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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930년대의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마당질을 하고 있는 모습이지요.

한자로는 탈곡脫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대개는 집의 앞마당에서 하지만, 이렇게 들에서 하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둘을 구분하여, 들에서 할 경우에는 이를 들마당질이라 했지요.

아무튼, 마당질과 관련하여 걸어다니는 영상실록이신 정용수 본부장 님은 이렇게 기억하십니다.

 

"마당질을 하려면 일단 마당질하기 전에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지게로 산에서 고운 흙을 퍼다 나른다. 그걸 앞마당에 곱게 펴고, 고르고 판판하게 깐 다음 틈날 때마다 다지는 거야. 이게 보통 기술이 아니어서 실력 없는 사람은 하지도 못했지. 그렇게 꼼꼼히 준비한 다음 거기서 곡식을 떨면, 나중에 비로 쓸어도 흙이 쓸리지 않을 정도였지. ……."

 

이야기를 들은 지 하도 오래되어서 정확하지 않으니, 언제 만나면 다시 한 번 여쭈어 볼 일이다.

 

사진으로 들어가 보면, 먼저 벼를 떨고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들이 벼를 떠는 방법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과 확연하게 다르지요.

이것이 바로 일제강점기에 발로 밟는 탈곡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주 보편적으로 쓰던 방법으로서, 태질 또는 개상질이라고 합니다.

태질이란 말 그대로 후려친다는 뜻에서 온 말이고, 개상질은 사진처럼 통나무 같은 것을 가져다 놓고 거기에 치는 걸 말합니다.

짐작하셨겠지만, 태질에는 개상 말고도 지방에 따라 돌을 쓰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절구통을 가져다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개상질보다는 태질이 더 범위가 넓게 쓸 수 있지요.

 

앞에서는 둘이 태질로 낟알을 떨고, 뒤에는 볏단을 나르기도 하고 교대하기도 하는 사람이 한 명 서 있습니다.

태질은 보통 중노동이 아니라 탈곡기로 떠는 것과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피곤한 일입니다.

그 뒤에서는 기다란 장대, 바로 갈퀴를 든 사람이 개깔을 고르고 있지요. 개깔만 잘 떨어도 쌀 몇 말이 나오는지 모른다고, 마당질할 때마다 안산의 이정욱 어르신은 강조하십니다. 아무리 잘 살아도 티끌 모아 태산이고, 남에게 줄 줄 알아야 오래간다는 교훈을 잊는다면 삼대가 지나지 않아 쪽박을 찰 겁니다.

갈퀴질을 하는 사람 바로 옆에는 낟알을 가마니에 담는 사람이 서 있습니다.

이렇게 다섯이 한 조가 되어 들마당질에 열심입니다.

 

이 많은 볏단을 보면서 얼마나 배가 불렀을까요?

그런데 달구지를 멘 수소 옆에 서 있는 남자는 누구일까요? 뭐간디 일도 않고 멀뚱하니 서 있간?

아마 지주의 무엇쯤 되는 사람이 아닐까요?

옷 차림새부터 다른 사람과 다르니 말입니다.

머리도 당시에는 신식인 빡빡머리로 깎았겠다, 옷도 좋겠다, 일도 안 하고 서 있으니 그렇게 짐작해 보았습니다. 아님 말구요.

그렇다면 이 사람들 이렇게 일해야 별로 건지는 것도 없겠습니다.

소작료는 지역마다 사람마다 달랐지만, 이 시기에만 해도 거의 반씩 나눈다고 보면 됩니다.

거기에 소작인이 부담해야 하는 각종 세금까지 생각하면, 실제로는 일해서 20~30%나 건지면 다행이지요.

그래도 어쩐답니까, 먹고 살려면 일해야지. 진짜 죽지 못해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지 모릅니다.

지금은 참말 편한 세상이 아닙니까. 세금 많이 뗀다고 투덜거려도 굶어 죽을 만큼 못 먹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런데도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세금을 안 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심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진에서 재밌게 볼 만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볏단을 널어 말리는 곳과 벼 그 자체입니다.

그냥 봐도 벼의 길이가 엄청 긴 것을 알 수 있지요.

토종 취재를 다니며 들은 바로는, 토종벼의 특징이 바로 큰 키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확량도 문제이지만, 화학비료를 주거나 거름을 많이 주면 쉽게 쓰러지는 단점이 있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사진에서 보이는 벼는 그 토종벼의 하나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리고 볏단을 널어 말리는 곳에 즐비하게 자리한 무덤을 보십시오.

논 뒤로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덤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혹시 동네 사람들의 공동묘지였을지도 모르지요.

땀 흘리며 일하여 먹고 사는 사람과 후손에게 땅과 생명을 넘기고 죽은 사람이 공존하는 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없습니까!

등산하는 사람도 그렇지만, 군인도 훈련을 나가서 쉴 때는 꼭 무덤을 애용합니다.

그 이유는 무덤의 대부분이 양지 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무덤들도 그렇다면 남쪽을 향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럼 그 아래에 있는 논도 자연스레 볕이 좋은 곳에 자리했겠지요.

 

오늘도 사진 한 장을 꺼내 들고 천천히 감상해 보았습니다. 다음 사진은 또 어떤 것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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