서 채취합니다. 아니면 대나무밭에서 댓잎에 붙은 토착미생물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놔뒀다가, 골판지를 깔고 천연 녹즙을 섞어서 하루 종일 분무를 해줍니다. 그러면 먹을 것도 있고 조건도 맞아서 깨어납니다. 그때 밥을 넣어주면 거기로 미생물이 몰립니다. 그걸 일주일 동안 하우스에 놔두면 별의별 곰팡이가 다 있습니다. 그걸 가져다가 흑설탕에 넣으면 됩니다. 그렇게 완성된 액비에서는 역한 냄새가 거의 없습니다.


퇴비는 어떻게 쓰나요?

발효시킨 먹이를 먹여서 축사에 그대로 놔둬도 냄새도 안 나고 전혀 문제가 없어서 퇴비가 필요할 때만 축사를 치웁니다. 보통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치웁니다. 사슴 똥은 퍼서 나르는데, 닭똥은 바닥의 흙 채로 퍼서 씁니다. 똥이 다 발효되어서 흙하고 똑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쓰면 사슴 똥은 농사짓는 데 다 쓰고 계분은 남습니다. 그렇게 남는 계분은 액비를 만들거나 하우스 굴치할 때 씁니다. 하우스 굴치는 구덩이를 파고 맨 밑에 계분을 깔고 그 위에 등겨와 왕겨를 넣고 흙을 넣고 가장 위에 사슴 똥을 뿌리고 한 번 갈아줍니다. 그러면 3~4년 지나면 완전히 발효됩니다. 보통 300평에 초식동물 똥은 1~2톤을 쓴다고 하는데 유기재배를 계속하면 800㎏만 넣어도 됩니다. 그런데 퇴비를 만들 때 돈분이나 계분보다는 소나 사슴 같은 초식동물의 똥이 더 좋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뭐든지 책을 보고 배워서 농사지으려는 사람은 농사를 못 짓습니다. 자기가 실제로 해보고 모르면 직접 찾아가서 배우던가 해야지 책을 보고 배우려고 하면 안 됩니다. 과정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농사를 못 짓습니다. 유기재배, 환경농업을 하려면 만드는 과정을 즐겨야 합니다. 또 잡초를 원수로 보면 농사를 못 짓습니다. 저 풀이 다 농자재고, 약초고, 사료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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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농업위원회 구술취재팀은 두 번째로 지난 8월 23일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을 방문했습니다. 이곳에서 신림농협 조합장으로 계신 김규동(61세) 선생님과 직접 농사를 짓고 계신 조진태(71세), 민경시(66세)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김규동 선생님은 93년경부터 토종종자 보존과 보급에 뜻을 두고 현재 우리잡곡 살리기 운동본부 대표를 겸하고 계십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토종잡곡을 무료로 보급하고 수매한 결과 지금은 토종잡곡을 50억 규모로 유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진태 선생님은 구암리에서 4000평의 땅에서 산나물과 조, 수수 등을 농사짓고 계시며, 민경시 선생님은 신림리에서 조, 피마자 등과 21마지기의 논을 경작하고 계십니다.




1. 김규동 선생님


- 이번 10월에 토종잡곡 축제를 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행사인가요?

올 해로 4회째를 맞는 행사인데, 10월 5일에는 원주 상지대에서 토종종자 연구세미나를 열고, 6일은 신림 전시포에서 잡곡 축제를 엽니다. 우리 조상들이 원시시대부터 현대까지 사용한 추수 방법도 그대로 재현하고, 각종 곡식 까부르기 대회, 전시포에 심어놓은 200종의 잡곡 중에서 제일 큰 이삭을 찾아오는 대회, 목화에 숨겨놓은 보물찾기와 잡곡 이름 맞추기 대회 같은 참여행사를 진행 합니다. 또 토종잡곡으로 40여 가지의 떡을 해서 시식회도 갖고, 잡곡으로 하는 각종 요리도 함께 맛볼 수 있습니다.


- 어떻게 토종잡곡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94년에 우루과이라운드가 결정됐는데, 그 대안으로 93년에 여의도에서 직거래 장터가 있었죠. 거기에 우리도 잡곡을 가지고 갔는데, 그때 ‘어른조’ 라는 토종잡곡이 있었습니다. 보통 조가 노란데 그건 참깨 색깔이 나요. 그런데 농진청 직원과 농협중앙회 직원이 그걸 수입이라고 해서 쫓겨났어요. 내려오면서 이러다가는 우리 스스로 우리 것을 퇴출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지켜야겠다고 결심했죠. 그 길로 내려와서 ‘어른조’ 종자를 가져온 삼척에 가서 토종임을 확인하고 그걸 들고 농진청에 찾아갔지요. 그 결과 어른조라고 판명이 났어요. 기록에 찾아보니 이 조는 태백산 동쪽에서 많이 먹었데요. 삼척에서 가져왔으니 기록과도 맞지요. 이 조가 왜 ‘어른조’냐면 이삭 끝에 긴 수염이 있어서 어른 같이 수염이 나있다고 ‘어른조’ 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토종잡곡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겁니다. 제주도도 몇 번을 다녀왔어요. 토종잡곡을 구한 방법은 곡식상에는 없고, 옛날 재래시장 할머니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주 주말마다 장터로 돌아다녔죠. 장터도 11시부터 4시 사이에 가야지 그 시간대에 못 들르면 소용이 없어요. 그렇게 찾은 거죠. 또 가을에 다니다가 밭에 이상한 수수가 있으면 이름을 물어보고 돈 주고 잘라오기도 했어요.


옛날부터 종자에 대한 이야기가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종자를 등을 넘기지 말라고 했어요. 산을 넘기지 말고, 나만 심어 먹어야 된다는 게 있었고. 두 번째는 굶어죽은 사람 베개를 뜯어보면 종자가 들어있다는 거예요. 굶어죽어도 종자는 안 먹어답니다. 이렇게 조상들이 귀중하게 전해준 것이 종자입니다.


- 다른 지역의 토종종자도 여기서 재배가 됩니까?

토종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에 수십에서 수백 년 동안 적응이 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강원도만 되고 제주도에서 안 되면 토종이 아니죠. 토종은 우리나라 남북한을 통틀어서 어디든지 다 됩니다. 특히 잡곡은 안 되는 곳이 없어요. 단, 보리가 전라도에서는 이모작이 되니까 거기서 주로 심는 것이지 강원도에도 되잖아요. 안 된다가 아니라 잘 된다는 차이죠.


- 이 지역은 어떤 잡곡이 특히 잘 되나요?

여기서 잘 되는 게 조, 수수가 잘 되요. 수수가 원래 영월지역이 주산지래요.


- 토종종자는 조합원에게 보급하나요?

예, 원하면 무료로 줍니다.


- 토종종자 보급이 지역경제에는 어떻게 보탬이 됐습니까?

조 같은 경우 28종이 있는데, 전시포에서 재배해 보고 수확이 많은 종자를 골라서 농가에 보급하는 거지요. 그걸 농협에서 수매합니다.


- 잡곡과 관련해서 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나요?

현재 조가 28 종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1단보에 열가마를 심어서 한 가마 밖에 안 나오는 게 있어요. 그럼 우리 조상들이 왜 심었겠습니까. 이건 분명 약재로 쓴 것 같은데 이런 걸 연구해서 제2의 홍화씨 같은 걸 찾아내고 싶습니다. ‘잡곡은 약곡이다’ 이라고 하잖아요. 


- 잡곡이 약이 된다는 것을 정리해 놓으신 것이 있나요?

지금은 안한식 박사님 책과 동의보감에 나온 정도 밖에 없습니다. 제가 아는 건 쓰지를 못했어요. 그 보다 제가 정리하고 싶은 건, 먼 훗날 땅에 떨어졌던 잡곡이 어느 날 나오면 우리 후손은 이름도 모르겠죠. 진흥청에도 사진밖에 없으니 모를 수도 있어요. 그래서 토종잡곡을 자라는 과정마다 다 사진으로 남겨놓고 나중에 비교만 해봐도 알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내가 지금 기(氣)밥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옛날에 극도로 쇠약한 사람에게 원기회복을 시키기 위해서 먹였던 처방에 의한 밥입니다. 찹쌀, 흑미, 차조, 서리태, 밤, 대추, 은행, 잣, 인삼까지 총 아홉 가지가 들어가는데, 그 배합을 처방같이 한 거예요. 지금 대구 1호점, 인천점, 원주, 분당에 하나 있는데 총 100개까지 만들려고 합니다. 체인점처럼 돈 벌려는 게 아니라 우린 간판만 만들어주고 우리 잡곡을 많은 국민이 먹게 하려는 거지요. 우리잡곡 살리기 운동본부를 내년에 사단 법인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 조진태 선생님


- 농사를 지으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20년 됐는데, 10년은 장사도 같이 하다가 아주 농사로 벗고 들어선 지는 10년 됐어요.


-취나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취나물은 어디 회장(장례식)을 갔었는데, 봄인데 취나물이 아주 번드름 하더라고. 그래서 캐다가 밭에다 몇 포 심었죠. 그런데 가을에 가서 씨가 하얗게 앉았단 말이야. 그래 지도소 애들이 여기 자주 놀러왔는데, ‘형님 씨를 받아가지고 취나물을 한 번 갈아보자’ 고 해서 그걸 받아가지고 했는데 이듬해에 아주 잘 됐어요. 그러니까 지도소 사람들이 그 씨를 다 받고, 다른데서 알선해 와서 동네에 11집을 가르쳐줬어요.


-취농사는 몇 평을 하시나요?

나는 한 천 평 가지고 있어요.


-취 종류는 무엇이 있나요?

취가 글쎄 곰취, 곤드레, 나물취가 있어요.


- 어떻게 재배하나요?

나물취는 한 번 파종해놓으면 늘 그냥 있어. 죽는 것만 더러 보충하면 돼. 올 해 심구면 내년부터 베는데 딱 두 번 벨 수 있어. 하우스는 4월 10일부터 6월 말까지, 노지는 5월 10일경에 가야해요. 7월 초면 더 할 수가 없어. 비가 와서 말릴 수도 없고, 날이 뜨거우면 꽃대도 올라오고 잎사구도 벌개져서 취가 금방 망가져요. 두 번 벤다고 해도 쉽지가 않아. 한꺼번에 올라와서 대가 쇠기 전에 베야해. 그래서 두 달 동안에 아주 바쁘고 기가 맥혀.


곰취는 분양을 해야 돼요. 안 하면 서로 치여서 얼마 안 올라와. 적당하게 계속 분양을 해줘야 해요. 이게 한 자리에서 3년까지는 괜찮아요. 이건 포기로 번식하는데, 한 자 넘게 심어요. 나는 횡성 태기산에 가서 샀는데 다른 데 있는 건 맛이 없어요.

이건 파서 보면 저절로 분양이 돼있어. 적당하게 똑똑 끊어서 따야지 그냥 나누면 뿌리가 떨어져서 1년은 가야 자리를 잡아. 이건 꽃이 노랗게 피는데 씨가 잘 안 돼.

곰취 수확은 하나씩 따야해요. 곰취는 절대 습기 많은데도 안 되고, 양지쪽도 안 돼요. 하루죙일 해보는 데는 안 돼. 하우스에서 하는 사람은 차광막을 쳐요. 또 곰취가 흰가루병만 들면 다 없어져요.

심어놓고는 봄에 퇴비를 많이 넣거나 짚을 잘게 썰어서 봄 오기 전에 쭉 바르게 펴놔. 그냥 심어놓으면 비오면 뒤에 흙이 붙어서 안 돼.


곤드레는 꺾으면 나오는 젖 같은 진이 좋다고 하지. 곤드레는 일찍 되고 늦게까지 가서 요새도 더러 뜯어. 옛날에 흉년 7월 달에 먹는 게 곤드레․뚝가레 잖아요. 뚝가레 라고 산나물이 있어요. 곤드레가 그 종류야. 곤드레는 아무데서나 되는데, 진딧물에 약해요. 수확은 곤드레 보다 더 나은 게 없어.


퇴비는 왕겨하고 계분을 섞어 쓰는데, 생계분만 쓰면 다 썩어. 그걸 갖다 바닥이 안 보이도록 깔아야해. 줄 때는 그냥 그 위에 막 뿌리는데 해동하기 전에 줘야해. 그리고 깎고서는 비올 제 주는 게 좋아요. 바로 주면요 깎은 데서 물이 올라오는데 거기에 비료가 떨어지면 썩어버려. 고게 아물러 붙고 몇 일 있다가 비를 맞은 다음에 주는 게 효과다. 그래서 비가 올 제 주는 게 효과고, 비가 올 제 줄라고 하다가 비가 안 오면 또 말라죽고 하니까 아주 농사라는 게 자꾸 경험이 있어야해.


나는 잘 한다는 데는 어떻게 하나 다 다녀봤어. 하여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자기가 직접 해봐야 알아. 남의 말만 듣고 잘 될걸 바라지 말어.


- 곤드레, 나물취, 곰취는 어떻게 다릅니까?

곰취가 제일 비싸고 그 다음은 곤드레가 비싸. 곰취는 나물로도 좋고 향이 좋으니까 쌈으로 아주 좋아요. 곤드레도 나물로도 좋고 쌈으로도 괜찮아요. 다른 거 없을 때는 그걸로 먹고 해요. 그래서 제일 하발치가 나물취여.


- 잡곡은 어떤 걸 하시나요?

여기 심어 놓은게 단목수수라고 하는데 찰수수야. 그런데 수수는 배게 심으면 무름병이 걸려서 안 돼. 심을 때는 항상 드물게 심어야 해. 또 하나에 2~3개만 심어야지 그 이상 심으면 안 돼요. 그래서 농사는 욕심 많은 사람들이 실패해. 옛말에 드문 곡석은 광으로 하나 나고, 보인 곡석은 가마니 하나밖에 안 된다고 해요. 그리고 수수가 나올 적에 끝이 빨개면 그 밭은 수수가 안 되는 곳이야. 그러니까 그 지방 곳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거여.


이 콩은 황금콩인데 옛날 지도소에서 만든 품종을 얻어서 계속해서 심고 있어요. 일반 메주콩하고 같은 거야. 이것도 두 자 이상은 벌려야지 배게 심으면 안 돼. 순은 두 번 질러줘요. 하나하나 손으로는 못하고 예초기로 사정없이 고르게만 질러줘. 뭐든지 곡석은 고르게 자라야지 들쭉날쭉하면 잘 안 돼요. 그리고 노린재라고 하는 벌레를 조심해야 돼. 저 콩은 서리태여. 이거랑 다르게 생겼지. 이거 봐요, 아주 많이 달렸잖아. 이게 드물게 심어서 그래요. 뭐든지 배게 심으면 잘 안 여물어.


또 황차조를 하는데, 줄뿌림 하고나서 너무 배게 나면 솎아줘야 돼. 조가 처음 날 때는 볼품없어서 옛말에 조밭 맬 때는 울며 매야 된다고 해. 올 해 농사는 망했구나 하면서 맨다고 해서 그래요. 그러고 나면 아주 잘 자라. 그리고 비닐을 쓰면 풀이 안 나서 좋긴 한데 크면서 발뿌리가 못 내려서 제대로 못 자라. 풀은 풀씨가 떨어지기 전에 싹 매주면 괜찮아. 그래 뭐든지 풀씨가 맺기 전에 매줘야 해. 이것도 보이게 심으면 바람 불면 쓰러지는데 드물게 심으면 잘 쓰러지지도 않고 잘 되지.


- 혹시 농약을 안 치고 농사짓는 법은 터득하신 게 있나요?

약 안치고 하는 게. 수확을 조금 나게 하려면 약 칠 필요가 없어. 되는대로 먹으면 아무 거고 약 칠 필요가 없어.




3. 민경시 선생님


-조가 많은데 이건 이름이 뭔가요?

이건 황차조 입니다. 청차조를 심다가 모자라서 심었습니다. 차조 종류가 열댓 가지가 돼요.


- 청차조와 황차조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차이점은 청차조가 키가 좀 더 크고, 곡식 색깔이 달라요. 이것도 토종인데, 우리나라 곡식이 수 백 년 전에는 외국서 왔는지 몰라도 현재는 거의가 우리 종자입니다.

조의 종류가 우리나라는 확실하게 모르는데 한 이십 가지 되는데, 문제는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수확이 많이 나고 이게 문제거든요. 곡식은 일찍 되는 게 수확이 적어요. 뭐든 게 올곡식이 수확이 적습니다. 옥수수든 조이든 콩팥이든 모든 곡식이 일찍 되는 올곡식이 수확이 적습니다.


- 조가 바람에 잘 쓰러지나요?

쓰러지는게 뭐냐면 조를 심는 걸 보니까 비닐을 씌우고 심으면 이게 매는 품이 없어요. 씨는 솎아주면 그만이거든. 그런데 뿌리를 박는 것이 비닐을 씌워주는 것과 안 씌워주는 것이 차이가 있어요. 이건 노지로 심어서 묻어놨는데 쓰러질 염려가 없어요. 비닐을 씌워준 게 잘 쓰러지더라고. 비닐을 씌워주면 이삭도 굵어지고 엄청나게 잘 돼요. 잘 되는데 대신 쓰러지는 문제로 줄을 치고 하더라고 그게 있어요.


- 풀은 어떻게 매나요?

그 까짓 거 매긴 뭘. 비닐을 씌우는건 왜 씌우냐면 매는 품을 덜기 위해서 씌우는 거여. 씨는 솎아주면 그만이여. 풀단도리 한 데는 큰 품 안 들어요. 풀씨를 한 번 받으면 사오년은 가요. 그러니까 풀씨를 받지 말아야해. 논이고 밭이고. 그러니까 쉽지 뭐. 풀씨만 없으면 씨만 솎아주고 거름 갖다 주면 끝이지.


- 특별히 잡곡 농사를 짓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잡곡은 큰 약을 치는 게 없어. 그런데 한 가지 가장 큰 단점은 저 군데가 졌어요. 이거를 방지를 해야 되는데 이게 큰 문제입니다. 군데진다는 게 뭐냐면 이삭이 안 열리는 게 있잖아요. 이게 가장 큰 문제예요. 이게 엄청나게 많잖아요. 요것이 무엇이 문제냐면 봄에 나비가 해충을 실어가지고 충이 들어 죽는다는 거요. 이게 전문적으로 약이 없어요. 종묘상에 가서 물은 결과는 아이 맬 때  후레단을 뿌리라는 거예요. 그게 한 봉이 1단보에 뿌리게 되어 있는데 백 평에 한 봉을 뿌리라는 거예요. 그래보니까 어떤 사람이 해봤는데 낫더라 이거야. 이거 봐요 엄청나잖아 이게 헛일이에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는데 충이 문제라는 겁니다. 이걸 조사를 해서 원인이 뭔가를 알려주세요.


- 그것 외에 조를 재배하는 장점이 뭔가요?

장점이요. 이게 값이 문제가 있거든. 우리나라에 농산물이 옛날에 심다가 안 심는 게 많아요. 심어보니까 강냉이 심는 것보다 낫다는 거예요. 뭐를 농사꾼이 기준으로 하냐면 땅 한 평에 나오는 수확이 얼마인데 들어간 비용이 얼마다. 이게 계산이 된단 말이에요. 품은 관두고. 옛날에 중국에 신농씨가 다 따져보니까 장값이 모자르더래. 그래도 농사꾼은 농사를 해야 한다고. 이게 저 천하지대본이 뭐냐면 직장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은 열두 달을 쫓아다녀야 하잖아. 우리는 더울 때 땀이 나지만 해놓고 겨울은 놀잖아요. 그게 천하지대본이다 하는 거지.


- 저기 심어 놓은 피마자는 어디에 쓰나요?

피마자는 잎을 씁니다. 한 달에 네 번을 따야 돼. 8일 내지 10일 마다 한 달이면 세 번 내지 네 번 따야 돼요. 저게 쇠지면 못 써. 나물 종류는 모든 나물 종류가 쇠지면 못 써요. 그래서 그걸 맞춰서 한 달에 네 번 정도는 따야 돼요.


-다른 잡곡은 안 하시나요?

다른 건 없습니다. 여기는 해발이 400이 채 못 됩니다. 요 근방에서는 둔내가 해발이 한 700 정도라서 야채재배지로서는 아주 적합한데래요. 여기는 고랭지도 못 하고 해서 주로 심는 것이 옥수수 같은 겁니다. 여기는 채소가 토질 관계라든가 이런 게 맞지를 않아요.


-농사는 조상대대로 지으신건가요?

대대로 지었습니다.


-농사는 누구한테 배우셨나요?

열다섯 살 때부터 아버님께 배웠어요.


-전통농법 중 전수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모든 게 시대 따라 달라졌고 옛날 전통농법이란 게 전수할 건 없습니다. 옛날식으로는 지금 농사를 못 지어요. 인원이 없어. 젊은 사람은 다 빠져나가버리고 농사를 짓는 젊은 사람이 없어요. 우리도 60․70대가 가장 젊다고요. 그리고 내가 삼남 이녀지만 우리 애들은 콩 한포기 심을 줄 몰라요. 이게 문제요. 내가 죽으면 농사도 그만이래요. 옥수수가 저들이 먹을 줄 알지 어떻게 심어서 어떻게 나는지 몰라요. 비료를 어떻게 주며, 거리를 얼마나 하며, 밭을 어떻게 다루며, 이걸 몰라요. 이게 큰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에 후에 농사일꾼이 없다. 기계화가 된다고 해도 대도시에 대농장에서 기계화지 산촌에 이런데 다락논․다락밭에서 무슨 기계화요. 대전 유성인가에서 전국농기계전시회가 있었어. 한 사년 전에. 뭐 발동기나 걸어가지고, 밭고랑 걸치는 거 이런 거 찾아서 가보니 보통 뭐 5000만원 7000, 8000만원 대형기계밖에 없지, 쓸게 하나도 없어. 내 맘에 맞는 거 하나 사려고 했더니 하나도 없다고.


- 그럼 기계도 안 쓰고 농사를 지으시나요?

경운기도 없어요. 남한테 시키죠. 트렉터는 밭은 평당 100원이야. 그러고 그냥 줄띄워놓고 심고 조는 사람이 메고 심는 게 있어. 콩도 줄 띄워놓고 그냥 심고.


-농사는 어떤 계기로 짓게 되셨나요?

내가 육십이 년도에 군대 갔다 오니 직장에서 돈 벌라고 하더라고. 근데 군생활 삼년 하면서 보니 노인들이 농촌에서 고생하는데 내가 떠나고 보면 그게 불효다. 당시에는 또 한달 봉급이 따져보니 쌀 한 열두 말도 안 돼. 지금은 한 다섯 가마도 넘지. 그때는 그거밖에 안 됐다고. 그래서 내 안 갔어. 그러고 이래저래 짓다보니 평생 농사만 짓게 됐지.


-말씀 고마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요?

한 가지 꼭 얘기하고 싶은 것은 외국농산물이 칠레나 중국이나 각국에서 많이 침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장사를 하고 사들이는데, 외국 게 들어와서 아무리 싸도 우리 땅은 우리가 농사를 지어먹어야 된다. 쌀이 한 가마에 10만원이든 5만원이 가도 이 나라 땅을 묵히고, 싸다고 외국 걸 사다 먹는다는 건 말이 안 돼. 우리나라 농토는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세계가 어떻게 변천해 갈런지는 몰라요. 외국 걸 평생 우리나라 땅 묵혀 놓고 싸다고 딴 걸  사다 먹는 건 도저히 말이 안 된다는 이거야. 우리 땅은 우리가 지키자는 거야.

농민은 농사지어야지 옛날에 이런 얘기가 있어요. 모두가 부귀영화를 누리고 하면 농부 될 사람이 누가 있어. 농사지을 사람도 있어야 된단 말이야. 농사도 앞으로 한 기업이래요. 기업인데 내 땅을 묵힐 수는 없잖어. 쌀 한 가마에 오만원이 가도 남의 쌀은 안 먹어. 우리 땅은 묵히지 말고 우리가 꼭 지켜가면서 살자는 게 내 얘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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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농업 위원회 구술취재팀은 또 안완식 박사님을 찾아뵙고 이번에는 주로 토종 채소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특히 각종 종자를 오랫동안 잘 보관하는 방법과 채소류를 채종하는 방법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잡곡류는 토종이 많이 보존되고 경제적 가치도 어느 정도 있는데, 채소류는 없어진 것인지 왜 그렇게 종류가 적은가요?

원래 우리나라는 서양처럼 다양한 토종 야채가 없어요. 토종 야채래야 배추‧무‧시금치‧상추‧근대‧순무, 근채류로 마늘이라든지 백합과 같은 것이 있고. 그 다음에는 연근‧토란, 향신료로 생강 같은 것들이 있지. 서양에 비해서 다양하지가 않아요. 그리고 거기다 산나물을 들 수 있는데, 요즘은 취나물‧고사리‧참나물‧더덕‧도라지‧두릅 이런 것들을 다 재배하죠. 그래서 종류가 좀 많아졌고, 거기다가 최근에 서양에서 양배추류가 상당히 많이 들어왔죠.

토마토 같은 것은 임진왜란 전후에 들어왔는데, 옛날에는 못생기고 크기만 하다가 지금은 개량된 것이 들어왔어요. 딸기도 60년대 후반에는 토마토처럼 그랬는데, 최근에는 모양도 약간 작으면서 예쁘고 저장성 좋은 것들이 개발됐어요. 그러니까 없어지기 보다는 원래부터 채소류가 많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이건 추측인데, 채종하기 쉬운 것들이 주로 남은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작물 종류가 모두 한 256가지 정도 되는데, 보통 많이 재배하는 것은 4~50종밖에 안 될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시금치만 해도 미국에서 들어온 것들이 잎사귀도 크고 수량도 많으니까, 우리 것은 안 심고 그걸 심으면서 우리 것이 줄었죠. 그리고 육종할 때도 좋은 것만 고르다 보니 우리 걸 안 심게 되는 거죠.


-그러면 토종의 경제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구태여 토종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오히려 그것을 토종으로 만드는 것이 더 좋지 않나요?

그런데 토종이라는 것은 우리의 자연 환경에 오랫동안 적응하며 살아온 식물이기 때문에, 수확량이 아주 많지도 않고 아주 적지도 않게 일정해요. 이것을 바탕으로 어떤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유전자원이 되니까 중요하지요. 또 토종이 우리나라에서 사라지면 세계에서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꼭 지켜야지. 또 하나는 토종이 한반도를 지키는 자연환경의 지킴이예요. 토종 생물이 없다면 뭐가 자연을 지키겠어요. 또 하나, ‘생물 다양성 협약’이 맺어져서 토종이 있어야 내걸 주장할 수 있고, 외국 종자를 확보하려면 이게 있어야 바꾸지 없으면 바꿀 수 없어요. 토종이 이렇게 중요한 자원이고, 자손만대 물려줘야 할 제일 큰 유산이지요.


-그렇지만 농민 소득에 보탬이 되어야 현지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잡곡은 신림농협의 경우처럼 가능성이 보이는데, 채소나 야채도 과연 농가 소득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토종이 분명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해요. 토종 고추‧오이‧시금치 같은 것을 먹여보면, 시금치 같은 것은 겨울에 엄청 달고 또 이게 월동도 잘해요. 오이도 사각거리는 맛도 더 좋고, 노각은 토종밖에 안돼요. 이런 것 때문에 토종이 좋은 건데, 그렇다면 그 토종으로 도시 사람들의 입맛을 새로 일깨워야 해요. 오이나 시금치, 배추꼬랑지의 맛, 그런 맛을 도시 사람들에게 자꾸 일깨우고, 최근 얘기하는 유기농으로 생산된 것을 직거래 형태로 판매하든지 아니면 요즘 대형 마트에 가보면 토종만 파는 곳이 있어요. 신품종이 10이 생산되는데 이건 5나 6만 생산된다면 값을 두 배로 받으면 되잖아요. 그렇게 하면 농가 보전도 가능하지 않을까 해요.


-토종이 사라진 결정적인 요인은 농사 체제가 바뀌어서 그렇지 않을까요? 요즘은 모종도 사다 쓰면서 종자도 필요 없게 되고, 오히려 종자가 많을수록 귀찮기만 하잖아요. 그래서 토종을 어떻게 보존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됩니다.

지금은 농가에서 토종을 보존할 수가 없죠, 이제 옛날처럼 소농도 없고. 요즘 농사는 수량이 많이나는 종자를 쓰니까 토종이 사라졌어요. 어떤 방법으로 해나가야 하는지 물어봤지만, 나도 숙제야. 그러나 나는 해답이 여러분한테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귀농을 하는 사람들이나 현재 시골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마을에 모여 살던지 따로 떨어져 살아도 좋고. 그런 분들한테 토종을 나눠줘서 많이는 아니어도 한두 가지라도 심어서 보존을 하면 그것 역시 농가 보존이 아닌가 해요. 옛날처럼 농사지으면서 농가 보존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분들하고 관계를 갖으면서 함께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나는 가능하면 그 사람들한테 자꾸 종자를 주고 싶고 그래요.




● 종자 보관법

종자는 보통 완숙기 이후부터 발아력이 퇴화한다. 그러므로 채종한 뒤 파종할 때까지 발아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잘 보관해야 한다. 종자의 수명은 종류에 따라 다른데, 재배‧수확‧조제‧저장 조건에 따라서도 다르다.


1) 종자의 수명 : 종자는 상온에서 저장할 때의 수명에 따라 아래와 같이 분류한다.

-단명 종자 : 채종한 뒤 1~2년에 발아력을 상실하는 종자 - 파, 양파, 당근, 땅콩 등

-단명 종자로서는 긴 것 : 양배추, 상추, 고추, 완두, 강낭콩, 우엉, 시금치 등

-비교적 장명인 것 : 무, 순무, 배추, 오이, 호박 등

-장명 종자 : 채종 후 4년 이상 발아력을 유지하는 것 - 가지, 토마토, 수박 등


2) 종자의 상태와 수명

-성숙 종자가 미숙 종자보다 수명이 길다.

-미숙 과실에서 채종할 경우 충분히 후숙한 뒤 채종하는 것이 좋다.

-채종한 종자는 잘 말려 수분 함량을 낮춰서 저장해야 하는데, 수분 함량을 7~10% 이하로 낮추는 것이 좋고 12%를 넘지 않아야 한다.


3) 저장 온도와 습도

-저장 온도는 낮을수록 좋다.

-습도는 3~4%까지 낮출수록 좋다. 종자의 수분 함량은 저장 온도보다 5배나 중요하다.

-종자를 오래 보존하기 위해서는 저장 전에 잘 말려야 한다.

-종자 저장에 경제적인 조건은 5℃ 이하의 온도와 상대 습도 30~40%라고 할 수 있다.


4) 종자 간이 저장법

-소량의 종자는 밀봉이 가능한 용기에 건조제와 함께 넣어 저장할 수 있는데, 건조제는 실리카겔, 염화칼슘 등을 사용하며, 종자 무게의 10% 정도면 된다.

-잘 말린 종자를 밀봉 용기에 넣어 냉장고에 넣으면 5~10년 동안 저장할 수 있고, 냉동고에 넣으면 더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다.

-영하 20℃의 냉동실에 보관하면 수십 년 동안 보존할 수 있다.

-종자를 꺼내서 일부만 쓰고 나머지는 다시 보관하려면, 냉동고에서 용기를 꺼내서 실온과 비슷해질 때까지 몇 시간 동안 놔뒀다가 종자를 꺼내야 흡습을 막을 수 있다.

-종자 용기를 자주 열거나 오랜 시간 열어놓았을 경우에는 건조제를 약 100~130℃에서 3~4시간 말린 다음 밀봉된 병에 넣어 식힌 뒤 다시 넣으면 된다.

※잘 마르지 않은 종자를 밀폐해 상온에 보관하면 활력을 급히 잃으며, 영하 20℃의 냉동실에 넣으면 얼어 죽을 수도 있다.




● 채소류 채종법


▶채종하기 위해서 작물이 어떻게 수정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1) 자가수분 작물 : 약간만 거리를 두거나 격리하지 않아도 괜찮다(토마토, 가지, 고추, 콩, 벼, 보리 등).

2) 타가수분 작물 : 격리해서 채종해야 함.

-자웅이주 : 시금치, 아스파라거스

-자웅동주이화 : 옥수수, 오이, 호박, 수박, 참외

-자웅동주동화 : 무, 배추, 양배추 등 십자화과

※잡종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①격리 재배 ②시간차 격리 ③봉지 씌우기 ④망실


▶채종포의 조건

① 채종하고자 하는 작물이 그 지방의 기후풍토에 잘 적응할 것.

② 재배하려는 밭 근처에 같은 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

③ 감자는 저온성 작물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씨감자를 생산하기 위해서 재배기간 중 진딧물이 적고, 기온이 서늘한 고랭지에서 생산된 것.

④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절 : 상추나 양파, 홍화 같이 여름에 결실하는 작물의 경우 방수용 비닐 설치할 것.

⑤ 자가 채종포 근처에 꿀벌을 치는 사람이 있으면 타가수분 방지를 고려할 것.


▶채종포 관리

1) 정지 및 착과 : 식물의 생산력은 일정하므로 한 그루에 너무 많은 과실을 달면 충분한 양분을 공급받지 못하여 생산된 종자의 활력이 떨어지고 수명이 짧다.

-일시균등 성숙 : 가능한 한 같은 때 익게 해 수확기간을 단축한다.

-종자의 충실도 : 식물의 담과 능력에 맞게 과실을 달아 종자에 충분한 양분을 공급하도록 한다.


▶채종

1) 수확

-잘 익은 과실에서 채취한 종자가 가장 좋다.

-무, 배추 등의 엽근채류는 꼬투리에 종자가 열린다.

-종자의 숙도(maturity)는 개화 수정 후 종자 채취일까지로 한다. 잘 익은 종자가 세력이 좋고 수명이 길다.

-엽근채류의 경우 한 번에 수확하므로 적기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2) 후숙

-여건에 따라 일찍 종과를 딸 경우 후숙하면 발아력이 높은 종자를 채종할 수 있다.

-박과‧가지과 채소 등은 수확한 과실을 일정기간 그늘에서 후숙해 채종한다.

-십자화과‧백합과‧명아주과‧국화과 등의 채소도 채종 재배 식물을 베거나 뽑아 말리는 과정에서 모체의 양분이 종자로 이동하는 것도 일종의 후숙이다.


3) 조제

-수확한 채종 식물은 건조해야 탈곡할 수 있다. 가능하면 비를 맞지 않게 한다.

-다 건조되면 탈곡기 등을 이용해 탈립을 하고, 탈립 종자는 햇볕에 말려 조제한다. 그러나 물기가 많은 종자를 강한 햇볕에 말리면 종자의 색택이 나쁘고 세력이 떨어진다.



●주요 채소의 채종법


1. 십자화과 채소의 채종


1) 일반 특성

①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1년생 초본 : 생육은 20℃ 내외, 결구는 15~16℃ 내외

② 화아분화 : 0~13℃의 저온에 감응하는 춘화형으로, 저온에 감응해 분화한 화아는 고온 장일에 의해 추대 개화한다.

※양배추류는 녹색식물 춘화형 : 기본영양생장상이 있어서 15~30장의 잎수를 확보한 상태에서 10℃ 이하의 저온에 1개월 이상 노출되면 일어난다. 화아분화 뒤에는 고온에 의해 추대 개화가 촉진된다.(개화촉진처리 4~5℃에서 2개월 동안 처리)

※갓의 꽃눈이 분화되는 것은 온도보다 일조시간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월동 후 고온 장일에서 촉진되므로 봄에 파종해 재배할 때 일찍 추대된다.

③ 주로 타가수분을 하며 꽃망울 수분으로 자가수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배추 종류나 갓 종류는 잡종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다른 품종과 격리해야 한다.


2) 채종 환경

① 격리 : 타가수분 작물이라서 다른 품종이나 또는 다른 변종과도 교잡이 가능하다. 특히 콜리프라워, 브로콜리, 방울다다기양배추, 콜라비 등 캐일양배추군에 속하는 모든 채소는 교잡 위험식물이다. 그러나 무, 배추, 고추냉이, 유채 등과는 자연교잡하지 않는다. 격리 거리는 일반 채종은 500m 이상, 원종 채종은 1,000m 이상.

② 기온 : 화아분화기간에는 0~13℃의 저온이어야 하고, 생육기간에는 20℃ 내외의 서늘한 환경이어야 한다.


4) 배추 채종

① 결구모본 채종 : 결구배추

-경기도 지역의 경우 8월 10일경 파종, 늦가을에 좋은 놈을 골라 잎을 자른 다음 하우스에 정식해서 봄에 꽃이 피면 채종.

② 이식 채종 : 일대잡종 배추를 채종할 때

남부지방에서 9월 28일~10월 5일에 파종하고 10월 30일~11월 10일경 정식한 뒤, 결구되지 않은 상태로 월동해 이듬해 봄에 개화하고 결실하면 채종.

③ 직파 채종 : 고정종, 즉 집단선발종의 채종

-파종기는 10월 10일~10월 25일로, 이식 채종보다 약 20일 가량 늦다.

-보통 3본을 점파한 뒤 1주만 남긴다.

-생산비가 가장 적게 드는 채종법인데, 좋은 모본을 선발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④ 뿌리 배추 : 개성배추나 서울배추 등 뿌리가 큰 배추

-늦은 가을 수확해 무가온 비닐하우스에 이식하여 월동한 뒤 채종하는데, 늦게 심어서 채종해도 된다.

⑤ 양배추 채종

-춘파 채종 : 6월경 파종해서 10월에 모구를 고름 - 결구부를 잘라내고 그루터기내고 망실의 포트에 정식, 그루터기 액아에서 자란 부분에서 채종한다.

-하파 채종 : 7월 하순~8월 상순 파종하고, 12월~2월 모구를 골라 결구부를 자름, 망실재식, 주화경 채종

-추파 채종 : 9월 하순~10월 상순 파종하고 4월~6월에 모본을 고름. 결구부를 잘라내고 1~1.5달 동안 액아 생장 유도 3~4엽, 9월 액아 떼고 삽목 발근 유도, 정식 결구하면 결구엽을 자르고 망실에 정식, 다음 여름에 채종

-불결구 모본 채종 : 7월 하순~8월 상순 파종, 9월 중하순 정식 후 월동, 이른 봄에 결구엽 자름, 개화결실, 일대잡종 채종에 이용

⑥ 갓 채종

남부지방에서는 가을에 보통 때보다 한 달 정도 늦게 파종해 그대로 월동시킨 뒤 봄에 개화하면 채종할 수도 있고, 중북부지방에서는 이른 봄 3월 중하순경에 파종하면 채종할 수 있다.



2. 백합과 채소의 채종


1) 일반 특성

① 마늘은 인편으로 번식하고, 쪽파는 종구로 번식해 채종과 관련이 없다.

② 양파와 파는 아직 자가 채종을 많이 한다.

③ 파는 숙근성으로 종자나 분주로 번식할 수 있다.

④ 양파와 파의 화아분화 : 녹색식물 춘화형으로 일정 크기 이상 자란 묘가 일정 기간 동안 저온에 있으면 화아분화하여 고온 장일에 의해 추대 개화한다.

⑤ 파는 내한성이 강해 중부에서도 월동하지만 양파는 남부에서만 월동한다.


2)채종 재배 환경

① 격리 : 양파는 웅예선숙이며 곤충에 의한 타가수분을 많이 한다. 채종포는 교잡 위험식물에서 100m 이상 격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② 채종 적지 : 겨울에 너무 춥지 않고 개화 등숙기에 비가 조금 내리는 곳이 좋다. 비는 화분의 유실 및 수정력을 감퇴시킨다. 남부지방에서는 비닐로 비가림해서 재배한다.


3) 양파 채종

① 재배 및 모구 선발 : 일반적으로 8월 하순에 파종해 10월 하순에 정식하는데, 이때 묘의 굵기는 줄기의 밑동이 연필 굵기 정도가 좋다. 이보다 굵으면 겨울 동안 저온에 감응해 그대로 추대 개화한다. 알이 굵어지면 잎줄기가 쓰러지는데, 이때가 수확기다. 수확한 것 가운데 좋은 모구를 고른다.

② 모구 저장 : 모구는 5~6알씩 다발로 묶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여름을 난다.

③ 정식 시기 및 방법 : 10월경이 되면 싹이 나오는데, 이때가 정식 적기이다. 보통 고랭지는 9월 중하순, 따뜻한 곳은 11월경에 정식한다.

④ 개화 결실 : 모구를 가을에 정식하면 봄에 120~150cm의 화경을 추대한다. 화경의 끝에 화구를 착생한다. 양파와 파는 꽃과 종자 모양이 매우 비슷하다. 1개의 화구에 평균 750화를 착생한다. 종자는 모난 방패형으로 검은색을 띠며 약간 광택이 있다. 종자의 경제적 수명은 1년, 건조제를 사용할 경우 2년, 곤충에 의한 타가수분을 한다.


4) 파 채종

① 일반 채종법 : 보통 3~4월에 파종해 7~8월에 정식하는 파는 11월경에 수확할 때 좋은 모본을 선발해 채종포에 정식하고, 비배관리를 하여 다음해 4월 추대하면 채종한다. 정식은 폭 1.2m의 이랑을 만들고 포기 사이 20cm 정도로 얕게 심는다.

모본을 고를 때 외대파의 경우는 분얼하지 않고 연백부가 길며 순백색을 띠는 것을 우선으로 고르며, 잎파의 경우는 잎색이 알맞게 녹색을 띠고, 초장이 크고 끝이 뾰족하며, 분얼은 1주에 4~5본인 것을 고른다.


5) 부추 채종

① 부추는 2년생 포기에서 추대하는데, 꽃눈분화는 6월의 고온장일기에 진행되고 7~9월에 걸쳐 추대하고 결실한다.

② 부추는 주로 타가수분을 하므로 다른 품종과 격리된 포장이나 망실을 이용해 채종해야 한다.

③ 종자를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3~4년생 포기에서 채종하는 것이 좋다.

④ 채종 재배 : 4월 이후에는 잎을 수확하지 않고 두면 7월 하순부터 꽃대가 올라와서 8월에 개화하고 곤충에 의해 수분한다.


6) 수확 및 수확 후 관리

화구의 끝부분의 종자가 10~20% 정도 검게 변하기 시작할 때 맑은 날 꽃자루를 20~25cm 정도 베어서 5~6본씩 다발로 묶어 직사광선이 들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매달아 후숙한다. 7월 하순경 맑은 날 단시간 건조한 뒤 탈곡해 풍선한다.



3. 국화과 채소의 채종


1) 일반 특성

① 고온 장일에 의해 추대 개화한다.

② 자가수분이지만 타가수분이 가능하다.

③ 호광성 발아 종자이다.


2) 상추 채종

① 개화 결실

-꽃은 두상화로, 개화기간이 아주 짧아서 여름의 맑은 날은 30분 정도 개화하며 서늘하고 흐린 날이라도 2시간 정도만 개화한다.

-호광성 종자로, 품종에 따라 광발아성이 있다. 발아는 15~20℃가 적절하고, 27℃ 이상에서 고온휴면에 들어간다.

② 채종 재배 환경

-개화시기와 결실 : 파종 시기와 온도에 따라 다르며, 등숙기 18~23℃가 적온

-교배와 격리 : 자가수분하나 타가수분도 가능하므로 200m 이상 격리해야 한다.

-종자 성숙기에 장마가 오므로 비가림 재배를 해야 한다.

③ 채종 재배

-잎상추 : 2월 상중순 파종해 3월 하순~4월 상순에 정식하면 7~8월 추대한다.

-결구상추 : 정식해 7할 정도 결구할 때 구의 상부를 열십자로 갈라준다. 5~6일 후 다시 한 번 갈라준다.

⑤ 수확 : 탈립하기 시작할 때 베어서 7일 정도 후숙한 다음 탈립, 조제한다.


3) 우엉 채종

① 특성과 적지

-파종한 해에 장대한 직근이 발달해 월동한 뒤 추대 개화한다.

-표토가 깊고 지하수위가 낮으며, 개화기에 비가 적은 곳이 좋다.

② 개화 결실

-춘파하면 2년째, 추파하면 3년째 채종할 수 있다.

-호광성 발아 종자이다. 발아 적온은 20~25℃.

③ 채종 재배

-자가수분하나 타가수분도 가능하므로 500m 이상 격리해야 한다.

-2년째 채종법 : 봄에 파종해 가을에 수확하는 우엉 가운데 우엉의 뿌리, 잎, 줄기, 병충해 등 여러 가지 형질이 좋은 우엉을 골라 40~45cm 정도의 길이로 자르고, 채종포에 머리를 동쪽으로 해서 비스듬히 심는다.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모본을 움이나 땅속에 묻었다가 이른 봄에 정식하거나 비닐하우스 안에 정식했다가 봄에 비닐을 벗겨낼 수도 있다. 8~9월에 결실한다.

-3년째 채종법 : 가을에 파종한 것을 이듬해 가을에 수확해 모본을 선발하여 채종포에 심거나 저장했다가 이듬해 봄에 심어서 3년째 여름에 채종한다.

-수확 조제 : 9월 하순경 황숙하면 종자가 검은색으로 변한 것부터 수확해 조제하고, 정선해 햇볕에 말린다.



4. 명아주과 채소의 채종


1) 시금치 채종

① 특성 및 적지

-가시가 있는 각종자 : 동양에서 선발된 것으로 일찍 추대함

-둥근 환종자 : 서양에서 선발된 것으로 늦게 추대해서 봄 재배에 이용

-개화 결실 : 전형적인 장일성 식물로, 장일 조건에 의해 화성이 촉진되며, 유묘시기에 저온에 의해서도 개화가 촉진된다. 특히 시금치는 저온과 장일에 의해 화성이 유기되는 저온장일성 식물이다.

② 채종 재배 환경

-온도와 일장 : 10℃ 이하에서 견딘다. 생육 적온은 15~18℃

-교배와 격리 : 바람에 의해 타가수분한다. 다른 품종과 교작을 막기 위해서 적어도 500m 이상 격리해야 한다.

③ 채종 재배

-파종 : 시금치는 9월 상순~10월 상순이나 4월 하순~5월 상순에 파종한다. 따뜻한 곳은 3월 중순~하순에 파종한다. 봄에 파종하는 것보다 가을에 파종하는 것이 모주를 선발하는 효과와 함께 종자의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모본 선발 : 월동 후 봄에 다시 생육을 시작할 때 좋지 않은 개체들은 솎아내고 개체 간격을 20~25cm 정도 띠운다.

-채종 : 종자는 완전히 성숙하면 맑은 날 베어서 그늘에 말려 털고 정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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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전통농업위원회 구술취재팀은 전남 순천시 주암면에서 토종 갓끈동부를 재배하고 계신 조동영(63) 선생님을 만나 뵙고 갓끈동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조동영 선생님은 98년에 어렵게 토종 갓끈동부 종자를 구한 뒤, 지금까지 갓끈동부의 보급과 재배를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갓끈동부를 이용한 여러 식품도 함께 개발하고 계십니다.




갓끈동부 종자는 어떻게 구하셨나요?

얘기하자면 사연이 깁니다. 이걸 98년에 찾아서 99년부터 홍보에 들어갔죠. 갓끈동부를 찾게 된 계기는 이래요. 한 50년 전인데, 제가 10살 먹었을 때 선친께서 어디 다녀오시더니 동부 씨앗 두 알을 내놓으시면서 ‘이거이 갓끈동부라는 씨앗인데 꼬투리를 반찬으로 해먹을 수 있는 것이다’ 하셨어요. 그래서 장독대에 심었더니 발아가 돼서 넝쿨져서 올라가길래, 댓가지를 꽂아 놓으니 그걸 타고 올라 축 늘어지면서 익더라고. 그전에 보던 동부는 기껏해야 한 뼘 정도 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거는 4~50cm 늘어지는 것이 어린 눈에 희한했어요. 한참 늘어지고 있을 때 아버지가 반찬으로 먹는다고 하시면서 꼬투리를 뚝뚝 따시더만, 어머니한테 ‘생선이라도 있는가’ 하니, 갈치가 있다고 해서 ‘이걸 잘라서 넣고 볶아보소’ 했어. 그래서 이걸 점심 밥반찬으로 먹게 됐는데, 이것이 참 갈치 맛을 싹 빼가지고 씹히는 촉감이 보들보들하면서 아주 맛있어요. 그 맛이 머릿속에 딱 배겼던 것이요. 그걸 한 이년인가 심다가 말아 버렸어. 그래서 나도 잊어버리고 학교 다녔지. 이게 생긴 모양이 옛날 노인들이 쓴 갓끈을 보면, 구슬이 있고 조그만 막대기가 있고 또 구슬이 있고 그러잖아요. 갓끈동부도 그래요. 쭉 늘어져서 하나 들고 쭉 늘어져서 하나 들고, 그래서 갓끈동부라고 이름 붙인 것 같아요. 그런데 옛 문헌에는 그런 이름이 없어요. 우리 토종 종자 이름은 문헌에 별로 없어요. 중국말로는 강두라고도 그러고, 사전에는 광저기라고 나옵니다.

그것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은 것이죠. 그러다가 중학교 무렵인가 생물을 배우면서 식물의 생식 생장과 영양 생장을 공부하게 됐지요. 그때 생각이 난 게, 갓끈동부를 일찍 따내면 계속 꽃이 필 것이다. 작물은 생식을 하기 위해서 계속 꽃을 피우면서 열매를 맺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갓끈동부를 저는 과채류로 생각을 한 거예요. 그 이치를 알면서 그때부터 갓끈동부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여. 이것이 소득 작물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학교를 나와서 딸기를 내리 35년 동안 딸기를 했는데요. 그 기간에도 계속 갓끈동부를 찾으려고 했어요. 딸기가 남이 보기에는 낭만적이고 좋죠. 그런데 쪼그려 앉아서 일하기가 참 힘들어요. 그런데 갓끈 동부는 지주를 만들어 놓으면 잎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서서 작업을 해도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갓끈동부야말로 노령화 된 농촌에서 가벼운 노동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작물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찾았는데도 못 찾았어요.

그러다가 이것이 인연이란 것인지 아주 우연히 찾게 됐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다닐 수도 없는 것이고, 사람들만 만나면 ‘나는 갓끈동부를 찾아. 그걸 찾아서 홍보만 잘하면 소득 작물로 해서 쉽게 돈 벌 수 있는 것이 될거야’ 하면서 다녔죠. 그런데 작목반의 어떤 사람이 아주 진지하게 듣더라고요. 다음날 조합에 나가니까 그 사람이 와 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을 보자마자 제 입에서 이상하게 ‘자네 갓끈동부를 찾아봤는가’ 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 입에서 ‘예, 어르신. 어르신이 말씀하신 갓끈동부 나 봤소. 저 곡성의 산골짜기에 있습디다’ 하는 거야. 그런데 98년에 지리산에 폭우가 왔잖아요. 갓끈동부가 자라고 있는 곳이 도랑 가생이여서 떠내려갔는지도 모른다고 해요. 그래서 한 번 다녀와 달라고 했죠. 얼마 후에 와서 다행히 안 떠내려갔다고 하면서, 주인 할머니가 있길래 돈은 얼마든지 드릴 테니 잘 가지고 계시라고 했대요. 그래서 그해 가을에 씨를 구했어요. 그렇게 인연이 됐어요.


그럼 안 박사님 그때 종자 은행에는 갓끈동부가 없었나요?

있었을지 모르는데, 아마 한국에서 수집한 것이 아니라 중국이나 이런 곳에서 들여온 것이 아닐까 생각이 돼.


그럼 조 선생님 종자는 토종인가요?

그렇죠. 누가 육종한 것도 아닐 것이고, 용도를 모르는데 무슨 육종을 합니까. 용도를 알아서 사람 기호에 맞추기 위해서 육종을 하는 것이잖아요. 곡성에서 할머니가 가꾸는 것은 일종의 관상용으로 가꾸던 것이지. 그런 경우가 많아요. 할머니들이 재미로 해마다 심는 거예요. 그래서 시골에 가면 아저씨들은 종자를 잘 몰라. 아저씨가 아는 경우는 거의 드물고 95%는 아주머니들이 아셔. 그래서 토종 종자를 찾으러 갈 때는 아주머니들을 붙들어야 해. 너무 나이가 많으면 말이 통하지 않아서 안 되고, 한 5~60 되는 분하고 얘기하면 돼요.


갓끈동부는 어떻게 재배하나요?

녹음되지 않음.(부탁드립니다.) 줄로 유인할 때 지가 타고 올라가기는 하는데, 조금은 유인을 해줘야 해요.


수확량은 어느 정도인가요?

재 보지는 않았는데, 많이 나와요. 한 달 정도는 날마다 따 줘야 돼서 수확할 때는 다른 데 못 가죠.


언제부터 수확할 수 있나요?

파종을 5월 상순부터 시작해서 6월 하순까지 된다고 했어요. 여기는 7월 중순까지 심어도 가능해요. 그러니까 심을 때 한여름에 수확하도록 맞춰서 심으면 그때 수확할 수 있죠.


갓끈동부가 특별히 장점이 있나요?

제가 한의사한테 들은 얘기가 있어요. 그분 하는 말씀이 그래, 콩 두(豆)자를 한 번 보시오. 한문은 뜻글인데, 한 일(一)은 하늘, 입 구(口)는 인류의 입이요, 두 점 찍고 한 일(一)은 땅에 사는 인류의 입을 받쳐주는 것이 콩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인류가 콩만 먹고 살아도 뚱뚱해지지 않고 건강한 몸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것을 환으로 만들어서 파는데, 먹어 본 사람들이, 선생님 말처럼 아침 공복에 먹으니까 뱃속이 편하고 일을 해도 피로가 안 와서 좋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다이어트 하는 사람들이 이걸 먹으면 밥을 덜 먹게 됩니다. 그리고 군것질도 자연히 없어집니다.


옛날에는 갓끈동부를 어떻게 먹었나요?

이거는 채소처럼 먹는데, 주로 삶아서 먹었지. 서양 요리에 보면 채두라고 있어요. 그게 강낭콩인데 껍질이 연해. 갓끈동부도 그것처럼 먹는 거예요.


저기 있는 어성초 녹즙은 어디에 쓰시는 건가요?

이걸 어떻게 녹즙으로 만들기 시작했냐면, 갓끈동부를 기를 때 진딧물이 가장 성가십니다. 그런데 제가 근래에 자연농법 강의를 갔는데 강사가 하는 얘기가, 집안에서 화초나 채소를 가꿀 때 진딧물 때문에 힘들지 않냐고 해요. 그러면서 진딧물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비린내라면서 집에서 생선을 먹을 때 생선 씻은 물을 뿌려주면 진딧물 걱정 없다고 하면서, 풀 중에 비린내가 나는 풀이 있다. 그 풀을 즙을 내서 뿌려주면 생선 씻은 물하고 다름없다면서 어성초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구해다가 밭가에다 쭉 심었더니 효과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이걸 이용하기 시작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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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7일 흙살림 전통농업 구술취재팀은 경북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칠불사에서 자원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지난 세월동안 토종 종자에 관심을 갖고 전국을 돌며 종자를 모았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같은 곳 신흥리 호동마을이라는 곳의 작은 암자에서 60여 가지가 넘는 종자를 직접 가꾸며 보존하다가 올해는 잠시 절의 살림을 맡게 되어 씨만 받아놓고 있다고 한다. 토종 잡곡류와 채소류는 물론 각종 산나물이며 장뇌삼까지 직접 가꾸고 계신다.




언제부터 토종 종자에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까?

- 언제부터라기보다는 저는 이상하게 다른 것보다 토종이 제일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든 모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계속 찾았는데 못 찾다가 어떤 분이 안완식 박사님의 토종 종자에 관한 책을 주셔서 보게 됐지요. 이런 게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토종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다가 횡성에서 토종할아버지를 한 분 만났어요. 송내준 씨라는 분인데 지금 여든두 살이시죠. 나이는 많으셔도 어느 젊은 사람 못지않게 열정적이십니다. 그분한테 많은 걸 배웠는데, 그분은 자기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생각하는 사람이지요. 그분 생각이, 내가 안 먹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병에 안 걸리고 튼튼하면 그게 효자라고 생각하십니다. 산삼 씨를 석 되 뿌리면 자기는 서른 알만 먹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정신으로 토종을 지키신 거예요.

사실 우리나라에는 무궁한 자원이 있어요. 이 자원을 우리가 활용을 못하고 있지요. 절집에 팔만대장경이라는 방대한 경전이 있어도 제대로 쓰지 못하면 헛것이듯이 속가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것이 우리 주위에 있는데 우리는 눈이 밖에만 가있어요. 그러니까 진짜 보물은 놔두고 써먹지 못하고 있죠. 그걸 개발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거든요. 그래서 진취적인 사람이 해줬으면 좋겠는데, 사실 제가 스님만 아니면 하겠어요. 속가에 나가면 진짜 할 일이 많아요.

토종은 곡식의 기운이 달라요. 이건 조금만 먹어도 든든해요. 토종꿀 있죠. 진짜 토종꿀은 숟가락이 안 들어갑니다. 숟가락으로 퍼지면 토종꿀이 아니요. 토종은 그 정도로 야무니 그래서 약이 되는 겁니다.


외람된 질문이지만 스님이 농사짓는 것은 괜찮나요. 스님은 원래 탁발 같은 걸 하는 게 아닌가요?

- 그 얘기가 맞긴 맞는데, 중국에 백장 스님이라고 있어요. 일일부작이면 일일불식이라고, 하루에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말을 직접 실천하셨지요. 어느 날은 어른이 그러니까 밑에 사람이 피곤하잖아요. 그래서 밑에 사람이 호미를 감췄어요. 그러니까 공양에 안 나오셔서 도로 죄송하다고 내놨답니다. 사실 최근에 와서 그렇지 스님들도 자급자족을 많이 했습니다.

해인사만 해도 논이 200마지기가 넘어요. 그걸 다 모내기하고 나락을 베고 하면서 살았습니다. 지금처럼 이렇게 편하게 산 적이 없었어요. 저는 편하게 사는 걸 아주 싫어하거든요. 초발심자경문이라는 책에도 나옵니다. 춥고 배고플 때 도심이 일어나지 배부르고 등 따시고 편하면 결국 생각나는 건 짐승하고 똑같습니다. 그래서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정신이 썩어가는 거예요. 이미 성인이나 도인은 옛날에 다 나왔어요. 지금은 전부 껍데기밖에 없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하루에 2~3시간은 움직여야 된다고 생각해요.


토종 종자를 찾으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 고추냉이라고 있어요. 그걸 찾아서 울릉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같이 간 분하고 울릉도에 있으면서 잎을 그냥 따 먹었어요. 이 고추냉이는 면역성이 아주 강한 식물이에요. 고추하고는 달리 먹을 때는 입안에서 아리해도 위장에 전혀 부담을 주지 않아요. 그건 쌈을 싸먹어도 좋고, 피로 회복에도 그렇고, 탁한 기운도 아주 맑아져요. 그걸 갖고 울릉도에서 나왔는데 좀 죽였어요. 그때가 송이가 나올 무렵이라 포항에서 이런저런 일을 보고 바로 양양까지 오니까 열두시가 넘었어요. 자고나서 다음날 새벽같이 설악산에 송이 따러 올라가는 바람에 좀 피해가 컸죠. 그렇게 가지고 와서 심었는데. 몇 년째 잘 크고 있어요. 새끼를 쳐서 물이 없는 데까지 잘 번졌어요. 고추냉이는 서늘해야 되고, 항상 물기가 있어야 됩니다. 특히 물이 아주 맑고 차야 해요.

이걸 수경재배하고 있는 분이 평창에 한 분 계십니다. 이분이 그러는데 일본에서도 재배는 하지만 작답니다. 평창 거는 제가 봤는데 정말 크더군요.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가 토질이 좋고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맞구나 느꼈지요. 그분은 그걸 전량 일본에 수출한답니다.

이건 아주 고급 식당에나 가야 맛볼 수 있고, 시중에 나오는 것은 전부 화학제품이거나 겨자씨로 만든 것이죠.

그런데 정작 울릉도 사람들은 명이(산마늘)를 좋아해서 고추냉이는 잘 안 먹어요. 울릉도에서는 명이가 반찬으로 나옵니다. 이건 밭에 심어도 되는데 꼭 차광막을 씌워야 돼요. 이게 지리산에도 있지만 다시 울릉도에 가서 가져오고 싶어요. 그런데 제주도나 울릉도 같은 섬을 가면 섬에 있는 식물들은 번식력이 강하고 크기가 큰 대신 약효가 좀 떨어져요. 그래서 산마늘을 가져와서 심으면 약효가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안완식) 우리나라는 고추냉이가 적합한 곳이 많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울릉도의 선인봉 밑에, 또 지리산 같은 데도 깊은 계곡의 맑은 물이 계속 흐르는 그런 곳에 자랄 수 있어요. 이건 수변 식물 그런 종류예요. 그래서 물이 고여 있으면 절대로 안 돼고 항상 흘러야 돼요. 그건 이 식물의 뿌리가 굉장히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뜻해요.


- 그리고 지금 씨가 마른 것이 무어냐면 이건 오가피보다 약효가 50배나 되는데, 따뚜릅이라고 있어요. 우리는 보통 따뚜릅을 땅두릅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거랑은 다르죠. 그건 이런 산 밑에서는 안 자라고, 적어도 1000m 이상에서 자라요. 이 밑에는 아무리 가져다 심어도 안삽니다. 여기서는 아무리 많이 커봐야 10cm 정도죠. 이건 가시가 아주 촘촘해요. 이건 순도 먹고 줄기도 먹고 다 먹는데, 요즘은 산에 나무들이 커서 잘 안 커요. 그런데 이거를 몇 십 년 자란 것을 하루아침에 잘라버리니까 씨가 마르죠. 이게 지금은 없어요.

여기 지리산에 150년 된 것이 있었어요. 그건 제가 한의사하고 같이 가서 봤는데, 이건 앞으로 좋은 약재가 되겠다 싶어서 놔뒀거든요. 따뚜릅은 원래 별로 안 큰데, 이렇게 굵은 것이 가지가 땅에 닿아서 그게 또 자랐더라고요. 그런데 재작년에 어떤 사람이 아파서 그것 조금만 있으면 되겠다 싶어서 갔는데 새끼 하나 없이 다 캐갔어요.

지금 지리산에 가면 오가피가 많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가면 이걸 뿌리를 자르더라도 한 개만 자르고 살려놔요. 그리고 가지를 쳐도 한 개만 치고 살려주되, 주위의 장애물을 다 없애줘서 확실하게 살려놔요. 그런데 얼마 뒤에 가면 그것도 없어요. 싹 씨를 말린다고. 그래서 이거 참 보통일이 아니다 싶을 때가 있어요.


또 재미난 것이 있나요?

- 머루 있잖아요. 이 머루가 자연 머루라도 맛이 다 다릅니다. 빨간 게 있고 파란 게 있는데, 빨간 게 더 맛있어요. 또 들매라고 나물이 있는데, 이건 빨간 것보다 파란 게 더 맛있어요. 이건 나무인데, 나물 맛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산에서 자라는 나물 중에 개발딱지, 병풍대, 참나물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병풍대가 아주 맛있습니다. 산에 가면 잎이 쫙 퍼진 것이 있어요. 그게 병풍대인데 맛이 기막힙니다. 곰취, 개발딱지, 곤달비하고는 비교가 안돼요. 그건 재배해도 되요. 산나물은 전부 밑에서 재배할 수 있습니다.

금낭화도 아주 좋은 나물입니다. 그런데 그건 독이 있어서 물에 네다섯 시간 담가놨다가 데쳐서 먹어야 돼요. 그건 반드시 물에 우려야 됩니다.

우리는 요즘에는 알뿌리로 약을 하는 건 절대 안 캡니다. 백로가 지나야 손을 대지 그 전에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때가 되어야 겨울을 나기 위해서 뿌리에 양분을 저장합니다. 그래야 약효가 있지 요즘 캐면 별 약효가 없어요.

갑자기 이야기하라니까 답이 잘 안 나오네요. 더구나 올해는 선방에 앉아있다 보니 다 잊어버렸네요.


산나물 씨를 받아다 발아를 시킨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나요?

- 껍질을 한 번 벗겨내야 합니다. 옻나무가 발아를 시키기 어려운데 그것도 잘할 수 있습니다. 옻나무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약효가 더 좋습니다. 그래서 100년 넘은 옻나무는 산삼하고도 안 바꿔줍니다.


(안완식) 인삼 씨는 개갑처리를 한다고 해요. 인삼은 씨가 영글어서 따면 그걸로 다 영근 것이 아니라 후숙을 해야 돼요. 따고 난 다음에 후숙을 하는데, 이게 마르면 후숙이 안 돼기 때문에 축축한 모래에 넣어서 몇 달이 지나야 익어서 개갑이 된다고 해요. 그래야 제대로 싹이 나요. 이런 것을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고,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수백수천 년 동안 살아오면서 경험에 의해서 알아요. 그리고 목단이나 작약 같은 것은 아무리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도 그걸 봄에 옮겨 심으면 죽어요. 그런데 한 10월쯤에 심으면 그 다음해도 잘 자요. 왜 그런지 그 특징을 알아야 되는데, 그 식물은 가을에 뿌리가 내려요. 씨도 가을에 뿌려야지 봄에 뿌리면 죽어요.


올해는 토종 종자를 어디에 심으셨나요?

- 작년에는 한 60여 가지를 심었는데, 올해는 바빠서 그냥 씨만 가지고 있어요. 작년에는 비둘기나 꿩, 돼지들한테 많이 뺏겼는데, 저는 먹지는 못해도 토종 씨를 유지하는 것만 해도 성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가지고만 있으면 언젠가 누군가가 할 것이라고요.


거름 같은 것은 어떻게 하셨나요?

- 거름은 산에 가서 부엽토를 가져다가 만듭니다. 산에 올라가 올해 떨어진 낙엽을 걷어내면 좋은 게 나와요. 그걸 가져다가 바로 쓰지 않고 2~3년 묵히면 지렁이가 버글버글합니다. 그거하고 여름에 풀을 베서 모아놓고 덮어서 팍 썩힌 것을 쓰죠.


병은 별로 없었나요?

- 산에 있어서 그런지 병은 별로 없었어요. 그래도 병이 생기긴 하는데, 초기에 잡아요. 저는 설탕하고 약초를 배합하거나 아니면 그 식물 근처에 있는 걸 뽑아서 효소를 만들어서 써요. 중요한 것은 비가 오면 쓸려가니까 비오고 나서 또 쳐야 돼요.

작년에는 콩 노린재 때문에 고생했는데, 그래도 씨는 받아야겠기에 충약을 사다가 한 번 쳤어요. 그런데 별로 효과도 없었어요. 그래서 목초액을 한 50배로 해서 쳤더니 해결됐어요. 그 뒤에는 잿물하고 소금을 섞어서 쳤더니 아주 효과가 좋았어요.


긴 시간 동안 취재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요즘 머릿속이 복잡해서 제대로 답도 못해드렸습니다. 언제 한가할 때 오셔서 더 많은 얘기를 나눴으면 좋겠네요. 올해는 밭에 농사도 못 짓고 씨만 받아 놓은 상태인데, 내년에는 꼭 다시 심어야죠.





수원군 일왕면日旺面 이목리梨木里 구역장 유재택劉載澤


밀 사이짓기 콩과 콩 홑짓기 재배법


밀 씨뿌리기 : 음력 8월 25일(250평)

거름 : 두엄 소 6바리, 똥재 소 1바리. 화학비료는 안 줌. 3일 전에 나르는데, 하루 걸린다.

씨앗은 4되(250평에). 똥재 1바리와 씨앗을 미리 섞는다.

쟁기질 : 네번갈이

두엄은 밭을 갈기 전에 뿌린다. 소 한 마리가 끌고, 남자 1명이 개량 쟁기로 먼저 두둑을 만든다.

씨뿌리는 방법 : 고랑에 2줄로 점뿌림한다. 고랑과 고랑 사이는 120cm.

보리에 이어짓기 하는 콩을 4줄로 점뿌림하는 방법처럼 옆으로 서서 발뒤꿈치(오른발)로 구멍을 파고, 거기에 똥재와 씨앗을 섞어서 한 손에 쥐고서 한 번에 두 구멍씩 떨어뜨린다. 옆으로 나가며 왼발로 흙을 덮으면서 나간다.

250평의 일을 하는 데 하루 걸린다.

밀‧보리를 두번갈이하고 씨뿌리는 경우에는, 고랑에 화학비료를 뿌리고 고무래로 고랑을 펀펀하게 하는데, 씨앗을 줄뿌림한 위에 두엄을 덮는다. 보통 흙을 덮을 때 두엄이 덜 썩었으면 흙만 덮는다. 옛날처럼 한번갈이를 할 경우에는 똥재에 씨앗을 묻혀서 심고, 고무래로 흙을 덮는다.


사이짓기하는 콩 심기 : 음력 4월 하순. 호미로 심는다. 2줄 점뿌림하는데, 파종량은 2되.

한 구멍에 3~4알, 250평 일하는 데 하루 걸린다.


밀 수확 : 음력 5월 하순, 그때 콩은 15~18cm이다.

밀 베기 : 이 사람 혼자서 0.8일, 2바리, 35단이 나온다. 다음날 0.3일 걸려서 나른다.

낟알떨기 : 다음날 이 사람이 도리깨로 2시간 동안 한다. 수확량은 5말(1섬에 16엔), 밀짚은 3지게(1지게 23단, 1지게는 30전)

밀을 쓰는 곳 : 집에서 먹는다.

밀가루 만들기 : 여자 1명이 하루에 1말5되의 밀가루를 만든다.


사이짓기 콩 관리

첫 번째 김매기, 밀을 베고 다음날 남자 2명이 하루 걸림.

두 번째 김매기, 음력 6월 20일 남자 2명이 하루 걸림.

세 번째 김매기, 음력 7월 20일 남자 2명이 하루 걸림.

수확 : 음력 8월 하순. 베는 데 이 사람이 0.7일. 지게로 운반(3지게)

낟알떨기 : 다음날 여자 1명이 도리깨로 1.2일 걸린다. 수확량은 3말5되, 콩대는 1지게가 조금 안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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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전통농업위원회 구술취재팀은 지난 6월 20일 강원도 평창 약물산 토종농장에서 서리태, 쥐눈이콩, 찰기장 등 잡곡류 80종류를 재배하고 있는 이기철(57세) 선생을 만났다. 이 분은 평창에서 태어나 농사를 짓다가 5년 정도 사업을 하기 위해 상경, 80년부터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때부터 토종종자 보존과 교육․홍보에 뜻을 두고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97년에 농어업인대상을 받았고 신지식농업인상도 받았으며 한국농업전문학교 현장교수도 역임했다. 주요 생산품은 찰기장, 찰현미, 찹쌀, 흑미, 자광미, 오리쌀, 맛쌀, 찰옥수수, 서리태, 붉은팥, 쥐눈이콩, 메주콩 등이다.




- 먼저 반갑습니다. 저희는 흙살림 전통농업위원회 구술취재팀입니다.

= 멀리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네요.


- 전통농법 취재에 선생님을 추천받았습니다. 토종종자를 많이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 예, 몇 가지 있어요. 지난해에는 서산에 수수를 공급했지요. 수수 중에 키가 작은 종자가 있는데 그것이 가을이 되니 빨갛게 익으면서 새도 오고 해서 보기 좋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올해는 청주에도 수수를 공급해주고, 문경에는 조를 공급했어요.

 수수가 종자만 해도 80~90 여 가지가 있어요. 빗자루 만드는 수수도 따로 있구요. 빗자루 만드는 수수는 모양은 좋은데 수확은 별로래요. 어떤 종자는 달리면서 꼬부라져요.


- 재미난 것이 많네요. 그럼 수확은 어떻게 합니까?

= 이게 꼬부라지면서 거리가 생겨요. 그걸 베서 걸어요. 그리고 일반 먹는 건 장목수수라고 해서 중국에도 있는데 이게 맛이 제일 좋아요. 그런데 키가 커서 바람에 넘어지고 해서 그걸 많이 안 심고, 현재 우리가 먹는 것은 단목수수를 많이 심어요.


- 단목수수는 키가 얼마나 작습니까?

= 한 키가 안 돼요.

 그리고 호랑당콩 이라고 해서 중국에서 나오는 알록달록 한 것이 있어요. 이거를 울타리 에 쭉 심어요. 콩이 크고, 꽃이 빨간데 껍질이 호랑이처럼 알록달록 하다고 해서 호랑당콩 이라고 해요.

 울타리콩 이라는 건 과거에 울타리에 넝쿨이 뻗어 올라가는 걸 몽땅 울타리콩 이라고 했어요. 그 중에 알록알록 한 것도 있고, 빨간 것도 있고, 자주색도 있고, 약간 긴 것도 있고, 한 30 여 가지 있는데 여러 가지가 있죠. 지금 까치콩 같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없어졌어요. 아주 옛날부터 있던 것인데 그게 소득이 안 돼서 그렇죠.


- 왜 그런가요. 소출이 적은가요?

= 소출이 적은 것보다 한 사람이 몇 만 평해서 쫙 해야지 그건 울타리에서 하나 영글면 따고 하나 영글면 따고 그래서 안 하죠. 울타리콩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콩은 영글면 껍칠 채로 따요. 그래서 껍질을 까면 심이 나오는데 그걸 마늘쫑처럼 그냥 기름에 볶아서 양념해 가지고 껍질 채로 먹어요. 그걸 까치콩이라고 해요.

 그 다음에 조개콩 이라고 해서 조개처럼 납작해가지고 조개가 혓바닥 내미는 것처럼 나오는 것이 있어요. 그게 조개콩 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껍질 채로 먹을 수 있어서 여러 가지 요리가 나와요.


- 지금도 재배하나요?

= 재배하는데 외국에 가도 찾아보기 어려워요. 국내와 중국에만 있는 것 같아요. 조개콩은 자주색이 나고 모양도 예쁜데 한군데에 50 ~ 60개가 열려요. 달린 다음 한꺼번에 여무는데 꽃도 자주색, 줄기도 자주색, 열매도 자주색, 알맹이도 자주색인데 관상용으로 좋죠. 하나를 심으면 담 하나를 다 덮을 정도로 왕성해요.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잘 여물지가 않고 계속 잎사귀만 뻗어가고 꽃만 피지 여무는 시기가 늦어요. 그래 그게 작년까지 있었는데 작년에 열매를 늦어서 못 따서 없어졌어요.


- 그럼 종자은행에도 없나요?

= 네. 그래서 그거를 중국이나 그 쪽에 가면 있지 않을까 해요. 옛날에도 이 지역 1개 군에 한 두 군데 있을까 말까 했어요.


- 다른 지방에도 없나요?

= 다른 지방은 다녀보지 않아서 모르죠. 외국에는 없어요.


- 외국에는 자주 다니시나요?

= 일 년에 두 달 정도는 종자도 구하고, 일도 볼 겸 나가죠.


- 그럼 일 년에 한 번씩 선생님 찾아뵈면 좋은 얘기 듣겠네요. 얘기를 들으니 할아버님 영향을 많이 받으신 것 같은데, 할아버님 얘기 좀 해주실 수 있나요?

= 할아버지는 이조 말에 벼슬하다가 일정 때 수배가 내려서 진안 용담군에 숨어 사시다가 만주로 가셔서 독립운동 하면서 한약방을 차리셨어요. 약방을 차리시니까 거기가 독립군 운동 본거지가 된 거래요. 그러다가 해방이 돼서 들어오시니까 땅이 있나 집이 있나 해먹을게 없어서 떠돌이 한의원으로 전국을 다니시다가 여기서 자리 잡은 거래요. 여기 오시니까 그때부터 전국에서 손님이 오는 거래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심부름을 했어요. 약을 만들어 봉투에 담고, 약을 썰으라면 썰고, 산에 약을 캐러 가시면 따라가서 약을 캤지요. 할아버지께서는 평생을 그렇게 사셨어요.

 할아버지께서 뭐라고 하셨냐 하면 곡식으로 약이 되는게, 예를 들어서 수수는 칼슘이 풍부하기 때문에 옛날에 애기 백일 때 수수떡을 해주잖아요. 돌 때도 해주고. 붉은 색은 액을 물리친다고 해서 그렇다는데 그게 수수는 칼슘이 풍부해서 애들 뼈가 자라는데 최고 필수 보약인 원리래요. 애들 이유식에 반드시 수수가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수수는 그런 식으로 작용한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안 거죠.

 그 다음 검은색은 노화를 방지하고, 붉은 색은 또 심장을 건강하게 한다고 하시고. 그러다 보니까 할아버지가 설명하신 대로 심은 거지요. 그렇게 조금조금씩 심어가지고 온 몸은 힘들어도, 도시민들 견학오고 이런 식으로 운영했어요. 지금은 집사람도 나가있고 혼자 운영하기 힘들어서 회원제로 몇몇 나눠주고 해요.


- 그럼 회원들이 종자 보존회 식으로 있는 건가요?

= 예, 우리가 봄에 종자를 나눠줘서 심고 가을에 수매를 해요. 그래서 그거를 가공하고 포장해서 판매를 해요. 이건 하나의 보존차원에서 하기 때문에 큰 영리가 안 되니까 국가에서 지원해주고 지자체에서 지원을 해줘요.


- 현재 농장에 주력이 있고 보조가 있겠지만 몇 종류나 하시나요?

= 곡식류는 한 100여 가지 하고, 풀․약초류를 100여 가지 하고, 나무를 한 300여 가지 해요. 한 두 그루만 심어서 보존하는 거래요.

 그리고 귀리 있잖아요. 현재 식용 귀리는 남한에서 재배를 안 하고 있어요. 사료용만 재배하지.


- 식용과 사료용이 종자가 다른가요?

= 다르죠. 식용 귀리는 이북 함경도 쪽에 있을 거예요.


- 운영하고 계신 농장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 제가 한 4만평 정도 농사를 짓고, 임야는 7만평 정도 됩니다. 주 작목은 흑미, 자황미 이고, 보라밸리 라는 감자와 야콘,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죠.


- 보라밸리는 일반 감자와 특별한 차이점이 있나요?

=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좋다는데 저희는 녹즙용으로 써요. 자주감자로 개량한 건데 자주감자랑 다르게 속까지 보라색 이래요.


- 보라밸리는 특징이 무엇인가요? 수확이 특별히 많은가요?

= 수확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 옥수수는 어떤 종류가 있나요?

= 옛날 재래 찰옥수수 하고, 두메 찰이라고 해서 강원도에서 개발한 찰옥 2호가 있고, 그 다음에 알록알록한 것이 있어요. 보라색 나고 빨간색 나고 하얀색이 섞인 게 있고, 그 다음에 빨간색이 있어요.


- 이 옥수수들은 선생님이 다 개량하신건가요, 아니면 원래 있는 종자인가요?

= 아니요. 옥수수는 교배를 잘 이뤄서 돌연변이가 나와요. 자기가 원하는 걸 다 만들 수 있어요.


- 옥수수 종자는 어떻게 유지합니까?

= 어떻게 하냐면 예전에는 가리왕산에 차를 가지고 올라갔어요. 봄에 콩이나 옥수수를 가지고 깊숙한 곳에 가서 개간해서 풀 뽑고, 가지고 간 헌비닐 덮어 놓고 옥수수를 심는다고, 그럼 가을에 가면 짐승이 따먹고 사람이 따먹고 해도 종자보존이 되는거죠. 지금도 그렇게 하는데 원체 입산을 못하게 하니까 격리를 못해요. 그래서 봄에 산나물 뜯으러 가서 하는 경우도 있고 허가를 받아서 가는 경우도 있고 해요.

 그리고 자광미도 돌연변이래요. 이게 종자가 개량돼서 나온 게 아니고 아무 논이나 외국도 마찬가지고 자생을 해요. 이게 원원종이거든. 벼를 베거나 차를 끌고 다니다 보면 똑같은 벼 중에 이삭이 크다든지 색깔이 다르면 그걸 채취를 해요. 그걸 가지고 와서 스티로폼 상자에 재배를 해요. 한 이삼년 재배해서 종자가 고정이 되면 논에다 심는 거죠. 이걸 좀 더 깎으면 흑미와 마찬가지로 흰쌀이 나와요.


- 기장은 어떻게 농사를 지으십니까?

= 기장은 모종으로 해도 잘 살고 농사짓기도 쉬운데, 가장 어려운 게 새가 잘 먹어요. 새를 쫓을 수 있는 방법만 있으면 기장은 성공해요. 그래서 우리 같은 경우는 만 평 정도를 하늘에 1미터 간격으로 줄을 매가지고 깡통을 달아서 사람이 지키죠. 허수아비도 필요 없고 총을 쏴도 필요 없고 다 필요 없어요. 직접 쫓아도 사람이 와서 쫓을 때 뿐 이래요. 콩새라고 해서 요래 작은 그 새가 기장을 전문으로 먹는데 덤불 밑에 살아요. 옛날에는 찔레 열매를 먹고 살았는데 요즘은 찔레 열매가 얼마 없잖아요. 이 새가 없어졌는데 기장만 심으면 어디서 나타나는지 몇 백리 밖에서 날아와요. 이 새가 쫙 날아오면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날아와요. 그래서 못 심어요.


- 기장하고 조는 어떻게 다릅니까?

= 기장은 이삭이 벼이삭 같은데 조는 완전히 틀리죠. 색깔은 둘이 똑같은데, 알이 기장이 좀 굵어요.


- 깡통을 매달면 새피해는 어느 정도 막나요?

= 그래도 한 50% 정도래요.

 기장이 그렇고 그 다음에 곡식 중에 메조가 지금은 귀해요. 왜 그런가 하면 찰진 것은 소화도 잘 되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데 메곡식은 안 그래요. 그런데 소화가 잘 된다는 건 빨리 분해된다는 얘기래요. 그럼 별 기능을 못한다는 거예요. 그래 약으로 쓰는 건 메옥수수, 메조, 메기장 이죠. 근데 지금 메기장은 세계적으로 없어요. 중국 쪽에 있다고 해서 알아봤는데 없어요. 종자은행에 수십 번을 드나들어도 메기장을 못 구했어요. 메수수는 제가 종자은행에서 얻어다 심었는데 10알 주더라구요. 10알을 심으니까 3알갱이 나와요. 이게 오래 묵어서 그런 거래요.


- 그럼 지금 메수수는 얼마나 퍼트리셨나요?

= 우리만 보존 하고 있어요.


- 판매는 하고 있습니까?

= 판매는 안 하죠. 대학교 연구하시는 분들이 가끔 연락이 돼서 오면 파는 경우는 있어요.


- 선생님 그럼 종자 얘기 좀 더 해주시죠. 어떤 종자를 어떻게 보존하고 보급하시는지요.

= 붉은 팥을 동지에 액운을 물리친다고 죽을 쑤어 먹잖아요. 그런데 점쟁이들이 점을 칠 때도 이거로 쳐요. 그런데 원래는 용의 눈알 이라고 하는 팥으로 점을 치는 거래요. 용의 눈알이 알록달록 하답니다. 그래서 이걸 용의 눈알이라고 하는데, 이걸 던져서 하얀 알하고 빨간 알 중 많이 나오는 걸 보고 점을 한답니다. 그리고 팥으로 점을 하는 건 장래를 보는 게 아니고 귀신하고 관계되는 점을 할 때만 팥으로 하는 거래요. 그런데 아무거나 다 붉은팥으로 하는 건 다 가짜래요. 그런 데로 무지하니까 그래요. 그런데 용의 눈알이 시중에서 인기가 없는 이유는 붉은팥으로 음식을 하면 붉어져야 하는데 흰 게 섞여서 붉어지지가 않아서 그래요. 실질적으로는 유래도 깊고 토종이고 좋은데 먹는 사람 선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


- 맛도 더 좋은가요?

= 맛도 더 좋아요. 거뭇거뭇한 것도 있는데 그걸 용의 눈알 재팥 이라고 해요.

 그리고 그루팥이라고 있어요. 보리를 심고 나서 후작으로 심는 팥이래요. 늦게 심는다는 거죠. 그루팥은 하지 지나서 심어요.

 그 다음 이팥이 있어요. 이건 몸이 붓거나 신장하고 관계있는 병에 특효약 이예요.


- 이팥의 이가 무슨 뜻인가요?

= 글쎄요. 옛날부터 이팥 이라고 해서 잘 모르겠는데 쌀 같이 생겨서 이팥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게 하얀 게 있고 빨간 게 있는데, 빨간 게 약이 된대요.

 그 다음에 약콩․쥐눈이콩․서목태 라고 하는 게 있는데, 이걸 가장 흡수하기 좋은 법은 현미식초에 삼 사일 정도 담가뒀다가 냉장고에 넣어놓고 하루 20알 씩 먹으면 콜레스테롤이 내려간다고 하죠.

그 다음 대표적인 울타리콩은 약간 갈색이래요. 그리고 그보다 진한 색을 밤콩이라 하죠.

또 푸른색이라서 청태라 하는 콩가루를 내서 먹는 콩이 있어요. 토종 찰콩은 떡에 넣거나 엿 해먹을 때 쓰는 거구요. 그 다음에 아주까리콩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건 강정해서 먹어요. 콩도 이렇게 용도가 다 틀려요. 그 외에도 수십 가지가 있어요.


- 콩 종자만 몇 종류를 가지고 계신가요?

= 콩이 한 47가지 정도 돼요.


- 모두 토종인가요?

= 다는 아니래요.


- 다양한 종자를 보존하는 일이나 교육사업을 하시는 일이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 그래서 항상 차에 가지고 다니고, 이전에 살림집 보면 천장에 달아놔요. 왜 그렇게 하냐면 과거에는 종자를 처마에 달아놨어요. 종다래끼라고 하죠. 종자를 담는 다래끼라고 해서 종다래끼라고 했는데 거기에 담아서 사방에 매달아 뒀죠,

 그리고 예전부터 내려오는 말에 씨앗을 뿌릴 때 넙적한 그릇에 담아서 뿌리면 안 된대요. 그래 오목한 그릇에 담아서 뿌려야 결실이 잘 된다 해서 꼭 종다래끼에 건사를 했어요. 거기에 건사를 하면 통풍이 잘 되잖아요. 메주도 마찬가지고 모든 것이 짚을 가지고 이용했어요. 감자도 보면 짚에서 균이 나와서 감자가 더 잘 돼요. 그래 농업에서는 짚을 이용하는 게 많아요.

 그리고 아까 옥수수 얘기했는데 옥수수를 하짓날 아침에 심으면 결실이 되고, 오후에 심은 것은 결실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절기를 중요시 했잖아요.

 그리고 입하가 지나서 낱알을 뿌리는 건 비렁뱅이 팔자라고 해요. 입하 전에 모든 곡식이 땅 속에 다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요즘은 온실이니 뭐니 해서 많이 바뀌었지만 실질적으로 그래요. 이게 그렇게 심는 시기도 틀리고 거두는 시기도 다 틀리죠.

 나는 이걸 돈을 목적으로 하는 건 아니고, 하나의 취미하고 사명감, 그러니까 자부심이지. 내가 토종잡곡으로다가 신지식인농업상을 받았거든요. 그게 토종잡곡으로 우리나라에 제일 유명한 사람이다 하는 건데 내가 저걸 받아놓고 지금은 안 한다고 하면 하나의 사명감을 잃어버리는 거죠. 이걸 하면서 지금 뭘 느끼냐면, 지금 옆에 하우스 작업을 하는 곳에 전통 농기구를 전시할거래요. 여기서 학생들을 데려다 체험학습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몇 개 안 돼서 나머지는 구경만 해요. 그래서 몇 명이 체험하는 동안 나머지는 전시관을 보고, 돌아가면서 체험할 수 있게 하려는 거죠. 요즘 체험학습이라고 해서 박물관을 가는데, 다 유리관 속에 진열만 해놓고 만지지도 못하게 하고 그냥 노천에 놔두고도 만지지 말라고 하죠. 그게 무슨 체험학습 이예요. 그건 견학이지.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실제 학생들이 해봐야 하는 거죠.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해 볼 수 있게 자꾸 준비하는 거예요.

 종자 같은 경우 원칙적으로는 완전히 말려서 진공포장 해서 냉동실에 보관해야 하는데 이거는 그냥 샘플로 학생들 오면 보게 하죠. 학생들이 연수를 들어오면 큰 마루에 한 삼 백 가지 진열을 해놓고 내가 가운데 서서 짚으면서 설명을 해줘요.


- 선친께 농사를 많이 배우셨다고 하셨는데 전통농사법을 쓰고 있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 저희는 유기농을 하기 위해서 차광막을 풀이 나온 다음에 헛골에다 깔아요. 남들은 제초제를 써서 죽이는데 우리는 제초제를 안 쳐요. 그런 쪽으로 하기 위해서 풀 잡는데 저걸 쓰는 거래요. 저게 돈이 많이 들어서 도하고 군하고 농림부에 얘기를 해서 보조를 받아가지고 우리가 평창군 전체에 나눠줘요.


- 차광막은 폭이 얼마나 되고 어떻게 사용하시는 건가요?

= 55센치 정도 되는데 그걸 고랑에 깔면 나온 풀은 죽고, 풀이 나오지 않죠. 한 10년 정도 쓸 수 있어요.


- 보온덮개는 어떤가요?

= 보온덮개는 무겁고 말아서 보관하기 어렵고, 비가 오면 무게가 많이 나가잖아요. 차광막은 그런게 없어요. 가벼워서 풀이 안 눌릴 것 같지만 나일론이라 열을 받아서 저절로 풀이 삭아요.


- 전통농법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가요?

= 전통농법은 김을 매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시골에 김을 맬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제초제를 친다 이거예요. 제초제를 치면 토양 버리죠, 농산물 버리죠, 몸 버리잖아요. 그러니까 그 대용으로 저걸 쓰는 거죠. 전통농법으로 농사짓는 것은 다 개량됐다고 봐야죠.

그래도 우리는 옛날처럼 소로 가는 건 아예 못 하지만 파종하는 건 종다래끼에 씨앗 넣어서 하는 경우는 더러 있어요. 그거하고 괭이로 묻는 건 마찬가지로 해요. 그리고 수확은 도리깨로 떠는 것도 마찬가지로 하죠. 다만 과거에는 산에서 풀을 베어서 퇴비를 만들어서 썼는데 현재는 사다가 쓰는 건 달라졌지요.


- 잡곡 농사를 지을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 채소는 기계화가 됐는데 잡곡은 손으로 해야 하는 것이 어렵죠.


- 잡곡을 심을 때는 비닐을 깝니까?

= 비닐을 안 깔죠. 뭐 전통적으로 비닐을 안 깔고 심었으니까 전통방식으로 하는 거죠. 예를 들면 배추 같은 걸 비닐을 안 하고 했을 때는 병충해도 많고 잘 자라지 않는다구요. 상품가치는 떨어지는데 비닐을 깔고 화학비료 주면 배추가 맛이 없듯이 그래요.


- 그럼 어떤 식으로 농사를 지으시나요?

= 콩농사 같은 경우 먼저 콩을 골에다가 심고 풀이 첫 번에 나오면 비가 온 다음에 인걸이로 끌어서 그 흙을 양쪽 가로 넘겨요. 콩이나 옥수수는 반드시 복토를 해줘야 돼요. 그렇게 흙이 넘어가면 골이 반대로 되잖아요. 그 다음에 아이김을 맨다고. 왜냐하면 콩씨를 7~8개 씩 들어간 걸 세 개씩 남겨놓으려면 솎아야 되고 없는 데는 모종을 하고. 그렇게 하고 나서 풀이 약간 날 때 차광막을 깔아요. 골 넓이가 보통 70센치 정도 되는데 55센치 깔거든요. 그럼 한 10센치가 남잖아요. 남는 곳이 콩이 있는 자리예요. 포기 사이에서 풀이 나긴 더러 나지만 그때는 콩이 이기죠. 콩은 그늘을 많이 지기 때문에 금방 풀이 자라지 못해요.


- 처음부터 고랑에다 차광막을 깔고 심는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그럼 인걸로 골을 먼저 치고 애벌 김매기 하고 솎아 줄 거 솎아 주고 저걸 까는 거군요. 수확할 때는 도리깨로 하고요.

= 예, 그렇죠.


- 콩농사에 대해서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 콩은 파종 적기가 제일 중요해요. 5월 10일에서 25일 사이에 심어야 하죠. 이건 전국이 거의 비슷한데 남쪽 같은 경우는 5일 정도 늦어도 괜찮지요. 콩을 이때 심는 이유는 너무 일찍 심으면 냉해를 입고 장마 지나서 꽃을 피게 해야 돼서 그래요. 장마 때 꽃이 피면 수분이 안 돼요. 완두콩은 냉해 피해가 없어서 일찍 심어도 괜찮아요. 올콩과 늦콩은 심는 것은 같은데 일찍 거두냐 늦게 거두냐 하는 수확 시기에만 차이가 있어요.

 다음으로는 순지르기가 중요해요. 보통 본잎이 6잎 나올 때 순지르기를 해주는데 많이 심으면 일일이 셀 수가 없으니 그냥 파종하고 2달 지나서 무조건 낫으로 대가리를 치죠.

 그리고 콩에는 밑거름으로 유기질 퇴비를 줘요. 축분은 질소질이 너무 많아서 안 돼요. 보통 300 평당 2톤 정도 주고 거기에다 콩 전용 복합비료를 주는데 이건 300 평당 6포를 줘요. 복합비료를 주면 무농약 인증은 되는데 유기농 인증은 받을 수 없어요. 거름은 전년도에 고추나 배추를 키워서 거름을 많이 준 밭이면 유기질 퇴비는 안 주고 복합비료만 줘요.

 콩은 되도록 육묘를 하는 게 좋아요. 육묘를 하면 인건비도 줄이고 김도 덜 맬 수 있어요. 여기서는 35일 동안 육묘를 하는데 직파를 하면 35일 지나서 김을 매야 하는데 육묘를 하면 그 수고를 안 해도 되니까 인건비도 줄고 좋죠. 그리고 모든 곡식은 비닐 멀칭을 하면 두둑에 심고 안 하면 골에 심어요.


- 토종종자들을 수집이나 보관은 어떻게 하셨나요? 조부님께 받은 것이 많은가요?

= 그렇죠. 거의 다 받은 거죠. 어머니 계실 때는 옥수수만 해도 한 50가지 심었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죠.


- 이 일을 하시면서 귀찮게 여러 가지를 하냐, 크게 하나만 하면 돈 벌텐데 하시지는 않나요?

= 왜요. 지금도 다 그러죠. 식구들이 반대를 하지만 지금은 많이 따라와요. 그리고 학생들이 와서 신기해하는 걸 보면 기분 좋아요.


- 지금 이 일을 거의 혼자 하시다시피 하는데 뜻있는 사람이나 뜻있는 단체와 같이 종자를 보존하는 일을 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혹시 그렇게 하고 계신 분이 있나요?

= 현재는 두메농산물 생산자 협회라고 해서 조직이 있어요. 한 52농가가 있어서 그 분들이 우리가 종자를 팔고 그 사람들이 사다가 심어가지고 여기서 수매해서 포장해서 팔아요. 그러다 보니까 한 사람이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지 않고 몇 가지씩 다 가지고 있죠.


- 다른 지역에도 종자를 보존하는 분들이 계신가요?

= 그쪽에는 없어요.


- 이 지역에서 농사가 안 되는 종자도 가지고 계신가요?

= 농사가 안 되는데 가지고 있을 수가 없죠. 곡식류는 안 되는 데가 없어요. 채소류가 안 되는 게 많아요.


- 작물 외에 가지고 계신 것 중에서 소개해 주실 만한 것이 있나요?

= 골담초 라고 있는데 그게 신경통에 좋은 약초래요. 

 자작나무는 나무를 삶아서 먹어도 좋고, 잎사귀를 나물로 먹어도 위에 좋고, 물을 받아먹는게 위장병에 특효죠. 특히 곡우날 받는게 좋아요.

 산마늘은 뿌리가 아니라 잎을 먹어요. 항암 작용이 있다고 하죠. 이게 몇 백 년이고 크는데 뭐가 문제냐면 한 알 심으면 2~3년 있다가 새끼를 피는데 그럼 잎사귀 3개 중에 하나를 따야지 그 이상 따면 열매가 안 달려요. 이걸 심기 위해서는 8년 정도는 농약이나 비료를 주면 안돼요. 그래서 산 같은 데서는 된다는 거죠.

 질경이 있잖아요. 질경이 씨가 약명으로는 차전자 거든요. 세계적인 보약 중에 최고 보약이래요. 질경이씨를 장복으로 하루 한 스푼 정도 가루를 내서 먹으면 무병장수 한다잖아요. 가장 좋은 약품인데 지금은 가장 천대를 받고 있어요. 사람이 연명하던 음식인데 너무 먹어서 이제는 지겹다는 거죠. 요즘 사람들은 좋다하면 먹잖아요. 지금 내가 그걸로 개발해서 이게 좋다하면 너도 나도 먹을 거래요. 요즘은 모든 게 유행이잖아요. 병도 유행, 음식도 유행, 약도 유행.


- 마지막으로 할아버님에게 배웠다는 내용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할아버님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먹는 것으로 고쳐야한다 하셔서 종자를 보존하셨던 이야기 좀 해주십시오.

= 옛날에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는 맥을 본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절대 맥을 짚지 않아요. 왜 맥을 안 짚냐고 하니 당시는 버스가 없어서 걸어오잖아요. 걸어오고 긴장한 상태에서 맥을 보면 맥이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아서 오진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 다음에 환자 얼굴을 봐요. 흰색이냐 검은 색이냐. 그 다음에 손가락이 기냐 짧으냐 그게 체질상 뭐다 하시면서 그걸로 판단을 다 해요.

 그리고 항시 할아버지는 걷는 걸 강조하셨어요. 그 다음에 약을 주면 먹지 말라는 것이 있어요. 콩이나 메밀음식이 그래요. 메밀은 보약이 되는 게 아니라 독약 이래요 메밀이 속을 훑어 내려서 그렇다고 해요. 또 술은 알콜기가 피가 흐르는 양을 조절하지 못하게 한대요. 소고기는 괜찮은데 돼지고기, 닭고기는 절대 먹지 말라고 하시고, 담배 태우지 말고 우유 마시지 말고 이러면 무병장수 한다는 거예요. 이 다섯 가지만 가려도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단백질이 풍부한 걸 먹지 말라는 건 단백질은 모든 병의 먹이가 된대요.

 메밀음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무를 먹으라고 하셨죠. 왜냐하면 메밀의 독을 해독하는 건  무래요. 호박의 독을 해독하는 건 새우젓이고요.

 건강한 사람이 먹을 때는 괜찮은데 안 좋은 사람은 먹지 말라고 하셨어요. 병이 있는 사람이 이런 음식을 먹으면 몸에 부작용이 있으니까 약을 먹을 때 먹지 말라고 하신 거죠..

 그리고 이팥이 독을 해소시켜요. 상처가 나거나 하면 옛날에 약이 없을 때는 이팥을 짓찧어서 바르잖아요. 그럼 독을 빼냈어요. 잣나무 송진을 따서 상처난 데 하면 새나지 않고 금방 나아요.

 녹두도 같은 류래요. 수술환자 퇴원하면 녹두죽이 최고인 원리래요.


- 이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언제부터 농사를 시작하신 겁니까?

= 여기서 농사짓다가 서울서 한 5년 살고 80년에 다시 왔어요. 살다가 나갔다가 결혼해서 다시 들어왔죠.


- 유기농은 언제부터 하셨고, 계기가 있으신가요?

= 80년부터 시작했어요. 74년에 농사를 지었는데 그때는 제초제를 쳤어요. 그때는 앞서 가는 농민들이 제초제를 쳤어요. 제초제를 치는데 덩치가 커서 방제복을 입기가 어려웠어요.  그래 운동화를 신고 제초제를 치는데 이거를 몇 만평 농사를 지니까 몇 일을 두고 했지요. 그랬더니 손톱, 발톱이 이상해지는 거래요. 그러면서 아프기 시작했는데 그냥 피곤하고 늘 그래요. 처음에는 이게 제초제 독인줄 몰랐지. 한 2~3년 하고 나서 자꾸 심해져 가지고 뭘 생각했냐면 미군이 베트공 소탕작전 할 때 치던 제초제를 그때 생각한 거요. 제초제가 독이로구나 환경농업을 해야겠다 해서 유기농업 창설할 때 82년도에 창립멤버로 들어가서 시작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오래됐고 전문가가 되다 보니까 평창군 전체에 유기농 자재를 공급하고 유기농에 대한 교육도 하고 하게 됐지요.


-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습니다. 화학 농약이 아니고 유기농 농약을 팔고 있는데 실제로 몸에 해롭지 않은 농약이 효과가 있나요?

= 글쎄요. 우리도 그걸 공급은 하는데 저는 그걸 안 써요. 왜냐하면 벌레가 죽잖아요. 그럼  생명체가 죽으면 독약이지. 단지 생물에서 추출했다 뿐이지 어차피 독약은 독약이라고 생각해요.


- 그럼 오랜 시간 동안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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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구술취재팀은 지난 19일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 금평리에 사시는 이환희(42), 오미정(40) 선생님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귀농하신지 7년차인 두 분은 현재 논 3200평과 밭 2000평을 유기재배로 지으시며, 다양한 실험과 실패를 통해서 나름의 농사법을 연구하고 터득하며 희망차고 활기차게 살고 계십니다. 그 분들에게 전통 농사법인 간작間作 ―이어짓기, 사이짓기―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올해는 주로 재배법에 대한 취재를 하려는데,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간작을 많이 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간작을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처음에 이곳으로 내려오면서 3년 동안은 땅과 작물의 특성을 알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주로 자급용으로 30~50가지 정도의 작물을 재배했습니다. 그러다가 풀무생협에 생산자로 등록되면서 주력 작목이 생겼지요. 그러면서 예전보다 작물 종류는 줄었는데, 아직까지 저희가 먹을 것들은 전부 재배하고 있습니다.


경지 면적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2년 전에는 한 6800평 정도였는데, 지금은 밭 200평에 논 3200평 정도하고 있습니다. 내려올 때 사람을 사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어서 5년차까지는 전부 둘이서 지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 해보니까 나중에는 사람 잡는 일이더군요. 저는 괜찮았는데 집사람이 몇 년간 계속 무리하다보니 건초염에 걸려서 크게 고생한 후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중간에 꼭 필요할 때에는 사람을 사기도 했어요. 3년 동안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수십 가지 작물을 재배하려다 보니까 바빴습니다. 한 작물이 끝나면 바로 다음 작물이 들어가야 되고, 또 제가 욕심이 있어서 삼모작으로 몇 백 평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간작을 할 때 특별히 유념해야할 사항이 있습니까?

-글쎄요, 밭의 성질을 잘 보고 심어야겠지요. 그늘이 많이 지는 밭은 일찍 심으려고 해도 안 되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시기도 달라지고 여러 작물을 재배하게 되구요.


지금은 어떤 작물들을 간작으로 하십니까?

-완두나 감자는 처음부터 계속 2월말에 심어왔습니다. 그러고 6월 초에 수확하면 하루나 이틀 정도 상황을 봐서 바로 참깨를 심습니다. 여기는 참께 파종한계선이 6월 25일 정도까지입니다. 그래서 참깨를 8월 20~30일 사이에 수확하면 배추 모종 부어놓은 것을 바로 옮기죠. 이렇게 삼모작을 합니다.

또 따로 참깨를 심어 놓은 밭 사이사이에다 고구마를 심습니다. 일반적으로 참깨 심는 밭을 만들어서 참깨를 5월초에 심고, 6월 중하순쯤 비가 자주 올 때 고구마를 참깨 사이사이에다 하나씩 꽂아놔요. 멀칭을 했어도 비닐을 찢고 심으면 됩니다. 고구마가 참깨 사이에 있을 때는 그늘이 져서 크지 않고 뿌리만 내린 채 거의 그대로 있다시피 하는데, 8월 5~10일 사이에 참깨를 수확하고 나면 한여름 태양을 받으면서 고구마가 쫙 번집니다. 그러면서 고구마가 필요한 양분을 흡수합니다. 그렇게 8월에 한창 커서 10월 중․하순경에 수확을 하면 크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최고의 상품이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구마를 심을 때면 참깨가 앉은키보다 약간 커서 그 사이에 들어가서 일하려니 더워서 힘들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투리가 있으면 옥수수나 쪽파를 심기도 하고, 고구마 넝쿨을 일일이 관리하기 힘드니까 그 옆에 한 줄로 쭉 옥수수를 심어서 수확해도 대는 놔두고 넝쿨을 막기도 하고, 또 감자나 완두를 심었던 곳에도 수확하고 바로 고구마를 심기도 합니다. 주력 작물인 생강 밭을 제외하고는 거의 그렇게 합니다.

지금 저 밭에는 마늘하고 양파를 넣어놨는데, 가장자리에는 보리를 심어놨습니다, 또 논에도 마늘이나 보리를 심어서 이모작을 하기도 했고, 수수하고 조는 생강 밭에도 같이 심기도 하고, 고추밭에도 수수를 지주 간격으로 심어봤는데 잘 됐습니다. 또 고추밭 중간 중간에 순을 딸 목적으로 고구마를 심기도 했는데, 고추가 안 좋을 때는 고구마 순으로 재미도 봤습니다.

처음보다는 품목이 줄긴 했어도 아직 한 밭에 평균 네다섯 품목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생강이나 수수는 모두 거름이 많이 필요하지 않나요?

-생강 자체에 들어가는 거름이 많아서 중간에 팔 길이 정도 간격으로 드문드문 수수를 심으면 괜찮습니다. 조나 수수는 거름이 적으면 새끼를 잘 안 치는데, 거름이 많으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서 수수 같은 건 9월초부터 서리 올 때까지 계속 수확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다 아실 텐데 콩밭에 수수가 가능해요. 그건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저희는 두둑에다 콩을 세 줄을 심으면 한 줄은 수수를 심는데, 그렇게 하니까 수수가 실하게 잘 커서 쓰러지지도 않고 좋았습니다. 조상들이 그렇게 심었던 이유가 다 있는 것 같아요.


간작을 할 때 퇴비는 어떻게 하나요?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인데 전작에 남아있는 거름양을 감안해서 조절을 합니다. 거름이 많이 들어간 작물의 경우 다음에는 아예 안 하거나 적당히 하죠. 정해진 것은 없고 전작 후작을 고려해서 감으로 합니다.

여기는 퇴비를 연례행사로 항상 같이 만들어요. 천북에 야마기시식으로 양계를 하는 분이 있어서 일 년에 두 차례씩, 한 번에 삼일에서 사일정도 합니다. 그러니까 일 년에 일주일 정도는 많으면 트럭으로 예닐곱 대 분량으로 항상 공동 퇴비작업을 해요. 그 퇴비를 기본으로 쓰고, 그 외에 집에서 소를 키워서 만들고, 액비를 만들어서 추비를 줍니다.


간작을 하면 좋은 점이 무엇입니까?

-이제는 텃밭을 가진 노부부가 먹을거리 짓는 것 외에는 거의 안 하는데, 글쎄요. 일단은 아무래도 저희는 상황상 그렇게 합니다. 밭이 산기슭에 있어서 자연조건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간식거리 해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밭의 이용도를 높이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아무튼 저희가 볼 때 일단 여러 가지 작물이 같이 자라면 보기가 좋습니다. 그리고 재미도 있어요. 콩밭 매고 나서 옥수수 한 자루 따오고 하는 식의 농사짓는 재미죠.

그런데 특별히 간작을 해서 병충해가 적은지 여부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노동력 문제가 있는데 이건 농촌의 복합적인 문제라 해결이 쉽지가 않네요. 저희는 그나마 다양한 기계가 있으니까 괜찮은데, 나이 드신 분들은 힘들 겁니다.

하지만 농사를 업으로 선택한 동료들을 보면 대부분 유사한 농사를 짓거든요. 그리고 기존에 오랫동안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분들을 보면 농사를 즐거워하거나 재밌어하거나 사명감을 느낀다던지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다들 지겨워도 마지못해서 한다고 얘기를 하세요. 그러면서 저보고 뭐가 그렇게 즐겁냐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간작의 좋은 점을 굳이 얘기하라고 하면 어떻게 보면 재미도 느끼게 하고, 시골생활하면서 여유도 느끼게 하고요, 의욕이랄지 이런 부분하고 사람의 마음이나 심리와도 연관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아랫집에 오천평 이상 농사를 짓는 분을 보면 농사지을 조건이 저희보다 훨씬 좋음에도 불구하고 때를 맞추지 못해서 버리는 경우도 많고요, 또 보면은 재미가 없어요. 그 분은 심지어 집에서 먹는 것도 안 심고, 두세 가지 단작으로 한 번에 이삼천 평씩 두드려 심느라 애들이 먹을 만한 유실수도 하나 없고요. 그래서 그런 걸 얻어먹거나 사먹거나 하셨는데, 요즈음은 저희가 그렇게 권유해도 안 들으시다가 이제 조금씩 바뀌고 계십니다.

저희 동네에 선배 형님 한 분도 저희한테 얘기는 안 하지만 나중에 새롭게 농사짓는 재미를 발견하고 하는 것을 보면 그분들한테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저희가 내려와서 부지런히 재밌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분들이 좌절감에만 빠져 있다가 ‘하니까 되는구나.’ 하시면서 말이죠. 뭐 꼭 저희가 직접적인 동기부여를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희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시고, 그러면서 그분들도 열심히 하고 하는 경우도 봤어요.

그러니까 간작이나 혼작 이런 게 주는 건 정말 일종의 심리적 만족이랄까 뭐랄까. 꼭 농사를 지어서 수확을 많이 하려고 한 밭에 때려 넣는 효율이나 그런 것보다는 다른 쪽의 재미랄지, 심리적 만족이랄지, 잔재미랄지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긴 시간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려고 하시나요?

-저희는 이제 철마다 하는 농사를 기본으로 농사체험이나 생태관련 체험이나 이런 것들을 병행해서 농사수입과 같이 얻는 형태로 가려고 계획을 잡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생태에너지 캠프를 굉장히 꾸미고 싶어요. 지금 집에도 바이오 가스 시설이나 태양광 발전도 하고 있습니다. 또 소규모지만 마당에다 생태적으로 생활하수를 처리하려고 연못을 파놨는데 아직 작업을 다 못했어요. 그리고 농장을 좀 더 아름답게 꾸미려고 합니다. 사실 작년에 집을 짓기 전에는 돈이 썩어도 집을 짓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때는 오직 농사만 생각하고 다른 건 일체 생각도 안하다가 이제는 서서히 생각이 바뀌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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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전통농업위원회 구술취재팀은 봄기운이 차오르는 2월 23일 강원도 홍천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조금씩 농사지으시며 토종 종자를 지키신 박기혁(73) 선생님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집에서 먹으려고 했다 하시지만 얼마나 고마운 분인지 모릅니다. 손재주가 좋으신 선생님께서는 그저 심심풀이로 이런 저런 연장을 손수 만들고 계셨습니다.




지금도 토종 종자로 농사를 지으시나요?

지금은 몸도 불편하다 보니 토종 종자가 대부분 없어졌어요. 사람들도 이게 수확량이 적으니까 잘 안 해요. 토종은 뭐든지 그렇게 수확이 적어요. 좋은 점이라면 한 가지, 맛이 좋아요. 요즘은 집에서 먹는 거나 조금씩 해요. 10년 전만 해도 꽤 있었어요. 요즘은 농사도 줄고 한 대여섯 가지밖에 없어요. 콩 세 가지하고, 옥수수는 찰옥수수하고 메옥수수 두 가지 있어요. 지금 사람들이 심는 건 말짱 개량종이래요.


옥수수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메옥수수는 8줄백이1)라고 해요. 8줄이 생긴다고 8줄백이라고 해요. 이게 알이 굵고 참 좋아요. 큰 건 12줄, 15줄도 있어요. 이걸 심으면 열 포기 중 여덟아홉은 8줄백이가 나와요. 이건 강밥 같은 거 튀겨서 먹고 할 때 좋아요. 강밥을 튀겨도 맛이 좋고요, 옛날에는 옥수수밥도 많이 해먹었어요. 밥할 때는 메옥수수가 좋죠. 그것 말고도 이걸 갈아서 올창국수라고 있어요. 요즘은 노란 것도 있던데 그것보다는 이걸로 해 먹는 게 더 맛있어요. 풋강냉이를 먹으려면 찰옥수수가 맛있어요. 그런데 찰옥수수는 메옥수수보다 수확이 적어요. 6.25 전만 해도 한 집에서 몇 천 평씩 심어서 먹었어요.


옥수수는 거름이 많이 들지 않나요?

옛날에는 퇴비로 했지요. 요즘 같이 비료가 어디 있어요. 소를 키우는 집에서는 풀을 베어 들여서 집더미처럼 쌓아 놓고서 소한테 밟혀요. 그게 좋은 거름이죠. 그걸 한 움큼씩 한 구덩이에 넣는 거예요. 전부 뿌리면 아까우니까 한 군데 넣어야 거름을 아낄 수가 있죠. 지금처럼 비료도 없고 그래서 농사는 많이 지었지만 요즘처럼 수확이 많지 않았어요. 2천 평으로 5~6식구만 먹을 수 있는 정도였어요. 옥수수 20가마면 농사 잘 지었다고 했지요. 요즘은 비료 때문에 엄청나요. 한 100가마씩 나와요.

옛날에는 요즘 같은 수확은 나오지 않았어요. 감자도 토종 감자는 알이 달리긴 많이 달리는데 작고, 개량종은 커요. 그래서 수확량 때문에 요새는 다 개량종을 심는데 그게 맛이 없어요. 먹어봐도 맛이 없어 먹을 수 없어요. 토종 감자는 물기가 많고 잘더라도 밥에 앉혔다가 다지면 분이 펄펄 나요. 팍신하고 단 게 아주 맛있어요. 서울 사람들이 그걸 맛보면 아마 더 비싸도 그것만 찾을 거래요.


토종 감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색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데, 도라지꽃 같은 색도 있고, 돼지감자도 있고 그래요. 여하튼 개량종은 맛이 없어요. 그 좋던 토종 감자가 수확량 때문에 다 없어졌죠. 지금은 맛이 있네 없네를 더 따지잖아요. 처음에 개량종을 심던 그때는 가격도 좋고 수확량도 많아서 논에 벼 심는 것보다 오히려 감자를 심는 게 더 나았어요. 그래서 너도 나도 개량종을 심었죠. 그런데 참 맛이 없어요.

나도 감자가 한 가지 있었는데, 못 쓰게 됐어요. 올 겨울에 창고에 넣어 놨는데 다 얼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남한테 얻어야 해요. 그 사람들도 많이 하지 않아서 별로 없어요. 감자는 이제 많이 심지도 않아요. 쌀도 남아도는데 그걸 먹겠어요. 그 사람들도 옛날 맛을 못 잊어서 계속 심는 거지요.


왜 토종 농사를 지셨나요?

집에서 먹을 것만 하느라 그랬죠. 젊어서는 먹고 살려고 농사를 애써 짓지 않았어요. 그래도 옛날 맛이 생각나고 하니까 놓지 못하고 조금씩이라도 계속 했죠. 젊어서 군대 가기 전에는 3~4천 평 농사를 지었어요. 그때는 비료도 없을 때래요. 고작 1반에 몇 포를 나눠주면 그걸 가지고 배급을 받았지요. 그걸 되로, 말로 나눠 받아서 조금씩 주면, 그래도 효과가 엄청 났어요. 그러다가 차츰 비료가 많이 나왔어요. 요즘은 비료를 옛날에 퇴비 주듯이 줘요. 그러다 보니 땅이고 뭐고 다 망가지는 거래요. 옛날 어른들께서는 “비료 치다 빌어먹는 세상이 온다”고 그러셨어요.


심으시던 토종 종자는 어디서 구하신 건가요?

대대로 내려왔지요. 우리는 여기서 계속 농사짓고 살았어요. 또 어디에 어떤 것이 괜찮다고 소문이 나면 그 마을에 가서 얻어다가 좀 심고 그랬어요. 시골 사람들끼리는 더 잘된다고 소문나면 서로 바꿔 심어요. 그래도 농사가, 같은 종자라도 여기서 잘되는 기 경상도 가면 그렇지도 않아요. 언젠가 방송국에 여기 한아가리콩이 있다고 나온 걸 보고 누가 연락했길래 보내줬더니 잘 안됐다고 해요. 뭐든지 그 고장에 맞는 씨앗이 있어요. 일단 기후가 비슷한 데라야 해요. 하마 원주만 나가도 여기랑 20일 차이가 나요. 거기 걸 여기에 심으면 늦어요. 여기는 빨리 피는 걸 심어야 해요.

요즘은 봄도 빠르고 서리도 늦지만 옛날에는 원주, 홍천만 해도 여기랑 엄청 차이 났어요. 그런 걸 감안해서 심어야지요. 여기는 보통 망종 때 모심기를 하고, 입하에 콩, 팥, 옥수수 막 심고, 소만에 늦게 심으면 좋다고 해서 팥을 심었어요. 요즘은 말짱 온상에서 하니 별 신경 안 쓰지만 절기에 맞춰서 했어요.


한아가리콩은 뭔가요?

맨 메주콩이래요. 그게 알이 여느 콩보다는 굵고 더 많이 나와요. 그렇다고 아주 큰 것은 아니고, 이걸로는 두부나 메주를 만들어 먹지 밥에는 넣지 않아요. 밥에는 까만콩이나 파란콩을 넣어 먹어요. 파란콩은 푸르대콩이라고 해서 껍질도 푸르고 속도 푸르고 좀 잘아요. 까만콩은 뭔지 모르겠는데 옛날부터 그냥 까만콩이라고 했어요.


여기서는 콩농사를 어떻게 짓나요?

입하 때가 콩 심기에 가장 적기예요. 콩은 서리 오기 전에 여물기만 하면 돼요. 그렇다고 너무 일찍 심으면 관리하는 일만 많아요. 옛날에는 콩에 거름을 안 했어요. 언제 한 번은 거름을 해보니 잘 안됐어요. 크기만 계속 크고 서리 올 때까지 익을 생각을 안 해요. 콩은 거 뿌리에 도톨도톨한 것이 자기가 비료를 맹글어서 쓴대요.

콩은 모래와 자갈이 많은 곳에 심고, 진흙이 있어도 자갈이 박힌 곳에서 잘 돼요. 옥수수는 뻘건 흙에서 잘 되요. 심을 데가 마땅치 않으면 계속 한 자리에 심기도 했지만 그러면 잘 안 돼요. 작물을 안 심던 데 심으면 거름을 안 해도 잘되는데, 그게 아니면 무슨 곡식이든지 자리를 바꿔가며 심어야 해요.


옛날에는 콩에 노린재 같은 벌레 피해는 없었나요?

옛날에는 벌레가 별로 없었어요. 요즘은 벌레가 많아서 꼭 농약을 치더라고. 어떻게 된 것인지 점점 벌레가 많아져요. 요 앞 개울에도 옛날에는 고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씨가 마르고 없어요. 그만큼 오염이 된 거죠.


옥수수도 직파했을 텐데 새피해 같은 것은 없었나요?

왜 없어요. 짐승도 먹고, 외딴 데 심으면 돼지떼가, 산돼지떼가 와서 절단을 내요. 그래서 올가미도 놓고, 밤이면 막을 치고 밤으로 잠도 안 자고 뭔가를 두드려서 쫓았어요. 그러다 틈이 나면 조금씩 자고, 참 힘들었죠. 요즘은 말짱 모종하니 편하죠.

이제는 지게를 지는 사람도 없어요. 그때는 거름도 지게에 져서 산을 몇 개를 넘어 옮기고 했어요. 리어카가 처음 나와서 편하다고 깜짝 놀랐는데, 요즘은 비알밭도 세렉스로 거름 실어다 나르지, 로타리는 트렉터로 치지, 그래도 요즘 사람들은 농사가 힘들다고 해요.


팥도 몇 가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것이 있나요?

팥은 두 가지가 있는데, 참팥이라고 빨간 거하고, 가래팥2)이라고 알록달록한 것이 있어요. 가래팥이 밥에 넣으면 맛이 더 좋아요. 참팥은 며칠 담가놓거나 삶아야 하는데, 가래팥은 몇 시간만 담갔다가 밥을 해도 돼요.

가래팥은 땅을 나물르지 않고 잘 돼요. 수확도 괜찮아요. 그런데 장사꾼이 값을 잘 안 쳐줘요. 참팥은 앙꼬나 고사떡처럼 용도가 많은데 이건 그렇지 않아서 그런가.


다른 농사 이야기 좀 해주세요?

조도 더러 했는데, 많이 하기만 했지 수확은 별로였어요. 조는 화전을 많이 했어요. 예전에 어른들 보면 아무데나 가서 그러모아 막 불지르고 해먹더라구요. 사람도 적었는데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농사를 지었는지 몰라요. 새로 땅을 만들어서 하면 더 나아서 그랬는지. 조에다가 몇몇은 부룩3)을 치기도 했어요. 조가 쭉 자라고 있으면 그 옆에 콩을 심었어요.

요즘은 조를 온상에서 모종을 하니 김매기도 좋고 수확도 많잖아요. 옛날에는 그냥 뿌리니까 김매기가 참 힘들었어요. 지난번에는 마당만큼만 했는데 1가마를 수확했어요. 이제 농사는 집에서 먹으려고만 생각하고 하면 누워서 팥떡 먹기죠.

또 청밀4)이라고 있었어요. 70년대 이전까지는 많았는데 그 이후 차츰 없어졌어요. 버릴 사람은 아주 버리고 그래도 맛이나 보려는 사람은 조금씩 하고 그랬죠. 이 청밀은 푸름한 기가 있어요. 앞때5)에서 하던 것과 비슷한데, 이건 키가 더 커요. 깔씨6)도 있고. 이걸로 지붕도 해 이고, 일찍 먹을 수 있으니까 했어요.

밀을 심고 난 다음에는 메밀을 심었어요. 이건 아주 늦게 중복 때 심었어요. 메밀은 늦게 심어도 일찍 베요. 베는 건 서리 맞기 전에 베야지, 서리를 맞아도 되지만 막 쓰러지고 헝클어져서 힘들어요. 잘 마르지도 않고. 이것도 요즘은 안 심고, 평창이나 봉평에서 많이 심어요. 진짜 메밀국수를 먹으려면 거기로 가야 해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해주세요?

우리 세대는 왜놈 시대부터 6.25때 인민군, 중공군까지 별 놈들 다 치우고 만고풍상을 다 겪었어요. 어떻게 지금처럼 시대가 발달했는지 그때로서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예요. 새롭게 연구하는 게 아니라 남들 것을 모방만 하니까 빨리 발전한 것인지, 살기는 좋은 세상이에요. 우리 세대는 이상한 풍상을 겪었어요.

우리 때는 오래 산 사람도 있지만 흔하지 않고 90세는 아주 드물었어요. 몇 백호는 되어야 한 분 있을까. 그때는 칠십 노인이면 아주 기가 막히게 오래 산 거예요. 우린 그저 어른들 밑에서 엄하게 크고, 어른들 모시고 사는 게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고 살았는데, 요즘은 늙은이들 알아주지도 않는 세상이지요. 참 요지경 세상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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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종 종자에 대해서 두 번의 취재 후에 종합 정리하는 의미로 선생님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찾아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토종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내가 10살 때 6.25가 났는데 그때 인천 살다가 신갈로 피난을 갔어요. 그때 거기서도 학교를 다녔어. 5리 넘게 걸어 다니는데 어느 집을 보니까 장독대 옆에 뭐가 나온 게 예쁘단 말이야. 그걸 학교 갔다 오다가 싹 캐서 집에다 심어놨어. 거기서 꽃이 핀 게 백합이라. 참 향기도 좋고 했는데 어려서 몰랐어. 그때부터 ‘내가 식물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지.

그 후에 고등학교 때는 원예반을 했는데 여름방학 때 변산반도를 가게 됐어. 그때는 변산에 가면 배롱나무가 많아요. 그걸 보니까 꽃이 만발을 했는데 그렇게 예쁠 수가 없어요. 세상천지에 처음본거야. 나무가 아주 잘 생겼는데, 그 밑에 보니까 둥치가 있고 그 옆에 가지가 나오길래 적당히 파서 가지고 와서 깡통에다 심었지. 그때는 화분 같은 것도 없었어. 그랬더니 다시 살아나서 나무가 예쁘게 되는데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 그렇게 식물을 좋아하는걸 알게 됐고, 그래서 농대를 다니게 된 것 같아.

농대를 졸업하고 일반 임시직으로 농진청 실험실에 가서 도와주다가 헌병으로 군대를 갔어요. 뭐야 보충대를 갔는데 차가 와서 여기 나무 만질 줄 아는 놈 손들라고 해서 손을 들었더니 차에 타래. 가니까 사단사령부 앞에 사단장이 가위로 소나무를 자르고 있더라고. 군기가 바짝 들어서 신고했더니 ‘너, 이런 거 할 줄 알아?’ 하더라고 그날부터 거기 가서 20사단사령부 조경을 전부 만들었어. 거기 가서 헌병대에서는 욕도 많이 먹었지. 헌병이라는 놈이 거기서 그거나 하고 있다고 말이야. 그래도 내가 좋은걸 어떻게 해. 그렇게 지내다가 석 달 남기고 마지막 휴가를 나왔는데, 선배가 농진청 시험이나 보고 가라 해서 한 열흘 공부해서 시험보고 들어갔어. 그러고 합격했어요. 그래서 제대하고 나서 한 보름 있다가 일을 시작을 했어요. 그렇게 진흥청에 들어온 것이 69년도야.

일을 시작해서 뭘 했냐면 밀․보리 육종을 했어요. 그걸 한 15년 정도를 했어요. 멕시코에 국제맥류연구소라는 곳에서 한 일 년 정도 있다가 와서 밀 육종을 했는데, 여기 진흥청에는 종자은행이란 곳이 따로 없었어요. 종자를 현장별로 다 가지고 있었어요. 그걸 74년도에  함께 모을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76년도에 진흥청 입구에다 저장시설을 조그맣게 만들어서 전부 모았어. 85년까지는 그런 식으로 갖다 저장만 해놨는데, 1985년도에 와서 유전자원이라는 걸 해야겠다고 하면서 저장시설도 관리할 겸 유전자원을 관리할 사람을 찾는 거야. 내가 그 전에 맥류연구소에 있었고, 83년도에는 일본에 가서 유전자원을 연수를 했거든 그래서 내가 적당하다 싶어서 날 거기다 앉혀놨어. 그때 당시에는 나 하나하고, 직원 하나하고 갖다 놓고 관리를 하라고 하니 뭔 수로 해.

그래 거기서 일을 시작하게 되는데, 내가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가장 중요한 게 무얼까?’, ‘무슨 일부터 해야 할까?’ 생각을 하다가 ‘토종이다. 우리나라 종자부터 수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야. 그때 진흥청에 농촌지도국, 시험국, 기술보급국이 있었는데, 지도국에 전국적으로 지도원이 8천명이 있었어요. 지금은 얼마 안 남고, 기능도 안 되는데 그때 당시는 그것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그래서 내가 뭘 생각했냐면 ‘이걸 내 발로 뛰어서는 안 되니까. 이 사람들을 동원해야겠다.’ 생각한 거야. 지금 생각해도 그걸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유전자원을 어떻게 수집하는지, 뭘 수집하는지 이런 수집요령 책자도 몇 천부를 만들고, 수집하는 봉투도 한 2만 5천장 만들어서 전국적으로 돌린 거야. 그때 그렇게 10000여점 정도를 수집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뭐가 토종인지 잘 모르지. 교육시킬 때는 들었지만 실제로 수집해올 때는 옛날부터 한 집에서 심던 것을 모아서 봉투에다 보낸 거야. 그걸 갖다 저장을 하고 지금까지도 평가를 하고 있는 거지.

그걸 85, 86년 두 해에 걸쳐서 하고, 그 후에도 조금씩 계속 들어왔어. 그때 수집한 것이 지금 가지고 있는 토종의 대부분이에요. 그러고 나서 8년 후 93년에 그때 수집했던 똑같은 동네에 가서 똑같이 수집을 해봤어. 그렇게 보니까 24% 정도만 남았더라고. 8년 동안 76%가 없어진 거야. 그러니까 얼마나 빨리 없어졌다는 거야. 사회상도 전부 서울로, 서울로 하니까 시골에는 노인들 밖에 없고, 노동력도 부족하고 하니까 안 심고 없어진 거야. 그 후에도 또 해봤는데, 그때만큼 급격하진 않지만 또 그만큼이 없어졌어. 지금은 가봐야 많지 않아요.


- 그래도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때만 해도 토종에 대한 인식이 없었을 때인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그래서 그때 그 일한 걸 잘했다 생각하고, 이 일을 평생해 왔다는 것이 참 고마워요.


- 원래 토종에 대한 생각이 있으셨던 것이 아니라 어떤 영감 때문에 하셨던 건가요?

그렇다고 봐야지요. 그때 내가 육종을 했지만, 토종이 중요하다 생각해서 수집할 생각을 못했어요.


- 그때는 정책방향이 다수확 신품종 위주였나요?

그렇죠. 그것 때문에 토종이 다 없어진 건데.


- 그럼 선생님이 모으기 전에도 없어졌겠네요?

그렇게 봐야지. 사실은 왜 그 전에 생각을 못했는지 후회가 돼요. 60년대만 해도 대부분 남아 있었을 텐데. 뭐 후회해도 소용없지. 그래도 그 당시에 한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 육종 일을 하실 때 토종을 바탕으로 하시지는 않았나요?

내가 밀․보리를 육종했는데, 원래 밀․보리는 우리나라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밀․보리는 토종으로 한 것이 없었지. 주로 바탕이 외래종 이예요.


- 우리밀은 없어졌을 때인가 보죠?

그 당시 우리밀이라는 건 1900년대 초에 육종한 품종들이 있어요. 그것들은 대부분이 일본에서 육종한 품종들을 기본 바탕으로 해서 우리가 한 거예요. 그런 것들이었지 재래종으로 한 건 없어요. 우리 토종을 기본 바탕으로 육종을 하는 일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원산지인 작물이 많지 않거든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것은 콩․팥․녹두 그런 것이 있고, 참깨․들깨는 100% 우리 것이지. 들깨를 먹는 나라가 우리나라하고 중국․일본의 극히 일부밖에 없어요.


- 토종을 복원하고 살린다는 현대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토종을 살려서 농민이 토종으로 재배하고 품종을 만든다는 것은 사실 경제적 가치는 높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토종이란 것이 병에 걸려도 많이 걸리지 않고 잘 죽지 않는 것이지 수량이 엄청 나는 것은 아니거든.

그렇지만 신품종이라는 것은 수량이 엄청나고 내병성도 강하지만, 어떤 상황에 따라서 왕창 망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어요. 옛날에 노풍․내경이란 품종이 있었는데, 그게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육종하는 사람을 우대해주기 위해서 품종에 자기 이름을 붙인 거야. 그래서 박노풍, 박내경 두 사람이 만든 품종이야. 그런데 그 당시에는 좋았는데 몇 해 지나서는 병이 들어서 완전 망했어.

그게 이렇게 생각을 해야 돼요. 토종이라는 것은 오랫동안 내려오면서 우리나라에 있는 병충해 같은 것들과 저항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저항성이 있지만, 병충해에 아주 안 걸리는 것도 아니고 다만 걸리면서 저항이 있는 거야. 이런 것을 수평저항성이라고 해.

그런데 신품종은 수평저항성이 아니라 수직저항성이라고 해. 이건 금년도에 나타나는 어떤 race 때문에 작물이 싹 망하는데, 그 race에 강한 인자만 뽑아서 집어넣는 거야. 그러니까 그런 race 몇 가지에만 강하게 선발되니까 당시에는 수량도 잘 나데, 몇 해 지나면 race라는 건 독감처럼 금방 변해요. 그렇게 되면 이게 왕창 망하는 거야. 토종은 그렇게 왕창 안 망하거든.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신품종의 문제점이 있는 거야.


그래서 토종이라는 건 그런 의미에서 여러 가지 어떤 우리나라 기후풍토와 또 어떤 병충해 같은 이런 모든 것과 같이 살아온 것이지. ‘농민들이 육종가’거든. 그게 뭐냐면 지금은 안 그런데, 지금은 고추를 심어도 다 사다가 심잖아. 그런데 옛날 농부들은 고추를 심으면 그 중에 제일 크고 좋은 건 따다가 놔두고 내년에 종자로 쓴다고. 그게 뭐냐면 그 환경에서 제일 잘 된 것, 즉 그 환경에 적응이 잘 된 것을 심는 것이지. 그게 바로 육종이야. 그렇게 육종을 해온 것들이 토종으로 남아있는 거야.

그러니까 이런 특성들을 기본바탕으로 해서 이것을 외국에서 들어온 좋은 특성들, 맛이나 질, 수량 같은 특성들을 집어넣어서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거예요. 그게 육종인데, 그렇게 보면 토종이라는 것은 육종하는데 기본 바탕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농민들한테 직접 보급하는 것은 수량이 떨어지니까 문제가 있는 건데, 그러나 지금 토종을 농민들이 재배하고 유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그게 몇 년 안 됐는데 “토종의 농가보전”이라고 있어요.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토종이라는 것을 내가 85년도에 수집해서 저장고에 넣어놨단 말이야. 그러면 그 종자는 잠을 자고 있는 거예요. 앞으로 100년도 가는 게 있겠지. 그걸 100년 후에 꺼내면 100년 전 상태하고 똑같은 거야. 그러니까 같은 식물이란 말이야. 그런데 그때는 기후환경도 바뀌고 race나 병해충도 다 바뀐다고. 그러면 100년 전에 있던 것과 맞아 들어가지 않잖아. 그러니까 농민이 현지에서 보전을 한다는 건 100년 동안 기후환경이나 풍토에 적응한 것을 자꾸 선별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100년 전에 저장해 놓은 것 자체도 상당히 큰 가치가 있어요. 왜냐하면 race는 자꾸 변하잖아. race가 자꾸 변하는데 100년 전에 있던 race는 지금 것하고는 완전히 다른 게 될 수 가 있어. 그런데 그때 당시에는 아주 저항성이 없어서 전부 죽었는데, 100년 후에 와보니까 그것이 강한 저항성이 될 수 있어요. 그럴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대로 중요하다는 거지. 그래서 지금 국제식물자원연구소에서도 그런 것을 상당히 가치 있게 보고 강조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도 농민에게 꼭 그렇게 하라고 강요는 못하지만 많은 농민들이 재배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농민들이 손해 보면서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손해 불 수 있는 문제점들을 정부나 지자체에서 어떤 토종마을 식으로 지정한다던지 해서 그 마을에 가면 이런저런 토종들도 볼 수 있고, 방학 동안 학습이나 학자들이 공부도 할 수 있게 하면서 일정한 지원도 하면 상당히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떻겠느냐 하고 있어요.


- 그런데 토종은 근본적으로 수확량이 적나요? 옛날에는 다수확을 목적으로 육종한 것이 아닌가요?

꼭 그렇지는 않아. 그리고 육종은 자기가 원하는 방향대로 하는 거지. 어떤 사람은 다수확이고, 어떤 사람은 맛 같은 품질이고.


- 토종을 농가에 보급한다고 할 때 농가에 경제적인 도움이 될 수는 없을까요?

내가 생각하는 것은 뭐냐면, 근래에 와서 웰빙 바람 때문에 토종이 떴잖아요. 이걸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 자체가 토종이니까 한반도에서 옛날부터 있었던 토종을 먹고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 예를 들면 콩만 해도 옛날에 우리가 원산지니까 토종을 먹었는데, 지금은 전부 미국에서 신품종으로 육종을 하고 그것만 하면 좋은데 유전자 변이 콩이 엄청 많잖아. 그럼 유전자 변이 콩을 먹어서 좋을지 나쁠지 아무도 모르는 거야. 요즘 유전자 변이 옥수수를 먹었더니 어떻게 됐더라 하는 얘기가 많은데, 우리같이 농업을 연구한 사람들 중에는 유전자 변이 농산물이 우리 몸에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을 안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모르거든. 그렇기 때문에 우리 토종을 먹는 것이 해로울 건 없을 것이고 좋지 않겠냐. 그리고 요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을 하니까 농민들은 그런 토종을 재배를 해서 그 토종을 많은 사람들이 먹게 하면, 소비자도 좋고 농민도 좋다고 보는 거야. 그렇게 하면 우리는 우리대로 토종을 현지에서 보전할 수 있으니까 좋은 거지.


- 그러면 토종과 토종 아닌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토종연구회에서 전부터 토종인증제를 하나 만들자고 했어요. 그런데 이게 생각은 좋은데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또 있어요. 우리가 인증제를 해서 그냥 인증해주면 너도 나도 다 해달라고 할 거 아니야. 그럼 그것보다는 일정 액수를 받아서 사용은 연구에 쓰던지 정부에 줬다가 받아서 쓰던지 아무튼 그건 나중 얘기고, 돈이 왔다 갔다 하면 거기에서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고, 인증하는 자체도 누가 어떻게 인증을 해주냐는 문제가 있어요. 토종과 육종된 것이 어떻게 다른가 구별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면 찾기가 쉽지 않아.

그래서 내가 책을 만든 것도 그런 이유가 있어요. 지금 보전되는 토종이 4~500가지가 되는데 워낙 많아서 사진을 다 못 찍었어요. 그런데 그걸 전부 사진을 찍고 책을 만들어서 ‘이런 것이 우리 토종이다.’ 하는 걸 보여주고 남기기 위해서 하는 거야. 이제 자꾸 세대가 지나가면 앞으로 사람들은 모르지. 시골에 가본 적도 없고, 시골에도 없어졌는데 어떻게 알아.

그러니까 그런 문제를 책을 만들고, 또 보전된 것을 유전자 지문을 만들어야해. 이건 유전자를 감식하는 방법이 있잖아요. 어떤 토종의 DNA는 그 내용이 어떻다는 걸 품종마다 전부 만들어 놓는 거야. 그래서 비교해보기만 하면 돼. 이것이 우리 것이라는 걸 만들어놔야 외국에 나갔을 때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거지. 이건 지금 농진청 종자연구소에서 하고 있어요.


- 그럼 그런 내용은 세계 어느 기관에 등록해서 저작권처럼 사용하는 건가요?

그것은 아니고, 일단 우리 걸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주장할 수 있지. 그렇다고 지금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어떤 품종들을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지금 검증할 수 있는 건 신품종 보호법이 있어서, 신품종에 대해서는 전세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어요. 종자관리소에서 신품종을 만들면 ‘이 품종은 내가 만든 것이니 쓰는 사람은 로얄티를 내라.’ 뭐 이런 것이지.

그건 이런 거야. 나는 돌아다니면서 식물을 많이 훔쳐오는데 내가 어디에서 장미를 가져왔다고 하면, 내가 잘라다가 심어서 내가 보는 건 문제가 없어. 내가 잘라서 심다가 아는 사람한테 주는 것도 상관없지. 상업적이 아니면 괜찮다고. 그런데 이걸 갖다가 많이 만들어서 시장에서 팔면 그때는 로얄티를 내야하는 거야. 그리고 국내에서 하면 큰 문제가 없는데, 외국으로 수출하면 문제가 되는 거야. 이게 장미전쟁이니 하는 그 얘기야.

그런데 그것을 육종에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안 돼. 그걸 이용해서 신품종을 만들어서 등록하면 돼지.


- 토종이 그렇게 이용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토종의 정확한 정의가 무엇인가요?

토종의 정의가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토종연구회 홈페이지에 있어요. 말하자면 토종은 한반도에서 대대로 재배되거나 또 사양되거나 또는 자연생태계에서 대대로 살아온 생물을 얘기하는 거야. 식물, 동물, 미생물을 다 포함한다고 정의가 되어 있어.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대로’라는 의미가 몇 년이냐는 거야. 딱 잘라서 100년 이상이라고 하는 것이 참 어렵더라고. 그래서 대대로라고 표시해놓았지. 왜 그렇게 했냐면 가급적이면 많은 걸 우리 토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좋지, 이걸 300백 년 전부터 내려온 것이 토종이라고 하면 제한이 되잖아. 그래서 그렇게 했지. 그러니까 어떤 동네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심어서 내려왔다고 하면 그건 토종이지 그걸 어떻게 해.

아까도 얘기했지만 우리는 많은 작물의 원산지가 아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작물이 외국에서 들어왔다고. 어떤 작물은 1000년 전에 들어온 것도 있고, 100년도 안 된 것들도 있다고. 예를 들면 산삼은 원래 우리가 원산지야. 그런데 근래 들어온 담배 같은 것도 그렇고, 고추, 고구마도 그렇고. 양파, 당근, 딸기 이런 것들은 토종이 거의 없어.


- 토종은 작물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군요.

그렇지. 토종은 우리나라 사람도 토종이지.


- 만약 육종된 품목을 계속해서 씨를 받아서 사용했다면 그것도 토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엄밀하게 얘기하면 토종은 아니에요. 그런 게 있어요. 벼는 자가수분을 해서 한 가지만 심으면 대대로 똑같은 것만 나와야 원칙인데, 육종을 하다보면 순도가 99.9%라도 0.1%가 변형이 돼요. 논에 가보면 삐죽 나온 것들이 더러 있어요.

그런 것들도 있을 수 있고, A라는 품종 옆에 B라는 품종이 있으면 0.1%니 이런 정도는 꽃가루 수분이 돼요. 벼는 자가수분 작물이지만 몇 년이 지나면 잡종이 많이 생겨요.

그래서 농진청에서 육종할 때는 이렇게 했어요. 제일 먼저 육종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품종을 기본식물이라고 하는데, 내가 A라는 품종을 육종하면 그 특성이 있잖아요. 그에 따라서 해마다 이삭으로 심어요. 그러고 보면 엉뚱한 것이 나올 수가 있어요. 그럼 그건 밟아버리고 나머지만 채종을 해서 원원종이라고 해서 도진흥원으로 보내던가 해요. 그럼 거기에서 증식을 해서 농가에 보급을 했어요. 그럼 벼 같은 것은 4년에 한 번 새로 심는다던지 하여튼 몇 년에 한 번씩 바꿔줘야 돼. 그렇지 않으면 잡종이 생기고 그래요.

그래서 아까 얘기하신대로 오래 전에 어떤 품종이 있었는데 계속해서 농민이 심었다고 하면 잡종으로 생각을 해야 돼요. 왜냐하면 벼나 콩은 우리가 눈으로 보이는데도 그런데, 옥수수 같은 것은 더 심하잖아요.


- 그럼 지역마다 수비초니 하는 작물들은 순도가 유지가 된 건가요?

유지가 된다고 봐야지. 유지가 되면서 좋은 방향으로 계속 육종이 된 거야. 영양에 가면 수비초가 있잖아. 거기는 수비초가 잘 되는데 다른 곳에 가면 잘 안 돼. 농민들이 수확을 할 때 거기서 제일 좋고 잘 된 거를 따서 모아 그것만 씨를 받아서 다음에 또 심은 것이지.  그게 농민이 육종가라는 말이지.


- 토종은 전국 어디서나 다 되나요?

아니지. 지역마다 다르지. 그래서 벼 같은 경우 육종을 하면 일단 각 지역마다 다 심어봐. 그걸 지방적응연락시험이라고 해요. 처음에 품종을 육종하기 전에 계통을 육종해서 제일 처음에는 어떤 병해에 강한가 먹을 만한가 생산력 검증시험을 해요. 거기서 통과하면 지방적응연락시험을 해. 목포에도 심어보고, 강릉에도 심어보고, 이리에도 심어보고, 태백에도 심어보고. 각 작물마다 그 시험지가 따로 있어요. 그 작물이 중요시 되는 그 지역에서 2~3년의 시험을 거쳐서 그 지방에 좋다고 하면 그 지방의 작물로 되는 거예요.


- 토종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는 얼마나 되나요?

거의 없다고 봐야 해요. 아주 일부 토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신림 같은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경우지.


- 아까 선생님 말씀 중에 토종마을은 괜찮은 생각 같습니다.

그게 앞으로 이뤄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밖에 지금 토종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또 근래에 와서 생각하는 것인데 옛날부터 심던 토종을 귀농해서 사는 분들이 몇 가지씩이라도 심으면 상당히 좋지 않을까 해요.

아침에 지리산에 스님과 통화를 했는데, 이 분이 서점에서 우연히 우리종자 책을 보고 나한테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내가 종자를 구해서 보냈었어요. 그 양반은 토종을 엄청 좋아하는데 자기가 있는 곳은 산 중간이라서 덜 되는 것 같아서 여기저기 아는데 좀 보내서 그 사람들이 심게 해야겠다고 하면서 자기도 토종 때문에 다른 데로 옮겨야겠대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한테 내가 가지고 있거나 구할 수 있는 것을 자꾸 주면 꼭 필요한 사람들한테 가니 그게 좋은 거죠.


- 지금까지 토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토종이 갖고 있는 단점은 없나요?

단점은 경제적인 거예요. 수량이 떨어지는 것.


- 토종 잡곡의 경우 몇 군데에서 하는데 토종 과수나 채소류를 하는 곳은 없나요?

과수는 거의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하더라도 소규모겠지. 과수는 근래에 나온 과수들이 워낙 좋으니까. 채소는 하더라도 텃밭 정도겠지. 약초는 거의 토종일거예요.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약초재배는 많이 한다고 해요.


- 토종 잡곡의 경우 경쟁력이 있을 것 같은데 토종 채소나 원예 작물들은 어떨까요?

글쎄요. 하나하나 다른데 얘기하자면, 상추 같은 것은 봄에 심으면 일찍 추대를 해서 못 먹잖아요. 그런데 작년에 심었던 것은 산청에서 가져왔는데 추대가 굉장히 늦어요. 그런데 충청도에서 나왔던 새꽂이 상추라고 있어요. 그건 굉장히 추대가 늦어서 우리나라 상추 육종하는데 많이 썼다고 그래요. 본래 빨리 추대하는 문제점을 고친 거죠. 그런 옛날 토종상추 같은 것도 될 수 있겠고.

토종오이 같은 것도 재배해서 먹어보면 맛있잖아. 그런데 요새 나오는 것은 오이 하나에 크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맛이 없거든. 그러니까 비싸더라도 작고 맛있고 옛날 우리 것을 찾는 사람들을 찾아서 어떻게 토종마을 같이 생산하는 곳과 도시에 아파트나 어디가 됐든 소비하는 곳을 맞춰서 공급을 하는 걸 연결하면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 선생님 오랜 시간 말씀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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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농업구술취재팀은 지난 16일 전라남도 화순의 동광원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20대부터 동광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신 한 장로님(77세)을 만나 뵈었습니다. 한 장로님은 주로 율무와 고구마 농사를 지으시고, 자급용으로 논농사와 채소, 잡곡류를 짓고 계십니다. 그리고 몇 해 전부터는 전통방식으로 엿을 만들어서 판매도 하고 계십니다.




실례지만 언제 동광원에 들어와서 농사를 지으셨나요?

- 동광원에는 6.25 직전에 들어왔어요. 그래도 농사는 어려서부터 했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3살 때 어머니가 나를 두고 가버렸어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일을 했어요. 공부라는 건 생각도 못했는데 어디 가면 배운 사람으로 알아요.


예전에도 지금처럼 농약이나 비료는 사용 안 하고 농사를 지으셨나요?

- 중간에는 농약도 좀 했었어요. 그러다가 땅 살리기 운동한다고 안 하게 됐지요.

제가 6.25나고 한 사오 년 후에는 서울에 가서 인생공부 하려고 리어카 끌면서 고물장사도 했어요. 이현필 선생님이 의인은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장돌뱅이 사이에도 있다고 하셔서 가본 거예요. 그렇게 서울에서 있다가 ‘자연식을 먹고 살려면 시골로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60이 안 돼서 남원으로 왔어요. 그런데 거기서 자연식을 먹다보니까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나와서 ‘가공식품을 먹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딱 끊었지.


기장농사가 어렵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시나요?

- 어려운 것은 별로 없는데, 시기가 잘 안 맞으면 키가 커서 쓰러지기도 하고 죽어버리기도 하는 곤란한 점이 있어요. 기장은 6월쯤에 심는 것이 알맞은데, 그게 항상 같지 않아요. 그때그때 그해의 일기관계도 있고 우주적인 것도 있어요.

작년에는 그 시기를 맞추려고 늦게 심었는데 비가 통 오지 않아서 크지를 않았어요. 옛날 어른들이 ‘부스럼이 커야 고름이 많이 나온다’고 했는데 그러니 열매가 나올 것도 없었죠. 기장이 너무 키가 커서 잘 쓰러지길래 시기를 맞춘다고 늦게 심었는데 비가 안 오니까 크지를 않았으니 뭐 나올 것이 있어.

그래서 시기를 잘 맞춰야 하는데, 가물 때는 일찍 심어서 커버리는 것이 낫고 비가 자주 오면 늦게 심어서 어느 정도 패게 하는 것이 좋지. 우리가 마음대로 하기가 어려워요.


다른 농사는 안 하시나요?

-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율무 농사를 하지. 한 20년은 된 것 같아. 율무는 거름이 많이 들어가요. 옥수수하고 비슷하게 해야 해. 적으면 열매가 잘 안 맺어요. 5월 달에 보리 심어 먹고 거기에 로타리 쳐서 골을 타고 모종을 심어요. 이건 습기가 좀 있어야지 너무 건조하면 죽어버려서 논에서도 잘 돼요.

모종을 심는 간격은 자기 마음이야. 두 자 심을 사람은 그렇게 심고, 한 자 심을 사람은 한 자 심고. 자기가 경험을 하다보면 요령이 생기지.

제초는 그냥 김을 매는데 어떻게 하냐면 처음에 골에다 심어서 어릴 때는 그냥 괭이로 긁어주다가 조금 더 크면 관리기로 그냥 콱 파서 북주면서 덮어줘 버려요. 그러면 훨씬 쉬워요.

율무는 목도열병도 잘 생기고 벌레 때문에 잘 죽어서 살충제를 좀 해줘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안 해줘요.

탈곡은 도리깨로도 하고, 차로 밟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면 좀 깨지더라고. 그러고 나서 정미소에 가져가서 현미로 만들어요. 요즈음은 정미소라도 해주는 데가 별로 없어요. 여기도 처음에는 못 한다고 했는데 내가 밀어붙였지. 율무를 찧으려면 쌀보다 힘도 더 들고, 돈도  더 비싸요. 옛날 �방에 찧듯이 찧는데 그러면 먼지가 엄청나요. 쌀은 마를수록 부수어지는데 율무는 마를수록 좋아. 수수는 방아를 안 찧어도 먹지만 이건 안 돼요.


고구마는 어떤 건가요?

- 호박고구마를 심는데, 이것이 소출은 적어도 맛이 좋더라고. 처음에는 먹으려고만 했는데 하다보니까 판로만 되면 더 낫겠다 싶어서 요즘에는 팔기도 하지. 일반 고구마보다 잘하면 만 원 정도 더 비싸게 팔아요.

몇 년 전에는 굼벵이가 다 먹어서 적자가 나버렸어. 굼벵이는 애초부터 흙 관리를 잘 해야 되요. 토비가 많으면 굼벵이가 많아지고 고구마도 맛이 없어요. 고구마는 한 곳에 계속 심어도 괜찮은데, 그러면 땅이 뼈 마른다고 그래요.


고구마 순은 어떻게 틔워서 심으시나요?

- 추운 지방에서는 조금 어려운데 이거는 굉장히 뜨거워도 죽지 않아서 하우스가 있으면 거기서 기르면 돼요. 고구마는 따뜻할수록 순이 잘 나고 70℃가 되도 피해를 안 받아요. 하우스가 없으면 활대로 터널을 만들고 보온덮개를 덮어서 낮에는 벗겨주고 밤에는 덮어줘. 비가 올 때는 벗겨주고, 안 그러면 가끔 물을 줘야 돼요.

심는 건 관리할 수 있다면 일찍 심을수록 좋아요. 여기는 날만 따뜻하면 해동이 되니까 구정 지나서 심어도 돼요. 해남 이쪽은 모종을 배게 꽂는데 그래도 고구마가 다 달려요. 배게 심으면 조금 작게 되고, 너무 일찍 심으면 적게 달리는 대신 크게 되고 그런 것이 있어요. 그래서 이쪽은 고구마가 6월이면 나와요.

우리는 매듭에서 고구마가 생기니까 비스듬히 심어왔는데, 심을 때 너무 깊게 하면 캐기가 나빠요. 고구마 덩굴이 너무 길면 낫으로 잘라줘요. 일반 농가는 제초제를 쳐서 못 자라게 해요. 그리 안 하면 고랑으로 뻗은 놈을 뽑아서 엮어주면 되요. 거름이 너무 많으면 덩굴만 잘 되니까 문제가 있어요.


퇴비는 어떻게 만드시나요?

- 옛날에는 다 만들어 썼는데 이제 힘이 없으니까 사서 써요. 옛날에 퇴비 만들 때는 퇴비간이 크게 있어서 거기에 풀을 막 베다가 작두로 썰어서 쟁여놓고 요리 조리 뒤집어서 썩히는 거야. 한 세 번 뒤집으면 잘 떠요. 뒤집는 시기는 논매는 거랑 같아요. 모내고 20일 만에 초벌 매고, 다음에는 15일 만에 매는데 그런 식으로 거름도 뒤집는 거야. 대충 계산해보면 35일은 더 걸려요. 소가 밟은 것을 섞으면 더 빨리 되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그래요.

그리고 거름이 말라 있으면 똥오줌이나 물을 뿌려서 습기가 있도록 만들어줘야 잘 떠. 마른 상태에서는 안 뜨고 너무 질어도 안 떠요. 그것도 죽이 맞아야해. 이건 자기가 경험을 해 봐야지 알아.


병해충은 방제는 어떻게 하시나요?

- 그냥 보고 있는 거지 뭐. ‘나 이거 못해도 원망 안 할랍니다’ 하면서 해. 내가 바가지 긁는 사람이 없거든.

옛날에는 병해충이 많지도 않았어요. 토비만 먹고 사니까 건강하고, 땅이 살아있으니까 힘을 쓰고. 그런데 지금은 비료 줘서 키만 커지게 하니까 땅이 힘이 없어져버렸어. 토비만 할 때는 뿌리가 강하거든. 그렇게 건강하게 커서 병해충이 별로 안 걸렸어.


지금도 섞어 심기를 하시나요?

- 무엇을 하냐면 수수하고 콩을 같이 심어요. 수수는 위로 커버리고 콩은 아래에서 자라니까 적당하게만 심으면 수수가 쑥 커버려요. 모종으로 해도 괜찮고 씨를 뿌려도 괜찮아요. 자기가 기술적으로 다문다문하게 뿌리면 되요.

또 여기는 뭘 하냐면 참깨를 심어놓고 그 사이에다 들깨를 심어서 그렇게 두 번을 해 먹어요. 참깨 베기 전에 들깨 모종을 옮겨 심어놔요. 아니면 거기에 콩이나 팥을 심던지 해요. 참깨는 두 달이면 되니까. 들깨도 이른 것이 있고 늦은 것이 있어요. 참깨가 꽃 피기 시작하면 늦은 들깨는 그때 모종을 심어요. 그런데 이른 것이 하얗게 보기는 좋은데 기름은 적게 나와요. 들깨가 사람 키보다 더 커버리면 제대로 수확이 안 나와요. 그래서 옛말에 키 크면 속없다는 거야.

그리고 들깨는 콩밭에다 넣으면 좋다고 그래요. 들깨향이 콩에 벌레를 덜 끼게 한다고 해요. 그런데 나는 추수할 때 귀찮아서 그렇게는 안 해요. 또 옛날에는 참깨하고 목화를 같이 심었어요. 그렇게 하면 참깨가 잘 열어요.


옛날에 과일농사는 많이 했나요?

- 그런 것은 없었지. 일본사람들이 와서 심었지 어디 배나 사과가 있었어요. 돌배나 감은 많았지. 제사상에도 사과나 배는 없고 밤, 대추, 감, 살구, 유자 이런 것이나 있었지.


보리 뒷그루는 어떤 작물을 하나요?

- 율무도 심고, 콩, 아무튼 전부 그때가 시기예요.


콩은 어떻게 키우나요?

- 콩은 너무 박토면 토비를 조금 해야 되고, 어지간하면 안 해도 돼. 심을 때는 콩에 따라서 작은 것은 배게 심고, 메주콩 같은 것은 한 자 정도 심어요. 콩이 잘 되는 곳이면 두 자 정도 심어야 해.

그리고 콩은 연작해도 되는데 그것도 계속 심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와. 또 옛날 어른들이 콩은 습기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팥은 습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이런 건 자기가 자꾸 해보면 돼요. 안 해보고 하는 사람은 말쟁이고 학문쟁이지.


논농사 이야기 좀 해주세요?

- 제초제 대신 쌀겨를 한두 번 뿌려요. 모를 내고 일주일 이내로 한 번 뿌리고, 모 내고 나서 20일 안에 두 번째 뿌려주고서 그래도 풀이 나면 한 번 매줘요.

옛날에는 싹 손으로 맸는데 동네사람들끼리 품앗이를 했지. 오늘은 내 것, 내일은 네 것 하면서 순서를 정해서 맸어요. 모내고 나서 20일 안에 초벌을 매고, 풀이 많이 나면 도사리 짓는다고 호미로 파서 뒤집어엎어. 그러고 15일 만에 손으로 그 덩어리를 주물러. 그 다음 또 15일 만에 손으로 다 뽑아줘요. 그래도 풀이 많이 나면 네 번째는 다니면서 큰 풀을 뽑아주는데 그때는 벼가 크고 더우니까 힘들어서 시원할 때만 일하지.

옛날에는 하지 전 닷새, 후 닷새가 모내기 적기라고 했어요. 그때는 쌀은 일본사람들이 다 뺏어가서 가난하니까 다 보리를 심어먹어서 하지가 적기였어. 보리 때문에도 그렇고, 손으로 매니까 너무 일찍 내면 김이 나서 여러 번 매야하는 것 때문에 그랬지. 그런데 지금은 농약을 하니까 빨리 해서 먹잖아. 지금은 보리 망종이 중심이야. 옛날에는 하지 중심으로 농사를 했지.

모도 지금하고 비교하면 훨씬 크지. 손으로 심으니까 그렇고, 또 천수답이라서 그래요. 기계가 없으니 물을 퍼서 댈 수도 없고 언제 마를지 모르니까. 하지 때는 비가 많이 오니까 그때 심는데, 그럼 모가 커야 물을 많이 담아놓을 수 있어. 모가 작으면 녹아버리는데 모가 실하고 단단한 것은 물을 많이 담아도 녹지 않거든.

그리고 토질에 따라서 새끼를 많이 치는 논이 있고, 안 그런 논이 있어요. 새끼를 많이 치는 논은 적게 심어도 많이 쳐요, 그래서 어떤 분은 한두 개만 잡아서 심어요. 그래가지고 한 자 세치, 자가웃으로 심어요. 그렇게 해도 새끼가 많이 쳐버려. 새끼를 칠 때는 물을 넣어야 잘 쳐요. 어느 정도 자라면 물을 한 번씩 빼는데 그것은 경험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요

그때는 벼가 키도 별로 안 커서 잘 쓰러지지도 않았어. 돼지거름이나 소거름 많이 쓰는 사람이나 간혹 쓰러졌지.


예전에는 모를 40일 이상 키웠다고 하던데, 어떤 종자인가요?

- 우리 어렸을 때는 은방조, 아곡도라고 있었어요. 그리고 잊어먹어서 몰라. 그런 것들을 많이 심었어요.


논에 퇴비는 어떻게 했나요?

- 보리를 심어먹었으니까 이미 토비가 많이 들어간 셈이야.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논이 거름지지. 그리고 보리를 수확하고 갈면 밑둥이 썩으면서 자연히 거름이 되는데, 그래도 거름을 해야 돼. 산에서 풀을 베어다가 보리 벤 것하고 같이 깔아놓고 써레질하는 것이지. 그것만 했지 추가로 주는 것은 없었어. 그러니까 수확이 적었지. 200평에 한 섬, 옛날에는 100근 두가마가 한 섬이여. 지금으로 하면 60㎏ 두가마지.

일제시대에는 거름이 나와서 좀 더 나왔고, 그래도 많이 나온 데가 어디냐면. 마을 앞에 고샅 논이라고 해. 마을 앞에 개똥이니 뭐시니 같은 것이 흐르는 곳이 더 나왔어. 지금은 이런 데를 별로 안 쳐주는데 그때는 마을 앞이 좋았지. 땅이 좋은 데는 밥맛이 꼭 찰밥 같았어요.


병충해에 대한 대책은 없었나요?

- 과거에는 그랬죠. 되는대로 쳐다만 보고 살았지. 그때는 깜부기병 같은 것도 있었고, 멸구가 심했어. 멸구는 석유를 모래에 섞어서 뿌려놓고 막가지로 벼를 쳐서 기름에 떨어뜨려서 죽으라고 했지. 대나무 같은 것으로 쓸고 가는 거야. 아니면 물로 그냥 흘러가게 하기도 했지. 제대로 된 것은 아닌데 그런 식으로 했지.

멸구는 벼가 익어가면서 오니까 빨리 되는 종자는 추석 안에 멸구가 없을 때 추수해버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풍이 올 때 모가지가 나오니까 잘못하면 바람 맞는다고 해요. 바람 맞아버리면 이삭이 패면서 시큼시큼 해지는 폐단이 있어요.


엿은 어떻게 만드나요?

- 엿은 밀이니 보리로 엿기름을 길러요. 그런데 보리보다 밀이 더 달아. 보리로 많이 하는 건 색깔을 내려고 하는 거야. 보리는 하얗고 밀은 더 빨갛거든. 엿기름에다 쌀, 수수, 옥수수, 고구마 같은 것을 넣어서 삭히는데 그것이 잘 삭아야 엿이 잘 돼.

그걸로 감주를 만들어서 보자기에 짜서 찌꺼기를 싹 빼고 솥에다 넣고 불을 때는 거야. 그렇게 불을 때면 쫄면서 엿이 되는 거야. 불 때는 것을 잘 하면 금방 만들고, 못 하면 하루라도 못 끝내지. 어느 정도 불을 맞춰가면서 넘지 않도록 때야해. 그러면서 긴 주걱으로 계속 저어주지.

그렇게 하면 갱엿이 되는데, 조청보다 더 되게 만들어야 해. 그 도수를 잘 맞춰야 기술자여. 너무 되면 치기 힘들고 너무 눅어버려도 그렇지. 둘이 줬다 뺐었다 하면서 치는데, 기술자들은 나무 기둥에다 혼자 하기도 해요. 자꾸 치면 엿이 하얘지고, 바람이 들어가니까 사근사근해져. 빨간 갱엿은 먹기가 힘들어서 하얘질 때까지 쳐야 돼.

이렇게 엿을 만들려 하루를 더 잡아야 되요. 오늘 밤에 감주를 해서 놔두면, 내일 새벽부터 그걸 짜서 솥에 넣고 달여서 쳐야 돼. 이것도 몇 번 실패를 해보고 자기가 익혀야지 암만 방식을 듣는다고 해도 어렵지.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가요?

옛날에는 우리나라 풍속이 재미있었어. 정월달에 마을 사람들이 마당에 다 모여서 풍물을 놀면 등에 업힌 애기도 같이 춤추며 놀아요. 북치고 장구치고 소고치고, 덕구놀이라고 그걸 보면서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춤추고 논다고. 1월 한 달이 쉬는 기간이여. 설 쇠고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마당돌기를 하는데 농사가 잘 되라고 빌어주는 것이 하나고, 농사지은 걸 얼마씩 내놓으면 기금으로 만들어요. 그런 것들이 즐거웠지.

가다가 더우면 세수하고 바로 그 물을 먹고 그랬어. 그런데 지금은 과학이 발달해서 농약하면서 편히 살려고만 하니까 그런 것들이 다 없어졌어. 이런 것이 아쉬운 것이야. 좋은 것이라고 따라가다가 우리가 다 망하는 것이야. 그래서 물러가라 해야 하는 것이야.

나는 우리 조상들이 굉장히 지혜롭다고 생각해요. 김치 담가 먹는 것이나 농사짓는 것이나 만사가 다. 지금 방송에 나오는 건강식품이 다 우리 조상들이 먹고 살았던 것이잖아.

기독교도 우리 것을 알고 받아들여야 정상인데,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정신없는 사람이여. 내 것을 알고 다른 것을 받아들여야 해요. 다른 나라 말을 해도 내 나라 정신으로 내 것 위에다 해야 자기 정신이다 이거지.  지금 우리 기독교인은 너무 종교의식 때문에 문제가 많아요. 동광원은 문턱이 없어요. 예수님이 문턱이 없었거든. 그걸 우리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해야 되는데 그러지 않으니까 안 돼요. 안 믿어도 기본 양심은 다 타고 나온 거예요. 자식이 안 믿는다고 부모가 내 자식 아니라고 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그런 것을 직접 몸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지 의식이나 말로는 안 돼요. 여기 가끔 목사님들이 오시면 ‘네가 농사지어서 주면서 살아도 문제인데, 남한테 얻어먹고 살려면 교인 중에 제일 가난한 사람하고 똑같이 살면 목회를 잘 하는 것이다’라고 얘기해요. 예수님이 그랬어요. 그렇게 마음 다해서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사랑도 그에 못지않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옛날처럼 살 수 있다는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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