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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1일. 날씨가 흐리고 공기가 차갑다. 바람도 좀 분다. 남쪽나라 제주도라고 우습게 봤다가는 안 되겠다. 일단 옷부터 단단히 챙겨 입어야지.

 

8시 40분 어음리에 도착했다. 이곳에 오기 전 봉성리를 지났으나 거기는 별 거 없었다. 봉성리는 다들 큰 읍내로 출퇴근을 하시는가 보다.

 

결국은 찾은 어음리... 어음 2리 3129번지에서 일단 보리콩을 구했다. 뭍과 다르게 보리콩이란, 보리를 거둘 때 거두는 콩인지, 보리를 심을 때 심는 콩인지 잠시 헷갈린다. 뭐였더라???

 

 

 

이렇게 보리콩만 얻고 끝날 줄 알았다. 집이 워낙 정결하고, 뭐 알아볼 수도 없어서 더 그랬다. 하지만 이렇게 끝날 수 없는 곳이란 걸 금방 깨달았다. 집 구석구석에서 발견한 수확의 흔적들... 아래에 보이는 콩가리도 그렇다. 높이 쌓지는 않았지만, 두 분이 사시면서 이런 콩가리를 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더 달라붙어 말을 걸었다. 역시나 할머니에게서는 이것저것 있는 곳이 있으니 가자며 곳간으로 이끄셨다.누가 알았을까? 이곳에서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종자의 거의 절반을 다 보았다.

 

 

씨앗을 꺼내 보여주시는 양혜옥(74) 할머니. 평생 농사만 지으신 할머니이신지라 사람이 찾아오는 일도, 사진을 찍는 일도 어색하시기만 하다. 그냥 할머니... 그냥 할머니시다.

그렇다고 할머니만 이런저런 씨앗을 보여주신 건 아니다. 할아버지께서도 낯을 가리지 않고 자기의 농사를 다 보여주셨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낯선 사람... 이상한 사람이 찾아와 씨앗을 보여달라고 채근하는 것이라 느낄 만도 한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보여주시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고마운지 이번 일을 통해서 새삼 절실히 깨닫는다.

 

 

계속 농사짓는 씨앗을 꺼내 보여주시는 강형준(74) 할아버지. 늦더라도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집에 들어오면서 본 오이의 모습도 심상치 않다.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이것도 토종이라고 하신다. 물론 꼭 집어 토종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지만, 여름에 더울 때 생채를 해 먹는다며 짤막한 것이 외이고, 길쭉한 것이 오이라며 우리에게 차이를 꼭 집어서 설명해 주신다. 아, 그래도 이렇게 봐서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걸 어쩌랴? 일단 사진에 한 방 남겼다.

 

 

다음 더 재밌는 일이 남았다. 이건 제주도를 돌아다니며 내 평생 처음 갔지만 정말 큰 배움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건이다.

정말이지 난 이걸 통해 제주도의 반은 다 돌아봤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이 집에서 개발시리를 배운 일이다.

농사짓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할아버지 할머니가 농사짓는 이야기로 넘어갔고, 곳간에 보관하고 있는 곡식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조 이야기를 했는데, 검은흐린조를 심고 거두어서 먹는다고...

그래서 묻다 보니 답답하다 하시며 씨를 하려고 남긴 이삭을 들고 나오신다.

아~! 그래서 검은흐린조구나! 이게 검은개발시리조구나~!

 

 

시리는 ~처럼, ~같다는 뜻의 우리말이란다. 요즘은 이런 말도 안 쓰고 그런데 안완식 박사님이 넌지시 일러주셨다. 그러면 개발 닮은 조라는 뜻이라고 풀 수 있지 않을까? 정말 개발이다. 개발 닮았다. 우리네 조상은 풀이름을 그 생김이나 특성을 닮은 한마디로 지었다는 것이 새삼 생각난다. 뭐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어음리에서 만난 토종 농가. 결국은 맛과 습관으로 계속 토종 농사를 짓는다는 말을 들었다.

 

 

 

제주도에서 이렇게 많은 토종으로 농사짓는 집을 만나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농사지으시는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씨앗을 받아 놓으신 거며, 농기구며, 집짐승으로 보면 정말 제대로 찾아온 듯하다. 어디를 가서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날지 모르겠다.

여기서 그동안 보지도 못했던 대파니, 산두(밭벼)의 메벼와 찰벼니, 두줄보리(맥주보리), 메밀, 들깨, 시불콩(세벌콩) 두 가지, 백편두, 제비콩을 얻었다.

 

 

 

 

오늘은 씨를 조사하고 얻는 것을 그쳤지만, 앞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농사짓는 법을 하나하나 꼼꼼히 듣고 싶다. 그날이 올까? 굳이 내가 아니여도 좋은데... 꼭 다시 찾아가 뵙고 싶다.

 

 

다음 집을 찾으러 나가다 배추를 씻는 아주머니가 계신 걸 보고 차에서 내려 언제나 그렇듯 반갑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마침 아저씨도 계셔 슥 나오셔서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기네 집에 아쉽게 토종은 없으니, 혹시 모르니까 저쪽 할머니 집으로 가보자며 우리를 이끄신다. 오고 보니 아까 바로 그 집 바로 밑에 집이다.

이곳은 어음리 3039번지 이문자(84) 할머니 댁이다. 이제 홀로 집을 지키고 계신 듯하셨는데, 집 안은 깔끔하지만 집 밖은 미처 손이 다 가지 못한 느낌이다. 

 

이문자 할머니. 얼굴과 달리 고운 손을 보며 젊으셨을 땐 참 곱지 않으셨을까 생각했다. 

 

 

할머니는 시집 와서 계속 심었다는 고추를 꺼내 보여주셨다. 크기가 무척 작다. 이제와서 고추를 보니 맵지는 않을까 궁금하다. 더운 나라 고추일수록 크기가 작던데 크기는 작으면서 무지 매울 걸 보면 매운 정도가 응축이라도 되는 걸까? 할머니는 고추를 음력 3월이면 심는다고 하신다. 나는 씨로 심으면서 곡우 무렵에 심으니 그럼 음력 5월쯤일 텐데, 따뜻한 곳이어서 그런지 빠르긴 참 빠르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오래사신 만큼 집 안에도 오래된 물건들이 꽤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화로다. 변택호라고 써 놓은 화로는 내 기억 속의 그것과 달리 옹기 종류였다. 겉에는 페인트를 칠한 것인지, 아님 제주의 옹기가 원래 이런 색인 것인지 참 오묘했다. 아직도 불을 담아 쓰셔서 그런지 반질반질하게 보존상태가 참 좋다. 뭐든지 사람 손을 타지 않으면 뽀얗게 먼지가 앉다가 스러져 사라지는 법.

 

예전에 제주 허벅 전시회에 갔을 때 느꼈던 제주 특유의 옹기가 생각났다. 제주는 흙이 달라 그런지 옹기도 참 별나다. 

 

 

이제 어음리를 뜰 시간이 왔다. 또 다른 곳에 있을 토종을 만나러 가야 한다. 안완식 박사님은 못내 아쉬우신지 나중이라도 여기를 꼭 다시 한 번 들르고 싶다고 하신다. 박사님의 그 바람을 일단 뒤로하고 새로운 곳을 찾아나섰다. 아니 근데 나가다 보니 나중에 또 오더라도 이곳은 한 번 들러야겠다는 곳이 보였다. 다시 차에서 내려 그 집으로 찾아들어갔다.

 

어음리 2963번지 부창(70) 할아버지 댁. 더 많은 걸 기대했으나 할아버지께서 알고 계신 것만 꺼내서 보여주었다. 검은콩(쥐눈이콩)은 보통 것보다 크고 눈도 검다. 올해는 드물게 심었는데, 아무튼 많이 달린다고 하신다. 밥에 섞어 먹기도 하고, 그냥 갈아 콩국도 먹고 하는데, 콩나물은 안 된다. 6~7월쯤 늦게 심어도 빨리 익어서 좋다고 한다. 그 다음 백천이란 콩이다. 주남에 있던 것인데, 이건 그렇게 많지 않다. 이걸로 콩나물을 길러 먹는단다. 마지막으로 열 몇 살 때부터 심던 줄콩까지 얻었다.

 

부창 할아버지 댁의 맞은편 집. 형식은 제주의 옛날 집인데, 사람은 살지 않았다. 농막 정도로 쓰고 있었는데, 태극기를 꽂아 놓은 모습이 신기해 한 장 찍었다. 제주의 아픈 역사를 반영하는 것일까?

 

 

이제는 진짜 어음리를 떴다. 토종이 엄청났던 그 집. 아마 지금까지 제주도에서 최고가 아닐까 한다. 역시 두 내외분이 함께 농사를 지으시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남자나 여자 혼자 살면 그렇게까지 가지고 있기 어렵다는 걸 새삼 느꼈다.

 

다음으로 찾은 동네는 애월읍 납읍리라는 곳이다. 요즘 제주 올레길 걷는 것이 사람들에게 유행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 올레길을 제대로된 동네 골목길을 참 많이도 걸었다.

 

옛 올레. 사실 제주에서도 이제 이런 곳은 흔하지 않다. 차가 드나들기 좋게 시멘트로 바른 길이 더 많고 이런 길은 어쩌다 마주칠 뿐이다. 이 골목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떠오른다. 좁고 긴 구불거리는 골목, 그 옆으로 늘어선 낮은 담장. 이 길의 반대편에 있던 막다른 집에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살았다면 이 길은 사라졌을 게다.

 

 

그 올레의 한쪽에 있는 집에 들어갔다. 할머니가 얼마나 마당을 예쁘게 가꾸셨는지 모른다. 문 앞에 다가가 조심스레 사람을 찾으니 한 아주머니께서 나오신다. 이야기를 들으니 원래 이 집 주인은 방 안에 계신 할머니인데, 이제 나이가 많으셔서 거동이 편하지 않으시단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가 100세나 되셨다고 한다. 대신 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집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양계생(96) 할머니만큼 나이를 먹었을 집. 자식들은 다 뭍으로 나가 살고 할머니 혼자 집을 지키고 계셨다. 할머니마저 이곳을 떠나시면 집도 스러질 날이 오겠다. 앞에 분홍색 바가지를 올려놓은 곳이 물구덕에 물을 길어와 등에 져 나른 뒤 올려 놓는 곳이다. 땅에 내려놓다가 깨질 우려도 있고 힘도 더 드니 이런 구조가 나오지 않았을까 한다. 이곳을 물팡이라고 한다. 그리고 부엌에는 큰 물항아리를 두고 일상용수로 썼다.

 

언뜻 보기에도 여기저기 씨앗이 널려 있었다. 당뇨에 달여 먹으면 좋다고 하는 염주, 강낭 또는 태주부루기라고 불렀다는 옥수수, 차나룩(찰벼)이라 부르는 산디, 강낭깨라는 제주식 이름의 해바라기, 보리, 결명자 씨앗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세한 내력이나 설명은 할머니께서 방 안에 누워계셔 듣지 못했다. 그건 아쉽지만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방 안으로 남자 셋이 불쑥 들어가 휘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몸조리 잘하시라 밖에서 이야기만 드리고 집을 나왔다.

 

다음으로 간 집은 납읍리 1825번지의 양찬기(81) 할아버지 댁이다. 이 집에 오기 전 바로 앞집을 들렀는데 사람이 없었다. 그 집도 참 오래되어 보이는 번듯한 집이었다. 대문 바로 옆에 창고에 옛 물건들이 한가득 쌓여 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사진만 한 장 찍었다.

 

멍석이 엄청 많은 걸 보니 농사 규모가 꽤 크지 않았을까 짐작만 해 보았다. 천장에는 쟁기도 보인다. 꺼내 내려놓고 싶었지만 이것도 주인이 계시지 않아 구경만 하고 말았다.

 

 

아무튼 그래서 찾은 집이 양찬기 할아버지 댁이다. 안완식 박사님께서는 이곳에 와서도 예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셨다. "혹시 옛날부터 심던 배추 없어요?" 아니 그랬더니 여기서도 그게 있다며 따라오라신다. 할아버지를 따라 광으로 들어가니 선반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할아버지께서는 얼마 전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이제 홀로 남으셨다고 하신다. 그래서 씨앗은 자기 소관이 아니라 뭐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지만, 할머니가 보통 이 부근에 씨를 놓고 썼다며 뒤적이신다. 안타깝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대가 끊길지 모를 씨앗을 가져가 보존하고 퍼트릴 테니 다행이다.

이 배추는 옛날에는 국도 끓여 먹고 김장도 해 먹던 것이란다. 100년쯤 됐을 것이라 기억하시는데, 자기 할아버지 때부터 심었던 기억이 난다고 그러셨다. 그러면서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심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시는데, 그건 정확하지 않으니 일단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것으로 기록. 그것 말고 시금치와 무 씨앗도 얻었다. 사람은 가도 씨앗은 남았다. 이 씨앗도 지금에서 시간이 더 가면 사라지겠지만, 오늘은 우리가 가져가 보존할 수 있을 게다.

 

양찬기 할아버지 댁의 광에 있는 곳. 할머니가 살아 계셨으면 이곳에서 이런저런 씨앗이 많이도 나왔을 텐데...

 

 

이제 차를 타고 납읍리를 떠나 상가리로 향했다. 상가리에 들어서니 커다란 폭낭 한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제주도에서도 보호수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었다. 한참 뒤로 물러나 찍었는데도 카메라에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나무다. 이 나이의 나이는 놀라지 마시라. 무려 1000살을 추정하고 있단다. 1000살. 이 어마어마한 시간을 한자리에서 보냈다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 자체로 신이라 할 수밖에...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나무가 1000년을...

 

 

 

이 나무를 감상하고 앉아 있을 시간은 없어 사진에만 담고 동네를 돌기 시작했다. 이곳 1768번지 김창생(80) 할아버지 댁에 들어가 호박 하나를 얻고, 그 집 골목에 있던 피마자의 씨를 채집하고, 돌고 돌았으나 별 다른 것은 더 없었다. 상가리에서는 나무 구경 하나 잘했다. 1000년.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는지...

 

상가리에서 장전리로 가는 길에 허름한 집에 들렀다. 할머니께서 마침 어딜 다녀오셔 만날 수 있었다. 보관하고 계신 많은 씨를 보여주셨는데 특이한 것은 없어 수집하지는 않았다. 이곳을 나와 거문덕이라는 곳에 올라가다 피마자 하나를 수집했을 뿐.

 

 

상가리를 떠나 장전리로 접어들었다. 꾸물거리던 날씨는 부슬비로 바뀌었다. 날씨도 꾸물거리고 어음리 이후에는 마땅한 곳도 없고 지친다. 일단 차를 세우고 오줌이나 싸면서 쉬려고 내렸다. 그런데 밭에 무가 자라고 있는데, 이게 또 심상치 않은 것인가 보다. 안완식 박사님이 얼른 이 무밭 주인이 누구인지 주변 좀 수소문해 보라고 하신다. 박사님께서 기다리던 것을 만났나 보다.

 

 심상치 않은 크기의 무. 옛날 제주의 단지무라는 것이 있었다. 오강단지처럼 짧고 불룩한 생김인데, 제주 사람은 그걸 먹었단다. 지금은 사라져 복원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다니다 그걸 만나면 그 복원작업을 한결 손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을 게다.

 

그렇게 찾은 집이 장전리 전 이장을 하셨던 양성진 아저씨의 집이다. 농진청에도 몇 번 오간 적이 있다며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신다. 커피까지 한 잔 얻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수소문해 주셨다. 장전 197번지에 사는 강창하란 사람을 찾으라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 일러주셨다.

인사를 드리고 나와서 찾아갔는데, 길을 잘못 들어섰다. 인간 네비게이션의 실수. 그래서 유수암리라는 곳까지 올라갈 뻔했다. 유수암리는 이따 들르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왜 벌써 왔을까나. 다시 내려가 처음부터 짚어 나갔다.

근사하게 지은 양옥집을 가지신 강창하 씨 댁에 도착해 말씀드리니, 단지무는 아니고 장에서 사다가 심은 것인데 남은 씨가 감귤밭에 있다며 함께 가자신다. 감귤밭에 도착해 씨를 찾아오시는 동안 피마자와 들깨 씨를 채집했다. 이 들깨는 키가 2~2.5m는 되는 것이 뭘 먹고 이리 큰지 모르겠다. 율무도 있길래 얼른 씨를 챙겼다.

남은 무 씨를 들고 나오셨는데, 영광무라는 종류였다. 영광무... 이후 일정에서 자꾸 만날 이름인지 이때는 몰랐다. 이 무가 사진에 있는 것보다 더 불룩해져서 자꾸 우리를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장전리에서 볼일을 다 마치고, 아까 가려고 했던 유수암리로 향했다. 부슬비는 계속 내리고 사기는 떨어지고 해가 넘어갈 시간도 다가오고... 이제 오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유수암리는 생각보다 작은 동네였다. 중산간이라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사람은 별로 살지 않았다. 그나마 감귤이 집하장이 많아 더 그랬을지 모른다. 이곳에는 제주에서는 흔하지 않은 샘이 콸콸 나오는 곳이었다. 날이 을씨년스러워 그런가 맑은 날 보면 예쁘고 시원했을 샘이, 시커멓고 속을 알 수 없는 것이 무섭다. 물은 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뭐든 다 그렇지만 물이 성을 낼 때 보면 엄청 무섭다.

유수암리에서는 1939번지에서 강인자(67) 할머니를 만나 집 앞에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던 수수와 꼭두서니를 얻었다. 이것 말고는 다른 건 다 사다 먹거나 심는다고 하신다. 이 일대만 해도 감귤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이후 소길리로 갔다가 더 이상 다니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시고 차를 돌렸다. 소길리에 가서도 별 게 없었다. 비만 내리고... 해안 쪽으로 내려가 숙소를 잡고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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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9:24)에서 목포(12:20)로 KTX를 타고 가서,

목포(14:30)에서 배로 제주도(19:20)로.

자전거대여소에 가서 자전거를 빌려, 아라동 근처에서 숙박.

 

다음날 관음사에 들렀다가 5.16 도로를 타고 서귀포로,

서귀포에서 하루 묵으며 주변 구경.

 

다시 자전거에 올라 제주시 쪽을 향하여 갈 수 있는 데까지 가기.

가다가 숙박.

 

제주에 늦어도 12시까지는 도착하여 자전거 반납과 점심을 해결하고,

14:45분 비행기로 김포로 돌아오기.

 

 

예상 소요 경비

 

차비

KTX-선박 연계 2인 10,5000원

제주-김포 아시아나 2인 10,5000원

합계 : 21,0000원

 

식비

10끼x6000원x2 = 12,0000원

 

숙박비

3일x4,0000 = 12,0000원

 

자전거 대여료 3,0000원

 

기타 10,0000원

 

총 60여 만 원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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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며 찾은 곳은 한림읍 명월리.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우고는 또 동네 조사에 들어갔다. 마을회관 바로 앞에 있는 집에서 한 할망을 만났으나, 뭍에 살다가 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자신의 집에는 토종이 없단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도 시멘트를 깔끔히 발라 놓으신 걸 보니 그렇기도 하겠다.

그렇다고 아무 성과도 없이 이 동네를 뜨기가 뭐하여 다시 이 집 저 집 기웃거렸다. 돌담을 따라 들어선 골목에서 검은 동부가 자라다 말라비틀어진 것을 발견했다. 다시 한 번 채집에 들어갔다. 검은 동부를 한참 따다 보니 이건 동부만 있는 게 아니다. 새팥으로 의심되는 것과 돌동부도 자라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성과도 없으니 이것 모두 채집 대상이 되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돌담을 따라 집으로도 찾아들어갔다. 마당에 서서 사람을 찾으니 문이 왈칵 열린다. 할머니께서 쪽파를 다듬어 장에 내려고 일하고 계셨다.

 

 한림읍 명월리 양귀순(80) 할머니의 쪽파밭 한 귀퉁이에 있는 바위에 캐다 만 고구마와 골갱이가 놓여 있다. 제주에서는 호미를 골갱이라 부르고, 낫을 호미라 한다. 골갱이는 골을 파는 괭이라는 뜻이 아닐까? 돌이 많은 제주의 밭에서 귀가 넓은 호미를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할머니께 토종을 찾으러 다닌다고 바쁘시더라도 잠깐 씨앗 좀 보여주실 수 없냐고 부탁드렸다. 흙 묻은 손을 탁탁 털며 일어나시더니 굽은 허리로 우리를 창고로 이끄신다. 이것저것 꺼내서 주셨는데 오래 묵어 못 쓰는 것이 많았다. 이제 기력도 딸리시고 농사일도 많아 세심하게 챙기시기 어려우신가 보다. 하루방도 없는 듯한데 혼자서 고생이 많으신 듯하여 마음이 짠하다. 동네 할머니한테 빌어 왔다는 3년 심은 청상추를 하나 얻은 뒤 이거라도 먹으라고 주시는 곶감으로 허기를 달래며 헤어졌다.

 

꽁꽁 싸매 놓은 씨앗을 꺼내고 계신 양귀순 할머니. 소쿠리에 담겨 있는 곶감은 잠시 뒤 우리의 입속으로 낼름 들어갔다. 

 

 

다시 차에 올라 명월리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채집하는 일을 잊지 않고 새콩과 나물콩을 챙겼다. 제주에서는 눈에 띄면 일단 모은다. 토종을 찾기가 강화도보다 어렵다. 땅은 넓지만 사람도 마을도 드물고, 게다가 자연조건 탓인지 씨앗도 잘 챙겨 두지 않으셔서 더 그렇다.

 

 여기저기 헤매다 만나 나무에 달린 열매. 뭐라고 일러주셨건만 또 까먹어 버렸다. 열매가 너무 예뻐서 한 장 찍었는데... 

 

 

명월리 상동이란 곳에 사시는 고지옥(76) 할망을 찾은 건 해가 기울어가는 때였다. 이제 오늘 하루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할망은 안 그래도 저녁을 준비하시는 듯하다. 잠시 다른 데 정신 팔려 늦게 온 사이에 안완식 박사님이 고추며 방아풀 씨를 얻으셨다. 고추는 계속 받아서 심고 있다고 하시는데, 정말 작다.

 

고지옥 할머니 댁의 고추. 크기가 아주 작고, 작은 대신인지 아주 맵다. 입에서 불이 날 정도로. 그나저나 12월 말에 이런 고추를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고지옥 할머니. 어두워지고 있던 때라 사진도 어둡기만 하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별로 춥지 않았으나, 연세도 있으시고 하여 추위를 막으려고 두텁게 입으셨다.

 

보틀브러쉬나무의 꽃. 우리말로는 그대로 병솔나무란다. 이건 하도 특이해서 까먹지 않았다.

 

 

잠시도 지체할 틈 없이 다시 상명리로 날아갔다. 시간이 천금이다. 상명리 872번지에 사시는 강순옥(71) 할머니 댁에서 기름 짜 먹는 유채와 속이 안 차고 국거리나 김치로 먹는다는 호배추를 얻었다. 할머니는 낮잠을 주무셨는지 한참을 불러서 만날 수 있었다. 끈덕지고 큰 소리로 부르지 않았으면 못 만날 뻔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만나야 하느니 만큼 일단 뻔뻔해야 한다. 또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

 

강순옥 할머니의 옆집에는 양공표, 조유선 어르신이 사신다. 양공표는 강순옥 할머니의 남편의 동생이라고 하신다. 강순옥 할머니 댁에 들어가며 두 집 문패의 이름이 비슷해 혹시나 하고 물었더니 역시나 형제 사이란다.  

 

 강순옥 할머니 댁에서 만난 의자. 무릎이 안 좋아서 이걸 허리에 차고 밭에 철푸덕 퍼질러 앉아서 일하신다. 안에는 스티로폼이 들었다.

 

 

상명리는 오늘의 최종 목적지다. 다른 데를 가고 싶어도 이제 해가 지기에 그럴 수도 없다. 마지막 힘을 내 이 동네를 샅샅이 뒤진다. 그렇게 1771번지에 사시는 강계춘(77) 할망 댁에 들어갔다.

강계춘 할머니 댁 마당 한켠에 쌓여 있는 짚가리. 이걸 소를 먹인다고 한다. 

 

 

해질녘에 만나는 분들은 늘 그렇듯 일단 마음의 문을 좀 닫고 계신다. 날씨에 따라서도 그렇지만 시간에 따라서도 사람을 반기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하긴 한밤중에 누가 찾아오면 나라도 문부터 닫아 걸겠다. 그것이 인지상정. 할머니께 여기까지 찾아온 사정을 말씀드리고 옛날부터 심던 씨앗이 있냐고 여쭈었다. 그러니 보리콩이 하나 나왔다. 여타의 것은 더 묻지 않고 이 정도로 마치고 나왔다. 나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네를 더 둘러보다가 담벼락에서 지름콩(콩나물콩)을 찾았다. 콩을 털고 쌓아 놓은 콩가리에서 떨어진 것들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다시 한 번 채집 활동에 들어갔다.

 

오늘 하루는 채집의 연속. 

 

이것으로 오늘의 일을 마치고 대정여성농민회의 김정임 선생님을 기다렸다. 오늘은 잠깐 만나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삼십 분 뒤에 만나 한림읍으로 나갔다. 숙소를 잡기 전 저녁을 먹으며 그동안 지나온 사정과 수집한 토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주도에서는 원래 푸른콩으로 장을 담그고, 노란콩은 소를 먹였다고 한다.

대문에 걸쳐 놓는 나무는 정낭이라고 하는데, 쭉쭉 뻗은 숫대나무(편백)나 삼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이걸 세 개 다 걸쳐 놓으면 멀리 갔다는 뜻이고, 셋 다 내려놓으면 집에 있음, 하나만 내려 놓으면 옆집이나 근처에 있으니 좀 기다리든가 하라는 뜻, 두 개만 내려놓으면 마을 어딘가에 있으니 찾아오든지 하라는 뜻이란다. 도둑이 생겨도 목숨 걸고 섬을 빠져나가지 않는 이상 어디서든 잡을 수 있을 테니 이렇게 경계가 허술(?)했겠지. 요즘처럼 몇 개씩 보안장치를 하고도 불안해 하는 세상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풍속이다. 과연 세상이 살기 좋아진 건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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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0일 토요일. 날씨는 흐리고 바람에는 물기가 물씬 묻어 있다. 그러나 날은 따뜻하다. 간밤에 잔 모텔에서 나와 아침을 먹었다. 제주도에는 모텔이 여관 수준인 것에 놀랐다. 다니면서 알았는데 여기는 관광지라서 그런지 극과 극이다. 좀 괜찮아 보인다 싶은 곳은 어김없이 관광단지이며 값이 무척 비싸다. 그렇지 않은 곳은 시골 같은 분위기... 제주도라고 하면 신혼여행 같은 것만 떠올라서 그런지 시설이 좋을지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아침을 먹고 제주도 이틀째 조사에 나섰다. 여기는 밭도 참 다르다. 밭마다 돌담을 낮게나마 둘러친 모습이 이색적이다. 이것도 다 바람 때문일까?

 

 제주도의 마늘밭. 스프링쿨러로 마늘에 아침밥을 주고 있다.

 

 

차를 타고 지나다 큰 창고에 사람들이 모여 있어 무슨 정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가보았다. 이야기를 나누니 이곳이 바로 대정읍 친환경농업연구회라고 한다. 헌데 친환경농업연구회라고 이름을 걸었지만 속사정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그분들이 그동안 고민한 문제가 양파, 마늘, 감자의 무름병이었는데, 광어 양식장에서 항생제로 쓰는 Dapsone이란 약이 거기에 잘 듣는다며 이게 어떤 효과와 부작용이 있는지 연구 좀 해달라고 부탁하신다. 그러면서 토종만 찾을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재배해서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걸 꼭 찾아달라고 거듭 당부하신다. 이야기를 들으며 맞는 말이긴 한데 웬지 씁쓸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기왕 찾아온 곳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왜 제주도의 무덤에는 돌을 둘러 놓았는지... 대답은 이러했다. 무덤을 쓰려고 땅을 파면 돌이 많이 나오기도 하고, 또 마소를 놓아기르다 보니 무덤을 해할 수도 있어 일부러 돌을 둘러 놓았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어제 조사를 하던 곳으로 차를 향했다. 동네를 돌다가 사람이 있다고 표시된 대문을 찾아들어갔다.

 

대문이 이러면 멀리 나갔으니 다음에 오라는 뜻. 참 편하다. 도둑이 없어서 이런 것도 가능했겠지.

 

 

들어가 누가 계신지 소리 높여 불렀다. 인기척이 들리더니 할머니 한 분이 문을 열고 내다보신다. 그러고는 홀로 집을 지키고 계신 할머니가 한 분 나오셨다. 올해 87살이 되셨다는 할머니는 틀니가 아니면 말도 제대로 못한다며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겨워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식을 11명이나 나으셨다고 한다. 자식 하나만 낳아도 폭삭 늙는 것이 느껴질 텐데 이 척박한 곳에서 자식을 건사하려고 얼마나 뼛골 빠지게 일하셨을지 생각만 해도 대단하시다. 할머니는 귀도 좀 어두우셔서 말소리를 잘 못 알아들으셨다.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귀가 어두우신 만큼 표준어에 오염이 덜 되셔서 도무지 하시는 말씀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냥 인사만 드리고 돌아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거동도 불편하신 할머니. 하지만 할머니 뒤로 보이는 반들반들한 마루바닥이며 깔끔히 정리된 집 안에서 할머니가 살아오신 삶을 짐작할 수 있다. 묵호가 외가였던 내 기억 속의 할머니도 이러하셨다.

 

 

다시 다음 집을 찾아나섰다. 입구부터 예쁘게 정리된 집을 찾아서 무턱대고 들어갔다. 그동안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이런 곳이 뭐가 있어도 있다. 무턱대고 들어가 사람부터 찾았다. "할머니~. 누구 계세요~" 그렇게 이곳에서 이인옥(70)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여기 대정읍 무릉리 인향동으로 시집을 와 지금까지 살고 계신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집도 많이 손을 보았지만 그거야 사람 사는 곳은 다 그런 것. 옛날 방식대로 고집하며 사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핸드폰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없으면 난 편하지만 다른 사람이 불편해 한다는 사실.

 

이인옥 할머니. 첫 집에서 생각치도 않은 성과에 안완식 박사님은 정말 좋아하셨다. 정말 이럴지는 몰랐다. 

 

 

찾아온 연유를 말씀드리고 대뜸 텃밭에 보이는 배추부터 여쭈었다. "할머니 텃밭에 배추는 옛날부터 심던 게 아닌가요?" 역시나 그건 통이 앉는 토종이란다. 어제 나쁜 걸 뿌렸다며 그래도 잘 자라 다행이란다. 여기서는 5월에 씨를 걷는다고 하신다.

 

 이인옥 할머니 댁의 토종 배추. 이것들도 크게 두세 가지 종류로 갈리었다. 할머니는 따로 구분하지 않고 씨를 받아 그대로 뿌려 걷어 먹는다고 하신다.

 

 

배추 말고도 30대부터 심으셨다는 팥도 얻었다. 이건 알이 굵고, 6월에 심어 10월에 거두는 중생종이다. 또 늦깨(참깨)도 있었는데, 키가 크고 10월에 거둔단다. 드물면 가지가 많이 뻗고, 너무 배면 바짝 올라간다. 6개씩 달리는 육모깨라 수확이 많다. 원래 제때 심으면 흰색인데 늦게 갈아서 연갈색으로 보인다.

 

 이인옥 할머니 댁 마당에 자라던 동백의 하나. 안완식 박사님께서 제주에 있는 동안 몇 번이나 알려주셨지만 까먹었다.

 

 

 동네 말미에서 우영을 둘러보는 할망을 보았다. 보리콩이 자라고 있어 씨 남은 거 없냐고 여쭈니 씨가 왜 남냐며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신다. 제주는 날씨가 따뜻해서 그럴까? 씨를 남겨 놓지 않는다. 갓 같은 건 그냥 한 번 뿌리면 그 자리에서 계속 자라기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씨를 받아야 할 필요를 못 느끼니 씨를 받는 일도, 씨를 남겨 놓지도 않는가 보다. 남으면 남 주거나 버린다는 여든넷 되신 할망의 말에 그런 걸 느꼈다. 이건 토종과 상관 없지만 제주도에서는 진자리콩 깍(꼬투리)이나 쫄멩이(쭉정이)는 멀먹이(말)라고 하신다. 제주에서는 말이 밭갈이, 물건 나르기, 밭 밟기에 중요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심고 남으면 남 주거나 버린다는 할망. 거동이 불편하셨지만 부지런히 밭을 돌보신다. 보리콩 밭에 깔아 놓은 짚풀이 눈에 띈다. 왜 이렇게 깔아 놓으셨는지 묻는 걸 씨에 정신이 팔려 놓쳤다는 걸 다시 사진을 보니 알겠다. 

 

 

제주의 특산 콩 준지리(준자리, 진자리)콩. 이 콩의 이름은 알이 잘다는 뜻인 듯하다. 제주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며 그 긴 세월을 함께 해 왔다.

 

동네를 나와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차를 타고 가다 어지간한 집이 보이면 무조건 내려서 하나하나 찾아갔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그런데 다니면서 보니 한 나무 종류가 유난히 눈에 띈다. 무슨 나무일까? 지나가는 할망에게 물었다.

"할머니, 저게 무슨 나무예요?"

"잉?"

"저 나무요, 나무 이름이요."

"저기 폭낭이지."

아, 저 나무가 바로 제주도의 정자수 폭낭이구나. 뭍의 말로 옮기면 팽나무다. 제주도에는 뭍의 느티나무만큼 팽나무가 많다. 오히려 느티나무는 별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다. 팽나무가 따뜻한 곳에서 더 잘 자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폭낭, 곧 팽나무의 존재를 처음으로 깨닫게 한 나무. 여름에 얼마나 시원할까? 이번 여름에 다시 제주도에 가 팽나무의 그늘에서 시원하게 바람을 쐬고 싶다. 

 

제주의 겨울이 얼마나 따뜻한지 여기서는 10도 이하로만 떨어지면 춥다고 난리가 난단다. 영하로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만 되어도 내복을 입고 한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열대 지방에서는 그 정도로 기온이 떨어지면 얼어죽는 사람도 있다니, 인간의 기온적응력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은가 보다. 아무튼 따뜻한 날씨 덕에 예쁜 수선화 한송이를 보았다. 이 겨울에 꽃을 볼 수 있다는 데, 또 수선화의 예쁜 모습에 '이야~'라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이 겨울에 비닐하우스도 아니고 무슨 조화일까? 제주 사람은 사시사철 꽃을 보고 산다. 그래서 도둑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제주는 식수 때문에 바닷가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연못이나 샘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땅은 넓지만 마을은 드문드문하다. 처음 제주도 지도를 펼쳐보고는 이 넓은 땅을 2주 만에 돌아다닐 수나 있을까 막막했는데, 막상 와서 하루 지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 쪽으로는 한 작물만 싸그리 심는 농사가 대부분이니 빼고, 중산간이라는 곳으로 다녀야 하는데 이곳에는 마을이 드문드문 모여 있으니 찾아갈 곳도 그리 많지 않을 뿐더러 거기만 가면 쉽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다음으로 찾은 마을은 한경면의 조수리라는 곳이다. 특히 불그못이라 부른다는 동네다. 불그못, '불그'가 붉다는 뜻인지 무엇인지는 몰라도 '못'은 확실히 물이 있다는 뜻이다. 전형적인 제주의 마을이니 옛날부터 심던 무엇인가 있을지도 모른다.

마을을 한참 뒤지고 다니다가 가장 안쪽에 있는 집을 찾았다. 이계욱(80), 강정팔(81) 어르신께서 사시는 집이다. 할머니는 성함만큼 성격이 할아버지보다 괄괄하시다. 집안의 주도권을 할머니가 쥐고 있는 듯한 목소리로 우리를 영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할아버지께서 꼼꼼하고 세심하게 우리를 맞아주신다. 남녀의 역할이 바뀐 듯한 모습 또한 새롭다. 이것도 제주도의 특징일까?

 

이계욱 할아버지. 집 구석구석에서 씨를 꺼내와 하나하나 보여주시며 나눠주기까지 하셨다.

 

 

들깨는 5월쯤 심는다는데, 오래 한 80년 됐단다. 그러니까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계속 심는 것이다. 너물이라 부르는 배추는 20년이나 되었고, 참깨도 80년 넘어 90년이나 되어 간다고 한다. 그 순간 우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하시던 할망이 한마디를 날리신다. "새로 나온 씨가 좋은 거지." 케케 묵은 걸 뭐하러 찾아다니는지 이상하신가 보다. 또 까망콩과 팥도 얻었다.

무 씨는 없냐는 물음에 할아버지께서는 "봄 나면 무, 배추 씨 세워야지"라고 답하셨다. 다음에 와서 또 씨를 얻을 수 있도록 두 분께서 건강히 잘 계셨으면 좋겠다.

 

이제 다시 차에 올라 다음 마을로 향했다. 이번에 갈 곳은 낙천리다. 낙천리의 중심부, 관청이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여기는 널찍한 못이 하나 있었다. 제주에서는 다음과 같은 공식이 성립하겠다. "물이 있는 곳 = 사람이 모이는 곳 = 짐승도 모이는 곳" 연못 주변에는 멧돼지 석상을 가져다 놓았다. 연못 옆에 있는 설명문을 읽어보니 멧돼지들도 와서 물을 먹고 돌아가던 곳이란다. 지금은 상수도 시설이 놓여 별 쓸모가 없지만, 그렇지 않던 시절에는 정말 뭇 생명을 떠받쳐주는 생명수였으리라. 요즘은 정말 물 귀한 줄 모르고 펑펑 쓰는 경향이 있다. 특히 위생 관념이 철저해질수록 더욱 그렇다. 젊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줄 아는데, "물 귀한 줄 알아 이것들아!"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멧돼지의 모습이, 뭇 생명을 품에 안고 길렀을 이 연못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하다. 저 왼쪽 뒤로는 마을 나무로 서 있는 폭낭이 보인다.

 

 

이곳 낙천리 1805번지 사시는 문대숙(87) 할머니 댁에 들렀다. 연세가 있으신 만큼 뒤란에 조그만 우영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옛날부터 심던 콩 같은 거 없는지 여쭈었다. 그러니 약콩이라며 콩 봉지를 하나 가지고 나오신다. 큰 알고 작은 알 두 가지가 섞인 듯했는데, 오라방 네에서 얻어온 것으로 속이 누렇다고 한다. 오라방 네에서는 20년 이상 심던 것이라니 일단 조금이지만 얻었다. 다른 건 별 거 없으니 여기 아랫집에 가보라고, 거기도 내가 나눠줘서 있을 테니 한 번 가보라고 하신다. 얼른 인사를 드리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약콩을 설명해 주고 계신 문대숙 할머니. 

 

 

아랫집에는 김을선(76) 할머니가 한창 메주를 쑤려고 콩을 삶고 계셨다. 콩 삶는 냄새에 군침이 돌았지만 염치없이 얻어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김을선 할머니에게 콩 이야기를 꺼냈다. 할머니의 며느리는 충북 음성 사람인데, 한번은 사돈댁에 가니 검은콩이 비싼 걸 보고 1홉 1만 원이나 주고 사왔다고 하신다. 그 콩은 뭍에서도 구할 수 있으니 일단 지나가고, 다른 콩이 더 있는지 여쭈었다.

윗집 할머니 말씀처럼 역시 이 집에도 약콩이 있었다. 작은 알은 아주 빠르다는 특징이 있고, 큰 알은 또 동그란 것이 있고 납짝한 게 있다. 동그란 건 속이 파랗고 늦은 반면, 납짝한 건 속이 노랗고 한 10일 빠르단다. 콩만 보고도 쪽집게처럼 딱딱 알아내시며 그 특성을 읊으시는데, 농민에게 묻고 배워야 한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이것 말고도 중간 크기의 참팥을 얻고, 마당에서는 요즘 제초제 때문에 보기 힘들다는 댑싸리도 씨를 받았다.  

 

김을선 할머니. 우리를 상대하랴 메주에 신경을 쓰랴 정신없이 바쁘셨다. 귀한 시간을 쪼개 주셔서 참 고맙다. 

 

 

아, 배가 고프다. 밥 때를 놓치면 한도 끝도 없기에 어디 마땅한 식당이 있으면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서는 밥집을 찾는 일도 쉽지 않다. 관광지에 가면 음식점이 끝도 없지만 관광지만 벗어나면 어쩌다 하나씩 볼 수 있을 뿐이다. 어찌어찌 뱅뱅 돌다가 저청초등학교 앞에 있는 칼국수 집에서 맛나게 먹었다.

배를 불리니 나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잠시 소화도 시킬 겸 초등학교를 둘러보았다. 입구 쪽에서는 연자방아를 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이것만 보고 무엇인지 알까 싶었지만 그래도 이런 걸 가져다 놓은 게 어디랴. 혹시 원래 여기가 방앗간 자리인지는 사람이 없어 물어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다칠까봐 그랬겠지만 시멘트로 움직이지 않게 꽁꽁 발라 놓은 모습이 꼭 우리 옛 문화의 현주소를 반영하는 듯하다. 박물관이나 체험학습에서 겪는 우리 문화는 모두 죽어 있다.

 

 저청초등학교의 연자방아. 이 앞에는 역대 교장선생님 공덕비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제주도는 기념비가 참 많다.

 

 

차에 올라 한참을 다녔지만 별 성과가 없다. 몸은 나른하고, 성과는 없어 기운 빠지고, 중간에 조수교회에 들러 마당에서 부용 씨를 채집한 것이 다다. 그리고 조수1리의 어느 길가에서 까만동부,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물으니 깜장돔비콩이라 부른다는 동부를 채집했다. 이건 알이 아주 작았다. 그리고 한림읍 동명리 202번지에 사시는 오씨 할머니(94) 댁 담장에서 자라고 있던 부추의 씨를 채집했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만나도 씨가 없다보니 어쩔 수 없이 채집에 나섰다. 이거 토종 수집단이 아니라 토종 채집단으로 이름을 바꿔야겠다.

 

계속

 

 

 지나는 길에 어느 밭에서 찍은 브로콜리 꽃. 제주도가 따뜻하기에 볼 수 있는 귀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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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귀한 제주에서는 빗물도 그냥 버리지 않았다.

사진처럼 나무에 짚을 묶어 그것을 타고 빗물이 항아리에 모이도록 한 것을 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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