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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최근 손 모내기 행사가 많이 있듯이, 일본에도 이미 손 모내기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괜찮은 사진이 있기에 몇 장 올립니다.

 

아름답죠. 일본인답게 논 옆에도 사쿠라가 한창이네요. 어느 지역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모내기할 때 벚꽃잎이 흩날린다... 생각만 해도 환상적이네요. 

 

 

모내기에 앞서 하는 행사인데, 정확히 어떤 의미가 있는 작업인지 모르겠습니다.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사인가? 아니면 모내기에 앞서 실제로 행하는 작업인가? 

 

 

모내기에 들어갔습니다. 모판에 자란 모의 길이로 볼 때, 기계모를 내려고 하던 걸 그냥 손 모내기 행사에 쓰는 듯합니다.

아무튼 뒤에서 북을 치며 독려하는 모습이 우리의 두레패를 생각나게 합니다. 어디나 모내기는 비슷한가요? 갑자기 중국의 모내기는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지네요.

모를 내는 사람이 있고, 못줄 잡는 사람, 모를 날라 주는 사람, 북을 치는 사람, 가장 앞에 지휘자인 듯한 작업반장... 이렇게 구성이 되어 있네요.

못줄은 가로, 세로로 다 띄웠습니다. 철저한 줄모를 내고 있습니다.

 

 

이 연을 보고서야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알았습니다. 일본에서는 5월 5일 어린아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잉어연을 걸어 놓습니다.

그러니 지금 모내기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때는 5월 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참, 일본의 명절에 이제 음력은 전혀 없습니다. 음력 행사였던 것들도 모조리 양력으로 바꾸어 놓았지요. 그래서 뭐랄까 그 맛이 떨어지는 것도 있더군요. 우리도 차츰 일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음력 명절은 동아시아의 독특한 문화 풍습을 맛볼 수 있는 소중한 것이니 이대로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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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전통농업 - 농장에서 씨앗을 보전한다

 

 

 

20만 종의 벼가 있는 보물창고

 

인도는 야생 식물은 물론 작물에서도 생물다양성의 보고이다. 저명한 벼 연구자 리차리아Richharia 박사에 따르면, 베다 시대(기원전 1500~600년 무렵)에는 40만 종의 벼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보다 줄었다고는 해도 박사에 따르면 아직도 20만 종이 존재하고, 실제로 그는 마디야 프라데쉬주Madhya Pradesh州의 차티스가르 지역에서만 2만 종의 벼를 수집했다.

 

하지만 지금 이러한 품종은 격감하고 있다. 그 까닭은 녹색혁명 때문이다. 녹색혁명에서는 수확량만 중요시하여, 화학비료에 반응하여 많은 수확량이 나오는 극소수 품종만 선발된다. 결과적으로 광대한 영역에서 높은 수확량을 올리는 품종만 재배되어 유전자가 획일화되어 버린다.

 

그런데 유전자의 획일화에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획일화된 작물은 병해충에 위약해져, 어느 작물에 영향을 주는 병해충이 비슷한 작물 모두에 확 퍼진다. 1970년대에 벼 생육 저해 바이러스(Rice grassy stunt virus)가 인도부터 인도네시아에 걸친 광대한 논에서 확 퍼졌던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 병의 해결책은 토종에 있었다. 1,7000종 이상의 재배 벼 품종과 원종 표본을 4년에 걸쳐서 선별 검사한 결과, 인도의 우타르-프라데쉬주Uttar-Pradesh州의 곤다Gonda 근교에서 재배되는 오리자 니바라Oryza nivara라고 불리는 한 품종만이 이 병에 저항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지금 이 인도 야생 벼의 유전자를 가진 교배 품종이 아시아의 11만㎢의 논에서 재배되고 있다. 곧 앞으로 있을 품종 개량의 기초가 되는 유전자를 공급하는 것이 바로 토종이다. 이를 통해 유전자의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농민들은 왜 20만 점의 토종을 보존해 왔을까? 그 까닭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먼저 토종은 수확량만이 아니라, 짚으로 소의 먹이도 주고 집을 짓는 재료로 활용하는 등 다양하게 농민들의 수요를 만족시켜 왔다. 그리고 대개의 토종은 튼튼하고 병해충에 내성이 있는데다가 화학비료나 농약 등의 투입 자재를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점은 환경조건에 따라서 다수확품종보다 토종이 알맞은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타밀-나두주의 알칼리성 토양에서는 칼라르팔라이Kalarpalai라고 하는 토종 벼만 재배할 수 있고, 바단 삼바Vadan Samba와 같은 가뭄에 내성이 매우 강한 품종도 있다. 한편 호수에 인접하여 물에 잠기는 지역에서 자라는 삼바 모사남Samba Mosanam은 물에 잠김에 강하다. 원래 삼바 모사남은 호수에서 배를 타고 거둔다고 할 만큼 다수확품종을 기를 수 없는 1.4m나 물에 잠긴 조건에서도 전혀 해를 입지 않는다. 이처럼 인도의 어느 지역에서도 농민은 자신들이 가진 벼 품종의 이러한 환경적·영양적 특성과 독특한 특징에 대해 깊은 지식이 있다. 혹독한 환경에서도 작물을 기를 수 있었던 것은 이 다양성 때문이었다.

 

비자야라크쉬미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토종을 기르면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가장 놀라운 점은 토종에는 그것이 버텨 온 지역의 생태 특성에 바탕을 둔 고유한 성질을 지녀, 결과적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영양을 훨씬 잘 확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 말고도 토종 유전자원을 보호하여 변경에 사는 소농들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토종 보전을 시작하다

 

지금도 수많은 토종 벼가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보전하고 있는 것은 단지 농민들뿐이고, 계속해서 엄청난 비율로 사라지고 있다. 이 때문에 인도 지식 센터는 타밀-나두주 안의 각지에서 종자 보존에 나섰다. 그 계기는 전통농법으로 병해충을 방제하면서부터였다.

 

1993~1994년에 걸쳐 센터는 티루반나말라이현Tiruvannamalai縣, 센감 탈루카Chengam Taluka의 발라얌팟투Valayampattu 마을에서 식물을 활용한 해충 방제에 나섰다. 농민이 참여하는 실험 프로그램은 꽤 성공을 거둬, 농민들은 식물의 생성물을 화학 농약 대신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농민과 모여서 이야기하면서 녹색혁명 이전에 재배하던 토종이 있다면 더 유익할 거라고 하던 농민이 있었다.

 

인도에는 반다나 시바Vandana Shiva 박사가 이끄는 인도 전역에서 토종 보존에 나선 NGO인 나브단야Navdanya가 있다. 센터는 1995년 나브단야와 접촉하여, 그 지원을 받아 1995년 발라얌팟투 마을에 있는 농장에서 씨앗을 보전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먼저 한 일은 타밀-나두주 안에 있는 여러 지역 NGO와 협동하는 것이었다. 그 활동은 지역사회에 종자은행을 설립한 ‘동쪽 산맥 운동(Eastern Ghats’ Movement)’과 협력하며 이루어졌다. 이듬해에는 좀 더 아래와 같은 활동을 펼쳐 나아갔다.

 

1) ‘그람미야 무네트라 산감Grammiya Munnetra Sangam’의 지원으로 칸치푸람Kanchipuram 지역의 티루포루르Tiruporur 마을

2) ‘불리한 인간의 개발 센터(Centre for Development of Disadvantaged Peoples)’의 지원으로 티루타니Tiruttani 지역의 네둠바람Nedumbaram 마을

3) ‘비자 평화 센터(VISA Peace Centre)’의 지원으로 반다바시Vandavasi 지역의 모사바디Mosavadi 마을

4) ‘여성의 복지 개발 협회(Women’s Welfare Development Association)‘의 지원으로 우티라메루르Uthiramerur 지역의 마남파티Manampathy 마을

 

1998년에는 ‘인간 활동과 농촌 기술의 진전을 위한 위원회(Council for Advancement of People’s Action and Rural Technology)’의 지원으로 칸치푸람 지역(당시 센갈팟투Chengalpattu 지역)의 캇탄칼라투르Kattankalathu 구역에서 일을 시작하고, 그 뒤 이 활동은 칸치푸람, 티루발루르Tiruvallur, 티루반나말라이Tiruvannamalai, 나가팟티남Nagapattinam의 125개 이상의 마을로 퍼졌다. IDRA, UNDP, 포드 재단 등 다양한 기관도 센터의 활동을 지원했다.

 

 

 

130종 이상의 토종 벼를 수확

 

센터가 먼저 한 일은 토종을 구하는 것이었다. 토종 벼를 찾고자 센터의 현장 일꾼들이 상세히 조사를 했다. 그리고 몇몇 농민이 집에서 먹으려고 보전하고 있던 품종을 얻거나 구입했다. 또 센터는 앞으로 농부가 될 마을의 학생들에게 토종 보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자 어린 학생들을 참가시키는 생물다양성 대회 ‘비야 야트라Bija Yatra’를 열고, 자발적인 도움으로 토종과 그 정보를 수집했다. 게다가 정기적으로 농업 박람회나 축제에 참가하여 품종을 전시하는 것으로 농민들과 품종 교환을 전개했다.

 

다수확품종의 도입으로 토종은 사라지게 되었는데, 센터에서 토종이 재배되고 있는 지역을 찾아내고 그 쓰임새를 늘리는 일에 약 10년 동안 노력한 결과, 센터는 타밀-나두주에 알맞은 130점의 벼 품종과 50종 이상의 채소를 수집했다. 비자야라크쉬미 박사는 만족하여 말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벼 125품종, 그리고 약 60종의 토종 채소를 간신히 되찾았습니다.”

 

 

토종을 제공받는 농민.

 

 

종자은행의 설립

 

센터의 생물다양성 보전 활동에는 수많은 마을에 ‘지역사회 종자은행’을 설립한 일도 포함된다. 그 방식은 이렇다. 먼저 센터는 각지의 마을에서 토종의 중요성을 알리는 모임을 개최한다. 센터는 자신의 실험농장과 센터에서 선택한 농민들의 밭에 ‘생식영역 보전 센터’를 설치한다. 이러한 생식영역 보전 센터에는 50종 이상의 품종을 재배한다. 거기에 관심을 가진 농민들은 실제 작물을 보고, 토양과 관개조건, 자신의 농업 기후에 알맞은 한두 품종을 재배할지 결정한다. 결정한 농민은 센터를 통해 지역이나 인접 지역에서 이미 재배하고 있는 농민에게 씨앗을 받아, 자신의 농지 일부를 토종 보전용으로 확보한다. 수확한 다음에는 ‘종자은행’에 제공받은 종자의 2배로 돌려주는 것이 씨앗을 받는 조건이다. 이 종자은행 덕에 시장에 내는 다수확품종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현재 집에서 먹으려고 보유했던 토종을 위상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유기농업 집단 산감Sangam 결성

 

다시 토종 보전 프로그램을 약 10년 실시한 뒤, 센터에서는 이 방법을 유지·지속하기 위한 본보기를 고안했다. 그것은 센터의 관여가 끝난 뒤에도 농민들이 스스로 그 활동의 계속하도록 모든 마을에 유기재배 농민 집단인 산감을 결성하도록 한 것이다. 농민들에게 실천을 보이고, 이후에도 활동을 지속하도록 한 것이다. 지역사회의 종자은행은 이러한 산감을 통해 추진되어, 농민들은 다양한 토종을 재배하며 그 양을 늘리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산감에서는 지도자를 뽑는데, 그는 활동의 수익을 내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장려된다. 이 때문에 몇몇 산감에서는 수입원으로 생물농약을 생산하는데, 그 기본 지식이나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센터이다.

 

 

기술 지도에 나선 비자야라크쉬미 박사.

 

 

센터는 외양간두엄과 지렁이두엄을 활용하는 비법, 바이오 거름(Acetobacter Azospirillum 등), 님Neem 씨앗 등의 자재를 제공하고, 토종을 유기재배로 기르는 비법, 식물에서 추출한 자재로 생물농약을 만들고 자연스레 병해충을 방제하는 기술, 두엄을 만드는 기술을 훈련시킨다. 또 다양한 품종의 특성과 수확량 및 상세한 정보도 여러 언어로 교재, 정기 간행물, 서적, 포스터, 필름 형태로 제공한다. 농민, NGO, 학생, 교사, 일반 시민 등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수많은 훈련 프로그램도 실시한다. 학교에서는 글짓기나 웅변대회도 열고 있다.

 

유기농업을 하고, 농장에 투입되는 자재를 자급하는 일은 경비 절감으로도 이어진다. 이 때문에 활동은 지금 약 125개 마을에서 약 3000명의 농민들에게 퍼졌고, 유기재배로 집에서 먹을 채소밭을 가꾸는 세대도 800가구 이상이 되었으며, 유기농가로 이루어진 37개 산감이 설립되었다. 그것은 각 가정에 먹을거리의 안전·안심을 가져왔다. 그리고 센터는 이 활동을 주 전체, 나아가 인도 전역에 퍼뜨리려고 한다.

 

개개의 농민은 잃었던 토종을 부활시켜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는 충분한 양의 품종이 제공되어야 한다. 농업 생물다양성은 지역사회가 생물다양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필요를 확신하고, 지역사회의 안에서 다른 곳이 아닌 농민의 밭에서 보전되어야 한다. 곧 센터가 토종을 보전하고자 선택한 방법은, 의식이 유발된 농민들의 연결망을 통해 그들의 농지에서 종자를 보전하는 것이다.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1) Fehmida Zakeer, Indian farmers learn from old ways, People & the Planet,23 Mar,2007.

 (2) Centre for Indian Knowledge Systems, Organic Farming and Indigenous Seed Conservation, Experiences from Tamil Nadu,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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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도의 식물 과학 - 브르크쉬아유르베다

 

 

 

전통을 부활시킨 연구자

 

새롭고 우수한 기술에 끌려 서양에 감화되는 일은 여러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인도의 농민들은 전통 과학의 부富와 가능성을 다시 발견하고 있다. 타밀-나두주Tamil-Nadu州의 주도州都 센내이Chennai의 두 과학자, 비자야라크쉬미K. Vijayalakshmi 박사와 발라수브라마니안A. V. Balasubramanian 씨는 전통농업의 지혜를 부활시키고자 1990년대 초반 인도 지식체계 센터(Centre for Indian Knowledge Systems) 건립했다.

 

 

 타밀-나주 지역 지도.

 

 

센터가 중점을 둔 일은 생물다양성 보전과 유기농업인데, 그 때문에 고대 경전에서 얻을 수 있는 유기농업 기술을 제공하는 일도 센터의 주요한 일이 되었다. 고대 인도의 식물 과학체계인 브르크쉬아유르베다Vrkshayurveda를 오늘날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조사·연구하고 있다. 센터의 본부는 인도 남부의 센내이에 있는데, 타밀-나두의 다섯 지방에 걸쳐 125개의 마을에서 활동한다.

 

비자야라크쉬미 박사는 말한다.

 

“아유르베다에는 수많은 전문 의사인 바이디야vaidya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고대의 브르크쉬아유르베다의 방법론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만큼 없습니다. 그렇지만 희망적인 일은 이 과학에 관한 많은 서적이 있으며, 아직도 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자야라크쉬미 박사.

 

 

박사와 그녀의 팀은 브르크쉬아유르베다의 경전을 연구·해석하여 오늘날에 맞는 해결책을 찾으려 하고 있다.

 

“경전에서 얻은 지식에 바탕을 둔 기술을 농민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수요에 알맞도록 수많은 실험을 거친 뒤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과학자재의 대안은 전통농법으로 이찾을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의 선조가 물려준 안전한 농업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실험을 통해 부활한 기술

 

센터는 브르크쉬아유르베다의 고전과 경전이나 민간에 전승되어 있는 문헌 및 현지 조사, 실험실의 연구와 함께 현장 조사를 진행한다. 예를 들면 전통농업에서는 어디서나 가축을 중요하게 여겨 왔는데, 인도에서는 특히 농민과 소의 유대가 깊다. 소는 축력을 제공하고 소똥과 오줌 등의 중요한 농자재도 준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단지 편리함 때문만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영적인 면에서도 소를 중요시했다. 그래서 경전 문헌을 검색하면서 센터와 연계하여 ‘지역 전통의료 부흥재단(Foundation for Revitalisation of Local Health Traditions)’이 수집한 농촌 지역사회 일반의 정보도 수집·정리했다. 센터는 ‘내발적 발전 비교 지원(Comparing and Supporting Endogenous Development)’과도 협동하여 ‘전통농업의 가축 제품 이용, 남부 인도의 안내자 프로젝트’도 실시하고 있다. 그 활동은 농업, 전통의료, 천연자원의 경영과 폭넓은 분야에 퍼져 있는데, ‘전통농업의 가축 제품 이용’을 주제로 지역 전통의료 부흥재단, 환경의식종합개발(Integrated Development through Environmental Awareness), 크리쉬 프라요그 파리바라Krishi Prayog Parivara라는 단체와 연계 프로그램을 세워, 농촌 지역사회의 전통적 가축 제품 이용이 지속가능한 곡물 생산의 개선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 안드라 프라데쉬Andhra Pradesh주州의 22개 마을과 오리사Orissa주의 3개 마을에서 현장 조사를 행했다.

조사 결과 똥오줌, 뼈, 지방, 피, 가죽, 살코기 등 참으로 다양한 가축 제품이 농업에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것들은 단독 또는 혼합하여 쓰며, 시용하는 방법도 분무·훈증·풀·가루 등의 형태로 다양하다. 그런데 가루나 펠릿 모양으로 염소똥을 흩뿌리거나 구멍에 넣으면 특정한 계절에는 작물 생육에 도움이 된다는 점과, 작물의 둘레에 구멍을 파서 소의 오줌을 흩뿌리면 과실을 부드럽게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비자야라크쉬미 박사는 말한다.

 

“우리의 조직은 연구와 함께 보급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유기농법 기술을 연구하려고 우리의 실험농장과 농민의 밭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베단탄갈Vedanthangal에는 4.5㏊의 센터 실험농장이 있다. 이러한 가축 생산물에 관해서도 그것을 이용하면 실제로 작물의 생리를 개선하는 데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밭과 실험실에서 실증적으로 확인도 했다. 그 결과 전통적인 가축 제품을 이용하는 방법을 표준화하는 활용 설명서의 제작에도 착수하게 되었다.

 

 

 

 

 

농민이 참가하는 연구와 트레이닝

 

실험농장에는 두엄을 만드는 기술, 생물 농약의 준비, 유기농업 기술, 약용식물 밭이 전시되고 있다. 복잡한 유기농법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익힐 수 있도록 살아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 센터는 생물 농약과 관련하여 농민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그리고 해충을 방제하는 특성을 지닌 여러 식물을 지난 연구 과정에서 발견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수많은 농민이 그들의 아버지가 병해충에 대처하려고 식물에서 추출한 혼합물을 사용했단 사실을 희미하게 기억해낸 점입니다.”

 

비자야라크쉬미 박사는 말한다. 프로젝트의 큰 성공은, 실제 밭에서 실험을 디자인하고 실시하는 농민들의 참여였다. 이 성공은 농민, 지역사회에 바탕을 둔 조직, 연구자 사이의 의사소통에 따른 것으로, 전통적인 지식 분야를 다시금 깊이 고려해 연구하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초에 농민들이 유기농업으로 전화한 것은 일부 농지뿐이었다. 하지만 농민들은 서서히 모든 농지를 전환시켜 나갔다. 생물 농약을 생산하는 프로그램은 각지의 마을에서 착수되어, 소농이나 여성도 스스로 그것을 쓰거나 대농에게 팔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수입을 만드는 동시에 안전한 농장을 만들어 나아갔다. 검증된 실천이나 기술은 훈련 프로그램이나 간행물을 통해 보급되어 센터는 직접적으로 3000명 이상의 농민과 연관을 맺었고, 약 1만 명 이상은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대부분의 농민은 지식체계 센터에서 개발한 유기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채소 텃밭의 부활

 

센터는 채소 텃밭을 되살리고자 마을의 여성들에게 씨앗도 제공하고 있다. 센터에서는 논에서 재래종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채소 텃밭’이란 방식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라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원인을 규명하는 조사 결과, 센터가 찾아낸 까닭은 씨앗 때문이었다. 여성 농민은 집에서 먹을 채소 텃밭에 심으려고 마음먹어도 고수확 품종의 씨앗 값이 비싸서 살 수 없었다. 게다가 비싼 값을 지불해 겨우 씨앗을 사더라도 그 씨앗의 발아율이 떨어졌고, 이듬해에 다시 쓸 수도 없었다.

 

발라수브라마니안 씨는 말한다.

 

“우리는 채소 텃밭의 개념이 마을에서 무시되고 있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많은 마을 사람들이 고수확 품종 씨앗의 값이 비싸고 효과도 나쁘기에 텃밭에서 채소 기르기를 아예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밥을 먹을 때 채소가 없으면 영양적으로도 좋지 않다. 하지만 그것을 걱정하지도 않고 시장에서 채소도 사지 않았다. 그렇다면 재래종을 부활시키면 좋겠다! 센터는 적어도 50종의 재래종 채소를 부활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우리는 채소 텃밭의 설치를 장려하려고 채소와 식물의 종자를 여성들에게 제공했습니다.”

 

센터는 유기 채소를 재배하고, 양질의 종자를 생산하기 위한 훈련도 행했다. 그 결과 약 800세대의 여성들이 작은 채소밭에서 한 달 평균 300루피(45루피=1달러)를 벌어들이게 되었다. 이는 가족의 영양 안정성도 보장한다. 더욱이 병의 치료에 쓰이는 허브도 유기재배하도록 장려하고, 약을 조합하는 지식도 제공했다.

 

“약초밭을 만드는 일을 거들고, 감기와 복통 같은 가벼운 증상에 허브를 쓰는 지식으로 그녀들을 무장시켰습니다.”

 

 

인용문헌

 (1) Fehmida Zakeer, Indian farmers learn from old ways, People & the Planet,23 Mar,2007.

 (2) Abarna R,Revisiting Traditional Knowledge Systems: Livestock an Integral Part of Agriculture, Pro-Poor Livestock Policy Programme, November 2009.

 (3) Centre for Indian Knowledge Systems, Organic Farming and Indigenous Seed Conservation, Experiences from Tamil Nadu,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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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전통농업 - 전통 제방 조하드 2

 

 

 

지역사회의 힘을 믿다

 

라헨드라 싱Rajendra Singh 씨는 가뭄에 고통을 받던 라자스탄주 동부의 물을 보전하는 데 성공했다. 싱 씨가 일하기 시작했을 무렵 이 지역은 물이 너무 부족하여, 정부에서는 지하수의 높이가 낮아지는 ‘어둠의 영역’이라고 분류했다. 하지만 10년 뒤 지하수의 높이는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회복되어, 정부에서는 더 이상 보호가 필요 없는 ‘밝은 영역’이라고 분류했다. 아라바리강의 기적은 국제사회에서도 주목을 받아 많은 상을 받았다. 싱 씨는 엘 로드로 수맥을 찾는 사람,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고, 이 성과로 2001년 로마에서 라몬 막사이사이상도 받았다. 하지만 라헨드라 싱 씨는 수상하면서 오늘은 라자스탄주 사람들의 전통 지혜가 승인된 날이기도 하다며 “자신은 단순히 정리만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농촌 지역사회가 높이 평가받은 것입니다. 물을 보전한 기적은 우리의 조직에게 원조를 받은 마을 사람들의 협력으로 가능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생활수준을 개선하고자 시도하면서 인내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지역사회는 창조적으로 사회변혁을 이룰 잠재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잠들어 있는 지혜의 창고를 열어 그것이 기능하도록 장려했을 뿐입니다.”

 

현지의 행정 당국은 죽어 있었다. 그래서 라헨드라 씨 들은 관료 기구를 통하지 않고 직접 마을 사람들과 대면했다.

 

“일에 착수했을 때, 우리는 정부의 원조 계획과는 전혀 다른 전략을 채용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활동에서도 마을 사람들을 이해 당사자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장기적으로 지속성을 확보하게 했습니다.”

 

최초의 조하드는 완성하는 데에 3년이 걸렸지만, 4년째에는 50개의 조하드를, 5년째에는 약 100개를 쌓을 수 있었다.

 

“최초의 고팔푸라 마을에서는 성과를 거두는 데 3년이 걸렸습니다. 그렇지만 이듬해에는 45개의 마을에서 같은 일을 달성했습니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가해서 그렇습습니다. 성공의 비결은,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 성공한 이야기를 알려, 인접한 마을이 힘을 모아 또 다른 성공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는 데 영향을 미친 점입니다.”

 

라헨드라 싱 씨는 활동 상황을 파악하고자 마을 사람의 일원이 되어 함께 살았다.

 

“그렇지만 말로는 이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흙과 물을 지역사회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한 뒤에만 방법론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민들과 함께 살아 보지 않으면 그들이 이해하는 물과 흙의 관계를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라도 전통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타룬 바라트 조합은 외부에서 아무런 원조를 쓰지 않고도 지역의 지식을 적용하는 것만으로 사업을 지속가능하게 반복할 수 있었습니다.”

 

조하드 건설의 수익자인 마을 사람들이 현금 등으로 부담한 경비는 건설비의 1/4에서 1/3이었다. 나머지 경비를 부담한 것은 타룬 조합으로, 조합은 포드 재단Ford Foundation, 옥스팜Oxfam, 다양한 유럽의 정부 기관, 인도 정부와 라자스탄 주정부에게 지원을 받았다. 또 라헨드라 싱 씨 말고 직원 모두는 마을 출신으로 뽑아, 이러한 경비가 현금이나 고용의 형태로 마을로 이어졌다.

하지만 조하드를 건설하기 위한 모든 노동력을 제공한 것은 현지의 마을 사람이었다. 또 상근직원에 더해 230명의 시간제노동도 있었고, 몇 천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조하드의 설계와 건설을 지원했다.

외부에서 전문가와 기술자를 초빙하지도 않고, 조하드를 쌓을 곳을 정하는 일부터 구조를 설계하는 일까지 지역사회의 적극적인 참가로 건설되었다. 그 공사비와 유지관리비도 지역사회가 부담하고, 스스로 정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필요 요건을 만족시켰다.

이러한 활동이 전개된 배경에는 라헨드라 싱 씨의 경력이 있다. 그는 학생시절부터 자야 나라얀Jaya prakash Narayan의 삼푸르나 크란티Sampurna Kranti 혁명운동에 관여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천연자원을 이용하기 위하여 대중을 동원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라헨드라 싱 씨가 1985년 가장 처음으로 마을을 찾았을 때는, 마을의 극단적인 반대에 부딪쳐 테러리스트라는 딱지가 붙기도 했다. 또 1990년대 전반 사리스카 호랑이의 성역을 보전하면서는, 대리석 광산의 이익과 대립하여 광산 소유자들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았다. 라헨드라 싱 씨는 이렇게 기억한다.

 

“조하드를 건설한 뒤에도, 사리스카 주변의 못이나 호수의 물높이가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곧 무엇이 문제인지 알았지요. 사라지는 물을 더듬어 찾아가니, 광산 측이 파놓은 구덩이에 모여 있었습니다.”

 

싱 씨 들은 이 문제로 법원에 고소를 하여 진정서가 최고재판소까지 올라갔다. 1991년 법원은 생태적으로 위태로운 아라발리 언덕에서 계속 채굴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1992년 5월에는 환경산림성이 언덕에서 채굴을 금한다는 통고를 내렸다. 최종적으로는 공원에 크나큰 손상을 입히고 있던 성역 주변과 완충지대에서 운영되는 470개의 채석장이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성역의 물무늬 특성을 이해하고 검소하게 살다

 

조하드가 성공한 것은 성역의 물무늬 특성을 활용한 데에 있다. 라헨드라 싱 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 17년, 우리는 알와르, 자이푸르Jaipur, 사바이 마도푸르Savai Maadhopur, 카롤리Karoli와 각지를 건조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100년 동안의 강우 그래프를 연구하면, 강우량이 불규칙하지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6년 비가 적은 해의 다음에는, 2년 정도 비가 많은 해가 이어집니다. 이처럼 주기가 되풀이되고 있다면 알맞은 방법으로 빗물을 모아 유용하게 쓸 수 있습니다.”

 

라헨드라 씨는 다른 지역에서도 라자스탄주처럼 가뭄을 극복할 수 있다며 “확실히 할 수 있습니다. 인도만이 아닌 아시아 전역에서 가능합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끝도 없이 물을 이용하는 생활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물이 한정된 자원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강수량과 인구밀도는 균형을 이루지만, 물을 이용하는 데에는 균형이 전혀 없고 누구나 더 많은 물을 쓰고자 합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가난한 사람의 버터기름(poor man's ghee)처럼 물을 쓴다면, 어떤 마을의 누구도 인도에서는 물 부족에 직면하겠죠.”

 

인도에서 가장 강수량이 적은 곳은 라자스탄주의 자이살메르Jaisalmer와 바드메르Badmer의 건조 지대인데, 그곳에는 집마다 음용수나 집에서 쓸 물을 받는 물통과 일반 용도나 가축이 마시는 못(talab)도 있다. 그들은 지하에 있는 모래에서 음료수를 얻고자 염분을 머금은 지하수의 지층을 석고로 분리하는 쿠인야Kuinya를 써 왔다. 한편 비하르Bihar주처럼 물이 넘쳐 해마다 홍수가 일어나는 지역에서는 넘치는 물을 거두는 아하르-파인Ahar-Pyne이라 부르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갠지스강에서 넘쳐 오른 물은 파인이라 부르는 수로를 통해 최대 30~40㎞나 이동하고, 아하르ahar라고 부르는 물통을 채운다. 이것이 1년 동안 물과 모래와 찰흙의 중간 굵기의 흙이 지속적으로 분배되도록 해왔다.

이처럼 인도의 전통 지혜는 자연과 함께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살기 위하여 사회에 유용한 실용적 방법을 개발해 왔다. 지역의 다양한 기후를 존중하고, 혹독한 기후나 지리 조건에서도 각각의 지역에 알맞은 특정 과학과 관련 공학, 기술체계를 개발했다. 게다가 과거 몇 천 년 동안이나 매우 건전한 상태로 숲과 물 등의 천연자원을 보전한 데에는, 인간은 자연의 테두리 안에서 살되 탐욕을 부리면 안 된다는 환경에 우수한 전통문화(dharma/parampara)가 있었다.

 

 

전통의 손실과 그 결과

 

그런데 과거 20년 동안 이 고대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라헨드라 싱 씨는 산업혁명, 교육혁명, 녹색혁명, 개발혁명, 민영화와 정보기술혁명과 유럽에서 건너온 ‘자연을 개발해야 한다’는 사상이 자연에 대한 외경이란 관념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경고한다.

 

“식민지 정부에서 독립한 근대국가는 농촌 지역사회에서 그 권리와 책임을 빼앗고, 심지어 하천마저도 법적(벌목 허가, 하천의 직선화)으로 탈취했습니다. 교육혁명은 전통과 구두 지식이 빈곤의 원인이라고 사람들을 호도했습니다. 근대 교육과 근대화란 헛된 꿈이 지역사회의 조직을 해체해 버렸습니다. 독립한 뒤에는 모든 권력을 장악한 정부가 개발과 사회주의적인 ‘행복’을 관리한다는 환상을 심었습니다만, 그것도 지금은 이미 무능한 현실임이 밝혀지고 자본주의 제국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다국적기업과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첨단기술, 유전자조작 기술과 IT는 더욱더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겁니다.”

 

라헨드라 싱 씨는 거듭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은 기술자의 사상이라고 지적한다.

 

“교육을 받은 기술자들은 공유자원의 책임 있는 경영을 재발견하고 있는 듯합니다만, 조하드와 같은 입증된 고대의 전통, 지역의 전통을 무시하고, 인공적으로 지하수를 늘리는 일처럼 번거로운 기술을 쓰고 있습니다. 기술자들은 석회나 열대림 대신에 시멘트, 벽돌로 만든 돔 대신에 콘크리트 슬라브를 씁니다. 곧 자신들의 한정된 이해 수준으로, 전통과 그것이 지닌 관련성을 끌어내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서양 사회에는 지속성이 없다고 경고한다.

 

“오랜 세월에 걸친 우리 사회의 노예제도와 부정적인 힘이, 우리를 장애자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마을은 믿음의 부족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만약 누군가가 그들과 하나가 되어 도덕심을 높인다면, 사회는 자각하고 새로운 희망을 품고 움직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한 목발이 되었습니다. 지역사회가 그 힘을 회복하고 자립하여 움직이기 시작하기까지에는 목발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새로운 열의를 뒷받침하는 많은 젊은이의 열광을 등에 업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양을 보면, 그 나라들은 사치품으로 변환하려고 천연자원을 모조리 캐내고 있습니다. 이 방식으로 천연자원은 고갈되고 맙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사례가 아닙니다. 바야흐로 우리가 우리의 통찰을 써서 적절하게 천연자원을 이용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시대는 우리의 것이 되겠죠.”

 

 

선주민의 지식을 다시 찾다

 

인도에서는 물을 얻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공통된 점은 아래와 같다.

 

지역 자원과 기술을 활용

분산된 지역사회에서 경영하는 물 관리

천연자원의 지속가능한 보전과 활용

선주민의 지식을 이용한 체계의 부활

전통적인 체계를 이해한 제3자의 개입과 선주민의 지식 활용

토지, 물, 숲 주변에서 지역사회가 계획에 참여하여 활동

옛 시설의 수복과 새로운 시설 구축에 참가

마을과 유역에서 새로운 조직의 활동

 

라헨드라 싱 씨가 실천한 방식은 옛날 찬드라굽타 마우랴Chandragupta Maurya(기원전 321~297년)의 조언자이자 대신이기도 한 카우틸야Kautilya가 쓴 통치문인 아르타샤스트라Arthashastra와도 비슷하다. 아르타샤스트라는 각 지역사회가 운영하는 물 관리의 법적·경제적 범위를 모두 망라한다.

예를 들면 통치자는 수로 건설에 참가한 사람에게 토지, 도로, 나무, 시설을 제공해야 했다. 참가하지 않는 사람은 기부금을 지불해야 하고, 시설의 이익을 얻을 권리도 부여되지 않았다. 또 소유권이나 새로운 시설과 고대의 시설, 수리된 시설의 유지에 관해서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가령 자신의 수원水源이 있는 곳일지라도 관개시설의 모든 수익자는 세금을 내야 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서 새로운 시설을 만든 사람은 세금이 공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 규정은 수로의 경제적인 면을 보호하는 조항에 지나지 않고, 진짜 동기는 다른 곳에 있었다. 지역사회의 못과 물통, 수로 건설에 참가한 동기는 자존심의 문제로서, 그것을 종교적 공적이라 생각했다.

또 이러한 고대 전통 공학의 기술적 측면은 실천과 구전으로 전승되어 서서히 완성되었기 때문에, 근대와 같은 의미의 기록 자료는 거의 없다. 게다가 인도에서 이 지식은 존경받는 연장자나 구루(종교지도자)의 지시에 바탕을 두는 실천으로 전승되었다. 몇 세기나 걸쳐 토양, 물, 숲, 야생생물, 환경 전체를 현지 주민의 공유자원이라 생각한 것이 지역사회가 받아들인 세계관이었다.

라헨드라 싱 씨의 활동은 교육이나 숲 보호와 여러 갈래에 걸쳐 있는데, 그는 약용식물이나 그 이용법도 연구하고 있다. 비캄푸리에서 타룬 조합은 아유르베다 센터와 실험실도 가지고 있다. 싱 씨는 대학원에 다닐 때 힌두문학을 공부했는데, 그 전공 분야가 아유르베다 의학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아유르베다의 의사라면 약으로 사람들을 치료했겠지요. 그렇지만 지금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넓히려고 합니다. 이는 사회가 믿음과 책임감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요. 나는 사람들의 영혼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인용문헌

 (1) Aman Namra, A river is reborn,The Hindu Business Line,June05, 2000.

 (2) Volume 18 - Issue 17, Aug. 18 - 31, 2001.

 (3) Civil Society Information Exchange Pvt. March 2002.

 (4) Patrick McCully, Water-Harvesting in India Transforms Lives, World Rivers Review,Dec2002.

 (5) Rajendra Singh, Indigenous systems of water management and their modern applications, Organiser, 16 Aug,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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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전통농업 - 전통 제방 조하드Johad

 

 

 

죽어 있던 마을

 

라자스탄Rajasthan주州는 인도에서도 가장 강수량이 적은 건조지대로서 가뭄 피해를 자주 받는다. 2002년 11월에도 이 주의 동남부에서 가뭄이 발생해 많은 사람이 풀을 먹으며 굶주림을 이겼는데, 적어도 40명은 굶어 죽었다. 델리에서 몇 시간 남쪽의 라자스탄주 북동쪽에 있는 알와르Alwar 지역과 인접한 불모지 아라발리Aravalli 언덕.

 

라자스탄주의 지도. 

 

 

아리발리 언덕 지대. 

 

 

라헨드라 싱 씨가 1985년 10월 2일 저녁에 4명의 동료와 함께 버스 종점인 비이캄푸라Bheekampura에 내렸을 때도 토지는 황량했다. 길에서는 먼지가 흩날리고, 길가에 늘어선 몇 그루의 인도보리수나무와 고무나무도 생기가 없었다. 언덕의 기슭에는 간신히 숲이 자리한 모습이었다. 대리석을 캐기도 하여 몬순의 비가 내리면 민둥산에서는 암석이나 토사가 산허리를 쓸고 내려왔다.

 

“지역에는 풀잎 한 장조차 없어, 우연히 소의 사체를 만났던 일이 생각납니다.”

 

 

조하드를 설명하고 있는 라헨드라 싱 씨.

 

 

라헨드라 싱 씨는 이렇게 말한다. 농지의 겨우 3%밖에 물을 댈 수 없어, 비로만 짓는 농업은 가뭄이 들면 수확을 할 수 없었다. 사료나 물 부족으로 마을 경제의 기둥인 농업도 죽어 있고, 마을 남성의 대부분이 아메다바드Ahmedabad나 델리로 돈을 벌려고 나갔다. 젊은이들도 일을 구하러 마을에서 나가 젊은 사람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강과 못도 모조리 마르고 우물물도 말라, 여성들은 1.5㎞나 떨어진 곳에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물을 날라야 했다. 라헨드라 싱 씨는 나중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단 하나의 과제, 인민을 억압하는 부정과 싸우는 방법밖에 몰랐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마을에서 문맹률을 낮추는 대책밖에 몰랐지요. 그래서 우리는 문맹률을 낮추는 조직을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라헨드라 싱 씨는 마을의 노인, 만구 파텔Mangu Patel 씨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우리는 글자를 알고 싶은 게 아닙니다. 바라는 것은 물입니다.”

 

그러나 물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농촌은 우리에게 물의 가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1984년 이전에 저는 물에 대해서도, 어떻게 해서 그것을 보전하는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몬순의 비를 모으는 특수한 제방

 

하지만 이 지역에는 조하드Johad라고 부르는 독특한 전통농법이 존재하고 있었다. 1985년 라헨드라 싱 씨가 마을을 찾았을 때는 전통적으로 물을 관리하는 방법이 세계화에서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던 이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 아직 살아 있었다.

 

물이 마르고 있는 조하드.

 

 

조하드는 빗물을 모으려고 비탈에 쌓은 단순한 초승달 모양의 오목한 제방이다. 세 면에 높은 제방을 쌓고, 한쪽은 물이 흘러 들어오도록 열어 놓는다. 제방의 높이는 유역에서 흘러 들어오는 최대 유입량을 예상하여 결정하고, 장소와 유속, 수압 등에 따라 여러 가지이다. 또 수압을 약화시키고자 ‘아프라Afra’라고 부르는 구조가 넘치는 물을 빼기 위해 설치된다. 그런데 그 설계는 측량하지는 않고, 마을 사람의 경험과 직관에 바탕하여 만든다. 돌, 모래, 석회암이 필요할 때도 있는데 모두 현지에서 구할 수 있으며, 대부분은 진흙으로 쌓는다.

그리고 몬순의 비가 내리면, 조하드의 뒤쪽에는 물이 괴어 못이 생긴다. 못의 넓이는 2~100㏊까지 다양하며, 1년 내내 물이 고여 있는 곳은 큰 조하드뿐이고, 대부분은 반년 정도인데 몬순 뒤에는 완전히 말라 버린다. 하지만 조하드는 지상에만 물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지하수를 풍부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 모아 놓은 물은 지하로 침투되어 토양 수분량도 올라가고, 식물에 물기를 준다. 최후에는 다시 강으로 흘러간다. 물이 괴어 있는 시간은 토양과 지하수의 높이에 따라 다른데, 때로는 몇 개월에 이른다. 하지만 지하에 침투된 물은 증발되지도 않고, 모기가 발생하는 곳도 되지 않으며, 사람과 가축의 대소변에 오염되는 일도 없다. 그리고 물은 여과되어 관개, 가축용 음료수, 기타 목적에 직접 사용된다. 가뭄이 몇 년 계속되어도 우물물은 마르지 않는다. 게다가 조하드에는 빗물을 모으는 기능만이 아니라, 홍수를 완화하고, 토양침식을 억제하는 기능도 있다. 갈수기에 물을 빼면 조하드 안에 있는 토지도 경작할 수 있다. 밑바닥에는 모래와 진흙의 중간 크기인 좋은 흙이 모이고, 토양 수분도 있어 물을 대지 않아도 작물을 재배할 수 있다. 곧 조하드는 귀중한 농지를 빼앗지 않는다. 다시 말해 외부에서 자재도 필요하지 않고, 마을 사람이 손수 구축·유지할 수 있으며, 지역 전체의 지하수를 풍부하게 하는, 간단히 말해 돈이 들지 않는 걸출한 전통 기술이다.

그래서 라자스탄주에서는 몇 백 년이나 조하드를 구축해 왔다. 하지만 20세기가 되면서 국가에서 주도하는 대규모 물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마을 수준에서 물을 관리하는 제도가 약화되고 황폐해져 마을 사람들은 심각한 물 부족으로 고통을 받게 되었다.

 

 

 

되살아난 하천, 아라바리Aravari강의 재생

 

“그래서 만구 파텔 씨의 조언에 따라 우리는 조하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라헨드라 싱 씨가 통솔하는 NGO인 타룬 바라트 상Tarun Bharat Sangh(젊은 인도 협회)는 1985년에 먼저 첫걸음으로 고팔푸라Gopalpura 마을에서부터 일에 착수했다. 다른 라자스탄주의 마을과 마찬가지로 고팔푸라 마을도 1985~1986년의 가뭄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마을의 조하드는 파손된 상태였다.

420m 길이, 6m 높이, 15m 너비의 제방을 수복하는 일은 겨우 350명밖에 없는 작은 마을에서는 커다란 일이었다. 하지만 수복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는 것으로 600비가스bighas(200㏊)의 농지에 물을 댈 수 있는 물을 모았다.

고팔푸라 마을의 성과가 눈에 보이자 다른 마을로도 이어졌다. 1988년에는 부리바스Bhurivas、덤리Dumli、카다타Khadata、카탈라Khatala、사마스타르Samastar、초슬라Chosla、랄푸르Lalpur 마을에서 조하드가 만들어지고, 1989~1991년에는 알와르 지역 타나가지Thanaghazi구區의 팔사나Palsana, 로지 키 다니Loge ki Dhani, 바온타-콜야라Bhaonta-Kolyala, 하미푸르Hamipur, 사마라Samara, 나타타Natata, 칼레드Kaled, 자그나트푸라Jagnathpura 마을에도 퍼졌다. 조하드는 소규모이고, 언뜻 많이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몇 백, 몇 천이 합쳐지면 말랐던 대지를 바꾸어 간다. 유역의 지하수 높이를 높이고, 주변의 숲을 풍족하게 한다. 그리고 숲이나 떨기나무도 몬순의 비에 유출되는 것을 늦춘다. 그 결과 기적이 일어났다.

바온타-콜야라 마을의 다나Dhanna(70) 씨는 말한다.

 

“마을 사람의 생활은 바뀌었습니다. 우리 여성은 물을 길러 3~5㎞ 이상이나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강에도 우물에도 물이 있습니다.”

 

아르준 구자르Arjun Gujjar 씨도 말한다.

 

“아이들은 강에서 물장구치고, 여성은 빨래하고, 남성은 목욕을 즐기고, 동물조차 몸을 씻거나 물을 마십니다. 이전에는 델리나 아마다바드의 빈민가로 이주했던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오기까지 하는 상황으로 호전되었습니다. 강도 되살아나, 60㎝에 10㎏이나 하는 물고기가 삽니다.”

 

바온타-콜야라 마을의 주민들은 타룬 바라트 조합의 지원으로 조하드 건설에 착수하고 유역의 마을도 그에 뒤따라 조하드가 375개나 생겼을 때, 말랐던 아라바리강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1940년대 이후 아라바리강은 몬순 뒤에는 흙탕물이 흐르기만 했는데, 1994년에 되살아나서는 1년 내내 흐르게 되었다. 그리고 1년 내내 물도 맑다. 수량도 늘어나고, 물고기도 자연히 늘었다. 라헨드라 싱 씨는 이렇게 말한다.

 

“1996년 여름 한창 뜨거울 때도 하천의 물이 변하지 않는 것을 알고서 우리 스스로 놀랐습니다. 하천을 재생하는 일은 처음부터 의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천 물이 지하수로 들어가는 것을 이해하지 않고서 몇 년이나 계속해서 조하드를 건설했지요.”

 

재생된 것은 아라바리강만이 아니다. 몇 십 년이나 말라붙었던 하천인 사르사Sarsa, 루파렐Ruparel, 바가니Bhagani, 자하이왈리Jahajwali강도 1년 내내 흐르게 되었다.

 

 

 

조하드로 되살아난 마을

 

만달와스Mandalwas 마을도 타룬 바라트 조합이 활동하고 있는 1000곳 이상의 마을 가운데 하나로, 마을 사람은 지하수의 높이가 높아진 덕분에 1000개 이상의 우물을 손에 넣었다. 나이 많은 여성 라츠마바이Lachmabai 씨는 말한다.

 

“우리 이전의 몇 세대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운이 결코 없었습니다. 물 덕분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우리의 소도 행복해 하고, 야생 생물도 행복해 합니다. 수확은 많아지고, 숲은 푸르러지며, 땔감, 소의 먹이, 그리고 우물에는 물이 있습니다.”

 

만달와스 마을 사람은 과거 15년 동안 45개의 조하드를 쌓았는데, 더 건설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전에는 얼마 되지 않는 물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많은 물이 필요한 채소와 돈벌이 작물도 재배할 수 있다. 하루 한 끼로 살던 마을 사람들은 지금 하루에 두 끼, 3번이나 영양가가 높은 다양한 식사를 할 수 있다. 여성들의 물 긷기나 땔나무 모으기, 사료, 목초, 소 돌보기의 수고도 줄었다. 숲이 재생되어 땔감과 사료용 나뭇잎을 많이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자이플 지역의 잠와 람가르 테실Jamwa Ramgarh tehsil의 님비Neembi 마을도 끊이지 않는 가뭄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1994년 5만 루피를 투입한 바라트 조합의 지원으로 두 군데에 조하드를 쌓았다. 지금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3000만 루피의 가치가 있는 채소와 우유를 생산하고 있다.

물이 풍부해지면 작물을 잘 생산할 수 있고, 지하수의 높이가 높아지면 디젤 펌프의 경비도 줄어든다. 사료를 손에 넣으면 소도 기를 수 있고, 유유 생산도 늘어난다. 소녀들이 학교에 다닐 시간도 생기고, 마을의 생활은 풍족해진다. 나무 심기가 진행되고 채소 생산도 번성한다. 농업은 생산적이 되어 지역에서는 번영을 누린다.

15년 뒤 수많은 조하드로 알와르의 생활은 개선되고, 사람들은 자존심을 되찾았다. 인기가 없었던 마을에도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라자스탄주는 이제는 가뭄이나 물 위기를 뜻하는 말이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이 쌓은 조하드가 지역을 바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라트 조합은 주 안의 11개 지구 약 850개 마을에서 약 4500개의 조하드를 쌓았다. 2001년에는 약 1000개의 조하드를 쌓아, 1000곳 이상의 마을이 합계 약 9000개의 조하드와 사태막이 제방, 아니커트Anicut를 손에 넣게 되었다. 자이플, 다우사Dausa, 사와이 마도푸르Sawai Madhopur, 바라트푸르Bharatpur, 카라울리Karauli 등의 인접한 지역의 마을도 되살리고, 활동은 마디야푸라디슈주, 구자라트주, 안도라푸라데슈주 등 6500㎢까지 확대되었다.

 

 

 

 

 

강의 물고기를 지키는 주민들

 

주 정부가 아라바리강의 어업권을 외부에 넘기는 계약을 하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은 저항했다. 유역의 주민들은 유역의 숲을 보호하고 새롭게 흐르기 시작한 강이 난개발되지 않게 하려고 규칙을 정하기로 하여, 1999년 34개 마을의 대표들이 모여 ‘아라바리 위원회’를 창설한다고 선언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마을 스와라지swaraj의 개념에 따라 토지가 없는 농민만이 물을 뺄 수 있고, 대량의 물을 필요로 하는 사탕수수 재배나 물소의 사육을 금지하는 등 위원회는 11개의 원칙을 정했다. 위원회에 법적 권한은 없다. 하지만 물고기를 지키는 규칙을 위반한 사람에게 벌금을 부과하고, 마을의 자원을 이용하며 생기는 대립을 해결하는 도덕적 권한은 가진다. 정부의 수산부와 어업 계약을 한 자이플의 사업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쫓겨나, 주 정부는 그 계약을 취소해야 했다. 주민들은 물고기를 스스로 관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더욱이 마을 사람들은 전원이 채식주의자라 물고기를 먹지도 않는다. 현재 위원회에는 72개 마을이 참가하고 있다.

 

 

 

야생 생물과 물을 나누다

 

바온타-콜야라 마을의 사람들은 ‘인간과 야생 생물의 성역’을 만든다. 그곳에서는 돌과 콘크리트의 아치형 제방 표면에 보호 지역의 규칙이 이렇게 적혀 있다.

 

“신이 창조한 이 숲에서 수렵은 안 된다. 마을 회의와 수장의 허락 없이 어떤 나무도 벨 수 없다. 나무에는 신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소, 염소, 낙타로 숲을 파괴하지 말라. 마을의 야생 생물과 소는 이 마을 유역의 온갖 물방울을 건드릴 수 없다.”

 

이 성역에서는 야생 멧돼지, 하이에나, 원숭이, 재칼, 여러 종류의 사슴과 표범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못의 옆에 호랑이의 길이 설립되었다. 마을 사람은 물 보전과 숲 보호를 시작하기 전에 이러한 동물은 마을 근처에서 전혀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알와르 언덕은 인도에서 가장 알려진 야생 동물 보호 지역의 하나로, 사리스카 호랑이(Sariska Tiger)의 성역이다. 타룬 바라트 조합은 이 ‘성역 안’에 115곳의 ‘완충 지역’과 그 주변부에 다른 600개의 흙이나 콘크리트로 만든 조하드를 쌓았다. 당초 산림국의 직원들은 타룬 바라트 조합과 적대했다. 조합의 사람들을 의심스럽게 보고, 성역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태도가 변해 타룬 바라트 조합의 일을 격려하고, 공원을 관리하도록 권하고 있다. 조하드가 지하수의 높이를 올리고, ‘어둠의 영역’에서 ‘밝은 영역’으로 바뀌도록 돕기 때문이다. 조합이 숲을 되살리는 데 공헌하는 것만이 아니라, 야생 생물에게 음료수를 주며 밀렵을 금하도록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게 되었다. 라헨드라 싱 씨도 많은 밀렵꾼의 인생을 바꾸는 일을 도왔는데, 거기에는 밀렵꾼에서 호랑이의 보호자(nahar sevaks)가 된 사람도 있다. 이 때문에 호랑이의 수도 최근 18마리에서 약 25마리로 늘었다.

 

 

사리스카 호랑이. 

 

 

 

근대 댐보다 우수한 조하드

 

정부의 지원은 모자라고, 공적인 부문의 적의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하드는 약 14만㏊를 관개하고 있다. 바라트 조합에 따르면, 알와르와 인접 지역의 약 70만 명이 집에서 먹을 물과 가축·작물에 쓸 농업용수의 혜택을 얻고 있다고 한다. 각각의 조하드는 소규모이지만, 전체로 보면 그 장점은 대규모이다.

조하드는 경제적으로 보아도 우수하다. 조하드에서 관개할 경우에 이러한 용수의 경비는 500루피/㏊, 음료수로는 100루피(2달러)/名이다. 하지만 구자라트주에 있는 사르다르 사로바르Sardar Sarovar 댐 계획의 건설 공사비는 최소로 보아도 3000억 루피(60억 달러)나 되고, 관개용수의 경비는 17만 루피/㏊로서 조하드의 340배나 되며, 음료수로도 1만 루피/名로 100배나 든다.

만약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의 건설 예산을 조하드에 쓴다면, 현재 세계의 관개 면적의 2배, 6억㏊를 관개하는 동시에 세계 인구의 반인 30억 명에게 음료수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 

 

 

게다가 훨씬 속도도 빠르다. 알와르 지역에서 조하드가 재건되기 시작한 것은 구자라트주 정부가 댐 공사에 착수한 때와 거의 같은 때인데, 알와르 지역의 주민들이 이미 혜택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해 댐의 수익자는 아직 물 한 방울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댐 건설을 위하여 이미 4만 명이 강제로 이주되었고, 댐이 완공되면 더 많은 사람이 이주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형 댐과는 달리 조하드나 사태막이 제방 공사에서는 단 한 가족도 이주하지 않고, 하천도 파괴되지 않으며, 광대한 숲과 농지가 수몰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강과 숲을 만들어 낸다.

물론 알와르는 이상향이 아니다. 라자스탄주는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주의 하나이고, 여성들의 권리도 낮다. 정부의 서비스는 인프라도 변변치 않고, 문맹률도 높다. 하지만 타룬 바라트 조합은 10개 마을 이상에서 부녀회를 만들어 마을의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들은 처음으로 딸을 교육하고, 남 앞에서 얼굴을 가리는 퍼다purdah의 관습도 폐지되기 시작했다. 아동 노동을 근절하고, 탁아소를 운영하며, 학교에 딱 맞는 교사를 파견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며, 공무원들의 뇌물 요구에는 단결해 저항하고, 유기농업을 널리 보급하고, 전통농법을 다시 찾고, 바이오매스 프로젝트와 나무 심기를 진행하며, 방적·방직 공업으로 고용을 창출하고, 근대적 공공 의료를 개선시킴과 함께 전통 의료도 추진하고, 위법인 광산 개발을 폐쇄시키는 운동을 조직하고, 호랑이가 서식하는 성역도 보존하고 있다.

세계은행과 댐 건설업계, 물의 민영화론자는 지금도 10억 명 이상이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없다는 충격적인 통계 자료를 팩트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투자를 해야만 하고, 다국적 기업이 그 임무를 맡아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인도의 풀뿌리 조직은 비가 모자란 가뭄이 찾아오는 지역의 안에서조차 물을 보존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만약 인도나 세계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라발리 언덕의 대처 방식이 아닐까?

 

 

인용문헌

 (1) Aman Namra, A river is reborn,The Hindu Business Line,June05, 2000.

 (2) Volume 18 - Issue 17, Aug. 18 - 31, 2001.

 (3) Civil Society Information Exchange Pvt. March 2002.

 (4) Patrick McCully, Water-Harvesting in India Transforms Lives, World Rivers Review,Dec2002.

 (5) Rajendra Singh, Indigenous systems of water management and their modern applications, Organiser, 16 Aug,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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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의 유기농업

 

 

 

몇 천 년이나 농촌에서 하던 일

 

1996년에 개최된 ‘세계 식량 정상회담(World Food Summit)’에서는 2015년까지 기아로 고통 받는 인구를 반감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10년 이상 지난 지금도 개발도상국에서는 8억 2000만 명이나 굶주리고 있다. 이는 1996년보다도 늘어난 수이다. FAO의 ‘2006년 세계 식량안전 보장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전환국의 2500만 명과 선진국의 900만 명을 합하면 실제로는 8억 5400만 명이 굶주리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기아 인구는 줄어들기는커녕 해마다 400만 명씩 늘고 있다.

그런데 희망이 되는 사례가 있다. 2005년 10월 세계 식량 정상회담 10주년을 기념하는 회의에서, 에티오피아의 환경보호성 장관 테올데 베르한 게브레 에그지아브헬Tewolde Berhan Gebre Egziabher 박사가 공개한 에티오피아의 티그레이Tigray주州에서 행한 지속가능한 농업의 성과가 그것이다. NGO와 정부의 농업국이 10년에 걸쳐 프로젝트를 실험한 결과, 유기농업으로 화학비료를 쓰던 관행 농장의 배가 되는 수확량을 생산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테올데 박사는 UNEP에서 지구의 옹호자 상(Champion of the Earth Award)과 생계권 상(Right Livelihood Award) 등 많은 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그는 유기농업으로 근대 농업과 똑같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냐고 묻는 말에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테올데 박사.

 

 

 

“저는 유기농법으로 세계의 인구를 먹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와 함께 유기농업이 확대되지 않으면 세계의 인구는 줄어들 것이라는 점도 확신합니다.”

 

테올데 박사는 ‘티그레이 프로젝트’를 낳은 부모로서, 프로젝트의 목표는 농장과 농사땅 주변의 야생종이 수분受粉, 병충해 조절, 물과 양분의 순환이라는 기능을 발휘하도록 농사땅이 아닌 곳을 포함해 생태계의 자연 순환 기능을 전체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정말로 할수 있느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테올데 박사는 다만 이렇게 답한다.

“옛날부터 농촌 지역사회는 몇 천 년 동안 이렇게 해 왔습니다. 우리의 지식은 더욱 늘어났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하던 것보다 더 잘할 수 있습니다.”

 

 

 

티그레이 프로젝트

 

박사의 프로젝트가 행해진 티그레이주는 에티오피아의 가장 북쪽에 있는데 주민의 85%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토지가 매우 나빠져서 농업 생산성이 낮고 매우 가난하다. 유아 사망률이 높고, 교육·의료·평균 수명이 모두 참혹하게 낮은 수준으로 에티오피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의 하나이다.

 

 

에티오피아의 티그레이 지역.

 

 

처음에 티그레이 농업사무소(Tigray Agriculture Bureau)가 지역의 과제를 해결하고자 채택한 방식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도록 권장하는 ‘사사코와Sasakowa Global 2000’이었다. 그런데 세계의 농사땅 대부분은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농산물 가공품과 공업적으로 가축을 길러 팔고자 농약과 화학비료에 기반을 둔 집약적인 대규모 단작으로 꾸준히 나빠지고 있다. 녹색혁명은 그 이름처럼 ‘녹색’이 아니다.

“공업적인 농업으로 앞으로 1만 년 이후에도 세계의 인구를 먹일 수 있을까요?”

이 지역의 몇몇이 이렇게 묻기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테올데 박사가 통솔하는 수도 아디스 아베바에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 연구소(Institute for Sustainable Development)도 협력 관계로 참가하여, 1995년 퇴비 만들기와 토양과 물 보전하기 등 생태적으로 토지를 경영한다는 독특하고 대안적인 실험이 시작되었다.

티그레이주를 대표하는 곳으로 약 50㏊씩 네 곳의 지구가 시험지로 선택되었다. 세 지구는 산악과 그에 인접해 인구밀도가 낮다. 땅심은 한 곳은 비교적 좋은데 나머지는 척박한데, 빗물에 의한 쓸림과 토양침식으로 식생이 사라지는 문제는 모든 지역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농장이 빗물에 쓸리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네 번째 지구는 비교적 비옥하고, 인구밀도도 높으며, 소도 많이 키우고 있었는데, 이 지구는 티그레이주 안에서 유일하게 호수에 접하고 있어서 선택되었다. 이 호수는 많은 물고기가 살아 들새도 많이 찾아오는데, 밖으로 흘러 나가는 하천이 없는 폐쇄 유역으로서 집약적인 농업을 하면서 사용하는 화학 자재 때문에 생태계와 생산성에 영향이 있을까 염려하여 선택되었다.

 

 

 

퇴비의 힘

 

프로젝트가 성공한 주안점은 퇴비를 활용한 것이었다. 티그레이에서는 퇴비를 쓰는 전통이 거의 없어 처음에 마을 사람들은 퇴비 쓰기를 주저했다. 하지만 몇몇 마을 사람이 실험하여 성공하자, 그걸 보고서 다른 마을 사람들도 뒤따르기 시작했다. 퇴비로 쓸 원재료가 부족하여 대부분이 현지의 잡초와 가정에서 나오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퇴비 원료를 늘리려고 풀씨를 언덕에서 모아와 흩뿌리기도 했다. 또 퇴비의 원료를 만들려고 소량의 질소비료를 줘서 잡초가 잘 자라도록 했다. 이 결과 모든 마을에서 수확량이 높아져 재배할 수 있는 품목도 늘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2년 뒤인 1998년, 퇴비를 쓰는 농장은 화학비료를 쓰는 곳과 똑같은 수확량을 얻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2002년, 2003년, 2004년의 자료를 보면 화학비료를 쓰는 곳보다 퇴비를 쓰는 농장의 수확량이 평균적으로 더 높고, 때로는 배의 수확량을 올리는 곳까지 있었다. 그들이 쓴 퇴비의 양은 아직 권장량의 반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수확량이 화학비료의 그것을 뛰어넘었다.

또한 농민들은 퇴비의 효과가 4년이나 이어진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화학비료는 해마다 또 줘야 했는데, 퇴비는 해마다 줄 필요가 없었다. 또 토양의 보수력을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퇴비를 준 곳의 작물은 토양의 보수력이 높아 잘 자란다는 것도 알았다. 에티오피아의 많은 지역에서 가뭄이 문제인 만큼 이는 매우 중요하다. 또 화학비료를 사지 않아도 되기에 경비를 절감할 수 있어 농민의 수입이 올라 빚의 지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지속가능한 개발 연구소의 간부들은 퇴비를 쓰면 다음과 같은 많은 장점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

 

생물 다양성이 증가함

김을 매는 노동력이 경감됨

가뭄 피해가 감소됨

해충에 내성이 증가함

화학비료를 살 때보다 낮은 비용을 씀

 

그런데 프로젝트가 추진된 것은 퇴비만이 아니었다. 물을 보전하고, 토양침식을 막으며, 작물 품목을 다양하게 하는 한편, 여러 목적으로 나무 심기도 진행되었다. 예를 들면 빗물에 의한 침식이 진행된 곳에서는 흙막이 댐을 구축하고, 그 배후에도 작은 댐을 만들었다. 그 덕에 빗물에 쓸리던 골짜기 주변 토양의 보수력이 높아져 골짜기의 바로 옆에도 작물을 심을 수 있게 식생이 재생되었다. 또 토양침식을 막고자 돌로 된 장벽과 퇴비를 섞은 구덩이 제방도 만들었다. 더욱 흙을 안정시키는 효과와 함께 가축의 먹이도 하려고 질소를 고정시키는 나무인 Sesbania sesban도 심었다. 그 결과 지하수의 물높이가 높아지고, 지속적인 관개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젝트 8개의 성과는 아래와 같다.

 

 

콩과 식물인 세스바니아 세스반. 

 

 

작물 수확량과 생산성의 증가함

가뭄/해충에 대한 위험이 감소함

화석연료 투입 자재에 의존하던 것이 감소

지하수가 많아짐

땅심이 좋아짐

나빠진 흙이 수복됨

수입이 증가함

여성의 힘과 지위가 높아짐

 

 

 

지역사회의 힘

 

환경과 조화된 기술이 위력을 발휘하는 곳에서는 지역사회의 힘도 크다. 지속가능한 개발 연구소가 추진한 것은 농민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였

다. 토지 등 지역 자원의 관리를 개선하려면 지역사회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미리 프로젝트를 실시하는 방법을 의론하고자 위원회가 만들어져 거듭 회의가 열렸다. 과제와 그걸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해결할 방법을 정하기 위하여 마을마다 집회가 열려, 그 안에서 마을 사람들 스스로 집약적인 유기농업 프로그램을 세웠다. 프로젝트에서도 경험을 쌓은 보급원을 조정자로서 배치해 후원했다. 프로젝트는 농민이 서로 교류하도록 하고, 페달 펌프 등 간단히 이용할 수 있는 기술도 지원했다. 그와 함께 프로젝트를 경영하기 위한 현지 위원회도 설립해, 현지의 사회적인 법 습관도 개정했다. 그리고 협동 작업은 변경의 마을이 쉽다는 점도 알았다. 가령 실험이 잘 기능하지 않아도 보장이 되기에 잃을 것이 별로 없는 만큼 농민들이 열심히 실험에 참가하여, 어느 마을에서는 협동으로 퇴비를 만들 때 쓸 굴을 파기도 했다. 이러한 개혁의 와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여성들이 힘을 길렀다는 점이다.

“지역사회의 조직을 소생시키지 않고 이러한 경영 개혁은 할 수 없겠죠.”

지속가능한 개발 연구소의 소장인 슈 에드워즈Sue Edwards 씨는 말한다. 에드워즈 씨는 원래 식물학자로 본업은 교사 겸 과학 기자인데, 프로젝트의 중심인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녀는 프로젝트가 성공한 주안점으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 지역은 몇 년이나 내전을 겪어서 여성이 세대주인 가족이 많은데, 전통적으로 여성이 자기 밭을 쟁기질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남성인 이웃이나 친척이 수소로 쟁기질을 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것이 파종 시기를 늦추고, 재배 기간을 단축시키는 장애가 되었다. 이 때문에 프로젝트에서는 여성들을 격려해, 재배 기간이 길어지도록 조, 수수, 옥수수를 모종으로 기르도록 장려했다. 기후변동으로 제때 우기가 찾아올지 예측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많은 장점이 있는 일이다.

 

 

테올데 박사와 함께한 슈 에드워즈 씨. 

 

 

식량 안전 보장을 담보하는 소농의 유기농업

 

네 지구에서 거둔 성공으로 에티오피아의 다른 지역에도 유기농업이 퍼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프로젝트로 가장 성과가 있었던 지구의 하나인 워레다Woreda에서는 2100호의 농가로 구성된 열여섯 지구 전체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5년에는 지속가능한 개발 연구소와 마흔 두 곳의 지역사회가 프로젝트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데까지 확대되었다. 이 때문에 정부도 프로젝트 지구에서는 화학비료와 농약에 바탕을 둔 ‘사사코와 Global 2000’을 촉진하지 않기로 동의했다. 토지가 나빠지는 것과 빈곤, 전쟁 때문에 전략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정부의 전략이 되었다.

현재 프로젝트는 지속가능한 개발 연구소와 지방행정 당국에 더해 농업천연자원국(Bureau of Agriculture and Natural Resources) 및 메켈레Mekelle대학도 참가하고 있다. 2003년 에티오피아 정부는 유기농업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고, 작물·축산 제품·식품 가공·마케팅 부문을 담당하는 국내의 유기농산물 기준을 만들고자 태스크포스를 조직했다. 유기 제품은 급성장하고 있는 특정 시장으로, 남부와 남서부의 지역사회에서는 공정무역으로 유기농 아라비카 커피를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만이 아니라, 수도 아디스 아베바의 중산층 사이에서는 건강한 과실과 채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예를 들면 완전한 유기농으로 채소, 과실, 관엽식물을 재배하는 유축 복합의 ‘창세기 농장(Genesis Farm)’은 해외에서도 인증을 받은 농산물을 생산하는데, 현지 시장에서도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농장에서 생산한 농산물의 값은 다른 곳에서 생산한 현지 농산물보다 비싸지 않고, 심지어 싸기조차 하다. 이 때문에 현장의 노동자들도 농장의 상점에서 채소를 사고 있다. 그런 경제적인 장점만이 아니라, 유기농업으로 식량 안전과 건강한 음식이 확보된다는 지역사회에서의 장점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소농을 생산에서부터 제외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소농으로 유기농업을 하는 것은 대규모 농업보다 훨씬 세련됩니다.”

슈 에드워즈 씨는 말한다.

‘세계 식량 안전 보장 상황 보고서’는 소농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대부분의 농민, 특히 변경의 가난한 농민 대다수는 외부의 투입 자재를 거의 얻을 수 없다. 그렇지만 티그레이 프로젝트는 열악해진 산악 환경에서도 유기농업으로 화학에 기반을 두는 농업보다 높은 수확량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곧 티그레이 프로젝트의 원칙과 접근법은 빈곤에서 빠져나오고, 식량 안전 보장을 얻기 위한 현실적으로 적합한 수단인 것이다.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김서방

 

 

인용문헌

 (1) Nicholas Parrott &Terry Marsden, The Real Green Revolution, Organic and agroecological farming in the South, Greenpeace Environmental Trust February 2002.

 (2) Organic Production for Ethiopia, ISIS Report 25/06/2004.

 (3) Lim Li Ching, Organic farming 'improving Ethiopian yields', South-North Development Monitor, 6 Nov,2006.

 (4) Fredrik Moberg, Jakob Lundberg, Ecosystem Services-Based Farming in Ethiopia Increases Crop Yields & Empowers Women, Sustainable Development Update, Issue 6, 2007.

 (5) Admin,Ecosystem Services-Based Farming in Ethiopia Increases Crop Yields & Empowers Women, 21 April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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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54개의 국가가 있다. 아프리카는 인도ㆍ중국ㆍ러시아를 합친 크기의 대륙에 8천만명의 소농민(小農民)들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17가지의 독특한 경작 방식이 있다. 95%의 아프리카 작물은 하늘에서 내리는 강우에만 의존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매우 거대하고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선진국 농업기술의 적용은 부적절하다


최근 세계식량정상회담에서 공개한 아프리카의 농업과 식량안전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이를 위한 자금지원은 과거에 이미 실패한 방법으로 이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농업선진국의 농업기술과 농업경영 방식에 의존하는 것은 가난하고 자원이 부족한 대부분의 아프리카 소농민들의 식량 안전 문제를 해결하는데 부적절하다.
아프리카의 54개 국가를 향하여 녹색혁명을 촉구하는 것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드러나는 거대한 물질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차이들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어떤 기술로도 중국ㆍ인도ㆍ러시아를 합친 거대한 대륙을 일시에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 농산물을 대량생산할 수 는 없다.
단지 기술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농업 생산이 인간의 혁신에 반응하는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공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농업 생산은 그렇지 않다.
기술은 영양실조를 줄이고 작물 생산량을 증진시키고 식량안전을 강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그것이 복잡한 문제에 대한 묘책이라고 결론지을 수 없다. 그렇게 한 결과 무기 화학비료의 대체물을 포함, 저투입 해결책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감소하였다. 기술을 마치 농업을 위한 만병통치약으로 취급할 때, 지역의 지식을 활용하고 여러 요소들을 특정 상황을 위하여 적절한 기술과 결합함으로써 농민들의 현행 방식에 반응하고 종속되는 더욱 적절한 노선을 농민들에게 따르라고 하기보다는 기존의 연구와 방식을 따르라고 강요하게 된다.
한 지역에서는 정밀농업이 GPS(위성항법장치) 기술의 사용을 필요로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손으로 작물을 심기 위해서 끈과 막대기를 필요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다양한 토양과 기후에 맞는 경작방식 도입해야 한다

아프리카는 광활하고 다양한 대륙이다. 인터아카데미협의회(IAC)의 보고에 의하면 아프리카는 토양, 기후, 질병과 역병이 극도로 다양하여 17가지의 독특한 경작 방식이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70%의 농장은 인프라가 제한되어 있는 작고 파편화된 땅덩어리이다. 95%의 아프리카 작물은 관개시설을 대규모 확장하는 것이 제한된 가운데 강우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 가운데 농민들은 시장에 거의 또는 전혀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생존은 작물의 다변화에 달려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농업을 다른 대륙의 녹색혁명 방식이 맞지 않는다

이들 8천만의 소농민들은 아프리카에서 단연 가장 큰 농민 집단이다.
그들은 수확기 사이에 기아 기간을 종종 통과해야 하는 식량의 순 매수자들이고 개인이나 마을 차원에서 맞춰진 매우 특유한 해결책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다른 지역을 위하여 개발된 기술을 이곳 아프리카에서 사용하는 것은 큰 실책이다.
제한된 농업예산이 입증하고 있듯이 아프리카에서 농업을 가난 해결의 수단으로 삼는 국가는 거의 없다. 정부들은 또한 토지 보유권에 관한 이슈를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했다. 농민들은 토지 소유권 없을 경우 장기적 생산성 이득을 위하여 개량시설에 투자하고자 하는 의욕을 잃게 될 것이다. 불공평한 토지 정책은 아프리카 농민의 70%를 차지하는 여성들에게 특히 가혹하다.
아프리카에서는 20세기에 시작된 녹색혁명의 방식이 맞지 않다.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녹색혁명은 최대수확량을 얻기 위하여 화석연료투입과 관개시설의 집약적 이용에 기초한 밀밭과 논의 단일재배를 강조하였다.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서는 복합작물을 보존하는 저투입 방식에 맞는 안정적인 수확량을 필요로 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농민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윤작(輪作), 간작(間作), 그리고 혼작(混作)에 의존하고 있다.
동일성을 몰아붙이는 방식은 전통 가치와 환경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작물의 다양성을 축소시켜 기아와 영양실조를 악화시킬 수 있다.

소규모 생계형 가족농업, 지역에 적합한 종자 중심의 생태농업이 해결책이다

여기에 해법이 있다. 인터아카데미협의회는 ‘범대륙적 전략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중재하는 전략’을 추천하고 있다. 국제농업지식과학기술평가위원회(IAASTD)는 400여명의 과학자들이 400년 동안 연구한 것을 토대로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본 위원회는 소규모 생계형 가족농업, 지역에 적합한 종자, 그리고 생태 농업이 개발도상국의 기아, 가난, 그리고 농업생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접근방식들은 집중적인 훈련과 광범위한 기반의 보급서비스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다국적 기업이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정부들은 종종 서구의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것과 지원을 거부하고 부적절한 자체 자원을 고집하는 것 가운데 양자택일하도록 강요 받고 있다.
자원이 부족한 많은 농민들은 종자 간격, 종자 깊이, 고랑 간격에 관한 훈련, 개방수분의 개량종자와 교배종 개량종자, 기본적인 토지 관리, 피복 작물, 계단식 논, 간작, 유기물을 대체하고 토지 구조를 재구성하도록 돕는 최소 경작 기술 등을 포함한 작은 지원들을 통해 도움을 받고 있다. 이들은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갈망하고 있다.

출처 : Agriculture & Industry Surv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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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전통농업 - 무군가Mugunga

 

 

 

화학비료 없이 수확량을 3배로

 

케냐 나이로비의 동쪽에 있는 마쿠에니Makueni 지역의 농민인 요하네스 무티스야Johannes Mutisya(54) 씨는 생활을 개선하고자 15년이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나 해 보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터무니 없었다. 무티스야 씨는 풍작을 기대하며 옥수수와 콩을 심었지만 그 눈에 보인 것은 텅 비었을 뿐이었다.

 

“요즘은 그저 농사만 지을 뿐입니다. 비가 온 다음에는 풍작을 확신했던 20년 전과는 다릅니다.” 그는 바싹 말라서 딱딱해진 땅거죽을 지긋지긋하게 긁었다. 가뭄 등 기상이변의 영향도 작용하여 상황은 황량해졌다.

 

무티스야 씨가 직면한 상황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농사땅이 심각하게 나빠지고, 생산도 저하되고 있다. 아프리카의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다른 대륙과는 다르게 농업 생산성은 좋아지지 않고 있다. 그것이 대부분의 지역에서 식량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생산고가 낮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토양에 질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에서 비료를 주는 양은 매우 적어, 다른 대륙의 나라에서 주는 비료 양에는 평균 10%, 중국에 비해서는 2%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화학비료의 가격이 비싼데다가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아주 일반적인 아프리카의 농민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보조금을 주는 화학비료가 아프리카의 수확량을 높이는 열쇠가 된다고 지적하는 화학자도 있다. 하지만 그 맞은편에서는 오랫동안 화학비료를 사용하다가는 자칫하면 나빠지고 있는 위약한 농지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염려하는 화학자도 있다.

 

그런데 나이로비에 있는 세계 혼농임엄 센터(World Agroforestry Center)의 데니스 가리티Dennis Garrity 소장은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도 현재 수확량을 3배로 늘릴 수 있다고 한다.

 

가리티 소장. 

 

그 비밀은 사막부터 열대우림까지 폭넓은 기후와 토양에 적합하면서 아프리카 풍경의 상징이기도 한 아카시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스와힐리족이 무군가Mgunga라고 부르는 알비다 아카시(Faidherbia albida)는 성장이 빠르고 옹골찬데다가 아프리카의 토양에 필요한 질소를 공급하는 독특한 특성을 지녔다. 무군가는 애플-링-아카시apple-ring acacia와 아나 트리ana tree 등 다양한 이름을 가졌는데, 말라위에서 행한 연구에서 무군가의 잎이 우거진 아래에 옥수수를 심으면 수확량이 280%나 높아진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잠비아에서 행한 연구에서도, 비료 없이는 옥수수의 평균 수확량이 1.3t/㏊밖에 되지 않았는데 무군가 아래에서는 4.1t/㏊로 늘었다. 똑같이 비료 없이 심어 수확량이 늘어난 것은 서아프리카에서 재배되는 잡곡, 에티오피아의 수수, 인도의 grand nut와 목화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게다가 조와 수수는 무군가에서 제공된 양분보다 많은 화학비료를 준다고 해도 그만큼 수확량이 늘지는 않았다.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무군가 나무. 

 

 

무군가는 기묘하게도 일반적인 나무와는 다른 기상 특성을 띤다. 우기의 전반에는 잠에 들듯이 질소를 풍부히 함유한 잎을 땅으로 떨어뜨린다. 그때는 바로 농민들이 심은 씨앗이 질소를 흡수할 때이다.

 

“그리고 농민들이 작물을 심어서 기를 때에는 낙엽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작물과 햇빛을 놓고 다투지 않는다. 그리고 건기가 시작하면 다시 잎이 나온다. 곧 다른 식물이 다 말랐을 때 그 잎과 꼬투리가 유기비료와 가축의 먹이가 됩니다. 거의 노동력도 들지 않고,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무군가는 공짜로 질소를 제공하여 값이 폭등한 화학비료를 사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비료가 될 뿐만 아니라, 방풍림으로도 기능하고, 땔감과 건설용 목재도 제공하고, 우기의 침투성을 높여 토양침식도 막는다.

 

 

 

60년 전에 발견된 전통농업의 가치

 

국제 혼농임업 센터는 국제 농업연구 자문모임(Consultative Group on International Agricultural Research)이 지원한 열다섯 곳의 센터 가운데 하나이다. 2009년 8월 24일 제2회 세계 혼농임업 회의를 나이로비에서 개최하여, 1000명 이상의 전문가가 각국에서 모여 이 농장에서 기른 나무의 중요성을 논의했다.

 

“이 나무에 관한 지식은 농민들에게 배운 것입니다”라고 데니스 가리티 소장은 말했다.

 

오랜 세월 아프리카에서 농민들이 쓰던 농법을 과학자들이 다시 발견했을 뿐이다. 과학자들이 사헬 지역의 농민이 수수와 조의 밭에 이 나무를 기르고 있는 모습을 약 60년 전에 관찰한 것에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전통농업은 세네갈,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차드, 수단, 에티오피아, 가나 북부, 나이지리아 북부, 카메룬 북부에서 아직도 행하고 있으며, 니제르에서도 480만㏊ 이상에서 행하고, 말라위와 탄자니아 남부의 고지대에 사는 50만 명의 농민들도 옥수수밭에 나무를 심고 있다. 그리고 무군가에 대한 연구는 60년 이상이나 되어, 나무의 역사, 생태와 실천에 관해 700종 이상의 과학 간행물이 나왔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도입된 일은 적다. 특히 동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소수의 농민밖에 그 잠재력을 알지 못한다.

 

 



 

밭에 나무를 심는 것이 식량과 환경문제를 해결한다

 

“지금 우리는 보급 프로그램을 통하여 아프리카 전역의 농장에 이 나무를 심도록 하고자 농민의 지식에다 과학 지식을 더하고 있습니다.”

 

제2회 세계 혼농임업 회의에서 무군가의 연구 성과가 발표된 일도 있고, 몇몇 나라가 그에 응하기 시작하고 있다. 잠비아와 말라위 두 나라의 농업국은 옥수수밭에 100그루/㏊의 무군가를 심도록 장려하여 생산을 늘리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가리티 소장은 무군가에 관한 지식이 더욱더 농민들에게 미칠 수 있도록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식량 생산 과제에 절망하고 있는 5000만 이상의 농민에게 이 나무의 특성을 적합, 보급하는 일에 우리는 실패하고 있습니다.”

 

이 일 말고도 숲이 벌채되는 것을 계속하여 막고, 뚝 떨어진 농장의 생산성을 역전시키는 것이 아프리카 농민들에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케냐에서 그린벨트 운동을 창설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왕가리 마타이Wangari Maathai도 연구기관과 대학이 혼농임업을 연구하여 그것을 소농에게 전하는 보급 활동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프리카의 식량안전 보장에 장해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농민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연구 성과를 전해야 한다고 혼농임업 회의에서 역설했다.

 

 

왕가리 마타이. 

 

“식량 안전에 연결되는 대규모 단작과 같은 지속적이지 않은 농업을 행하는 것으로 우리는 생태계에 큰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위약성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식용작물을 기르도록 농민을 장려해야 합니다. 아프리카는 무군가 등의 '비료 나무'를 심는 지속적 농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와 세계의 농장에서 알맞은 장소에 알맞은 나무를 심는 일은 기후변동에 대응하고, 많은 사람을 먹이며, 환경을 보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공짜로 유기질소를 주는 무군가가 그 사례입니다. 이미 아프리카에서는 농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많은 기존 사례가 있습니다”라고 가리티 소장도 말한다.

 

아킴 슈타이너Archim Steiner 국제연합환경계획UNEP 사무국장도 무군가는 탄소배출시장에서 소농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을 지적했다. 세계 혼농임업 센터와 UNEP는 농장에 나무를 늘리기 위한 금전적 동기를 농민에게 제공하고자 다양한 형태의 탄소배출 표준안을 개발하고 있다.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기후변동회의에서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포함한 새로운 전략이 검토되었다.

 

 


 

인용문헌

(1) Jeremy Hance,Unique acacia tree could play vital role in turning around Africa's food crisis, mongabay.com,24Aug, 2009.

 (2) Communications Unit,Unique Acacia Tree Could Nourish Soils and Life in Africa, Worldagroforestry Press release,24Aug,2009.

 (3) Ochieng' Ogodo,Acacia tree can boost crops ― and more ― across Africa, Agriculture & Environment,27Aug,2009.

 (4) Ochieng' Ogodo,"Fertilizer Tree" May Revive African Farmlands,National Geographic News, Sep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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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세계 농업 유산인가?

 

 

 

아름다운 농촌 풍경을 기른 고대의 농법

 

이탈리아 남부의 바닷가에 펼쳐진 계단식 레몬밭, 사하라사막의 오아시스 농장, 이란의 고대 지하 관개 수로, 러시아 극동의 전통적인 숲 경영법. 이러한 수많은 전통농법은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아말피Amalfi의 바닷가에서는 물을 보전하고 그늘을 만드는 독특한 계단밭을 지닌 고대 농법이 레몬을 생산하고 있다. 사하라사막과 아프가니스탄, 이란의 황량한 대지에도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 여러 군데이다. 이곳들은 고대의 지하 수로인 카나트qanat가 만든 것이다. 카나트는 중력으로만 자연스레 흘러내리는 지하수에서 물을 모아서 그 증발을 막는 방식으로 물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왔다.

 

“매우 다양한 생물이 사는 오아시스와 채소밭을 만들고자 물을 몇 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산악 지역에서 사막으로 끌어옵니다. 그것은 식량과 영양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사막 안에 생물다양성과 빼어난 풍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두는 문화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FAO의 파르비즈 쿠하프칸Parviz Koohafkan 지역개발 과장이다.

 

 

 

인류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

 

앞에 말한 예는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관(FAO)이 ‘세계의 중요 농업 유산(GIAHS=Globally Important Agriculture Heritage Systems)’이라 부르는 것의 하나이다. 세계의 중요 농업 유산이란 FAO가 세계 환경 자금(Global Environment Fund)의 지원을 받아 2002년에 세운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가 목표로 한 곳은 페루, 칠레, 중국, 필리핀, 튀니지·모로코·알제리의 마그레브Maghreb에 있는 오아시스 지역이 특별히 지정되었다. 그리고 2006년 10월 24~26일에 걸쳐서는 로마의 FAO 본부에서 전통농업과 관련해 3일 동안 국제 포럼을 열어 5곳의 프로젝트 경험을 강론하고, 다음 단계를 향한 프로젝트도 검토했다. 최종적으로는 온 세계의 100~150 지역의 전통농업을 등록하고, 세계 농업 유산을 창설하자고 목표를 정했다. 2007~2014년에 걸쳐서는 그 모든 연구로 특정된 새로운 보호 방법을 현지 지역사회와 함께 실천하기로 했다.

 

그런데 제트기와 인터넷 등 언제나 기술이 진보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 고대 안데스와 페루에서 감자 농사를 짓던 법과 고대 중국의 논에서 행하던 농법, 이란의 방목 농법 및 튀니지·모로코·알제리에 있는 사하라사막의 오아시스 농법이 왜 중요할까? 그것은 고대 농법은 단지 환경 파괴를 막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몇 세기 동안이나 사람들을 먹이고 키우며, 지금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전통농법과 사막화 문제의 전문가 피에트로 라우레아노Pietro Laureano 씨는 환경 파괴를 막는 최선의 방법으로 전통농법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세 명 가운데 둘의 생활은 지금도 이러한 기술로 살고 있습니다. 고대의 것이라고 생각해 온 방법이 세계의 많은 인구를 길러 왔고, 국가도 이러한 방식으로 성립했습니다.”

 

그리고 앞에 언급했던 파르비즈 쿠하프칸 과장은 이란 출신으로 테헤란과 프랑스의 몽펠리에에서 공부한 박사인데, FAO에서 24년 동안 일한 전문가로서 농업 유산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이렇게 말했다.

 

“농촌에서 가난한 사람의 75%는 농업으로 생계를 해결하고 있는데, 그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농법의 관리인입니다. 전통농업은 지금도 온 세계 200만 명의 식량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 대부분은 인류에게 진정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장래에는 온 인류가 틀림없이 이를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쿠하프칸 박사는 소농의 지지자로서, 증가하는 인구를 먹이려면 소농은 사라져야 할 운명이라는 주장에 이렇게 반론한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무수히 도시로 나갔다고 해도, 아직까지 소농의 수는 줄지 않아 약 10억 명이나 됩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소농은 그 나라와 자기 지역의 식량 안전을 보장하려고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 개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위기에 노출된 전통 유산

 

하지만 지금 고대부터 이어진 문화와 기술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예를 들면 농업 전문가 중에는 칠레 남부의 칠로에Chiloe제도諸島가 세계에 감자를 전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는 몇 세기나 어업과 숲을 유지했다. 그런데 그런 지역사회가 지금 사라지기 시작했다. 북아프리카에서도 몇 세기나 오아시스의 주변에서 살아오던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기 시작했다.

 

“모로코에서는 국민의 36%가 최저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높은 인구압과 빈곤이 오아시스의 생태계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마그레브의 세계 농업 유산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노레딘 나스르Noureddine Nasr 대표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이 지역을 버리고 이탈리아 같은 유럽의 나라들로 이주하고 있다고 한다.

 

라우레아노 씨도 고대의 물을 모으는 기술을 버리고 근대의 설비로 관정을 파고 대규모 농업을 시작했기에 많은 사하라의 오아시스가 마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관정은 오아시스를 파괴하면서 결국 고갈시켜 버렸다. 공업과 같은 근대의 농업은 많은 물을 필요로 하여 땅속의 지하수를 몽땅 퍼 올렸다. 그러면서 지하수에 소금물이 흘러 들어갔다. 염해를 받은 토양에는 화학비료가 필요해졌고, 그런 화학물질은 토양을 상하게 하여 빗물의 침투력을 더욱 떨어뜨렸다. 일찍이 풍족했던 토지가 사막으로 변했다. 이는 중앙아시아의 아랄해부터 북미까지 온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막화’라는 현상이다.

 

쿠하프칸 박사는 이것이 세계 농업 유산 프로젝트를 세워야 했던 이유라고 말한다.

 

“공업 개발, 오염, 기상이변, 농촌의 빈곤, 대규모 시장에서 소외되는 지역 경제, 도시로 유출되는 인구. 그러한 것들이 직면한 과제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치유하지 않으면 세계화로 인류는 이러한 유산을 잃어버리겠죠. 현지 주민의 대부분은 그들이 바라던 진정한 생존 방법을 잃고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관을 잃었기 때문에 젊은이들도 학교에 진학하고 더 이상 농업에 종사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통농법을 유지하려면 전통농법의 체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도록 지역사회를 격려하고, 특히 그 지역의 정부기관과 사회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주민들은 자신이 가진 많은 보물을 대개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고 이 가치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통적 소농은 효율적

 

쿠하프칸 박사는 고대부터 내려온 전통농업은 환경 파괴의 보루로만 여겨지고, 또 대기업과 근대 농업에 비해 소농은 비효율적이며 비생산적이라는 통설을 부정한다.

 

“몇몇 대기업이 비효율적이듯이 소농이 비효율적인 분야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 생산 체계를 한층 폭넓게 보면, 많은 소농이 대농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훨씬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농이 가진 유일한 자원은 천연자원이나 인적 자원이기에, 그것을 유지하고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합니다. 자신의 유전자원을 다양화하고, 생산 체계와 수입원도 다각화합니다. 이 모든 것이 탄력성을 강화합니다. 이는 식량 생산에 기여하는 동시에 환경을 보전하고, 자신이 근거로 하는 천연자원을 지속시키며, 그 결과로 생활도 지속할 수 있도록 합니다. 지구온난화 가스의 방출과 토양과 물의 오염 등 집약화에 따른 온갖 외부성을 포함해, 생산 전체에서 사업과 비교한다면 가족농과 전통적인 농민들이 훨씬 잘 기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전통농업은 왜 비효율적이라 여겨졌을까? 박사는 바로 뒤틀린 체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러한 농민들이 정부에게 어떠한 정책의 혜택도 얻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거의 모든 개발도상국은 도시와 서비스업의 개발에만 중점을 두고, 농업과 농촌은 무시해 왔습니다. 농업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고, 농촌 사회는 배려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선진국에서는 대규모 생산 체계를 유지하고자 1년에 약 3650억 달러의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루에 10억 달러에 해당합니다. 이런 체계 안에서 소농이 어떻게 경쟁할 수 있나요? 이것은 완전히 뒤틀린 체계입니다.”

 

그리고 박사는 FAO 직원 안에 서양을 따라가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상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FAO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는 ‘서양’과 ‘생산주의(productivist)’의 가치관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관리직의 대부분은 서양의 대학에서 교육을 받아, 안전망과 사회적 가치,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 잘 모릅니다. 그리고 선진국에서 찾아낸 농업 체계를 중시하는 편견이 있습니다. 서양에서 좋다고 판명된 기술을 모방하여 개발도상국에 옮기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서 좋은 것이라면 저기에서도 당연히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패러다임의 전환

 

하지만 박사는 변화는 가능하고, 이미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이러한 변화가 매우 느리지만 여러 가지로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대의 전환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많은 사회 문제 및 환경 문제를 녹색혁명이 만들었다고 국제사회가 인식한 일입니다. 30년에 달한 녹색혁명은 어려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을 먹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와 함께 자원을 고갈시키고, 토양과 물도 오염시켰습니다. 녹색혁명의 발상에 입각한 조직과 정책이 아직까지도 우세하다고 하는 조직적인 과제는 있습니다만, 다행히 지금은 이러한 사고방식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자신들의 정책이 잘못되어 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2008년 세계은행의 세계개발보고는 개발도상국의 성장 동력이 농업이어야 한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미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두 번째는 경제 성장으로 발전한 모든 나라가 그 농업 부문과 소규모 가족농 체계에 투자했다는 증거입니다. 더욱 지속가능한 혹성을 바란다면 우리의 환경을 치유해야 한다는 사실도 자명합니다. 토지, 물, 유전자원에 투자해야 하고, 우리는 이러한 체계의 관리인을 지원해야 합니다. 그 관리인은 바로 농민입니다. 농민은 매우 많은 품종의 증식, 생산, 유지를 담당하는 관리인입니다. 기업이 아니라 그들이야말로 이걸 계속할 권리가 있습니다.

소농은 직면하고 있는 온갖 곤란에도 상관없이 지역 개발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으며, 이는 더욱더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역할은 특히 기상이변에 직면하여 한층 중요해졌습니다. 대부분의 정부와 과학자들은 이미 그들의 의견을 소농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쪽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또 소농들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는 것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에 열심히 참가하게 된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선주민과 농촌 여성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세계 농촌포럼과 함께 우리는 ‘가족농을 위한 국제년’을 선언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가족농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혹시 이것을 3, 4년 전에 이야기했다면 이상적인 일로 여겨졌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현실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정말,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인용문헌

(1) Jeffrey Donovan, World: Experts Fight To Save Ancient Agricultural Systems, Radio Free Europe, Oct25, 2006.

 (2) Sabina Zaccaro, Saving Life on the Edges of the World, Inter Press Service, Oct26, 2006.

 (3) Jorge Chavez-Tafur, “The glassis half full” Interview Parviz Koohafkan, Farming Matters, Dec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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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전통농법 2 - 밀파·솔라




황폐해졌던 멕시코


멕시코의 믹스테카Mixteca 지역은 강우량이 부족하고 토양침식도 심각한 산악 지대이다. 1980년대 그곳에서 멕시코의 캠퍼시노들은 수확을 늘리고자 화학 집약 농법을 도입하여 화학비료와 농약을 주며 옥수수를 재배해 높은 수확량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결과, 수확이 확 떨어지고 토양도 피폐해졌다. 게다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실시되어 옥수수 값이 떨어져, 가난한 캠퍼시노는 화학 자재를 조달할 수 없게 되었다.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기계, 종자. 비료, 농약에 투자할 돈도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토지는 농약과 화학비료, 토양침식 또는 사막화로 쓸모없어졌다.


국제연합의 연구에 따르면, 고대 멕시코 문화의 선조가 거주하던 오악사카Oaxaca주州는 세계에서도 토양침식율이 가장 높아 토지의 83%가 농사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낮은 생산성과 나빠진 토양 때문에 수천 명이나 멕시코와 미국의 대도시로 좋은 생활을 구하여 그 토지를 버리고 갔다.


“캠퍼시노가 다른 일을 구하여 땅을 버리고 가는 일은 큰 변화입니다. 농촌에는 이미 늙은이밖에 없고, 세대를 이어서 선주민의 지역사회에 계승되어 오던 지식의 후계자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멕시코 농촌 전체의 전통과 지식을 잃어버리는 상황은 정말로 걱정입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오악사카 티란통고Tilantongo에서 캠퍼시노의 우두머리인, 자연보호 활동가 헤수수 레온 산토스Jesús León Santos 씨이다. 그리고 그는 근대농업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 소농과 협동하는 고대의 전통농법으로 지속가능한 농업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황폐한 토지를 비옥한 토지로 바꾸려고 애쓰고 있다.



과테말라에서 도입된 유기농법


헤수수 씨는 당시를 떠올린다.


“멕시코 농촌의 지역사회 대부분은 땔감, 목재, 물 등의 자원이 부족했습니다. 제가 자란 곳도 그렇고, 저도 가족과 지역사회가 직면한 온갖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런 자원 부족에 더하여 농촌 주민의 생활을 괴롭힌 것은 토양침식으로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메마른 땅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낮은 수확과 가난한 경제에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1950년대부터 근대농업에 거스르는 움직임이 도입되었습니다.”


1980년대 사회·정치가 어지럽던 과테말라에서 오악사카주로 과테말라의 농민들이 난민이 되어 도망을 왔다. 그들은 10년 전부터 유기농법과 현지의 지식에 뿌리를 둔 농업 생산 체계를 개발한 상태였다.


“토양을 보전하며 수확량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던 농민들이 국내의 위기 때문에 과테말라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1983년 멕시코에 있는 조직이 그들을 초대하여 그 무리가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문제를 지적해 주었지요. 심각한 토양침식을 줄이고자 도랑을 파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들은 과테말라에서 개발된 농법으로 사람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그 훈련을 받은 한 사람입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이해하고 처음으로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인 농민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84년 부모님의 토지에서 이 방법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우리는 환경보호와 지속가능한 농업에 흥미를 가진 농민들과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믹스테카 농민 종합개발센터(CEDICAM= Centro de Desarrollo Integral Campesino de la Mixteca)를 세웠습니다.”



농민을 구한 고대 농법


종합개발센터의 목적은 토양침식이 된 상태를 회복하여 풍부하고 생산적인 토양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는데, 헤수수 씨는 그 일을 도운 것이 바로 고대의 기술인 밀파였다고 한다. 헤수수 씨와 센터는 ‘밀파 체계(milpa system)’라고 불리는 종합적 농업 체계의 개발을 중시했다.


“우리를 구한 하나는 옥수수, 콩, 호박, 허브 등의 다양한 작물을 섞어짓기하는 ‘밀파’였습니다. 모든 작물이 같은 밭에서 자랍니다. 이는 우리의 선조가 쓰던 고대의 체계로, 메소아메리카 사람들이 당시 가장 고도의 농업을 육성하던 체계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멕시코와 중미의 많은 토착 지역사회에서 계속 쓰이고 있습니다. 양분을 다 써 버리는 일도 없고, 병해충 문제도 발생하지 않아 몇 년이나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는 그 방법이 거의 잊혀져, 밭에 단 하나의 작물밖에 없는 단작 체계가 대신하고 있습니다. 선주민과 캠퍼시노의 지식이 근대 기술로 대체되어 화학비료와 외부의 지식에 크게 의존하도록 만들었고, 그것이 농촌 지역사회를 더욱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헤수수 씨는 전통농법의 수확량이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멕시코 북부의 시나로아Sinaloa의 단작을 하는 밭에서는 기계와 화학 자재에 많은 돈을 투자하여 8t/㏊의 옥수수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밀파는 이것만큼 생살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렇지만 캠퍼시노의 가족과 그 가축에게 1.8t/㏊의 옥수수를 줍니다. 별로 투자하지도 않는데 풋거름과 토종만을 써서, 콩, 호박과 그 토지에 심은 것 무엇이든 얻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판매할 수 있는 여분도 있을 것입니다.

토종은 몇 세대나 식량을 제공하며 현지의 기후에 적응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재배하는 데 반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잘 알지 못하는 유전자조작 종자를 대체하고 싶습니다. 이는 농민만이 아니라 소비자도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이러한 토종을 생산하고 사용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좋은 맛을 주는 것 말고도 문화, 전통, 고대의 선주민과 캠퍼시노의 지식을 살려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대의 수로 농법을 부활시키다


멕시코에서는 내린 빗물의 약 80%가 지하로 스며들지 않고 그대로 흘러가 버린다. 이 과제를 해결하고자 헤수수 씨가 쓴 방법도 스페인 사람들이 오기 이전부터 관개용으로 쓰던 고대의 기술이었다.


60×60㎝의 비탈 수로는 잠재적으로 360ℓ/m의 물을 잡을 수 있다. 실제로 5㎞에서는 80만 ℓ의 집중 호우를 잡을 수 있는 것이 증명되었다. 도랑은 빗물의 80%를 잡고 수로의 물은 토양에 스며들어, 그 결과 지하수가 다시 풍부해졌다. 이 지식도 이미 사라졌던 것인데, 지금은 현지 기관과 환경자연자원청(SEMARNAT= Secretaría del Medio Ambiente y Recursos Naturales) 등의 정부 기관에 널리 받아들여져 추진되고 있다. 헤수수 씨와 종합개발센터는 지역에서 몇 백 개의 비탈 수로를 만들려고 지금 현지의 캠퍼시노들과 협동하고 있다.


“멕시코의 선주민에게는 지속가능한 체계를 개발하는 지식과 능력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함께 조직적으로 일하는 단체를 꾸린 테퀴오Tequio라고 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지역사회는 공익을 위하여 일했습니다. 이 방식으로 그들은 몇 천 그루의 나무를 심고, 몇 백 킬로미터의 관개용 수로를 건설하며, 환경을 개선해 왔습니다. 근대농법을 실시한 대다수는 선주민의 방식이 케케묵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러한 실천은 자원을 조금만 쓰고 오염도 시키지 않는 농업을 행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다


하지만 헤수수 씨가 이 전통농법을 쓰도록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화학 자재에 바탕한 체계에서 자연의 체계로 전환하는 일은 복잡합니다. 우리는 비료를 쓰던 것을 단번에 멈출 수는 없습니다. 화학비료를 줄이고, 풋거름을 늘리며, 조금씩 그 일을 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단번에 생산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토지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체계에서 다른 것으로 뿌리부터 개혁하라고 강요한다면, 생산량이 심각하게 떨어져 의기소침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개혁은 느긋하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나무가 자라는 데에는 몇 년이나 걸립니다. 예전에 누군가 ‘왜 곧바로 이용할 수 없는 것을 심는가?’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와 동료는 ‘우리가 오랜 세월 이용하는 자원의 대개는 성장하는 데 몇 년이나 걸리고, 미래세대를 위하여 그것을 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멕시코와 세계 대부분의 마을은 우리와 비슷한 과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파괴되어 버린 것을 재건하기 위한 시간은 아직 있지만, 지구온난화는 숲이 사라지는 것이 한 원인입니다. 그것이 지금 곧바로 시작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다시 나무를 심어 숲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농민들을 설득하는 데에 정말로 도움이 된 것은,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포함해 몇 가족의 토지가 개선되는지를 눈으로 볼 때, 그들은 우리가 한 것을 흉내 내기 시작합니다. 경험이 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천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사례가 설득한다’라는 구호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반은 사막 상태였던 땅을 주민과 미래세대가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 조금씩 바꾸는 것입니다.”



미래로 넘길 유산


믹스테카 농민종합센터는 1989년 이래 아홉 군데의 지역사회에서 몇 백의 농민을 조직했다. 소나무와 다른 토종 나무를 다시 심기 시작하여, 엘 프로그레소El Progreso에서는 모든 지역사회의 80%가 참가하여 100㏊의 나빠진 토지를 회복하고, 엘 카르멘El Carmen에서는 11년 전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하여 2003년 4만 그루, 2004년 7만 그루를 심었다. 과거 5년 동안 100만 그루 이상의 토종 나무를 심어 1000㏊가 숲으로 돌아왔다.


토양을 보전하고, 지하수를 다시 풍부하게 만들고자 언덕땅에는 등고선을 따라 도랑을 파고, 빗물로 파인 골짜기가 생기는 지역에는 흙을 막는 댐이 건설되었다. 또 몇 세대에서는 집에다 빗물을 모으기 위한 통도 마련했다. 통에는 건기에 쓰는 수량의 6배인 1,5000ℓ나 물을 모을 수 있다.


옥수수, 콩, 호박을 다시 옛날 방식으로 섞어짓기하여 옥수수를 단작하던 것이 다양화되고, 토종 옥수수가 보전·개량되며, 땅심을 좋게 하고자 현지에서 발생하는 폐기물과 부산물을 써서 지렁이똥을 포함해 유기 퇴비의 생산도 시작했다.


25년 이상에 걸친 헤수수 씨의 노력은 성공했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인데, 지금 이 황폐했던 믹스테카의 현실은 크게 변했다. 지역의 25~30%밖에 경작할 수 없던 곳에서 지금은 토지의 80%를 경작하고 있다. 지역의 농업 생산은 50%나 올랐다. 이러한 개량의 모든 것이 믹스테카의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어 이주도 줄고 있다.


“지역사회의 환경을 개선하려고 싸운 것은 우리만이 아닙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여기에 참가했습니다. 지금 우리 믹스테카족은 의지, 기술, 지식이 있으면 파손된 천연자원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세계에 보였습니다.”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지역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망도 없는 채로 높은 수확을 올리려고 하여 대부분의 토지가 피폐해져 있다. 이 현상에 헤수수 씨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는 자신의 일만 생각하지 말고 몇 세대 앞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미래세대에게는 이 혹성의 자원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지구와 지구에 있는 것 모두를 파괴할 때, 우리는 우리의 아이와 자손들의 미래를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돈벌이는 좋은 것입니다만, 새로운 인생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재산을 유산으로 남기는 편이 더 좋습니다.”


헤수수 씨는 2008년에 그 환경보호의 노력이 평가되어 골드만 환경보호상(Goldman Environmental Award)을 수상했다.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1) Miguel A Altieri and Parviz Koohafkan, Enduring Farms: Climate Change, Smallholders and Traditional Farming Communities, Third World Network, 2008.

  (2) Paula Alvarado, 2008 Goldman Prize Winner Jesus Leon Santos on Bringing Desert Lands Back to Life, 26may.2008.

 (3) Jesús Ibarra, Ancient Farming Techniques to Save the Campo, Organic Consumers Association,14Aug,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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