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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싹 마른 늦겨울과 초봄을 보며




지난 섣달부터 정월까지, 온통 아주 바싹 말라 있습니다. 뻥 좀 보태면, 길을 걷다가 버석거리는 소리에 놀랄 정도입니다. 집안도 너무 말라, 빨래를 널면 금세 마르니, 그거 하나는 좋습니다. 이런 때는 작은 불씨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다행히 올해는 아직 큰불이 났다는 소식은 없네요. 작은 불은 몇 번 났다고 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건조한지 피부로 다가오지 않으시나요? 요즘 평균 상대습도가 30~50% 안팎입니다. 사람이 가장 기분 좋다고 느끼는 상대습도가 60% 안팎이라고 합니다. 상대습도가 80%를 넘으면 슬슬 짜증이 나죠. 그러면 옆에 사람이 붙는 것도 싫습니다. 심지어 남편이 은밀한 눈길을 주며 찰싹 들러붙어도 발길질로 밀어낼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건조한 날씨가 왜 그럴까요? ‘겨울은 으레 그러니까’라고만 생각하시나요? 뭐, 그게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거기에 더 뭐라고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재밌는 해석이 있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시길 바라며,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우리 가끔 하늘을 보자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이라는 시구를 아실 겁니다. 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요즘 하늘을 올려다보신 적이 있나요? 90년대에는 ‘그래 우리 가끔 하늘을 보자’라는 말이 유행한 적도 있지요.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인생이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는 여유를 갖자는 말입니다. 하늘은 그렇게 나 자신을 돌이켜보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이런 생각은 우리네 전통과 관련이 깊습니다. 예부터 우리에게 하늘은 그냥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서양에서도 하늘은 신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는 무엇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이 가장 어여삐 여기시는 사람이야말로 세상의 중심, 아니 온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해 지동설을 주장했지요. 지금은 초등학생도 웃을 일입니다.

우리도 사정은 그네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왕을 중심으로 한 정치체제를 세운 동양에서, 하늘은 왕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존재였습니다. 아마 하늘에서 무언가 읽고 전하는 무속이 그런 형태로 발전했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하늘을 보는 일은 천자의 일,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하늘을 보고 한 일은, 바로 ‘때’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요즘과 달리 그때는 ‘때’를 찾는 일이 참으로 중요했습니다. 때를 제대로 찾지 못하면, 큰일이 났지요. 농업이 나라의 주요 근간이어서 제때 농사짓지 못하면 어마어마한 재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핸드폰만 열어도 날짜와 시간을 바로 알 수 있지만, 그때는 어디 그런 것이 있었나요. 우리는 정말 엄청난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음에 고마울 뿐입니다.

옛사람들은 하늘에서 ‘때’만 본 것이 아닙니다. 자꾸 때 때 거리니 때밀이가 생각나네요. 그럼 때 말고 무엇을 보았느냐. 바로 하늘의 움직임에서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읽었습니다. 이 전통은 우리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이라면, 어디에 살든지 다 똑같았습니다. 우리는 내 앞날이 어떨지 한치 앞도 모릅니다. 그만큼 우리는 이 세상에 어떻게 왔는지 모르는, 내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무섭고, 어떨 때는 두렵기까지 합니다. 평소에는 별로 자각하지 못하고 살다가, 나를 돌아볼 일이 생기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땐 별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럴 때 사람은 무언가 의지할 곳을 찾습니다. 교회에 나가거나 산을 찾거나 술을 마시거나 점을 보러 갑니다.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늘을 보는 일이었습니다.



하늘에 불이 났다?


그럼 그들은 하늘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알아 맞춰 보세요. 네, 별입니다. 인간은 예부터 밤하늘의 별을 보고 거기에서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읽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넘기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과 연관된 부분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즘 밤하늘의 별이 어떤데 그걸 건조한 날씨와 연결시키려는지, 얼토당토않은 소리겠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십시오.

그럼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별이 보이나요? 별자리를 잘 모르신다고요. 저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별자리를 찾아보았습니다. 군포에서 농사지으시는 우리의 별 선생님께 “별바라기”라는 좋은 프로그램을 소개받아 그걸로 보았습니다.

요즘 밤하늘에는 벌건 별 하나가 엄청나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화성입니다. 처음 하늘에 관심을 가진 뒤 화성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세상은 놀라움과 신기함으로 가득합니다. 도무지 심심할 틈이 없습니다.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별들 가운데 움직이는 건 떠돌이별, 그 자리에 늘 있는 건 붙박이별이라는 걸 학교에서 배워 아실 겁니다. 특히 붙밭이별에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만든 것이 바로 별자리입니다.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는 동·서양이 서로 다르지요.

그리고 떠돌이별 가운데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건, 수성, 금성, 화성, 토성, 목성입니다. 이렇게 다섯에서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목, 화, 토, 금, 수라는 오행이 나왔습니다. 또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해와 달에서는 바로 음과 양이 나왔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음양오행이란, 하늘의 법칙에서 온 우리식 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이 뭐 별 건가요. 복잡한 공식, 수학 풀이, 딴 나라 이야기 같은 것만 과학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것들에서 규칙과 법칙을 찾아 정리하면 그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밤이면 우리의 머리 위에서 시뻘겋게 빛나는 화성이 요즘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 아시나요? 바로 미리내(은하수)에 푹 빠져 있습니다. 지난해 동짓달부터 미리내에 빠져, 지금도 미리내에서 헤엄치며 놀고 있습니다. 강물에 뜨거운 불이 빠졌으니 어떻겠습니까? 물론 불이 꺼질 수도 있지요. 그러나 물이 마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아주 근거가 없는 이야기인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상대습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자료를 살펴보겠습니다. 아래 표에 나오는 날짜는 양력 기준입니다. 그리고 상대습도의 단위는 %이고, 수원에서 관측한 기록입니다.

먼저 동짓달인 양력 12월 10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0일

70

20일

79.3

30일

53.1

11일

80.9

21일

80.4

31일

54

12일

79.6

22일

64

1일

51.8

13일

65

23일

73.8

2일

62.1

14일

61.4

24일

73.1

3일

65

15일

72.9

25일

75

4일

64.4

16일

72

26일

69.5

5일

75.6

17일

73.8

27일

83.1

6일

86.9

18일

82.5

28일

90.6

7일

93.4

19일

74.6

29일

72

 

 

동짓달에는 화성이 미리내에 빠졌다고 해서 그렇게 건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반적으로 습했습니다. 이거 알다가도 모를 노릇입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섣달은 어떤지 보겠습니다.

8일

79.6

18일

42.1

28일

54.3

9일

57.1

19일

45.1

29일

57.1

10일

54.4

20일

53.8

30일

52.1

11일

80.1

21일

75.1

31일

49.1

12일

69.5

22일

89.6

1일

52.9

13일

46.4

23일

65.9

2일

60.1

14일

50.9

24일

40.8

3일

68.6

15일

38.6

25일

48.1

4일

59.4

16일

37.1

26일

52.6

5일

50.9

17일

40.5

27일

57

6일

54.9

섣달에 들어오면서 동짓달보다는 더 건조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중순을 지나면서부터는 확실히 습도가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설날부터 오늘까지의 습도를 살펴보고, 무엇 때문인지 따져 보겠습니다.

7일

54.9

12일

31.4

17일

42.4

8일

61.6

13일

40.4

18일

52

9일

65.8

14일

56.6

19일

68

10일

66.4

15일

38.1

20일

57.3

11일

63

16일

42.5

 

 

정월은 지난 섣달보다 더 건조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뭔가 감이 오지 않으신가요?



화성이 미리내에 빠진 날


동지섣달과 정월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가요? 바로 년年입니다. 동지섣달은 아직 정해년이었고, 정월이 되면서 무자년으로 넘어왔습니다. 제가 예전에 쓴 「무자년을 꼽으며」라는 글을 보셨으면 기억하실 텐데, 거기에서 무자년은 불 기운이 강한 해라고 했습니다. 무자년에는 은은하고 뜨끈한 불이 아닌 무시무시하게 뜨거운 불 기운이 가득합니다. 화성이 바로 그런 불 기운의 상징이니, 불에 기름을 부은 격으로 더 활활 타겠지요. 무자년으로 들어서며 이런 불 기운을 받아, 마침내 미리내의 물 기운을 누르고 물을 말리고 있다고 해석하면 재미있지 않나요.

미리내 근처에는 물과 관련한 우리 별자리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하늘나라의 우물인 정수井宿(서양의 쌍둥이)가 있고, 마시면 불로장생할 수 있는 물이 샘솟는다는 옥으로 된 우물인 옥정玉井(서양의 오리온)이 있습니다. 또 나라의 운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어 고대에는 해마다 제사를 지낸 강의 발원지 사독四瀆(서양의 외뿔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한강, 낙동강, 대동강, 용흥강이 이에 해당됩니다. 물과 불을 상징하는 남하南河(서양의 작은개)와 북하北河(서양의 쌍둥이)도 있습니다. 북하는 물이 어떻게 될지 그 조짐을 살피던 별자리이고, 남하는 불의 조짐을 살피던 별자리였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별자리는 우리네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별과 우리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늘의 나라에서 어떤 일이 생기면, 그것이 우리 인간의 세상에도 어떠한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별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예측한 것이지요. 미신이고 얼토당토않은 소리라고 치부할 수도 있으나, 별의 세세함 움직임이 어떻게든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요? 너무나 적고 무시할 만한 크기라서 눈에 드러나지 않을 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달이 바닷물을 끌었다 놨다 하는 것도 눈으로 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입춘이 지나면 개들이 털갈이를 하듯이 사람도 털갈이를 한다는 작은 사실도 놓치기 일쑤입니다. 요즘 머리칼이며 거웃이 얼마나 많이 빠지는지 모릅니다. 궁금하시다면 슬그머니 거시기에 손을 넣어 보세요.

올해 초는 그렇게 불 기운이 드세서 그런지, 안팎으로 들고일어나 부딪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쨍쨍쨍쨍 귀가 아플 정도입니다. 누구나 다 아실 테지만, 불 기운이 드센 관악산의 기운을 누르고 서울을 지키고 섰던 것이 바로 숭례문이었습니다. 그런 유적이 올해 정월 초에 불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한 줌 재로 변했습니다. 그 불씨는 한 사람의 이기심이었다지만, 그건 그 사람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기회의 불평등과 체계 없는 행정,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관행, 눈앞에 성과만 낳으려는 조급증 등이 낳은 결과입니다. 이것들을 계속 무시한다면, 이보다 더한 엄청난 불기둥이 솟구칠 겁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프로그램으로 확인하니 4월이 되면 화성이 미리내에서 빠져나옵니다. 그렇다고 그 여파가 다 물러나지는 않겠지만,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고 연둣빛이 세상을 가득 채울 때면 때에 맞춰 비가 내릴 것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곡우에 비가 와서 한 해 동안 곡식을 잘 키워 주시고, 우리를 배부르게 할 겁니다.




☯ 도움 주신 분과 참고한 자료들

좋은 프로그램을 알려주신 군포의 김지현 별 선생님

늘 재밌게 글을 읽고 꼬집는 아내와 털갈이를 보여준 연풍

기상청 http://www.kma.go.kr/gw.jsp?to=/weather_main.jsp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별자리, 안상현,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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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갔다. 다행히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다. 덕분에 난 맑게 갠 아름다운 하늘 아래에서 걸어 다닐 수 있었다.



그림 1 아무 기술이 없어도 좋은 사진이 나오는 하늘 아래 벌교역. 새삼 10년 전 기차를 타고 이 역을 지나간 기억이 떠올랐다.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고 했던가. 그만큼 주먹깨나 쓴다는 건달들이 많았다는 말이다. 주먹들이 모이는 곳이야 뻔하지 않은가? 벌교는 지금과는 달리 예전에는 돈냄새가 폴폴 풍기는 곳이었다는 증거다. 이런 곳에 기차역까지 있다면 말 다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신작로인 목포에서 서울까지 가는 1번 국도도 그렇고 경인선도 그렇고, 일제는 돈이 되는 곳이라면 길을 뚫고, 기차를 놓았다. 지금도 사정은 비슷하다. 옛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경제가 잘 굴러가도록 잘 쓰는 길을 놔두고 쓸데없이 산을 깎고 길을 뚫는다는 것. 자본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굴러가야 한다. 농사와는 어울리기 힘든 흐름을 가진다.

간밤 후배와 술 한 잔 나누어 눈이 퉁퉁 부었다. 속을 풀 만한 먹을거리를 찾아 장을 헤맸다. 마침 장날이라 장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국밥집을 찾았으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거기에는 입 짧은 후배도 한몫했다. 찾다 찾다 찾은 곳이 허름한 밥집이었다. 시킬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백반이었다. 아마 장날에만 여는 집 같았다. 시원한 콩나물국에 가짓수도 엄청 많은 반찬들, 밥은 또 얼마나 꾹꾹 눌러서 주시는지. 일단 콩나물국부터 시원하게 마시고 속을 풀었다. 그 모습을 본 아주머니께서 친절하게도 알아서 한 대접 또 주신다. 정신없이 참 맛있게 먹었다. 이 맛을 어떤 말로 표현할지 도대체 떠오르지 않는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밥값을 계산하려고 1,0000원을 건넸다. 그런데 돌아오는 돈이 6000원! 이 어찌된 일인가? 1인분에 2000원. 이렇게 싼 값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다니. 이거 기분 째진다.


 

 그림 2 전형적인 일본식 건물. 겉에 양철을 덧댔다. 양철이 살짝 벗겨진 곳을 자세히 보면 나무가 보인다. 개발이 안 된 덕에 근대문화유산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벌교.

그림 3 옛 영화는 사라지고, 그때의 기억을 간직한 낡고 초라한 건물만 그 자리를 지키고 섰다. 버스마저 왜 이리 추레한 것인지.


다카하시 노보루가 벌교에 온 것은 1939년 10월 18일. 난 2007년 7월 13일에 왔으니 한 70년쯤 차이가 난다. 그는 벌교에 도착하여 이런 기록을 남겼다.

오후 4시 6분 보성을 출발하여, 시마자키島崎 기수와 최崔 기수(보성군 농회 기수)의 안내를 받으며 벌교로 향했다. 오후 5시 도착했다.
벌교읍에서 으뜸인 조선 여관, ‘보성관寶城館’에 들어갔다. 일본인도 묵는 사람이 많았고, 시설이 괜찮은 편이었다.


보성관이란 여관 이름이 눈에 띈다. 여기 오기 전 조사를 통해 아직 이 여관이 남아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이번 벌교 여행은 이 여관을 확인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장사하는 아주머니에게 이 건물이 어디 있는지 물어 더듬더듬 찾아갔다. 조금 지나자 일제강점기 냄새가 물큰하게 풍기는 거리에 들어섰다. 순간 이곳 어딘가에 ‘보성관’이 있으리라 직감했다.

그림 4 보성관이 자리한 거리는 옛날에 벌교의 중심지, 곧 본정통이었다. 지금은 이 거리가 본정통이지만...


그림 5 보성관 입구. 가게들이 늘어서 있어 작은 입구를 찾아보기 힘들다. ‘크린에이드’라는 간판의 오른쪽이 입구. 2층은 여관 건물.


드디어 여관을 찾아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이때 시간은 거꾸로 흘러 70년 전 다카하시 노보루가 왔던 그때로 돌아갔다. 새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여관. 댓돌에는 손님들의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저 방에 다카하시 노보루가 앉아 있을까?

그림 6 대문을 들어서면 일본식 정원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이 여관은 현재 보성관이라는 이름보다 ‘남도여관’으로 더 유명하다. 소설가 조정래 씨가 쓴 ???태백산맥???에 남도여관이란 이름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빨치산 토벌대가 이 여관에 머물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훈련을 했다고 한다.


지금 1층은 가게와 살림집으로 쓰고, 2층은 비어 있다고 한다. 1층에는 방이 열 개, 2층은 좀 더 큰 다다미방이 네 개다. 이 정도 규모면 엄청 좋은 호텔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림 7 지금은 텅 빈 2층 다다미방. 사진은 퍼옴.


이 건물은 전체적으로 ‘ㄷ’자 구조인데, 대문을 들어서면 일본식 화단이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그 왼쪽과 오른쪽에는 온돌방이 있고, 안채로 쓰는 건물 위에 2층을 올렸다.

그림 8 보성관의 모습. 70년 전에도 이 자리에 우뚝하니 서 있었을 것이다.


이 건물을 지키고 있는 건 나종필(73), 유보임(72)이라는 노부부이다. 벌교에서만 8대째 사는 토박이이시다. 그분은 남도초등학교에서 20년 동안 교사를 하다가 퇴직하고 금은방을 냈는데, 이 건물이 매물로 나와 5만원에 샀다고 한다. 그게 1979년의 일이다. 그러다 학교 정화 구역이 되면서 1988년에 여관 간판을 내렸다.

이 분 덕분에 보성관은 지금도 훼손되지 않고 역사를 증언하며 이렇게 살아남았다. 언제 개발이란 광풍이 불어 닥칠지 모르는 곳에 사는 건물들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쓰러지고 마는 것에 비하면, 참 행복한 집이다. 어디 건물뿐이랴 소, 닭, 돼지들 모두 제 명에 죽지 못하고 내 뱃속으로 들어온다.

다카하시 노보루는 보성관에서 하룻밤 묵으며 이런 밥상을 받아 저녁을 먹었다고 한다. 그가 남긴 상차림을 보자.



반찬은 바닷가답게 비린 것들이 많다. 국도 멸치인지 생선인지를 넣고 끓였고, 전어 내장으로 만든 돔배젓에 굴젓까지 나왔다. 여기에 벌교의 자랑 꼬막이 어찌 빠질 수 있으랴! 여자만에서 캔 꼬막은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쫀닥쫀닥하고 쫄깃쫄깃한 것이, 짭짤하니 따로 장을 찍을 필요도 없다. 여기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속이 얼콰하니 든든하다. 꼬막 생각에 입에 침이 고인다. 저런 밥상이면 속이 부대끼지도 않게 밥 한 공기 뚝딱 맛있게 먹겠다.

여관을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본정통답게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 가운데 일제강점기에 금융조합으로 썼다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한눈에 봐도 잘 지은 건물이란 느낌이다. 1919년에 건립했다고 하니 다카하시 노보루도 이 건물을 보았을 것이다.
금융조합은 1907년 생겨 1956년 7월까지 있던 서민들의 신용 금융기관이었다. 지금의 신용협동조합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것이 해체되면서 생긴 것이 바로 농업협동조합이다. 그러니 농협의 전신이 바로 이 금융조합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기관이 농민을 위해서 많은 일을 했을지는 의문이다. 그저 합법적으로 돈놀이를 한 것은 아닐까? 지금 농협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림 10 르네상스식을 바탕으로 여러 양식을 절충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금융조합으로, 지금은 농민상담소로 쓴다.


그림 11 보성관 주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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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섣달도 초이레, 무자년戊子年 새해가 스무날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동짓달은 방바닥을 구르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끔 홀짝홀짝 술만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니 훌쩍 동지도 지나고, 덩달아 몸도 마음도 근질근질한 것이 이제 조금씩 꿈틀거려야 할 때가 온 듯하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무자년 한 해는 어떨지 짚고 넘어가려 한다.

무자년은 땅과 하늘에 화기火氣가 강한 해이다. 천간의 무戊라는 기운과 지지의 자子라는 기운이 모두 화기火氣를 불러온다. 그런 만큼 무자년의 기상은 일반적으로 온도가 높고, 기상 변화가 심해 예측하기 어려운 해가 될 것 같다. 온도가 높으니 갑자기 한파가 몰아닥칠 수도 있고, 증발량이 많아 게릴라성 호우 또는 폭설이 잦을지도 모른다. 또한 화기가 강하여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이 높다. 화기가 강하기 때문에 쓴맛이 나는 식물들 ― 살구, 은행, 상추, 쑥갓 등 ― 이 괜찮다. 그리고 그에 반해 배나 밤 등은 좋지 않다. 화기가 강해 더우니 수기가 대표하는 짠맛으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물론 저마다 체질에 따라 다르지만.

전체적인 설명은 이쯤에서 마치고, 좀 잘게 쪼개서 살펴보겠다.

겨울
2008년 1~3월은 땅에는 찬 기운이, 그리고 하늘에는 뜨거운 기운이 머문다. 이렇게 하늘의 온도가 높아 수증기가 많기에, 한 번 내리면 많은 눈비가 오거나 기습 한파가 닥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지구는 빠르게 온난화가 진행되어 그만큼 날씨를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겨울과 관련해 옛 기록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1. 섣달 초하루에 풍우가 있으면 다음해 가뭄이 있다.
→ 실제로 풍우가 있었으니 호우만이 아니라, 호우에 따른 가뭄도 철저히 대비해야겠다.
2. 동지에 매우 추우면 다음해 병충해가 적다고 한다.
→ 하지만 요즘 날씨가 워낙 춥지 않아, 병충해에 신경을 써야 한다.
3. 청나라의 점법에는 동지 다음 둘째 날이 임일이면 조금 가물다고 했다.
→ 올해는 둘째 날이 임일이다. 첫 번째 기록에서도 그랬지만 조금 가물 수도 있겠다.
4. 소한부터 대한까지 따뜻한 해에는 대홍수나 유행병이 돈다.
→ 이상하게도 요즘 그나마 좀 추우니 다행이다.
5. 동지 뒤 세 번째 미일이 납臘이다. 섣달 전 2~3번 눈이 오는 것을 납전삼백臘前三白이라고 하는데, 채소와 보리에 매우 좋다.
→ 이미 두 번이나 눈이 왔다. 겨울에 가물지 않아 이듬해 봄에 보리나 남새들이 자라는 데 좋아서 그럴 것이다.



무자년 봄의 특징은 초반에는 비가 적다가, 4~6월 하늘에 나타나는 토 기운 때문에 규칙적으로 비가 내릴 가능성이 높다. 농사짓는 데에는 아주 알맞은 비님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궐음풍목이란 찬 기운이 있기에 때때로 찬바람이 불어와 꽃샘추위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바람인 만큼 황사가 심하게 불 수 있다.
다음은 입춘으로 예상하는 기상이다.
1. 언제나 보면 입춘날 일진이 갑甲․을乙이면 풍년이다.
→ 올해 입춘은 갑술이다. 앞서 살펴본 날씨도 그렇지만, 올해는 지난해보다 변덕스럽지도 않고 농사도 좋을 것 같다.
2. 갑술일에 입춘이면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은 풍년이고, 물이 둑을 넘칠 정도다. 봄비는 때에 맞지 않고, 여름비는 밭을 고루 채우고, 가을에는 비가 내리지 않고, 겨울에는 비가 연이어 내린다.
→ 이 기록대로라면 가뭄은 초봄과 가을의 가뭄을 가리키는 듯하다. 하지만 초봄에나 좀 가물고 씨를 심고 싹을 틔울 때는 알맞게 비가 올 것이니 걱정할 것 없고, 가을의 폭우와 흐린 날이 더 걱정이다.

여름
6월에는 땅의 온도는 높은데 하늘은 건조하다. 그래서 장마가 다른 해보다 늦게 시작하거나, 장마 기간이라도 우리가 아는 장맛비보다 폭우가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장마가 끝난 다음에는 축축하고 뜨거워 후덥지근한 더위와 흐린 날과 호우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건조한 하늘에 땅의 온도가 높은 만큼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여러 개의 태풍이 올 가능성도 높다. 이달 안에 묘일卯日이 세 번 있으면 벼와 콩, 팥을 심기 좋고, 절기에 맞춰서 비가 내린다는 기록이 있다. 순탄한 한 해 농사가 될 것임을 예상한다.

가을
가을은 맑고, 비교적 온도가 높을 것이다. 비교적 온도가 높은 가을이 예상되기에 늦가을 기습 한파나 서리가 빨리 내릴 수 있다. 이에 따른 피해를 입지 않도록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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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한 농부는 가을갈이(추경秋耕)를 잘해 놓는다고 합니다. 가을에 땅을 뒤집어 놓으면 병균이나 벌레가 겨울 추위에 죽고, 거름은 잘 곰삭고, 흙도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좋아진다고 합니다. 확실히 겨울에는 불알이 얼 정도로 추워야 흙이 부서집니다.
2년 전인가, 안산 밭에는 아무개 마트를 지으면서 땅을 판 흙을 가져다 덮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은 흙을 가져오더니, 어느 틈에 슬그머니 시커멓고 딱딱한 개흙을 같은 것을 갖다 부은 것입니다. 첫해에 그 밭을 일구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완전 일군땅(개간지開墾地)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첫해에 그렇게 노력을 들이고 나니, 그해 겨울이 지나면서 차츰 땅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딱딱하고 시커멓던 흙이 푸석푸석 부서지기도 하고, 조금씩 사라지는 모습에 참 놀랐습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더니 참말입니다.
요즘은 가을갈이하는 곳을 자주 보기 힘듭니다. 마을에서도 부지런한 분이나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그냥 봄갈이(춘경春耕) 정도로 그치지요.

한쪽에서는 쟁기질을 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갈지 않는(무경운無耕耘) 농법을 주장하는 분들이지요. 쟁기질을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 어느 방법이 더 좋고 나쁜지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모두 상황에 맞게 하면 되지,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튼 제가 듣기로는, 그 농법의 뿌리는 일본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일본을 다녀오니 거기는 흙이 시커멓더군요. 함께 간 선생님께 여쭈니 화산재(화산회토火山灰土)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일본의 흙은 유기물 함량도 엄청 높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우리 흙은 다들 알다시피 화강암이 부서진 흙이라 산성도도 높고, 무지 메마른 흙(척박토瘠薄土)입니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이 쟁기질을 한 까닭이, 이러한 흙의 차이에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도 일본의 흙처럼 유기물 함량이 높아지면 굳이 쟁기질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래서 무슨 일이건 상황과 조건에 맞춰야지, 알아보지도 않고 무엇이 무조건 옳다고 하는 자세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갈지 않는 농법이 좋은지 아닌지는 저마다 알아서 판단할 문제입니다. 뭐든지 장단점이 있고, 여건에 맞는 것이 따로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하나만 말하자면, 쟁기질의 효과 가운데 하나는 겉흙(표토表土)과 속흙(심토深土)을 뒤집어엎는 데 있다고 합니다. 한 해 동안 수고한 겉흙은 속으로 보내 쉬게 하고, 밑에 팔팔한 놈을 끄집어내는 효과가 아닐까요?

쟁기질은 그것 말고도 숨은 목적이 있습니다. 어떤 작물을 심을 것인가에 따라 쟁기질하는 방법이 달라지는 것이 그것입니다. 저도 쟁기질을 해보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면, 보리를 심을 때는 두 거웃 갈이를 하고, 고구마를 심을 때는 한 거웃 갈이를 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작물에 따라 그 특성에 맞는 쟁기질 방법이 있었던 것이지요. 높고 좁은 두둑이 필요한지, 아니면 넓은 두둑이 필요한지에 따라서 쟁기질하는 법이 달랐습니다.
두 거웃 갈이는 한 번 갈면서 저쪽으로 갔다가, 다시 그 옆을 갈아 오면서 한 두둑을 만든다는 소리입니다. 이 말은 경기도 사투리입니다. 생식기 주변에 난 털을 뜻하는 거웃과는 다른 뜻입니다. 이를 뜻하는 말은 지역에 따라서 다양합니다. 거웃을 예로 들면, 충청도나 강원도 같은 산골짝에서는 망이라고 하더군요.
쟁기질은 보통 네 거웃 갈이까지 했다고 합니다. 네 거웃 갈이를 하면 한 1.2m 이상 되는 넓은 두둑을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고추나 고구마는 좁고 높은 두둑(고휴高畦)을 짓지만, 보통 작물은 그냥 펀펀한 두둑(평휴平畦)을 짓습니다. 작은 규모의 농사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이상 그렇게 하지요.

쟁기질할 때 쟁기를 잡는 사람은 쟁기꾼이라고 했습니다. 상여꾼, 장사꾼 하듯이 그 분야에 전문이라는 뜻으로 꾼이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일 잘하는 쟁기꾼은 서로 모셔 가려고 했다는 말로 봐서, 그때에는 엄청난 기술자였을 겁니다.
쟁기질을 끝내면 뒤를 따라가면서 쇠스랑이나 곰배로 흙덩이를 부수는 일을 했습니다. 트렉터로 로터리 치면 아주 고운 흙이 나오지만, 쟁기로 하는 만큼 큰 흙덩이는 따로 부숴야 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며칠 뒤에 바로 써레질에 들어가지요. 써레질은 앞에 잠깐 설명했으니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써레질하는 것을 동사로 ‘써린다’ 또는 ‘쓰린다’ 등으로 불렀습니다. 밭이야 어느 정도 수평이 맞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논 써레질에서 그러면 큰일이지요.

마지막으로 흙의 종류를 구분하고 끝내겠습니다.
흙의 굵기에 따라 말하면, 먼저 자갈흙(역토礫土)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자갈흙이죠. 다음은 모래흙(사토砂土)입니다. 모래흙은 땅콩 같이 물이 잘 빠지는 것을 좋아하는 놈들이 잘 사는 곳입니다. 만지면 부스스 부서지는 흙이라 갈기도 좋고, 삽질도 편합니다. 하지만 물이 너무 잘 빠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료를 주면 그 효과가 빠르지만, 물이 잘 빠져서 가뭄(한발旱魃)에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습니다. 이런 흙이면서 물이 잘 빠지는 논이라면 철, 망간, 규산 등이 모자라기 쉬워서, 질퍽한 딴흙(객토客土)을 넣어야 합니다.
또 모래참흙(사양토砂壤土)이 있습니다. 입자가 세밀한 찰흙(점토粘土), 중간인 실트, 거친 모래가 거의 같은 양이 섞여 있는 흙에 비해서 모래가 조금 많은 흙입니다. 이 정도만 해도 농사짓기 괜찮은 흙입니다.
흙 가운데 가장 좋은 흙은 뭐니 뭐니 해도 참흙(양토壤土)입니다. 모든 농사에 가장 좋은 상태의 흙이지요. 고운 흙 가운데 질흙이 25~40% 정도인 흙입니다. 참나무, 참깨처럼 참으로 좋은 참흙입니다. 또 다른 참흙으로 질참흙(식양토埴壤土)이 있습니다. 눈치 빠른 분은 벌써 아셨겠지만, 찰흙이 많게는 절반 정도 포함된 흙입니다. 참흙보다는 좀 거시기하지만 이 정도면 훌륭하죠. 양분, 특히 물기를 잘 잡고 있어서 벼나 콩, 과수에 좋습니다.
다음 질흙(식토植土)이 있습니다. 절반 이상이 질흙인 흙입니다. 그만큼 끈덕끈덕하겠지요. 물기도 많고 거름도 잘 잡고 있지만, 공기나 물이 잘 통하지 않아 농사짓기 어렵습니다. 모래흙을 섞어 주는 것이 좋고, 석회나 두엄 같은 유기물을 섞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가을갈이를 거칠게 해서 잘 말리는 것도 좋습니다. 흙이 안 좋다고 불평불만하지 말고, 하나하나 내 힘으로 땀흘려 가꾸면 참흙으로 만드는 것도 금세입니다. 세상에 못할 것이 없는 것이 사람이죠. 그만큼 사람이 참 무섭습니다.
다음 찰흙(점토粘土)입니다. 국민학교 때 뻔질 나게 사 가던 흙이 바로 이 찰흙입니다. 이 흙은 큰 돌이 부서지면서 생긴 것입니다. 그보다 더 심한 찰질흙(중식토重植土)이 있고, 가장 질퍽한 질찰흙(중점토重點土)이 있습니다. 물기를 머금으면 아주 찐덕해지는 흙입니다. 이런 흙에서 농사를 짓는다면 쟁기질하기도 힘들고, 마르면 딱딱하게 굳어서 쩍쩍 갈라집니다. 이런 흙에서 농사지으려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흙을 말했습니다. 돌아서서 보니 너무 모자랍니다. 모자란 글이지만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편은 추수秋收, 곧 가을걷이와 관련된 말을 골라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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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환 어르신과 함께 한 장

 

 

방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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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리 마을 어귀에 자리한 선돌. 앞에 치마를 두른 것이 암바위, 뒤에 선 것이 숫바위이다. 

크기는 숫바위 280×260×60cm, 암바위 160×150×30cm.

신석기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여기서 제사지냈을까?

참 신기한 일이다.

 

 

암바위보다 숫바위가 더 커서 모계에서 부계로 넘어갈 무렵일 것이라고 추정한단다.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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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군 적성면 기동리 솔고개 마을의 장종환 어르신을 찾아뵙고, 소 쟁기질을 듣다.

아래는 직접 쟁기를 메우고 시범을 보여주시는 모습.

부리망까지 찾아서 채우셨다.

우수 지나 2008년 2월 22일 찾아가, 소도 한창 털갈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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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충북 옥천군 안남면 들녘에서 누런 황소에 쟁기를 매달아 자갈밭을 갈아엎는 농부들의 모습의 모습이 정겹다.

충북 옥천군 안남면 이준호(72) 씨 부자가 요즘 구경조차 하기 힘들어진 쟁기로 씨감자를 파종할 자갈밭을 갈고 있다.
이씨는 9일 "경사진 자갈 밭을 갈아엎는 데는 뭐니뭐니해도 쟁기가 최고"라며 "쟁기를 처음 끌어보는 소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아들과 한 조가 돼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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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질하는 농부와 한우 모녀

【보은·옥천=뉴시스】

최근 충북의 농촌들녘이 본격적인 영농준비에 나선 농민들로 분주해지면서 활기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
휴일인 16일 논농사를 준비하는 농민들은 병해충 발생과 벼 쓰러짐 예방을 위해 퇴비와 두엄 또는 규산질 비료를 고루 뿌린 뒤 트랙터를 이용해 깊이갈이에 본격 나서고 있다.
또 밭에 감자나 고구마, 채소 등을 심을 예정인 농민들은 트랙터 등을 이용해 갈아 엎고, 둑을 만드는 등 각종 농작물의 묘 옮겨심기를 준비하고 있다.
상당수의 농민들은 겨우내 방치됐던 폐비닐과 고춧대를 걷어 일정공간에 모아두거나 뒤늦은 논밭두렁 태우기로 시골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농기계가 들어가기 어려운 곳에 위치하거나 자갈이 많은 밭을 소유한 일부 농민들은 소가 끄는 쟁기질을 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기도 하다.
특히 보은군 회인면과 옥천군 청산면 등지의 인삼재배농들은 새 지주목을 세우고, 차광막을 설치하는 등 활기찬 모습이다.
한우 등 축산농가들은 날씨가 따뜻한 낮에는 바람막이를 열어주고, 가축들이 일광욕과 운동을 충분히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각 시·군농업기술센터는 고추 육묘를 재배하는 농가는 하우스 출입구와 측면의 경우 온도가 낮아 안쪽에 있는 것보다 생육이 저조할 우려가 높다며 자리 옮김할 것을 당부했다.
이와함께 토양수분이 부족한 밭의 마늘과 양파는 스프링클러 등을 이용해 물을 주고, 3월 말까지 웃거름주기를 마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비닐하우스의 피복물은 아침 일찍 걷어 햇빛을 충분히 받도록 하고, 한 낮에는 환기해 하우스 안의 온도가 30도 이상 올라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병원균이나 해충이 많은 사과·배·포도나무의 거친 껍질은 벗겨 낸 뒤 불에 태우고, 가지치기한 부산물은 분쇄기를 이용해 잘게 자른 후 땅에 뿌려 주거나 퇴비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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