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정년이 없는 직업 농부. 영국 BBC에서 그러한 주제로 영국의 노농들과 인터뷰를 한 기사가 실렸다. 왜 농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은퇴라는 것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을까? 엑스터대학 연구원의 말처럼 생활 자체가 일이고, 일 자체가 생활이기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힘이 다하는 때까지, 자신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하여 몸을 놀리고 일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농부일 것이다. 산업사회의 여타 직업의 전형과는 다른, 이해할 수 없는 직업군이 되고 있는 농부... 우리의 노농들이 이 땅을 모두 떠나기 전에 그들과 만나 그들의  삶과 농사에 대한 지식을 정리하고 싶은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기도 하다.  



http://www.bbc.co.uk/news/magazine-17537153


Elwyn, Nancy and Ceredig Williams at their farm in Wales

웨일즈의 농장에서 Elwyn와 Nancy, Ceredig Williams

    국가와 기업 연금에 대한 변화와 함께 은퇴로 가는 길이 길어지고 있다. 그러나 농업에서 많은 남성과 여성은 이미 70대, 심지어 80대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Elwyn Williams는 74세, 그의 형 Ceredig는 85세, 그리고 그의 누나 Nancy는 89세인데, Rhiwlug 농장에 함께 살며 서웨일즈  Ceredigion에서 Llandysul 근처의 다른 두 농장을 운영한다.

형 Williams는 날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가축을 돌보는 한편, 그들의 누나는 여전히 버터를 손수 만든다.

"내 형은 송아지를 먹이고 나는 소 두 마리에서 젖을 짠 뒤, 우린 소들을 먹이러 나가기 전에 아침을 먹고, 양을 보고 울타리를 친다"고 Elwyn 씨는 말한다.

"우린 아마 오후 6시 반이나 7시에 일을 끝낸다. 때로는 소나 양의 어려운 분만이 있고, 그래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도 있다."

Williams 남매의 세 농장은 총 147헥타르에 달하고, 가업으로 그들의 아버지가 1937년에 시작했다.

그들의 자식들은 농장을 떠났고, 은퇴 계획이 없으며, 두 형제와 누나는 그들이 할 수 있을 때까지 일을 할 것이다. 

"이 세상은 동물 없이 텅 빌 것이고 나는 그들과 일하는 게 즐겁다"고 Elwyn 씨는 말한다. "나는 아이처럼 그들을 돌보고, 또 그렇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성격이 있다."


Iain MacDonald, 80, still works on a holding near Staffin on Skye

치아를 넣는 걸 잊는 것은 직업병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영국의 가장 늙은 농민은 그냥 있다. 

80세의 Iain MacDonald 씨는 양을 모아들여 Skye 언덕으로 몰고갔다가 자신의 틀니를 집에 놓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치아 없이 그는 그의 양치기 개에게 휘파람으로 명령을 내릴 수 없다. 

농민의 연령

  • 영국 농장의 58%는 55세 이상이 소유
  • 그리고 유럽연합 통계로 보면 35세 이하가 소유한 곳은 3%
  • 영국 농장 소유자의 평균연령은 58세
  • 2004년 연구는 농민의 7%가 은퇴하길 바라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
  • 절반은 재정적 이유를 들고 1/3은 삶을 즐긴다고 답변
  • 65세 이상의 은퇴 계획이 없는 대다수는 자신이 그렇게 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라 답변

개와 양이 올바른 방향 외의 사방으로 흩어졌다. 곤란해진 Iain 씨는 그의 틀니를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모든 수를 썼지만 내가 바라는 대로 개를 어떻게 하지 못했다."

젊은 시절 빨간머리가 하얗게 된 빠르게 웃는 강건한 남자인 그는 단호히 자신의 60헥타르의 땅에서 생활하기로 하며 남았다. 지난해 12월 아내 Katie 씨가 죽은 Iain 씨가 "내가 뭘 할 수 있겠어?"라고 말한다. "내 힘이 다하는 순간 멈출 거야."

30년 동안 그는 또한 등대의 전원인 가스계량기를 확인하고자 작은 배로 2시간을 왕복했다. 가스계량기는 현재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너무 귀찮은 일이 되기 전까지 Iain 씨는 2차 세계대전 때도 공격용 배에 양떼를 태우고 목초지가 좋은 작은 섬으로 건너갔다. 

그의 소들은 여전히 1월과 10월의 썰물 동안 그 작은 섬으로 헤엄쳐간다. 그가 예전에는 동물들과 헤엄쳐 갔지만, 지금은 몇몇 친구와 배를 타고 간다. Iain 씨는 목초지를 찾아 가축을 헤엄치게 하는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농부다.

Iain MacDonald 씨의 소들은 여전히 섬의 목초지로 헤엄쳐 간다


스코틀랜드 농업대학 연구에 따르면, 고지대와 섬의 1/4 이상 -29%- 의 농민이 65세 이상이고, 그 농촌 지역에서 가장 큰 비율이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본토의 Skye부터 바다까지 통계 너머의 또 다른 특성이 있다. 87세의 Farquhar MacBeath 씨는 그의 아내 Mary 씨와 함께 Gleann Beag에서 한참을 달려 좁은 길 끝의 작은 농장에서 산다.

Skye에서 Glenelg의 거주지 근처와 그 흰색으로 칠해진 집은 작은 카페리 Glenachulish에 타고 Kylerhea 해협을 잠깐 건너면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이 40년 된 배는 스코틀랜드에서 수동으로 조작하는 마지막 페리인데, 4월에서 10월 중순까지만 운행한다. 

Farquhar MacBeath전 특공대원 Farquhar MacBeath, 87

1년의 나머지는 영국에서 가장 높은 산을 지나는 길의 하나인 Bealach Ratagan을 넘는 1000피트 이상을 오르는 구불구불한 1차선 도로말고 대안이 없다. 

Gleann Beag에서 내려오면 철기시대 농민의 요새 같은 석조 농장인 Dun Telve와 Dun Troddan이 서 있다. 이러한 원뿔형 집이나 원탑의 또 다른 파편이 MacBeaths 씨의 집 너머 가파르게 솟아 있는 언덕 아래 놓여 있다.

작은 농장에서 태어난 Farquhar 씨는 2차 세계대전 동안 네덜란드, 독일, 극동 지역에 특공대로 나서라고 소집되기 전에 연어낚시에 종사했다. 그는 상선에서 그만둔 뒤인 1965년 집으로 돌아왔고, 2년 뒤 자신의 작은 농장을 구했다. 

"나는 아직도 때때로 일한다. 4륜 오토바이를 타고 양들을 둘러본다. 나는 어떠한 힘든 일도 하지 않고 아내의 조카가 그걸 한다. 그러나 나는 책을 쓰고 있다. 그것이 현재 내 직업이다."

Farquhar 씨는 그 지역의 농업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1962년 이 지역에는 200마리 이상의 소가 있었다. 지금은 그 반 정도만 있고 매우 적은 수의 양이 있다. 첫해에 내가 여기 왔을 때 700마리 이상의 양이 배(트럭)으로 Norfolk에 보내졌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그걸 말 운송용 화차에 실고 있다."

왜 농민이 은퇴하지 않는가?

"농업은 괴상한 연령구조를 갖는 걸로 유명하다"고 Exeter대학의 농촌정책연구센터 Matt Lobley 박사는 말한다. 

"어떤 다른 직업과 달리 어떠한 사람의 생활과 전체 성격 사이에 많은 구분이 없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밖으로 나가고 농장을 둘러보고 그들의 노동이 풍경에 아로새겨 놓은 생산물을 볼 수 있다 -벽, 울타리, 농지의 형태.

"그들이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그만둘 때를 직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있다.

"이러한 농민들은 또한 사회적으로 지역사회에 깊이 속해 있고, 그들은 땅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개별 농지의 미기후를 이해한다 -서리나 홍수의 피해를 방지하도록 준비하게 하는. 그러한 지식은 종종 과소평가되고, 심지어 농민 스스로도 그러하다."

스코틀랜드 섬의 71세 Ena MacDonald 씨는 작은 농장에서 그녀의 거의 모든 삶을 보냈다.

그녀는 machair -헤브리데스에서 발견된 해안 야생화 초원- 에서 자랐고 젊은 여성일 때 집을 떠났다. 처음 그녀는 10년 동안 Glasgow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일했다.

"내가 1966년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농장을 도우려는 마음이었다"고 Ena 씨는 말한다. "난 모든 일을 도왔다 -숯 벌목부터 수확까지. 나는 또한 채소를 기르고 그걸 내다팔아 돈도 좀 벌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농장을 이어받았고, 이후 아들 Angus 씨에게 넘겼다. 가족의 주요 관심은 300마리의 고지대 소이다.

그녀는 종종 아들을 옆에 앉히고 그녀의 금발머리를 뒤로 묶어 내리고서 아버지의 작은 빨간 트랙터에 타고 운전하던 모습을 떠올린다. 

"당시 여자가 트랙터를 운전하는 건 사람들에게 신기한 일이었다"고 Ena 씨는 말한다. "어려운 때도 있었고 좋았던 때도 있었다. 그 일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한다면 당장 해라. 그것이 네 피를 끓게 하는 일이다."

우호적인 경쟁자를 지닌 79세의  Roddy MacKerlich 씨는 Lochalsh의 Drumbuie에서 자신의 농장에 관심이 있다. 많은 스코틀랜드의 농장주처럼 직업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땅에서 일고 있다.

그는 15세에 전보 소년이었고, 40년 뒤 Skye와 Lochalsh의 왕립 우편배달 관리자로 은퇴했다.

Ena MacDonald with one of her animalsEna MacDonald(71) 씨는 North Uist의 농장에서 활동적인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해마다 Roddy와 동갑인 그의 아내 Kathleen 씨는 73m에 달하는 3~4두둑에 감자를 심는다.

8일에 걸쳐 손으로 작물을 수확하는데, grape -감자 캐는 농기구- 를 사용하여 땅속에서 감자를 캐고 난 뒤 바구니에 담는 일까지 포함된다. 

Roddy 씨는 그 일이 자신을 움직이게 하고 또한 자신은 도전을 좋아한다고 한다. 

"가장 큰 순무를 기르는 대회에서 한두 번 우승도 했다. 그와 같은 경쟁은 농촌 마을의 활력이다."

자신의 동생이 근처 농장에서 일하는데, 그것이 경쟁의 작은 원인이 된다고 Roddy 씨는 말한다. 

그의 동생 75세 Ian 씨는 근처 다른 농장에서 일한다. "그것도 

웨일즈로 돌아온 -농민의 64%가 55세 이상인- 72세의 Tegid Williams 씨와 그의 아내 68세 Olwen 씨는 1960년부터 Conwy Valley에서 낙농 농장을 운영한다. 

처음에는 그들이 몇 마리의 소에서 손으로 젖을 짜다가 지금은 우유 짜는 기계를 사고 젖소의 수도 80마리로 불었다. 오늘날 그들은 40마리의 Jersey 소가 있고, 그 가운데 20마리에서 매일 젖을 짠다.

"소들의 일부는 17~18살이고 모두 함께 자랐다"고 Tegid 씨는 말한다. "내가 일하는 데에 유일한 차이는 지금은 좀 느리고 일하는 데 시간이 좀더 걸린다는 것이지만, 트랙터를 사용하여 ㅅ를 먹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부부는 늙어서도 계속 농사를 지으려고 계획하고 있다. 그들은 두 딸이 다른 직업을 갖도록 했다. 하나는 간호사이고, 하나는 강사이다. 

"나는 현재 내가 자고 있는 똑같은 침대에서 태어났다. 다행히 나는 내가 태어난 곳에서 죽을 수 있다."

Skye에서 Iain MacDonald 씨는 자기 농장의 미래를 숙고하기 위해 하루의 일을 잠시 멈추었다. 그는 세 딸과 세 아들이 있다. 

"아들 중 하나가 이 일을 이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기다릴 정도로 행복하다"며 찡긋 미소를 짓는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