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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포함한 동물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빛은 식물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식물, 특히 작물은 빛을 제대로 충분히 받아야지만 광합성을 통해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를 통해 그 결과물인 열매나 씨앗 등을 얻는 것이 농사입니다. 그래서 농사에서는 자신이 재배하려는 작물이 햇빛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그러한 작업의 하나가 바로 우리가 작물의 씨앗이나 모종을 심을 때 일정하게 열과 오를 맞추는 일입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작물을 심는 건, 다른 무엇보다 작물이 햇빛을 충분히 받도록 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입니다. 물론 그를 통해 바람(공기)이 잘 통하도록 하고, 꽃가루가 잘 이동하도록 하며, 뿌리가 잘 내리도록 도울 수도 있지만요. 


넓은 농지에 한 가지 작물만 심을 때는 이런 빛 문제를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한정된 농지에 여러 가지 작물을 심으려 할 때는 서로 다른 작물들 사이의 빛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농이나 요즘 새로 등장한 도시농부들이 자급을 목적으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때에 해당될 겁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작물을 한 농지에서 함께 재배하는 것을 보통 섞어짓기(混作, mixed cropping)라고 합니다. 섞어짓기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중앙아메리카를 중심으로 행해진 ‘세 자매(three sisters) 농법’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세 자매는 세 가지 작물을 가리키는데 옥수수와 덩굴콩, 호박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세 자매 농법은 옥수수와 덩굴콩 및 호박을 한 밭에서 함께 기르는 농사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원리는 이러합니다. 위로 쭉쭉 자라는 옥수수를 심고, 그리고 옥수수 옆에는 그걸 지주로 삼아 감고 올라가며 자라는 덩굴콩을 심습니다. 마지막으로 옥수수 사이의 고랑에 덩굴을 뻗는 호박을 심는 것이지요. 이런 방식으로 재배하면 서로가 서로를 해치지 않고, 특히 빛을 두고 심하게 경쟁하지 않으며 성장하게 됩니다. 또한 거름이 많이 필요한 옥수수는 덩굴콩에 공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양분 섭취에 도움을 주고, 지주가 필요한 덩굴콩은 옥수수와 공생하며, 호박은 고랑 부분을 장악해 여러 풀이 싹이 터 자라는 걸 억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다음 그림은 호박 홑짓기, 옥수수 홑짓기, 호박과 옥수수 섞어짓기에 따라 지표면에 이르는 빛이 얼마나 감소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호박만 심었을 때보다 호박과 옥수수를 섞어짓기로 재배하면 호박에 이르는 빛의 양이 확연히 감소하긴 하지만, 이 정도의 빛으로도 호박은 충분히 성장할 수 있습니다. 호박잎이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을 피하려 오그라드는 걸 안다면 오히려 옥수수가 만들어주는 그늘이 호박에게는 더 이로울 수 있겠지요. 또 호박과 옥수수가 더 많은 빛을 차단하기에 지표에서 풀의 씨앗이 싹트거나 자라기에 훨씬 안 좋은 조건을 형성한다는 사실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농사법에 따른 빛의 감소율. (출처: Fujiyoshi, 1997) 



이러한 원리를 다른 섞어짓기 농사법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상추 같은 잎채소에게 말이죠. 상추 역시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을 싫어하는 특성이 있으니 적당히 그늘을 드리울 수 있는 다른 작물과 함께 재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됩니다. 식물에게 햇빛이 중요하다지만, 너무 지나치게 먹으면 독이 될 수도 있다고나 할까요? 농부들은 이를 알고 적절한 방법을 동원해 여러 가지 작물을 재배하곤 했습니다. 예전부터 알려진 섞어짓기의 방법은 참으로 무궁무진하게 다양합니다. 오늘 소개한 세 자매 농법도 그것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무한경쟁은 나쁘다고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의 성장을 돕는 경쟁은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결과를 얻으려면 작물을 심기에 앞서 미리 충분히 계산하고 심사숙고하여 설계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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