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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수

(주) 이장 대표이사


들어가며

나는 한 달에 5-6회 정도, 지역의 농업기술센터나 농촌마을로 농촌 주민들에게 강의를 하러 다닌다. 이 자리에서 나 스스로를 바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내가 살아온 궤적을 더듬다 보면 이건 영락없는 바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른 학자처럼 한 가지 연구만 하고 한 분야에서 일했다면 아마 바보소리도 안 들었을 것이고 내 스스로도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학에서 환경학으로, 환경학에서 농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이제는 학술연구는 뒷전에 둔채, 농업현장에서 농민들과 함께 뒹굴다 보니 지난 세월이 바보같기만 하다.


공학에서 환경학으로, 그리고 유기농업으로

80년대 초반 나는 대학에 들어갔다. 중학교 시절 보이스카웃 활동을 했던 나는 산에서 쓰레기 비닐봉투 줏는 일이 싫어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비닐봉투를 만들면 좋겠다 싶어 공업화학과에 입학을 했다. 그러나 그  당시 대학은 환경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경찰들이 학교를 들어와 진을 치기 일수였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감옥에 가거나 생명을 맞바꾸며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하였다.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일종의 사치였다. 그래서 나도 주로 대학본부 잔디밭이나 담배연기 자욱한 써클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저 그렇게 대학 4년이 지나갔다. 사명감이 투철한 이는 노동현장으로 갔고 어떤 이는 취직을 했고 어떤 이는 대학원에 진학을 했다. 나는 노동현장에 갈 만한 자신도 없었고 취직하기도 싫었으며 대학원에 진학해서 다이어트용 감미료, 자외선 차단섬유를 만드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어릴 적 꿈을 다시 떠올렸다. 다행히 우리 학교에는 환경공부를 하는 전문적인 대학원이 있었다. 그리고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대학원 생활은 정말 재미있었다. 지겹기만 하던 공학책과 달리 환경에 관련된 책은 재미있었고 실험실을 떠나 산으로 들로 나가서 하는 일이 신나기만 했다. 대기오염에 관한 논문을 쓰고 석사학위를 받던 날, 갑자기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생각했던 목표가 달성된 탓이라 생각했다. 그 허무감이 오래가면서 내가 공부한 것이 허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한 공부는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대기오염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사후약방문적인 처방을 할 뿐이었다.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환경교육에 집중했다. 환경문제라는 것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사람이 바뀐다면 문제의 해결점이 보이지 않을까 해서였다. 환경교육과 관련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상상을 하다가 농촌 아이들과 도시 아이들에게 똑같은 환경교육을 하게 하면 그 차이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물음을 내 스스로 만들어놓고 내게 놀라고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20년이 넘게 농업이나 농촌에 아무런 관심도 없던 나를 그 물음이 농업과 농촌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내가 손쉽게 농업과 농촌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책이었다. 서점에서 농업과 농촌에 관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책에서 내게 주는 메시지는 온통 ‘절망’뿐이었다. 그 동안 농업정책은 심하게 왜곡되어 있었고 농촌은 피폐되어 있었으며 농심은 이미 농촌에 없었다. 더구나 농산물 개방이라는 암초가 놓여있었다. 몇몇 학자들이 주장한 농업의 회생방법은 그다지 마음속에 다가오지 않았다.

 

그 즈음 내가 활동하고 있던 환경동아리 ‘초록바람’에서 여름캠프를 준비하게 되었다. 나는 농촌으로 가자고 주장했다. 동아리 회원들과 농촌의 중요성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나 자신도 현장에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원 중에 한 명이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유기농업....3박4일의 초록바람 유기농업 캠프에서 나는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환경과 사람을 살리겠다고 묵묵히 유기농업을 고집하고 노력하고 있는 유기농 생산자들을 만나면서 농업과 농촌을 살리고 더 나아가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보았다.  


유기물 농업이 아닌 유기적인 농업으로

유기농업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환경과 관련하여 유기농업에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농대에 새로 진학하기보다는 환경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하였다. 대학원 입학 후 유기농업을 공부하겠다고 하니 지도교수, 선후배 할 것 없이 뜯어말렸다. 하지만 이미 대기오염과 관련한 책들은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나는 유기농업에 관한 책은 한번 잡으면 밤새워 읽어야 하는 중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유기농업의 개념과 역사를 더듬기 시작했다. 1700년대 후반, 자연은 하나의 거대한 체계이며 농부는 그 체계를 진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관점을 견지하던 Thomas Jefferson, 토양중의 박테리아에 관심을 가지고 ‘흙은 살아있다’고 주장하던 Rodale, 독일의 철학자인 Rolf Steiner(1861-1925)의 생명동태 농업(Bio-Dyanamic Agriculture), 영국의  Albert G. Howard (1873-1947)의 『농업성전(Agricultural Testament, 1940)』, 일본의 후쿠오까 마사노부의 사무농법(四無農法, 혹은 자연농법), 고다니 준이치의 애농회(愛農會), 우리나라의 정농회와 한 살림 등에 관한 책과 자료를 보았다.

 

기본적으로 유기농업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영향이 최소화된다. 하지만 생태계는 보호되고 안정한 농산물을 만들 수는 있어도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대안도 유기농업일 수 있을까. 이는 유기농업을 유기물질을 사용하는 농업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날 때 가능하다. 우리는 흔히 유기적이라는 말을 쓴다. 유기적이라는 말은 구성요소가 잘 조직되어 있어서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둘 이상이 되었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둘이 아니라 둘 이상이 된다. 즉 우리 몸을 나누면 여러 가지 장기로 나눌 수 있지만 우리 몸은 장기의 단순한 집합을 넘어서 생명현상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런 개념에서 볼 때 유기농업은 우선 땅을 유기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땅에는 흙, 수분, 영양분, 미생물, 곤충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마치 한 생명체처럼 활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유기농업이다. 그러면 조금만 토양을 헤치면 각종 곰팡이들로 구수한 냄새가 나고 개미, 굴파리, 응애 등이 분주하게 기어다닐 것이다. 여기서 개념을 조금 더 넓혀보자. 땅을 벗어난다면 농장을 유기체처럼 만들 수 있다. 축사에서는 거름이 만들어지고 그 거름이 논과 밭에 들어가고 그러한 과정에서 농부는 충분한 보상으로 보람을 가지고 농사를 짓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농장을  흐르는 개울 속에는 고기들이 헤엄치고 조그만 뒷산에는 작은 새가 지저귀며 자연의 풍성함을 나눠준다. 마지막으로 이제 유기농산물을 먹는 소비자가 농장을 찾아온다. 생산자와 눈인사를 나누고 팔을 걷어붙이고 논으로 들어가 피를 뽑는다. 저녁이면 모깃불이 피어나는 마당에서 농부와 함께 막걸리를 먹으며 이런 저런 세상이야기를 나눌 때 아이들이 요란을 떠며 모깃불가에서 뛰어논다. 그렇다. 진정한 유기농업은 흙과 농장, 주변환경뿐만 아니라 소비자까지 하나의 생명체가 되는 농업인 것이다. 

 

그 개념에 실마리가 있었다. 유기농업이 단순히 유기물질을 사용하면서 식품의 안정성만 높이려는  농업이 아니라 농업과 농촌을 되살리고 더 나아가 환경과 생태계를 보전하면서 사회의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방법은 도시와 농촌이 하나가 되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


유기농업에서 생태마을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충북의 유기농가들을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하여 농부들과 인터뷰를 하고 논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였다. 그 때까지 나는 누구나 하기 쉬운 유기농업 기술을 개발하면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이내 잘 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기술개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농부들이었다.  더욱이 농업기술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기술이라기 보다 토착적이고 지역적인 기술이다. 이러한 농업기술의 특수성을 뛰어넘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박사학위는 받았지만 내가 할 일이 없었다.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결론은 유기농산물을 팔리게 하는 것이었다. 유기농산물이 잘 팔리기만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업으로 전환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더 나은 농산물을 더 쉽게 생산하기 위한 기술도 개발될 것이었다. 증산정책에 혈안이 된 정부의 갖은 탄압 속에서도,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종교, 가치관에 따라 묵묵히 유기농업을 지켜온 생산자들의 이야기를 전달해줄 수만 있다면 소비자들이 유기농산물을 사줄 것이라 생각했다. 인터넷을 활용하기로 했다. 환경사업 공모에 당선되어 비용도 마련했다. 일년동안 전국의 100여명의 유기농 생산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 싸이트도 만들었다. 그 이름이 인터넷 이장이었다. 사이버 공간에 가상 유기농 마을을 만들고 생산자들을 소비자와 연결하는 마을이장의 역할을 내가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홈페이지는 구축되었지만 생각만큼 유기농산물이 잘 팔리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농산물을 판매에 있어서 농산물을 품질과 정보도 중요하지만 물류가 중요하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유기농산물의 경우 생산자와 소비자가 제 각기 공간적으로 흩어져 있어 물류를 효율화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인터넷 이장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유기농산물을 구입하고 싶어도 전라도에서 한 물건, 경상도에서 한 물건 구입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농산물 가격보다 유통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새로운 방식이 필요했다. 다수의 생산자들이 다양한 생산물을 모아 소비들에게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든다면 해결 가능성이 보였다. 생산자들을 모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공간이 어디일까 고민하였다. 내가 찾아낸 것은 바로 마을이었다. 마을에서 주민들이 함께 다양한 작물을 유기농업으로 전환하고 소비자들은 한 마을을 고향 삼아 농산물도 사먹고 주말이나 휴가철에 찾아갈 수 있다면 이는 내가 바라던, 진정한 유기농업이 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호주로 갔다. 호주에는 퍼머컬쳐(Permaculture)라는 생태마을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교육과정이 있었다. 두 주간의 교육과정을 포함하여 한 달간의 호주 체류었지만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많은 것들을 알게 해주었다. 호주에서 돌아와 지금은 우리나라 농촌마을을 생태마을로 발전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자원봉사로, 아르바이트 삼아 시작하였다. 이제는 대학원 후배들과 환경동아리 초록바람 친구들을 중심으로 모인 직원 30명이 우리나라 농업과 농촌을 살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우리보다는 우리의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는 회사가 되어 있다.


끝내며... 지역운동으로

글을 시작하며 이야기했듯이 나는 바보같이 살아왔다. 일관된 한 가지 분야에서만 일을 하지 못했다. 이제 마을일에서 한계를 느낀다. 한 마을이 잘 가꾸어진다고 해서 생태마을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마을을 넘어서 지역 내의 인적, 물적 자원이 있어야 하고 이 자원을 잘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가능하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호주를 방문했을 때 크리스탈 워터즈라는 생태마을 인근 도시에 각종 협동조합과 지역화폐 등 다양한 지역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시스템이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최근에는 그런 지역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작년 8월 충남 서천으로 이사를 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좌충우돌 생활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이렇게 바보 짓을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해 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또 다시 저지를지 모르는  바보 짓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다.




<참고> 크리스탈워터즈와 퍼머컬처


1. 크리스탈 워터즈 생태마을


    크리스탈 워터즈는 1965년 일단의 전문가들이 259ha(약 80만평)에 조성한 생태마을이다. 이 지역은 목축을 위해 삼림을 베고 초지를 조성했다가 생태계가 파괴된 광활한 구릉지였다. 땅을 구입한 후 적절한 토지이용계획을 구상하였는데 0.5ha(약 1500평, 전체면적의 14%) 규모의 83개로 나누어진 대지와 회합, 교육, 생태관광 사업, , 방문자 숙소, 가내수공업 등에 이용하는 공동체 공간 15ha(4만5천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토지를 농경지, 삼림, 소하천으로 보전하거나 새롭게 조성하게 된다. 이러한 전체 토지이용계획 과정에 깊게 참여한 사람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생태설계자인 맥스(Max O Lindegger)인데 현재 이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이 곳에는 호주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이주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곳을 설계한 맥스, 생태전문교육기관인 SEED(Sustainability education and ecological Design)에서 일하는 모랙과 이반(Morag Gamble, Evan Raymond)를 비롯하여 전업농, 재택근무자, 농자재 판매업자, 예술가 등이 각자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 마을에 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하는데 자신의 주거환경을 퍼머컬쳐에 의거하여 조성해야 하고 마을내의 야생동물과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주거형태와 공동체적 생활양식이 전 지구적인 생태환경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 대안으로서 자리잡게 했다는 선구자적 업적으로 인해 1995년 UN에서 세계주거단지상(World Habitat Award)를 받기도 했다.


2. 퍼머컬쳐 디자인


    퍼머컬쳐는 permanent(영구적인)와 cultivation(경작) 혹은 culture(문화)의 합성어로  호주의 빌 모리슨이 보다 생태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농장을 경영하며 더 나아가 의식주를 비롯한 모든 생활을 지속가능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 영구히 살아남을 수 있는 인류문화를 만들고자 시도하고 있는 방법론을 일컫는 말이다. 퍼머컬쳐에 대해 크리스탈 워터 공동체에서 펴낸 교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퍼머걸쳐는 작은 발코니에서 농장에 이르기까지, 도시에서 야생지에 이르기까지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개념이다. 퍼머컬쳐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사람들의 생활을 유지해주는 식량, 에너지, 집, 물질, 서비스 생산할 수 있는 환경과 제반 기반구조를 만들 수 있다.  퍼머컬쳐는 우리 주변의 환경과 자원에 대해 사려깊게 생각하고 어떻게 우리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퍼머컬쳐의 목적은 우리 세대 뿐만 아니라 미래의 세대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퍼머컬쳐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세심한 관찰을 필요로 한다. 즉 닭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닭의 습성, 닭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 닭이 생산하는 것 등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기록해두어야 한다. 그래서 닭의 습성에 알맞고 가급적 농장에서 나오는 것으로 닭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닭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농장에서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요소가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연결될 수 있게 설계하고 관리하는 것이 퍼머컬쳐의 핵심이다. 즉 닭장은 집과 가까워야 사람이 먹은 음식쓰레기를 닭에게 먹일 수 있고 채소 밭과 가까우면 닭이 채소밭의 곤충을 먹을 수 있게 된다. 한편 닭똥을 이용하기 위해 퇴비장과 닭장이 가까운 것이 좋고 닭장과 온실을 붙여 짓게 되면 겨울철 온실 난방비를 닭의 체온 덕분으로 절약할 수도 있다. 이러한 계획과정은 구역계획(Zonning)으로 체계화된다. 집과 가까운 쪽에 관리를 많이 해야 하는 축사, 퇴비장, 텃밭 등을 위치시켜 상호관련성을 증대하고 먼 지역일수록 관리가 덜한 과수, 조림지 등을 위치시키는 방법이 바로 구역계획이다.

 

    퍼머컬쳐가 농장설계와 운영에서부터 시작하였기 때문에 구역계획, 토양관리, 작물관리 등 농장과 연관되는 분야가 많기는 하지만 건축, 수자원 관리, 도시 공동체 운영, 지역경제의 활성화, 공동체 복원 등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다양한 개념들과 방법을 퍼머컬쳐라는 개념하에 통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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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골드스미스의 취재기

 

 

 

초기 농업은 비생산적이라 치부되기 일쑤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미래에 가장 희망적인 농업이다. 농민인 무디얀세 테네쿤Mudiyanse Tennekoon 씨는 스리랑카의 전통적인 농촌 생활의 선지자이다. 그는 농사지으며 쿠레네갈라Kurenegala의 작은 마을에 산다. 최근 그는 FAO나 특히 세계은행이 스리랑카에 도입한 집약적인 근대농업 체계의 파괴성과 반생산성을 인식한 사람들 사이에 꽤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근대농업에 비판적인 두 박식한 남성과 함께 그와 만났다. 한 사람은 국무총리의 아들 두들리 세나나야케의 조카인 우팔리 세나나야케Upali Senanayake 씨, 다른 한 사람은 스리랑카의 전통 삶을 연구하고 있는 공무원 구나세카라Gunasekara 씨이다(에드워드 골드스미스Edward Goldsmith는 “생태주의자Ecoligist”라는 잡지의 편집자이다).

 

에드워드 스미스와 무디얀세 테네쿤 씨.

 

 

 

예전에 사람들은 자급했다

 

골드스미스(이하 G) : 이 지역의 평균적인 농장 크기는 얼마인가요?

테네쿤(이하 T) : 보통 가구에 2500평 이하입니다.

 

G : 자급하고 있습니까?

T : 유감스럽지만 아닙니다. 아버지 대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소금과 옷뿐만 아니라 전등에 쓸 등유도 사야 합니다.

 

G : 스스로 만들지는 않았습니까?

T : 할머니는 자신과 가족의 옷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마을 뒷산에 있는 땔감을 하고 부대밭을 만들던 숲인 첸나chenna에서 목화를 길렀습니다. 우리는 아직 그러고 있습니다. 게다가 옛날에는 미Mee 나무의 열매에서 추출한 미 오일을 썼기에 등유는 전혀 필요 없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미 나무의 묘목을 심는 영국인 고등판무관(출처 구글).

 

G : 미 오일은 요리에도 자주 쓰나요?

T : 네, 또 약으로도 썼습니다. 코코넛 오일도 그렇구요.

 

G : 인도처럼 현지의 장인들과 옛날처럼 물물교환을 했습니까?

T : 네, 10년 전 마을에서는 도공과 대장장이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식량을 주고 항아리나 도구와 바꾸었습니다. 지금은 마을의 상점에서 이런 것들을 사야 합니다. 게다가 매우 쓸모 있던 점토로 만든 항아리는 이제 구할 수 없습니다.

 

G : 항아리는 주로 무엇을 담는 데 썼나요?

T : 물을 저장하는 데 썼습니다. 왕겨를 채워 그것을 태워 몇 시간 지나 재가 되면 씻어 내고 물을 넣습니다. 이렇게 물을 차갑게 보존했습니다.

 

G : 그거 끝내 주네요. 그런 지식은 아버지가 가르쳐주나요?

T : 물론입니다. 모든 농민은 연구자이자 교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농민이 아닙니다.

토지와 기후, 용도에 맞는 300종류 이상의 벼를 재배했다

 

G : 여기에서는 몇 종류의 벼를 재배했나요?

세나나야케(이하 S) : 예전에 스리랑카에서는 280종을 재배했는데, 지금은 15~20종만 남았습니다. 정부의 정책에 의해서 그 이외의 품종은 절멸되어 버렸습니다(D.Dreberg에 따르면 1974년에는 300~400의 벼 품종이 재배되었다<superintendent of school gardens quoted in C. Wright, Glimpses of Ceylon>).

T : 저는 지금 123종의 붉은벼를 기억하고 있는데, 남아 있는 건 겨우 3~4종뿐입니다.

 

G : 이러한 품종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T : 먼저 우리는 두 번의 농사철에 맞는 다른 품종이 필요합니다. 북동 계절풍과 관련된 마하Maha와 남서 계절풍과 관련된 야라Yala라는 두 농사철이 있지요. 마하 기간에는 ‘4개월’이라 부르는 품종을 심습니다. 그 이름처럼 자라는 데 4개월 걸립니다. 야라 기간에는 ‘3개월’이란 품종을 심습니다. 마하 기간의 품종에는 갈색과 흰색의 무룬가카얌Murungakayam, 웰라 일란가리야Wella illangaliya, 혼다라와라Hondarawara, 간가라Gangala, 베루위Beruwee가 있습니다. 야라 기간의 품종에는 다하나라Dahanala, 콕칼리Kokkali, 칸니 무룬가Kanni Murunga, 파츠하 페루말Pachha Perumal, 쿠루위Kuruwee, 수반델Suvandel이 기억납니다. 또 ‘6~8개월’이란 품종인 마위Mawee도 길렀습니다.

 

G : 마위는 무엇인가요?

T : 그건 승려를 위한 겁니다. 불교의 승려는 정오 이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아서, 다음날 아침까지 몸을 유지하려면 영양가 높은 음식이 필요합니다. 마위는 매우 영양가가 높고, 단백질 함량도 높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재배한 까닭입니다.

 

G : 그밖에 어떤 품종이 있었나요?

T : 아기 엄마를 위한 헨나티Heenati를 길렀습니다. 지방과 당분이 많아 젖이 잘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 농사철에도 그것을 길렀습니다. 또 논에서 일하는 남자를 위해서는 탄수화물이 많아 힘이 나기에 칸니 무룬가를 길렀습니다. 그것은 전통 의식에 쓰는 우유를 만드는 데에도 쓰였습니다. 수반델은 독특한 향 때문에 길렀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품종의 일부는 특히 논에 물이 충분할 때 길렀습니다. 반면 물이 별로 없을 때에는 다른 품종을 썼습니다. 물이 많은 곳에 쓰던 품종을 구델Goodel 또는 고다Goda라 부르고, 뒤의 것은 마다위Madawee 또는 알위Alwee라고 합니다. 어떤 품종은 특히 질퍽한 곳에 알맞은 게 있고, 또 진흙이 적은 고지대에 알맞은 품종도 있었습니다. 또 아주 기름진 흙에 필요한 품종도 있고, 매우 척박한 흙에서도 잘 자라는 품종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품종은 다른 품종보다 해충에 강해서 전통적인 해충 방제법이 실패했을 때에는 다른 품종보다 그걸 심었습니다.

새를 위한 벼농사, 새는 그것을 알고 있다

 

G : 논의 해충을 방제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요?

T : 해충은 오늘날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하나는 토종 벼는 줄기가 길어 바람에 날려서 곤충이 줄기에 붙어 있기가 어려웠습니다. 요즘 나오는 하이브리드 품종은 줄기가 짧고 훨씬 단단하여 해충이 붙어 있기 쉽습니다. 또 신품종 벼와 달리 토종은 잎이 커서 늘어지며 그늘을 만들어 풀이 자라는 것도 막았습니다. 벼는 특히 생육기 중에 짧지만 결정적인 기간인 약 2주일(이삭이 패고 나서 약 2주일의 물알들 때) 동안 해충을 예방해야 합니다. 이 기간에는 가족 모두가 경계 태세를 취해 어떠한 비상사태에도 대처할 준비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늘 하던 일은 다럭daluk이란 선인장 수액을 논에 넣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곤충을 물리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벼가 누렇게 물들면, 우리는 알곡이 생기기 시작할 때까지 논의 물꼬에 대나무 잎을 묻었습니다. 이 단계(물알들 때)에 알곡은 아직 거의 액체입니다. 그래서 곤충에게서 벼를 보호하려고 승려가 버린 옷을 구해다가, 그것을 코코넛 오일에 담가서 심지를 만듭니다. 그 다음 그걸 논의 이곳저곳에 불을 밝혀 놓지요. 승려의 옷에는 밝은 노란색 채소의 염료가 포함되어, 그걸 태울 때 빛과 함께 해충을 물리치는 매우 강한 냄새가 납니다. 또 다른 장치는 여기에서 자라는 덩굴식물의 잎을 부수어 가루를 내서 액즙을 만들어 논의 물꼬에 붓곤 했습니다. 이 액즙은 물에 떠서 벼의 둘레에 붙는데, 그것은 결정적인 2주일 동안 벼를 먹는 해충인 고드웰라Godwella를 죽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우리는 논의 네 귀퉁이에 마크라Makra 잎을 모아서 말린 걸 층층이 쌓았습니다. 또 거기에는 카두라Kadura의 나뭇가지도 심었습니다. 그것은 논의 벌레를 끌어 모으는 코코넛 등불의 받침으로 썼습니다. 또 점성학으로 점을 쳐 가장 좋은 날을 정해 볍씨를 심었습니다. 저는 이것도 해충의 침입을 막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이것과는 별도로 하던 일은, 강바닥에서 모래를 긁어모아 논과 관개수로에 뿌렸습니다. 이것도 효과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또 바라밀에서 끌어낸 매우 끈끈한 물질로 긴 밧줄을 만들어, 아이들이 논을 가로질러 줄을 질질 끌면 논의 벌레가 거기에 달라붙습니다. 그게 아니면 둠말라Dummala라고 부르는 나무의 진을 스며들게 한 여러 헝겊 조각을 묶어서 이걸 끌고 다녔습니다. 피노비아Pinovia란 특별한 도구를 손에 든 아이들이 논에 들어가 수면에 있는 벌레를 잡기도 했습니다.

S :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매우 복잡한 농업 형태가 가능하려면 온 가족의 협동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개발의 여파로 가족공동체가 파괴되면서 세대가 끊기고, 그것을 실천할 방법이 사라졌습니다. 서양에서 행해지는 매우 파괴적인 근대농업에 의지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T : 그렇습니다.

 

G : 서양에서는 그런 방법을 ‘생물 방제’라 하는데, 당신은 그것을 했던 겁니까?

T : 네, 사실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해충 방제법의 하나는 코코넛 껍데기를 부수어 논의 네 귀퉁이에 뿌리는 겁니다. 이것은 데말리츠츠Demalichch 또는 일곱 자매라 불리는 회갈색 새를 불러옵니다. 새는 부수어진 코코넛을 먹거나 논의 해충도 잡아먹습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2주일 동안 벼를 먹는 벌레인 고드웰라를 잡아먹지요.

 

G : 해충 방제를 위한 전통 의식이 있나요?

T : 우유를 끓여서 흘러넘치게 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우유가 항아리에서 흘러 나온다’는 것을 뜻하는 ‘키리우투루네와kiriuturunewa’라고 불렀습니다. 논의 주요 해충인 벼멸구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여겼습니다. 또 해충을 물리치는 데에 매우 효과가 있다고 여겨진 다른 의식은, 논 한가운데에 장식을 단 장대를 꽂는 것입니다.

 

G 설치류는 어떤가요? 그게 옛날에도 문제였나요?

T : 쥐를 잡는 데에는 미Mee 나무의 동쪽에서 캔 뿌리의 네 조각을 묻고서, 그걸 논의 네 귀퉁이에서 태웠습니다. 그렇게 하면 쥐는 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G : 새는 어떤가요.

T : 각 논의 농사가 끝나는 쿠룰루 팔루와kurulu paluwa라는 시기에 새를 위해 조그만 부분에 벼를 길러서 잘 대처했습니다.

 

G : 그런데 어떻게 새가 그 벼가 자기 것인지 알았나요?

T : 우리는 몇 천 년 동안 이 일을 했습니다. 새에게 어느 것이 자신의 논이고, 어느 것이 우리 인간의 논인지 가르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물론 새들은 좀처럼 우리의 논 지역에 침입하지 않았지만, 침입하더라도 벼의 해충이나 ‘고드웰라’를 먹거나 아이들이 내쫓거나 했습니다.

S : 마법 같은 해충 방제법은 없습니다. 우리 농민은 모든 해충을 피할 수 있는 ‘기적의 품종’이나 ‘기적의 화학물질’을 팔려고 하는 서양의 과학자를 믿을 만큼 어리석지 않습니다. 산업사회가 붕괴되고 서양의 과학자들이 사라진 훨씬 뒤에도 논의 해충은 주변에 있겠죠.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해충들과 함께 살며 그 약탈을 조절해야 합니다. 각각의 방법은 조그만 기여밖에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지식은 아버지에게서 아이에게로 이어질 겁니다. 아이들을 도시의 학교에 보내 당신의 서양 과학적인 미신을 가르치지 않을 때에만 이 일이 가능합니다. 또한 온 가족이 완전히 협동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작업한 시간마다 임금을 줘야 하는 종업원으로는 이러한 협동을 결코 달성할 수 없습니다.

 

 

질소고정 나무와 과일박쥐의 똥이 거름

 

G : 논의 땅심은 어떻게 유지합니까?

A : 매우 많은 방법을 썼습니다. 하나는 논에 미 나무를 심는 것입니다. 미는 콩과식물로,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를 고정합니다. 이전에는 1헥타르에 20그루를 심었습니다. 잎에도 질소가 많은데 그 아래에 쌓여 덮였습니다. 또 매우 흥미로운 것은 과일박쥐가 미 나무의 열매를 좋아해 과실이 익을 때에는 엄청나게 모인다는 겁니다. 그 결과 질소를 많이 함유한 박쥐의 똥도 중요한 거름이 되었습니다. 또 첫비(Akwassa) 전에 볍씨를 심어 질소를 얻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러한 비에는 많은 질소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또 우리는 쏘라Thora, 안다나Andana, 히리야Hiriya, 니디쿰바Nidikumba, 필라Pila라고 부르는 수확철 사이에 여러 콩과의 풀이 논에서 자라도록 했습니다. 그것들은 논의 옆이나 위에 자리한 작은 구역의 놔두는 땅인 필레와스Pillewas에서 자랍니다. 콩과의 풀씨는 필레와스에서 오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곳에서 농사짓지 않았습니다. 또 그곳은 쟁기질에 부리는 물소가 쉬는 곳도 됩니다. 물소의 똥은 비가 내리면 아래쪽의 논으로 흘러와 이것도 거름이 되었습니다. 또 우리가 똥을 누거나 오줌을 누는 곳도 필레와스에 자라는 떨기나무의 그늘입니다. 이것도 땅심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물론 현재는 근대적인 개발로 논의 면적을 늘렸기에 필레와스도 농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땅심의 저하로 이어졌습니다.

또 이미 말했듯이 전통적인 벼 품종은 줄기가 길어 지금처럼 줄기가 짧은 품종보다 논에 돌려주는 볏짚이 많았습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각 마을의 뒷산에는 정글이 우거지고, 거기에서 ‘저수지’로 흘러와 논에 물을 댈 때 쓰는 물이 흘렀습니다. 정글이 주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라 홍수가 나면 논으로 흘러오는 흙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방법을 써서 우리는 땅의 힘을 유지했습니다. 그것들이 기능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지요.

 

 

근대 보급(하이브리드) 품종은 가뭄에 약하다. 수확량이 늘어난 것도 수분이 많을 뿐

 

G : 화학비료는 쓰려고 했습니까?

T : 네, 이 몇 년은 화학비료가 필요한 하이브리드 벼를 재배했기에 그래야 했습니다.

 

G : 쌀에는 어떤 영향이 있습니까?

T : 제 논은 1200평입니다. 풍년일 때에는 2800kg을 생산합니다. 우리 가족이 1년에 2100kg을 소비하기에 풍년일 때에는 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급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잉여물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아마 제 아버지 대에는 필요한 것이 적어서 논의 생산력도 적었을 겁니다. 또 그는 매우 많은 품종을 심었기에 해마다 수요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 생산했을 겁니다. 우리가 문제가 있는 해에 맞부딪쳐도 어떤 품종은 잘 자랐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품종은 현재 심고 있는 하이브리드 품종만큼 가혹한 상태에 취약하지 않았습니다. 가뭄이 나면 하이브리드 벼는 말라 버립니다. 지금 해마다 가뭄이 지독해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정글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하이브리드 벼는 보존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갈무리해 놓으면 2~3개월 뒤에는 곰팡이가 핍니다.

 

G : 토종은 얼마나 보존하나요?

T : 적어도 3년은 갑니다.

구나세카라 : 저는 아버지가 아직 저장고에 3년 전의 쌀이 있는데 어머니가 햅쌀로 밥을 짓는다고 뭐라 하시던 일이 기억납니다. 보관 방법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쌀은 쥐가 들지 않는 대에 놓인 커다란 흙항아리에 보관했습니다. 항아리는 숨구멍이 있어서 쌀이 숨을 쉬고 서늘하게 있었습니다. 항아리는 라임 잎으로 안을 대고, 카라Kara의 잎도 해충을 쫓는 데 유용했습니다.

 

G : 근대적인 하이브리드 벼의 보관성이 나쁜 것은 수분 함유량이 많기 때문입니다. 화학비료를 쓰면 생산물의 무게는 늘지만, 이는 주로 수분 함량 때문입니다. 만약 말려서 재면 비료를 쓰지 않는 경우와 거의 같은 무게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유럽에서 두 연구를 통해 제3세계의 저장 문제는 주로 이 늘어난 수분 함량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하나는 서섹스Sussex대학, 다른 하나는 UNEP에서 실시했습니다.

T : 어떤 경우 하이브리드 밀은 밀가루를 만들어 먹어도 아무 맛이 없습니다. 이런 모든 이유 때문에 저는 하이브리드 벼농사를 그만두고 다시 토종으로 농사지을 계획입니다. 허나 문제는 씨앗을 찾는 일인데, 우리는 서로 전통농업의 체계로 돌아가는 걸 도울 수 있도록 현지의 농민들을 하나로 모으고 있습니다.

옛날 체계에는 다른 이점도 있습니다. 이제는 생산할 수 없는 다양한 먹을거리를 예전에는 생산했다는 점입니다.

물고기가 없어졌기에 말라리아가 늘었다

 

G : 예를 들면 어떤 것인가요?

T : 먼저 예전에는 바울루Baulu, 위라Weera, 바라밀, 힘부투Himbutu, 우드 애플Wood Apple, 히말라야 야생배와 아보카도 등 많은 먹을거리를 구하려고 자주 정글에 갔습니다. 지금은 정글이 벌목되어서 이제는 그런 먹을거리를 구할 수 없습니다. 정글을 재생해야 합니다.

또 예전에는 시내, 저수지, 물을 채운 논에서 수많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룰라Lula, 카와탸Kawatya, 하다야Hadaya, 아라Ara 등의 물고기는 말라 버린 못에서도 살았습니다. 적어도 이 지역에서 이것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정부가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틸라피아Tillapia에게 먹혀 버립니다. 정부는 틸라피아는 식물만 먹는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다른 것들, 특히 논에 사는 물고기는 농약의 독으로 죽었습니다. 어떤 물고기도 더 이상 살지 않기에 말라리아를 전염시키는 모기 유충이 현재 건기에도 살아남습니다. 그 결과 말라리아가 이전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또 저수지에서 번식하던 룰라는 피를 만드는 기능이 있어 늘 임산부에게 먹이던 가치 있는 물고기였습니다. 저수지에서 잡을 수 있던 다른 물고기로는 로랄레Lorale, 페티야Petiya, 히리카나야Hirikanaya, 와라야Walaya, 안다Anda, 안쿠타Ankutta도 있었습니다. 특히 코랄레Korale는 매우 맛있는 물고기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단지 틸라피아만 있을 뿐입니다. 나쁘지는 않지만 모든 토종 물고기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토종 물고기에는 모두 특별한 용도가 있습니다. 틸라피아는 논에는 넣지 않고 저수지에서만 서식합니다. 이 변화로 우리의 식사와 인생도 눈에 띄게 빈한해졌습니다.

 

우드 애플.

 

 

 

부대밭 농업이 부정되었다

 

G : 그밖에 어떤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었나요?

T : 많은 식물성 먹을거리를 저수지에서 구했습니다. 예를 들면 연밥, 일종의 연의 씨앗입니다. 또 연의 푸른 줄기도 먹었습니다. 게다가 저수지에서는 연근도 자랐고, 카케티의 뿌리로 가루도 만들고, 망고·바나나·코코넛·바라밀·후추·병아리콩과 콩나물 등도 구했습니다. 아직 어느 정도는 재배하지만 그것들은 옛날 것이 아닙니다.

서양에서는 부정적인데, 우리는 첸나chenna나 부대밭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논농사에 맞지 않는 마을 뒷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몇 년 농사지은 뒤 그곳을 버리면 정글이 재생하는 데에 10~14년이 지나면 회복되었습니다. 각 가족은 약 600평 정도 농사지었는데, 그곳은 사유지가 아닌 마을 공유지였습니다. 우리가 거기에서 기른 주요 작물은 조, 쿠루켄Kuruken 외에 건조 곡류였습니다. 요즘은 인구가 늘어나 그 주기가 정글이 완전히 화복할 수 없는 4~5년으로 짧아졌습니다. 현재 첸나 재배는 정부에서 장려하지 않고, 예전에 이 목적으로 쓰던 대부분의 땅은 그에 적합하지 않게 영구적으로 농사짓게 되었습니다.

 

바라밀.

 

 

말라리아의 전통적인 특효약을 정부가 금지했다

 

G : 실제로 모든 전통식에는 약효도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효과적인 말라리아 전통요법도 있었나요?

T : 매우 효과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보통 알려져 있듯이 반자Banja나 간자-마리주아나Ganja-marijuana를 씁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한 약품의 하나로, 예전에는 ‘온 세계에 이길 수 있는 잎’이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약효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루로 내 홍차처럼 우려서 자게리jaggery(Kittul palm으로 만든 설탕)를 넣습니다. 그것은 말라리아에 유일하게 효과적이었는데, 해충에도 유효했습니다. 또 피에 흡수되는 시간을 줄이려고 우리는 다른 먹을거리와 섞어서 그것을 먹기도 했습니다. 벌꿀에도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구나세카라 : 16세기에 스리랑카에 난파되어 왕의 죄수로 17년 동안 지낸 영국인 로버트 녹스Robert Knox는 반자를 실론의 말라리아 요법이라 불렀습니다. 그 식물은 ‘세 세계의 지배자’라고 불렸습니다.

 

G : 약용으로 아직도 반자를 씁니까?

T : 아니요. 지금은 정부에서 금지했습니다.

환경에 맞지 않는 일본의 모내기 기술을 정부가 강제하다

 

G : 어린모일 때 모내기하여 수확량을 늘린다고 하는데, 이것을 하려고 합니까?

T : 정부에서는 그것을 강제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이 기술을 일본인에게 배웠습니다. 일본의 벼농사 지역 대부분에는 보통 3주일 정도 이어서 서리가 내리는 시기가 있습니다. 그때 벼가 논에 있으면 손상을 입습니다. 그래서 일본인은 온실 안에서 씨앗을 심어 서리로부터 보호하고, 논에 모내기를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스리랑카에서는 모내기한 뒤에 모가 아프다는 걸 알면 회복에는 최대 2주일이 걸립니다. 이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은 화학비료를 쓰는 것이고, 약한 벼의 해충에게는 농약을 뿌리는 것입니다. 모내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첸나 농사나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등 다른 활동을 방해합니다. 정부에서는 두그루짓기가 아닌 세그루짓기를 해야 한다고 열성입니다. 정부의 주장은 근대농법에 따를 때 가능한데, 벼멸구가 영구히 서식할 수 있는 곳을 만든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시간이 걸리며 사회생활을 포함하여 우리의 여가 활동에 참견하는 셈입니다.

 

 

트랙터는 땅심을 저하시키고, 실업을 늘린다

 

G : 트랙터를 쓰려고 했습니까?

T : 저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많은 농민이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물소만큼 좋지 않습니다. 한 쌍의 물소는 약 900kg의 무게이고, 그 발은 논의 흙을 밟는 데에 알맞은 모양입니다. 그 결과 논에는 물이 빠지는 걸 줄이는 점토와 딱딱한 표면이 형성됩니다. 한편으로 진흙 위쪽을 휘저어 무르게 합니다.

물소는 1년에 약 680kg의 똥을 싸고, 오줌도 많이 쌉니다. 모두 엄청 땅심에 공헌합니다. 한편, 트랙터는 논에는 너무 무겁습니다. 트랙터가 지나간 곳은 점토층이 파괴되어 물이 지하로 침투됩니다. 트랙터를 쓰면 대량의 물이 필요한데, 오늘날 같은 상황에서 사용할 수 없게 될 겁니다. 또 흙을 뒤섞어서 가벼운 유기물이 표면에 떠올라 홍수 때 떠내려가 버립니다. 그래서 트랙터를 쓰면 땅심의 저하로 이어지는 겁니다. 트랙터는 똥이나 오줌도 싸지 않고, 흙을 만드는 데에는 전혀 공헌하지 않는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식사에 매우 중요한 우유와 기ghee(불순물을 뺀 탈지유), 커드curd도 만들지 못합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그것은 번도 못합니다. 한 대가 죽으면 다른 트랙터를 사와야 합니다.

물론 트랙터는 노동력을 절감시키고 늘 얘기하지만, 저의 직업은 늘 논밭에 나가야 하는 농업입니다. 그것이 저의 삶입니다. 물론 저는 하루 종일 자고 싶지도, 이웃과 한담을 나누는 데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높은 실업률의 나라에서 노동 절약의 핵심이 무엇인가요. 옛날에 노동 절약 장치는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가족과 지역사회가 온전하여, 충분한 사람들이 쟁기질, 씨뿌리기, 수확, 저수지 유지에 나섰습니다.

저수지 부흥에는 전통 문화의 부흥도 빠질 수 없다

S : 만약 그런 협동이 없었다면 저수지를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고,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나 폴로나루와Polonaruwa 문명도 존재하지 않았겠지요. 어쩌면 현 인구와 필적하는 1500만 명이란 인구도 유지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G : 정부는 지금 옛 관개 체계를 복구하려 하지는 않나요?

세나나야케 : 그들은 세계은행의 원조로 많은 저수지를 복구했습니다. 하지만 큰 저수지만 그렇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큰 저수지는 마을의 작은 저수지가 침전물로 막히는 경우에만 유용합니다. 그것들을 유지하는 것이 관개 당국의 일인데, 관료 제도로는 그럴 수 없습니다. 만약 마을의 사회구조가 붕괴된다면 침전물로 막힐 겁니다. 전통농업을 회복하고 싶다면 먼저 사회생활과 문화를 회복해야 합니다.

T :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복구해야 하는 것은 저수지가 아니라 모든 저수지 농사의 체계입니다. 관료는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5개 유형의 저수지가 있었습니다. 먼저 마을의 위에는 정글에 파 놓은 숲 저수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관개가 아니라 정글에 사는 야생 동물에게 물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몇 천 년이나 걸려서 동물들은 그것이 자신의 것임을 배웠고, 물을 구하려 마을에 내려와 농업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저수지는 산의 저수지입니다. 그곳의 목적은 운하가 아니라 첸나에서 농사짓는 물을 공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포타 웨팅PPota Wetie으로 알려진 모래막이 저수지입니다. 그것은 쉽게 준설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네 번째는 저장용 저수지로서 보통 그것은 2개가 같이 있어 쌍둥이 저수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곳은 차례대로 쓰여서 한쪽이 유지되는 동안 다른 하나가 쓰였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마을 저수지로 이어졌습니다.

S : 이러한 저수지는 전통 농촌에 꼭 필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우리는 사원이나 논도 없는 건조한 지역의 저수지가 없는 마을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마을의 세 가지 기본 구성요소는 사원(불사리탑), 논(Kumbura), 저수지(Wewa)였습니다. 물론 테네콘 씨가 말했듯이, 그것 말고도 중요한 요소가 있었습니다. 위쪽의 정글, 채소밭과 첸나 농사가 이루어진 떨기나무숲입니다.

T : 물론입니다.

 

G : 전통적인 마을은 어떠했습니까?

T : 집들을 매우 가깝게 붙여서 지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귀중한 땅을 최소한으로 차지하도록 했습니다. 이 배열은 마을의 빠질 수 없는 협동을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면 한 여성이 여러 이웃의 아이를 맡았습니다. 작물 수확과 저수지를 유지하는 등 많은 사람이 필요할 때 이것은 중요했습니다.

 

G : 저수지를 유지하는 조직은 어떻게 되나요?

T : 그것은 왕의 권한인 라자카리야Rajakariya 봉사의 일부였습니다. 누구나 1년에 40일은 이 봉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왕의 개인적인 욕심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구나세카라 : 실제로 어떤 왕은 라자카리야의 일이라며 캔디Kandy에서 자신의 왕궁 정면에 있는 인공 호수의 진흙을 치우라고 시켰는데, 사람들이 ‘이는 지역사회의 일이 아니다’라며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왕의 개인적인 책임이라 개별적으로 처리해야 했습니다.

S : 물론 영국인들은 라자카리야의 완전한 원칙을 오해하여, 학정이라 여기고 캔디의 봉건적인 과거의 유물이라며 철폐시켰습니다. 이는 영국인이 지금까지 한 일 가운데 가장 파괴적인 일의 하나였습니다. 이 나라에서 협동의 원칙을 파괴한 겁니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초보적인 모양으로 남아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공익을 위하여 아직도 1년에 14일은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970년에 관개 당국이 최종적으로 폐지한 관습입니다. 관료들은 마을 사람들이 협동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지요. 그것은 봉사를 위한 수요를 감소시켰습니다. 만약 라자카리야 체계가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면, 관개 당국의 관료들은 전혀 필요 없을 겁니다. 물론 지금은 저수지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책무이지만, 그에 대해서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G : 저에게 말한 모든 이야기를 통해 서양식 기술 농업의 모든 선물을 완전히 거절하는 것이라 해석해도 좋습니까?

T : 그렇습니다.

 

G : 옛 농민들의 전통농법을 좋아하는 거네요.

T : 네, 좋아합니다만 모든 여건이 가능하지 않게 만들고 있습니다. 공식적인 관점으로 보면, 저는 ‘자급 농민’이기에 가난합니다. 서양식 교육도 받지 않아서 무교육자입니다. 특히 저의 모든 지식, 전통과 문화는 계량화할 수 없습니다. 정규 경제로도 다룰 수 없기에 실업자라고 합니다. 저는 시장에 공헌하고 있지 않으며, 거지라고까지 불렸습니다.

 

 

스리랑카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S : 이 모든 것이 금세 바뀔 거예요. 당신이 모범이 되어 우리의 전통을 배우려고 젊은이들이 모일 겁니다. 지금의 경향은 지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있습니다. 플랜테이션을 계속하려고 정글을 모조리 베어 사라지고 있습니다. 전례가 없는 속도로 토양침식이 늘어나고, 저수지는 진흙으로 틀어 막히고 있습니다. 모래막이 저수지나 쌍둥이 저수지, 마을의 저수지를 유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완전히 침전물로 저수지가 막힌 마을도 존재합니다. 당장은 누구나 시내와 도시로 이주하려 합니다. 현재 콜롬보에는 10년 전에는 없었던 커다란 빈민가가 있습니다. 지금의 경향이 계속되면 콜롬보는 캘커타처럼 되어 버리겠지요. 사람들은 자신의 식량을 시장경제에 의존하게 되고, 그 가격은 오르고 있습니다. 정부는 사람들을 먹이는 일보다 수출하는 돈벌이작물을 생산하려 하고, 습지 지역에서 우리 토지의 절반이 묵혀지고 있습니다. 또는 마하웨리 계획을 세워 커다란 댐 들을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과거의 농업 체계를 부활시켜야 합니다. 물론 현재 우선시되고 있는 개발주의를 포기하지 않으면 이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이 나라를 서양과 같은 열대판 산업 국가로 바꾸려는 시도는 자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섬뜩한 영양불량과 기아를 가져올 뿐입니다. 이 스리랑카에 있어야 할 것은 과거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농장 앞에 선 테네쿤 씨.

 

 

<참고자료>

Edward Goldsmith, Traditional Agriculture in Sri Lanka, interviews Mudyanse Tennekoon, Goviya: Traditional Sri Lankan agriculture,2000.

 

 

translated by 김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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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전통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다

 

 

 

 

 

 

가우제Gause의 법칙을 넘어서

 

 

생태학에는 ‘가우제의 법칙’으로 알려진 법칙이 있다. 러시아의 생태학자 게오르기 가우제가 같은 자원을 이용하는 두 종류의 짚신벌레로 실험하여, 같은 생태적 지위에 있는 복수의 종은 안정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한 법칙이다. 그렇지만 실제 생태계에서는 한정된 자원만 있는 바다 속에서도 수많은 플랑크톤 종이 살고 있다. 이 ‘플랑크톤의 역설’처럼 가우제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사례는 많다. 그것은 시간적인 어긋남이나 먹이 등에 의하여 경쟁을 배제한 채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글에서 인도의 발라수브라마니안A.V.Balasubramanian 박사가 전통농업의 지혜를 부활시키고자 인도 지식체계 센터(Centre for Indian Knowledge Systems)를 세웠다고 적은 바 있다. 박사는 생화학과 생물물리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1982년 이후 인도의 전통 과학기술을 이해·연구하고, 현대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관심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전통적인 건강법에 관심을 가진 많은 기관 및 조직과 연대하고 있다. 요가, 아유르베다, 전통적인 관개, 선주민의 연금술과 전통적인 과학의 방법론에 대해서 공부하며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2003년 8월에 케랄라주Kerala州의 코치Kochi에서 Bharathaaya Vichara Kendram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인도의 전통적인 관습이 얼마나 가우제의 법칙을 회피하여 왔는지를 강연했다. 그 요지를 소개하겠다.

 

 

 

 

자원을 지나치게 개발하지 않는다

 

 

인도는 야생 동식물 자원의 난개발을 억제하는 전통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수많은 인도의 마을에서는 공유지로 마을숲을 유지해 왔다. 지역사회는 마을숲을 보호하며 신중히 활용해 왔다. 이러한 숲에서 땔감 들을 수확하는 데에는 특정한 규제가 있었다. 예를 들면 우타라칸드주Uttarakhand州의 차몰리현Chamoli縣의 고페슈워Gopeshwar의 마을숲에서는 1주일에 한 번씩 각 가정에서 한 사람만 땔감을 모을 수 있다. 그 결과 다른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완전히 숲이 벌채되었지만, 이 마을의 숲은 아직 잘 보전되어 있다.

 

 

자원 이용에는 계절적인 규제도 있다. 예를 들면 힌두교의 달, 사라바나Sravana(8월 중순~9월 중순)는 인도 전 지역에서 우기의 최고조인데, 많은 카스트가 물고기·가금류·육류의 소비를 완전히 삼가여 모든 사냥이 멈추는 기간이기도 하다. 곧 어느 특정한 야생 식물의 수렵은 1년의 어느 시기에 의식에 의해 제한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히말라야의 우타라칸드주 우타르카시현Uttarkashi縣의 주콜 파나가리Jhukol Panagari 지역에서는 종교 제의의 시기에만 나크두르Nakhdur로 알려진 식물의 덩이줄기를 일부 수확한다. 이 시기는 인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히말라야의 난다데비Nandadevi 근처 고산의 꽃밭이 만발하는 때이다.

 

 

우타라칸드주의 테흐리-가르왈현Tehri-Garhwal縣의 야무나천Yamuna川의 담수어는 독과 그물을 써서 잡는다. 그리고 독살된 물고기는 육식 카스트가 소비하는데, 그물로 하는 어업은 1년 내내 허용되지만 독은 하천의 유량이 많고 또 독의 영향이 시간적으로 꽤 한정된 축제가 열리는 며칠만 허용된다.

 

 

 

 

카스트마다 분야를 특화하다

 

 

인도의 부족사회는 저마다 수렵 구역이 있는 수렵채집민족으로 구성되는데, 이 수렵 구역은 최근까지 카스트제도에 의해서 계승되어 왔다. 그곳에서는 이용되는 동식물에 대한 개발압이 균등히 분산되어 왔고, 각 카스트는 미래세대를 위하여 자원을 계승할 필요성을 의식하며 생활자원을 지나치게 개발하는 것을 억제하는 전통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그 하나가 이용하는 자원의 분산이다.

 

 

각 카스트는 좁은 지리적 영역 안에서 살고 있는데, 이용하는 천연자원을 구분하고 있다. 각 카스트는 아주 한정된 자원으로 특화되어, 그것은 같은 영역에 있는 다른 카스트의 그것과 거의 겹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특정 지역의 특정 자원이 오랫동안 계속 유지되어 온 것이다. 생태적 지위 다양화의 두 예를 들겠다.

 

 

먼저 마하라슈트라주Maharashtra州 서쪽 가트Ghats의 크레스틀라인현Crestline縣에서는 주요 카스트로 쿤비스Kunbis와 가블리스Gavlis가 산다. 쿤비스는 계곡과 구릉 비탈의 아래쪽에서만 벼농사를 짓는다. 한편 가블리스는 구릉 비탈 위쪽의 계단밭에서 농사를 짓고, 물소와 소를 기르며, 부대밭 농업을 조금만 한다. 쿤비스는 야생 동물을 수렵하는데, 가축은 운반용으로 소 몇 마리만 기른다. 한편 가블리스는 놓아먹이는 가축에게서 탈지유를 얻어 그것을 단백질원으로 삼으며 수렵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탈지유를 쿤비스의 곡물과 교환한다.

 

 

마하라슈트라주 서부의 반 건조지대의 유목수렵민 난디발라스Nandivallas, 파세파라디스Phaseparadhis, 바이두스Vaidus 부족에서도 이러한 분산을 볼 수 있다. 난디발라스는 수렵을 전문으로 하는 부족으로 개를 써서 돼지, 산미치광이(porcupine), 왕도마뱀 등을 대규모로 수렵한다. 파세파라디스는 인도 검은산양·사슴·새의 수렵에 특화되었고, 바이두스는 몽구스·사향·재칼·고양이 등의 소형 육식동물을 덫을 놓아서 잡는다. 곧 세 카스트는 서로 다른 수렵 기술을 써서 서로 다른 종을 잡는 것이다.

 

 

 

 

야생동물을 종으로서 보호하다

 

 

인도의 유명한 서사시 라마야나에는 수렵 부족의 시인 발미키Valmiki가 교미하는 한 쌍의 학 가운데 하나를 죽이는 모습을 목격하고 영감을 받아 시를 짓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살해는 엄밀히 보편적인 윤리에 반한다. 사실 황새, 해오라기, 왜갖, 따오기, 갤우지, 펠리컨 등의 거류지인 헤로나리heronaries는 둥지에 가장 가까운 마을에 의해 지속적으로 완전히 보호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인도 남부의 카르나타카주Karnataka州의 반다라Bhandara 지역에서 전통적인 어업 카스트는 구릉지 하천의 담수어를 결코 해코지하지 않는다. 마하라슈트라주 아메드나가르현Ahmednagar縣 파세파라디스의 수렵 부족이 주로 잡는 것은 인도 검은산양인데, 새끼나 임신한 암컷이 덫에 걸리면 예전부터 풀어 준다고 한다.

 

 

 

 

성스러운 동식물을 지킨다

 

 

인도에서는 다양한 동식물이 신성시되어 절멸을 면해 왔다. 예를 들면 가장 널리 보호되는 것이 인도 보리수이다. 기원전 2000년 전의 모헨조다로에서도 부조에 무화과가 표현되어 있는데, 무화과도 신성시하였다. 무화과속은 열대의 생물다양성을 종합적으로 유지하는 데에 ‘요점’이 되는 식물로, 이를 보존한 까닭은 과실을 먹는 조류, 특히 비둘기를 보전하는 데에 있었을 것이다.

 

 

그 밖의 동식물은 각 지역과 특정 카스트마다 ‘신성시’하며 보편적으로 보호하였다. 예를 들면 공작새는 시바신의 둘째 아이, 카르티게야Kartikeya에 의해서 신성시되어서 수렵되지 않아 타밀나두주의 카르티게야의 사원에는 무수하게 있다. 공작새는 구자라트주Gujarat州 서부와 라자스탄주Rajasthan州 전역에서도 널리 보호되었다. 푸른 집비둘기도 성자 샤 자랄(Hazrat Shah Jalal)에 의해서 신성시되어 보호되는데, 방글라데시의 농촌에서는 인공으로 둥지를 만들어 번식을 장려하고 있다. 쥐조차 보호하여 라자스탄주의 유명한 카르니마타Karnimata를 모시는 사원에 많이 있다.

 

 

또 각 카스트와 그 제도 안의 수많은 씨족도 어떤 종의 동식물을 토템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것을 파괴하는 일은 없고, 남이 파괴하지 못하게 지키고 있다. 예를 들면 마하라슈트라주에서는 이전에 마라타Maratha가 공통어였는데 이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카스트가 있다. 이 마하타 카스트의 모레스Mores와 고르파데스Ghorpades는 그 일족의 이름이 토템의 동물로서 공작새와 왕도마뱀에서 유래하였기에 다른 부족은 잡아먹어도 그들은 이것들을 보호한다.

 

 

라자스탄 사막의 주민 비슈노이Bishnoi 교도는 힌두교의 일파로서 1485년에 설립되었는데, 녹색 잎이 달린 나무는 결코 자르지 않고, 모든 동물도 죽이지 않는다. 또 지역에서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콩과의 나무를 가장 신성시하였다. 1630년 조드푸르Jodhpur 왕이 새로운 궁전을 짓는 데에 연료용으로 이 나무를 베어 버리려고 할 무렵, 363명의 비슈노이 신도가 나무를 지키고자 자신의 목숨을 희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비슈노이 교도도 검은산양과 가젤의 일종인 친카라Chinkara 등의 야생 동물을 보호하였다. 이 전통은 지금도 살아 있어, 비슈노이 교도의 마을은 인도의 사막에서도 가장 야생 생물과 녹색이 풍부한 곳이다.

 

 

 

 

성스러운 나무숲과 못이나 늪이 공간을 보호한다

 

 

가우제의 고전적인 실험이 보여주듯이, ‘포식자와 피식자’로 구성되는 체계에서 먹히는 쪽의 절멸을 막는 데에 특히 효과적인 방법은 포식자에게서 도망갈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그러한 전통적인 공간으로 유역에 자리한 나무숲, 못이나 늪의 연결망을 만들어 왔다. 인도 전역에는 어떠한 신과 이어진다며 현지 마을에서 특별히 보호하는 식생지와 신성한 나무숲이 있다. 그러한 곳은 몇 백 제곱미터부터 50헥타르 이상의 토지와 수역으로 이루어지는데, 신들에게 바치려고 동식물이 개발로 위험에 처해지는 일 없이 전통적으로 전혀 개발되지 않았다.

 

 

서 인도의 아라발리Aravalli 구릉에서는 조그마야Jogmaya라는 신과 관련된 오란스Orans로 알려진 나무숲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금속을 써서 땔감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또 인도 남부 서해안의 카르나타카주 우타라 칸나다현Uttara Kannada縣, 우두피현Udupi縣, 다크시나 칸나다현Dakshina Kannada縣으로 구성된 카나라Kanara 지역에는 최근까지 신성한 나무숲의 연결망이 예전 모습 그대로 작은 수풀부터 1헥타르에 이르는 극상식생의 섬을 이루어 지역의 약 5%나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열대의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데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지금도 이러한 신성한 나무숲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절멸된 식물종이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면 덩굴성 woody climber(Kunstleria keralensis)가 그것이다.

 

덩굴성 식물 '우디 클림버'

 

 

 

방글라데시의 모든 사원에는 적어도 하나의 못이 있고, 그러한 못에 사는 동물은 침해하지 않는다. 2개의 성스러운 못은 절멸위험종을 보전하고 있는 곳이라 생물학적으로 흥미롭다. 칸 자한 알리Khan Jahan Ali는 악어가 사육되고, 바야지드 보스타미Byazid Bostami 사원에도 박묵자라(Trionyx nigricans)가 있는데, 이는 세계에서 유일한 자라의 서식지이다. 서기 300년에 초기 불교의 사원이 세워진 장소에 이슬람교인 바야지드 보스타미 사원이 건설되었는데, 자라와 신성한 못을 보호하는 전통이 이슬람교에도 동화된 고대의 전통인 듯하다.

 

 

 

 

농업생물다양성을 유지하다

 

 

인도는 재배 작물도 엄청나게 다양하다. 주요 작물의 한 예로 콩을 들자면, 베다 시대에는 약 40만 품종이 있었다고 벼 전문가 리차리아R. H. Richaria 박사는 평가한다. 박사는 2만 종의 콩을 마드야 프라데슈주Madhya Pradesh州와 차티스가르주Chhattisgarh州에서 모아 특정하고 있다. 쌀은 해마다 국내에서 재배되는데, 재배 표고는 해발 3m 이하부터 2100m 이상까지 이른다. 강우량도 연간 500밀리미터인 지역에서 자라는 콩 품종이 있다. 수많은 농업생물다양성의 보전과 연관된 문화적인 관습이 있다.

 

 

예를 들겠다. 오리사주Orissa州 푸리Puri의 자간나트Jagannath 사원에서는 날마다 새로 수확한 쌀을 요리로 내는 관습이 있다. 이것은 1년 내내 수확할 수 있는 수많은 쌀 품종이 있었다는 뜻이다. 카르나타카주Karnataka州와 안드라 프라데슈주Andhra Pradesh州에서는 해마다 정월에 우가디Ugadhi라는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에서는 알맞은 품종을 선발하려고 다양한 종자의 발아력을 시험하는 의식이 열린다. 타밀나두주에서도 무라이파리Mulaippari 축제가 있는데, 똑같은 기능을 하는 듯하다. 다양한 곡물 품종의 특성을 관찰·이해하고서 용도와 상태에 따라 심는 것이다. 예를 들면 타밀나두주에서는 모래나 먼지가 날리는 건기에 심는 데 알맞은 벼 품종이 있다.

 

 

 

 

종교와 문화로서 사회에 엮어 넣은 생태적 삶

 

 

현재 환경에 우수한 과학기술과 개발 모델을 온 세계에서 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대부분은 과거 몇 세기 동안 환경을 파괴한 공업화에 대한 사후 약방문일 뿐이다. ‘더욱 자연에 좋은 것’이란 요구는 널리 논의되고 있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는 자연과 대립하는 철학의 ‘조정책’일 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도에는 명확히 생물다양성과 생물자원의 보전과 관련 있는 전통이 있었다. 과거 200년 동안 인도 사회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는데, 많은 전통과 관습이 남아 왔고, 그 전통을 보면 인도 사회가 그것을 기본 개념으로 하여 본질적으로 ‘생태적으로 자연에 우수함’을 알 수 있다. 모든 사회적·문화적·종교적 관습과 전통이 생태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것은 사회의 핵심에까지 스며들어가 엮여 있었다.

 

 

<참고문헌>

A.V.Balasubramanian, Traditional Indian Agriculture and Natural Resourced Management : Current Relevance and Future Potential bulletin - article on traditional indian agriculture, August 2003.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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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생태농업 1 - 기존 문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쿠바의 생태농업은 진전하고 있는가

 

쿠바의 생태농업에 대한 책은 수없이 많이 나와 있다. 예를 들면 허드슨연구소(Hudson Institute) 세계 식량문제 연구센터의 데니스 에이브리Dennis Avery 소장은 <쿠바인은 거짓 음식으로 굶주린다(Cubans Starve on Diet of Lies)>에 이렇게 썼다.

 

“쿠바인은 1990년대 전반 소련의 보조금이 끊긴 뒤, 농업용 연료와 화학자재를 쓰지 않으며 스스로 자급하는 일을 영웅적으로 배웠다고 온 세계에 떠든다. 농민 협동조합, 생물농약, 유기비료를 자랑하고 있다. 지렁이 농법과 해충을 먹는 천적 벌, 그리고 트랙터를 대체하는 소 쟁기질도 자랑한다. 온 세계의 유기농업 활동가들은 여기에 정신이 팔렸다. 하지만 아바나에 주재하는 미국 이익 대표부 직원에 따르면, 현재 쿠바는 그 소비식량의 84%를 수입하고 있다는 점을 쿠바 농업성의 고위 관료가 스스로 인정한다고 한다. 유기농업이 성공했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다. 철의 장막 뒤에 앉아 있는 독재자가 자유세계를 속이려고 냉전시대처럼 행동한 것으로, 요란한 공산주의 방식의 커다란 거짓부리이다.”

 

이 에이브리란 사람은 오랫동안 유기농업을 비판하며 유전자조작 작물·농약·방사선을 쬔 식품·공업형 농업·자유무역을 지지하던 사람으로, <농약과 플라스틱으로 지구를 구한다 : 수확량이 많은 농업의 환경 승리(Saving the Planet With Pesticides and Plastic: The Environmental Triumph of High-Yield Farming)>(2000)라는 저작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허드슨연구소에 자금을 대는 곳은, 아처 다니엘스 미들랜드Archer Daniels Midland, 콘 아그라Con Agra, 카길Cargill 등의 농산업 기업과 아메리칸 사이나미드American Cyanamid, 치바가이기Ciba-Geigy, 몬산토Monsanto, 신젠타Syngenta 등의 생명공학 및 농약 기업이다. 그가 바라보는 쿠바의 유기농업에는 꽤 삐딱한 면이 있다고 보는 편이 좋다.

 

한편, 쿠바의 유기농업을 오랫동안 지지한 피터 로제트와 미구엘 알티에리 박사는 쿠바의 생태농업을 절찬한다.

 

“우리가 아는 한 2008년 3번의 허리케인이 쓸고간 뒤, 쿠바는 그 소비식량(비공식 수치)의 55%를 수입하고 있다”며 쿠바가 식량을 수입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최근 쿠바를 방문한 사람들이 수집한 사례 증거를 통해 쿠바의 유기농업 생산력이 최근 떨어졌다고도 기술한다. 그렇지만 에이브리가 ‘쿠바의 생태농업 모델은 붕괴 직전이다’라고 단언하듯이, 쿠바 생태농업의 실적을 칭찬하는 모든 보고서도 ‘커다란 거짓부리이다’라는 점을, 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던지며 이렇게 계속한다.

 

“쿠바는 기후 변동으로 가장 피해를 받고 있는 나라의 하나이다. 하지만 2008년 3번의 허리케인 피해에도 상관없이 식량 자급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생태농업은 쿠바에서 성장하고 더욱 강화되고 있다. 쿠바의 자립 소농 ANAP의 회원 수의 약 절반인 10만 세대가 생태농업을 통한 다양화를 실천하고, 상업적인 산업형 농업보다 훨씬 많은 식량을 같은 면적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가족농업의 대다수는 캄페시노 운동(Campesino a Campesino)의 일부로서, 20%의 토지만으로 국내 식량의 65% 이상을 생산한다. 이러한 쿠바의 경험에서 나온 자료는 단일 작물의 수확량이 아닌 총생산량을 고려하면, 대농보다 소농이 뚜렷하게 생산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를 확증한다. ANAP는 경험을 나누어 지역적 연구와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농민에게서 농민으로’라는 모델의 기술 혁신과 보급 과정을 통해 농민의 적극적인 참가에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더욱 소규모인 농민도 이 생태농업 혁명에 참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귀농을 바라는 가족에게 최대 13.5ha의 농지를 제공했는데, 10만 건의 신청이 들어왔다. 목표는 쿠바의 식량주권을 확실히 하고자 150만ha를 생태농업으로 관리하자는 것이다.”

 

“도시농업의 업적도 성장하고 있는데 참으로 대단하다. 38,3000개의 도시 농장이 5만ha의 유휴지를 포함한 곳에서 150만 톤 이상의 채소를 생산한다. 아바나와 산타클라라 등의 도시에서는 70% 이상의 신선한 채소를 공급할 정도다. 도시 농장은 화학 합성 물질을 전혀 쓰지 않으며 1평방미터에 20Kg의 수확량을 올린다. 세계의 다른 어느 나라도 식료품의 이동거리와 에너지 사용을 억제하고, 지역 농산물 소비라는 흐름을 이끈 이 효율적 수준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피터 로제트와 미구엘 알티에리 박사는 최근의 10개 주州에서 농장의 실정을 조사하며 몇 백 명의 농민, 농학자, 정책 입안자와 이야기하여 이러한 발전을 확증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거시경제 측면에서 쿠바의 농업은 쇠퇴하고 있는 것일까? 로제트와 알티에리 박사는 “경제 봉쇄 때문에 인도주의적 식량 판매라는 암시장으로 미국에서 수입되는 식료품의 영향이 크다. 미국의 경제 봉쇄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무력행사에 대항할 원조를 구하고자 쿠바 정부에서 어떠한 정치적 결정을 한 듯하다. 미국 기업에게 해마다 고액의 본질적으로는 필요치 않은 식료품을 대량으로 구입하고 있다. 이러한 수입 증가가 최근 쿠바의 전국 생산을 저하시키고, 그것이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대안을 결의하자고 주장하는 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는데, 그만큼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쿠바의 유기농업이 어떤 상태인지를 확실히 하는 데에는 각각의 우량 사례만이 아니라 전체를 볼 수 있는 지역이 어떤 상황인지 조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쿠바의 문헌에는 이러한 사례 조사를 좀처럼 볼 수 없는데, 캐나다 어느 대학의 석사논문 수준에서도 학생들이 꽤 면밀히 조사했다. 아래의 내용은 인터넷에서 찾은 그러한 석사논문 가운데 하나로 그 개요를 소개하겠다.

 

 

애매모호한 쿠바의 유기농업 정의

 

쿠바는 유기농업의 선두로 간주된다. 그 경험은 <근대사에서 최대의 관행농업에서 유기농업으로 전환함>」(Rosset and Medea, 1994), <근대적 대규모 관행농업에서 준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려는 장대한 실험>(Rosset, 1997: 291), <유기농업으로 전환>(D’arcy, 2005), <유기혁명>(Warwick, 2001: 54)이라 불리고 있다.

유기농업과 지속가능한 농업 체계에서 쿠바가 세계에서 중요한 선구자임을 보여주는 문헌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쿠바의 농업 부문에서 ‘유기’나 ‘지속가능’이라는 단어를 엄밀히 무엇을 뜻한다고 정의하는지는 쉽게 알 수 없다. 어느 때는 ‘쿠바 농업은 전체가 유기이다’라 하고, 또 어느 때는 ‘준 유기이다’ 하고, 또 어느 때는 ‘지속가능이다’ 하고, 또 어느 때는 ‘생태농업이다’ 기술한다. 이렇게 다양한 용어의 경계는 애매하게 얼버무린 채이다. 쿠바에게 유기농업이란 무엇을 뜻할까? 먼저 역사적 경과를 보도록 하자.

 

 

경제위기 이전부터 준비되었던 유기농업

 

쿠바의 농업은 소련의 원조를 받는 녹색혁명에 따른 근대적 생산 모델이었다. 근대농업의 기술은 개인 농가와 협동조합 농장보다 국영농장에서 더욱 성행했다. 경제위기 이전에 개인 농가와 협동조합 농장이 관리하던 농지는 전체의 20%에 지나지 않았는데, 전통적인 저투입형의 비교적 지속가능한 농법이 유지되어(Funes, 2002) 그것이 전국적인 차원의 고투입형 기술에서 전환하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또 다른 세계의 여러 지역과 마찬가지로, 쿠바에서도 1960~1970년대에 걸쳐서 환경 의식이 높아진다. 그 까닭은 DDT와 같은 농약의 나쁜 영향을 지적한 레이첼 카슨의 고전 <침묵의 봄> 등의 저작이 출판되었기 때문이다(Funes, 2002). 이 의식의 고양으로 1970~1980년대에 걸쳐 쿠바의 학회와 농업성(MINAGRI) 및 대학은 관행농업에 비판적인 입장이 되어 대안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 연구의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Rosset, 1997; Warwick, 2001; McKibben, 2005). 이리하여 농장과 연구를 통해 경제위기 이후에도 쓰일 수 있는 자원이 준비되었던 것이다.

 

 

투입 자재의 전환

 

일반적으로 유기농업이란 화학비료와 농약 등을 유기비료 등의 생물투입자재로 대체하는 것이라 하며, 그것은 거의 모든 유기인증 규정의 핵심이기도 하다. 쿠바에서도 ‘투입자재의 대용이 새로운 농업의 핵심이다’라고 Funes(2002)는 기술하며, 이 성패가 유기농업의 지표라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대체는 ‘고투입형에서 저투입형 농업으로의 전환’(Rosset, 1997), ‘석유, 화학자재, 기계 등의 공업적 투입에서 대안에너지, 바이오 방제 유기체, 수소 등의 지역에서 생산된 지속가능한 투입자재로의 전환’이라고 기술한다(Rosset, 1997).

 

투입 자재의 대체에 대한 쿠바의 전환은 참으로 빨랐다. 하나의 예를 들면, 1991년에는 작물의 56%가 이미 바이오 방제로 처리되고 있었다. 이는 유기농업의 진전이고, 약 1560만 달러의 경비 절감으로 이어졌다(Rosset and Medea, 1994). 또 수소도 1990년에는 약 5만 마리였는데 2000년에는 40만 마리가 되어, 이것이 경작용으로 트랙터를 대체했다(McKibben, 2005).

 

 

전통기술도 근대기술도 함께 쓰다

 

유기농업은 반反근대라서 로우 테크의 저투입형 농업으로 회귀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전통농업이라고 하여 반드시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매우 환경파괴적인 전통농법도 있다. 쿠바에서는 근대기술보다 자금이 들지 않기에(McKibben, 2005),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의 일부로 전통농업으로 회귀하자고 적극적으로 장려되었다(Rosset, 1997; Nieto and Delgado, 2002). McKibben (2005: 64)는 쿠바의 준準유기농업을 고투입형 트랙터 농법에 필적하는 발명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쿠바에서는 근대농법과 유기농법이 명확히 구별되지 않고, 현장 상황에 따라서 모두 존중된다. 가장 초보적인 전통농법도, 경제적 긴급사태에서 어쩔 수 없이 강구된 조치라고 하기보다는 현재의 농업 과제에 대응하는 다양한 기술의 하나라고 본다(Mart´ın, 2002: 69).

 

 

농장 규모

 

기계화 농업에서는 규모를 확대하는 쪽이 효율적이지만, 그러한 대규모 농업에서는 섬세한 경영 관리나 자원순환이 어렵다. 유기농업과 같이 지식에 기초하는 생산에서는 소규모인 쪽이 더욱 효율이 좋다(D’Souza and Ikerd, 1996). 이 때문에 유기농업에서는 대규모 유기농업이라는 발상 그 자체에 무리가 있다고 주장되는 것이다. 쿠바에서는 사탕수수, 카카오, 커피 등 대규모 플랜테이션도 유기농업으로 전환되고 있는데, 그 전환 속도는 소규모 농장과 협동조합 농장과 비교하면 더디다(Funes, 2002). P´erez and Echevarr´ıa(2002: 273)는 사탕수수와 담배 농장에 대해서 ‘대규모 농장에서 유기농업으로 가는 길은 아직 먼 것이 현실이다’라고 인정한다. 곧 대다수 대규모 농장은 아직도 관행농업인 채이고, 유기농업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은 소규모 농가와 그 조직이다(Warwick, 2001; Ricardo, 2003). 유기농업에는 토지 특성에 따른 지식이 필요하여, 소규모 농가 쪽이 농지와 더욱 친밀하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 초기에는 대규모 국영농장이 해체되고 소규모로 바뀌는 농업 개혁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수출지향생산과 지역 농산물 먹기

 

유기농업에서는 지역 농산물 먹기가 수출 지향일지라도 큰 과제이다. 많은 유기농업 추진파는 지역 농산물 먹기를 중시하며 유기농업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식량의 원거리 출하에는 환경 부하가 있어, 건전한 자급자족형 지역사회 만들기에는 지역 농산물 먹기가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유기농업 대부분은 지역 농산물 먹기보다 선진국의 유기식품 시장을 지향한다(Raynolds, 2000; Gomez Tovar, 2005).

그러나 쿠바는 다르다. 유기농업으로 전환한 것은 지역의 식량안전보장의 달성(Rosset and Bourque, 2002; Funes, 2002)과 Perera(2002: 7)가 말한 ‘식량주권’의 중시와 함께 병행하여 진행되고 있다. 다만 지역 농산물 먹기를 중시하고 있기는 하나, 쿠바는 아직도 해마다 9억 달러나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다. 1980년대의 식량 수입액은 1년에 10억 달러로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수요를 충족하고자 쌀, 밀, 밀가루, 고기, 우유, 콩 등을 계속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FAO, 2005).

 

Rosset(1997)는 경제위기 초기에 기아를 피하려면 이런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경제위기가 시작되면 쿠바는 그 식량의 50% 이상을 수입해야만 한다(Nieto and Delgado, 2002). 갑자기 수입 식량의 침체로 인해 현지의 식량안전보장이 긴급 과제가 되었다. 현재 얼마나 되는 유기농산물이 생산되는 그 지역사회 안에서 직접 소비되지에 대한 통계는 얻을 수 없다. 그렇지만 비공식 평가를 통해서 생산된 지역에서 꽤 많이 소비된다고 알려져 있다(Alvarez, 2002; Funes, 2002). 그 식량의 얼마는 생산자가 직접 소비하고 있는데, 그밖에도 지역 내 유통이란 선택지가 있다. 1994년에 문을 연 민간의 농민시장이 그것이다. 그것은 정부의 배급제도를 보완하고, 어느 정도 가처분소득을 가진 사람들에게 현지 생산물을 판매할 기회를 생산자에게도 가져다주었다(Sinclair and Thompson, 2001; McKibben, 2005).

 

도시농업도 지역 농산물 먹기를 중시하고 있어, Altieri et al.(1999: 132)는 이를 ‘생산이 밀접하게 도시 주민과 결합되고, 도시에서 직접 영향을 받는 도시 및 도시 근교에서 생기는 모든 농업·가축 생산’이라고 정의한다. 1989년 이전도 자가 텃밭의 얼마는 도시부에서 식량원이 되었는데(Wezel and Bender, 2003), 이러한 텃밭은 저개발의 상징이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Altieri et al., 1999). 그러나 소련이 붕괴된 뒤 가정과 지역사회의 텃밭이 식량위기에 대응하는 빠뜨릴 수 없는 수단이 되어서, 이런 의식은 급속히 변화해 나아갔다(Altieri et al., 1999; Chaplowe, 1998; Warwick, 2001). 현재는 가령 농사 경험이 거의 없는 시민도 지방정부에게 공짜로 식량생산용 토지를 얻을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신청하고 있다(Altieri et al., 1999). 현재는 몇 천 개의 도시 텃밭이 있어, 아바나시에서는 몇 만 명이 도시농업 부문에 종사하며, 2004년에는 30만 톤의 식량(과실과 채소의 대부분, 그리고 쌀과 고기도 꽤 포함)을 생산했다(McKibben, 2005). 도시농업은 매력적인 분야가 되어, Wezel and Bender(2003)는 임금이 높은 도시농업 부문에서 일하려고 국가공무원들이 전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쿠바의 도시 텃밭은 현지 생산과 지역 안의 유통체계를 창조하는 것으로 지역의 식량안전보장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유기농업 모델의 주요 사례로도 인식되고 있다. 지역에서는 화학비료와 살충제의 사용이 금지되어, 결과적으로 땅심을 올리고 병해충을 방제하고자 도시 텃밭에서는 유기농법을 쓰게 되었다(Altieri et al., 1999).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도시농업을 통해 창설된 지역 농산물을 먹자는 운동의 연결망이다. 그것은 지역사회 안에서 사회적인 관계망을 구축하자는 유기농업의 이상을 만족시키고, 식품 수송으로 발생하는 오염을 삭감하고 있다(Altieri et al., 1999). 게다가 재활용된 투입자재와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자재(지렁이두엄 등)을 쓰고(Altieri et al., 1999), 결과적으로 유기농업의 지지자들이 ‘더욱 깊은 형식의 유기농업’이라고 간주하는 닫힌 생산 체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쿠바의 유기농업이 지역 농산물 소비 연결망의 중시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발전해 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지만 국가에서 수출용 유기농산물 생산을 계획하고 있는 움직임도 있다. 국제시장에서 받는 유기인증 농산물의 높은 가격을 이용하고, 사탕수수·카카오·커피·벌꿀·과일 등의 전통적인 돈벌이작물을 유기인증하려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Funes, 2002). 이 수출 생산에 초점을 맞춘 전환에 의해서 유기농업이 의미하는 내용도 변화해 나아갈지도 모른다. “충분하지 않은 외환의 현재 경제 상태… 그것이 수출용의 유기농산물과 시장관리를 지지하고 있다(Funes, 2002: 23).” 그렇지만 수출 지향 샌산에 맞춰서 쿠바가 어떻게 움직여 갈지는 명확하지 않고, 수출 시장을 중시한 유기인증 농산물에 의해서 돈벌이작물을 수출하고 식량을 수입하려는 쿠바의 예전 입장으로 돌아갈지 어떨지도 알 수 없다.

 

 

쿠바에 유기농업 철학은 있는가

 

투입자재의 대체는 거의 모든 유기인증 기준의 기초를 이룬다. 하지만 유기농업에는 간단히 정의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포괄적인 일련의 가치관과 이상주의이다. 유기농업은 순수하게 경제적인 이익으로부터, 사회와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철학적인 신념에까지 미치는 동기부여가 있다. 쿠바의 유기농업 모델은 주로 경제적인 동기부여와 수입자재의 대체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기농업으로 전환하여 소규모 농장과 지역 농산물 먹기 운동의 연결망이 크나큰 역할을 맡았기에, 투입자재의 대체 모델보다는 훨씬 깊고 포괄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쿠바에서는 포괄적인 유기농업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Funes(2002:23)는 투입자재의 대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서로 배가 되는 구조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유기농업과 지속가능한 모델에 바탕하며, 작물과 가축 생산·숲 관리 이외에 서브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일치시켜 조합하는 복잡한 생태농업의 체계를 개발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Garc´ıa(2002)도 투입자재와 특정 생산기술을 뛰어넘는 기본적이고 철학적인 차이를 포함한, 관행농업과 유기농업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생태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은 농촌에서 실시하는 보급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지속가능한 체계를 확립하는 데에는 농업을 고립된 단위로 간주하는 사상적인 심리상태를 여러 학문 분야가 연계된 포괄적인 접근으로 다가서는 것이 농업의 본질이라는 개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쿠바의 유기농업에는 깊은 철학적인 기초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수출의 가능성에 맞춘 전환을 포함해, 이것과 받아들이지 못할 동향도 있다. 예를 들면 쿠바는 급속, 또 대규모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찬미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한편에서 정부는 관행농업도 유지하고 있으며, 어쩌면 이후에도 계속 유지할 것이다(Funes, 2002). 유기농업이 실제로 얼마나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도 손에 넣을 수 없다. 관행농법과 비이오테크와 유기농업을 조합한다는 문제도 있다. 쿠바의 새로운 농업 전망의 핵심에 있는 것은 철학적, 도덕적 유기농업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더욱 실용적인 접근에 지나지 않으리라.

 

McKibben(2005)는 평소에는 유기농업을 실천하다가도 감자에서 해충이 발생하면 화학농약을 쓰는 쿠바 농민의 사례를 들고 있다. 쿠바의 농민들은 올바른 먹을거리의 생산 방법이라는 강한 신념을 위해서 스스로 유기농업 생산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떠한 선택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Warwick(2001)의 지적에 따르면 예방 원칙에 기초하여 밭에서 시험하는 것을 우선시하지 않는데, 쿠바에서는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대한 연구도 꽤 이루어지고 있다(McKibben, 2005).

 

 

맺으며

 

쿠바의 유기농업에 대한 기존 문헌을 보아도, 쿠바인들이 어떻게 유기농업을 정의하며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 정확히 주장할 만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문헌의 대부분은 신중한 과학적 조사보다, 오히려 사례 증거나 일반적인 인상에 기초하는 것으로까지 보인다. 기존 문헌을 분석하면, 쿠바의 유기농업 모델이 투입자재의 대용과 전통기술과 근대기술의 조합에 기초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장의 규모와 구조로 말하면, 유기농업은 소규모 개인 농장, CCS, CPA, UBPC, 그리고 특히 도시 지역의 다양한 토지 소유 구조로 실천하고 있다(Rosset, 1997; Chaplowe, 1998; Altieri et al., 1999; Funes, 2002). 일반적으로는 대규모 국영농장보다 소규모 농장 쪽이 유기농업으로 신속히 전환하고 있다. 그렇지만 농장의 규모가 쿠바 유기농업의 요소라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도 거의 없다. 또 쿠바의 유기농업 사상을 바탕으로 지역 농산물 먹기가 중시되고 있는지, 또는 현실적인 식량안전보장에 대한 일시적인 실용적 대응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더욱이 문헌에서는 쿠바인들이 사회와 자연에 대한 포괄적인 철학으로서 어떻게 유기농업을 보는지, 또는 거꾸로 경제적으로 동기부여된 투입자재의 대체수단이라고 보는지 결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증거도 얻을 수 없다. 다만 가장 명확한 점은 현재 쿠바의 농업이 유기농업의 수많은 원칙과 실천(지렁이 양식, 부산물 재활용, 대체에너지 이용, 쟁기질·사이짓기·섞어짓기 보전, 축산학, 그리고 생물 방제, 생물 농약, 생물량 등 현지에서 생산되는 생물 투입자재)을 받아들여, 다른 나라보다 확실히 계통적으로 그것을 행하고 있다는 것뿐이다(Rosset and Medea, 1994; Rosset, 1997; Warwick, 2001; Funes, 2002; CIC, 2003).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1) Erin Tace Nelson, A better World is possible: Agroecology as a Response to Socio-Economic and Political Conditions in Cuba, University of Waterloo, 2006. 

(2) Fernando Funes, Miguel A Altieri and Peter Rosset, The Avery Diet: The Hudson Institute’s Misinformation Campaign Against Cuban Agriculture, Ma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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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캄보디아농업개발연구센터(CEDAC)는 현재의 쌀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전략을 제안했다.

CEDAC는 이 방법이 성공적으로 적용될 경우 연 1,200만톤~1,300만톤 생산이 가능하며 국내 소비량을 제외한 7~800만톤 수출이 가능, 캄보디아가 세계 2대 또는 3대 쌀 수출국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금액은 연 40~50억달러에 이른다.

 

CEDAC가 제안한 방법은 식량 혁명을 꿈꾸는 미국의 한 과학자의 재배법으로 현재 미 코넬대의 석좌교수인 노먼 업호프는 쌀 재배법을 바꿔 국제 식량위기를 해결하는 것에 앞장서고 있다.

 

업호프 교수는 농부들이 일찍 파종하고 벼가 자랄 충분한 공간과 햇볕이 확보되도록 파종 간격을 넓히고 논에 물을 채우지 않는 재배법을 쓰면 수확이 통상 배로 늘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쌀 강화 시스템(SRI)'으로 불리는 이 방법은 벼의 양보다는 질을 강조하는 것으로, 물의 사용과 종묘 비용을 줄이면서도 벼의 뿌리와 잎을 강화해 수확을 늘린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이 재배법은 기존의 쌀 과학자들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면서도 막연한 이론에서 국제적 추세로 이어져 업호프 교수는 현재 100만명의 쌀 재배 농부들이 이 방식을 채택했고, 향후 몇 년 안에는 그 수가 1천만명으로 늘어나 쌀 수확을 더 늘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재배법은 코넬대 동료 과학자 뿐 아니라 종자 개량에 주력하는 필리핀의 국제 쌀연구소 등 기존 과학자들의 회의론 속에도 확산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재배법이 사용되는 28개 국가중 캄보디아를 포함하여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을 가장 많이 쓰는 국가로 평가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짠 싸룬 농림부 장관은 지난 4월 농업박람회에서 SRI가 많은 쌀 수확을 보장한다고 농부들에게 권장했으며 인도 남부 타밀나두 주의 비라판디 아루무감 농업장관도 최근 이 재배법을 혁명적이라고 호평했고 세계은행연구소는 그의 재배법을 확산시키기 위해 DVD로 만들고도 있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업호프 교수의 방식을 단지 망상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국제쌀연구소의 아킴 도버만 소장은 SRI를 채택한 농부들은 알려진 것보다 적다면서 이 방법은 현실에서 너무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한다고 비판했다.

 

업호프 교수가 SRI를 연구하면서 직면했던 문제도 물을 쓰지 않는데 따라 잡초가 많이 자라는 것으로, 이는 곧 잡초 제거를 위한 일손을 많이 필요로 함을 의미했다.

특히 가난한 여성의 잡일을 늘리는 후진적인 방식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나 업호프 교수는 이는 편견에 따른 것이자 SRI를 실제로 모르기 때문이라면서 농부 대부분의 노동력을 줄여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캄보디아 전체 농민 가운데 60~65%가 쌀 재배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어 향후 이 농법이 어떤 방식으로 캄보디아에 접목될지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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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는 생태농업의 세계 모델

 

2010년 5월 11~14일에 걸쳐 쿠바 농림기술협회(ACTAF = Asociacion de Tecnicos Agricolas y Forestales-Cuba)의 주최로 아바나에서 제8회 유기농업·지속가능한 농업 국제회의가 내셔날호텔에서 개최되었다. 국제회의는 생태농업에 기반을 둔 지속가능한 농업을 개발하고자 쿠바 및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의 여러 나라가 교류하는 장으로서, 농업기술자·가공업자·교육자·연구자·농업정책 담당자들의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의제는 아래와 같다.

 

1. 도시와 그 근교의 농업

2. 무니시피오(시·읍·면)의 농업 개발

3. 농업에서 젊은이와 여성의 역할

4. 시장, 무역과 유기농산물 인증

5. 식량 안전보장과 연대

6.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기술

7. 생태농업을 추진하기 위한 소통 방법

8. 지구의 기후 변동 문제

9. 에너지와 대안 기술의 사용 방법

10. 생태농업의 교육, 연구, 보급

11. 생태농업 체계의 경영과 평가

 

회의에 앞서 5월 6~9일에는 피날 델 리오주Pinar del Rio州, 아바나주, 아바나시, 마탄사스주, 산타클라라주, 상티 스필투스 등의 각 주에서 현장 시찰도 이루어졌다. 또 회의 뒤인 5월 15~19일에도 열대농업기초연구소(INIFAT)에서는 도시농업을, 도시 근교농업과 쿠바 소농협회(ANAP)에서는 생태농업 연수회도 열었다.

 

국제회의에는 22개국이 참가했는데, 의장을 맡은 것은 소농협회의 올란도 루고 폰테Orlando Lugo Fonte와 후안 페레즈 라마스Juan Pérez Lamas 농업 차관이다.

루고 폰테는 쿠바에서 농업 분야 증산에 생태농업 기술을 활용한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고, 토양과 환경 보존에도 도움이 되며 화학비료가 부족한 쿠바에서는 생태적 기술을 써서 만드는 유기비료를 빠뜨릴 수 없다고 했다.

쿠바의 국제회의는 라틴아메리카 생태농업 학회(SOCLA= Sociedad Cientifica LatinoAmericana de Agroecologia), 라틴아메리카 생태농업 운동(MAELA = Movimiento Agroecologico de America Latina y El Caribe)과 함께 주최한 것으로, ‘제6회 라틴아메리카 생태농업 지역운동회의’도 겸하고 있었다.

 

그래서 개최식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생태농업 학회의 미구엘 알티에리Miguel Altigri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온 세계의 금융위기, 에너지, 사회 위기는 세계의 몇 백만 명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가뭄, 홍수, 허리케인과 기후변동도 국제적인 과학화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 현상에 대응하는 새로운 농업 모델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쿠바는 자원의 합리적인 이용과 환경 보전의 세계 모델입니다.”

 

알티에리는 생태농업에 기반을 둔 지속적 농법을 개발한 쿠바의 농민들을 높이 평가했다. 미구엘 알티에리 대표는 운동의 일환으로 생태농업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학회가 탄생한 경위를 웹사이트에 적어 놓았다. 내용의 요지를 소개하겠다.

 

 

운동으로서 발전해 온 생태농업

 

중국, 유럽, 미국 등은 소의 먹이로 수출용 유전자조작 콩을 공업적으로 생산한다. 선진국의 바이오연료 수요에 응하여 사탕수수, 옥수수, 콩, 팜유, 유칼립투스 등을 생산한다. 이러한 지구 규모의 수요가 라틴아메리카 농업의 모습을 변모시켜 나아갔다. 그리고 아직도 경험하지 못한 경제, 사회, 그리고 생태적인 위험을 가져오고 있다. 공업형 농업은 비싼 가격의 석유에 의존한다.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의 보전에 위협이 된다는 것에 더해, 대규모 단작은 기후변동에도 취약하다. 수출형 농업과 바이오연료 모델을 추진하여 소농들의 지역 자급력도 빼앗아 갔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응하여 그 20년 동안 식량주권과 생태농업이란 개념이 꽤 주목받아 왔다. 근대 농학과 선주민의 지식 체계를 접목한다. 이 새로운 농업기술은 몇 천 명의 농민들 사이에 보급되고 있으며, 농업 생물다양성과 토양과 물을 보전하면서 농촌 지역사회의 식량안전 보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NGO·정부·학술기관에 의해서 실증되고 있다. 지속형 농업을 촉진시키고자 몇 백 개의 NGO가 생태농업을 활용하고, 여러 대학에서도 생태농업 학과와 석사 과정을 개설하고, 브라질·쿠바·베네수엘라·볼리비아·페루 정부는 농업 개발전략의 일부에 생태농업을 넣고 있다. 농민운동 비아 캄페시나, 브라질의 소농운동(MPA=Movimento dos Pequenos Agricultores), 토지 없는 농민운동(MST =Movimiento de Trabajadores sin Tierra) 등도 식량주권을 촉진하고자 생태농업을 제창하고 있다.

 

 

생태농업 학회 탄생

 

생태농업에서는 복잡한 농업 체계를 중시한다. 생태계의 생태적인 상호작용과 시너지에 의해서 최소한의 에너지 투입량으로 땅심을 유지하고, 생산성을 확보하며, 농약에도 거의 의존하지 않고서 작물을 보호해 나아간다. 또 생태농업은 단순한 농법에 머무르지 않는다. 풀의 뿌리를 연구하고, 농민에게서 농민으로 보급되는 수단을 통해 농민들 자신이 기술을 혁신·평가하고 적합하게 만드는 지역사회의 능력도 중시한다. 또 환경보전과 생물다양성은 지역 문화와도 깊이 관계한다. 그래서 지역사회의 참가를 중시하고, 문화를 지키며, 소농의 다면적 기능도 발휘해 나아간다. 인적자원을 개발하는 것으로 농촌 주민, 특히 자원이 부족한 농민을 위한 선택지를 늘려 나아간다. 이와 같이 지속가능하게 농업 생태계를 관리·설계하기 위해, 생태학의 개념과 원칙에 기반을 두고 복잡한 농업 생태계를 평가하기 위한 과학의 틀과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생태농업 과학’이다. 연구·교육·보급 사업에 걸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 새로운 농업을 설계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라틴아메리카 생태농업 학회가 탄생했다.

 

학회의 첫 회의는 2007년 8월 13~15일에 콜롬비아 북서부의 안티오퀴아주 메델린Medellin에서 안티오퀴아대학(Universidad de Antioquia) 등 콜롬비아의 학술기관과 공동으로 개최되었다. 비아 캄페시나, 브라질 등의 주요 농민조직 대표,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지역 생태농업 운동(MAELA), 라틴아메리카 대안 탈 농약 네트워크RAPAL= Red de Accion en Plaguicidas y Sus Alternativas para America Latina), IFOAM 등 생태농업을 추진하는 주요한 NGO의 대표 500명이 참가하여, 농약·환경·사회 등 다양한 과제를 논의했다. 생태적인 병해충 방제, 토양 관리, 민족생태학(ethnoecology), 생태경제학 등 여러 갈래에 걸친 생태농업 기술의 분석이 이루어졌다.

 

또 라틴아메리카에 영향을 미치는 긴급 과제, 기후변동·생명공학과 바이오연료 작물·세계화와 자유무역협정, 기업형 유기농장의 식량주권 등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또 각 단체는 자신들이 직면한 과제와 활동을 설명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연구·보급의 수요를 학회 멤버에게도 설명했다. 이 때문에 학회는 지역의 소농들이 갈망하는 요구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공업형 농업을 전화하고, 기후변동에 강한 농업을 개발하며, 식량주권과 농촌 지역사회의 삶을 확고히 하는 지역 농업을 촉진하는 것이 그 긴급 과제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지속가능한 농업 개발전략의 과학적 근거로서 생태농업학을 개발하고, 식량·환경·에너지 위기의 구조적인 원인에 대처하고, 공업형 농업 모델에 의해서 확산된 파괴적인 경향을 뒤집어엎는다. 이 목적을 위해 첫 회의에서는 이러한 과제에 대한 생태농업 기술을 분석·교육·보급하기 위한 워킹 그룹도 만들고, 전략 계획도 정했다.

 

 

농민과 협동하여 실천과학을 추구

 

학회는 라틴아메리카 14개국의 연구자, 교수, 보급원 등 260명의 구성원으로 구성된다. 학회의 강점은 수많은 대학과 NGO, 라틴아메리카·카리브 지역 생태농업 운동, 라틴아메리카 대안 탈 농약 네트워크, GALCI 등 브라질 생태농업협회(ABA= Brazilian Agroecological Society), 생태농업 스페인협회(SEAE= Sociedad Espanola de Agricultura Ecologica), 비아 캄페시나, 브라질의 소농운동, 쿠바, 페루 등과 협력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다량의 농사땅에서 바이오연료 작물을 생산할 경우, 식량안전 보장과 생물다양성 등에 어떠한 영향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분석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농업생산성에 기후변동이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예측하는 모델은 개발되어 있지만, 가뭄과 불안정한 강우에 강한 생태농업 체계에 대한 연구는 크게 누락되어 있다. 그래서 학회는 3년마다 과학 회의를 여는 것과 함께, 각 나라에 단기 훈련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또 지속가능한 농업에 유용한 대안기술, 공정한 시장, 지역 농업 개발전략, 정책 개혁의 정보를 농촌사회와 시민운동에 제공하고 있다. 생태농업 스페인협회와 무르시아대학(Universidad de Murcia)과 협동하여 일련의 백서로 워킹 그룹의 성과도 널리 발표되어 있다. 또 학회는 라틴아메리카의 대학 네트워크와도 연대하여 콜롬비아대학(Univeridad Nacional deColombia)과 안티오퀴아대학과 협동하고, 학회는 고도의 이론과 실천 수준을 가진 전문가를 양성하고자 생태농업의 유일한 박사 과정도 개설했다.

 

제2회 라틴아메리카 학회는 2009년 11월 9~12일에 브라질의 쿠리치바에서 브라질 생태농업 협회의 협력을 받아 개최되었다. 의제는 ‘농민과 가족농업 : 지속가능한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과거·현재의 경험’이다. 학생, 농민, 연구자, 교수 등 3000명 이상이 참석하고, 미래가 없는 공업형 농업 모델에 대응하여 참으로 지속가능한 대안으로서 생태농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쿠바에서 국제회의가 열린 사전 움직임으로는 이러한 일들이 있었다.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1) The Latin American Scientific Society of Agroecology ( Sociedad Cientifica LatinoAmericana de Agroecologia-SOCLA) launched

(2) Miguel A. Altieri, The Latin AmericanScientific Society of Agroecology (SOCLA): a network of researchers, professors, extentionists and other professionals to promote agroecological alternatives to confront the crisis of industrial agriculture in the region

(3) Cuba: An Example in Using Agroecology, Aldia.cu, May12,2010.

(4) Cuba is an Example of Agro-ecology, says expert, Cuban Daily News,May15,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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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54개의 국가가 있다. 아프리카는 인도ㆍ중국ㆍ러시아를 합친 크기의 대륙에 8천만명의 소농민(小農民)들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17가지의 독특한 경작 방식이 있다. 95%의 아프리카 작물은 하늘에서 내리는 강우에만 의존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매우 거대하고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선진국 농업기술의 적용은 부적절하다


최근 세계식량정상회담에서 공개한 아프리카의 농업과 식량안전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이를 위한 자금지원은 과거에 이미 실패한 방법으로 이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농업선진국의 농업기술과 농업경영 방식에 의존하는 것은 가난하고 자원이 부족한 대부분의 아프리카 소농민들의 식량 안전 문제를 해결하는데 부적절하다.
아프리카의 54개 국가를 향하여 녹색혁명을 촉구하는 것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드러나는 거대한 물질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차이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어떤 기술로도 중국ㆍ인도ㆍ러시아를 합친 거대한 대륙을 일시에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 농산물을 대량생산할 수 는 없다.
단지 기술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농업 생산이 인간의 혁신에 반응하는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공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농업 생산은 그렇지 않다.
기술은 영양실조를 줄이고 작물 생산량을 증진시키고 식량안전을 강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그것이 복잡한 문제에 대한 묘책이라고 결론지을 수 없다. 그렇게 한 결과 무기 화학비료의 대체물을 포함, 저투입 해결책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감소하였다. 기술을 마치 농업을 위한 만병통치약으로 취급할 때, 지역의 지식을 활용하고 여러 요소들을 특정 상황을 위하여 적절한 기술과 결합함으로써 농민들의 현행 방식에 반응하고 종속되는 더욱 적절한 노선을 농민들에게 따르라고 하기보다는 기존의 연구와 방식을 따르라고 강요하게 된다.
한 지역에서는 정밀농업이 GPS(위성항법장치) 기술의 사용을 필요로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손으로 작물을 심기 위해서 끈과 막대기를 필요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다양한 토양과 기후에 맞는 경작방식 도입해야 한다

아프리카는 광활하고 다양한 대륙이다. 인터아카데미협의회(IAC)의 보고에 의하면 아프리카는 토양, 기후, 질병과 역병이 극도로 다양하여 17가지의 독특한 경작 방식이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70%의 농장은 인프라가 제한되어 있는 작고 파편화된 땅덩어리이다. 95%의 아프리카 작물은 관개시설을 대규모 확장하는 것이 제한된 가운데 강우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 가운데 농민들은 시장에 거의 또는 전혀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생존은 작물의 다변화에 달려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농업을 다른 대륙의 녹색혁명 방식이 맞지 않는다

이들 8천만의 소농민들은 아프리카에서 단연 가장 큰 농민 집단이다.
그들은 수확기 사이에 기아 기간을 종종 통과해야 하는 식량의 순 매수자들이고 개인이나 마을 차원에서 맞춰진 매우 특유한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다른 지역을 위하여 개발된 기술을 이곳 아프리카에서 사용하는 것은 큰 실책이다.
제한된 농업예산이 입증하고 있듯이 아프리카에서 농업을 가난 해결의 수단으로 삼는 국가는 거의 없다. 정부들은 또한 토지 보유권에 관한 이슈를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했다. 농민들은 토지 소유권 없을 경우 장기적 생산성 이득을 위하여 개량시설에 투자하고자 하는 의욕을 잃게 될 것이다. 불공평한 토지 정책은 아프리카 농민의 70%를 차지하는 여성들에게 특히 가혹하다.
아프리카에서는 20세기에 시작된 녹색혁명의 방식이 맞지 않다.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녹색혁명은 최대수확량을 얻기 위하여 화석연료투입과 관개시설의 집약적 이용에 기초한 밀밭과 논의 단일재배를 강조하였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는 복합작물을 보존하는 저투입 방식에 맞는 안정적인 수확량을 필요로 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농민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윤작(輪作), 간작(間作), 그리고 혼작(混作)에 의존하고 있다.
동일성을 몰아붙이는 방식은 전통 가치와 환경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작물의 다양성을 축소시켜 기아와 영양실조를 악화시킬 수 있다.

소규모 생계형 가족농업, 지역에 적합한 종자 중심의 생태농업이 해결책이다

여기에 해법이 있다. 인터아카데미협의회는 ‘범대륙적 전략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중재하는 전략’을 추천하고 있다. 국제농업지식과학기술평가위원회(IAASTD)는 400여명의 과학자들이 400년 동안 연구한 것을 토대로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본 위원회는 소규모 생계형 가족농업, 지역에 적합한 종자, 그리고 생태 농업이 개발도상국의 기아, 가난, 그리고 농업생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접근방식들은 집중적인 훈련과 광범위한 기반의 보급서비스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다국적 기업이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정부들은 종종 서구의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것과 지원을 거부하고 부적절한 자체 자원을 고집하는 것 가운데 양자택일하도록 강요 받고 있다.
자원이 부족한 많은 농민들은 종자 간격, 종자 깊이, 고랑 간격에 관한 훈련, 개방수분의 개량종자와 교배종 개량종자, 기본적인 토지 관리, 피복 작물, 계단식 논, 간작, 유기물을 대체하고 토지 구조를 재구성하도록 돕는 최소 경작 기술 등을 포함한 작은 지원들을 통해 도움을 받고 있다. 이들은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갈망하고 있다.

출처 : Agriculture & Industry Surv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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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 선생님이 번역한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의 저자 요시다 타로 선생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재밌는 글을 보고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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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운동이 되어 가는 생태농업



아시아·생태농업 국제회의


2010년 5월 18~22일. 스리랑카의 콜롬보에서 토지와 농업의 개혁운동(MONLAR. Movement for Land and Agricultural Reform)의 초빙을 받아 비아 깜페시나La Via Campesina는 제2회 생태농업 모임을 개최했다.


제1회는 2009년 8월 베네수엘라의 바리나스Barinas에서 개최되었던 라틴아메리카 모임이었다. 종자나 지식의 독점·민영화, 화학비료나 농약 사용의 촉진에 대해 온 세계 소농의 커뮤니티에 생생한 주체성을 가져오고, 저항·투쟁과 자치 문화의 확립을 강화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제2회는 농민 사이의 교류나 연대를 강화하고, 저마다 지닌 지속가능한 농법의 장단점을 밝히며, 빚과 독이 없는 세계를 향하여 아시아에서 생태농업 운동을 전개하고 식량 주권의 원칙을 실천으로 옮긴다는 것이었다. 이 모임에는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8개국의 비아 깜페시나 참가 단체에서 지속적 농업에 착수한 농민, 발기인, 지도자가 참가했다. 비아 깜페시나의 주장은 과격했다.


“농민이나 그 가족에게 정직한 노동조건을 창출하고, 환경적·경제적으로도 지속가능하며, 사회적으로도 공정하고 문화적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는 농업 체계를 다시 구축하려면 우리는 생태농업밖에 없다고 믿는다.”


제2회 모임에서는 기업 집단이 아니라 반드시 농민을 위한 농업 개혁과 식량 주권이 각국 정부에서 추진되도록 ‘생태농업을 위한 정책 창안의 틀’도 원안으로 제창하였다.



생태농업을 평가하는 국제연합 식량 고문


그러나 비아 깜페시나와 마찬가지로 생태농업을 높이 평가하는 인물이 또 있다. 설마 비아 깜페시나 회의와 조정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마치 보조를 맞춘 듯이, 한 달 뒤인 6월 21~22일 브뤼셀에서 국제회의 ‘2050년 세계 식량 수요의 충족을 위한 생태농업적 접근의 기여(The contribution of agroecological approaches to meet 2050 global food needs)’가 개최되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최선의 선택 사항입니다.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여유는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주장하고 회의에 참가한 사람은 국제연합 인권위원회에 ‘식량에 대한 권리’를 특별 보고한 올리비에 드 슈터Olivier De Schutter 박사이다.


일본에서는 저작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 것은 왜(한국에서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로 유명한 장 지글러Jean Ziegler가 있다. 드 슈터는 그의 직위를 계승했는데, 2008년에는 일을 맞자마자 “현재 일어나고 있는 세계의 식량 위기는 과거 20여 대국의 잘못된 정책으로 일어났다”고 단언하였다. 식량 위기에 대해 “이것은 바야흐로 시작되고 있어서、싼 값의 식량이 넘치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고,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농업 자금의 필요성을 과소평가해 왔는데, 그중에서도 IMF에 대해 “부채를 포함한 개발도상국에 식량 자급을 희생시킴으로써 돈벌이작물의 생산이나 수출을 요구했다”라고 비난하고 있다.


드 슈터는 벨기에 사람으로 지금은 프랑스의 인권 교수인데, 도대체 어떠한 사상의 소유자일까? IPS가 회의에 앞서 행한 인터뷰의 일부를 발췌해 보자.


당신의 전임자인 장 지글러 씨는 일찍이 아이가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는 때에 "그 아이는 살해된 것이다"고 말하였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해마다 300만 명의 아이가 영양불량으로 죽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발도상국에서는 3명 가운데 1명의 아이가 빈혈로 고생하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의 원인을 따라가면, 결국 정부에 의해 이루어진 잘못된 결정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EU의 바이오연료 정책도 문제입니다.


“바이오연료가 가져온 큰 영향은 토지를 집중시켜, 토지의 불안을 높인다는 것입니다. 과거 2~3년 동안 제가 방문한 꽤 많은 발전도상국에서, 농민들의 불평은 어디나 똑같았습니다. 자신들이 토지에서 쫓겨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선주민이나 소농들의 생활에 빠질 수 없는 토지의 소유권이 반드시 법적으로 인정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EU는 바이오연료가 지속가능하게 생산되도록 최근 인증평가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EU의 인증 기준에 완전히 빠져 있는 것은 바이오연료의 생산이 농촌 지역에 가져온 격차의 영향입니다. 모두는 아니라고 해도, 바이오연료는 넉넉한 사람에게는 메리트가 있지만 가난한 사람의 생활을 위해서는 아닙니다.”


드 슈터는 화학비료는 악령으로 묘사해서는 안 되고, 흙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인산염과 같은 외부 투입 자재도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 기술에 대해서는 꽤 비판적이다.


“생태농업은 작물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생태계에 있는 식물에 초점을 맞춰 식물을 훨씬 큰 체계의 일부라고 간주합니다. 그렇지만 유전자 조작 기술은 기본적으로 식물을 환경과 분리시킵니다. 게다가 유전자 조작 기술은 극소수의 기업이 손에 넣고서 지적소유권으로 보호받는 종자에 농민들이 의존하게 만듭니다. 사실 유전자 조작 종자는 어느 단 하나의 회사가 명확하게 지배하고 있습니다. 몬산토입니다. 그 가격이 너무 비싸 농민들을 빚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생태농업은 근대 기술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땅심을 높이고, 작물을 재배하는 데 필요한 투입 자재를 현지에서 생산하며, 농민들이 개발한 최선의 기술을 채택하는 것을 뜻합니다. 게다가 이러한 기술의 모두가 꽤 생산성을 높인다고 입증되고 있습니다. 실험실에서 과학적으로 개발하고, 그러고 나서 이 과학을 농민들의 견해나 실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위에서부터 내려주는 것은 잘못된 접근입니다. 더 투명하고 민주적·공개적으로 의사를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공의 의사 형성도 기업의 이익에 영향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사투의 개막


드 슈터는 국제회의에서 말한다.


“현재 식량 증산을 위한 토지 파악의 많은 예나 개량 품종, 화학비료와 농기계와 녹색혁명 모델을 위해 대규모 투자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토양이나 물, 기후를 보호해 나아가고, 식량 생산과 농민 소득을 개선하는 것이 보이고 있는 생태농업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 혹성에서 10억 명 이상이 굶주리고 있고 기후 분열이 눈앞인 상황에서, 우리는 빨리 이런 지속가능한 기술을 퍼트려야 합니다. 세계 규모의 굶주림, 기후변동, 그리고 천연자원의 고갈에 한번에 대처하는 방책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빠진 것은 헛수고로 끝나겠지요.”


드 슈터가 생태농업을 평가하는 배경에는 영국 에식스essex대학의 줄스 프리티Jules Pretty가 행한 개발도상 지역의 57개국에서 3700만ha에 달하는 286프로젝트의 조사가 있다.


“에식스대학의 줄스 프리티가 행한 연구에서는, 생태농업적 접근으로 전환하면 평균 79% 수확량이 증가했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을 수 없는 결과입니다.”


드 슈터는 생태농업의 성공의 구체적 예는 아프리카에 많다고 하며 그 사례를 들었다. 탄자니아에서 신양가Shinyanga주州의 서부와 타보라Tabora는 ‘탄자니아의 사막’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어그로포레스리라고 참가 모델의 공정을 써서, 약 35만ha의 토지가 20년 걸려 부활했다. 1세대에 수익은 연간 500달러나 올랐다. 같은 기술은 말라위Malaw에서도 쓰여, 2005년에는 약 10만의 소농이 비료를 가져오는 수목의 은혜를 얻고 있다고 한다.


자, 마찬가지로 생태농업을 높이 평가하고 유전자 조작 기술에 의문을 던진 "농업과학기술 국제 평가"에 대해 하버드대학의 농업정책 전문가 로버트 팔버그Robert Paarlberg 교수가 ‘아시아에서 수억 명이나 공복과 기아에서 해방시킨 녹색혁명을, 승리가 아니라 마치 비극이었단 듯이 믿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쓰여져 있는 것처럼 읽을 수 있다’라고 불평하며, 아프리카의 빈곤과 기아는 생명공학을 활용하지 않은 결과라고 주장한 것은 나의 책 "지구를 구할 신세기 농업"에서도 썼다(158쪽).


도대체 드 슈터 박사와 팔버그 교수 가운데 누구의 견해가 옳을까? 거기에는 개발도상국의 정보가 유용하다. 예를 들면 「제3세계의 저항」이란 잡지를 인터넷에서 읽으면 같은 교수가 이런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빌&메린다 게이츠 재단은, 아프리카에서 유전자 작물의 연구 개발에 많은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 그것을 받아들인 정치 상황을 만들고자 하버드대학의 로버트 팔버그 교수를 고용하였다.”


미국 같은 위대한 민주주의 선진국이 사용한 언어다. 이러한 교수의 행동을 잘 형용하는 영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같은 후진국에는 딱 알맞은 말이 있다. ‘어용학자’이다.


한편 드 슈터는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25명의 생태농업 전문가를 브뤼셀에 모았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2050년에 세계를 기르는 데 필요한 생태농업적 접근의 정책을 특정했다. 잘도 모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근거로 했던 프로젝트의 이름을 들으면, 빌 게이츠라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까?


생태농업 정책을 지닌 쿠바, 그리고 생태농업 훈련 계획을 운영하는 국제 소농 운동, 비아 깜페시나의 일이다.


드 슈터는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지속가능한 농업 모델을 확대하고, 가장 가난한 농민들을 위해 확실하게 기능하도록 할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공한 파일럿 프로젝트를 국가 정책에까지 움직이는 정치적 의사입니다.”


쿠바, 비아 깜페시나, 줄스 프리티. 모두 나에게는 매우 친숙한 주제뿐이다. 생태농업은 어디까지나 ‘학學’이다. 하지만 생태가 ‘학學’에서 떨어져 정치운동이 된 것처럼, 생태농업도 국제회의의 장에서 불꽃을 터트리고 있다. 빌 게이츠와 미국 VS 비아 깜페시나와 쿠바 연합군. 여기에 국제연합 고문도 연결되어 얽히어 셋 사이의 사투가 펼쳐진다면, 싸움의 귀추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구경꾼 근성으로는 이후의 전개가 즐길 만한 일임이 틀림없다.

 

 

 

written by 요시다 타로, translated by 김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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