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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농어촌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의 가장 큰 요인은 각박한 생활(46%), 개인주의적 생활(15%), 자연과 떨어진 생활(15%)이 뒤를 이었음. 생활비라는 답은 7%로 미미. 돈 때문에 가는 게 아니라는 뜻임.


반면 농어촌 이주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만약 이주를 한다면 높은 생활비(28%)와 각박한 생활(25%) 때문에 가겠다고 답했음. 두 집단 사이의 차이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임.


도시민이 이주하기를 바라는 농촌의 모습. 오염되지 않은 농촌경관이 잘 보존된 곳이면서 텃세가 심하지 않아 자유로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바라는 경향이 강함. 





한편 농촌이주를 바라는 사람들은 이주한 뒤 72%가 비경제적 활동을 하고자 함. 마을사업, 봉사활동, 자아실현 활동을 하겠다는 의견이 압도적. 이상으로 보아 현재 농어촌 이주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생태적 삶"에 대해 열린자세를 가지고 있음. 





농어촌으로 이주할 때 가장 걱정이 되는 점으로는 생활의 불편(21%), 이웃주민과의 친교(13%)로 나타남. 즉, 사회기반시설과 문화시설의 부재와 텃세를 가장 걸림돌로 생각함. 전자는 하나의 목소리로 지자체에 꾸준히 요구해야 할 사항이고, 후자는 선배 귀농인들이 이끌어주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함.




결론적으로 현재 농어촌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은 "생태적 귀농"에 충분히 관심을 보일 만한 자세를 지닌 분들이라 생각된다. 단지 그런 것이 있는지 알지 못하여 생태귀농이라는 걸 생각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 이런 분들에게 어떻게 하면 "생태귀농학교"와 <귀농통문>을 접하게 할 것인지... 귀농운동본부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래의 농촌경제연구원의 자료를 참고.


PRN04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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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중후반,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귀농'이란 주제가 사회운동의 하나로 조직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귀농 교육이 시작되었다. 운동의 초기 모습이 대개 그렇듯이, 당시의 귀농 교육은 주로 당위성에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졌다. 그래서 초기의 귀농자들은 마치 투사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귀농이란 깃발을 하나 들고 농촌으로 쳐들어가는(?)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그도 그런 것이 관행농업이 판을 치는 농업, 농촌에서 유기농업이란 낯설고 이상하기까지 한 방법을 주장하며 풀밭이 되더라도 고집스럽게 그 원칙과 방법을 고수하는 귀농자들은 쉽게 마을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지닌 당위성을 바탕으로 그러한 억압과 시련(?)을 이겨낼 수가 있었다. 말이라 쉽지 정말 길고도 외로운 싸움이었다.


미리 예견한 것은 아니지만, 1997년 터진 IMF 사태로 엄청난 수의 실업자들이 한꺼번에 귀농학교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필요한 건 당위가 아닌 현실이었다. 그들은 투사가 아니라 생활인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당위성에 충실한 귀농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투사이기 이전에 그들도 가족을 부양해야 할 생활인이었다. 결국 현실성을 갖추지 못한 초기의 귀농자들 가운데 대부분이 결국 다시 역귀성하여 도시로 나왔다.


그러나 어려움을 이겨내며 잘 정착한 초기 귀농자들 사이에서 현실적 요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린 당위성으로만 살 수 없다. 현실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귀농운동본부에서는 이를 받아서 조금씩 실용적인 농업/생활기술에 대한 강좌를 마련했다. 그 강사로는 정착한 귀농자들이 실력을 발휘했다. 그들의 강의는 펄떡펄떡 살아 있었다. 학자들의 고리타분하고 죽은 자식 고추 만지는 듯한 이론뿐인 교육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살면서 이러저러한 고민과 갈등, 번뇌 끝에 일궈낸 내용이기에 귀농 희망자들의 머리와 가슴을 울릴 수 있었다. 그렇게 강사진이 하나둘 귀농자들로 꾸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다. 귀농자들의 경험이 현장성이 살아 있고 실용적인 것은 사실이나, 체계화나 이론적 측면에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부분은 천상 학자들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 바로 밥그릇 문제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학자들이 주로 활동하는 무대는 대부분 관청과 연계한 귀농교육이다. 그곳에는 지원금 같은 돈이 넘친다. 그런데 그곳의 교육은 현실성만 강조하고 상대적으로 당위성은 취약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귀농하여 돈을 버는 데는 성공할지 모르나 농촌이란 사회에는 오히려 해가 될 때도 있다.


최근 은퇴자의 증가와 함께 귀농귀촌 바람이 불고 있다. 2011년에는 1만 여 가구가 귀농을 했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러한 귀농자들의 실상을 들춰보면, 10가구 중 6가구가 1인가구로 귀농을 한다고 한다. 곧, 농촌사회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부부가 함께 귀농할 때, 또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이 귀농할 때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아무튼 앞으로 귀농운동과 교육은 당위성을 바탕으로 개개인에게 도움이 되는 현실성을 갖추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위 따로 현실 따로 이루어지는 방식으로는 온전한 귀농인을 양성할 수 없다. 정부 차원의 귀농교육이 우려되는 점은 바로 이러한 측면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회단체 차원의 귀농교육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선 더 다양하게 현실성을 갖추고 전문적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안정적 자금이 필요하다. 이에 동의하심 회원가입을 바란다... http://t.co/dlMc1hMW


귀농운동본부는 이명박 정부에서 시행하는 4대강 사업에 반대하다 정부 지원 사회단체에서 탈락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벌여온 귀농사업 때문이었다. 이제 귀농자와 그 뜻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꽤 두터워진 덕이다. 그래도 그 저변이 확장된다면 더 큰 힘과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귀농, 농촌, 농업 문제는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로 꿰뚫어져 있다. 귀농운동이 잘 되어야 농촌이 살고, 농촌이 살아야 농업이 산다. 마찬가지로 농업이 살아야 농촌이 살고, 농촌이 살아야 귀농운동이 잘 된다. 모두 農이라는 이름으로 묶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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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곡식 씨앗에 깃든 우리의 미래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 32 

백승우 , 김석기 지음 | 들녘 | 2012년 11월 30일 출간


목차

여는 말_ 잡곡이 살아야 농업이 산다 _5 

1부 농사꾼이 들려주는 토종 씨앗 이야기 _백승우 
대표적인 불량식품, 밀 _12 
가장 작은 곡식, 조 _18 
열 사람이 지어서 한 사람 먹인다, 기장 _24 
일찍 심으면 일찍 먹고, 참깨 _30 
팥, 좋아서 심는다기 보다도 _38 
콩농사, 알고 지으면 거둘 게 많다 _44 
쉬우면서도 어렵다, 율무농사 _53 
가난한 농사꾼들의 호사(豪奢), 수수 _61 
고생고생 사람잡던 보리농사 _71 

2부 농부와 토종 씨앗의 동행 _김석기 
새로운 비상을 꿈꾸다, 토종 앉은뱅이밀 _84 
밀은 밀인데? 토종 호밀 _111 
그 맛이 궁금하도다, 기장 _125 
자식만큼 손이 많이 가는 농사, 토종 참깨 _145 
추위를 몰아내는 기운, 토종 팥 _164 
전통농업의 주인공, 토종 콩 _188 

맺음말_ 잡스러운 세상이 건강하다 _219

책속으로

큰 산 하나만 넘고 강물 하나만 건너도 비바람이 다르고 햇살이 다르고 땅과 흙이 다르니 지역마다 잘되는 씨앗이 따로 있었을 테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고집 세고 긍지 높은 농사꾼들, 아마도 제 맘에 맞는 씨앗도 다 따로 있었을 것이다. 
맛이 있는가? 수량은 얼마나 나는가? 모양이 예쁜가? 빛깔이 고운가? 가뭄에 잘 견디는가?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는가? 갑작스러운 추위에 견디는가? 병은 없는가? 벌레가 꼬이지는 않는가? 저장도 잘되는가? 두루두루 따져보고, 이웃이 심은 밭을 여러 해 동안 지켜본 뒤에 어렵게 말 꺼내서 조금 얻어온 씨앗. 한꺼번에 왕창 심었을 리도 없다. 조심스럽게 조금 심어보고 씨 받아 늘리면서 확신이 선 뒤에야, 물려받은 씨앗을 그만두고 새로운 씨앗을 심었을 것이다. 이웃이 청하면 또 조금 나누어 주고……. 
이렇게 이 땅에서 오랜 시간 여러 대에 걸쳐서 선별되고 고정된 씨앗을 ‘토종’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밀의 원산지는 아프가니스탄 지역이지만 ‘앉은뱅이밀’의 원산지는 한반도가 된다. 우리 땅과 하늘과 비와 바람이 농사꾼의 손을 빌어 선택한 씨앗, 이것이 토종이다. 
- ‘여는 말_토종이 살아야 잡곡이 산다’ 중에서 

마을로 내려와서 동네 사람들이 참깨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니 “씨앗을 제대로 못 붙이는” 집이 많았다. 자신들은 도마재에서 괭이로 골을 타고 아궁이 재에다 참깨 씨앗을 섞어서 뿌리는 방법을 개발하여 참깨를 세우지 못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보듯이 참깨는 씨앗이 잘다. 그 자잘한 씨앗을 적당히 고르게 뿌리는 일이란 여간 어렵지 않다. 
“너무 많이 뿌려도 (솎느라) 힘들고, 아예 적게 뿌리면 (싹이 잘) 안 난다. 많이 뿌려 깨를 솎아내고 앉아 있다가는 다른 농사를 못 짓는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처음에는 흙이나 모래에 참깨 씨앗을 섞어서 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흙과 모래는 무거워서 그런지 별로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재는 거름도 되고 가볍고” 하니까 여기다 섞어서 뿌려보자는 생각에 그렇게 해보았다. 역시 생각했던 것처럼 씨앗과 섞기에도 맞춤하고, 심고 나서 싹도 잘 났다. 그 이후 참깨를 심을 때에는 늘 재에다 씨앗을 섞는 방법을 썼다고 한다. 이런 방법이 옛날에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카하시 노보루 박사의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을 보면, 재뿐만이 아니라 재에다 똥을 버무린 똥재를 말렸다가 가루로 부숴 조나 밀 등의 씨앗과 섞어서 뿌리는 방법이 자주 나타난다. 조나 참깨같이 씨앗이 작고 가벼운 것들은 그것만 들고 뿌리기에는 어렵고 흙을 덮어주는 일도 곤란하다. 미리 재나 똥재와 같은 가벼운 알갱이와 섞어서 뿌리는 것이 더욱 수월할 것이다. 
(중략) 
안석자 님이 기르는 참깨는 시어머니 때부터 내려오던 씨앗이다. 분명 신품종을 쓰면 수확량이 더 많을 텐데 왜 바꾸지 않고 토종 참깨를 그대로 이어오신 걸까? “옛날에 쓰던 걸 내려오다 보니까 계속 심어요. 맛은 아마도 옛날에 먹던 게 더 낫다고 생각하구요”라는 그녀의 답에선 아무 특별한 까닭을 찾을 수 없다. 수확이 더 난다든지, 맛이 특별히 더 좋다든지, 농사짓기가 훨씬 수월하다든지 하는 색다른 까닭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옛날부터 심어오던 것이니까, 별 문제가 없으니까 심어 나아갈 뿐이다. 어떻게 보면 습관이라고나 할까. 
그런 습관이 또 하나 있다. 씨앗을 준비하는 행위이다. 
“일단 씨앗부터 좋은 종자를 골라서 남기고, 나머지를 팔고 먹고 그래요. 옛날에는 씨를 안 받으면 어디서 구하지를 못했어요. 씨앗을 미리 마련해두고 나머지를 팔아야 살 수 있으니 알뜰히 한 거지요. 나는 특히 마을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씨앗을 받으러 다 와서 늘 일부러 넉넉히 뒀어요. 먹는 건 좀 덜 먹어도 씨앗을 넉넉히 뒀지요. 옛날부터 씨앗을 많이 두는 사람을 넉넉하고 마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만큼 씨앗이 최고 중요한 거예요.” 
그러나 지금 농사는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대한 많이 수확해서 싹싹 긁어서 내다 팔아 돈을 만들고, 다음에 농사지을 때에 쓸 씨앗은 종묘상에서 사다가 심는 식의 농업으로 전환된 지가 오래되었다. 이제는 씨앗을 받아 심는 사람도, 그걸 대를 이어 물려받을 사람도 사라진 시대다. 최고 중요하다는 씨앗은 이제 농업 관련 기업에서 전적으로 생산하여 판매한다. 
- ‘자식만큼 손이 많이 가는 농사, 토종 참깨’ 중에서 

현재 토종 씨앗은 전통농업의 소멸과 함께, 그리고 농민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농사가 더 이상 집에서 먹을거리 위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하나로 편입이 되면서 그러한 경향은 더욱 빨라지고 심화하였다.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집에서 먹을거리를 농사짓던 사람들은 경쟁에서 밀려 도시로 이주해야 했고, 그나마 농 더보기

출판사 서평

토종 씨앗 한 톨에 담긴 농부의 땀과 삶 
예로부터 잡곡농사는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 농사였다. 잡곡은 쌀이 아니라는 이유로 ‘잡스러운’ 취급을 당했지만, 쌀의 빈자리를 채워준 고마운 존재였다. 예부터 벼농사가 잘 안되면 대신 짓기도 하고, 귀한 쌀을 대신해 가난한 농민들의 끼니로 부족한 영양까지 메워주었다. 밀, 참깨, 조, 팥, 율무, 콩, 보리, 기장 등을 계절, 땅을 나누어 기르고 때가 되면 거두어 먹었다. 잡곡의 ‘힘’을 사람들이 알게 된 건 참살이(웰빙) 바람이 불면서였다. 옛날에는 천대받았지만 오늘날은 건강식으로 아주 귀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토종’ 곡식은 별로 없다. 농촌에서 사람이 사라진 탓이다. 아직 농촌에 남은 나이 든 농부들은 팔기보다는 집에서 먹으려고 토종 곡식을 기른다. 
같은 곡식이라도 농부마다 농사짓는 방법이 다 다르다. 경험을 통해 얻은 자기만의 비법이 존재한다. 더구나 오랜 시간 우리 땅의 특성에 적응한 토종 곡식에는 그것에 맞는 특별한 재배방법이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농촌에 사람이 없고, 곡식을 기르지 않아 긴 세월 쌓인 농부들의 지식은 사라지고 있다. 또한, 곡식을 기르고 거두고 탈곡해서 먹는 과정에서 썼던 농기구 등도 찾아보기 어렵다. 앞으로는 각 지역에서 그 곡식으로 해 먹었던 음식조차 맛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농경문화의 소멸이다. 농촌에 사람과 문화가 없어진다는 것은 씨앗도 남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이 책은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사라질지도 모르는, 현역 농부들의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 역시 농부인 저자들이 이 땅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토종 곡식을 기르고 먹는 농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 농사꾼들이 대부분이지만, 그중에는 도시에 좋은 먹을거리를 공급한다는 마음으로 토종 곡식을 기르는, 아직 젊은 농부들도 있다. 착하고 끈기 있는 농부들은 토종 곡식을 어떻게 잘 기르고, 잘 먹는지 등 긴 세월 쌓은 지식을 아무 아낌없이 퍼준다. 실용적인 지식을 담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토종 곡식과 어우러진 농부의 삶 이야기가 가득하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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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귀촌이 열풍이다. 하지만 그것이 삶의 전환이 아니라 단순히 직업의 전환이 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 기사에 보이는 기러기 아빠의 문제이다. 가족이 오손도손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여느 도시의 기러기 아빠처럼 남자는 돈만 벌고, 여자는 아이만 키우는 이상한 가족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귀농은 기사의 지적처럼 감상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만 많이 버는 농업의 형태를 선택하는 것도 방법은 아닐 것이다.






굵은 비가 대지를 적신 지난 23일 아침 경기도 안성. 지방도에서 벗어나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200m가량 지나서야 만난 '농부' 김영재(44)씨는 "비 오는 날은 휴일"이라며 "하늘과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이런 불규칙함이 오히려 편하다"며 웃었다.


서울에서 담배회사 마케팅 팀장으로 일하던 그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2010년. 부친 소유인 13만9000㎡의 밭에서 고구마와 감자, 마를 키우는 게 일이다. 작년 수입으로 저온 저장시설을 짓고, 고구마 재배용 트랙터를 사고도 7000만원을 넘게 남겼다.

"도시 생활보다 여유가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그는 정색을 했다. "땅을 빌린 임대료는 아버지에게 주변 시세와 똑같이 드리고, 농번기에는 주말·휴일도 없습니다. 야근, 밤샘도 많아요. 천안 연암대학에서 2개월간 숙식을 하며 강도 높은 교육을 받고, 전문가와 상의해 면밀한 사업계획서까지 마련하며 1년 넘게 준비를 했는데도 힘이 들어요. 제가 선택한 길이라 스트레스를 덜 받고, 농한기(12~1월) 재충전 시간이 있다는 게 그나마 장점이죠."

그는 작년 농번기 때는 밤새도록 인부들이 쓸 낫을 갈고, 낮에 마무리 못한 밭일을 하느라 휴대용 랜턴과 전구를 켜고 작업을 하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이 대학에 갈 때까지 '기러기 아빠' 생활을 농촌에서 해야 하지만, "새 일터에서 안정된 기반을 잡기 위해 이 정도 각오는 하고 왔다"고 했다.

◇"귀농도 취업, 감상은 금물"

지난 12일 경기도 수원에 문을 연 농촌진흥청 산하 귀농귀촌 종합센터(031-299-2200ㆍwww.returnfarm.com)에는 요즘 예비 귀농·귀촌자들의 문의가 쇄도한다. 전화 상담원들의 목이 쉴 정도다. 센터 관계자는 "한 사람이 많으면 하루 200통의 문의전화를 받는다. 호기심 차원의 문의도 많지만, 절반 이상은 진지하게 귀농 계획을 세우는 분들이어서 우리도 놀란다"고 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에서 농어촌으로 총 1만503가구, 인구로는 2만3415명이 빠져나갔다. 2010년 4067가구의 2.6배다. 작은 수도권 신도시 하나가 농촌으로 옮겨간 셈이다. 올해 귀농·귀촌자는 2만 가구를 넘을 것이라는 게 농식품부의 예측이다. 하지만 위 김영재씨의 사례에서 보듯 감상이나 낭만은 금물이다. 도시에서 창업하거나 취직하려는 사람 못지않은 준비가 필요하다.

농식품부가 선정한 우수 귀농인 25명 중 한 사람인 한동훈(36)씨 역시 철저한 사전 준비로 빛을 본 경우다. LG CNS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그는 2009년 말 가업(家業)인 임업에 뛰어들어 13만2000㎡ 부지에 느티나무, 왕벚나무 등을 키우고 있다. 작년 수익은 1억원 정도. 그는 "귀농 전 1년간 전국의 임업농가 100곳 이상을 탐방하며 나무 품질과 품종을 파악했고, 요즘도 최신 재배 동향을 파악하고, 필요한 나무 품종을 확보하느라 한 달 1만㎞ 이상을 도로 위에서 보낸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귀농 인구

귀농 열풍이 농촌에 반가운 이유는 귀농 인구가 기존 농촌 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기 때문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작년 귀농자의 76%가 50대 이하로 전체 농촌 인구 중 50대 이하 비중 58%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귀농자 중 40대와 50대 비중은 각각 26%와 34%로 전체 농촌 인구 중 40대와 50대 비중인 12%와 19%를 크게 웃돌았다. 〈그래픽 참조〉

서규용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30~40대 농촌 인구 평균소득이 도시보다 많은데 이는 젊은 영농후계자와 함께 귀농자들의 역할이 컸다"면서 "귀농자들이 농촌의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장태평 마사회장(전 농식품부 장관)은 "귀농인들이 스스로 '경영자'라는 자각을 가져야 한다. 농업도 다른 산업 못지않게 기술과 경영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귀농자의 절반 이상(52.7%)은 생산기술이 단순하고 초기 투자 비용이 적은 벼나 배추로 농사를 시작한다. 이들이 보다 높은 기술을 요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작물에 도전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 농업계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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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과 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억대 부농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대강 계산해 보니까 전체 농민 가운데 억대 부농의 비율은 2~3%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되기 힘든 것이 억대 부농인데 왜 그걸 전면에 내세우는가? 은퇴자들에게 듣기 좋은 소리로 귀농귀촌을 유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귀농귀촌자가 많아지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나, 그들에게 억대 부농이니 그런 환상을 심어주기보다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삶으로 전화하는 걸 알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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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전국적으로 귀농·귀촌 가구 수가 가파른 증가 추세다. 지난 2월 23일 농림수산식품부가 발표한 '2011년 귀농·귀촌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귀촌 가구 수는 1만503가구로 나타났다. 인구수로는 2만3415명으로 가구당 2.2명꼴이다. 귀농·귀촌 가구 수는 집계를 시작한 2001년 880가구이던 것이 2005년에는 1240가구, 2010년에는 4067가구로 급증하는 양상을 보이더니 지난해에는 급기야 1만 가구를 훌쩍 넘어서며 전년 대비 무려 158%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귀농·귀촌 가구 수는 3만82가구로 늘어났다.


지역별로는 강원(20.6%)·전남(17.2%)·경남(16.8%)·경북(16.7%)순으로 가구 수 비율이 높았으며 이들 상위 4개 도의 비중이 71.3%를 차지했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합계로 보면 경북(22.4%)·경남(16.3%)·전북(14.8%)·전남(14.1%)·강원(12.5%)순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귀농·귀촌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강원도는 전년 대비 7배 가까이 늘어나 주목을 끈다.

이는 강원도가 다른 지역 대비 수도권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전원생활 여건이 좋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해 귀농 가구와 귀촌 가구의 지역별 비율을 보면 전남(84.4%)을 비롯해 경북(70.8%)·경남(68.2%) 등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귀농 가구 비율이 높은 반면 강원도는 귀촌 가구가 70.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귀농 가구(29.7%)의 2.3배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1년 전국 귀농·귀촌 가구 중 귀농 가구는 62.3%로 귀촌 가구(37.7%)의 두 배 가까이 된다.

지난해 귀농·귀촌이 급격하게 증가한 배경에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시작 시점과 맞물리며 전원생활 등을 통한 인생 2막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 데다 귀농·귀촌에 대한 달라진 시각도 한몫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지난해 연령별 귀농·귀촌 현황을 보면 50대(33.7%)·40대(25.5%)·60대(18.7%)순으로 높게 나타나 40~60대 비중이 77.9%에 달한다. 50대와 40대가 각각 전년 대비 142%, 118% 증가한 데 비해 60대는 무려 230%가 증가했고 30대도 160%나 늘었다.

귀농·귀촌 전 직업 현황 결과로는 가장 높은 비율이 자영업(27.5%), 그다음 사무직(19.3)과 생산직(8.8%), 주부(5.6%)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농어촌에 이주해 농어업에 종사하는 귀농자의 주요 작목은 경종(벼·배추 등 노지 작물)이 52.7%로 가장 많았고 과수(17%)·원예(13.1%)·축산(6.3%)순이었다.

베이비부머 은퇴 시작과 맞물려

연간 1억 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부농(富農)도 늘어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전국 농업인과 농업법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연봉 1억 원 이상의 고소득자는 1만6722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1만4641명) 대비 14% (2081명) 증가한 것으로, 농업인은 2009년 대비 14% 증가한 1만5959명으로 조사됐고 농업법인은 18% 증가한 763개로 나타났다.

종사 분야별로는 축산이 7844명(46%)으로 가장 많았고, 과수(2817명, 17%), 채소(2087명, 12%), 벼(1663명, 10%), 특용작물(1145명, 7%)순이었으며, 벼는 2009년 대비 41%가 증가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고 축산업도 9% 정도 증가했다. 지역별 부농의 수를 보면 역시 축산업이 가장 발달한 경북이 7499명(44.8%)으로 가장 많이 분포돼 있다. 이어 전남 2753명(16.5%), 전북 1568명(9.4%)순이었으며 전남이 2009년 대비 148.7%로 가장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50대가 8220명(49.1%), 40대가 3785명(22.7%)으로 나타나는 등 40~50대가 71.8%를 차지했다.

소득대별 분포는 1억~1억5000만 원 미만의 소득을 올린 농민이 9885명으로 전체의 59%에 해당했고, 1억5000만원~2억 원이 2949명(18%), 2억~3억 원이 2128명(13%), 3억 원 이상이 1760명(10%)으로 조사됐으며 이 중 10억 원 이상을 버는 초고소득 농민도 164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억~1억5000만 원 소득 농민은 2009년 대비 1019명(12%) 늘었으며, 2억~3억 원의 소득 농민도 20% (350명)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처럼 부농이 증가하는 요인으로 영농의 규모화 및 생산성 향상, 부가가치가 높은 친환경 농업의 기반 확대, 가공 산업 육성, 판로 안정, 현지의 마케팅 경쟁력 증대 등을 꼽았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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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IJING - Although she grew up in the posh city of Hangzhou in eastern China, Luo Yi has opted to settle down on a farm in a northern suburb of Beijing.

The 23-year-old woman graduated from college last year with a journalism degree. She was won over by the Little Donkey Farm's organic farming concept and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CSA) model, and now she spends her days watering vegetables, making pickles, and learning needlework

"I also had never lived in the countryside, and was quite curious about farm life," she said.

While a large number of rural youths have abandoned the traditional farming lifestyle in order to move to cities for more work opportunities, some young people from cities have looked to the countryside for an alternative lifestyle or a new career path.

"I really enjoy the simplicity of life here," Luo said, adding that she thinks life in the countryside is a good escape from the consumerism-driven lifestyle found in cities.

"I used to love shopping, especially for clothes and electronics. But since I came to live here, I have started realizing that I don't need those things that much."

She has stopped using her mobile phone and no longer shops for new clothes. Instead, she has learned to alter her old clothes into new styles, and she exchanges clothes with her female colleagues at the farm.

"My parents strongly opposed my decision to work in the farm. Over the past few months, they have been shocked by the changes in my life, and they have gradually come to understand me," she said.

GOING BACK TO THE FARM

The Little Donkey Farm was founded three years ago by Shi Yan, a young agriculture scholar from Renmin University of China. Shi was inspired by her six-month experience as an apprentice at a CSA farm in Minnesota, United States.

Shi has applied the CSA model to her farm, which grows organic vegetables and sells them directly to individual consumers in Beijing.

Consumers can sign a year-long contract to purchase organic vegetables grown by the farm, and choose to either pick up their produce at various locations throughout the city or have the farm deliver it directly to their door. They can also rent a 30-square-meter plot at Shi's farm to do their own gardening.

More than 30 young people are currently working for the farm, most of whom are from the cities and had not farmed prior to coming here. They are working side-by-side with about 20 local villagers.

Wang Rui, a young apprentice, decided to join the farm after failing the national civil servant exam last year.

Inspired by the CSA model, he hopes to start his own farm in the future, so he came here to gather experience.

"There's an increasing need for organic food in cities. CSA farms not only provide urban residents with what they want but also help farmers raise income," Wang said. "This will be a promising career."

When the farm was established in 2009, only 37 clients placed annual orders and 17 rented their own plots. But now over 460 clients order vegetables and 260 lease land, said Huang Zhiyou, vice general manager of the farm.

"We have made ends meet, but do not seek profits like most farms. We would like to promote the idea of CSA and organic agriculture technologies," Huang said.

They are trying to introduce a new type of consumer-producer relationship that promotes more interaction between the two sides, he said.

Clients and their families are often invited to join harvest celebrations and festival functions, listen to lectures on farming and agriculture, or watch documentaries and films. The farm also receives visitors from across the country.

Huang, the 30-year-old father of a baby boy, has been working for the farm since it opened. His family lives on the farm with him and the only income they receive is from his salary, which is about 2,000 yuan (318 U.S. dollars) a month.

"It's a bit hard to live in the countryside, but I never regret my choice as both my work and life are rooted here," he said.

He sees the farm as an experiment in reforming and developing rural society.

"Despite rapid economic growth in China, rural areas have lagged far behind cities, making them less appealing to young people. Villages are becoming less and less vigorous," he said.

The farm can be a way to revitalize the countryside, he said.

"Organic farms, which provide more income for farmers, might attract migrant workers to come home and return to farming. The farm is also a way for urban residents to learn more about rural areas and farming," he said.

According to the Rural Reconstruction Center under Renmin University, experimental projects like the Little Donkey Farm have been founded in 14 provinces in China and about 100,000 college students have taken part in rural development programs, including organic agriculture, eco-friendly architecture in rural areas and rural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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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젊은 귀농자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더 많은 사람들이 농업의 가치에 눈을 뜨고 농사짓길 바라는 마음으로 찍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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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는 사정과 조건이 많이 다르지만, 미국도 귀농하려는 사람이 있고, 그들에게 정책적으로 재정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의 농업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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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농촌의 젊은이들이 흙에서 일하는 대신 사무실에서 일함으로써 미국 농부의 평균연령은 10년 동안 높아져서 현재 60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농장을 운영하는 데 관심이 있어 돌아오더라도, 다음 세대의 식량 생산자들은 새로운 지평을 여는 데 여러 경제적 장벽에 직면한다.

비싼 작물 가격은 2007년 이후 농지의 가격을 42% 높여 놓았고, 경기 침체는 융자에 제한을 두게 만들었다.

미국 캔사스주 Pratt County의 농업 대부계에 있는 Brandon Riffey에 따르면 가족, 이웃이나 정부에게 큰 도움을 받지 않고 농업을 시작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정부는 젊은 사람들이 융자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여 농업에 종사하게 하도록 노력해왔다. 미 농무성은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농부들이 저리의 융자 -현재 운영 비용에 대해서는 1.75%, 농지 구입에 대해선 4.25%- 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Riffey는 정부 대출로 60만 달러까지 받을 수 있지만, 사업 비용은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높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은 귀농하려는 농부와 목장주를 위한 대부 프로그램의 자격요건을 낮추려는 예산안을 이번 주 의회에 제출하려고 하는 듯하다.

우리는 이 농업 예산안이 고령화되는 미국 농업과 농업을 시작하려는 젊은이들이 겪는 경제적 기회의 부족이란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국립 지속가능한 농업연합의 정책 이사 Ferd Hoefner는 말한다.

전통적으로, 2011년 귀농자를 위한 기회법으로 알려진 이러한 예산안은 그 자체만으로는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다. 올해나 다음 해에 전체적인 농업예산안과 함께 의회를 통하여 통과될 것이다.

이는 새로운 농업 대책이 효력을 발휘할 2013년까지 새로운 농부들이 법적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귀농자를 위한 대출 프로그램은 2002년 213명에서 2011년 563명으로 해마다 늘어날 정도로 캔사스주에서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현재 수요가 쓸 수 있는 자금을 초과한 상태다. 9월 30일 기준으로 30건 전체 340만 달러의 대출이 돈을 쓰겠다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4~5년 전까지는 꽤 잘 운영되었는데, 지금은 점점 대기자가 늘고 있다"고  Riffey는 말한다.

지난 11월 캔사스주의 25세 Brendon Wheelock는 농장의 확장과 운영비로 55만 달러의 대출을 승인받았다: 22만 5천 달러는 미 농무성의 귀농자 프로그램을 통해 받고, 나머지는 민간 은행에서 받았다.

그러나 Wheelock이 땅을 구입하려고 갔을 때, 그의 정부 대출은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어 그는 정부 대출보다 약 2배의 이자를 감수하며 추가로 민간 대출을 받아야 했다. Wheelock에 따르면 그가 5월에 드디어 대기자 명단에서 빠졌을 때,  그는 정부 대출을 받았으면 내지 않았어도 될 약 8천 달러의 이자를 더 냈다.

귀농자 프로그램이 다음 농업예산안에서 확대되더라도 경제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비싼 땅값과 작물 가격이 부채 없이 안정적인 농민에게는 영농 이익을 가져오겠지만, 심각한 재정적 위기에 처한 새로 들어온 농민에게는 거의 이득이 되지 않는다.

"아마 대개의 경우 땅값은 농업 그 자체에 대한 미래의 수익 면에서 별 가치가 없다"고 캔사스 주립대학의 농경제학과 David Lambert는 말한다.

대신 부채를 갚고 있는 새로운 농부들은 자신의 수고로 얻는 열매 이상의 재정적 지원을 찾아야 한다.

캔사스주의 38세 Trent Friesen는 5년 전 전업농이 되었다. 680만 평에서 밀과 콩을 농사짓지만, 그는 그의 이웃 농장에 고용되어 곡물과 가축을 돌본다. 

그는 "내 시간의 적어도 40%는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데 쓰고 있다"고 한다.  "추가적인 수입이 없이는 버티기 힘들다."

Friesen는 혼자가 아니다.

"새로 들어오는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새로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은 농업 이외의 다른 수입원이 있다"고  Riffey는 말한다. "농장에서 얻는 수입만으로 가족을 부양하려면 상당히 큰 규모의 농장을 갖추어야 한다."

Friesen과 다른 캔사스주의 농민들은 프로그램이 확대되기를 희망하며 내다보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Friesen는  "난 어떠한 땅도 소유할 수 없을 것이고, 사업을 하는 데 곤란을 겪을 것이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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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uardian.co.uk/commentisfree/2011/feb/14/mexico-back-to-the-land-peasant-farmers



영어 실력이 달리니 더듬더듬 이해한 바를 풀자면 이렇습니다. 영어 실력 좋으신 분의 첨삭을 바라며...



'멕시코' 하면 먼저 경제난, 미국에 종속된 경제, 심각한 범죄율이 떠오릅니다. 그런 나라에서 땅으로 돌아가 소농이 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네요.

 

현재 멕시코는 식량의 절반 이상을 수입하는 처지입니다. 그 배경에는 바로 소농에 대한 지원 철폐가 있지요. 그에 대한 기사의 내용에 나오는 1991년 카를로스 행크Carlos Hank라는 농업장관의 말이 무척 인상적이네요. 그는 "농업장관으로서의 내 의무는 1000만 명의 소농을 처리하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답니다. 또한 전 코카콜라의 대표와 2000~2006년 재임한 멕시코 대통령 빈센트 팍스는 "멕시코의 소농들이 텍사스에서 정원사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지요. 과연 멕시코의 지도층은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소농을 없애고, 자신들의 모델인 미국처럼 전체 노동력의 2.5%만으로 식량수출국이 되려고 꿈꾼 것일까요? 그 결과는 누구나 알고 있는 지금의 멕시코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한미 FTA를 맺었지요. 아직 실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물론 멕시코와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요. 지경학적 요건도 다르고 하니까요.

아무튼 멕시코는 그렇게 꾸준히 소농을 줄이고 그들에 대한 지원을 끊으면서 1992년에 1910년의 혁명을 통해 소녿들이 관리하던 토지를 민간시장에 개방해 버렸습니다. 또한 1994년에 시행된 나프타(The North American Free Trade Agreement)를 통해서는 자유시장이란 이름으로 소농을 죽이는 정책을 강화했지요.  그러한 정책으로 값싼 미국산 식품이 들어오고 정작 자신들의 기반인 소농이 감소하면서 자국의 식량 생산이 엄청나게 감소한 결과, 현재 멕시코는 필요한 곡물의 절반 이상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이 참 남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우리도 쌀 빼고는 전부, 싸그리, 모조리 다 수입해서 먹고 있는 실정인 것은 다들 잘 아실 겁니다. 그리고 멕시코인들의 대다수는 일을 찾아, 먹을거리를 찾아 어쩔 수 없이 이민을 떠나 멕시코인의 1/5이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네요.

 

이러한 일이 벌어진 배경에는 식량과 관련한 산업 이야기가 빠질 수 없습니다. 그전까지 자국의 사람들을 먹이는 데 치중하던 농업이 언젠가부터 세계를 무대로 하는 다국적 기업의 주무대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배경에는 이런 일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1974년 미국 농업장관 얼 버츠Earl Butz는 식량을 실용적인 정치 무기로 쓴다는 의미로 "식량 권력food power"이란 표현을 만들었답니다. 식량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표현이네요. 이렇듯 20세기에 들어와 굶주림은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농업보조금 이야기도 언급이 됩니다.그 보조금이 식량을 수출하던 미국과 유럽의 식량공급자들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지적하는데, 오늘날 OECD 국가는 에탄올 보조금이란 목적으로 3650억 달러를 할당하고 있다네요. 현재 무려 1억 2000만 톤의 곡물이 자동차를 굴리는 데 쓰인답니다. 

 

그러한 암울한 상황에서 멕시코의 소농들이 정부 정책에 저항하며 스스로 대안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의 지원 없이 농경지와 생산량을 늘리고, 이민자들은 자기 수입의 일부를 농업에 투자하고 있답니다. 또 그러한 계획이 자체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쿠바의 도시농업의 사례를 실천해 보완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와 함께 멕시코 소농의 비율은 전체 인구로 비교하면 과거보다 떨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지속불가능하고 폭력적인 도시의 삶에서 탈출해 농촌으로 돌아온 도시민들 때문에 전체 숫자는 더 높아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땅으로 돌아가는 계획의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도시에서 쓰던 현대 기술을 이용해 농촌에 새로운 생활방식을 만들고 있답니다. 이러한 경향이 '비아 깜페시나'와 같은 세계적 소농 조직에 의해 점점 자리를 잡아 간다고 강조하며 글을 마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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